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익란(단국대학교)
글로벌 매력국가, 아랍에미리트
아랍에미리트는 아라비아반도의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1971년 영국철수 이후 아부다비를 수도로, 두바이, 샤르자, 아즈만, 움 알 콰이완, 라스 알 카이마, 푸자이라 등 7개 토후국이 연방국가를 결성하면서 탄생하였다. 7개 토후국은 각기 다른 부족이 독립적으로 통치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석유수입으로 가장 부유한 아부다비에 의존적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서로 충돌될 것처럼 보이는 이슬람문화와 기독교문화, 전통과 현대, 부족문화와 글로벌문화 등 다양성이 공존하며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문명의 절충지이다. 일찌감치 석유의존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경제다변화 전략을 추진했으며, 비슷한 경제구조를 지닌 걸프지역 석유산유국 뿐만 아니라 타 중동국가의 발전모델이 되었다. 7개 토후국 중 특히 두바이는 무역업과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경제다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항공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여 중동뿐만 아니라 서구와 아시아 지역 관광객을 유치하고, ‘세계 최고’, ‘세계 최대’, ‘세계 최초’의 수식어가 붙는 몰을 끊임없이 개장하여 ‘몰시티 (Mall City)’라는 별칭에 걸맞게 세계적인 쇼핑 중심도시가 되었다.
아랍에미리트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분쟁과 내전으로 휘말린 주변 중동국가에 비해 비교적 정세가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시리아와 예멘은 2011년 ‘아랍의 봄’ 이래 내전 상태에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갈등 관계이고, 레바논과 이라크에서도 간간이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기업은 안정적이며 개방적인 아랍에미리트를 중동, 아프리카, 유럽진출 교두보로 활용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해외자본 유치를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자유 무역지대를 다수 설립해 2020년에는 ‘비즈니스 하기 편한 국가’ 16위를 차지하였다. 자본이 몰리면서 경제가 부흥하고,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인구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혁과 혁신의 상징국가, 아랍에미리트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아랍에미리트는 글로벌 젊은 세대 중 같은 언어, 문화, 종교를 공유하는 아랍 젊은이들에게 특히 매력적인 국가이다. 아랍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매년 시행하는 Arab Youth Survey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연속 8년째 아랍 젊은이들이 가장 살고 싶은 국가순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아랍에미리트를 다른 중동국가에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롤모델 국가로 보고 있다. 아랍 젊은이들이 아랍에미리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할 기회 (38%), 안보와 안전 (36%), 높은 월급 (30%), 아이 양육에 적절한 환경 (22%), 질 높은 교육제도 (20%), 이주민 친화 환경 (20%) 등이다 (ASDA’S BCW, 2019). 설문에 따르면 아랍 젊은이들은 아랍에미리트를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국가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존 닷콤 (amazon.com)의 아랍 버전인 수끄 닷콤 (souq.com)이나 우버 (Uber)의 아랍 버전 카림 (Careem) 등과 같은 온라인 기업이 아랍에미리트를 발판으로 중동지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공정한 기회가 열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아랍 젊은 세대와 비교되는 현재 젊은 세대의 사고변화를 보여준다. 생활고와 박탈감으로 2010년 겨울 튀니지에서 촉발된 민주화 운동의 파장을 겪은 아랍의 젊은이들은 부족주의 네트워크 안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던 기득권의 연줄문화 (아랍어로 ‘와스따, wasta’) 대신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공정한 사회를 열망하고 있다. 와스따는 관계를 중시하는 아랍세계 사회망 기저에 깔린 정서로 선거나 비즈니스, 또는 취업 시 자신이 아는 사람/부족 혹은 관계된 사람/부족을 지지하는 유대관계 문화이다. 이러한 관계중심 문화에서는 개인의 역량보다는 개인이 속한 배경이 성공을 가름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아랍에미리트 젊은이들은 와스따를 구식이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개인의 역량과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능력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실력주의를 제도화한 정부의 역할도 크다. 두바이의 한 CEO도 이전에는 와스따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이제 개인은 능력이 부족한 경우 신뢰와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Todman, 2020)[1]. 이는 곧 아랍에미리트 지도층과 젊은 세대가 사회발전을 위해 인식을 같이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타 국가의 아랍 젊은이들도 아랍에미리트를 공정한 기회가 열린 국가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 8년간 아랍에미리트가 미국이나 EU 국가를 제치고 젊은이들이 가장 살고 싶은 1위 국가로 선정되었다는 설문결과는 젊은이들이 이전에는 당연시 받아들였던 사회적 관습에 의문을 품고, 변화를 갈망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곧 아랍에미리트가 아랍세계 변화의 지향점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바깥에서 바라보는 아랍에미리트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자국민 젊은이들은 이주민이 전체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독특한 인구구조 속에서 점차 이방인이 되고 있으며, 이주민 유입에 따른 전통과 관습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정부도 아랍에미리트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국민정체성 구축전략을 마련하여 실행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고민인 자국민 정체성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인구구조 및 사회의 특성을 우선적으로 파악해 보도록 하겠다.
아랍에미리트의 분리된 계층사회
아랍에미리트 전체인구수는 2020년 세계은행 기준 989만 명에 달한다(Global Media Insight, 20/02/03)[2]. 그러나 아랍에미리트의 인구구조는 독특하다. 자국민은 전체인구수의 11.48%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외국인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주민 사회는 인도 출신(27.49%, 262만 명)이 다수를 차지하고, 그다음으로 파키스탄(12.69%, 121만 명), 방글라데시(7.4%, 7십만 명), 필리핀(5.56%, 5십만 명) 국적자 순서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중간나이가 33.5세로 젊은 국가이다. 25세-54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인구의 65.9%(629만 명), 15세-24세는 12.7%(121만 명)이다. 이들 인구는 대부분 일자리가 많은 두바이(전체인구의 35.7%, 약 332만 명)와 아부다비(전체인구의 34.7%, 약 323만 명), 샤르자(전체인구의 16.2%, 약 151만 명) 토후국에 몰려있다. 남녀인구 구성면에서 남성이 전체인구수의 72%(689만 명), 여성이 28%(265만 명)를 차지하여 인구의 성비불균형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아랍에미리트로 유입되는 노동자들이 주로 독신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착이 목적이 아니라 ‘기회의 땅’ 아랍에미리트에서 오로지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벌기 위해 입국한 ‘손님 노동자’이다. 비싼 생활비와 물가 때문에 가족과 함께 이주하지 못한 이들은 임금 대부분을 자국에 있는 가족에 송금한다. 따라서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랍에미리트를 언젠가는 떠날 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며, 간혹 아랍에미리트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시민권이 없어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귀속감이 없다.
아랍에미리트는 약 200여 민족이 모여 사는 다인종 사회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아랍에미리트 사회는 출신 국적, 직종, 거주지에 따라 크게 세 집단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간에는 상호교류가 거의 없어 ‘실질적으로 분리 (De Facto Separation)’ 되어 있다 (Fargues, 엄익란 재인용, 2016; Lacombe, 2016)[3]. 사회계층 면에서 에미리트 자국민은 가장 상위층인 특권층을 구성하고 있고, 전문직종에 근무하는 서구 출신 혹은 아랍 출신 외국인 노동자 (소수 아시아 전문직 포함)는 중상류층을, 그리고 파키스탄과 인도 출신의 반숙련공 노동자가 저소득층을 구성하고 있다 (Lacombe, 2016; Ishfaq, 2018)[4]. 이들의 거주지도 계층에 따라 분리되어 있다.
가령 두바이를 예로 들면, 중상류층의 서구인은 두바이의 동맥 도로인 셰이크 자이드 도로를 중심으로 해변가로 뻗은 움 스퀘임과 주메이라 지역의 고급주거지에 거주하는 반면, 저소득층인 인도, 파키스탄, 기타 아시아인은 사막 방면의 값싼 지역에 거주한다. 간혹 예외도 있으나 외국인 이주민은 대체적으로 출신국에 따라 근무직종도 정해져 있다. 영국과 서구 출신 노동자는 주로 관리직과 CEO직에 종사하고, 파키스탄 출신은 택시와 버스 등 이동수단 관련 직종에, 인도 출신은 청소나 기타분야에, 필리핀 출신, 특히 여성은 메이드와 내니와 같은 가사업무 직종에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탓에 구인광고에서 직종에 따라 모집하는 직원에 대한 인종을 명시하곤 하는데, 이는 아랍에미리트에서는 흔한 일이다. 게다가 능력이나 성과가 아닌 출신국에 따른 급여 차이가 있어 아시아 노동자 사이에서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Ishfaq, 2018). 결국, 아랍에미리트 사회 내부는 자국민과 외국인 이주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이주민끼리도 서로 문화적 교차점이 거의 없으며, 이들 공동체 간에는 문화적 경계선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싸 (Insider)’와 ‘아싸 (Outsider)’, 아랍에미리트의 시민권과 그 의미
아랍에미리트 사회 내부가 이처럼 실질적으로 분리된 사회가 된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제한적인 시민권 정책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1972년 규정된 연방법 17조 6항에 의거해 아랍국가 출신자의 경우 귀화 신청 전 7년간 (비아랍인의 경우 20년) 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해야 한다. 이들은 적법한 수입이 있어야 하며, 평판이 좋고, 어떠한 범죄에도 기소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연방법 17조 16항에 의거해 귀화한 시민이 특별한 이유 없이 해외에 4년 이상 지속적으로 거주할 경우 시민권은 자동 소멸되며, 이는 귀화한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아랍에미리트가 귀화법 기준에 ‘평판’이라는 주관적인 항목을 포함했다는 점은 이주민 귀화에 대한 잣대가 유동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엄익란, 2016: 18-19). 한편 외국인에 배타적인 시민권제도를 유지하던 정부는 탈석유정책을 추진하고 지식기반 산업구축을 목표로 하는 미래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2019년 5월부터 ‘골든카드’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외국인 전문가에는 예외적으로 영주권이 허용된다 (Gulf Business, 19/05/21)[5].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이와 같이 보수적인 시민권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첫째, 이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 인구구조에서 국가의 전통과 자국민의 정체성 훼손을 고민하고 있으며, 둘째, 석유수입에 대한 혜택을 자국민에게만 제한적으로 분배하여 통치자에 대한 충성심을 공고히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사막환경에 기반한 이 지역 부족주의 문화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생태학적으로 개인이 사막에서 혼자 생존한다는 것은 지극히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인은 가족을 형성하고, 가족은 모여 부족을 형성하였다. 과거 부족은 물과 식량을 찾아 집단으로 이주하며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새로운 자원을 찾으면 부족원끼리 공유했으며, 자원이 빈약한 사막환경에서 이를 남과 나누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부족주의 문화에서는 ‘나’와 ‘남’, 그리고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는 배타적인 공동체 의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각각의 부족은 의상, 관습, 말투, 행동 등에서 다른 부족과 구별되며, 혈연으로 맺어진 부족주의 사회에서 외부인은 쉽사리 내부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즉, 집단의 생존과 결속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으며, 구성원의 자격은 부족 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만 주어졌다 (Schedneck[6], 2009). 사막환경에서 작동했던 이러한 생존규칙은 부족주의 DNA 속에 각인되어 현대화된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비록 아랍에미리트 부족주의는 현대화에 따른 삶의 패턴 변화로 점차 약해지고 있으나 여전히 사회의 기저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국민으로서 젊은 세대의 정체성
아랍에미리트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오랫동안 베이비붐 시대를 거쳤다. 글로벌 출산율 조사에 의하면 1970년대 아랍에미리트 자국민 가족은 평균 6.6명, 1980년대 5.5명, 1990년대 4.45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현재 아랍에미리트 평균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져 1.8명에 그치고 있다 (The National, 18/6/5)[7].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자국 내 자국민 대 이주민의 인구 불균형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밖으로는 이민자 수를 제한하는 보수적인 이민정책을 채택하는 한편 안으로는 자국민 수를 늘리기 위한 결혼과 출산장려 정책을 추진해 왔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자국민 아이 한 명당 600 AED (대략 163달러)에 달하는 평생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며,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을 제공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상의료를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자국민 젊은이들이 가족을 형성할 수 있도록 결혼펀드 제도를 도입해 자국민 간 결혼 시 70,000 AED (대략 2만 달러)를 지원하고 주거 혜택도 부여하고 있다. 결혼펀드는 아이 한 명을 출산할 때마다 공제되기 때문에 자녀 수가 많을수록 상환액이 줄어든다.
이주민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정부는 한편으로는 자국민에게만 혜택이 가는 복지정책을 시행하여 이주민과 구별되는 국민정체성을 강화하고, 에미리트인으로서 이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자국민이 현대화된 오늘날에도 전통의상을 고집하는 이유도 특권층인 자신들을 비에미리트인과 구분짓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 자국민 인구수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15세-34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부족으로 나뉜 사회를 통합하고, 애국주의에 기반한 국가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내셔널리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걸프지역의 전통유산인 매사냥과 낙타 경주대회를 지원하고, 전통마을 구현을 통해 베드윈 문화유산을 강조하고, 국경일 행사를 강화하여 정체성의 뿌리를 재확인하며 아랍에미리트인으로서 소속감을 공고히 구축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국가정체성 강화정책은 에미리트인으로서 자부심 및 소속감을 구축하고 사회통합을 강조한 UAE Vision 2021의 국가과제에도 잘 드러나 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 홈페이지). UAE Vision 2021이 추구하는 목표는 “책임으로 하나되는 (United Responsibility)”, “운명으로 하나되는 (United in Destiny)”, “지식으로 하나되는 (United in Knowledge)”, “번영으로 하나되는 (United in Prosperity)” 국가의 건설이다. 내셔널리즘 강화정책은 교육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정부는 2016년부터 도덕과목에 시민권에 대한 학습단원을 새로 편성하였으며, 2019년에는 이를 전학년으로 확대하고, 의무수업으로 지정했다 (Todman, 2020).
더불어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2014년 의무병 제도를 도입하여 자국민의 정체성 강화를 위한 문화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Ardemagni, 2016). 이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남성이면 누구나 18세에서 30세 사이에 9개월에서 12개월간 (고졸 이하는 2년) 의무적으로 복역해야 한다. 여성도 부모가 동의할 경우 지원 (복무기간 9개월)이 가능하다. 입대와 함께 자국민 군인들은 애국주의를 강화하는 교육과 훈련을 받고, 이후 대통령 경호부대에 배치된다. 아랍에미리트는 자국민 수가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인력을 외국인 용병으로 보충하고 있다. 자국민 인구수가 2백만 명도 채 되지 않는 현 인구구조를 고려할 때 징병제는 실질적으로 아랍에미리트 군사력 강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매년 군입대 자국민 수가 5,000명에서 7,000명 사이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국민의 충성심이 정부보다는 부족에 우선하여 향하는 부족 중심 사회에서 애국심을 강화하여 부족을 초월한 강력한 국민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정책은 실효성을 보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씽크탱크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젊은 세대는 에미리트인으로서 국가정체성을 부족정체성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odman, 2020).
전환기의 아랍에미리트 젊은 여성과 문화적 딜레마
석유발견 이후 지금까지 현대화 정책을 추진한 아랍에미리트에서 자국민 여성은 한편으로는 교육과 사회활동을 통해 자신의 꿈과 열정을 실현하는 개혁의 상징코드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변화 속에서 에미리트의 ‘순수한’ 정체성과 전통유지라는 불변의 상징코드로 이용되어 왔다. 유한자원으로서 석유의 한계를 인지한 아랍에미리트는 1990년대부터 외국인 노동 인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다변화를 추진하기 위해 노동력의 자국민화 정책인 ‘에미레티제이션 (Emiratization)’을 시행해 왔다. 아랍에미리트가 노동력의 자국민화 정책을 시행하는데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바로 노동시장에서 여성인력 활용정책이다. 아랍에미리트는 노동력의 자국민화 정책 성공여부를 여성인력 활용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익란, 2014). 따라서 정부는 일찌감치 여성의 교육에 힘써 왔으며, 글로벌 수준에 부합하도록 교육의 질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정부는 여성개혁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도 시행한 바 있다. 2016년 내각개편에서 장관 8명 중 5명을 여성으로 임명했으며, 내각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구성했다. 또한, 남녀격차 해소를 위해 같은 해 남녀균형위원회 (UAE Gender Balance Council)를 신설했으며, 2021년까지 남녀평등 상위 25개국 진출을 목표하고 있다 (Gulf News, 16/05/02)[8]. 이는 정치분야에서 여성을 철저히 배제해 온 이슬람 지역 정서를 고려하면 매우 두드러지는 조치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아랍에미리트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임금노동자가 되었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경제력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는 여성의 자신감 형성과 독립된 자아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지고 있다(엄익란, 2014). 그러나 여성의 일자리 진출에 따른 사회문화적 딜레마도 함께 부상하고 있다. 에미리트 여성은 여전히 사적영역에서는 전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자국민은 ‘순수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을 중시해 왔다. 이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 자국민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생물학적이고 헌신적인 모성 (biological and dedicated motherhood)’을 바탕으로 ‘진정한’ 국민을 길러내는 것으로 귀결되었다(Pinto, 재인용, 엄익란, 2014: 18). 즉, 진정한 에미리트 국민은 외국인 엄마가 아닌 자국민 엄마에 의해 길러지며, 이때 자국민 여성은 외부의 ‘불순한’ 가치 유입에 대항하는 방패막이이자 아랍에미리트인들의 전통과 정체성을 보존하고 이슬람의 가치를 수호하는 존재로 상징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개혁의 상징코드로서 활용되는 현대 아랍에미리트 젊은 여성의 이미지와는 상충된다. 정부가 교육을 통해 여성 인적자원 개발에 힘쓰고 여성인력 활용에 앞장서고 있으나 결혼 후 가정을 지키기보다 자신의 경력을 쫓아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교육과 취업으로 아랍에미리트 여성의 결혼연령은 점차 늦어지고 있으나 이제 여성들도 결혼을 인생의 최우선의 과제로 여기지 않는다(Al Serkal, 2018)[9]. 1995년 30세 이상 여성 비혼인구수가 20%였다면, 2012년에는 60%로 증가했다(Rai, 2013)[10]. 이혼율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즉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역설적으로 아랍에미리트 가족문화의 근간을 흔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변화 속에서 아랍에미리트 여성의 이미지는 2014년 ISIS 타파를 위한 국제연합 전선에 아랍에미리트가 개입하면서 또다시 전환되었다. 과거 여성의 이미지가 현대화의 개혁코드 혹은 그 반대인 전통수호로 상징화되었다면 이제는 여성에게도 군입대가 허용되면서 국가를 수호하고 보호하는 ‘전사’의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그와 함께 여성은 ‘보호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보호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국가를 수호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2014년 9월 아랍에미리트 최초 여성 공군인 마리암 알 만수리가 ISIS 격퇴를 위해 F16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상징화되었다. 알 만수리는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ISIS를 격퇴했다는 면에서 무슬림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이미지를 전환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아랍에미리트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차원에서 아랍에미리트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 종속적이다. 아랍에미리트 가족법에 따라 여성은 남성 후견인의 허락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으며,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 (Allagui & Al-Najjar, 2018). 결국, 현대화의 개혁코드, 전통의 상징, 국가수호와 같은 아랍에미리트 여성의 다양한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사회변화와 전환기 여성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전환기의 아랍에미리트, 어떤 젊은 세대를 원하는가
이상으로 아랍에미리트 인구구조의 특성과 그에 따른 아랍에미리트 정부의 국민정체성 강화전략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지난 40년간 아랍에미리트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석유자본의 힘으로 현대화와 글로벌화를 거치면서 사막의 가난한 오아시스 국가는 ‘세계 최고’, ‘세계 최대’, ‘세계 최초’를 모토로 화려하게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급속한 국가 발전에 따른 경제성장으로 해외로부터 이주민이 지속적으로 유입됨에 따라 아랍에미리트 자국민은 이제 전체인구수의 10%에 그치는 소수민족이 되었으며, 그에 따라 자국에서도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이방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슬람의 종교문화와 베드윈의 전통문화 수호에 대한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외국인 유입에 대한 반작용으로 젊은 세대에서는 자신의 순수한 전통문화와 종교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아랍어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충분치 여기지 않는 부모들은 사립학원에 자녀를 보내 아랍어를 추가로 교육시키고 있다. 정부차원에서도 자국민의 국가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내셔널리즘을 강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부모세대와 달리 부족 (혹은 각각의 토후국)에 대한 충성심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애국심을 통해 자랑스러운 미래세대를 양성하려는 아랍에미리트 국가 프로젝트는 UAE Vision 2021의 핵심주제인 “책임으로 하나되는 (United Responsibility)”, “운명으로 하나되는 (United in Destiny)”, “지식으로 하나되는 (United in Knowledge)”, “번영으로 하나되는 (United in Prosperity)” 표어에도 잘 드러나 있다. 국가의 국민정체성 구축 프로젝트에서 여성은 아이러니하게 한편으로는 국가개혁의 상징코드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문화의 수호자라는 문화적 딜레마를 겪고 있으며, 이제는 국가를 지키는 강한 여성의 이미지로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국민정체성을 강화하는 이와 같은 아랍에미리트 정부의 국가정책은 글로벌화 이후 전세계적으로 부활하는 자국 우선주의 추세와 일맥상통한다.
저자소개
엄익란 (i.eum@dankook.ac.kr)은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에서 이슬람과 중동사회를 가르치고, 외교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영국 엑스터 대학교 (University of Exeter)에서 중동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중동여성, 세대갈등, 가족문화, 이슬람문화, 할랄산업등 중동지역 사회문화와 관련된 연구와 출판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2009년 문체부 우수교양도서로 지정된 <무슬림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와 2016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된 <금기, 무슬림 여성을 엿보다>외 4편이 있다. 2019년에는 국내 관광발전에 대한 기여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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