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Wikimedia Commons, 작가: 박종대(ChongDae)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후퇴
현재 전 세계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2008년 세계화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부터 발발하였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통적 정당의 약화, 정당 간 양극화, 극우 정치세력의 부상, 포퓰리스트 정치세력의 발호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민주정부가 다시 경제성장을 점화하고,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인종적, 종족적 분리와 차별을 철폐하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여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 문제를 풀 수 없게 하였다.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신뢰의 하락으로 정당정치가 퇴보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2016년 영국인들은 종족주의에 기반하여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EU라는 국경이 없는 세계에서 이탈하는 브렉시트를 선택하였다. 2016년 미국인들은 트럼프라는 스트롱맨을 당선시켜 외국 이주민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는 정치적 선택을 하였다. 트럼프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1,951마일(3,140km)에 달하는 21세기판 만리장성을 쌓아 멕시코 이주민의 진입을 막고 있다.
민주주의의 원류국가인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민주주의의 후퇴와 위기는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동유럽의 신생 민주주의로 번졌고 아시아와 남미로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백인 노동자들의 불만, 종교적 근본주의, 종족주의와 자국민 우선주의,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로 우익 포퓰리즘을 자극하고 선동하여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집권 후에도 계속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를 훼손하였다. 트럼프의 포퓰리즘에 의한 민주주의의 후퇴는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절정에 달했다. 미국은 2020년 대선에서 스트롱맨 트럼프의 우익 포퓰리스트 추종자들이 선거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가 퇴보하는(backsliding) 경험을 하였다. 의사당 난입 사태는 미국 민주주의의 강한 제도적 복원력(institutional resilience)으로 의회주의 방식으로 해결되었고 미국 민주주의는 다시 정상화되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마린 르펜의 극우 인종주의 정당, 그리스의 시리자(Syriza)와 같은 좌파 포퓰리스트 정당이 부상하여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이념을 선동하고 있다. 그들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인종혐오주의, 자국민 우선주의(nativism)를 동원하고 반이민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던 스웨덴에서도 민주당이 파시스트 정당화하였고, 이태리의 조지아 멀로니(Georgia Meloni), 오스트리아의 자유당(Freedom Party) 등은 반이민(anti-immigration), 반이슬람(anti-Islam), 반범죄(anti-crime) 구호를 내걸고 극우정당화하였다.
동구 헝가리의 오르반과 피데스당(Fidesz)은 민족의 순수성 보존이라는 구호로 자유민주주의 폴란드의 집권 법과 정의당(PiS)은 기독교 수호라는 구호 아래 정치적 경쟁을 억제하고 비자유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터키의 스트롱맨 에르도안(Erdogan)과 AKP(Justice and Development Party)는 비자유주의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침식하여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고, 쿠르드 종족을 억압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는 아시아로 확장되었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의 모디(Narendra Modi) 수상은 힌두 민족주의를 내걸고 의회, 대법원, 선관위, 군의 제도적 중립과 분권 제도를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있다.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Abdel Fattah el-Sisi)는 2034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필리핀의 스트롱맨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 2만 명을 처형하는 대량 학살을 감행하였다. 남미의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에서는 좌파 포퓰리스트 정권이 대의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브라질의 우익 스트롱맨 보우소나루는 사법통치(juristocracy)에 의해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했다가 선거를 통해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민주주의가 복원되었다.
스트롱맨들은 헌법개정과 국민투표를 통해 사법부를 협박하고 헌법적인 권력분립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어 의회를 통법부로 만들고, 공공미디어를 친여 규제위원회의 통제 하에 두었고, 정보기관을 포함한 공공 관료들을 권력의 당파적 이익에 복무하게 하였다.
스트롱맨에 의한 신흥민주주의의 퇴행은 스텔스(stealth)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스트롱맨들은 한꺼번에 민주주의 제도들을 치명적으로 파괴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전복을 시도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의 법과 제도들을 ‘합법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소리 없이 훼손하는 스텔스 방식을 취했다.
한국에서는 이명박 정권(2007-2012)이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후퇴가 일어났다.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후,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제한되었고, 법치주의(rule of law)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변모하여 법이 인권을 보호하는 수단이 아니라 지배자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민주주의 후퇴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정점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 요인은 전근대적 가산주의(patrimonialism), 아버지인 독재자 박정희를 따라하는 유훈통치(rule by regency), 박근혜의 불통통치와 보나파르티즘, 그리고 전근대적 주술주의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2017년의 촛불혁명에 의해 탄핵을 당하고 2017년 적법한 절차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가 복원되었다. 한국인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적법한 절차를 밟아 문재인을 대통령에 선출하였으나 검찰총장 출신의 스트롱맨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퇴행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복원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찰스 디킨슨, 『두 도시 이야기』)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고의 시절’을 향유하다가 어리석은 지도자 윤석열의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 기도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척결하고 12.12 군부 쿠데타의 주역인 두 전직 대통령을 사법처리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쿠데타의 위협으로부터 영원히 면역될 것으로 믿었다. 정치적 자유와 안정은 해방 후 최장 시간 지속되었고, 한국인들은 공정하고 경쟁적인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교체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벼락처럼 떨어진 친위쿠데타로 70년대와 80년대의 쿠데타가 21세기 한국에서 다시 출몰하고 있는 데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2024년 12.3 사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달성하여 20세기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진입한 한국의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12.3 쿠데타로 한국은 “1975년 아르헨티나의 국민소득인 6,055달러보다 더 잘 사는 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가 무너진 적이 없다”는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의 법칙”에서 예외가 된 최초의 수치스러운 사례를 기록하였다(Przeworski, et al., 1996). 지금 한국인들은 무너진 국격, 국가 신뢰의 상실, 대외적 안보 불안, 서민경제의 붕괴와 같은 실패한 쿠데타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어리석은 지도자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지혜롭게 대처하였다. 무장 군인들이 국회로 난입했을 때, 수많은 시민들이 자정의 어둠을 뚫고 군인들의 진입을 맨손으로 막아내었다.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계엄군의 의사당 진입 직전에 계엄령을 해제하였고,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소추하고, 직무를 정지시켰다. 헌법재판소는 빠른 속도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 들어갔고, 2025년 4월 4일 내란의 수괴인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였다. 세계는 전복될 뻔했던 한국 민주주의를 적법절차(in due course)를 밟아 회복시키고 정상화시킨 한국 민주주의의 엄청난 복원력(resilience)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완전히 복원된 것이 아니고 여전히 내란의 잔재 세력의 위험과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구 집권 보수 국민의 힘 정당은 여전히 쿠데타 우두머리를 옹호하면서, 쿠데타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특검 통과를 저지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상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지도자의 무도하고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 적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극우 유투버들과 포퓰리스트들을 거리에서 선동, 동원과 가짜뉴스 배포를 통해 윤석열을 지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고, 적법한 절차에 따른 새로운 정부의 탄생을 저지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들은 내란 수괴 윤석열을 국회와 헌법재판소와 같은 헌법기관을 통해 적법절차를 통해 파면하였고, 현재 6월 3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함으로써 윤석열 내란사태로 위기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를 정상화하려 한다. 지금 한국인들은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함으로 투표와 선거만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우리 동네의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이라는 것을 헌법적으로, 행태적으로, 의식적으로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정치 교육을 스스로 받고 있다(Przeworski, 1991).
맺는말: 민주주의 위기 해결 처방들
현재 선진 민주주의와 신흥 민주주의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는 ‘위기의 순간’에 와있다. 현존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처방에도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간에 차이가 있다.
레비츠키와 지블라트는 보수적 해법을 선호한다(Levitsky and Zieblatt, 2018). 레비츠키는 정치보스의 시대에서 대중의 시대로 이행하면서 대통령 후보 공천을 외부의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에 넘겨주고, 전문가의 검증 과정을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가 포퓰리스트화되는 위기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트럼피즘과 같은 미국정치의 경쟁적 권위주의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중의 참여보다는 민주적 엘리트가 주도하는 갈등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당들이 반대파의 정치적 정당성을 존중함으로써 엘리트 수준에서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을 통해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이지와 길렌스(2018), 샹탈 무페(2019)와 같은 진보 지식인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민주주의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 일어난 것이라고 진단한다. 왜냐하면, 보통 미국 시민들은 전국적 수준의 정치와 정책에 전혀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부자와 특권층의 과두제이기 때문에 부자들의 압도적인 정치적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무페는 좌파 포퓰리즘(left populism)을 통해 노동자, 이민자, 성소수자, 불안한 노동자들(precariats), 중산층이 대연합을 구축하여 정치에 더 많이 참여함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를 더 대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선진 민주주의와 신흥 민주주의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포퓰리즘, 전문가 관료 가디언들의 개혁저지 시도, 사법통치와 정치의 언론화로 인해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친위쿠데타로 ‘빛의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복원시킴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한국인들은 선제적인 민주주의 제도 혁신과 재창조를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퇴행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자소개
임혁백(hyugim@naver.com)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미국 시카고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화여대 교수, 광주과학기술원 (GIST) 석좌교수를 역임하였다. 조지타운대학, 듀크대학, 스탠포드대학에서 초빙교수를 하였고,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연구를 하였다. 세계정치학회 (IPSA)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민주주의, 근대국가의 발전, 탈세계화 시대의 정치와 경제에 관해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 임혁백. 2021.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서울: 김영사.
- 찰스 디킨슨. 『두 도시 이야기』
- Levitsky, Steven and Daniel Zieblatt, 2018. How Democracies Die, New York: Crown Publisher
- Mouffe, Chantal. 2019. For a Left Populism. New York: Verso.
- Page, Behamin and Martin Gilens. 2018. Democracy in Americ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Przeworski, Adam. 1991. Democraccy and the Marke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Przeworski, Adam, Miachael Alvarez, José Antonion Cheibub, and Fernando Limongi. 1996. “What Makes Democracy Endure?,” Journal of Democracy, 7(1), 39-55.
- Przeworski, Adam. 2019. Crises of Democrac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