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재난의 시대, 일본의 기록주의 문학에 길을 묻다

2011년 3월 11일, 역대 최대라는 9.0 매그니튜드의 대지진과 대쓰나미가 동일본 일대를 강타하면서 그 여파로 도쿄전력후쿠시마제1원전은 세 기의 원자로가 멜트다운되고 폭발하는 인류 최악의 원전사고(이하, ‘후쿠시마핵재난’)를 일으키고 말았다. 그로부터 어느덧 12년여가 흘렀지만 우리는 끝이 요원한 핵재난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핵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인류는, 핵재난의 역사가 비단 일본에서, 비단 2011년 3월만의 재난이 아니라 그 역시 반복된 ‘부(負)의 역사’였으며 또 언제 반복될지 모를 역사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글은 바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핵재난사(史)의 진실과 피해자의 삶을 일본의 재난문학(특히 소설과 시)과 그 작가의 활동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더불어 공해대국이라 불렸던 일본의 과거 대표적 공해사건(후쿠시마핵재난 포함)과 그를 서사한 문학의 시스템에 비추어, 향후 재난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4360

김경인(전남대학교)

반복되는일본의 핵재난사()

일본은 흔히 지진대국, 재해대국, 공해대국이니 하는 이른바 ‘재난대국’이라 불리곤 한다. 그런 일본이 급기야 ‘핵재난 대국’이 되어버린 역사, 요컨대 핵재난사(史)를 돌아보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일본 핵재난의 시작은 두말할 것 없이 78년 전인 1945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이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의 재난이다. 따라서 2011년 후쿠시마핵재난이 발생했을 때, 열이면 열 사람이 “일본에 또!!”라며 히로시마・나가사키를 떠올렸을 터이고, 일본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가 탈원전으로 발길을 돌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소위 ‘핵 마피아’들이 다시금 ‘핵 신화’, ‘핵 르네상스’와 같은 구호를 내걸고 원전의 선전활동을 재개하기까지는 채 몇 달도 걸리지 않았다.

“원자력 정책은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타이틀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 1918-2019)의 인터뷰기사가 <아사히신문>에 게재된 것이, 후쿠시마핵재난 이후 한 달 남짓한 2011년 4월 26일이었으니 말이다. 나카소네는 중의원 의원이던 시절인 1954년에 일본 최초로 ‘원자력연구개발예산안’을 통과시킨, 이른바 일본 핵 마피아의 선구자적 인물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자신의 당시 ‘업적’을 들먹이며 원자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그 시점에’ 보란 듯이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나카소네가 자화자찬하는 ‘예산안’이 통과된 그 날짜는 공교롭게도 1954년 3월 3일로, 자국민이 피폭된 비키니 사건1)이 발생한 3월 1일로부터 이틀 후였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으로 공교롭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1954년 3월 3일의 공교로움은 또 있다. 그로부터 3개월 전인 1953년 12월 8일,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미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인류의 죽음에 이용되는 일 없이 인류의 삶에 봉사하는 길” 운운하며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어떤 나라이며 아이젠하워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터이다. 미국은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과 비키니 사건의 가해국이고, 아이젠하워는 핵무기개발에 가장 열정적인 미대통령이었다. ‘핵의 평화적 이용’ 운운하며 뒤에서는 한동안 핵실험을 지속했고, 1955년에는 미일간 원자력연구협정이 체결되고 일본 내 「원자력기본법」이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곧 일본의 원자력(핵)정책이 미국 핵전략 세력의 관리감독하에 출발했음을 방증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렇듯 미일 간의 ‘핵 거래’ 한가운데서 발생한 1954년 3월 1일의 비키니 사건. 당시 그 어선에서 피폭된 승선원 중 생존자인 오이시 마타시치(大石又七, 1934-2021) 씨는, 후쿠시마핵재난 직후 출판한 자신의 저서 『모순-비키니사건, 평화운동의 원점』의 후기에 다음과 같은 규탄의 글을 남겼다.

“…원자핵을 발견했다며 노벨상을 받고 좋아했겠지만, 그것이 핵폭탄이 되어 인류는 끝을 모르는 공포에 떨고 있지 않은가. 그 실패를 감추려고 이번에는 원자력발전을 핵의 평화이용입네 부추기며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평화는커녕 그 원전이 지금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편리함도 인간을 타락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2)

한편 오이시가 의미하는 ‘문명이 초래한 타락의 현상은, 후쿠시마핵재난에 이르기 100년 전인 1911년 일본 문학의 거장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현대일본의 개화(現代日本の開化)」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언어도단의 궁상에 빠진 꼴이라고 탄식한 일본 ‘현대’의 미래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일본이 이러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궁상”에 빠진 것이 비단 100년 후의 일만이 아님을 안다. 나쓰메 소세키가 이렇게 심히 탄식했던 때가 이미 제국주의가 뿌리내린 시기라는 점을 기억하자. 그런데 제국일본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무참하게 물어뜯은 대상은 결코 일본 ‘밖’에만 있지는 않았다. 그 송곳니가 가장 깊고 잔인하게 박힌 곳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안’의 민중이고 국토였다.

그 결과의 단적인 예가 침략전쟁과 원폭으로 갈가리 찢기고 뼛속과 내장까지 타들어 죽어간 원폭희생자이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공해병과 공해사건에 병들고 파괴된 일본의 민중이고 자연이다. 그리고 그 궁극의 참상이 2011년 3월의 후쿠시마핵재난이 아닐까.

이 글에서는 바로 이런 일본 핵재난의 역사와 그 기구한 피해민들의 삶이, ‘기록주의 문학’을 매개로 일본 사회에 어떻게 그리고 어떤 메시지로 전해졌는지 함께 보고자 한다.

 

후쿠시마핵재난을 서사한 기록주의 문학

그렇다면 2011년 3월의 핵재난을 둘러싸고 일본의 문학자들은 어떤 작품활동을 하였을까?

참 많은 일본의 문학자들이 2011년 3월 직후부터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핵재난과 관련된 문학작품을 발표하였다. 혹자는 핵재난을 둘러싼 일본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과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혹자는 3.11과 핵재난의 체험자로서 사건 ‘실태를 공유하고자’, 혹자는 핵재난의 재발을 막기 위해 ‘투쟁하고자’, 또 혹자는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애도하고자’… 그야말로 “언어도단의 궁상”인 현실을 헤집고 필사적으로 글을 써 내렸다.

가네코 아키요(金子章予, 2015)는 일본의 원폭문학과 원전문학을 통틀어 ‘핵문학’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핵재난에 의한 외부적 피해는 말할 것 없이 인간존재를 좀먹고 위협하는 인간성과 사회의 붕괴를 야기하는 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묻는 문학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핵이 존재하는 사회의 모순, 위험성, 오류성, 반인간성에 대한 경종이 되는 문학이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정의에 동의하면서도, 필자는 여기에 진정한 핵문학을 위해서는 ‘기록주의 문학’의 특성을 겸비해야 한다고 감히 덧붙이고 싶다. 이때의 ‘기록주의 문학이란 사건의 진실규명과 책임촉구 그리고 피해민의 삶과 한()을 아울러 서사함을 의미한다. 나아가 독자와의 교감과 재난의 기억 공유를 가능케 함으로써 재난의 반복을 막고 재난 이전의 ‘고향’을 되찾을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김경인(2012) 참조].

필자는 후쿠시마핵재난 직후인 2011년 3월부터 2014년까지 발표된 해당 사건 관련 소설(10편)을 조사하고, 그에 앞서 ‘일본 공해의 원점’이라 일컬어진 <아시오동산광독사건>(9편)과 일본의 대표 공해병사건인 <짓소미나마타병사건>(6편)을 서사한 소설들을 고찰함으로써 일본 공해(핵재난 포함)의 시스템과 관련 문학의 시스템을 도출한 바 있다.3)

아시오동산광독사건과 미나마타병 사건을 서사한 문학작품(왼쪽)과 후쿠시마핵재난을 서사한 문학작품들(오른쪽)
출처: 저자 제공

이처럼 특정 재난사건과 그 피해를 서사한 문학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이 바로 ‘기록주의 문학’이라는 것을 확인함에 따라, 필자는 그것이 사회적 재난 관련의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 만큼 앞서 간략히 서술한 일본의 핵재난사(史)는 물론이고 피해당사자의 고통과 한의 소리를, 우리는 핵재난을 다룬 기록주의 문학에서 만날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것은 후쿠시마핵재난을 다룬 소설 중에는 특히 핵전력이라는 국책산업의 핵심에 있는 정부와 기업, 어용학자 그리고 미디어 등으로 구성된 거대 핵 마피아의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의 검은 내막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작품이 다수라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와카스기 레쓰(若杉冽)와 가자미 쇼타로(風見梢太郎)의 작품이다.

현역관료라는 소문이 있는 와카스기 레쓰(필명)는, 2014년 12월 『도쿄블랙아웃(東京ブラックアツト)』이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그는 전년도인 2013년 9월에 이미 핵재난 소설 『원전화이트아웃(原発ホワイトアウト)』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이 작품은 후쿠시마핵재난 이후 일본의 정치가, 관료, 전력회사 등의 핵 마피아 집단이 원전재가동을 위해 펼치는 음모를 고발하는, 지극히 사실적 근거를 가진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후속작인 『도쿄블랙아웃』은 후쿠시마핵재난을 겪었음에도 결국 멈췄던 원전들의 재가동이 시작된 후, 테러로 인해 결국 도쿄 하늘 아래 검은 방사능 눈이 내린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요컨대 제2의 후쿠시마핵재난, 즉 ‘다섯 번째 일본의 핵재난’4)을 상정하고 있는 소설로, 핵재난의 현실을 직시하고 경계해야 하는 사회와 국민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가자미 쇼타로는 원전도시인 후쿠이현 쓰루가시(敦賀市) 출신이며 교토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작가로, 2014년 『원전소설집』(光陽出版社)이라는 타이틀의 소설집을 출판하였다. 여기 수록된 작품들의 제목에는 ‘핵재난’ 이후 사회적으로 부각되었던 문제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일본사회와 민중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예컨대 “선량계(線量計)” “(원전)교부금(交付金)” “산림오염” “수습작업” “해양투기(海洋投棄)” 등이다. 특히 「해양투기는 방사성물질로 오염된 후쿠시마원전의 오염수를 해양으로 투기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작중 주인공은 후쿠시마 인근의 도시가 고향인 하청기업의 원전노동자로, 핵재난 이후 방사성물질 오염수의 처리시스템인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도쿄전력의 거짓발표와 달리 ALPS의 문제로 방사성물질이 제거되지 못한 오염수가 바다로 투기될 위기에 처하자, 고향의 바다까지 방사능에 오염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각오로 피폭선량의 연간기준이 초과하는 것도 불사하고 작업에 매달린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2023년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방사성물질 오염수의 해양방류의 축소판이자 예고편과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이다.

한편 피폭선량의 기준이 초과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함을 너무나 잘 아는 원전노동자들이,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슬픈 투혼은 “해양투기”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서사되곤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도타 류쇼(門田隆将, 2012)의 논픽션 『죽음의 끝을 본 남자-요시다 마사오(1955-2013)와 후쿠시마제1원전(死の淵を見た男-吉田昌郎と福島第一原発)』과 이를 영화화하여 2019년에 개봉한 『FUKUSHIMA 50』일 것이다.

고향과 가족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그들의 희생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희생을 강제한 것은 정부와 원전기업의 무책임하고 범죄적이기까지 한 핵전력 정책과 기민(棄民)정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들 핵재난 관련의 문학작품이 직간접적으로 독자에게 보내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민중의 희생을 강제하는 국가를 비롯한 핵 마피아의 범죄적 질주를 막아야 한다는 외침이다.

가도타 류쇼의 논픽션 『죽음의 끝을 본 남자』 표지(왼쪽)와 영화 『Fukushima50』 포스터(오른쪽)

 

어느 시인의 끝나지 않은 고발과 투쟁의 핵재난 시()
와카마쓰 조타로 「행방불명된 마을(神隠された街)」의 첫 부분. 번역은 필자(이하 동일).
사진 출처: https://youtu.be/rROfqAkzxOM?si=W4IT0Pm20De_8X70

일본 핵 마피아의 질주를 막기 위해 40여 년을 싸워온 시인이 있다. ‘후쿠시마의 시인’ 와카마쓰 조타로(若松丈太郎, 1935-2021)는 ‘원전사고’라는 표현을 납득할 수 없노라고 했다. 에 의한 재난이라는 인식으로 핵재(核災)’ 즉 핵재난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진실규명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 분노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파괴=방사선에 의한 파괴”를 어떻게든 형태 있는, 즉 눈에 보이는 것으로 승화하여 모두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그것이 시인의 사명인 듯 바람인 듯 말한다. 어떻게? 상상력으로.

시인은 1994년 8월에 체르노빌원전사고5)의 현장에서 본인이 목격했던 것들을 토대로 「행방불명된 마을(神隠しされた街)」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이 시에서는 먼 타국의 원전 인근 도시들이 원전사고로 행방불명되어버렸던 ‘역사’가, 시인이 사는 마을이 포함된 후쿠시마제1원전 인근 도시들의 ‘행방불명’으로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런데 이는 후쿠시마핵재난이 있기 17년 전, 시인이 말한 ‘상상력’이 미래에게 보낸 경고였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본에서는 후쿠시마핵재난이 발생한 직후 와카마쓰 시인의 이 시를 ‘예견시’라 부르기도 했다.

원전으로부터 25킬로 떨어진 하라마치시에 거주하는 시인은, 하지만 자신의 이 시가 ‘예견시’라고 불리는 데 대해 비약이라며 부정한다. 다만 30km 이내 마을들의 피난이 이뤄지고 결국 폐쇄되었던 체르노빌원전의 경우에 비추어, “후쿠시마원전이 폭발한다면?”이라는 상정하에 써내렸던 시가 그로부터 17년 후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6)

와카마쓰 조타로의 「후쿠시마핵재난 기민」의 표지와 시 「행방불명된 마을」의 일부
와카마쓰 조타로 「행방불명된 마을(神隠された街)」의 마지막 부분
사진 출처: https://youtu.be/rROfqAkzxOM?si=W4IT0Pm20De_8X70

체르노빌원전사고 발생 후 8년여만에 찾았던 프리마치시에서 시인이 마주한 풍경은, 그로부터 17년 후에 발생한 ‘후쿠시마핵재난’이 펼쳐 놓은 풍경과 그야말로 닮은 꼴이다. 도로변 아스팔트를 비집고 자랐던 풀포기들이 메말라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고, 아이들의 소중했던 그러나 이제는 방사성물질을 뒤집어쓴 쓰레기가 되어버린 장난감들과 주인 잃은 휑뎅그렁했던 체르노빌의 운동장과 교실을, 그야말로 후쿠시마에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듯하다.

와카마쓰 시인은 1972년 도쿄전력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가 처음 가동을 시작한 이래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마저 은폐되는 경우가 많았음을 자신의 시를 통해 고발하고 경고해왔다. 예컨대 2010년의 시집 『북위37도25부의 바람과 카나리아(北緯37度25分の風とカナリア)』에 수록된 「남풍 부는 날(みなみ風吹く日)」에는 “1978122/체르노빌 사고의 8년 전/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 3호기 원자로/압력용기의 수압시험 중에 제어봉 5개 탈락/일본 최초의 임계상태가 7시간 30분이나 지속되었다/도쿄전력은 29년이 흐른 20073월에 사고의 은폐를 그제야/인정했다”라며, 사고 후 30년 가까이 은폐되어왔던 ‘일본 최초의 임계사고’를 고발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한 편의 시에서 1998년까지 발생했던 6건의 사고를 고발하며, “200711/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북쪽으로 25킬로/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기타이즈미해안/서퍼의 모습도 페리의 그림자도 없다/세계의 소리는 끊기고/남쪽에서 오는 바람이 살갗에 들러붙는다/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크고작은 원전사고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방사성물질에 의한 해양오염과 사람들로부터 버려지는 바다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7) 이 어찌 ‘200711만의 풍경일 것인가. 2023년 여름 이후의 풍경은? 우리가 보게 될 것은 무엇일까?

이처럼 와카마쓰 시인은 2011년 3월의 후쿠시마핵재난에 이르기까지 무려 40년의 세월 동안, 정부와 원전기업의 사소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은폐해온 사건사고 등을 자신의 시를 통해 고발하면서, 진실규명과 책임촉구는 물론이고 국민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발신해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인이 그토록 우려했던 ‘일본의 체르노빌’은 재현되고 말았다. 그의 시들에는 이상의 핵재난사(史)는 물론 그로 인해 버려진 기민(棄民)의 한과 ‘고향’의 고통 또한 고스란히 서사되고 있다.

전쟁 없는 나라인데 마을과 도시가 파괴되고 말았다
혹시 천재라면 단념도 하련만
아니 천재였대도 단념할 수 없건만
‘핵재(核災)’는 사람들의 삶을 빼앗고 미래를 빼앗았다

2011년 4월 11일, 후쿠시마현 소마군 이다테마을
마을이 계획적 피난구역으로 지정된 이튿날 아침
102세의 마을 최고령 할아버지가 옷을 잘 차려입고 자살하였다
너무 오래 살았다 난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다

2011년 6월 11일, 후쿠시마현 소마시 다마노
출하정지된 원유(原乳)를 버리는 고통스런 나날이 계속되어
마흔 마리 소를 키우던 쉰넷의 남성이 퇴비창고에서 사망
원전으로 팔다리가 잘린 낙농가 (중략)

유족들이 도쿄전력을 기소하고 고소해도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고 기각되겠지
삶을 빼앗긴 사람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전쟁 없는 나라인데 부조리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와카마쓰 조타로, 『시(詩)선집 130편』, 「부조리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不条理な死が絶えない)」, 196-197

이 시 전체에 사연이 소개된 자살자는 모두 다섯 명. 당시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한 기사(2011.6.20.일자)에 따르면, 2011년 5월 한 달에만 발생한 후쿠시마현 자살자는 68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3.5배나 증가한 수치였다. 처음에는 이들의 자살과 원전사고의 인과관계를 부정해오던 도쿄전력도 결국 상관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이들 중 원전사고와의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는 희망과 투지를 싣고

이이다테, 가와마타, 원유(原乳)폐기. 우사 근처에 구덩이를 파고, 폐기. 우유의 늪. 새하얀 늪 위로 파문이 인다. 바라보는 이의 처량함. (2011년 3월 23일 22:47)

우리는, 땀을 흘리고 있다. 어떤 남자가 말했다. “어제는 이이다테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가, 트럭에 태워져서, 처분되러 가는 것을 보았다. 몇 대나 되는 트럭이 소를 태우고,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정신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2011년 4월 1일 22:09)

우리는 땀을 흘리고 있다, 다른 남자가 말했다. “농사를 짓는 남성이, 밭의 야채를 모두 폐기한 날 밤에, 슬프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정신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2011년 4월 1일 22:11)

와고 료이치(和合亮一) 『시의 조약돌(詩の礫)』(徳間書店, 2011.6)의 p.108, 172 중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자식과도 같은 농산물과 가축들, 그리고 고향을 버려야 하는 절망감에 죽음의 늪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은 와카마쓰 시인의 ‘자살자’들은, 역시 ‘후쿠시마의 시인’이자 ‘핵재(원전) 난민’인 와고 료이치(和合亮一, 1968- )의 시에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와고 료이치는 후쿠시마시 출신이면서 2011년 핵재난 당시 후쿠시마시에 거주하다 핵재 난민이 된 시인이다. 그는 3월 16일부터 자신의 트위터에 당시 상황과 절박한 심정을 “시의 조약돌”이라는 제목으로 발신하였다. 와고 시인은 아들딸을 포함한 가족들의 피난으로 생이별을 겪어야만 했던 ‘후쿠시마핵재난민’들을 대변하는 ‘특파원’과도 같았다. 대지진에 이은 여진과 핵재난 이후의 방사능 오염과 벌이는 외로운 사투를, 트위터라는 공간에서 시(詩)라는 형식에 실어 ‘보도’하였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와고 시인 자신은 말할 것 없고 트위터를 통해 그의 글을 만난 3.11과 후쿠시마핵재난의 피해자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와고 료이치 시인은 ‘새로운 시리즈’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의 글과 함께 5월 26일 트윗을 마지막으로 2개월 10일간의 “시의 조약돌” 활동을 마쳤다. 그리고 약속대로 ()라는 조약돌을 세상을 향해 던짐으로써 밤이 새기를 기다리며멀리멀리 파문을 퍼트리는 운동을 재개하였다. 와고 시인의 󰡔시의 조약돌󰡕은, 와카마쓰 시인의 「행방불명된 마을」 등의 시가 그랬듯이, TV나 신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고, 시인 자신이 기획한 낭송회 및 연주회에서 낭독했을 뿐 아니라 가곡으로도 재구성되어 공연되기도 하였다. 그의 시들을 토대로 이뤄진 이런 활동은 대지진과 핵재난 이후의 후쿠시마를 살아가기 위한 문제의식의 ‘사회적 공유화’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런가 하면 2년 후인 2013년에는 원전재가동과 정권교체라는 사회적 변화에 대응했던 트윗을 모아, 핵재난민으로서 후쿠시마를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분노와 기도를 엮은 『시의 조약돌 기승전전(詩の礫 起承転転)』이라는 시집을 발간하였다. 그뿐이 아니다. 2017년에는 프랑스에서 번역출판된 『시의 조약돌』이 제1회 <눙크(NUNC) 리뷰 포에트리상> 외국어부문에 선정되기도 하였는데, 원전대국 프랑스에서 대지진과 핵재난에 의한 파괴와 지속될 고통을 서사하는 와고 시인의 시집이 포에트리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만큼 원전대국 일본의 후쿠시마핵재난에 전 세계가 충격과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는 하나의 방증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그가 던진 시의 조약돌은 핵재난 재발을 막기 위한 반핵탈원전 운동에의 참여를 촉구하는 구호(口呼)적 기능 또한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또다시 여름꽃()”이 피어서야

일본의 대표적인 원폭체험 작가인 하라 다미키(原民喜, 1905-1951)는 한반도에서의 원폭 사용이 거론되던 무렵인 1951년 3월 13일, 절망인지 규탄인지 이유를 특정할 수도 없이 철로에 몸을 뉘고 마흔여섯의 삶을 마감하였다. 원폭이 투하된 직후 부서지고 무너지고 불타고 녹아내린 그 참혹했던 히로시마와, 정교하고 치밀한 방법으로 실현된 신지옥에서 벌어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여름꽃」과 「폐허에서」의 표현)과 참담한 죽음을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문체와 제목으로 서사한 소설이 『여름꽃(夏の花)』이다. 『여름꽃』에 대한 감상을 쓴 평론가 리비 히데오(リービ英雄)는, 도저히 문학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한 상황’을 다큐나 회고록이 아닌 문학으로 승화시킨 믿기지 않는 놀라운 작품임을 확인하면서 한 마을의 하나의 비참한 과거를 쓴 선명하고 강렬한 묘사에서, 보편적인 미래상을 암시하고 있다고도 읽힌다라고 평했다.8) 상상을 초월한, 하지만 실제로 발생하고 만 원폭의 참상을 그린 문학이 암시하는 ‘미래상’……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도단의 궁상’을 헤집고 죽을힘을 다해 쓰는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기도와 염원이 아닐까.

하라 다미키의 『여름꽃』이 공식 발표된 지 정확히 70년이 흐른 2017년 5월, 일본에서는 가와즈 기요에(河津聖恵)9) 시인의 같은 제목의 시집이 출판되었다. 그는 후쿠시마핵재난 이후 새로운 ‘시의 힘’을 믿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여전히 어둠을 꽃잎처럼 떨구는 꽃의 비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써내린 시들을 󰡔여름꽃』이라는 시집에 담았다고 한다.

그의 여름꽃은 부디 하라 다미키의 여름꽃이 아니기를, ‘파괴와 파멸이 아닌 희망과 상생의 꽃들로 피어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맺는다.

 

저자 소개

김경인(dodokaibi@naver.com)은
전남대학교 인문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전남대 일본문화연구센터 연구원이자 일한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로 일본의 재난문학과 조선인 원폭피해 관련 원폭문학 연구를 진행해왔다. 주요 역서로는 이시무레 미치코의 『고해정토-나의 미나마타병』, 쿠로다 야스후미의 『돼지가 있는 교실』(이상, 달팽이출판), 우이 준의 『공해원론』(공역, 역락) 등 다수가 있으며, 저서로는『한국인 일본어 문학사전』(공저, 제이앤씨)과 『재난공동체의 사회적 연대와 실천』(공저, 역락) 등이 있다.

 


1) 미국은 1946년, 신탁통치 하의 비키니환초를 핵실험 장소로 선정하고 1958년 7월까지 총23회에 달하는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그런 와중인 1954년 3월 1일, 미국은 수폭실험을 하고 그로 인한 낙진으로 섬 원주민뿐 아니라 원양어업 중이던 일본의 어선 <제5후쿠류마루호>의 선원들이 피폭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는 원폭을 포함한 핵피해 보상과 원수폭실험 반대운동이 일기 시작하였다.

2) 小森陽一. 2014. 『死者の声、生者の言葉-文学で問う原発の日本』의 pp.134-139 참조. 저자 고모리 는 오이시의 이 인용글에 비추어 나쓰메 소세키의 강연록 「현대일본의 개화」의 내용을 함께 언급하며, 일본의 외발적(外発的) 개화의 폐해가 초래한 암담한 현실을 ‘언어도단의 궁상’과 문명이 초래한 타락을 결부하여 서술하고 있다.

3) 지면의 제약상 작품들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하의 졸고를 참고해주길 바란다. ①김경인. 2017. “일본의 공해사건을 서사한 문학 연구” 전남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②졸고(2017) “공해사건 문학의 시스템 및 가치 고찰-일본의 공해사건과 문학을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일본연구소 일본연구 제72호, 133-157, ③졸고(2017) “핵공해 사건을 서사한 문학 연구-도쿄전력후쿠시마원전사고를 중심으로” 한국일본어문학회 일본어문학 제75집, 252-272 등을 참고하길 바란다.

4) ‘다섯 번째 핵재난’이란, 일본에서 발생했던 네 번의 큰 핵재난 즉, 1945년 8월 6일과 9일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1954년 3월 1일 의 비키니 사건, 2011년 3월의 후쿠시마핵재난에 뒤이어 발생할 수 있는 핵재난을 상정해서 필자가 명명한 것이다.

5)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공화국 수도인 키예프시 남방 130km 지점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제4호 원자로에서 발생한 20세기 최악의 원전사고. 사고 당시 31명이 죽고 피폭(被曝) 등의 원인으로 1991년 4월까지 5년 동안에 7,000여명이 사망했고 70여만 명이 치료를 받았다

6) 2014년 3월 8일 일본의 BS아사히에서 방송된 「아서 비나드 일본인을 찾아서(アーサー・ビナード 日本人を探して)」라는 방송 내용을 참조하여 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ROfqAkzxOM

7) 와카마쓰 조타로 시인의 관련 시에 대한 내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졸고(2016) “시인의 ‘상상력’과 원자력村의 ‘상정 외’-와카마쓰 조타로(若松丈太郎)의 시를 중심으로”을 참고하길 바란다.

8) リービ英雄. 1993. “鑑賞-'原爆'が'文学'になったとき”, 原民喜. 『夏の花』(集英社) pp.170-176

9) 河津聖恵(1961- ) 시의 아쿠타가와상이라 불리는 ‘H씨상’ ‘현대시인상’ 등 여러 수상경력을 가진 일본의 대표적 시인이다.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를 동경한다는 시인은 2023년 7월 <세계예술인한반도평화선언> 행사에의 참가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염수 탱크가 일본 땅 절반을 가득 메우는 한이 있어도,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서는 절대 안된다”라고 역설했다. https://omn.kr/2506b

 


참고문헌

  • 김경인. “石牟礼道子 『苦海浄土-わが水俣病(고해정토-나의 미나마타병)』의 기록주의” 고려대학교일본연구센터 日本研究 제18집, pp.175-201
  • 金子章予. “井上光晴の原爆文学の現代的意義” 西武文理大学サービス経営学部研究紀要 第27号, pp.3-33
  • 小森陽一. 2014. 『死者の声、生者の言葉-文学で問う原発の日本』. 東京: 新日本出版社
  • リービ英雄. 1993. “鑑賞-'原爆'が'文学'になったとき”, 原民喜. 『夏の花』(集英社) pp.170-176
  • BS朝日. 2014. 「アーサー・ビナード 日本人を探して」
    https://www.youtube.com/watch?v=rROfqAkzxOM (검색일:2023.08.14.)
  • 오마이뉴스. 2023. 「일본 시인의 양심…“오염수 탱크가 일본땅 절반을 메우더라도”」
    https://omn.kr/2506b (검색일:2023.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