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정(서울대학교)
현재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위기적 상황이 발생하면서 청년들과 미래세대의 삶의 불확실성은 증가하고 있다. 불확실성과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전세계에서 청년들이 어떻게 이런 모순과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한편에서는 청년들이 절망과 혐오, 염세에 빠져있으며 이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청년들이 어려움을 온몸으로 감각하고 있기에 이런 좌절과 염세의 문화적 표현이 등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무기력하고 무관심하다면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내지조차 않을 것이다. 현재 여러 복합적 위기 상황에서 청년들이 놓여 있는 곤경, 그리고 지나친 경쟁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해 가야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통증, 아픔을 다양하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문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혐오와 분노, 절망 모두 청년들이 살아있기에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동아시아 청년들의 절망을 표현하는 문화적 담론을 살펴보고, 이와는 상반되는 청년의 집합행동 경험들 그리고 사회현장에서의 다양하고 창의적 실천들을 살펴 청년의 경험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들이 감각하고 있는 현실, 각 사회에서 청년들이 집합행동 혹은 사회운동으로 이런 절망적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동아시아의 청년담론과 절망
동아시아의 청년들 사이에는 각 나라의 암울한 상황을 보여주는 담론들이 각각 존재한다. 한국에는 헬조선, 삼포세대가 대표적이며 일본에서는 로스제네레이션, 대만에서는 붕세대(崩世代), 중국에서는 상문화(喪文化) 등이 암울한 현실을 일컫는 유행어들이다. 한국의 헬조선은 암울한 현실이 지옥과 같다는 뜻으로 유행어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또한 삼포, 오포세대 등 여러 가지 삶의 영역을 포기했다는 논의이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의 문제가 대중담론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88만원 세대 이후라고 볼 수 있는데, 여러 차원에서 세대간의 갈등과 간극에 대한 논의들이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청년 담론에서도 분노, 절망, 상실등에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대만에는 붕세대(崩世代, bomb generation)란 말이 쓰이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로스제네레이션 등의 논의가 회자되었다. 새로운 청년의 문화현상으로 일베, 루저문화 등이 청년문화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중국의 낙오자(屌丝) 등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젊음인들을 자조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있다. 전반적으로 열패감과 무기력감을 문화코드로 이용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상문화(喪文化)의 확산[1]을 통해 중국 청년들의 염세적 놀이가 확산되고 있다. 상문화는 인생, 학업, 직업, 정서 등이 불안정한 90년대, 2000년대 이후의 청년들이 인터넷에서 인생에서의 좌절감을 표현하는 일종의 문화 트렌드로, 절망, 비관을 표현하는 일종의 하위 문화로 청년들의 불안과 좌절[2]을 보여준다. 상문화에서는 청년들이 ”나는 고독사를 할 꺼야, 나는 섹스도 못해볼꺼야“ 하면서 자신의 절망을 자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비단 동아시아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으로, ‘로스트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 밀레니얼 세대의 곤경으로 현재 신자유주의화 시기 청년을 설명한다. 또한 리먼브라더스 사태이후 2000년대 말부터, 전세계적인 청년들의 가두 시위, 사회운동을 청년의 누적된 분노와 좌절이란 맥락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혐오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자본주의적 성장의 쇠퇴, 신유주의적 경쟁의 강화, 기후 위기 등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증가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여성, 외국인, 사회적 약자, 전라남도인 등에 대한 비하적 발언을 일삼으며 증오언설(hate speech)를 일삼고 있기도 하다. 이는 점증하는 경쟁 속에서 공동체의 연대를 강조하기 보다는 각자 도생을 취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문화코드라고 볼 수있다. 일본에서는 넷우익이란 형태로 등장해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심화하고 있다. 불확실성과 불안이 증가하면서 그것을 타자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하기도 한다. 오찬호라는 한국의 사회학자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라는 책을 통해, 청년들의 일베문화가 사회적 쟁점이 되면서 청년층이 극우, 보수화되어가는 경향도 있다. 생존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이 사회적 연대의식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수평적 폭력’이란 방식으로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여성들에게 폭력적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등장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청년들이 모두 이렇게 차별과 폭력에 몰두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개인적 축소지향적 삶을 모색하는 경우도 있다. 달관세대라는 보도를 통해서 청년들의 다른 생활양식을 보여주려고 했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2014)라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 대한 책이 출간된 이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포착해 한국식 달관 세대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의 삶에서 독특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논의이다. 이는 대만에서 유행중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小確幸)’과 유사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킨포크 등 새로운 문화조류 등이 등장하면서, 성장위주의 삶보다는 삶의 만족을 추구하는 새로운 문화적 경향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문화현상은 어떤 측면에서는 청년의 실상을 보여주기 보다는 주로 언론에 의해 보도되는 사회현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청년들의 목소리가 그 자체로 드러나기 보다는 청년은 하나의 문화적 기호이자 대상으로 활용되는 측면들이 있다.
이런 담론들은 사회의 변화를 드러내는 일종의 문화적 징후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금수저·흙수저 논쟁은 사회이동(social mobility)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청년 문제 자체만이 아니라, 계층 간의 문제를 드러낸다. 금수저, 흙수저 등의 자조적인 표현을 통해, 계층간 간극이 고착되어가고 불평등이 심화됨을 보여준다. 청년 담론과 문화현상들은 청년 자체의 불행과 절망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세대내의 계층적 혹은 젠더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논의들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다시말해 동아시아의 청년담론들은 청년이 하나의 균질적 집단이 아니라 내부가 상당히 이질화되어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모순이 교차적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청년들의 대응 전략 역시 상이하다.
동아시아의 집합행동[3]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청년들이 개인의 자리에서 이런 모순을 해결하고 감내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청년들은 상당히 놀라운 수준의 집합행동을 진행해왔다. 문화적 표상과 담론 속의 청년들은 일견 절망에 빠져있고 혹은 자신들의 소시민적 행복이 젖어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혐오와 타자 공격에 몰두하는 이기적이란 표상도 존재한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청년들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청년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며 집합행동에 참여했다. 그래서 이런 청년이 사회 모순과 절망에 대한 대응 방식을 어떻게 정치화하고 있기도 하다. 상당히 탈정치적이고 집합행동에 청년들이 무관심하다고 알려져왔지만 동아시아의 청년들은 다양한 집합행동[4]을 전개했다. 대표적인 내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일본의 안보반대운동 실즈
일본의 안보반대운동은 흔히 실즈(The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라 불리운다. 일본의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기 위한 청년들의 긴급행동이었다. 2015년부터 16년까지 약 1년간 활동을 했다. 일본의 아베정권이 헌법 9조를 수정해서 패전국의 한계를 벗어나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고자 했을 때, 일본의 청년들은 헌법 개정은 일본 민주주의와 자유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 정부의 정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기 위해 긴급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일본사회에서는 이런 정치적 문제 뿐만 아니라 양극화, 삶의 질의 저하, 고령화 등 다양한 문제가 중첩적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당시의 시위는 이런 복합적 사회문제에 대한 청년의 표현이었다.
실즈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일본 헌법의 수호, 사회보장의 수호, 그리고 국가 안보의 수호 등이 목적으로 이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5]. 일본의 많은 청년들이 실즈에 참여한 이유 중의 하나는 2011년의 3·11 후쿠시마와도 관련이 있다. 3·11 후쿠시마 사건이후 일본의 청년들은 일상 생활이 파괴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런 집합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대체로 대규모 집단행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지만 3·11이후 일본의 시민사회는 다소 바뀌었고, 청년들의 시민운동과 집합행동, 자원봉사 활동 등이 증가했다. 원자력 발전소와 차별금지운동 등에 청년등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Slater et al. 2015: 1)했으며, 3·11 이후 반핵운동을 배웠다.고 한다. 실즈는 정부가 “투명성, 책임성 및 민주적 가치”를 약화시키고 심지어 “인종에 대한 인종 차별적 폭행에 대해 무관심”을 야기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면 재일조선인등에 대한 차별을 방조하는 일본정부에 대해 분노했다. 그래서 2015년과 2016년 사이에 거의 1년 동안 도쿄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있었으며 때로는 거리를 점령해 시위를 전개했다. 2015 년 8월 30일에 도쿄의 국회의사당 건물을 애워싸고, 수만명이 모여 시위를 했다.
실즈는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청년들의 참여를 동원하기 위해 블로그 및 웹 페이지와 같은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와 70년대까지 전투적인 대학생 운동이 존재했지만, 학내의 운동은 급격히 쇠퇴했고 젊은 세대를 사회 운동으로 동원하는데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었다. 그래서 SEALDs의 등장에 대해 과거 학생 운동을 경험한 기성 지식인등은 열렬히 환영했다.
실즈의 조직은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일종의 네트워크형 조직이었는데, 미디어를 통해 네트워크로 수평적으로 조직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규정한 명령을 따르지 않고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중시했으며, 이 과정은 하나의 커뮤니티 구축과정이었다. 실즈에 참여한 청년들은 이전에는 별다른 집합행동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실즈에 참여한 우치다라는 상상력을 통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울수 있다고 생각했다. 핵심 멤버인 우치다는 마틴 루터 킹의 “나는 꿈이 있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꿈, 상상력은 실즈 운동에 대한 중요한 비전 중의 하나였다. 하나의 획일적인 이데올로기를 따르기 보다는 개별적 자유를 중시하며 운동은 추동되었다. 그래서 상향식 방식으로 다양한 네트워크적 조직들이 운동을 진행했고, 여러 가지 다른 비젼들을 공유(SEALDs, 2015)했다고 한다.
이들의 행동은 “뮤직 비디오”처럼 힙합이 음율로 슬로건을 외쳤다. “아베라고 말해요! 야메로(그만둬)“라고 청년들은 떼창을 했다. 참여한 청년들이 성공적인 사회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아젠다를 세우는 대신, 청년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공유했다고 한다. 또한 실즈의 시위는 뮤직 비디오처럼 편집되어 유투브[6]에 공유되었다. 그래서 이런 청년의 힙스터 문화와 결합해서 기존에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에 참여했다. 패션, 디자인, 힙스터 문화 등을 활용해 실즈 운동은 전개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들의 활동이 실제 사회를 변화시키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470여 일 동안의 실즈 활동은 10만 명 이상의 사람을 동원했지만, 결과적으로 정권을 바꾸고 정치를 혁신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러 비판과 한계가 있었지만 일본의 청년들이 정치를 경험하고 행동하게 되는 계기였다. 이런 집합행동의 경험과 힘은 잠재되고 응축되어 있다가, 어는 순간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어 화산과 같이 에너지를 폭발할 수도 있다.
출처 : 실즈가 제작한 실즈활동을 소개한 뮤직비디오
2) 대만 정체성과 해바라기 운동
대만에서 2014 년 초에 “양안서비스무역협정(Cross-Strait Service Trade Agreement)에 대한 항의로 대규모 학생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협정은 당시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에서 중국에 대해 산업개방의 폭을 넓히고 대만과 중국과 중국 본토 간의 무역을 자유화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항생들은 이에 대해 거세게 항의해 2014년 3월 18일 부터 4월 10일까지 대학생 등이 입법원을 점령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가장 대규모의 집합행동으로 해바라기 운동이라고 불리웠다. 대학생 청년들이 2014 년 3월에 거리와 입법원을 점령하며 진행되었다. 200명이상의 학생들 (대부분의 대학생)이 대만 입법원을 지키는 경찰 선을 뚫고 점령했다. 학생들은 국민당의 양안서비스무역협정 법안에 대한 항의를 제기했다. 다음날 약 2 만명이 입법 위안 밖에 모여서 학생의 항의했다. 일반적으로 대만 사회는 급진적인 시위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해바라기운동은 대만의 기존의 정치적 성향과는 다른 목소리를 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해바라기 운동은 대만 사회의 반중 경향과 대만 민족주의로 인해 큰 인기를 얻었다. 대만 학생인 제이미는 “시위를 하고 정부에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원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항의 동기를 설명(Au Anson. 2017)했다. 대만에서의 반중감정은 대만의 민족주의적 정체성 형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당시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은 중국에 대해 다소 유화적 정책을 취했는데, 경제 상황이 점차 약화되고 대만 경제가 정체되면서 대만의 반중 정서가 고조되었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문제가 중국 헤게모니의 확장에서 비롯된 것을 보았다. 따라서, 오히려 해바라기 운동은 한편에서는 친중적 정부에 대한 항의이자 중국에 대한 항의이기도 했다.
대만에서는 1980년대의 대표적인 대학생운동은 당시 와일드 릴리(야생 백합)운동이라고 불리며 계엄령 폐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의 실즈(SEALDs)와 마찬가지로 해바라기 운동은 어떤 의미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강력한 학생운동의 연속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이 활동은 지식인과 운동가들의 많은 지원을 받았다. 학생운동은 중국과의 무역에 관한 법의 통과를 저지하고 지연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점령 기간 동안 가장 대표적인 슬로건은 “대만 노세일”로 대만의 정체성을 주장했다. 당시 시위에서 대학생들은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온라인 토론, 유튜브 및 페이스 북등 비디오로 업로드되고, 동영상이 광범위하고 동시시간으로 배포되었다. 그래서 미디어는 해바라기 운동의 활약에 중요한 요소였다.
일본의 실즈의 경우에는 정권교체나 현실정치를 세력화하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대만의 경우에는 중앙과 지방의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주어, 정권교체 등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청년들은 다양한 청년관련 정당을 조직화해서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고, 일부 청년 정치가들이 입법원에 진출했다. 또한 트랜스젠더인 청년이 35세의 나이로 대만 정부의 디지털부 장관으로 입각했으며, 동성애 결혼의 합법화 등이 이루어졌다. 이런 진보적 정책과 사회의제의 확산은 태양화 운동의 자장 속에서 가능했다. 대만에서는 청년의 정치가 현실의 제도권 정치로 적극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출처 : 태양화운동 진행과정에 대한 뮤직비디오 <섬의 아침>
3) 한국의 청년 운동: 젠더와 계층의 교차성
한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규모 거리 활동은 2016년의 촛불 시위였다. 또한 촛불이후 전개된 미투 운동에서 청년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촛불에서 청년의 참여는 조직화된 단체보다는 다양한 네트워크적인 방식으로 시위에 참여한 경우가 많았다. 촛불 시위의 청년 참가자 중 한명은 박근혜 정부 때 노조탄압이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촛불을 들었고, 광화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같은 구호를 계속 외치는” 신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또 한 청년은 자신이 이전 정권 하에서 군대내 사찰을 경험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으며, 촛불광장에서 활동을 이어나간 것은 일종의 자기치유 과정이라고도 했다. 이전 정권에서 갖고 있던 다양한 공포와 두려움을 광장의 시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또한 촛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사회의 다양한 모순에 대해 고발하기 시작했다.
촛불 참여하는 청년 중에서는 조직에 속하지 않고 1차 촛불집회가 TV에 나온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집회에 나간 경우도 있었다. ‘장수풍뎅이 연구회’ 등 다양한 깃발이 집회에 등장한 것에 흥미를 느낀 한 청년은 그 다음부터는 당시 속해 있던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그룹에서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과 깃발을 만들어 집회에 참여했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기성 사회운동 중심의 만장과 깃발들이 지배적 이미지를 점유했던 기존의 집회 현장과는 달리, 개별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깃발들이 등장했다.
또한 청년의 집합 행동 중 특기할 만한 것은 2018년 여성들의 미투운동이었다. 한국사회에서는 평화로운 시위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후,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새로운 방식의 집합행동이 증가했다. 여성들의 네트워크적 시위에서는 “불편한 용기‘란 이름으로 혜화역 주변과 광화문 광장에서 낙태범 비범죄화, 성폭력 반대 등의 운동을 하면서 시위를 진행했다. 촛불을 경유한 청년들은 집합행동을 통해 정권을 바꾸는 경험을 했고, 축적된 정치효능감을 토대로 다른 이슈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이후 본격화된 흙수저 논쟁,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불행하게 사망한 김용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움직임, 청년 전태일 및 특성화고 학생들의 조직화된 활동 등은 한국 사회의 청년내의 불평등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촛불의 경험을 통해 청년이 아직 제도 정치에 진입해 성공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젠더와 계층 등 청년 내의 차이가 가장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이를 사회적인 이슈로 전환되어가고 있다.
출처 : 불편한 용기의 시위체험기
미래를 향한 생태지향적 사회운동
이전의 민주화 중심의 사회운동과는 달리, 다양한 소수자들의 정체성이 강조되며 인간 뿐 아니라 동물/생태 등 관심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래서 기성의 사회운동 조직들은 재생산이 되지 않고 고령화되고 있지만, 새로운 의제를 다루는 청년 조직들이 무척 활발하다. 한국에서는 성소수자 운동, 장애운동, 동물권 운동 등이 아마 현재 청년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표적 사회운동의 영역이며 관심을 도시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새로운 삶의 방식 모색으로 이어가고 있다.
동아시아의 청년들은 협동조합, 농촌에서의 삶의 방식의 실험 등 대안적 삶을 실험하고 있다. 중국의 청년 중 농촌에서의 생활을 미디어로 방송을 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 향촌운동을 하는 류타오는 청년들이 중국 농촌의 사회적 문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여름방학 캠프를 마련하고 있다. 청년들은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에서 농촌의 문제를 스스로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필드워크들을 하고 있다. 2010년에 설립되었으며 농촌 지역사회 필드워크를 하는 여름캠프로 운영되어 올해로 10년이 되고 있다. 특히 중국 남서부 지역에 집중하고 있으며, 청년들이 현장 조사를 통해 농촌사회개발을 할 수 있고, 농촌의 빈곤지역 저개발 지역에 대한 관심을 환기 위한 것이다. NGO, 사회복지 단체등과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도시의 청년들이 농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게 하고 있다. 참가한 청년들은 ”유명한 관광지나 민속관광을 보지 않았습니다. 농촌에 들어가 현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속에서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7]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청년의 새로운 사회적 실천의 중요한 흐름 중의 하나는 도시에서의 삶 뿐만 아니라, 향촌사회, 농촌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청년의 역할을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다. 10년을 운영한 리더 역시 발전인류학 전공자로서 다양한 시민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농촌경제학자인 윈테진의 영향하에서, 청년들은 유기농 농업에 종사하거나 혹은 도농간 직거래, 협동조합, 소비자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8]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후쿠시마 이후 청년들의 다양한 자원봉사와 사회적 활동이 증가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복지가 일종의 새로운 사회운동의 영역인 경우들이 많은데, 지역사회에서 예술과 사회복지를 결합한 예술운동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나라의 <민들레의 집>이란 장애예술 단체와 필자는 네트워크를 맺고 15년 가까이 교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단체의 활동에 점점 지역사회의 청년들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근 교토에는 새로운 청년 예술단체가 생겼는데, 지역사회의 장애인들이 히어로 유니폼을 입고 지역사회에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특성상 수도권 중심적인 방식만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활동이 보장되는 특성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래서 지역사회에서는 청년들이 발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활동과 사회복지의 연관을 진행하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다양한 예술프로젝트 들이 진행되었으며, 전국에 걸쳐서 지역사회 기반의 예술활동들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런 풀뿌리 운동과 흐름에 기반해 일본 정부는 도시청년의 농촌 파견을 정책화하기도 했다. 지역부흥협력대란 방식으로 2009년 도시에 사는 일본의 청년들을 지방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이다. 지자체들이 자신들의 고장에 필요한 산업, 전문인력에 대해 공고를 내며 청년들이 지원을 한다. 2009년에는 89명으로 시작했고, 최근에는 5000여명으로 까지 늘었다고 한다. 이들 청년의 정착률이 50%를 넘는다고 한다. 풀뿌리 운동의 활력은 정책으로 전환시켜, 지역과 청년의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흐름[9] 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청년들은 도시에서만의 삶이 아니라 대안적 삶을 모색하며 지역사회로의 이주를 모색하고 있다. 지금은 다소 열기가 식었지만 제주로의 이주열풍 역시 그런 흐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귀농이나 중소도시에서 대안적 삶을 모색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수도권의 경쟁의 과밀화 속에서, 수도권을 떠나 지역에서의 여유있는 대안적 삶을 실천하며, 예술 활동을 통해 삶의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 창의적 활동에 종사하는 청년들도 증가하고 있다.
청년들의 사회적 실천에 응원을!
동아시아의 청년들은 문화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청년들은 다양한 집합적 행동을 통해 사회의 변혁에 참여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이것이 일시적이고 표피적인, 이데올로기가 결여된 다소 피상적인 활동들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청년들은 다양한 사회적 실천을 하고 있다. 단지 그것이 기성세대의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동아시아 청년들의 집합행동을 보면 이들은 유투브와 SNS 등으로 무장하고, 다양한 감수성을 가지고 여성, 장애인, 농민, 동물, 생태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자신들의 행동을 창의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활동들은 어느 순간 들불처럼 일어났다고 갑자기 사그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 활활 타올랐던 청년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잠재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때가 오면 또한 다시한번 불타오르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사회운동과는 청년들의 판이 다르고, 움직이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청년들의 사회참여와 활동은 다소 비가시화되어 있다. 기성세대들을 청년들의 에너지와 활동, 네트워크 미디어 활용 방식 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사회 현장에서 청년들은 새로운 목소리와 방식으로 새로운 이슈를 통해 발언하고 활동하고 있다. 이런 청년들을 청년들의 방식으로 네트워킹하고, 문제를 공유하고 연대하는 동아시아 청년 연대의 네트워킹에 대한 관심 역시 필요할 것이다.
현재 청년의 곤경과 절망은 단순히 이 세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장의 문제, 양극화, 기후변화, 신종 감염병의 증가로 인한 생물학적 위험의 증가, 탈산업화 사회 및 기술혁명의 발전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동 등 다양한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가 중첩되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어떻게 이런 초유의 난제들을 극복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의 청년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다. 동아시아의 청년들은 일차적으로는 이들의 절망을 토로하며 자신들의 감정을 분출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이들은 놀라울 정도의 에너지를 통해 사회에 대해 다양한 차원으로 발언하고 행동해왔다.
그래서 사회는 산업화와 기존 경쟁 중심적 사회의 방식과 달리 이루어지고 있는 동아시아 청년들의 다양한 실천들에 주목하면서, 이런 활동들이 거대한 사회변동의 파고 속에서 어떻게 잘 안착할 수 있을지, 기성세대들은 응원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후변화 및 탈산업화 사회의 인간의 위기 등 미래세대가 곧 경험하게 될 다양한 사회의 위기에 대해 우리가 같이 준비하지 않는다면, 기성세대는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저자소개
주윤정(araby3@snu.ac.kr)은
현재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인권사회학, 소수자의 역사와 문화/예술, 청년, 인간-동물 관계 등을 연구하고 있다. 청년연구를 위해서 대만과 중국의 연구자들과 네트워킹하며 다양한 현장을 방문하며 연구를 진행 중이다.
참고문헌
- Au Anson. 2017. “The Sunflower Movement and the Taiwanese National Identity: Building an Anti-Sinoist Civic Nationalism.” Berkeley Journal of Sociology 27. http://berkeleyjournal.org/2017/04/the-sunflower-movement-and-the-taiwanese-national-identity-building-an-anti-sinoist-civic-nationalism
- Ho, M. 2015. “Occupy Congress in Taiwan:Political Opportunity, Threat, and the Sunflower Movement.”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15(1). 69-97. doi:10.1017/S1598240800004173.
- Kingston, Jeff, 2015. “SEALDs: Students Slam Abe’s Assault on Japan’s Constitution.” September 7, Japan Focus 13(36-1) Retrieved August 1, 2018
- Yunjeong Joo 2018. 9. “Same Despair but Different Hope: Youth Activism in East Asia and Contentious Politics.” Journal of Asian Sociology(Development and Society) 47(3). pp. 401-421.
- SEALDs. 2015. 『SEALDs 民主主義ってこれだ!』. 大月書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