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연(아시아연구소)
대중음악을 즐기는 ‘페르시안 고양이’의 삶
2009년 개봉된 이란 영화 《아무도 페르시안 고양이에 대해 모른다, No One Knows About Persian Cats》 에서 인디록 밴드를 하는 주인공 이란 젊은 남녀는 엄격한 문화 검열과 사회적 통제 속에서 번번이 좌절한다. 남자 주인공은 서구식 록 음악을 연주한다는 이유로, 또한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음악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반(反)이슬람 적이고 비도덕적 행위’로 비난받고 경찰서에 잡혀갈 위기에 처한다. 영화 속 헤비메탈, 록, 힙합, 일렉트로닉 등 현대 서구 음악을 하는 이란의 많은 젊은이들은 축사나 건물 지하 혹은 폐건물에 숨어서 음악 활동을 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이 젊은 연인은 해외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해보라는 지인의 제안으로 외국행을 결심한다(구기연 2017, 136-137).
이 페르시안 고양이들에게 랩을 한다는 것은, 특히 젊은 이란 여성이 노래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또한 그들에게 대중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은 어떤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은 이란에서 젊은 세대는 어떠한 사회적 위치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의문점과 맞닿아 있다. 이 글에서는 무슬림키즈로 태어났지만, 이슬람정권에 저항하는 세대로 일컬어지는 오늘날 이란의 젊은 세대들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대중음악이라는 하위문화를 통해서 살펴보기도 한다. 이에 이 글에서는 이란 젊은 세대들의 사회적 위치를 되짚어보고, 특히 이란 젊은 세대들이 대중문화 향유를 통해, 이슬람공화국의 젊은이로서의 국가 정체성과 어떻게 배치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무슬림 키즈 vs 저항적인 밀레니얼 세대
오늘날 이란의 젊은이들은 이슬람공화국 이후의 세대이지만, 가장 이슬람에서 멀어진 세대라고 비판받을 정도로, 이란 젊은 세대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지형도를 그려내고 있다. 아세프 바야트는 이란 젊은이들을 일컫으며, “그들은 마치 세계 대전 이후의 미국이나 유럽 혹은 전쟁 이후 프랑코 정권 이후의 스페인에서의 젊은이들의 저항적인 행동과 비슷하다. 반항적이고 의도적인 반도덕주의자와 쾌락주의 반발은 대부분의 위기 이후 사회의 공통된 특징인 듯하다(Bayat 2007, 63)”. 또한 “이슬람 체제 이후의 젊은이들은 폭력에 대한 명확한 혐오와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을 갖으며 서구에서 살기 원하는 꿈을 가진 실용적이며 비이념적이다(Bayat 2009. 69) ”라고 이란 젊은이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란이슬람공화국에서 30세 이하 젊은이들은 약 전체 인구의 60%를 구성하고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을 나슬레 세봄(제 3세대)라 불리며,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은 나슬레 자디드(신세대)라 부른다. 특히 이란력 1370년대생(서기력 1990년대생)들은 이란의 문화 지형도를 바꾸는 세대라 불린다. 1990년대 이후에 출생한 30세 이하 젊은이들은 다른 문화권의 밀레니얼 세대처럼 변화의 중심에 있다. 그들은 글로벌 밀레니얼 세대들과 같이 인터넷 시대의 세대라고 명명되고 있으며, 른 어떤 세대보다도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대중문화를 즐기며 이란 사회내에서 새로운 하위문화를 생산해내는 주체이다.
2020년 기준 이란 평균 나이는 30세로, 한국의 42.6세에 비하면, 여전히 ‘젊은 이란’이다. 1985년 전체 인구 평균 나이가 17.2세일 정도로, 이란은 1979년 이란이슬람공화국 설립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인구 성장을 기록하였으며, 이와 같은 출산율은 1983년에 이르러서야 하향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최근 10년 사이에 35세 이하 젊은이들은 10%넘게 비율이 떨어졌다. 두터운 젊은 층은 이란 사회의 든든한 인력자본이지만, 동시에 높은 청년 실업율과 부족한 인프라 현상으로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란은 핵협정 등을 둘러싼 강력한 국제적인 제재를 받고 있으며, 이와 같은 국내외의 요인들로 인해 경제난으로 심각한 청년 실업률을 겪고 있다.
한편, 이란 젊은이들은 지난 2009년-2019년. 10년 간 이란 내 민주주의, 계급문제, 여성문제, 인권과 자유문제 등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전면에서 맞서는 사회운동의 주체 역할을 해왔다. 이란 젊은이들은 어려워진 경제난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당사자이면서도 동시에 이란의 반민주주의와 잘못된 경제 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주체인 것이다. 이란의 보수적인 진영에서는 그들을 이슬람 정체성이 약화된, 외구의 문화로부터 오염된 ‘위험한 집단’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이란 사회의 발전을 지지하고 변혁과 발전을 꿈꾸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에 2009년 녹색운동부터 2019년 경제난에 맞서는 대규모 민중 시위를 이끄는 주역이었고, 가혹한 탄압의 최대 희생자이기도하다.
2009년 녹색운동을 기점으로 이란 사회의 개혁을 누구보다도 원했던 젊은이들은 희망을 찾아 고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2009년 녹색운동의 주역이었던 젊은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11년이 지난 2020년에도 역시 실업과 자유의 문제는 더욱 가혹하게 현재 젊은 세대들을 옥죈다. 또한 이란 내 고학력층 실업자들의 높은 비율은 이란의 유능한 미래 인재들을 절망에 빠지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구기연, 유아름 2020). 이에 2020년 1월 이란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피격사건에서도 단편적으로 보여지듯, 자유와 일자리를 찾아 이란을 떠나고자하는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들만의 은밀한 세상, 디아스포라 미디어
이란 내에서 미디어와 대중 문화는 크게 두 가지 층위에서 존재한다. 한 흐름은 국영방송을 중심으로 한 공적인 형태의 국내 미디어이며, 하나의 큰 흐름은 바로 이란 밖 이란인 디아스포라들이 만들어 내는 위성방송과 소셜미디어이다. 1979년부터 거의 20년 동안 특히 이란 내에서 대중음악은 금지되었다.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은 국가체제와 사법체계만 이슬람공화국이 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문화 체계 역시 ‘이슬람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역들만 남게 되었다. 특히 여성 가수들의 무대는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혁명 직후 많은 연예인들이 고국을 떠나야만 했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1979년부터 위성방송을 통해 생산되어 송출되는 디아스포라 미디어는 이란인들, 특히 도시의 세속적인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슬람공화국 건설 이후 이란 내에서 팝 스타일의 대중음악은 이란 혁명 이전부터 이란 내에서 가수로 유명했던 가수들의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활동도 보여 졌지만 더욱 흥미로운 흐름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유럽 등지에서 새롭게 ‘데뷔’하는 이란의 가수들이었다.
외국에서 데뷔한 그들은 위성채널을 통해 이란 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며, 동시에 이란인 디아스포라들이 만드는 문화는 이란 내에서 ‘존재하지만 말할 수 없는’ 대중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그 은밀한 세상을 즐기는 이들이 바로 이란 젊은이들이었다. 위성방송을 통해 과거 왕년 이란의 연예계를 주름잡던 스타들의 팬덤이 생기기도 하고, 가수로 데뷔한 미국과 유럽의 해외 교포들의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테이프에서 비디오, 그리고 CD, mp3음악으로 이어지면서 이란 내 제 2 문화로 활발하게 소비되었다. 특히 이들 교포 가수들의 음악과 패션들은 이란의 중상류층 계급들의 ‘그들만의 계급문화’로 자리 잡기도 하였고, 중상류층 계급의 사적인 파티에서는 주로 그들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또한 위성 방송을 통해 이란인 가수들뿐 아니라 ‘금지된’ 미국의 팝 가수들도 이란 사회 내에서 알려지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1980년에서 1990년말까지 주로 PMC, GEM TV, TAPESH TV 등의 위성방송을 통한 디아스포라 음악이 소비되었다면, 1997년 문화개방에 힘썼던 하타미 대통령 시절에 본격적인 이란 내 ‘지하음악’의 뿌리가 시작되었다(구기연 2017). 1997년 이후 이란 음악의 발달은 글로벌 인터넷 환경의 성장과 연결된다. 이것은 대중음악 연주와 향유가 공적으로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뮤지션과 사람들 사이가 연결되고, 공유되었기에 가능했다(Nooshin 2017, 165). 2000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이란 내에서는 테헤란젤레스 음악 뿐 아니라, 이란 내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 가수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많은 이란 젊은이들이 이란 내에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Nooshin 2008).
이때부터 소위 ‘지하음악’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힙합과 락 등 ‘서구 음악’ 장르라고 여겨지는 색의 가수들이 등장하였고, 랩퍼 사시 만칸, 히치캬스, 등의 이란 국내에서 데뷔한 가수들이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지하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이란의 저항하는 청년 문화라 여겨지며, 대표적인 이란 청년 하위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란의 디아스포라 미디어를 통한 이란 젊은 세대들의 문화 사회 전반적으로 공유되었지만, 이란의 공적인 영역에서는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자리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란 내 엄격한 문화검열은 음악가들 뿐 아니라, 이 음악에 열광하는 이란 젊은이들을 통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란에 댄스홀을 허하라 : ‘젠틀맨’ 노래를 둘러싼 논쟁
2019년 5월 몇 개의 동영상이 이란 사회에 퍼지면서 큰 논란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이란의 지하음악을 평정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활동하는 재미 이란인 가수 사시 만칸(Sasy Mankan)의 “젠틀맨(Gentleman)” 이라는 이란 팝이 발표되면서 시작되었다. 2019년 4월 26일 유튜브의 라디오 자번(Radio Javan, 젊은 라디오)의 채널을 통해 발매된 “젠틀맨” 공식 뮤직 비디오는, 2020년 3월 현재 천만뷰를 넘는 등, 특히 이란 국내에서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란 내에서 큰 인기를 끈 사시 만칸의 젠틀맨 뮤직비디오
2019년 5월에 유포된 문제의 동영상들은 다름 아닌 젠틀맨의 따라 부르는 이란의 10대와 20대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었다. “젠틀맨(Gentleman)” 노래에 맞추어 남학교, 여학교 가릴 것 없이 학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거나 전교생들이 다함께 노래에 맞추어 단체 체조를 하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어떤 동영상에는 선생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남자 초등학생들과 함께 신나게 젠틀맨을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영상도 담겨 있었다. 이 동영상을 두고 급기야 이란 교육부 장관인 모함마드 바트하에이(Mohammad Bathaei)는 “적들이 사람들의 불안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이 불온한 비디오들을 사이버공간에 유포하고 있다. 이런 기만적인 동영상을 학교에 유포하는 배경에는 분명 어떤 정치적 음모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사회에서는 전혀 문제시될 수 없는 학생들의 합창과 단체 춤을 추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이 동영상들 배후에 ‘적’들의 교란작전과 보이지 않는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일부 보수강경 지도층들은 이 동영상이 제작 유포된 배경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이란 보수강경파들이 이런 학생들의 댄스 동영상과 관련된 하나의 유행을 적대시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이 음악의 가수 사시 만칸(Sasy Mankan)이라는 가수 존재 자체이다. 사시 만칸은 앞선 언급하였듯이 과거 이란 국내 지하음악을 이끄는 대표적인 유명 가수였고, 이란의 사적인 파티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인기곡들을 노래해왔다. 2009년 대선 당시에는 개혁파 후보인 메흐디 캬루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녹색운동에 정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아흐마디네자드 정권에서 얼마간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후 사시 만칸은 2012년에 말레이시아로 이주했다가, 이후 미국으로 건너 가 이주하게 된다. 지금도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신곡을 계속 발표하고 있으며, 최근에도 터키 앙카라, 안탈랴, 미국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이란 젊은이들과 디아스포라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보수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미국으로 이주해서 이슬람적 가치에 맞지 않는 노래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가수의 행보가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다. 2019년 봄, 미국의 이란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력으로 연일 서로 선전포고를 내렸던 이란의 국내 현실에서 “여러분들은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보내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라는 사시 만칸의 노랫말은 이란 보수강경파들의 심기를 건들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시 만칸은 오히려 이란에서 그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반격하듯이, 이란 내 학교에서 촬영된 동영상들과 이 동영상을 비판하는 이란 국내 좌담 프로그램 등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면서 “이제 나의 노래를 이란 국영뉴스에서 들을 수 있다니!”라고 자신을 둘러싼 논쟁을 비웃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 동영상들이 촬영된 장소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신실한 무슬림 시민 육성을 가장 높은 가치로 두고 있는 이란의 공립학교에서 이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는 점에서 이란 내 보수 강경 지도자들의 분노를 사게 했다. 특히 여중생들과 여자 초등학생들이 젠틀맨 노래에 맞추어 집단체조를 하거나 히잡을 이상하게 쓰고 젠틀맨을 떼로 무리지어 노래 부르는 장면은 당국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란은 공교육은 초등학교부터 성별이 분리되어 남자 초등학교, 여자 초등학교로 나누어질 정도로 남녀에 대한 구분이 엄격하고, 특히 여학생의 경우 여자들밖에 없는 학교 공간에서도 마그나에라고 불리는 히잡을 고수해야만 한다. 최근 이란의 공교육 시스템 하에서 종교 점수의 비율이 커지고, 꾸란과 아랍어, 종교 수업이 강화된 현실에서 이와 같은 불온한 동영상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은 이란 당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소셜미디어와 전지구적인 대중 문화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우려이다. 이란이슬람공화국 설립 이후 이란 내에서 대중음악과 춤, 특히 여성 가수의 노래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슬람 혁명 이전의 많은 가수들이 해외에 이주하였다. 이란에서 이슬람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여겨지는 음악과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은 이란 내에서 금기시되었고,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문화 범죄이다.
하지만 이란의 사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놀랄 정도로 춤과 음악을 즐긴다 그들은 지난 40년 동안 그들만의 세상, 즉 사적 영역에서 대중음악을 즐겨왔다. 과거 비디오와 CD를 거쳐, 외국에서 디아스포라들이 제작하는 페르시아어 위성채널과 인터넷 채널들을 통해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대중음악을 즐겨왔다. 또한 일부 세속적인 성향의 중상류층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임과 파티에서 때마다 유행하는 음악들이 있으며, 그 댄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을 즐긴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소셜 미디어플랫폼의 영향력과 인기가 급속도로 올라가면서, 온라인과 스마트폰을 통한 대중 문화 컨텐츠 확산은 더 이상 강경파들이 조절하고 막을 수 있는 한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나갔다. 엄격한 문화 검열과 제한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청소년부터 청년세대들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이란인 디아스포라 가수들 뿐 아니라, 서구의 유명한 가수와 영화배우, 운동선수들에 대해 열광하고 팬층 역시 두텁다. 이란의 10대, 20대들은 어려서부터 인터넷과 위성 채널을 통해 비보잉을 배우기도 하고 소셜 미디어 곳곳에서 팬 페이지를 만든다. 이와 같은 이란에서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대중문화 향유는 이란 내 BTS를 비롯한 한류 열풍의 주된 경로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대중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오늘날의 이란 10대 20대 30대 젊은이들인 것이다. 사시 만칸은 “70년대생들과(이란력 1370년, 즉 1991년 이후 세대), 60년대생들(1981년 이후 세대) 싱글들에게 존경을”라는 가사들을 통해 10대부터 30대의 이란의 문화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지금 이란의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이다.
한류의 흐름을 이끄는 이란 젊은 ARMY들
이란의 청년들이 즐기는 음악의 중심적인 흐름이 앞서 살펴본 디아스포라 음악이었다면, 최근 주목할 만한 하위문화는 바로 한류현상과 연결되어 있다.
이란에서 한류 열풍의 문을 한국 드라마가 열었다면, 2012, 3년 이후 본격화된 스마트폰의 등장과 소셜 미디어 발전과 함께 새로운 한류의 붐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K-pop이다. 한국 드라마 열풍이 잠시 식은 틈을 K-pop 인기가 그 간극을 메꾸고 있는 것이다. 2019년 현재 이란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방탄소년단(BTS), 엑소(EXO), 샤이니 등의 팬클럽들이나 현대 드라마 등 한류 문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주로 이들의 활동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란에서 활발한 소셜 미디어 활동은 상대적으로 다소 닫혀있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각 연예인들의 인스타그램 팬페이지에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에 관련된 소식과 사진들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한편, ‘텔레그램’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보다 면밀한 ‘팬질’을 관찰 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귀한 ‘굿즈’ 제작과 판매가 이루어지고, 팬클럽 리더를 중심으로 오프라인 모임이 주도된다.
케이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 현상은 이란 내에서 이제는 글로벌 가수가 된 BTS 팬들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했다. 이들 이란 내 팬클럽을 이끄는 주역들은 바로 누구보다도 통제받는다고 알려진 이란의 젊은 10,20대의 여성들이다. 이들은 전세계의 BTS ARMY들처럼 ‘ARMY PROJECT’라는 이름 하에 ‘선한 영향력’을 과시한다. 2017년 이란 아미들은 정신 장애인들을 위해 아미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도 하였다. 2018년에는 BTS 수첩 굿즈들을 팬들이 직접 만들어 병원의 환자들에게 기부하였다.
2019년 7월 19일에는 [IRAN ARMY PROJECT TEAM ] Iranian BTS A.R.M.Y’s project for “A.R.M.Y Day” 2019 라는 제목으로 이란, 라쉬트, 이스파한 3개의 도시에서 “Love Yourself” 카드와 보라색 풍선을 나누어 주며 경제난에 시달리는 우울한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이란의 젊은 층들이 한국 음악을 즐기는 것은 미국의 음악보다는 사회적으로 적대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의 동영상의 첫 댓글처럼 이란 안에서 여느 국가의 젊은이들처럼 대중음악을 동경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팬질을 하는 행위는 종종 문화적 범죄행위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 ARMY 가족 몇 명이 이스파한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음악이 금지된 국가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세계에서 가장 멋진 그룹을 지지하는 것이 마치 범죄처럼 취급받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포기 하지 않을 겁니다. BTS가 한계가 있어도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지요. 이 크나큰 지지하는 가족의 일원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이와 같은 팬 활동에 제약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 뮤지션들과 이란 디아스포라 가수들, 해외 가수들의 팬클럽 활동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와 텔레그램 채널에서 지금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란 밀레니얼 세대의 대중음악 즐기기의 의미
신세대라고 불리는 이란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슬람정부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2009년 녹색운동을 통해 이미 소셜미디어와 대항적인 인터넷 미디어의 힘을 알고 있는 이란의 강경보수파들은 이와 같은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이 국가에 대항하는 선동을 위한 허브라고 보고 있으며, 최고 종교지도자 하메네이는 이와 같은 전방위적인 인터넷 정보에 대해 ‘Soft War’라 표현할 정도로 경계하는 지점이다. 이란에서는 지금도 인터넷 접근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천개의 웹사이트가 금지되어 있지만 이란 유저들은 위성 송신기를 달고, 가상 사설망(VPN)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인터넷 채널에 접근하고 있으며 테헤란젤레스라 불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들어지는 전지구적인 이란 대중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1300여년전 이슬람 사상과 가치가 강조되는 교육 현장과 공적 영역에서의 담론과 전지구적인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외국 배우와 가수들에게 열광하고 거리낌 없는 자신의 즐거움을 표현하고 싶은 오늘날의 이란 젊은이들 사이의 불협화음은 어쩌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오늘날 이란의 젊은 세대에서 소셜 미디어와 대중문화 그리고 그것의 향유와 확산은 하나의 서브 컬쳐를 넘어 통제 속에서도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의식적인 행위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젊은 세대의 대중음악을 둘러싼 움직임은 하나의 ‘정치적인 행위’로 연결되는 것이다.
저자소개
구기연(kikiki9@snu.ac.kr)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란 청년 세대에 대한 심리인류학 연구로 박사논문을 작성했다. 주로 이란의 청년세대와 여성 문제, 이란 내 한류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시민사회운동 등에 대해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한국 내 이슬람혐오 이슈와 한국 무슬림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 지구를 누빈 현장연구 전문가 12인의 열정과 공감의 연구 기록』(공저, 2020),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2017)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미완의 혁명 그리고 위태로운 삶: 이란 녹색운동과 튀니지 재스민혁명 그 후 10년”(2020) 등이 있다.
참고문헌
구기연,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 국가의 감정 통제와 개인들의 자아 구성』,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구기연, 유아름, “미완의 혁명 그리고 위태로운 삶: 이란 녹색운동과 튀니지 재스민혁명 그 후 10년”, 아시아리뷰 제9권 제2호, 2020.
Bayat, Asef. Making Islam democratic: Social movements and the post-Islamist turn.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7.
Nooshin, Laudan. “The language of rock: Iranian youth, popular music, and national identity.” Media, Culture and Society in Iran. Routledge, 2007. 85-109.
Nooshin, Laudan. “Whose liberation? Iranian popular music and the fetishization of resistance.” Popular Communication 15.3 (2017): 163-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