유달승(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 핵 협정 복원을 둘러싼 강대국의 셈범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강대국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지역정치가 급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란 핵 협정(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타결에 또 다른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이란,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및 러시아 대표단이 2021년 4월 6일(현지 시각)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서 이란 핵 협정 복원을 위한 당사국 회의가 시작되었고 미국은 이란의 반대로 회의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유럽 3국을 통해 이란과 간접적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17일 이란 국영방송 IRIB에 따르면, 호세인 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이 “그 어느 때보다 최종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고 독일 외무부도 “최종 합의문은 준비된 상태”라고 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점차 장기화되면서 이란 핵 협정 타결에 낙관론과 신중론이 교차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고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상황에서 이란의 복귀가 급등하는 유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낙관론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향후 이란과의 사업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서명 보증을 요구했고 이란은 미국과 이슬람혁명수비대의 외국 테러 조직(FTO) 지정 철회와 제재 부활 방지 보증 등 일부 사안을 놓고 대립하는 상황에서 신중론도 존재하고 있다. 이란 핵 협정을 복원시키는 문제는 강대국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는 이란 문제는 단순히 이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정치경제 지형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란 핵 협정을 둘러싼 강대국의 셈법은 향후 세계 질서를 분석하고 전망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가까워지는 이란과 중국, 러시아: 경제적 파트너에서 안보 동맹으로
2022년 1월 21일부터 이란, 중국, 러시아 3국은 호르무즈 해협 부근인 오만 해와 인도양 북부에서 ‘2022 해양 안보 벨트(2022 Marine Security Belf)’ 훈련을 실시했다. 이란은 이번 훈련의 목적이 “안보와 역내 기반을 강화하고 3국 간 협력을 확대해 세계평화와 해양 안보를 지키고 공동의 미래를 가진 해양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훈련은 2019년 12월 27일부터 나흘간 실시된 첫 번째 훈련 이후 세 번째로 진행된 합동 해상 훈련이었다. 3국의 해양 안보 벨트가 결성된 배경에는 미국의 압력에 대한 반발과 이를 견제한다는 공동 목표가 있었다. 2018년 5월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체결된 이란 핵 협정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공식적으로 핵 협정을 탈퇴했다. 이어서 8월 7일 금융 및 일반 무역에 대한 1단계 경제제재, 11월 5일 에너지 무역 및 석유 산업에 대한 2단계 경제제재를 실시했다. 또한, 2019년 5월 13일과 6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호르무즈 해협 부근 오만해에서 유조선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유조선 피격 사건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면서 상선의 안전한 항행을 보장하기 위한 호르무즈 해협 군사 호위 연합체 구상을 추진했다. 이에 맞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고 더 나아가 3국 합동훈련은 실시했다. 이제까지 이란은 인도, 오만, 파키스탄, 러시아 등 양자간 합동훈련을 수행해 왔었다. 하지만 3국 합동훈련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안보 협력으로 확대시킨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란, 중국 및 러시아의 안보 협력은 이념적 가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란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동진 정책(Look East Policy)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와의 강력한 경제, 정치, 군사, 안보 관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란의 동진 정책은 미국이 이란 핵 협정을 탈퇴하고 최대 압박 전략을 추구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이란의 외교전략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비동비서(非東非西)를 내세우면서 ‘이슬람 공화국’을 강조하는 독자적인 자주노선을 표방했다. 하지만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미국은 1980년 4월 7일 이란과 단교를 선언했다. 이후 미국은 대이란 독자 경제제재를 추진했지만 2002년 이란의 핵 위기를 계기로 유엔을 통한 다자 경제제재로 확대시켰고 유엔 안보리 이란제재 결의안은 이제까지 6차례(제1696호, 제1737호, 제1747호, 제1803호, 제1835호 및 제1929호)에 걸쳐 이루어졌다.
사실 이란의 동진 정책은 아흐마디네자드 행정부(2005년-2013년)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구체화되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와 압박이 확대되면서 이란의 국제적 고립화 현상이 심화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되었다. 이란, 중국 및 러시아는 에너지 외교 분야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요했고 2015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이 되었다. 이란은 미국의 최대 압박 전략으로 인해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중국이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며 이란경제에 활로를 제공하고 있다. 이란과 중국의 에너지 공조는 경제 협력으로 발전했다. 2007년 12월 중국석유화학공사(SINOPEC)는 20억 달러 규모의 야다바란(Yadavaran) 유전 개발 계약을 체결했고 2009년 7월 이란 남부지역의 호르무즈(Hormuz) 정유소 건설 및 아바단(Abadan) 정유소 확장사업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란과 중국 간의 교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2008년부터 중국은 이란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이란과 중국의 전략적 연대는 점차 강화되고 있다. 2021년 3월 27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이란은 중국과 향후 25년간 정치, 경제, 무역 분야의 협력 관계를 확대시키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2016년 1월 22일 시진핀 중국 국가주석이 이란 방문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2020년 7월 12일 ‘이란-중국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하고 나서 나온 후속 조치였다. 중국은 향후 25년 동안 안정적인 이란의 원유를 공급받고 그 대가로 이란의 금융, 통신, 항만, 철도를 비롯한 각 분야에 걸쳐 4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는 것이었다. 2022년 4월 27일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을 만나 중국과 장기적으로 전략적 관계를 강화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고 양국은 국방, 안보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이란과 러시아의 관계는 핵 에너지 분야의 협력에서 시작되었다. 1992년 이란과 러시아는 1975년 독일과 착공했다가 중단된 부쉐르(Bushehr) 원자로의 완성계약을 체결했다. 1997년 9월 러시아 국영기업인 가즈프롬은 이란 석유부와 20여 개의 협정을 체결하고, 이란 남부의 파르스(Pars) 가스전 개발 등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9/11 테러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이란과 러시아의 관계는 군사 협력으로 확대되었다. 2001년 10월 2일 이란과 러시아는 러시아제 무기를 이란에 판매할 수 있는 군사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이란과 러시아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2016년 1월 20일 이란과 러시아는 역외 국가들이 역내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 공동 대응하고 군사 대표단 교환, 상호 군사훈련 참관, 테러와의 전쟁 공조 등 군사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2022년 1월 19일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란과 러시아는 강력하고 다층적인 유대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20년간 양국의 전략적 협력에 관한 합의문 초안 작성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란은 상하이협력기구(SCO)와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확대시켰다. 이 기구는 1996년 4월 중국,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3개국(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타지키스탄)이 국경 지역의 안정을 위한 ‘군사 부문 신뢰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상하이 5(Shanghai-Five) 회의를 전신으로 하고 있고 그 목적은 중국과의 국경에 대한 공동 관리였다. 하지만 중국과 국경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우즈베키스탄이 2001년 6월 가입하면서 SCO로 개편되었다. 2017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가입했고 이란은 2005년부터 옵서버 국가로 참여했다가 2021년 8월 17일 정식 가입승인을 받아서 9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현재 회원국은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이란이고 옵서버 국가로는 아프가니스탄, 몽골, 벨라루스가 있다. SCO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이집트 중동 3개국을 대화 파트너로 지정해 위상을 확대할 방침을 밝혔고 현재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 대항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다극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2021년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사실상 미국 세계전략의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8월 31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제 2001년의 위협이 아니라 2021년의 위협들에 맞서야 할 시기”라고 강조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사이버 공격 등을 미국의 새로운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7월 8일 ‘아프간 미군 임무 8월 31일 종료’를 선언한 대국민 연설에서도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는 중국 견제를 제1의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미국의 주적 개념은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냉전 시대 미국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자 ‘악의 근원’이라고 부르며 주적으로 규정했고 모든 분쟁과 갈등의 책임을 소련에게 돌렸다. 소련 붕괴 이후 탈냉전 시대에는 이슬람 위협론이 제기되었다. 2001년 9-11 테러 사태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더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을 ‘십자군 전쟁’, ‘이슬람 파시즘과의 전쟁’으로 미화시켰다. 2006년 8월 31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미국재향군인회 연차총회에 참석해 “이슬람 급진파는 파시스트와 나치, 공산주의자의 계승자”라며 “이슬람원리주의와의 투쟁은 20세기의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와의 투쟁에 비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아프간 철군을 계기로 미국 세계전략의 주적 개념이 중국으로 분명하게 변화했다. 미국은 2010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중국이 부상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2012년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채택했다. 이번 아프간 철군은 미국 세계전략의 중심축이 중동에서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로의 이동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향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간의 충돌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이란 핵협정을 둘러싼 향후 예상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핵협정 타결론이다. 이란과 미국은 일부 사안을 둘러싸고 크게 대립하고 있지만 부분적인 합의 또는 조정에 의해 단계적으로 핵 협정 타결론에 도달하는 시나리오이다. 이란 핵 협정은 이란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P5+1) 간에 다자주의 외교와 단계적 접근을 기반으로 최종 합의한 것이고 이를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31호로 승인한 국제 협약이었다. 따라서 이란 핵 협정을 되살리는 문제는 바이든 외교 정책의 기조인 다자주의 외교라는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고 유럽 국가들과의 전통적인 외교관계를 회복해 동맹 외교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이란과의 관개 개선을 통해 모든 외교력을 중국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구체화되면 이란은 기존의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편승(bandwagoning) 전략에서 탈피해 균형(balancing)과 편승을 적절히 활용하는 헤징(hedging) 전략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이란과 미국의 관계 개선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핵 협정 폐기론이다. 이란과 미국은 지속적으로 핵 협상을 추진하겠지만 최종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 협정 폐기론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중동 정세가 악화되고 페르시아만 주변에 군사적인 긴장감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란, 중국 및 러시아의 전략적 연대가 공고화되고 3국간 안보 협력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흔들리는 페트로 달러(Petro Dollar) 패권
석유는 단일 품목으로는 세계 최대의 교역 상품이다. 석유는 단지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가장 중요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주요 산업 광물로 현대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에너지원이다. 페트로 달러 체제는 미국 화폐의 힘과 위신을 제공했고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또한 세계정치의 중심을 석유가 풍부한 중동으로 옮겼다. 페트로 달러 체제란 용어는 1972년에서 1974년까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일련의 협상과 합의를 통해 석유 판매를 달러에 연결하는 방식에서 유래했다. 그 결과 1974년 6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사우디아라비아 경제협력위원회’로 알려진 군사·경제 협정을 체결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모든 석유 수출을 달러로 결제하고 그 대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경제 및 군사 지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1974년 비밀 협약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신뢰할 수 있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 되었다.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 이후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는 이스라엘이 점령지로부터 철수할 때까지 이스라엘 지원국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를 발표하면서 자원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했고 이로 인해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하지만 오일쇼크는 달러를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로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석유의 25%가 매장된 최대 생산국으로 OPEC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결국 OPEC은 1975년부터 달러화로만 석유를 거래했고 흔들리던 달러화 체제를 다시 공고화시켰다. 페트로 달러는 1971년 이전 달러를 금으로 바꾸는 금 태환 제도를 사실상 대체하게 되었고 달러 헤게모니를 더욱 강화시켰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석유를 거래하기 위해 대량의 달러를 비축해야 했다. 결국 달러는 1971년 8월 15일 금 태환 정지 선언에도 불구하고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시켰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페트로 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라크는 2001년부터 원유 결제통화를 유로화로 받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페트로 유로(Petro Euro)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은 2003년 6월 이라크 원유 결제통화를 다시 달러로 바꿨다. 시리아는 2006년 3월부터 국제 거래에서 달러 이용을 중단했고 원유거래도 달러에서 유로로 바꿨다. 이란은 2006년 12월 자국 보유 외환을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바꾸고 원유 결제통화를 유로화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2012년 3월 미국과 유럽연합이 대이란 제재가 강화되자 이란은 중국, 인도, 터키와 거래하면서 금을 결제 수단으로 활용했고 이 시기부터 중국과 위안화 결제를 시작했다. 2009년 카다피 리비아 국가수반이 아프리카 연합(AU) 회원국에게 달러와 유로 모두를 거부하고 새로운 통화인 금화 디나르(Golden Dinar)를 통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이를 원유 결제통화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AU는 53개 아프리카 국가들이 2002년 7월 9일 결성한 범아프리카 정부 간 기구로 2004년 아프리카경제공동체를 창설해 2023년까지 금에 기반한 공통 통화를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2011년 카다피가 리비아 내전에서 살해당하면서 금화 디나르 창설에 관한 논의는 더이상 추진되지 않았다. 2019년 12월 18∼2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OIC) 정상회의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란, 터키, 카타르 등 3개국과 금화 디나르(이슬람 금화)와 물물교환을 기반으로 한 무역 시스템 도입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말했다.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5개국은 2011년 4월 13∼14일 중국 하이난성 싼야에서 거행된 제3차 정상회담에서 탈달러 동맹을 선언하면서 서로 돈을 빌리거나 무역 결제를 할 때 달러 대신 자국 통화를 사용하자고 결의했다. 브릭스는 2006년 러시아의 제안으로 구성되었고 2009년부터 매년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있는데, 세계 인구의 42%, 무역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는 반달러 금융 연대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2019년 6월 5일 중국과 러시아는 양국 관계를 ‘새로운 시대 포괄적 전략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자국 외환보유고에서 위안화 비중을 5%에서 15%로 늘렸고 중국과 러시아는 양국 무역액의 50%까지 양국 통화의 사용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위안화, 페트로 달러의 도전자
또한 페트로 위안(Petro Yuan)에 관한 논의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2017년 9월 15일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은 위안화로 유가를 표시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기업 페드로레오스 데 베네수엘라(PDVSA)는 민간 합작파트너사들에 유로화로 계좌를 열고 기존 현금을 유로화로 전환할 것을 지시했다. 2018년 3월 26일 중국은 상하이 선물거래소 산하에 설립한 국제에너지거래소(INE: International Energy Exchange)를 통해 원유 선물거래를 시작했다. 국제원유 거래를 위안화로 결제하는 것은 위안화를 국제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원유 거래가 달러화에서 위안화로 바뀌는 것은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것이며 이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고 있다. 2020년 9월 영국의 석유 메이저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INE를 통해 중국에 원유 300만 배럴을 납품하면서 위안화로 결제했다. 이는 중국이 원유 선물시장을 개장한 이후 첫 번째 거래였다. 2022년 3월 1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과 위안화로 원유 수출 대금을 결제하는 방안에 대해서 협의했고 위안화 결제 방안에 대한 논의는 201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도했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수출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면 OPEC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대러시아 제재가 강화되자 러시아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에게 천연가스 대금을 루블(Ruble: 러시아 화폐)과 가상 화폐로 요구했다. 러시아와 인도는 루블-루피(Rupee: 인도 화폐) 결제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인도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과 자유무역협정을 논의하고 있다. 유라시아경제연합은 2015년 러시아를 중심으로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 국가로 구성된 경제 연합체이다.
중국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페트로 달러에서 페트로 위안으로 바꾸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위안화가 원유 결제통화로 사용되면 세계 석유 시장의 구도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현 상황이 페트로 달러 시대의 위기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유 결제통화는 점차 다양화와 다원화 추세로 나타나고 있고 이는 페트로 달러의 영향력을 점차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란 핵협정을 복원시키는 문제는 페트로 달러 체제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만약 이란 핵협정이 타결된다면 이란과 미국의 관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고 이로 인해 이란의 탈달러화 정책이 부분적으로 수정되거나 변경될수 있어 페트로 달러 체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고 세계경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란 핵협정이 타결되지 못하면 이란, 중국, 러시아의 에너지 연대가 강화될 전망이고 이는 페트로 달러 체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란은 2006년부터 달러 이외의 통화로 원유를 거래한다는 정책에 따라 유로화, 엔화, 위엔화, 원화, 루피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원유 결제통화를 변화시켜 왔기 때문에 페트로 달러 체제를 뒤흔드는 태풍의 눈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한국과 이란은 1962년 10월 23일 수교 이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21년 1월 4일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가 한국 선박을 나포한 사건을 계기로 크게 악화되었다. 이 사건은 2월 2일 한국 선원을 비롯한 19명을 석방했고 4월 9일 한국 선장과 선박의 억류를 해제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해결되었지만 양국 간에 깊은 상처와 불신을 남겼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양국 간의 우호 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란 정부는 공식적으로 환경 오염에 따른 기술적인 사안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사건의 이면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2018년 5월 8일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이란 핵협정(JCPOA) 탈퇴와 대이란 경제제재는 한국과 이란의 관계를 악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미국은 사실상 이란과 거래를 끊어도 별다른 피해가 없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 10월 1일부터 달러화 거래에 따른 제재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한국-이란 간 원화결제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이란중앙은행(CBI)이 우리은행과 IBK 기업은행에 원화계좌를 개설해 양국간 무역 대금을 원화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즉, 이란이 한국에 원유를 수출하고 받은 원화를 이 계좌에 입금하고 한국 기업들이 이란에 수출하는 물품 대금을 이 계좌에서 지불하는 것이다. 2019년 5월 6일 원화 결제계좌가 동결되면서 이란에 대한 수출이 어려워졌고 이란 대금 70억 달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란은 매우 특이한 나라이다. 일반적으로 석유가 많으면 천연가스가 적고, 반대로 천연가스가 많으면 석유가 적다. 하지만 이란은 석유(세계 4위)도 많고 천연가스(세계 2위)도 많다. 심지어 광물자원(아연 세계 1위, 철광석 세계 9위, 우라늄 세계 10위, 납 세계 11위, 구리 세계 17위, 석탄 세계 26위)도 풍부하다. 이란의 인구는 8천 5백만 명(2022년)으로 세계 18위이고 지정학적으로도 자원의 보고로 알려진 페르시아만(세계 석유 매장량 3분의 2)과 카스피해(세계 석유 매장량 5분의 1)를 연결하는 지구촌의 유일한 국가이다. 이란은 자원, 인구, 지리 삼박자를 모두 갖춘 국가로 흔히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호주 그리고 터키를 모두 합친 나라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유로 이란은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다.
현재 이란은 커다란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이란 정책은 장기적인 전략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중단기적 정책이 필요하다. 기존의 경제 중심의 교류에서 문화, 교육,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시켜 공공외교를 전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2022년 수교 60주년을 계기로 양국 간의 신뢰 회복을 위한 중대한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2016년 추진되었다가 중단되었던 테헤란에 한국 문화원 설립을 재추진할 필요가 있고 이를 문화 외교의 상징으로 활용해야 한다. 더불어 서울에 이란 문화원을 설립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또한 이란의 핵 위기와 이를 초래한 요인은 독특하지만, 그 해결책은 북한 핵 문제에도 또 다른 교훈이 될 수 있다. 이란과 북한은 NPT 회원국 여부, IAEA 핵사찰 허용 여부, 핵무기 보유 여부 등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대상으로 협상해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 오랜 적대 관계 속에서 형성된 뿌리 깊은 상호 불신과 오해는 일괄 타결 방식으로 한순간에 해결하기는 어렵고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해야만 상호 신뢰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다자 협상이냐 양자 협상이냐, 일괄 타결이냐 단계 타결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외교를 통해 다양한 지역 위기를 관리하는 새로운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저자 소개
유달승 교수(dsyu@hufs.ac.kr)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이다. 이란 Tehran 대학교 법정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한-이란 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동정치, 이슬람주의, 이란 정치사상, 한-이란 외교사 등을 진행하고, 주요 저서로는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중동은 불타고 있다』, 『시아파의 부활과 중동정치의 지각변동』,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등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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