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연(서울대학교)
아시아 대중음악의 차세대 핵심 주자, 인도네시아
아시아의 대중음악은 국제적인 음악 페스티벌의 활성화와 스트리밍 플랫폼의 확산에 힘입어 전례 없이 활발한 교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2010년대 초까지도 아시아 음악 교류의 핵심 주체는 일본과 한국이었으나,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의 대중음악이 점차 국제적인 관심을 받으며 중요한 행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제 영국의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나 스페인의 프리마베라 사운드(Primavera Sound) 또는 일본의 후지록(Fuji Rock) 페스티벌 등 세계적인 음악 행사를 통해서도 동남아 음악가의 공연을 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음악은 이미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음악팀의 공연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의 대중음악과 관련된 정보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접근 가능한 한글 자료는 주로 전통음악이나 지역색이 뚜렷한 음악을 다루며, 서양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은 팝(pop) 음악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이십여 년은 된 것이다. 동시대에 인기를 누리는 음악에 대한 정보는 개인 블로그에서 드물게 접할 수 있을 뿐이다. 동남아시아 음악시장에 주목하는 문헌과 기사는 대개 인도네시아를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한국 대중음악의 ‘수용자’와 ‘소비자’로 규정한다. 반면,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을 만들어내는 ‘생산자’와 그들이 축적해 온 국내외의 문화 파급력은 대체로 간과된다. 최근 아시아 대중음악의 지형에 일어나는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고 다양한 동시대 음악가와 국경을 넘어 소통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공연 현장에서 먼저 실천되고 있다.
아시아 대중음악에 대한 지식이 변화와 실천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에서 먼저 제기되었다. 이 책의 서문은 아시아 음악에 대한 국내의 전반적 무관심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후반부터 음악가들이 아시아 연주자들과 자발적인 교류를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공연을 통한 교류의 확산과 더불어 국제적인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음악을 사운드와 이미지로 소비하는 것은 이전보다 수월”해졌다. 그러나 저자들은 피상적인 소비를 넘어 음악에 담긴 “서사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팝 음악의 역사, 음악산업의 현황, 음악문화적 전통 등”을 파악하려는 노력과 수고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신현준·이기웅, 2017: 25, 35).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이 글에서는 인도네시아 음악을 듣고 여기에 담긴 서사와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실천이 무엇인지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에 주목하는 사람들
디지털 음악 마케팅 기업 빌리브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 음악시장의 약 70%를 해외 음악이 자치했으며 국내 음악의 비중은 30%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점차 인도네시아 음악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2023년에는 국내 음악의 비중이 약 40%까지 증가했다(Believe, 2023). 인도네시아의 인구가 2억 8천만 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국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을 즐기고 소비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은 스포티파이, 유튜브, 애플뮤직이다.1) 스포티파이에서 실시간 재생 횟수에 따라 생성되는 <Indonesia Top 50>는 인도네시아 국내 음악의 확고한 입지를 증명한다. 목록에 있는 노래 50곡 중 무려 41곡이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 가사의 국내 음악이다 (2024년 9월 8일 기준).2)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버나디야(Bernadya), 마할리니(Mahalini), 쥬시루시(Juicy Luicy)의 경우 월별 청취자 숫자가 천만을 넘어선다.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의 영향력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 언어를 공유하는 주변 국가까지 미친다. 말레이시아의 공연장 Zepp Kuala Lumpur 한 곳만 살펴봐도, 2024년에 Anggi Marito, Pamungkas, Nadhif Basalamah, Feby Putri, Kunto Aji, Cokelat, Efek Rumah Kaca, Juicy Luicy, for Revenge 등 여러 인도네시아 음악가의 공연이 이루어졌거나 예정되어 있다. Maliq & D’Essentials, Bernadya, Sal Priadi 등 인도네시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가수들이 최근 발표한 일정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연이 포함되었다. 올해 11월에 쿠알라룸푸르에서 처음 개최되는 Nyala Fest의 경우 1차와 2차로 발표된 출연진의 대부분이 인도네시아 아티스트이다. 스포티파이의 <Malaysia Top 50>에는 영미권 음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운데, 인도네시아 노래가 다섯 곡이나 순위에 포함되었다.3) 인도네시아 록(rock) 음악은 특히 말레이시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4) 싱가포르에서도 2023년에는 Efek Rumah Kaca와 Ungu, 2024년에는 Afgan과 eleventwelfth 등의 인도네시아 음악팀이 무대에 올랐으며, 9월에는 Voice of Baceprot(이하 V.O.B.)의 공연이 열렸다.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의 존재감은 음반 시장에서도 드러난다. 일본과 타이완에 기반을 둔 Big Romantic Records는 Sunwich, Grrrl Gang, White Shoes & Couples Company, Stars and Rabbit 등 인도네시아 밴드의 음반을 해외 시장에 발매하고 해외 공연도 진행한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인디 음반 레이블 Demajors의 경우 해외 배송지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 국가뿐만 아니라 일본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에는 인도네시아 음반을 취급하는 레코드점이 있으며, 이미 여러 인도네시아 음악팀이 일본 투어를 진행했다. 한국에는 아직 인도네시아 음악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는 이미 관심층이 형성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명한 국제 음악 쇼케이스와 페스티벌에 인도네시아 팀이 참여하는 사례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에서 열리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는 2009년 록밴드 The S.I.G.I.T.의 공연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여러 아티스트가 무대를 선보였으며, 호주의 SXSW 시드니에서는 해마다 다수의 인도네시아 팀이 쇼케이스를 진행한다. 2024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후지록 페스티벌에 밴드 알리(Ali)가,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는 메탈 밴드 보이스오브바쩨쁘롯(V.O.B.)이 인도네시아 팀으로는 처음으로 무대에 서면서 국내외 언론과 음악애호가의 큰 관심을 끌었다. 202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리마베라 사운드의 음악산업 컨퍼런스에서는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동남아에서 가장 활력있는 음악시장으로 꼽았다. 여기에 참석한 페스티벌 관계자들은 동남아 음악시장과의 활발한 교류가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주, 유럽, 호주 등의 음악가들에게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5)
최근 아시아 대중음악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증가와 더불어 아시아 밴드들의 자발적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 관계자들도 동남아시아의 음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홍대 지역을 중심으로 2019년 <아시안 팝 스테이지>의 데드스쿼드(Deadsquad) 공연, 2023년에 헬리콥터레코즈가 기획한 화이트슈즈앤더커플스컴퍼니(White Shoes & The Couples Company) 공연 등을 통해 인도네시아 음악을 만날 수 있었다. 2024년 6월에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개최된 <아시안 팝 페스티벌>에서는 이샤나 사라스바티(Isyana Sarasvati)가, 8월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해브어나이스트립(Have a Nice Trip) 페스티벌>에서는 걸갱(Grrrl Gang)이 한국 관객의 큰 호응을 얻으며 공연을 마쳤다. 또한 10월에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과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열리는 <잔다리 페스티벌>에 매드매드맨(Mad Madmen),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열리는 <인디뮤직 페스티벌>에는 리틀핑거스(Littlefingers)와 보이스오브바쩨쁘롯(V.O.B.)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의 역사성과 역동성
그러나 해외 음악계에 소개되기 훨씬 전부터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음악적 토양에서는 다양한 음악이 만들어지고 연주되며 향유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수 세기에 걸쳐 아랍,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를 이어온 국제 해상무역의 주요 경로로서, 외부에서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유입되어 뒤섞이며 토착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말루꾸(Maluku) 지역에서 생산된 향신료(spices)는 원래 동남아 상인과 무슬림 상인의 손을 거쳐 국제적으로 유통되었는데, 16세기에는 향신료 무역에서 생겨나는 엄청난 부를 탐낸 포르투갈 상인들이 이곳을 점령했다. 이때 전해진 브라기냐(braguinha) 기타 등의 악기는 지역의 토착 음악과 결합하여 점차 끄론쫑(keroncong)이라는 독특한 음악 장르로 발전했다. 한편, 17세기에 동인도회사(V.O.C.)를 앞세워 향료무역을 노리고 들어온 네덜란드는 1949년까지(일본 점령기 제외)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다. 아직 식민지 시기였던 1920년대에는 미국에서 유입된 재즈가 유럽인과 유라시안(Eurasian)을 포함한 상류층 사이에 퍼져나갔다.6) 비슷한 시기에 현재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포함하는 누산따라(Nusantara) 지역에서는 방사완(bangsawan)이라 불리는 음악극단들의 순회 연주를 통해 전통음악과 서양식 악기편성을 결합한 음악이 인기를 얻으면서 라구믈라유(Lagu Melayu, 말레이 노래)가 공통의 음악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Tan, 2021).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1949년 이후 대중음악의 변모 과정은 격변하는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로큰롤을 받아들여 연주하는 밴드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네덜란드를 상대로 반식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문화정책에서도 서구의 영향을 배격하는 민족주의 노선이 강조되었다. 당시 로큰롤 밴드로 인기를 누리던 틸만 형제(The Tielman Brothers) 등 유럽계 혼혈인 음악가들은 1957년에 약 30만 명의 유라시안과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음악 활동을 펼쳤다. 반면 인도네시아에서 활동을 이어가던 음악가들은 서양문화의 추종을 비난하며 전통문화의 재발견을 강조한 당시 수까르노(Sukarno) 정권의 정책에 따라야만 했다. 1960년대 초에 꾸스 버르사우다라(Koes Bersaudara, 꾸스 형제)가 비틀즈의 곡을 연주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건은 정권이 어떻게 음악을 통제했는지 잘 보여준다. 하지만 정부가 서구 대중음악의 영향을 배격했다고 해서 국내 음악가들이 활동을 멈추거나 대중음악 자체가 퇴보한 것은 아니다. 음악가들은 서구음악과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의 요소를 접목하여 독특한 혼종 양식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정부의 검열을 우회하며 활동을 이어갔다(루디 수칸다르, 헤르신타, 2017: 367-9).
1965년에서 1967년의 정치적 격동기 이후 들어선 친서방 성향의 수하르또(Suharto) 정부가 서양 문화에 대한 금지를 해제하면서, 영미권 록밴드의 음악은 인도네시아의 대중음악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 록밴드의 음악을 모아서 2011년에 발매한 음반 <Those Shocking Shaking Days (Indonesian Hard, Psychedelic, Progressive Rock and Funk: 1970 –1978)>를 들어보면 당시 밴드들이 서구의 록음악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또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영미팝 계열의 음악과 1950~1960년대 말레이 음악에 록 스타일을 가미한 당둣(dangdut)도 유행했다. 음악 스타일과 형식에 있어서는 서구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던 반면, 노래에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았던 끌롬뽁 깜풍안(Kelompok Kampungan) 등의 밴드는 정부의 지속적인 탄압에 시달리기도 했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연주자들은 지역적 토양에서 형성된 음악과 서구에서 유입된 다양한 장르를 자신들의 활동에 녹여내면서 인도네시아 특유의 대중음악 지형을 형성했다. 기존 서구 음악 형식에 지역의 독특한 선율과 악기편성 또는 인도네시아의 사회 상황에 관한 가사를 결합하는 등의 시도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강해진 서구 음악의 영향력과 더불어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이 다양한 갈래로 발전하는 과정은 “팝 음악 발전의 동학”이 “서양음악의 유입이라는 외적 영향뿐 아니라, 개별 아티스트가 인도네시아 전통음악과 국내 정치 상황에 관계 맺는 방식에 따른 내적 영향에서도 비롯”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루디 수칸다르, 헤르신타, 2017: 363).
인도네시아의 인디(indie)음악과 동시대성
1990년대 중반 정부의 미디어 규제 완화와 함께 MTV 인도네시아와 민간 방송사가 등장하자 대중음악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국내 음악의 인기가 급격히 상승하며 스타 음악가와 국내 음악 전문 음반 레이블이 등장했다(Baulch, 2020). 처음에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로 통했던 인도네시아 인디(indie)음악도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영 방송이나 대형 레이블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업하는 인디 음악가들은 1998년 군사독재가 끝나고 검열이 축소되면서 개성과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었다. 이때 등장한 인디밴드는 Pure Saturday(1994년 결성), Rumahsakit(1994) 그리고 한국에서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어 인기를 얻고 국내 페스티벌 무대에도 섰던 Mocca(1999) 등이 있다.
초기의 인디음악에서는 1990년대 영국에서 인기있던 브릿팝(Britpop)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새롭게 유입된 음악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인도네시아의 음악적 정서나 사회적 경험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변모하였다. 2000년대 초에 결성해 지금까지 활발하게 공연하는 인디밴드는 The S.I.G.I.T.(2001년 결성), Efek Rumah Kaca(2001), The Adams(2001), White Shoes & The Couples Company(2002), Sore(2002), Float(2004) 등이 있다. 이들은 20년이 넘게 활동을 이어가면서 대중음악계에서 각자 고유하고도 탄탄한 영향력을 구축했다. 한편 2000년대 중반부터 형성되어 2010년대 이후 급속하게 팽창한 국내 페스티벌 시장에서도 인디음악이 인기를 누리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2009년에 시작된 Synchronize Fest를 비롯하여 지역과 장르에 따라 거의 일년내내 끊임없이 이어지는 페스티벌은 다양한 인디 음악가가 수많은 청중을 한 곳에서 만나면서 대중적 기반을 확인하고 확장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되는 국제 음악 페스티벌은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인디음악과 이를 소비하는 청중의 해외음악 취향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카르타와 발리 등지에서는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자바재즈(Jakarta International Java Jazz) 페스티벌>(2005년 시작)과 <해머소닉(Hammersonic) 페스티벌>(2012)을 비롯하여, <위더페스트(We The Fest)>(2014), <쁘람바난재즈(Prambanan Jazz)>(2014), <라라라(Lalala)>(2016), <조이랜드(Joyland)>(2019)와 같은 국제 음악 페스티벌이 해마다 열린다. 페스티벌의 인도네시아 출연진은 시각적으로 화려한 홍보에 의존하는 팀보다는 수준 높은 라이브 실력을 갖춘 인디 음악가로 구성된다. 이런 대규모 음악 행사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외 아티스트도 많이 참가하는데, 그중에는 한국보다 인도네시아를 먼저 찾는 이들도 종종 있다. 이는 한국이 국제 음악계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며 인도네시아는 주변부에 머무른다는 국내의 대중적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이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는 데는 페스티벌과 더불어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국제 음악 페스티벌은 국내외 출연팀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에 공유함으로써 관객들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한다. 한편 각종 음악 플랫폼의 지역 담당자들은 국가 및 장르별 플레이리스트를 제시하여 사용자가 자국의 다양한 음악에 접근하도록 돕는다. 스포티파이 인도네시아의 경우 <인디네시아(IndieNesia)>라는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국내외 사용자에게 최신 인디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이제 인도네시아 음악은 인도네시아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음악 페스티벌에 가서 해외 유명 팝스타와 인도네시아 아티스트의 공연을 동시에 즐길 수도 있고, 인도네시아 음악을 스트리밍 앱에서 쉽게 찾아 들을 수도 있고, 한국에 찾아오는 인도네시아 음악가의 공연을 직접 관람할 수도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인도네시아의 동시대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새로움을 넘어서는 이해와 공감
해외에서는 이미 문화연구와 인류학 분야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에 관한 연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학술 연구의 경우 성과물의 축적이 매우 더딘 데다가 특정 사례에 집중하는 경우 음악계의 전반적인 지형을 조망하기 어렵다. 게다가 학술적 분석 개념의 적용에 치중하느라 정작 음악 자체나,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공통된 음악 취향이나 음악 행사를 구심점으로 형성되는 공동체는 관심의 영역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때로는 서구 학자의 시각에서 인도네시아 음악의 고유성과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전통적인 것’과 ‘비서구적인 것’으로 편협하게 설정하거나, 서구 음악의 영향을 받은 창작자의 음악적 시도를 일방적으로 깎아내리는 주장도 등장한다.7)
다행스럽게도 기존 논의의 한계와 선입견에 좌우되지 않고 직접 음악을 접할 기회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음악을 듣고 보는 행위만으로는 여전히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사람들이 누구이고, 가사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자국의 청중에게 그 음악이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면, 새로운 경험은 이해와 공감의 수준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피상적 감상에 머무르는 경우, 제한된 배경지식이나 통념에 의존하여 누구누구의 음악과 비슷하다고 설명하거나, 장르와 스타일 또는 가창력과 연주 실력 등 외적인 요소로만 음악을 평가하거나, 심지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추측성 서사를 만들어내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낮춰보는 시각이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에게는 새롭고 낯선 음악이지만, 그것이 만들어지고 연주되는 배경에는 음악가와 교류하는 공동체 그리고 그들에게 영향을 준 음악적 전통이 있다. 그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새롭고 낯선 음악은 피상적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특별하고 고유한 의미와 감성을 전달하는 매개가 된다.
예를 들어, 밴드 알리(Ali)는 올해 인도네시아 음악팀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의 후지록 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했다. 2021년에 첫 싱글을 발표한 것과 거의 동시에 국내외 페스티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이 밴드는 훵크(funk)와 디스코를 혼합한 스타일에 중동(The Middle East) 음악의 색채를 더한 연주를 보여주는데, 종종 국제적 인지도를 먼저 확보한 미국 출신 밴드 크루앙빈(Khruangbin)과 비슷하다는 반응을 얻는다. 이러한 비유는 인도네시아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새로운 음악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해외 청중의 눈과 귀가 새로 ‘발견한’ 음악은 미국과 유럽 특정 밴드의 스타일보다는 인도네시아에 역사적으로 형성된 음악적 토양과 밀접하다. 밴드 구성원들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리의 음악에 영향을 준 인도네시아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밴드 알리(Ali)의 2024 일본 후지록 페스티벌 공연 스케치.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음악에 집중해서 들어보려면 본문 하단에 첨부된 플레이리스트 링크 참조.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인구의 다수를 구성하는 나라이며, 여러 세기에 걸친 국제 해상무역의 중요 거점으로서 오랫동안 이슬람권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밴드 알리는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음악적 흐름을 이집트, 튀르키예, 리비아, 예멘의 대중음악에서 발견하는 동시에, 중동 스타일 음계와 인도네시아식 음계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파악하고 활용한다. 앨범 제목(Malaka)을 통해서는 이러한 문화 연계의 지리적 통로인 말라카해협(The Malacca Strait)에 주목한다. 또한, 알리는 과거의 음악 전통과 현대적 음악의 접점을 찾기 위해 1970년대 인도네시아 록 음악을 참고한다. 그러나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난 해외의 청중들은 알리의 음악에 담긴 독특한 동남아시아적 색채를 바로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Agato, 2023).
밴드 알리의 음악 활동은 또한 동시대 인도네시아 대중음악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 명의 구성원은 각각 The S.I.G.I.T., Kelompok Penerbang Roket, Mooner 등 개러지, 사이키델릭, 헤비, 하드, 프로그레시브 록을 독창적으로 조합해 내는 여러 밴드에서 따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이 세 밴드는 고전적이면서도 독특한 사운드, 직설적이고 사회비판적이며 거친 느낌의 노래, 신비감이 느껴지는 공연을 통해 고유한 음악 궤적을 그리고 있다. 해외 청중들의 눈과 귀에는 새롭고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연주는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수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축적해 온 음악적 토양의 일부이다. 이미 알고 있는 음악과 피상적으로 비교하는 대신 음악을 둘러싼 배경과 맥락을 이해할 때, 새로운 만남은 이국성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 깊이 있는 음악적 경험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무지와 선입견의 걸림돌을 넘어서
한국의 대중음악 관계자들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동남아시아의 음악을 직접 공연으로 만나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공연 현장에서 경험하는 유대감은 서로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시대성을 깨닫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음악을 ‘문화상품’으로만 바라보는 산업 정책이나 ‘사회분석의 도구’로서 다루는 학술적 논의가 미처 다다르지 못하는 진정한 문화교류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나 더 활발하고 깊이 있는 교류를 위해서는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는 것 이상의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직접적인 만남의 기회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무지와 선입견이 초래할 수 있는 현실적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설레는 첫 만남이 무사히 이루어지고 나면, 우리가 듣는 음악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 그들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음악적 토양,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이들에게 더 깊이 있고 오래가는 의미와 정서를 전해줄 것이다.
저자 소개
최서연(seoyeonc1@gmail.com)은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학사와 인류학과 석사를 마치고 버지니아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에서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말레이시아의 교육제도가 계급, 종족, 성별에 따른 구분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동남아시아의 역사 및 현대사회에 대해 가르쳤으며,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의 여성, 노동, 환경, 대중문화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레이세계로 간 한국 기업들』, 『오늘을 넘는 아시아 여성』 (공저) 등이 있다.
참고문헌
- 루디 수칸다르, 헤르신타. 2017. “인도네시아 팝 40년: 장르, 정치, 사회.” 『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기획. 신현준, 이기웅 편.
- 신현준, 이기웅. 2017. “인터아시아(Inter-Asia) 관점에서 본 아시안 팝.” 『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
- Agato, Yudhistira. 2023. Indonesian band Ali make cinematic, cross-cultural funk: “What we’re doing is nothing new.” NME. (9월 26일).
- Believe. 2023. ‘5 things to know about Indonesia’s Music Market with Dahlia Wijaya’ by Eamonn Forde, Benjamin Walewski. (3월 24일).
- Baulch, Emma. 2020. Genre Publics: Popular Music, Technologies, and Class in Indonesia, Middletown: Wesleyan University Press.
- Luvaas, Brent. 2009. Dislocating Sounds: The Deterritorialization of Indonesian Indie Pop, Cultural Anthropology, 24(2), 246-279.
- New Straits Times. 2022. “#Showbiz: ‘I don’t idolise songs from Indonesia’ – Hattan.” (1월 26일).
- Tan Sooi Beng. 2021. “Revisiting Post-Cultural Imperialism: Singing Vernacular Modernity and Hybridity through the Lagu Melayu in British Malaya.” Made in Nusantara: Studies in Popular Music, Edited by Adil Johan and Mayco A. Santaella. New York: Routledge. 65-74.
플레이리스트
- Ali – Malaka 앨범 쇼케이스
https://www.youtube.com/watch?v=B8dB1qnY_28&t=13s - Bernadya – Untungnya, Hidup Harus Tetap Berjalan
https://www.youtube.com/watch?v=VSL5F43qgng - Diskoria, Laleilmanino, Eva Celia — C.H.R.I.S.Y.E.
https://www.youtube.com/watch?v=ThYGrYiyvA8 - Efek Rumah Kaca – Fun Kaya Fun
https://www.youtube.com/watch?v=WwqDHi1tUyk - Hindia – Bayangkan Jika Kita Tidak Menyerah
https://www.youtube.com/watch?v=rSTO0VrV38Y - Isyana Sarasvati – Sikap Duniawi
https://www.youtube.com/watch?v=Km_YS2Fn1ZY - Nadin Amizah – Bertaut
https://www.youtube.com/watch?v=HyhLsy6b0XI - The S.I.G.I.T. – Live at The Krawd 2022
https://www.youtube.com/watch?v=IESfUBJGheA&t=820s - Voice of Baceprot – Live at Transmusicales de Rennes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K7cCiMLHymE&t=482s - White Shoes & The Couples Company – LIVE @ Synchronize Fest 22
https://www.youtube.com/watch?v=CaIqJOELHec&t=31s
1) 인도네시아 음악 플랫폼으로는 랑잇뮤직(Langit Musik)이 있다.
2) 해외 음악은 인도네시아 공연을 앞둔 Bruno Mars의 노래 네 곡을 포함하여 총 아홉 곡이 순위에 들었다. 순위에서 한국 노래는 찾아볼 수 없다. (2024년 9월 8일 기준)
3) 이 순위에는 지민, 정국, 르세라핌, 리사의 노래도 포함되었다. (2024년 9월 8일 기준)
4)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의 한 원로 가수는 인도네시아 음악이 특별히 대단하지도 않다면서, 인도네시아 방송국이 말레이시아 음악의 방송을 제한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New Straits Times, 2022/01/26.
5) YouTube 채널 Primavera Pro, Exploring Southeast Asia’s music scene: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Primavera Pro 2024)
6) 유라시안(Eurasian)은 유럽인과 아시아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와 그 후손을 지칭한다.
7) Luvaas(2009)는 인디밴드 Mocca, The Adams, The Upstairs 등을 언급하며, 인도네시아 인디밴드가 영어로 영미권 음악을 모방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자신들이 속한 문화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비서구 사회의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서구 사회의 전형적 편견은 대중음악 연구에서도 종종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