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랑(Middle East Solidarity 공동편집자)
2019년 4월, 런던이었다. 당시 나와 같은 건물에 살아 이따금 만나 어울리던 한 수단인 활동가가 있었다. 그해 4월은 수단에서 한참이던 반정부 시위가 최고조에 이를 때였다. 우연히 건물 로비에서 마주친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내일 비행기로, “혁명에 참여하기 위해” 수단으로 돌아간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재영수단의사노조’(Sudan Doctors’ Union-UK) 등 영국에 기반을 둔 수단인 단체들의 요청으로 위성 전화 부품들을 반입해간다고 했다.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Omar Al Bashir) 정권은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전국의 통신망과 인터넷망을 차단해버렸다. 수단 내부와 외부 세계와의 연결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극소수가 소지한 위성 전화 등으로만 연결이 가능했다.
가장 많은 수단인 이민자가 있는 영국에서 당시 내가 만났던 수단인들은 자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이들이 내뿜던 변화에 대한 염원과 희망을 향한 열기로 말미암아 자국에서 벌어지는 저항 운동의 규모와 에너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가족과 친구, 동료 모두가 수도 하르툼(Khartoum)의 군부 본부 앞에서 점거 농성 중이라던 이 수단인 활동가의 눈은 두려움보다 희망의 떨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며칠 후, 30년 간 권력을 잡았던 오마르 알바시르가 마침내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로써 이 아프리카 국가에서 하나의 혁명이 성공하는 듯 했다.
마침 알제리에서도 군부 정권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파업이 일어나, 5선에 출마하려던 대통령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Abdelaziz Bouteflika)가 같은 해 4월 물러났다. 2011년 중동·북아프리카를 휩쓴 반란의 물결이 비껴갔던 이라크와 레바논에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면서 10년이 채 안돼 또 다른 혁명의 물결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지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이 보여줬듯 혁명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 일련의 과정이다. 알바시르의 30년 독재가 끝나고 2019년 8월 군부와의 협상이 타결돼 민간 인사들이 정부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수립된 과도 정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1년 10월 25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유엔 경제학자 출신 총리 압달라 함독(Abdallah Hamdok)을 몰아내고 다시 권력을 잡았다. 비록 알바시르를 퇴진시켰지만 수단의 반정부 시위대는 아직 그들의 주요 요구인 “군부 완전 퇴진, 민간 권력 수립”을 달성하지 못했다. ‘딥 스테이트(Deep state)’, 즉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군대가 국가의 정치·경제 등의 전반을 배후에서 통제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나라 안의 나라’인 수단에서 군부 권력에 대한 저항은 현재 진행형이다.
오마르 알바시르의 30년 철권통치가 무너지다
2018년 12월 시작된 반정부 시위의 배경은 무엇인가?
1989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알바시르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며 군부에 부와 권력을 집중시켰다. 알바시르는 집권 3년 만에 공공부문 노동자 10만 명을 해고했고, 국가 보유 자산을 군부 인사들에 팔아 넘겼다. 군부는 현재 농업, 광업, 석유 산업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 수단 경제의 82퍼센트 가량을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adio Dabanga, 22/11).
알바시르는 곳곳에서 반발에 부딪혔지만 매우 강압적으로 반발을 억눌렀다. 반정부 인사들은 납치·고문·살해됐고, 수단 서부 다르푸르(Darfur)에서 인종 학살을 벌여 30만여 명이 사망했다. 알바시르 정부와 수단 군부는 역사적으로 누비아인 거주지, 남쿠르두판(Kordofan)주(州),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인종 학살과 전쟁 등 범죄를 자행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상태다.
2011년, 대부분의 유전들이 있는 남수단의 독립은 알바시르에게 치명적이었다. 정부는 주요 수입원인 석유 수입의 75퍼센트를 잃었다(Financial Times 11/10/17). 알바시르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차관을 들여오고자 고강도 신자유주의 긴축 정책을 시행했다.
그에 따라 2018년 초, 정부는 연료, 밀가루 등에 대한 보조금을 대거 삭감했다. 수단인의 주식인 빵 값이 세 배 넘게 뛰었고, 물가인상률이 160퍼센트까지 치솟았다(Al Jazeera 18/12/21). 수단의 반정부 시위는 2018년 12월, 빵 값을 비롯한 기초 식자재 가격 폭등에 대한 항의로 시작됐다.
시위대의 요구는 삽시간에 수단을 30년 동안 통치한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에 반대하는 정치적 성격을 띄기 시작했다. 수십 년 간 누적돼 온 불만과 분노가 폭발했다. 시위대는 수도 하르툼의 군부 본부 주변을 무기한 점거한 채 농성 시위를 이어갔고, 전국적으로 수십만이 참여하는 유사한 형태의 시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시위가 더 격화될 것을 우려한 군부 내 인사들은 4월 11일 오마르 알바시르가 권력에서 물러났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 권력과 경제의 대부분은 군부 수중에 있었고, 시위와 점거는 군부 통치의 완전한 종식과 민간 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지속됐다. 2019년 5월 28, 29일 노동조합들의 연맹인 수단직능인협회(SPA: Sudanese Professionals Association)가 주도한 총파업이 벌어져 국가 기구와 산업의 상당 부분이 마비됐다.
6월 3일, 다르푸르 학살의 주체로 악명 높은 민병대인 ‘신속지원군’(Rapid Support Forces)과 군부 병력이 하르툼의 점거 농성장을 습격해 110명이 넘는 시위대를 학살했다. 하지만 시위와 파업은 계속됐다.
군부는 마지못해 8월에야 민주화 운동 측과의 권력 분할에 합의했다. 과도 정부의 총리는 민간 측 인사가 맡되, 새롭게 구성된 최고 권력 기구인 ‘주권위원회(Sovereignty Council of Sudan)’의 과반은 군부 측이 차지하는 것이 합의의 골자였다.
과도 정부 하에서의 개혁은 군부의 반발로 더디게 이뤄지거나 좌절되기 일쑤였다. 과도 정부는 알바시르 정부 하에서 시위대 살해와 고문에 연루된 군부 인사들의 소유 자산을 압류하려 했지만 군부는 반발했다. 결국 불안정하게 지속되던 이 동상이몽은 2021년 10월 25일 군부 측이 일으킨 쿠데타로 끝이 났다. 총리인 압달라 함독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군 참모총장이자 지상군 사령관인 압델 파타흐 알부르한(Abdel Fattah Al Burhan)이 권력을 잡았다.
차별과 억압에 도전한 수단의 혁명
비록 현재 수단의 혁명이 부침을 겪고 있지만, 반정부 시위와 혁명의 과정 속에서 수단인들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에 도전했다.
알바시르 정권은 이슬람 율법에 대한 보수적 해석을 근거로 여성 억압적인 통치를 했다. 유엔개발계획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수단은 성평등지수에서 149개국 중 127위를 기록했다(UNDP, 2013). 알바시르 정권은 여성의 복장, 이동, 교육, 취업 등을 제약했다. 여성들은 바지를 입거나 머리를 가리지 않고 외출할 시 태형으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혁명 속의 여성들은 이런 억압과 강요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고대 쿠시 왕국(Kingdom of Kush)의 여왕을 일컫던 “칸다카(Kandaka)”로 불린 수단의 여성들은 시위와 농성의 선두에 섰다. 수단인 인권활동가 마르와 잘랄(Marwa Jalal)은 혁명 당시 변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필자에게 이렇게 회상한다.
“수단에 살면서 한 평생 거리에서 안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야외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물론이고, 밖에 혼자 다니는 것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군부 본부 앞 농성장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남성들이 있는데도 점거를 같이 하며 밤을 지새우고, 잠도 잤어요. 단 한번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난생 처음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알바시르의 퇴진 후 구성된 과도 정부는 가장 먼저 취한 조치 중 하나가 바로 구 정권에서 제정된 여성 차별적 법을 개정하는 것이었다. 혁명은 수단 사회의 여성의 역할과 인식에 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알바시르 정부 하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도 극심했다. 알바시르는 인구 다수인 아랍계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다르푸르와 쿠르두판 지역의 소수민족을 억압했다.
다르푸르에선 악명 높은 ‘잔자위드(Janjaweed)’ 민병대가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원주민들을 학살해 최소 30만 명이 사망하고 25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잔자위드 민병대는 수단 군부의 핵심 조직 중 하나인 ‘신속지원군’의 모태가 되는 조직이고, 2019년 6월 3일 하르툼에서 자행된 반정부 시위대 학살의 주체였다.
반정부 시위대는 알바시르 정부의 인종 분열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시위대엔 기독교 등 소수 종교인들을 비롯해, 차별을 받아온 다르푸르 및 쿠르두판 지역 출신들이 대거 참여했다. 시위대의 구호가 당시 소수민족에 대한 연대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다. “오만한 인종차별주의자야, 우리 모두가 다르푸르다.”
수단 사회의 또 다른 피억압 집단인 난민들도 혁명의 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수단노동회보(Sudan Labour Bulletin)에 따르면, 2020년 12월, 수백명의 난민들이 하르툼 유엔난민기구(UNHCR) 사무소 앞에서 열악한 처우에 항의하는 농성을 벌였다(MENA Solidarity, 2021).
오랜 내전과 빈곤, 기후 위기로 인한 황폐화 등으로 내몰린 난민들의 수는 현재 수단에 110만명이 넘는다(UNHCR, 2022). 수단은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의 뿔’ 출신을 비롯한 인근 국가의 난민들이 육로로 리비아를 통해 지중해를 넘어 유럽에 도달하기 위해 통과하는 주요 길목이다.
유럽 국가들은 난민 유입에 관한 수단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2014년부터 ‘하르툼 프로세스(Khartoum Process)’를 운영했다. 하르툼 프로세스는 유럽 국가들이 난민들의 유럽행을 방지하기 위해 수단 내의 난민 수용소 운영, 국경 경비대 훈련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 계획에 따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수단 정부에 1억130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New York Times 18/04/22).
문제는 수단의 국경을 통제하는 병력의 핵심에 ‘신속지원군’이 있다는 것이다. 전범 혐의 집단에게 자금을 지원하며 유럽연합의 국경을 외주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속에 반정부 시위의 격화로 알바시르 정부가 무너지자, 2019년 7월부터 하르툼 프로세스도 중단되었다.
수단의 혁명은 단순히 군부 통치자를 교체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수십년의 군부 통치를 거치며 수단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박고 있던 여러 문제들에 근본적으로 도전했다. 여성들과 소수민족 등, 수단의 다양한 사회 집단들은 자신들이 겪는 억압과 차별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비록 쿠데타를 통해 다시 권력을 잡았지만, 군부는 여전히 만만찮은 저항에 직면해 있다. 군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리 행진과 시위가 지속할 수 있는 이 배경에는 두 핵심 동력이 있다. 수단직능인협회로 대표되는 노동 운동과 전국적 수준의 자치 권력으로 등장한 ‘저항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반정부 운동의 주도 세력, 수단직능인협회(SPA: Sudanese Professionals Association)
수단의 반정부 운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바로 조직 노동 운동의 역할이다. 그 중심에 의사·교사·언론인 등이 속한 수단직능인협회(이하 SPA)가 있었다. SPA는 2016년 보건의료 노동자들과 수련의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항의하며 벌인 파업을 계기로 설립됐다.
여기에 공공부문 노동자, 교사, 대학 강사 및 교직원, 언론인, 법조인 단체들도 가입하며 규모가 성장했다. 2019년 반정부 운동 속에서 SPA는 정권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주도하고, 수차례 파업을 벌였다.
군부가 장악한 여러 산업 부문에서 파업이 벌어졌고, 수출입의 핵심 통로인 포트수단의 항만 시설 노동자들과 철도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며 물류에도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다. 하르툼 국제공항 노동자들도 파업에 합류하며 국제선 운항도 중단됐다.
심지어 전력 노동자들은 군부 본부 건물에 공급되는 전기를 끊어 버리기도 했다. 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 노동자들도 파업의 주요 부문이었다. SPA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시멘트 및 건설, 제분 노동자들 등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도 파업에 참여했다.
노동 운동은 반정부 시위에 물적, 인적 자원을 제공하며 시위가 수개월 넘게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SPA가 주도한 총파업은 수단 전역을 사실상 마비시키며 군부를 위기로 몰아 넣었다.
저항에 직면한 군부는 양보안을 내놓으며 시간을 벌려고 했다. 알부르한을 비롯한 군부 내 핵심 인사들은 알바시르를 퇴진시키고 ‘주권위원회’에 민간 인사들의 참여를 보장했다. 39개월 후 위원회를 해산하고 민선 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를 실시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SPA의 지도부는 기층 활동가들과 구성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과도 정부 참여를 지지했다. 거리의 시위대는 군부를 믿을 수 없다며 완전한 민간 권력을 요구했다.
“민중을 위한 민간 권력을 위하여”: 저항위원회(Resistance Committee)
저항위원회의 성장은 이런 SPA 지도부의 군부 타협적 태도에 대한 반발과 완전한 민간 권력을 달성하겠다는 시위대의 의지가 배경이었다.
저항위원회는 2019년 반정부 시위의 부상과 함께 등장했다. 당시 알바시르 정권은 국가 권력을 동원해 시위를 탄압했다. 인터넷을 전면 차단해 시위대의 소통을 막으려 했고, 군부 병력은 평화적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했다. 수백명이 사망했다.
인터넷이 끊긴 상황에서 활동가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다음 시위 장소와 계획에 대한 소식을 집집마다 돌며 공유했다. 이들은 군경 병력의 위치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며 행진 경로와 바리케이드 위치를 결정했다.
시위대의 필요에 의한 자발적 모임이 저항위원회라는 형태의 조직으로 발전했다. 정부의 운영이 실질적으로 중단된 상황에서 이 저항위원회들은 지역 제빵소에 밀가루를 분배하거나, 코로나19 팬데믹 하에서 보건 위생 교육과 마스크와 손 세정제 배분을 담당하기도 했다. 교육, 보건 등 국가의 일부 기능까지 수행하는 조직으로 성장한 것이다. 2021년 3월 기준 수단 전역에 무려 5289개의 저항위원회가 설치됐다.
2020년 6월, 부진한 개혁에 항의하고 군부의 완전한 퇴진을 요구하며 백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슬로건은 “혁명의 경로를 바로잡자”였다. 이 시위를 조직한 핵심 주체는 바로 저항위원회들이었다. 각 지역별로 결성된 저항위원회는 이제 전국적 규모의 네트워크가 되었다.
이런 성장을 반영하듯, 하르툼 지역 저항위원회 협의체 대변인 사미 무함마드 압델 할림(Sami Muhammad Abdel Halim)은 이렇게 말했다. “저항위원회는 국가 경제, 군부, 보안 정국, 국경, 대외관계, 생활 조건을 개혁하는 정치 프로젝트를 수행할 것입니다”(Ayin Network 21/12/08).
단순히 시위를 준비하는 조직의 역할을 넘어 대안 권력의 주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물론, 수단의 노동 운동이든, 저항위원회든 혁명의 소기 목적인 완전한 민간 권력을 달성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만만찮다.
국가 기구는 물론 경제 주요 부문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군부의 ‘딥 스테이트’를 극복하지 않고는 수단의 혁명은 미완으로 남을 것이다. 수단의 노동자들은 2019년 5월의 총파업을 통해 군부에 맞설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지만, 이들을 무력화시키는 지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내 세력이 수단 군부를 후원하고 있다는 점도 수단의 혁명이 넘어야 할 산이다.
최근 십 수년 동안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일어난 여러 대중 운동 중 수단의 경험 만큼 정치적·사회적으로 진보한, 혹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경우는 드물다. 수단의 활동가들은 노동 운동과 저항위원회로 대표되는 풀뿌리 정치 조직들의 활동을 결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수단의 혁명이 앞으로 어떤 과정을 보여줄 지 이목이 집중된다.
저자 소개
박이랑(bakirang@gmail.com)은
영국 중동 전문 잡지 공동 편집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교 소아스(SOAS, University of London)에서 사회인류학을 수학했다. 현재는 기자 및 아랍어 통번역사로 주로 중동·북아프리카 사회 운동, 이주·난민 관련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디아스포라 영화제 상영작인 난민 다큐 ‘암란의 버스3’을 공동 기획했으며, 중동 전문 매체 Middle East Eye에 기고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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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yin Network. 2021. “””المقاومة السودانية” تبتعد عن الأحزاب وتتأهب لطرح إعلان سياسي https://3ayin.com/sudanese-resistance/ (검색일: 2023. 01. 22).
- Carter Center. 2021. “Sudan’s Youth and the Transition: Priorities, Perception, and Attitudes,”
https://www.cartercenter.org/news/pr/2021/sudan-080521.html (검색일: 2023. 02. 27). - Hmmed, Saeid. 2018. “Im/mobility : homeland, identity and wellbeing amongst the Beni-Amer in Eritrea-Sudan and diasporas.” Ph.D. Diss, University of Leicester.
- Kingsley, Patrick. 2018. “By Stifling Migration, Sudan’s Feared Secret Police Aid Europe.” New York Times (April 22), 46.
- MENA Solidarity. 2020. “Sudan and the asylum system: ‘We must reject this divide-and-conquer rhetoric’”
https://menasolidaritynetwork.com/2021/02/04/sudan-and-the-asylum-system-we-must-reject-this-divide-and-conquer-rhetoric/ (검색일: 2023. 02. 10). - Radio Dabanga. 2022. “Military junta blamed for Sudan’s economic woes” https://www.dabangasudan.org/en/all-news/article/economists-blame-military-junta-for-sudan-s-economic-woes (검색일: 2023. 02. 19).
- UNDP. 2013. “Human Development Report 2013 – The Rise of the South: Human Progress in a Diverse World”
https://www.undp.org/egypt/publications/human-development-report-2013-rise-south-human-progress-diverse-world (검색일: 2022. 12. 19). - UNHCR. 2022. “Operational Data Portal: Refugee Situations” https://data.unhcr.org/en/country/sdn (검색일: 2023. 02. 26).
- Wallis, William. 2011. “Sudan’s economy reels from loss of south.” Financial Times (October 1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