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에우의 마음(心)은 어디로 갔을까? – 베트남 고전 『쭈옌끼에우』 톺아보기

『쭈옌끼에우』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주인공인 ‘끼에우’가 세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고난과 시련이 베트남 민족의 상황과 동일시되면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끼에우를 모범으로 삼고 그의 삶을 통해 위안을 얻을 것이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에 걸맞은 시각으로 끼에우의 삶과 그의 ‘진정한 마음’을 다시 바라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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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한국교육과정평가원)

끼에우의 마음(), 행방이 묘연하다

‘끼에우’는 고전과 현대를 통틀어 베트남 문학을 대표하는 『쭈옌끼에우(Truyện Kiều, 끼에우전)』의 주인공이다. 한국의 『춘향전』이나 『심청전』 등에 비견될 수 있으나, 베트남 사회에서 그보다 훨씬 높은 위상을 지닌 『쭈옌끼에우』는 “나라의 혼이자 민족 문화의 정수(quốc hồn quốc túy)”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품은 원작이 따로 있는 ‘번역 문학’이다. 재자가인(才子佳人)1)을 내세운 중국의 통속 소설인 『김운교전(金雲翹傳)』을 6·8체 형식의 쯔놈(chữ Nôm)2)시 3254행으로 구성된 운문 소설로 다시 쓴 것이다. 『쭈옌끼에우』는 원작보다도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베트남 고전문학의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은 이후 중국에서 한시 및 한문 소설 형식으로 역(逆)번역 되면서 잊혔던 원작 소설 『김운교전』을 재소환하는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번역 문학이 운명적으로 원작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베트남의 『쭈옌끼에우』는 그야말로 타고난 운명을 거스르는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쭈옌끼에우』가 번역 문학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것이 아니라거나 순수하지 못하다고 낙인찍지 않았다. 이러한 문화적 포용력과 유연한 사고방식 덕분에 『쭈옌끼에우』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쭈옌끼에우』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고전문학이 될 수 있었을까? 작품의 번역자인 응우옌주(Nguyễn Du, 1766~1820)는 귀족 문벌 집안 출신으로, 후(後)레(Lê, 黎) 왕조의 충신이었으나 왕조가 몰락한 후 오랜 은둔 끝에 응우옌(Nguyễn, 阮) 왕조의 관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그는 사신으로 방문했던 중국에서 우연히 『김운교전』을 접하고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겪는 주인공 끼에우의 인생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껴 깊이 공감했다. 응우옌주는 당시 베트남에서 유행하던 6·8체 쯔놈 운문 소설로 이 작품을 번역했는데, 인물과 줄거리는 원형을 유지하면서 세속적이고 선정적인 묘사는 과감히 줄이고 유교와 불교 사상에 기반한 세부내용과 주제 의식을 추가했다. 이렇게 유능한 남자와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하는 흥미 위주의 중국 통속 소설 『김운교전』은 아름다운 시구와 탁월한 묘사 속에 고귀한 이상을 품은 베트남의 걸작(傑作)으로 재탄생했다. 번역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응우옌주의 『김운교전』 번역으로 태어난 『쭈옌끼에우』는 원작에 충실하지 못한 수준을 넘어 아예 원작을 개작했다거나, 어쩌면 그저 ‘오마주’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쭈옌끼에우』는 한자를 알아야 읽을 수 있는 쯔놈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지식인층 독자를 겨냥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시처럼 암송하여 말로 전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민층도 널리 접할 수가 있었다.

『쭈옌끼에우』에 담긴 고귀한 이상은 ‘마음(心)’이라는 한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3) 작품 마지막 부분의 “선(善)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고, 저 마음(心)이라는 것은 재주(才) 세 개가 있어야 비로소 그 크기가 같은 것을!(3251-3252행)”4)5)이라는 구절은 직접적으로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주인공 끼에우처럼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응우옌주가 끼에우에게 심어준 ‘순수한 마음’은 과연 주인공 스스로가 원했던 것일까? 끼에우가 느끼며 간직하고 싶었던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그 진짜 마음(心)의 행방을 추적해 보려고 한다.

 

가족의, 가족에 의한, 가족을 위한

봄바람에 파랗게 돋아난 풀을 밟으며 산책하던 아름다운 끼에우는 ‘낌쫑’이라는 재능 있는 사내와 우연히 마주친다. 선남선녀가 만나면 불꽃이 튀는 것이 인지상정이듯 두 사람은 첫눈에 반했고, 밤이슬을 맞으며 왕래하던 끝에 미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된다(밤이슬을 맞긴 했지만 끼에우의 ‘강력한 의지’로 둘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플라토닉 러브였다).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상류층이 아니라면, 베트남의 관습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밖으로 나다니며 젊은 남성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서, 18세기에도 여성들은 자유롭게 배우자를 택할 수 있었다(유인선, 2016: 219-221). 이때까지만 해도 끼에우의 마음(心) 또는 온전한 자기 의지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매우 분명하다.

그런데 낌쫑이 숙부의 장례를 치르러 멀리 간 사이에 사달이 났다. 끼에우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가족을 구해내려면 큰돈이 필요한데, 누구도 끼에우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끼에우는 돈을 받고 ‘마잠신’이라는 자의 첩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효(孝)를 따르자니 미래를 약속한 이와의 사랑이 발목을 잡았지만, 고민에 대한 끼에우의 대답은 자명한 것으로 그려진다.

사랑과 효도 중에 어느 것이 더 중할까?
바다를 걸고 산을 걸고 한 맹세는 내려두고서
자식의 도리로 낳아 주시고 키워 주신 은혜부터 보답해야겠지.(602-604행)

끼에우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효의 길을 택했지만, 사랑을 미련 없이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동생인 ‘번’에게 낌쫑과 결혼해서 자신의 인연을 대신 이어달라고 부탁한다. 끼에우는 연인을 스스로 선택한 자유로운 여성이었지만, 운명의 갈림길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는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동시에, ‘가족을 통해서’ 연인과의 약조를 지키고자 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과 의지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은 동생 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동생 번은 과연 끼에우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언니의 연인과 결혼한 번은 행복했을까 아니면 불행했을까? 『쭈옌끼에우』에서 번은 언니 끼에우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후덕한 인상에 언니에게 버금가는(달리 말하면 언니보다 못한) 미모를 지닌 것으로 서술될 뿐이다. 아름다운 여인은 팔자가 드세다고(미인박명) 한탄하며 대신 인연을 이어달라고 부탁하는 언니 앞에서 번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짐작하게 하는 시구는 하나도 없다. 게다가 번은 15년이 지나서야 돌아온 언니에게 아무런 질투심 없이 바로 남편을 양보한다.

1990년대생 젊은 작가 까오응우옛응우옌(Cao Nguyệt Nguyên)이 발표한 『자술(自述) 쭈옌끼에우(Truyện Kiều tự kể)』라는 작품에서는 『쭈옌끼에우』의 등장인물이 자신의 목소리로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끼에우가 번에게 낌쫑과 대신 결혼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번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언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번은 낌쫑이 그 결혼을 거부하기를 바랐고, 당연히 그렇게 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낌쫑은 순순히 결혼을 승낙했다. 언니를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동생과 결혼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를 찾지도 않았을까? 어째서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일편단심(chung tình)의 표본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16-17쪽)

이 젊은 작가는 한편 낌쫑의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풀어낸다. 깊이 사랑하던 연인이 떠났지만, 사내 된 자가 오랫동안 목표로 삼았던 과거 급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복스럽고 고상한 번의 미모는 끼에우를 제외하면 마을에서 으뜸이었고 온 가문을 일으킬 관상을 지녔다니 더욱더 놓칠 수 없었다. 결국, 낌쫑은 번과 결혼해 정(情)보다는 의(義)로 부부 사이를 이어가다가, 끼에우를 다시 만나게 되자 숨겨 두었던 사랑의 마음을 표한 것이었다(33-38쪽). 이 새로운 이야기에 따르면, 『쭈옌끼에우』는 가장의 무능력과 부재가 끼에우나 번과 같은 여성 가족 구성원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리고 가족과 가문을 위해 낌쫑과 같은 남성이 마땅히 짊어져야 하는 의무는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유교주의적 가부장제와 명분의식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끼에우, 번, 낌쫑, 이 세 젊은이의 진짜 마음(心)과 의지는 가족과 가문이라는 미명에 따라 황량하게 표류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1990년대생 젊은 작가 까오응우옛응우옌(Cao Nguyệt Nguyên)이 글을 쓰고 12인의 화가가 각 등장인물별로 삽화를 그린 이야기책 『자술(自述) 쭈옌끼에우(Truyện Kiều tự kể)』 (낌동출판사)

 

얄궂은 운명, 파란만장한 인생

마잠신과 첫날밤을 지낸 후, 끼에우는 자신이 첩이 아니라 청루(기생집)의 기녀로 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운명을 비관한 끼에우는 기생 어미인 ‘뚜바’ 앞에서 칼로 자결을 시도한다. “옥을 부수고 꽃을 짓이기는 모습에 두려워하며(983행)”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자결을 시도하는 끼에우의 모습은 닳고 닳은 기생 어미의 눈에도 용감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첩으로는 살 수 있으나 만인의 여자인 기생으로 살 수는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자결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끼에우는 심한 매질을 당한 끝에 결국 기생의 삶을 받아들인다. “이제 순결에 관한 생각일랑 걷어내 버려야지!(1148행)”라고 결심하는 순간, 대범하고 자주적이었던 끼에우는 ‘운명 순응론자’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끼에우는 기생 생활에 익숙해졌지만6),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몸은 술과 음악과 남자에 취해 있으면서도, 끼에우의 마음은 “늘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님을 걱정하며, 낌쫑과의 약속을 되새겼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끼에우가 ‘정절을 지켰다’라고 말한다. ‘정절’이 한 명의 배우자를 제외하고는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기생이 정절을 지켰다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닌가? 실제로 20세기 초반의 학자 응오득께(Ngô Đức Kế, 1878-1929)는 끼에우가 ‘매춘부’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끼에우가 지켰다는 ‘정절’은 도대체 무엇인가? 끼에우가 “순결(trinh bạch)에 관한 생각일랑 걷어내 버리겠다”라고 결심했을 때, 순결의 의미는 ‘티끌 하나 없는 순백’, 즉 ‘육체적 순결’이며, 이는 기생이 되는 순간 끼에우가 상실한 것이다. 끼에우가 지켰다는 ‘정절’은 thủy chung(始終, 또는 chung thủy), 즉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는 마음’이었다. 끼에우는 비록 ‘육체적 정절’은 지키지 못했지만 ‘정신적 정절’ 내지 ‘마음의 정절’은 끝까지 간직했다는 것이다. 정절을 육체적 의미로 이해하는 이들에게는 사뭇 낯선 정절관이다. (어쩌면 그저 ‘정절’이라는 번역어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기생들 가운데서도 “꽃 중의 꽃”으로 이름을 날리던 끼에우의 소문을 듣고 청루에 찾아온 ‘툭신(툭끼떰)’이라는 자는 끼에우에게 첫눈에 반해 첩으로 들인다. 하지만 이를 질투한 본처 ‘호안트’가 끼에우를 납치해 하녀로 삼으면서 툭신과 끼에우의 인연은 끝나게 된다. 밤낮으로 주인집 시중을 들던 끼에우는 툭신과 호안트 집안이 소유한 암자에서 출가(出家)하여 불경을 필사하는 비구니가 된다. 그러나 호안트에게 다시 화를 당할까 두려웠던 끼에우는 불전에 있던 금종과 은경(銀磬)을 훔쳐 달아난다. 초은암이라는 절에 몸을 의탁하던 끼에우는 도둑질이 탄로 날 것에 대비해 ‘박바’라는 이의 집으로 피신하는데, 그는 하필이면 기생 어미 뚜바의 친구였으며 끼에우를 다시 청루에 팔아넘긴다. 끼에우는 강호를 떠돌던 영웅 ‘뜨하이’와 사랑에 빠져 함께 그곳을 벗어나지만, 뜨하이가 갑자기 일 년 후 돌아와서 결혼하자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일 년의 시간이 흐르고 뜨하이는 군사를 몰고 돌아와 끼에우의 원수와 은혜를 갚아주고 조정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 이때 조정에서는 끼에우를 속여 뜨하이의 투항을 유도한 다음 그를 살해하고, 뜻하지 않게 반란 제압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끼에우를 지방관의 첩으로 보내려 한다. 이에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끼에우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을 시도한다.

끼에우와 낌쫑의 첫 만남(좌)과 호안트의 명령으로 납치되는 끼에우(우)
출처: British Library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끼에우가 지켜냈던 ‘마음’이다. 툭신의 첩이 되어 “지아비를 온전히 따르며(從夫)(1477행)” 살아볼까 했더니 그 집 하녀가 되고, 낙망하여 속세를 떠났는데 다시 기생으로 팔려 가고, 다시 영웅호걸을 만나 “지아비를 따르는 여자의 본분(2217행)”을 완성하려 했으나 남편이 죽고, 또 다른 이의 첩으로 보내질 상황에서 결국 자결을 실행하고 마는 약 15년의 인생 역정 속에서도, 끼에우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님을 걱정하는 마음을 늘 간직한다. 하지만 툭신이나 뜨하이와 지낼 때만큼은 낌쫑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현재의 지아비인 툭신과 뜨하이만을 따르고자 한다. 끼에우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종부(從夫)’의 도리였을 뿐, 꼭 그 대상이 ‘일부(一夫)’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소 의문이 드는 점은 작품이 뜨하이의 죽음 앞에서 끼에우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끼에우가 뜨하이를 설득해 반란을 멈추고 조정에 투항하도록 한 것은 “위로는 나라를 위하고 아래로는 집안을 위해서, 첫째로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둘째로는 (나라(왕)에) 충성을 다하자(2483-2484행)”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정의 군대는 결국 끼에우와의 약속을 어기고 투항한 뜨하이를 무참히 살해했다. 그런데 작품에서는 이를 두고 끼에우가 ‘충(忠)’의 도리를 다한 것이라고 칭송한다. 그리고 “한 사람을 해쳐 만 명을 구한(2685행)” 공을 인정받아 전생의 업을 모두 갚고 고난의 시간도 끝마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끼에우 자신의 진정한 마음은 세상의 평가와는 달랐다. 끼에우는 자신이 어리석어 남편을 죽게 했다며 괴로워한다. 남편에게 투항을 설득할 때 끼에우에게 중요했던 것은 나라에 대한 충심이나 여러 사람을 구하겠다는 인(仁)의 덕이 아니라 ‘가족과의 현실적인 행복’이었던 것이다. 끼에우의 모습을 보며 제 목숨 같은 가족을 희생해서 나라를 구한 ‘베트남 어머니 영웅(Bà mẹ Việt Nam anh hùng)7)’들의 눈물을 떠올린다. ‘한 사람을 해쳐 만 명을 구하면’ 무엇할까? 끼에우에겐, 베트남 어머니들에겐 그 한 사람이 만 명보다 소중했던 것을! ‘희생’과 ‘영웅’이라는 두 낱말은 늘 함께 다니지만, 그 사이에 감춰진 ‘상실의 아픔’ 때문에 둘은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 가족을 잃은 여자를, 어머니를 ‘영웅’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건, 끼에우의 희생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한 ‘영웅의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시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끼에우는 부모도 있고 남편도 있는 온전한 집안에서 삼종지도의 유교적 덕목을 따르며  평범한 아녀자로 살아가기를 꿈꾸었으나 세상이 그녀의 마음(心)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환향, 다시 옛 연인에게로

강물에 몸을 던진 끼에우는 한 스님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암자에서 기거하다가 소식을 듣고 찾아온 가족들과 재회한다. 드디어 옛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15년 만의 귀향이었다. 가족들은 간간히 전해 들은 소식으로 끼에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두 알고 있었는데도 그를 ‘꽃가마’에 태워 데려가고 싶어 한다. 끼에우가 자신의 몸을 파는 희생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족이 다시 모이고 가문이 다시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끼에우는 집을 나가 자의로든 타의에 의해서든 네 번의 결혼을 하고 두 번이나 기생으로 살았지만 결코 부정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았다.8)

그러나 정작 끼에우는 스스로 자신이 더러워졌다고 생각한다. 동생 번은 돌아온 언니에게 이제라도 낌쫑과 결혼하라고 권유하고 낌쫑도 끼에우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끼에우는 “더러운 때 묻혀 와서 어찌 감히 양처(良妻)가 될 수 있겠는가!(1304행)”라며 극구 반대한다. 끼에우에게 “육체적 순결은 금 천 냥의 값어치를 가진 것(1095행)”이어서 “옛 연인과 화촉을 밝히는 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1096행)”이었다. 비구니가 되었을 때 ‘짝뚜옌(Trạc Tuyền, 濯泉, ‘몸을 씻는 샘’이라는 의미)’이라는 법명을 지은 것도 그런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결혼을 거부하는 끼에우에게 낌쫑이 말한다.

예부터 여자의 도리 중에
그 (육체적) 순결이라는 것 역시 여러 가지 길이 있으니.
평범할 때도 있지만 달라질 때도 있는 것을…
상황에 맞춰 대처할 수도 있는데 어찌 통례만을 따라야 한단 말이오?
그대처럼 효(孝)를 다하기 위해 (육체적) 순결을 바친 것이라면
어떤 티끌 먼지가 그 몸을 더럽힐 수 있었겠소?(3115-3120행)

그들에게는 끼에우가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며 몸을 더럽힌 것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가족을 향한 변함없는 마음을 간직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부모와 가족이 모두 낌쫑의 의견에 동의하자, 끼에우는 결국 마지못해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자신은 첫사랑인 ‘낌쫑의 여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여전히 그를 멀리하려 한다. 낌쫑은 그동안 끼에우와의 약속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며, “세상의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맑은 거울이여, 단언컨대 존경의 마음을 만 배는 더 보태리라(3173-3174행)”라는 말로 끼에우를 칭송한다. 마침내 끼에우는 세상 속에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순수한 마음’을 지킨 것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끼에우의 진정한 마음(心)은 어디에 있는 걸까? 장녀로서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때도, 세상을 떠돌면서 기생이나 첩이나 본처로 살아갈 때도, 심지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옛 연인의 아내가 되었을 때도, 끼에우는 늘 ‘누군가의 끼에우’였다. 『쭈옌끼에우』는 주인공 끼에우의 모습을 오로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한다. 작품에서 끼에우는 그렇게 중요하다는 ‘순수한 마음’을 지켜냈지만, 정작 여성이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마음은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할 단서도 없이, 자기희생을 통해 봉건적 가치를 지켜낸 인물로 그려질 뿐이다.

 

끼에우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다
저명한 한문학자인 응우옌타익쟝(Nguyễn Thạch Giang) 교수가 주해를 달고 15인의 유명 화가가 삽화가로 참여한 2017년판 『쭈옌끼에우』 (동아출판사)

한국 사람들이 『쭈옌끼에우』를 읽는다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 점들이 있을 것이다. 마음 따로, 몸(현실) 따로인 작품의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왜 이 작품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고 떠받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현실의 고통은 업보, 즉 팔자 탓이니(불교적 관점) 누구를 원망하지도 말고 그저 마음의 순수함(유교적 관점)을 지키며 살면 된다’라는 이 작품의 교훈이 베트남의 역사적 질곡과 맞물리면서 대중적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악가이자 예술가인 찐꽁선(Trịnh Công Sơn, 1939~2001)은 그의 노래 「엄마의 유산(Gia tài của mẹ)」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천 년 동안 중국의 노예, 백 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 이십 년 동안 끊임없는 내전, 너에게 물려주는 엄마의 유산은, 이 엄마의 유산은, 슬픈 베트남이란다!” 슬픈 베트남에서 사는 베트남 사람들의 삶은 슬프다. 아니, 슬펐다.

민망(Minh Mạng), 뜨득(Tự Đức) 등 봉건 시대의 왕들, 응우옌반탕(Nguyễn Văn Thắng), 응우옌꽁쯔(Nguyễn Công Trứ)와 같은 당시의 권력자들, 그리고 민족의 지도자 호찌민 주석까지 『쭈옌끼에우』를 찬양하며 읽기를 권한 이유는 끼에우의 생애가 베트남 민중의 굴곡진 삶과 매우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배의 경험과 봉건제에 의한 착취, 게다가 오랜 전쟁까지, 언제쯤 끝이 나려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민중, 특히 여성들이 살아가는 힘은 마음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 즉 꺾이지 않는 마음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타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삶 속에서 고결한 육체를 지킨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의미도 없었다. 그들이 지킬 수 있는 건 오로지 ‘마음’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몸이야 어찌 되었든 순수한 마음을 지킨 끼에우는 훌륭한 인물로 추앙된다.

최근에 「누가 백만장자인가(Ai Là Triệu Phú, VTV3)」라는 베트남의 유명 퀴즈 프로그램에 “끼에우의 성씨는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다. 다들 중고등학교 때 『쭈옌끼에우』를 배우는데도 출연자도 방청객도 쉽게 정답을 맞히지 못해서 화제가 되었다(Báo mới 2022/11/09). 이런 문제를 퀴즈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한가에 관한 논란과 관계없이, 이제는 『쭈옌끼에우』를 술술 외우고 다니던 예전의 그 시대가 아니다. 작품 속의 아름다운 언어와 빼어난 문학적 묘사에 감탄은 할 수 있을지언정 그 내용에 ‘공감’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세미나에서 교육양성부 관계자는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들 중 ‘남존여비’ 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들을 배제하거나 분량을 축소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는데, 여기에 『쭈옌끼에우』도 포함되어 있었다(Báo Tiền Phong 2017/09/01). 실제로도 교과서를 비롯한 학습용 교재에서 『쭈옌끼에우』의 비중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Trần Đình Sử, 2018 참고). 그러나 2018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 『쭈옌끼에우』는 교과서에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여섯 편의 문학 작품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Báo điện tử VTV 2018/01/26) 여전히 모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2022년 9월에 공연된 까이르엉 「끼에우를 기다리다」. 『쭈옌끼에우』를 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실험적인 공연이다.
출처: https://cand.com.vn/doi-song-van-hoa/doc-truyen-kieu-bang-cai-luong-duong-dai-i668217/

그렇다면 21세기의 독자들이 『쭈옌끼에우』와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이 필요할까? 끼에우가 지켰다는 ‘순수한 마음’은 이제 베트남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이상이 아니다. 끼에우의 삶과 생각 속에서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위안과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의 우리는 실존적인 존재로서 끼에우를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변하지 않는 순수성을 칭송하는 대신에,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 속에서 변하고 뒤섞이고 변종하는 우리의 삶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태도로 끼에우의 마음을 마주한다면 어떨까? 끼에우의 진정한 마음(心)을 찾으려 한다면 『쭈옌끼에우』는 우리에게 인생의 답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 소개

김주영(congaihanviet@gmail.com)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이다. 한국외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국립 호찌민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문학과에서 문학 번역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한-베 번역 교류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문학과 미디어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쩌우 까우 이야기』, 『눈을 감고 창을 열면』(2016 세종도서), 『그럴 수도 아닐 수도』(공역), 『왕은 없다』 등이 있고,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출신 여성 작가의 삶과 사랑을 그린 소설 『자그마한 가족』을 번역 중이다.

 


1) 재주 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여인.

2) 놈 글자. 한자를 변형하여 만든 베트남의 옛 문자.

3) 『쭈옌끼에우』 전체에서 (한자어 ‘tâm(心)’을 제외하고) ‘마음’을 뜻하는 베트남어 ‘lòng’은 모두 162차례나 등장한다. 이를 통해 응우옌주가 작품 속에서 ‘마음’을 얼마만큼 강조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Lê Nguyên Cẩn, 2021: 335).

4) 마음(心)은 재주(才)보다 3배 더 크다(중요하다)는 의미.

5) 본고에 인용된 『쭈옌끼에우』의 모든 구절은 필자가 직접 베트남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한 것임을 밝힌다.

6) 『쭈옌끼에우』에서는 기생 생활에 익숙해진 끼에우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바람과 이슬에 얼굴은 어찌 이리도 단련이 되었는지? 몸은 또 어찌 이다지도 나비가 외면하고 벌이 무시하는 신세가 되었는지?(1237-1238행)” 여기에서 ‘바람과 이슬’은 모진 시련과 고난을 말하고, ‘나비와 벌’은 꽃에 대비되는 말로, 남자들을 의미한다.

7) 베트남 어머니 영웅(Bà mẹ Việt Nam anh hùng) : 민족의 독립과 국가 수호에 공을 세운 베트남 여성들에게 부여하는 명칭. 주로 전쟁에 참여하여 목숨을 잃은 자식을 둔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다. 1994년에 제정되어 2020년 7월까지 139,275명의 여성이 이 명칭을 부여받았다. 최근에는 해당 명칭을 부여받는 사례가 추가되지 않고 있다.

8) 병자호란 때 오랑캐에게 끌려갔던 조선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고생했다고 위로를 받기는커녕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오랑캐에게 몸을 더럽히고 온 ‘환향녀’라며 손가락질을 당하고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