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형제애로도 풀기 힘든 실타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고민

1996년 파키스탄의 도움으로 집권한 탈레반은 2001년 9·11직후 미국과 전쟁에서 패하여 정권을 잃었으나, 20년 만인 지난 2021년 8월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하며 아프가니스탄 탈환에 성공하였다. 파키스탄은 1947년 건국 이래 인도와 전쟁에 대비하고,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인 듀란드라인 지역의 파슈툰 민족주의를 저지하고자 아프가니스탄을 자국의 영향권 내에 두는 전략을 써 왔다. 이 글은 탈레반의 발흥과 재부흥 과정을 국제정세 틀 안에서 살피면서, 특히 파키스탄이 자국의 국익을 지키고자 아프가니스탄의 정국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현재 어떤 문제에 맞부딪치고 있는지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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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서강대학교)

운명의 1979

1979년은 현대사에서 이슬람주의의 거대한 물결이 중동을 뒤흔든 해이다. 1월 14일 친미 이란 세속 왕정의 샤(Shah, 왕)가 테헤란을 떠나고, 14년 망명 생활을 마친 호메이니가 2월 1일 귀국하면서 이란 혁명이 급물살을 탔다. 2월 11일 군이 중립을 선포하면서 왕정이 완전히 무너졌고, 국가의 정체를 변경하는 국민투표를 거쳐 호메이니는 4월 1일을 “신이 다스리는 첫날”이라고 선포하며 이슬람 공화정 수립을 알렸다. 11월 4일에는 샤의 미국행을 비난하며 시위를 벌이던 열혈 혁명파 과격 청년들이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의 미국 외교관을 인질로 잡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981년 1월 20일 인질이 모두 풀려날 때까지 대사관 점거는 무려 444일 동안 이어졌다.

아프가니스탄의 사회주의 인민(할그, Khalq)파 정권은 1978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야심 가득한 서열 2위 아민(Hafizullah Amin)이 지도자 타라키(Nur Muhammad Taraki)를 제거하고 1979년 9월에 제1인자가 되었다. 아민이 미국 CIA와 내통한다고 의심한 소련은 크리스마스 전야인 12월 24일 군을 아프가니스탄에 전격 투입하여 12월 27일 아민을 사살하였다. 그리고는 아민의 독주를 막아달라고 계속 요청한 깃발(파르참, Parcham)파의 카르말(Babrak Karmal)을 권좌에 앉혔다. 소련은 1978년 아프가니스탄과 맺은 우호조약 수호를 침략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쌍둥이 기둥으로 삼아 냉전 시대 페르시아만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였다. 그런데 1979년 친미 이란을 잃은 데다 이란이 막아주던 소련마저 아프가니스탄에 본격적으로 똬리를 틀면서, 페르시아만으로 남하하는 소련과 격전을 치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1980년 1월 23일 연두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페르시아만 에너지를 수호하기 위해서 무력 사용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카터독트린(Carter Doctrine)이 나온 배경이다.1) 지난 40여 년 동안 카터독트린은 미국이 페르시아만 에너지 자원을 장악하고 관리할 뿐 아니라 중동의 친미 산유국과 역외 동맹국의 안전한 에너지 거래를 보장하는 중동정책의 핵심이었다.

 

덫에 걸린 소련과 미국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1928년 이집트에서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초국가적 정치공동체 건설을 꿈꾸며 무슬림형제단이 발흥한 이래 이슬람주의가 처음으로 성공한 사례다. 비록 시아파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순니파 이슬람주의 지도자 마우두디(Abu A’la Mawdudi, 1903~1979)가 공언한 대로 이란의 혁명은 종파 간 차이를 뛰어넘어 모든 이슬람주의자에게 영감을 주고 모범이 되는 이슬람 혁명이다. 미국과 친미 아랍 산유 왕국은 이란이 이슬람 혁명을 수출할 것을 우려하여 이라크를 후원하였고, 이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아랍 세계 동쪽 수문장을 자처하며 이란과 8년 전쟁(1980~1988년)을 벌였다.

미국은 이란발 이슬람 혁명 확산을 막고자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후원하는 동시에, 소련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몰아내고자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이슬람 신앙으로 무장한 모자헤딘2)을 지원하였다. 베트남전 실패의 치욕을 만회하고 ‘소련판 베트남전’을 만들기 위해 미국 카터 대통령은 소련 침공 6개월 전인 1979년 7월 3일 아프가니스탄 내 모자헤딘을 비밀리에 지원하는 명령서에 서명하였다.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 브레진스키는 서명 당일 미국이 모자헤딘을 지원하기 때문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쓴 메모를 카터 대통령에게 전했다. 미국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덫을 놓았다는 말이다.

12월 24일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는 순간 브레진스키는 카터 대통령에게 “이제 소련판 베트남 전쟁을 선사할 기회가 생겼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10년을 아프가니스탄에서 허비하고 쇠진한 채 소련이 붕괴하였으니 브레진스키 말마따나 냉전 시대 최고의 목적을 이룬 미국이 후회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Jauvert, 1998; Gibbs, 2000). 그러나 이란의 이슬람 혁명 수출을 막으려던 미국이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슬람 극단주의의 대명사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에서 키웠고,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소련의 허송세월 10년보다 두 배나 더 긴 20년을 아프가니스탄에서 허비하였다. 미국이 친 덫에 소련이 아니라 미국 스스로가 걸려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듀란드 라인(Durand Line)

오스만제국, 사파비제국과 함께 이슬람 세계를 삼분하던 무갈제국이 무너진 후 인도는 영국령이 되었다가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독립하였다. 인도의 비이슬람교 문화에서는 살 수 없다고 하면서 무슬림3)이 건설한 이슬람국가가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의 어원은 영국령 인도의 케임브리지 대학생 초우다리 라마트 알리가 무슬림 독립국가를 꿈꾸며 1933년 발간한 소책자에서 쓴 ‘팍스탄(Pakstan)’에서 나왔다. 당시나 지금이나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는 지역 이름에서 문자를 따와 만든 말이다. 펀잡(Punjab)의 P, 아프간(Afghan, 현 북서변경주)의 A, 카슈미르(Kashmir)의 K, 신드(Sindh)의 S, 발로치스탄(Balochistan)의 Stan을 이어붙였고, 팍(PAK)과 스탄(STAN)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이(i)를 더하여 파키스탄 국호가 탄생하였다. 페르시아어에서 팍은 ‘깨끗하다’, 스탄은 ‘땅’이니 파키스탄은 깨끗한 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파키스탄은 동쪽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런데 파키스탄의 근심거리는 무려 2,670km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 국경, 일명 듀란드 라인(Durand Line)이다. 1893년 영국의 외교장관 듀란드가 영국령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을 가르고자 그은 국경선이다. 영국령 인도에서 파키스탄이 독립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이 되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이 영국령일 때나 독립국인 현재나 듀란드 라인을 인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러한 선은 없다는 뜻으로 ‘제로 라인(Zero Line)’이라고 폄하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듀란드 라인 양쪽에는 파슈툰(Pashtun)족이 산다. 파슈툰족은 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주축인데, 아프가니스탄에는 1,500만 명이 살지만, 듀란드 라인 동쪽 파키스탄에는 무려 약 4,0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파슈툰족은 자신들의 주거지가 둘로 나누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막는 어떠한 조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욱이 파키스탄의 탈레반(Tehrike TalibanPakistan, 이하 TTP)4)은 파키스탄 파슈툰 지역에 파슈투니스탄(Pashtunistan)을 건설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는 달리 2007년 이래 적극적으로 파키스탄군을 표적으로 삼아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대소항쟁과 파키스탄

건국 이래 듀란드 라인을 수호하고자 애써 온 파키스탄에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큰 충격이었다. 소련이 사회주의 체제를 강력하게 이식하여도 이슬람문화가 뿌리 깊이 내린 아프가니스탄을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이 그러하듯, 파키스탄 역시 이웃 무슬림 형제가 고통받는 것을 보고 도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책임감을 느꼈다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보국 책임자 투르키 왕자는 평가한다(Al-Faisal, 2021).

무슬림 형제애를 떠나 사실 현실적으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파키스탄에 악몽과 공포 그 자체였다. 우선 1947년 이래 불구대천의 원수인 인도가 소련과 대단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 두 차례나 전쟁을 치른 인도와 다시 맞붙는다면 아프가니스탄에 진주한 소련이 인도를 지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였다. 또 파키스탄은 인도와 싸움에서 밀리더라도 아프가니스탄으로 후퇴한 후 전력을 가다듬어 반격하려는 전략을 세웠는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니 이 또한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더군다나 듀란드 라인을 아프가니스탄이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련이 카불 정권을 좌지우지한다면, 파슈툰족 집중거주지인 북서변경주가 떨어져 나갈 수 있고, 소련군이 발로치스탄으로 진격하여 페르시아만으로 나가는 통로를 확보할 수도 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파키스탄의 북서변경주, 발로치스탄주가 말 그대로 피자 조각처럼 조각조각 잘려나갈 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몰아내기 위해 파키스탄은 침공 직후 모자헤딘을 지원하기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의견을 모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미화 2백만 달러(100달러 지폐 2만 장)를 가방에 담아 파키스탄에 전달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미국 역시 모자헤딘 지원에 나섰는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할 때까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소련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게 지원금을 현금으로 파키스탄 정보국(ISI)에 전달하였고, 정보국은 이를 모자헤딘 모집과 양성에 투입하였다.

 

탈레반의 탄생

탈레반은 아랍어로 학생을 가리키는 ‘딸립’에 복수접미사 ‘안’이 붙어 학생들이라는 뜻이다(페르시아어와 파슈툰어로는 탈레반). 여기서 학생은 일반 학교 학생이 아니라 마드라사(이슬람법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말한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파키스탄 정보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으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파슈툰 지역에서 아프가니스탄 젊은이들을 모자헤딘으로 양성하였다.

모자헤딘이 효율적으로 싸우려면 안전한 은신처가 있어야 했는데, 파키스탄은 듀란드 라인 파슈툰 지역을 후방 기지로 제공하였다. 소련이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음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승리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파키스탄 파슈툰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끊임없이 전장에 투입되어 아군을 괴롭히던 모자헤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20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탈레반을 소탕하지 못한 채 철군한 것도 마찬가지다. 2001년 탈레반이 미군에 패하여 권력을 잃은 후에도 변함없이 무력 항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듀란드 라인 파키스탄의 파슈툰 지역에서 숨을 고르며 전열을 가다듬었기 때문이다.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군한 후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사회주의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사실 나지불라(Mohammad Najibullah, 1947~1996) 대통령은 소련의 철수를 말렸다. 당시 모두가 예상하였듯, 나지불라 스스로도 소련군이 떠나면 자신의 정권이 몰락할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그러나 모자헤딘의 내분으로 나지불라의 사회주의 정권은 1992년까지 3년을 더 버텼다. 친소 사회주의 정부가 무너졌지만, 모자헤딘이 서로 격돌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무장 세력이 곳곳에 검문소를 세워 통행료를 걷고 주민에게 폭력을 행사하였고, 여성은 성폭행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1994년 칸다하르의 모스크 예배 인도자 오마르(Mullah Omar, ?~2013)가 과거 모자헤딘 출신과 종교학교 학생을 망라한 자경단을 결성하여 치안 질서를 잡았는데, 이 조직이 바로 탈레반이다. 파키스탄은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자 중앙아시아 진출을 꿈꾸었다. 파키스탄에서 중앙아시아로 가려면 반드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야만 한다. 파키스탄 정보국은 중앙아시아로 가는 안전한 무역로를 확보하고자 탈레반을 지원하였다. 1996년 탈레반은 내전의 승자가 되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였다. 파키스탄과 탈레반이 상생한 것이다.

 

탈레반의 이슬람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해도 그런 나라를 이슬람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헌정이 이슬람 사상을 핵심으로 삼아야만 이슬람국가다. 아프가니스탄은 국민 대다수가 압도적으로 무슬림이다. 그런데 탈레반 집권 이전 현대사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이슬람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는 사실상 없다. 이슬람문화를 거스르며 터키식 개혁을 추진하던 아마눌라(Amanullah Khan, 1892~1960) 왕을 쫓아낸 적은 있어도, 1979년 이란처럼 이슬람 혁명으로 국가 정체성을 바꾼 적은 없다. 오히려 1978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은 아마눌라 시대보다 더욱 강력하게 문화개혁을 추진하였고, 소련의 침공은 아프가니스탄을 이슬람과 반이슬람의 싸움터로 만들었다.

대소항쟁 모자헤딘은 예외 없이 무신론 공산주의자로부터 조국을 구해 이슬람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대의명분을 지녔다. 소련군이 물러간 후 1992년 시작된 내전에 참가한 탈레반은 다른 무장 조직보다 더욱 강력하게 ‘샤리아’, 즉 이슬람법이 다스리는 순수한 이슬람국가를 아프가니스탄에 세우겠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이슬람주의 조직이다. 탈레반의 이슬람은 하나피(Hanafi), 데오반디(Deobandi), 와하비(Wahhabi), 파슈툰왈리(Pashtunwali)의 조합이다. 하나피는 순니파 이슬람의 4대 법학파 중 하나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진 법학파다. 하나피는 다른 법학파보다 대체로 법을 유연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탈레반은 하나피 전통 안에서도 데오반디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아 보통의 하나피와는 결이 다르다. 데오반디는 19세기 후반 영국령 인도의 델리 북부 데오반드(Deoband)라는 도시에서 시작한 이슬람 개혁운동인데, 인도보다 파키스탄에서 한층 더 보수적인 이슬람 해석으로 발전하였고, 이는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영향을 끼쳤다.

탈레반의 주축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파키스탄 난민촌에서 ‘순수 이슬람’을 표방한 데오반디 교육을 받고 ‘외세 추방’ 정신으로 무장하여 총을 들고 전장에 뛰어든 청년들이다. 데오반디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극렬 원리주의 와하비 사상, 파슈툰족의 오랜 불문 관습법으로 남성 중심적인 ‘파슈툰왈리(Pashtunwali)’가 더해지며 탈레반의 이슬람주의는 선명한 흑백논리를 견지하며 더욱 극단적으로 발전하였다. 탈레반은 거의 예외 없이 파슈툰족이고, 그중에서도 길자이(Ghilzai)족이 핵심 주축이다.

 

하까니파(The Haqqani Network)

탈레반은 단일한 조직이 아니다. 남부 칸다하르의 이슬람법 학생이 주축이지만, 여기에 동북부 무장조직 하까니파가 1995년 합류하였다. 하까니파는 잘랄룻딘 하까니(Jalaluddin Haqqani, 1939~2018)가 만든 조직이다. 하까니는 파키스탄 파슈툰족의 중심 도시인 페샤와르에서 동쪽으로 약 70㎞ 떨어진 아코라 카탁(Akora Khattak)의 다룰 울룸 하까니아(Darul Uloom Haqqania)에서 이슬람 교육을 받았기에 하까니라고 한다. 잘랄룻딘 하까니는 이 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무장 조직을 결성하여 소련과 싸웠고, 탈레반에 합류하였다. 현재 하까니파의 지도자는 잘랄룻딘의 아들 시라줏딘 하까니 내무부 장관이다. 하까니파는 수도 카불의 치안과 정보를 담당하고 있다. 탈레반이 지난해 8월 15일 카불을 장악하기 전까지 굵직굵직한 테러는 하까니파가 도맡아 저질렀다. 시라줏딘은 2008년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카불 호텔 테러, 대통령 암살 모의, 미군과 동맹군 공격 혐의로 현재 미국 연방수사국이 현상금 1,000만 달러를 내걸고 수배 중이다.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족은 정치 지형상 전통적으로 남부 두라니(Durrani)족과 동북부 길자이족으로 나뉜다. 풍요로운 농경사회에서 살아온 두라니족은 길자이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유연한 문화환경 속에서 1747년 이래 아프가니스탄 정계를 장악한 정치 엘리트의 산실이다. 반면 농업이 불가능한 동북부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길자이족은 늘 중앙정부에 무력으로 대항하면서 자치 세력으로 인정받았다. “투쟁은 길자이족이 하고, 과실은 두라니족이 따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라니족과 길자이족의 특성은 뚜렷하게 다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 장악 직후 탈레반 내 권력 투쟁이 발생하여 탈레반의 창설 당시 지도자로 내정과 외교에서 유연한 생각을 지닌 압둘 가니 바라다르(Abdul Ghani Baradar) 대신 시라줏딘이 권력 전면에 나섰다. 바라다르는 두라니족, 시라줏딘은 길자이족이다.5) 탈레반 지도층이 강경파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불안한 정국

대소항쟁 시기부터 파키스탄은 하까니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할 때도, 하까니파가 파키스탄에서 미군과 동맹군을 공격할 때도 파키스탄은 하까니파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까니파가 파키스탄에 중요한 이유는 파키스탄의 고민인 듀란드 라인 파슈툰 지역이 바로 하카니파의 전통적인 활동 근거지이기 때문이다. 남부 칸다하르에 근거지를 두고 시작한 탈레반과 달리 하카니파는 동북부 지역에서 무장 세력을 규합하였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파슈툰 지역을 넘나들며 무장 투쟁을 효율적으로 감행하였다.

파키스탄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파슈툰 지역에서 파슈툰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파슈툰 문제는 1947년 건국 이래 풀기 어려운 과제다. 특히 2007년 파키스탄에서 시작한 TTP는 파키스탄 군경을 공격하면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강력 대응공세를 취하자 아프가니스탄 파슈툰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겨, 파키스탄을 공격하고 돌아오는 게릴라 전법을 쓰고 있다. 마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파키스탄에 은거지를 두고 아프가니스탄을 드나들며 미군을 상대로 싸운 것처럼 말이다. 격노한 파키스탄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격하여 TTP 소탕 작전을 펼치고, 아예 듀란드 라인에 철책을 설치하려고 하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발끈하고 나섰다. 듀란드 라인을 확정된 국경처럼 여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면서, 파키스탄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오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북부 판즈시르(Panjshir) 산악지역에서 반탈레반 무력투쟁을 펼치는 국민저항전선을 제거하기 위해 파키스탄이 탈레반에 지원군을 보낸 것은 괜찮지만, 반파키스탄 무력투쟁을 펼치는 TTP를 공격하기 위해 파키스탄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오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하까니파가 나서서 파키스탄과 TTP의 휴전 협상을 중재하고 있긴 하지만,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공조 전선에 균열이 보인다. 더욱이 파키스탄 정보국이 TTP를 와해하고자 만든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는 ISK(IS-Khorasan, 이하 ISK)가 탈레반 공격과 아울러 테러 전선을 이웃 타지키스탄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어 아프가니스탄 정국은 긴장 상태다. ISK가 늘 하까니파에 유리한 일만 해왔다는 전 주미 파키스탄 대사의 진단과 아울러 하까니파와 TTP가 밀접한 관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파키스탄 정보국, 하까니파, TTP, ISK의 관계는 얽힌 실뭉치와 같아 풀어헤치기가 쉽지 않다. 다만, 파슈툰 지역을 지키려는 파키스탄의 노력이 확고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 이로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해로운 (파키스탄) 탈레반(TTP)이라는 파키스탄 정보국의 아군과 적군 식별 전략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어떻게 되든 간에 아프가니스탄의 불안정을 조장하여 파슈튜니스탄 문제가 표면에 떠오르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현재의 혼란상은 성공적인 셈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정국 불안이 이어지면 탈레반이 미국에 한 약속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을 근거지로 삼은 테러조직이 국제적인 테러를 감행하는 상황이 다시 닥칠지도 모른다. 미국은 철군 후에도 이웃국에 아프가니스탄을 계속 감시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길 원하였다. 지난 4월 10일 의회 불신임투표가 가결되어 총리직을 잃은 이므란 칸(Imran Khan)은 탈레반 감시 기지를 제공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자 미국이 반대세력을 움직여 자신을 총리직에서 쫓아내는 음모를 꾸몄다고 폭로하였다. 물론 미국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지만, 전후 사정을 보면 칸의 항변을 헛소리로 무시하기만은 어렵다. 칸 총리 불신임안 통과보다 몇 달 앞서 러시아와 중국은 우즈베키스탄이 미국의 편의를 봐줄 것으로 의심하여 미국이 다시는 아프가니스탄과 인근 지역에 재진입할 수 없다고 하면서 우즈베키스탄에 사전 경고장을 날린 바 있다.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세계의 시선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멀어져 있지만, 전쟁이 끝나면 다시 아프가니스탄 정국의 난맥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인도 제지에 사활을 건 파키스탄은 탈레반을 어떻게 마주할까? 무슬림 형제애 외에 어떤 것으로 듀란드 라인과 파슈툰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파키스탄은 영국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잔재를 항상 비난하면서도 듀란드 라인만은 개국 이래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고집하고 있다. 그런 파키스탄을, 단 한 순간도 듀란드 라인을 인정한 적 없고, 신생 파키스탄의 유엔 가입마저 막고 나섰던 아프가니스탄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듀란드 라인을 탈레반 역시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지도 않을 일이라, 과연 어떠한 해법이 나올지 궁금증만 커진다.

 

저자소개

박현도(hyondo@sogang.ac.kr)는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이다. 이란 테헤란대학교에서 이슬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중동산업협력포럼> 사무국장, 법무부 자문위원, Religion & Peace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주로 이슬람과 중동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대식국왕(大食國王) 파사호인(波斯胡人): 구당서 대식 기원 기사 분석(2021),”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시대 역내 안보환경 변화와 한-중동 경제협력 확대 방안』(공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1), Studies in Islamic Historiography (Chapter 7, Brill, 2019) 등 저서 및 논문을 다수 출판하였다.

 


1) “An attempt by any outside force to gain control of the Persian Gulf region will be regarded as an assault on the vital interes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such an assault will be repelled by any means necessary, including military force.”

2) 모자헤딘(mojahedin)은 아랍어로 지하드(jihad)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무자히드(mujahid)의 복수 무자히둔(mujahidun)의 페르시아어다. 무슬림 전사들이라는 뜻이다.

3) 무슬림은 이슬람교 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4) 테흐리케 탈레반 파키스탄(Tehrik-e Taleban Pakistan).

5) 아프가니스탄 역사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지역적 기질 차이는 다음 책을 참고하시오. Vahid Brown and Don Rassler, Fountainhead of Jihad: The Haqqani Nexus, 1973-2012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21~58.

 


참고문헌

  • Brands, Hal, Steven A. Cook, and Kenneth M. Pollack. 2019. “RIP The Carter Doctrine, 1980-2019.” Foreign Policy, December 13.
  • https://foreignpolicy.com/2019/12/15/carter-doctrine-rip-donald-trump-mideast-oil-big-think/ (검색일: 2022. 5. 27).
  • Al-Faisal, Turki. 2021. The Afghanistan File. Cowes: Arabian Publishing.
  • Brown, Vahid and Don Rassler. 2013. Fountainhead of Jihad: The Haqqani Nexus, 1973-2012.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 Gibbs, David N. 2000. “Afghanistan: The Soviet Invasion in Retrospect.” International Politics 37: 233-246.
  • Jauvert, Vincent. 1998. “Oui, la CIA est entrée en Afghanistan avant les Russes…” Le Nouvel Observateur, 15 Janvier.
  • Rubin, Barnett R. 2020. Afghanistan: What Everyone Needs to Know.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