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국(경희대학교)
아프리카, 인류의 기원
아프리카는 B.C. 36억 년 전 지구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대륙이다. 또한, 인류의 기원에 대한 가장 지배적인 견해인 ‘아프리카 기원설’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기원설에 따르면 해부학적 측면에서 현생인류(Homo sapiens)는 아프리카에서 태동한 단일 종이 5만 년에서 1만 년 사이에 전 세계로 이주해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사람)와 유럽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를 대체하면서 진화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인류 진화의 대안적인 가설인 ‘다지역 발생설’에서도 인간은 지역적으로 나뉘면서 25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이주한 호모 에렉투스와 교배하면서 제각기 현생인류로 진화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프리카 대륙은 인류의 기원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공간으로 현대인에게 낭만적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류 문명사에서 아프리카는 소외되어 있었다. 148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의 희망봉 발견, 1497년에는 바스쿠 다가마(Vasco da Gama)의 남아프리카 해역 횡단, 1652년 현재의 케이프타운에 네덜란드인들의 무역 초소 설립 이후 18세기와 19세기에 식민지 건설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때부터 아프리카에 관한 의미 있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아시아 다음으로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은 대륙이지만 매우 늦게 세계사의 한 부분으로 편입된 것이다. 19세기까지 유럽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국경선은 20세기에 들어선 이후 서구 열강들의 정치적 목적과 편의 때문에 국경선이 획정된다. 전통적인 부족 단위의 정체성이 무시된 채 수많은 종족이 섞인 채로 하나의 국가가 형성되었기에, 오늘날까지도 아프리카는 인종 갈등과 부족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난민’, ‘인종분쟁’, ‘독재정치’, ‘질병’, ‘기근’ 등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하는 부정적 키워드가 아프리카인들의 어려움을 실체적으로 증명하지 않을까.
인류학적, 세계사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아프리카 지역의 설화(說話)1), 즉 신화, 전설, 민담의 특성을 알아보는 것은 아프리카와 이곳에 살았던 인종과 민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창작되는 설화에는 인간 세상의 법칙이 암시되어 있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상상 속 이야기를 전하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관계를 풀어내는 설화를 통해서 사람들은 일상적 관심에서 배제되어 있었던 타자들과의 관계를 의식하게 되고,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 사회의 설화는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지혜를 표현하는 동시에 그 사회의 제도나 관습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구전되거나 기록으로 남아 존재하는 아프리카의 신화와 전설이 인류의 기원 및 진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남부 아프리카의 여러 종족의 다양한 설화를 통해 우리는 초기 인류의 삶과 생활을 상상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나미비아에 걸쳐 있는 칼라하리(Kalahari) 사막 지역에 오늘날까지 거주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인 산(San)족의 사냥과 채집 생활 등의 생활 방식과 이 지역에서 발견된 다량의 석기 도구, 암벽화 등에서 인류학자들이 후기석기시대 인류 조상들의 흔적을 유추하는 것이 그 예라 하겠다.
아프리카의 신화와 전설을 추적하기 위해 우리는 아프리카를 크게 네 개의 지역으로 구분하였다.2) 이들 지역은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며 가르는 사하라 사막 북쪽의 북부 아프리카, 그 바로 아래부터 대륙 중앙을 차지하는 중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마다가스카르섬까지 이어지는 동부 아프리카, 그리고 남부 아프리카다. 이들 각 지역의 설화는 그곳에 거주했던 다양한 종족의 삶과 생활, 가치관과 세계관에 담겨있는 특성을 알려준다. 비록 설화라는 장르가 갖는 유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종족이 얽혀 있는 대륙에서는 각 지역에 따라 차별성이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네 개 지역 중 북부와 동부의 전설과 신화를 살펴보겠다.
북부 아프리카의 신화와 전설: 신과 영웅의 탄생
사하라 사막 북쪽에 있는 북부 아프리카의 문화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화보다는 아랍과 유럽 문화에 가깝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북쪽 지역에는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알제리 등의 나라가 있다. 아프리카 북부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가깝기에 사하라 이남보다 아랍과 유럽 문화와의 유사성이 뚜렷하다.3) 북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세계사의 흐름은 이들 나라의 설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두 문화의 접촉으로 파생한 몇몇 나라의 전통 설화를 차례로 알아보자.
아랍 세계를 주도적으로 규합하여 이스라엘과 투쟁을 벌인 아랍권 맹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이집트는 북부 아프리카 지역의 핵심 국가이다. 하지만 이집트는 전형적인 아프리카 국가로 평가되지 않는다. 고대 인류 문명의 발생지인 이집트에는 선사 시대의 창조신화와 역사 시대 이집트를 통치했던 파라오 관련 신화, 그리고 스핑크스 관련 신화 등처럼 신화의 나라이기도 하다. <나일강의 신 ‘눈’>과 <왕자와 스핑크스> 등이 이집트의 신화를 담고 있다. <나일강의 신 ‘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태초에 이 세계는 혼돈만이 존재했다. 이 혼돈 속에서 나일강의 신인 눈이 스스로 나타났다. 그는 강에 몸을 반쯤 담근 채 두 팔로 자신에게서 탄생한 신들을 받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눈에서부터 태양신 라가 물에서 나온 알의 형태로 스스로 나타났다. 라는 모든 신을 지배했다. 라는 남성 신인 슈와 게브, 여신인 누트와 테프누트 네 명의 자녀를 낳았다. 슈와 테프누트는 공기가 되었다. 이들은 대지의 신인 게브를 일으켜 세웠고, 누트를 들어 올려 하늘의 여신으로 만들었다. 라의 명령을 거부하고 게브와 누트가 결혼하자 라는 매우 화가 나서 슈를 보내 그 둘을 헤어지게 했다. 이때 누트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하지만 라는 달에게 그녀가 출산하는 날을 주지 못하도록 했다. 지식의 신인 토트는 누트를 돕기 위해 달에게 내기를 걸어 이긴 후, 일 년인 360일에 추가로 5일을 더 얻어내었다. 이 5일 동안 누트는 두 아들인 세트와 오시리스, 그리고 두 딸인 이시스와 네프티스를 낳는다. 오시리스는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의 도움으로 라를 이어 대지의 신이 되었지만, 형제인 세트에게 미움을 받고 살해되었다. 그러자 이시스는 영생과 부활의 신인 아누비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인 오시리스의 몸을 미라로 만들었다. 오시리스는 이시스의 강력한 마력의 도움으로 부활했고, 죽은 자의 나라의 왕이 되었다.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는 후일 세트와의 대전쟁에서 승리해 대지의 왕이 되었다. 라의 눈물에서 인간이 창조되었는데, 이들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어서 라와 신들은 모여서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고 하토르를 보냈다다. 하토르는 라가 그녀를 불러들일 때까지 오직 한 명의 인간만을 남겨두고 인간들을 모두 죽였다.”4)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리비아는 주요 인종 집단인 베르베르족이 이슬람교 수니파에 기반을 둔 아랍 문화에 동화되어 아랍화된 부족 국가이다. 따라서 ‘카빌라(qabilah; 부족)’가 리비아 사회 조직의 기본 단위이다. 리비아의 민담 중 <성 조지와 용>과 <성 조지와 호랑이> 등은 로마 제국으로 대표되는 유럽 문화가 북부 아프리카의 문화에 접목된 사례다.
튀니지는 국민의 다수가 이슬람 아랍계와 베르베르(Berbers)계의 혼혈인이다. 토착민인 베르베르인이 거주하던 튀니지는 북부 아프리카로 이주하여 온 아랍인에 의해 정복당했다. 이때 아랍인은 자신들의 언어인 아랍어와 이슬람교도 함께 가지고 들어왔다. 수 세기에 걸쳐 이 두 민족은 혼인 관계를 통해 융합되었으며. 오늘날의 튀니지인 대부분은 이들의 후손이다. 튀니지의 옛 지역인 카르타고는 로마 제국 시대에 ‘빵 바구니’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풍부한 곡식을 생산해 내는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튀니지의 구전 이야기는 <벌과 제우스>,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등장하는 <트리토니스 호수>처럼 그리스·로마의 신화와 뒤섞여 전해진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진 알제리는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영토를 자랑하고 있는 나라다. 세 개의 주요 베르베르족인 음자브(M’Zab)족, 투아레그(Tuareg)족, 하라틴(Haratin)족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한다. 음자브족은 이슬람교도이며 투아레그족은 사하라 남동부 대산괴(massif) 주변의 오아시스에 사는 유목민이다. 정통 아프리카 흑인의 피를 물려받은 하라틴족은 수단인들로 알제리 전역에 산재하는 작은 오아시스에 산다. 국토의 면적만큼이나 다양한 종족들로 구성된 알제리에는 <금발의 룬자>, <벤 알카스> 등 다양한 전설과 민담이 존재한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 ‘바흐드자’와 도시 ‘투그르트’> 등은 여인의 슬기로움을 영웅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마주 보는 모로코는 지리적 위치상 여러 문화권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곳이다. 이슬람의 침략을 받은 모로코는 이슬람교를 믿게 되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모로코의 다수 인종은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를 쓰는 베르베르인이다. 앞에서 살펴본 나라들과 유사하게 모로코의 설화에도 그리고 그리스·로마는 물론 셈족과 힌두 문화에 이르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별까지 날아간 학자> 이야기는 날개를 만들어 태양까지 날아가려 했던 그리스의 이카로스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이집트 남쪽의 수단은 아랍어로 ‘흑인들의 땅’이라는 의미인 ‘빌라드 알수단(bilād al-sūdān)’이라는 명칭에서 유래했다. 비록 지정학적으로 유럽에서 거리가 있으나 고대로부터 수단 지역은 아프리카와 지중해의 문화적 전통이 만나는 각축장이었다. 이 두 문화의 접점은 고대 그리스의 아이소포스(이솝)의 우화와 유사한 <마을의 현자>라는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창조신 ‘아톰’>, <최고신 ‘암라디’>, <신이 된 최초의 여성 ‘아북’>, <영웅 ‘아이웰 롱가’> 등처럼 신의 탄생과 관련된 신화도 확인할 수 있다.
동부 아프리카의 신화와 전설: 인간과 동물의 공존
사하라 사막 남쪽은 초록 식생을 가지며 대륙의 중앙부를 이룬다. 동부 아프리카는 에티오피아, 남수단, 소말리아,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르완다, 모잠비크,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큰 섬인 마다가스카르까지 포함한다. 이 지역 국가 대부분은 19세기에 영국 식민지였다가 독립했다. 동부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지는 서아시아 시리아에서 모잠비크에 걸치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The Great Rift Valley)의 중심부로 최초의 인류가 등장한 곳이기도 하다. ‘루시’(Lucy)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을 비롯하여 고대 인류의 화석이 풍부하게 발견되는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이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에서 기원한 인류가 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은 지구대 전역에서 발견되는 초기 인류의 화석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대부분 설화가 그렇듯이 동부 아프리카 지역의 여러 나라에 퍼져 있는 다양한 부족의 설화는 문자가 아닌 기억으로 후세에게 전달되는 특성으로 인해 유사한 이야기와 반복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5) 또한 이들의 설화 속에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사바나 지역에서 다양한 동물과 싸우고 얽히며 풍요로운 식물과 과일을 키우고 채집하며 평화롭게 살아왔던 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또한, 유럽과 아라비아, 그리고 아시아 대륙과도 교류하면서 새로운 문명과 다채로운 문화를 체험했던 사람들의 삶도 녹아있다. 착취의 중요한 도구였던 철도가 커다란 뱀으로 상징화되어 등장하는 점이 한 예다.
인류학자들은 신석기 시대부터 아프리카 아시아어족 인구가 나일강 또는 중동 지역에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검은 얼굴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아이티오피아(Aithiopíā)’에서 유래한 에티오피아는 현생인류의 기원과 가까워 아주 오래전부터 에티오피아 고원과 그 주변 지역에 인간이 거주해왔다.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동물과 연관된 설화들로는 <개는 어떻게 사람의 친구가 되었나>, <고양이는 어떻게 여자와 친구가 되었나>, <고양이와 쥐>, <다람쥐와 표범>, <당나귀의 귀>, <배고픈 뱀>, <여우와 까마귀>, <태초에 어떻게 동물과 인간이 구분되었나>, <코끼리와 수탉> 등이 있다. 다음은 <고양이는 어떻게 여자와 친구가 되었나>의 이야기다.
“태초에 고양이는 수풀에 사는 영양의 친구였다. 그런데 하루는 사자가 수풀로 와서 영양을 죽여 버렸다. 그러자 고양이는 사자가 더 세다고 생각하게 되어 사자와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가 코끼리 무리가 사자와 싸워서 사자가 죽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코끼리들의 친구가 되었다. 얼마 후에 한 남자가 코끼리를 죽이는 것을 목격하였다. “아, 남자가 코끼리보다 세구나!”라고 생각하며 고양이는 남자의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남자가 자기의 집에 들어가자 부인과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부인은 몽둥이를 들고 남자에게 달려 나와 고함을 질렀다. “그동안 어디서 뭐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남자에게 온갖 욕을 해댔다. 그러자 남자는 도망쳐 나왔다. 고양이가 말했다. “아, 여자가 남자보다 세구나.” 그리고 여자의 친구가 되었다.”6)
이집트의 남쪽, 에티오피아의 북서쪽에 있는 수단은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북부 아프리카에 속하지는 않는다.7) 하지만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계 원주민 종족들의 고향인 남수단 지역은 아프리카의 오래된 언어와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 수단 북부와 남부 지역 설화에서는 비슷한 주제가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동물과 연관된 설화로는 <무모한 원숭이와 신중한 여우>, <쥐들이 사람과 가깝게 살게 된 이야기> 등이 있다.
케냐는 북동쪽의 소말리아, 북쪽의 에티오피아와 남수단, 서쪽의 우간다, 남쪽의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닿고 있으며 인도양을 면하고 있다.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화석에 따르면 이 지역에 26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호미니드인(hominid)이 케냐의 땅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이 지역은 코이산(Khoisan)족 계열 수렵채집민 부족들이 거주하였으나, 북부의 아프리카아시아어족(Afroasiatic languages)에 속하는 쿠시어파(Cushitic languages) 부족들로부터 목축과 농경 기법을 전수받은 반투어족(Bantu languages) 민족들이 기원전 1000년경 코이산족을 몰아내고 케냐 전역에 정착하였다. 케냐의 주요 종족은 키쿠유(Kĩkũyũ)족, 루히아(Luhya)족, 루오(Luo)족, 칼렌진(Kalenjin)족, 캄바(Kamba)족, 키시(Kisii)족, 메루(Meru)족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많은 케냐인은 조각상이나 장신구를 직접 만들어 지니고 다닌다. <루이야족 창조신화>, <부시맨 창조의 신, 캉>, <키쿠유족 창조신화> 등과 같이 적지 않은 설화들이 각 종족의 창조신화를 전해준다.
빅토리아 호수, 아름다운 루웬조리(Ruwenzori)산, 야생동물이 뛰어다니는 대평원 등이 있는 우간다는 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자연경관을 지닌 나라이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우간다의 거주자들은 오랫동안 수렵과 채집 생활을 유지했었다. 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 반투어적 민족들은 인구의 70%를 차지하며, 북부 지역에는 아촐리(Acholi)족, 랑고(Lango)족, 테소(Teso)족, 카라모(Karamo)족 등이 분포한다. 우간다에는 현재 34개 정도의 종족이 있으며, 이들은 주로 반투어족이나 나일사하라 어족(Nilo-Saharan languages),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쿠시어파 등에 속하는 여러 언어를 사용한다. 다양한 어족과 종족의 존재는 우간다 설화에서 여러 동물의 이야기로 나타나는데, <개구리와 도마뱀>,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 수탉의 볏>, <박쥐가 낮 동안에 자고 밤에만 나가게 된 이유>, <뱀들의 수호자>, <코끼리 엉덩이 자르기>, <수탉과 암탉 이야기>, <표범의 개미를 먹어치운 개> 등이 있다.
탄자니아는 스와힐리어로 ‘길들여지지 않은 곳을 항해한다’라는 뜻인 탕가니카(Tanganyika)와 동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일컫는 말인 젠기(zengi), 해안가를 뜻하는 아랍어인 바르(barr)의 합성어인 잔지바르(Zanzibar)에서 따왔다. 이 지역의 원 부족은 하자(Hadza)족과 산다웨(Sandawe)족으로 채집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남쪽으로 다양한 종족이 이주해왔으며, 기원전 약 4000년~2000년에도 투르카나(Turkana)호 북쪽에서 다양한 종족이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기꾼 토끼>, <사자와 하이에나, 그리고 토끼>, <산토끼와 하이에나, 그리고 암사자의 동굴>. <애벌레와 야생동물>, <의사의 아들과 뱀의 왕>, <토끼와 사자>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동물과의 공존에 관한 설화를 만날 수 있다.
우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및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르완다는 동부 아프리카의 대호수 지구 안에 있는 작은 내륙국이다.8) “천 개의 언덕의 땅(Land of a Thousand Hills)”이라 불릴 정도로 험한 지형이지만 농업에 유리한 비옥한 토질을 가졌다. 대략 1만 년 전 피그미인이라고 불리는 트와(Twa)족이 이주했고, 약 백 년 전에는 반투족이 이주해왔다. 현재 르완다는 아프리카 안에서 가장 조밀한 인구분포를 나타내는데, 이 중의 약 89%가 후투(Hutu)족이다. 르완다 지역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에는 산악고릴라, 침팬지, 원숭이, 영양, 얼룩말, 기린, 표범, 사자, 물소, 코끼리, 검은코뿔소, 하마, 하이에나, 호저, 자칼, 독사, 독수리 등이 있다. <암컷 표범과 개>, <영양의 하소연>, <카메게리의 바위> 등의 설화가 이들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보여준다.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인도양, 북쪽으로는 탄자니아, 북서쪽으로는 말라위, 잠비아, 서쪽으로는 짐바브웨, 남서쪽으로는 에스와티니,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국민의 대부분은 반투계 종족이며 북부에만 스와힐리족이 소수 거주한다. 이 지역의 설화에서도 동물이 빈번히 등장하는데, <교활한 여우>, <네 명의 형제와 하이에나>, <당나귀와 하이에나>, <덫에 걸린 표범과 꾀 많은 토끼>, <사자의 수염>, <죽은 사자와 하이에나들>, <쥐와 두더지>, <토끼 은왐푼들라>, <하이에나와 토끼> 등이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나라로, 아프리카 본토와는 달리 흑인이 아니라 주민 대부분은 서기 300년에서 800년 사이에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에서 이주해 온 말레이 계통의 사람들이다. 서구 열강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국경이 구획된 아프리카 대륙과는 달리 어느 정도 독립되고 고립된 공간인 마다가스카르가 갖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이 곳의 민담은 서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이나 구조가 반복된다. 집안의 여러 형제가 신부를 찾아 떠나는 여행담이나 식구가 많은 집에서 막내를 질투하는 형제 또는 자매들의 이야기 등이 있는가 하면, 부모나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동물의 도움으로 부자가 되어 집으로 귀향하거나 뱀과 싸우는 모험담 등이 공통으로 전해지는 민담의 내용이다. 숫자 7이 강조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아울러 자식이 없는 부부가 아이를 얻는 과정이나 결혼하러 가는 아가씨와 하녀의 뒤바뀐 운명 등의 이야기도 많다.
인류 전체의 이야기인 아프리카의 신화와 전설
지금까지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 북부와 동부 지역에 속한 국가를 중심으로 여러 종족의 설화를 살펴보았다. 여신과 영웅의 탄생이 강조되는 북부 설화,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 축이 된 동부 설화 등에는 국가라는 틀을 벗어나 종족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부족의 역사와 풍습이 담겨있다. 2천여 개의 부족과 3천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는 자연지리적으로도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동부 아프리카에 속하는 에티오피아와 북부 아프리카에 속하는 수단과 이집트는 나일강으로 연결된다. 사하라 사막은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지나며 북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사바나 초원지대는 동부아프리카를 남북으로 지나며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동식물이 진화한 곳이다.
해와 별과 달, 폭포와 호수와 강 등의 자연을 신으로 그린 창조신화, 종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공존을 다룬 이야기, 독수리, 까마귀, 코끼리, 사자, 표범, 원숭이, 하이에나, 당나귀, 토끼, 쥐 등 수많은 동물의 특성과 이들 사이 관계의 기원을 알려주는 전설, 그리고 동물과 동물, 또는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자연과 사람, 사람과 동물이 모두 함께 어울려 살았던 아프리카의 옛 모습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처럼 설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종족 구성원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해 삶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야기, 다시 말해 서사적 논리를 가지는 완성된 이야기를 넘어 그 설화를 간직하는 종족의 공감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아프리카 지역별 설화가 아프리카인만의 투박하고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인류의 정체성을 담은 보편적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무조건적 무관심이나 아프리카인을 향한 이유 없는 동정심이 아니라 신화, 전설, 민담을 통해 그들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김기국(ggkim@khu.ac.kr)은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이다. 프랑스 파리 IV 대학(Paris-Sorbonne)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호학, 문화콘텐츠, 이미지, 아프리카 문화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1) 설화는 구술을 통해 전승되거나 구전되다 기록된 서사적 구성을 갖춘 이야기이다. 신화, 전설, 민담 등이 설화에 속하며 각각이 다른 특성을 갖는다. 천지의 창조, 민족이나 성씨의 시조 탄생 등 신성한 이야기가 신화라면 전설은 어떤 지명이나 성명에 얽힌 이야기이다. 그리고 민담은 흥미 위주로 창작된 이야기이다. 전설이나 민담은 설화가 갖는 성격과 비슷하여 서로 혼입된 경우가 많다.
2) 국가들이 동질적인 민족적 정체성에 기초해서 형성된 것이 아닌 아프리카 대륙에서 특정 지역에 위치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설화를 묶는 것은 무리가 있다. 여러 부족이 모여 한 국가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부족 간의 갈등이 국가의 혼란으로 커지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의 내전의 원인은 부족 간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속한 지역을 중심으로 설화를 묶어 특성을 고찰하는 이유는 가능한 한 민족적 특성을 거시적으로 접근하기 위함이다.
3) 북부 지역 설화의 주된 주제를 ‘신과 영웅의 탄생 신화’로 규정하였다. 그렇지만 이 지역의 설화 모두가 이러한 주제로만 규정되지는 않는다. 북부 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 설화의 내용에도 신화적 이야기만 아니라 의인화된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 종족 구성원의 삶을 다룬 내용도 있다. 이 글에서 제안한 소제목은 해당 지역의 설화 전부를 살펴본 이후, 그 지역 설화의 두드러진 지역적 특성을 선택한 것임을 밝힌다. 북부 지역 설화의 제목은 『아프리카 신화와 전설-북부 아프리카』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4) 『아프리카 신화와 전설-북부 아프리카』. 135~136쪽.
5) 동부 지역의 설화는 『아프리카 신화와 전설-동부 아프리카』를 주로 참고했다. 본문에 제시된 설화의 제목은 이 책에서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6) 『아프리카 신화와 전설-동부 아프리카』. 61쪽.
7) 현재 수단은 정치적으로 수단과 남수단 두 개의 국가로 분리되었지만, 이 글에서 제시한 설화들은 정치적 분리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이 지역에 존재하던 이야기들이다.
8) 아프리카 대호수는 동아프리카 리프트 밸리와 주변 리프트 호수의 일부를 형성하는 여러 호수를 말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인 빅토리아 호수에 탕가니카 호수와 말라위 호수 등을 모두 합하면 바이칼 호수나 북아메리카의 오대호보다 담수량이 많다. 이들 오대호 지역에는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말라위, 모잠비크, 잠비아가 있다.
참고문헌
- 김기국·박동호·윤재학. 2017. 『아프리카 신화와 전설-동부 아프리카』. 아딘크라.
- 박동호. 2022. 『아프리카의 기원 신화와 전설』. 아딘크라.
- 박동호·윤재학·김기국. 2017. 『아프리카 신화와 전설-북부 아프리카』. 아딘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