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제기하는 두 가지 교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국가들이 지탱해오던 힘의 균형을 시험대에 올렸다. 실은 유럽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작용하던 국제질서가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음을 입증했다. 이 전쟁의 특이점은 무엇인가? 첫째, 러시아는 2차대전 이래 세계가 공히 인정(또는 묵인)해오던 규범과 논리에 도전함으로써, 국제질서의 정당성에 관한 인류 공통의 인식이 기반을 잃어가고 있음을 드러냈다. 둘째, 국제질서에 관한 합의에 혼란이 가중될수록 국경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평화의 핵심임을 일깨웠다. 이런 교훈은 아시아에도 큰 함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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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 연작 중 20번 작품 <슬라브의 이상, 인류를 위한 슬라브(Apotheosis of the Slavs, Slavs for Humanity)> (1926)
출처: Mucha Foundation

박용민(국립외교원)

진실의 실종

러시아의 운명에 관한 푸틴의 서사는 웅장하다. 그러나 그것은 허구다. 푸틴의 정책과 가장 큰 친연성(親緣性)을 보여주는 이데올로그는 러시아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Aleksandr Dugin)이다. 그는 러시아의 정통성이 서방도 동방도 아닌 독특한 문명에 바탕을 두고 있고, 누가 세계를 지배할지는 전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두긴이 내세우는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의 원조는 제정기의 역사학자 레프 구밀료프(Lev Nikolayevich Gumilyov, 1912~1992)이다. 이들의 주장은 체코 화가 알폰스 무하(Alfons Maria Mucha, 1860~1939)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원시공동체적 슬라브주의를 지향한다. 무하의 그림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천년왕국을 소망하는 슬라브족의 고난과 하나가 된다. 고대 게르마니아 숲의 신비에서 피어난 독일 낭만주의가 히틀러에게 바그너의 장엄한 주제선율(Leitmotiv)을 선사했듯이, 두긴이 주장하는 역사주의의 파괴성이 푸틴의 퇴행적 사고에도 오롯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냉전에서 패한 국가의 상처 입은 자존심이 슬라브 민족주의 위에 덧씌워졌다. 냉전 종식 후 러시아의 정치개혁은 실패했고, 경제력은 중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졸아들었다. 러시아의 위대함을 믿는 이들에게, 러시아의 몰락은 다른 누군가의 음모임이 틀림없었다. 극우민족주의 정치가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Vladimir Zhirinovsky, 1946~2022)의 선동은 폭력적 반(反)서방 대외정책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제아무리 두긴이라도, 신비주의적 슬라브주의, 파시즘, 마르크시즘을 뒤섞어 사회적 불만을 대외적 적개심으로 발효시킨 주장을 ‘제4의 정치이론’이라며 정색하고 설파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30년 전이었다면 말이다. 두긴에게 너른 무대를 마련해준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티 속에서 소위 진실이라는 것은 믿음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말을 믿는다. 그것이 진실을 정의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우리의 특별한 러시아식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변한다(BBC 16/10/25).

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는 유럽의 철학적 전통이라는 것은 플라톤에 관한 각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동굴 밖 저 너머에 절대적 진실이 있다는 믿음이 통용되는 한은 그가 옳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믿음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2004년 10월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사망했을 때,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부고 기사에서 이 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이 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할 때 극심한 논쟁이 있었음을 소개하면서, “본디 학계에 다툼이 잦긴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데리다씨의 견해나 논점이 논쟁적이라서가 아니었다. 실은 논점이나 견해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데리다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 이 점을 앞장서서 인정했을 터였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과 모순되는 말을 누차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생각을 명료하게 정의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격렬히 저항했다.”라고 썼다(The Economist 04/10/23). 진실은 더이상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포스트 진실(post truth)’이라는 단어를 등재했다. 여론이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개인적 신념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세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혼란스러운 철학자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했을 일을 스티브 잡스(Steve Jobs)라는 고집스러운 혁신가가 현실로 옮겨놓았다. 스마트폰은 개인을 세계적 연결망에 접속시키는 기능을 갖는, 우리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아랍의 봄’을 연출했고, 유로마이단(Євромайдан) 혁명과 촛불시위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초연결’과 정보의 민주화가 미친 영향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SNS는 사람들의 집단확증편향을 강화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요도나 윤리와는 무관하게 많은 관심을 받는 게시물을 우선적으로 소개하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 연결하는 알고리즘을 채택했다. SNS는 참여자들의 의견을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집단화하고, 퀴어넌(QAnon) 같은 음모론 집단, 백인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단체에 동료의식과 확신을 불어넣고, 알카에다 같은 테러집단에 조직원을 손쉽게 충원할 길을 열어주었다(Arthur, 2021).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귀해진다. 너무 많은 정보는 없느니만도 못하다. 정보의 홍수는 전문가의 권위를 허물었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진실을 어디선가 찾아야 했다.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든, 페이스북에서는 ‘당신 생각이 옳다’고 외쳐주는 ‘친구’들을 저절로 만나게 되었다. 세계인을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출범한 SNS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괴물이 되었다. 속보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주류언론이 SNS를 인용하는 세상이 되었다. 최강 패권국가의 수장(트럼프 대통령)이 공신력 있는 자국 주류매체들(뉴욕타임즈, CNN)의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세상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고문은 명백한 거짓을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고 부르는 대담함까지 선보였다(New York Times, 20/06/13).

“대체로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기꺼이 믿는다(Fere libenter homines id quod volunt credunt).” 2천 년 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남긴 명언이다. 그럼에도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믿을 만한 신념의 선택지들과 유통경로가 상대적으로 단촐했던 덕분일 것이다. 저마다 믿고자 하는 진실의 버전이, 결정 장애를 유발하는 아이스크림 종류처럼 다양해졌을 때,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이런 인식론적 혼란상에 더하여, 세계화가 초래한 경제적 양극화도 정치적 분열과 공동체의 파편화를 재촉한다. 미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선거철이 되면 그 분열상의 파괴력이 손에 만져질 듯 또렷해진다. 첨단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미래 기술의 전모를 알 도리는 없지만, 장차 인공지능과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 ‘거짓’과 ‘참’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만들 것이다.

이상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일부’라고 부르며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배경이다. 질서의 요체가 정당성(legitimacy)과 힘의 균형이라고 보는 키신저(Henry Kissinger)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이미 국제사회는 무질서(anarchy)의 초입에 들어선 셈이다. 질서의 붕괴는 미사일과 포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리에서 시작된다. 케인즈가 경제학의 대양에서 ‘기대(expectation)’라는 심리적 열쇠를 건져 올린 것처럼, 키신저가 말하는 ‘정당성’도 주요국 지도자와 국민의 마음속에 맺히는 상(像)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다른 어떤 사건보다 기존 국제질서의 붕괴를 떠들썩하게 알리는 조종(弔鐘)처럼 보인다. 실체적 진실이 이 정도로 푸대접을 받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저마다의 진실이 있다는데.

우리나라를 들여다보아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의 잘못을 침략자 러시아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에서 찾는 견해가 많은 것이 불온해 보인다. 이번 전쟁을 미국이 사주했거나 방조했다는 음모론에 경도된 사람이 많은 것도 걱정스럽다. 검열과 조작으로 악명 높은 러시아 측의 선전자료를 들이대며 서방 언론을 편향적이라고 비난하는 주장이 청중을 모으는 현상도 기이하다. 침략을 받아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가 지도자의 화상연설을 들으며 우리 국회의 선량들이 보여준 무례한 태도는 몹시 부끄러운 것이었다. 아직은 먼 나라에서 벌어진 비극이지만, 이런 모습은 우리 공동체가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를 고난을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지에 관해서도 불길한 예감을 떠올리게 한다.

절대선이나 객관적 진실은 이제 판타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대로 간다면 극한의 윤리적 상대주의가 무리생활을 영유하는 인류의 능력을 파훼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막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이고, 특히 지식인들의 어깨는 무거워야 마땅하다. 공동체의 파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크라이나 사태는 질문을 던지지만, 그에 관한 답도 제시해주고 있다.

 

국경이 답이다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한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를 150명으로 규정하고, 이것을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불렀다. 공동체를 하나로 유지하는 힘은 상호 의무감과 호혜주의인데 집단의 규모가 150명을 넘으면 이 힘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던바는 부족사회에 존재하던 씨족 집단의 규모, 기업 조직이론이 적용되는 적정 부서 규모, 대학에서 한 명의 교수가 관리할 수 있는 연구자의 수 등 150명이 집단적 협업의 적정 규모임을 보여주는 실례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Dunbar, 2011).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도 인간이 언어적 소통, 특히 뒷담화(gossip)를 통해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를 150명으로 보았다.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이 임계점을 넘어 거대한 도시와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을 허구(fiction)의 등장에서 찾았다. 다른 동물이 진화 과정에서 겪지 못한 ‘인지혁명’을 통해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덕분에 150명이 넘는 집단도 같은 신을 믿거나 같은 회사, 같은 국가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Harari, 2011). 그래서 인간은 (카이사르가 말했듯이) ‘믿고 싶은 것을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아니, 무언가를 믿어야 무리생활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추상적인 허구를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농업혁명을 일으키고 피라미드를 쌓고 제국을 세우고 회사를 만들고 우주선을 쏘아올릴 능력을 부여했다. 아울러, 지배하고, 착취하고, 전쟁을 벌이고, 대량살상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도 선사했다. 인간이 벌이는 전쟁은 부족의 이름으로, 민족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이념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하지만 모든 픽션이 다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근대 이래 명확한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뿐이었다. 왜 그럴까? 오직 국가만이 주권이라는 관념(픽션)이 지리적 경계를 가진 영토라는 실체와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선은 민족이나 인종이나 종교 같은 픽션이 아니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가시적 경계선을 가진 최상위 공동체’가 국가다. 전쟁은 국경을 넘는 것으로 시작해서 국경을 정하는 것으로 끝난다. 국경선 안에서 벌어지는 내전(civil war)은 국가 간의 전쟁보다 더 처참하게 전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규군이 아닌 교전단체에 전쟁법을 적용하기도 까다롭다. 내전은 싸우던 당사자들이 화해하거나, 새로운 경계선을 긋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쿠르드족처럼, 다수의 국민에 박탈당한 민족자결의 권리를 되찾으려고 싸우는 저항세력도 국경 안에서 적절한 타협의 방식을 찾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용해시키거나, 그러지 못하겠다면 국경 안에 새로운 경계선을 협상과 무력으로 쟁취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경계선을 확정할 수 없는 전쟁은 영원한 전쟁이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증가하고 있는 유태인 정착촌을 국제사회가 반대하는 이유는 정착촌이 경계선 획정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근대적 칼리프국가를 수립하겠다며 초국경적 테러를 일삼는 IS는 일견 국경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IS가 만에 하나 자신들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도 새로운 국경을 만드는 행위로 마감될 것이다. 국가를 이루는 3요소(영토, 국민, 주권) 중 관념을 배제한 실체는 영토뿐이다. 그래서 지도에 금을 그어 그릴 수 있는 국가가 국제관계의 기본 단위가 되었다. 주권국가를 단위로 하는 근대적 국제체제(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을 흔히 그 시발점으로 본다)가 4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가 거기 있다. 국경은 모두가 인지할 수 있는 선(線)이자, 인간 집단에 형체와 안정성을 부여하는 선(善)이다. 국경은 국가가 바로 주권의 현현(顯現, incarnation)임을 드러내는 표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가 실제로 한 말은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zoon politikon, ζῷον πολιτικόν)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polis)는 지리적 경계를 가진 실체다. 인간은 폴리스를 이루고 거기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발견한다는 의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언명에는 인간이 단순히 무리생활을 하면서 관계를 맺는다거나, 정치적 함의가 담긴 행위를 한다는 것보다 훨씬 더 실체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종교, 신념, 이념, 민족으로 묶인 집단은 규율하기 어렵다. 더 격정적이어서가 아니라 경계가 정해져 있지 않아 규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은 도깨비떼처럼 움직이고, 유령처럼 흩어진다. 국가는 그러지 않는다. 국경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치학도에게 지도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세상에 첫 국경이 그어지던 장면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경의 형태는 국경의 연원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대부분의 국가는 자연 지리적 경계(physiographic border)를 가진다. 산맥이나 큰 강, 바다, 계곡 따위가 경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두 집단의 힘이 충돌했다가 자연적 장애물을 경계로 균형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고기압과 저기압은 하늘 위 어디서나 만나 장마전선을 만들어내지만 몸싸움으로 힘을 겨뤄야 하는 인간에게 자연적 장애물은 자연스럽게 힘의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기하학적 직선 국경’
출처: Pixabay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하학적 직선 국경(geometric border)은 다른 의미에서 힘의 흔적이다. 그것은 힘이 센 나라가 약한 나라에 강요한 경계선이다. 부족과 민족과 언어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그은 선이다. 1890년 영국 총리 솔즈베리 경은 유럽의 식민지 쟁탈전에 관해 이런 자조적 표현을 했다. “우리는 백인이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곳의 지도 위에 선을 긋는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과 강과 호수를 서로 주고받고 있습니다. 물론 한 가지 사소한 장애가 있긴 합니다. 바로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지요.”(Ganster, 2004) 이런 인위적 경계선은 중동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끈질긴 분쟁의 근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팔렌 조약 이래 국가 단위로 상호관계를 맺어오던 유럽 국가들이 바깥 세상을 만나게 되었을 때, 상대방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국가를 이루지 않은 부족과 민족들에게 ‘국경’을 강요해 그들을 국가로 만드는 길뿐이었을 것이다. (오독을 피하기 위해 강조하건대, 그런 사정이 직선 국경의 무책임성과 부도덕성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국경은 힘의 균형으로 형성되거나 힘으로 강요한 선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현상유지를 지향하는 보수적 성격을 내포한다. 국경은 국제정치에서 안정을 상징하는 표식이다. 전쟁의 결과물이자, 평화의 지리적 표현형(phenotype)인 것이다. 국경이 단단하면 평화롭고, 국경이 무르면 불안하고, 국경이 침범당하면 거기서부터 전쟁이다. 경계를 공유하는 두 나라가 협정을 통해 국경을 정의하면 그것이 국제법적으로는 가장 단단한 국경이 된다. 협정이 없더라도 오랜 세월에 걸쳐 관행적으로 양국이 평화롭게 경계를 인정해 왔다면 관습법적 국경이 된다. 전쟁이 상시적으로 벌어지지 않더라도, 양국이 주장하는 경계가 서로 다르면 영토 분쟁이 존재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참고로 상기하자면, 독도에 대한 우리 입장이나 센카쿠 제도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상대방의 주장에 고려할 가치가 없으므로 영토문제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당사국들은 국경선으로 규정하지 않았지만 국제사회가 국경선으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남북한 간의 휴전선은 남북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국제법상으로는 국경선에 더 가까운 지위를 얻게 되었다. 남북한이 각자의 국내법으로 어떻게 규정하든, 휴전상태가 70년 가까이 현상 유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일방이 무력을 동원해 휴전선을 변경하려 들면 국제법상 침략행위가 된다.

다른 사례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미국의 인식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한다. 중국의 입장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식적으로 승인했고, 그로써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관계의 기초를 이루는 1972년의 상해 공동성명을 살펴보면,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recognize)하는 한편, 중국 측이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maintain)함을 인식(acknowledge)하고’, 미국은 그 입장에 도전(challenge)하지 않으며, 중국인들 스스로 대만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이해가 있음을 재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acknowledge는 승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가 그렇게 주장한다는 사실을 알아들었다는 의미다. 미국 국무성 홈페이지의 미-대만 관계에 관한 종전의 게시물에는 상해 공동성명의 위와 같은 내용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나 5월 5일에 수정된 게시물에는 이 내용이 누락되었다. 대신, ‘대만은 민주주의와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로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핵심 파트너’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미 국무부는 미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으며 홈페이지의 기술적 갱신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언론에서는 상해 공동성명의 표현이 마치 대만에 관한 중국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오해되거나 오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삭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양국 간의 인식 차와 변화하는 국제정세가 대만해협을 불안정한 지정학적 단층선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는 쿠릴열도(북방도서)
출처: 일본 내각관방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 홈페이지

경위는 다르지만,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도 북방 4개 섬을 두고 인식의 차가 있다. 러시아는 2차대전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합법적으로 확보한 영토라는 입장이고, 일본은 4개 섬이 일본의 고유영토이므로 반환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국이 외교 관계를 회복할 때 발표한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서 소련은 하보마이와 시코탄 2개 섬은 평화조약을 체결한 후에 일본에 넘기기로 동의했다. 이런 잠정적 합의 때문에 북방도서는 줄곧 양국 간 밀고 당기는 협상의 소재가 되어 왔고, 양국 간의 국경은 이견이 있는(contested)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경은 우크라이나 독립 당시 러시아가 명시적으로 승인한 ‘단단한’ 국경이었다. 크림반도를 제외한 양국의 국경은 1918년 독일 제국과 신생국가 소련이 맺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Treaty of Brest-Litovsk)에 뿌리를 두고 있다. 크림반도는 1954년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양했는데, 2014년 러시아는 이것을 크림반도 병합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크림반도 내 러시아계 인구 비중이 큰 것이 사실이고, 병합 전에 주민투표를 실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러시아의 역사적 연고를 입증하는 현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1920년대부터 소련 정부는 계획적으로 크림반도에 사는 타타르인을 박해하고 강제 이주시켰다. 15만 명 이상의 크림 타타르인이 집단농장화로 인한 기근으로 사망했고, 살아남은 사람 중 20만여 명은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다른 무엇보다, 크림반도 강제합병은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서 러시아 스스로 ‘우크라이나인의 독립과 기존 국경의 주권을 존중한다’고 문서로 했던 공약을 무력으로 깨는 행위였다.

크림반도 병합 직후인 2014년 4월부터 접경지역인 돈바스에서 친러 성향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같은 해 9월에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및 루한스크 인민 공화국 사이에 민스크 휴전협정(일명 민스크협정 1)이 체결되었다. 2015년 2월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합류하여 ‘민스크협정 2’에 서명했다. 이 협정들은 정전(cease-fire)협정으로, 무기와 병력의 철수, 휴전 감시, 포로 석방, 돈바스 지역의 조기 지방선거 실시와 기타 관련자들의 법적 지위 등에 관한 조항들을 포함했다. 다시 말해, 민스크 협정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경에 변화를 초래하는 어떤 내용도 없었다.

민스크협정 1 후속 각서에서 설정된 완충지대
저자: Goran tek-en
출처: Wikimedia Commons
민스크협정을 위해 모인 벨라루스, 러시아, 독일, 프랑스, 우크라이나의 정상들
출처: Kremlin.ru

급기야 러시아는 올해 2월 24일, ‘돈바스 지역에서 대량살상을 당하고 있는 러시아계 주민의 안전을 위한 평화작전’임을 내세우면서 거의 전 병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푸틴은 ‘반(反)나치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무슨 이름을 붙이건, 러시아가 시작한 전쟁은 2차대전 이래 국제법이 유일하게 정당한 전쟁 명분(jus ad bellum)으로 인정하는 자위권 행사에 해당되지 않는다. 현존하고 급박한 위협이 있어야 하며, 필요성과 비례성의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자위권 행사 요건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서 무력공격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2월 23일 유엔 총회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을 러시아가 국가로 승인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주권 및 영토 보전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유엔 헌장과 우호관계원칙선언(Declararation on Principles of International Law concerning Friendly Relations and Cooperation among States)’에 위배된다. 따라서 러시아가 적법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고 볼 근거도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에서 제노사이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지만, 제노사이드 협약상의 의무는 국제법에서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이행되어야 하며, 타국에 대한 일방적 무력사용이 제노사이드 협약과 양립할 수는 없다. 이런 근거로 국제사법재판소는 3월 15일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작전을 중단할 것을 명했다. 안보리는커녕 어떤 다자기구의 승인도 없었으므로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요건도 물론 충족하지 않는다(남승현, 2022). 오히려 러시아가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수단과 방식이 전시국제법(jus in bello)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모든 전쟁은 다르다. 균형이 깨져서 일어나는 전쟁도 있고, 균형을 회복하려는 전쟁도 있다. 더 큰 위험을 막으려는 전쟁도 있고,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나 침략행위에 대항하는 전쟁도 있다. 정전론(正戰論, Just War Theory)은 논쟁적인 담론이다. 인간이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에 옳고 그름의 선을 긋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이웃나라와의 국경을 침범하여 자국의 영토를 늘리려는 침략전쟁을 시작하는 사람은 악당(villain)으로 규탄받아야 한다. 숱하게 많은 버전의 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아니,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모두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지켜져야 한다. 그 하나마저 ‘포스트 진실’ 취급을 받는다면 세계는 약육강식의 지옥도가 될 것이다. 인류는 세계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로 만들지 않으려고 국제법과 집단안전보장체제를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이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인류가 함께 기울여 왔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우리를 세우고 있다. 국경이 답이다.

 

저자소개

박용민(ympark91@mofa.go.kr)
국립외교원 경력교수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국제정치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외교부 북핵협상과장, 아중동국장, 주유엔공사참사관, 주르완다대사, 주센다이총영사로 봉직하였다. 영화, 여행, 음식, 음악 등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고, 헨리 키신저의 『회복된 세계』 및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공기의 연구』 번역서를 출간했다.

 


참고문헌

  • 남승현. 2022.5.13.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법적 검토”. 외교안보연구소 주요국제문제분석 세미나
  • 로빈 던바. 2011. 『던바의 수』. 김정희 역. 서울: 아르떼.
  • Arthur, Charles. 2021. Social Warming: The Dangerous and Polarising Effects of Social Media. Oneworld Publication.
  • Ganster, Paul. 2004. Borders and Border Politics in a Globalizing World. Rowman & Littlefield, 100
  • Harari, Yuval Noah. 2011.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Penguin Random House, 22~44.
  • Whitehead, A. N. 1985, Process and Reality. New York: Free Press, 39
  • The Economist. “Obituary” (2004.10.23.)
  • BBC News. “The Russians who fear a war with the West” (2016.10.25.)
  • New York Times. “Trump Has Made Alternative Facts a Way of Life” (20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