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완(시인·음악가/계원예술대학교)
음악이라는 여행
어떤 글을 쓸까, 망설여진다. 아프리카의 대중 음악, 특히 서아프리카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를 소개하는 글? 그런 일은 이제 Chat GPT에게 맡기면 된다. 구태여 내가 나서서 글로 정리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서아프리카 여행기로부터 글을 시작하기로 맘을 먹는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아프리카 음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니까. 게다가 내가 겪은 일들은 아무리 잘난 AI들이라도 아직 데이터화하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2008년 가을 2개월 정도 서아프리카 말리(Mali)에 체류하며 아프리카 문화를 몸소 경험했다. 벌써 16년 전의 일이 됐지만, 그 때 서아프리카에서 보낸 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내 몸 안에 살아 있다. 나는 주로 말리의 수도 바마코(Bamako)에 체류했고, 바마코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국경을 넘어 세네갈(Sénégal)을 방문했으며 북쪽으로는 서아프리카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이며 젖줄인, 길고도 긴 니제르(Niger)강을 건너 사하라의 서남쪽 관문이 되는 주요 도시 통북투 Tombouctou(팀북투(Timbuktu)라고도 함)까지 여행했다. 적도 부근의 습한 밀림과 광활한 초원, 세네갈 다카르 해변의 끝도 없는 모래사장, 그리고 북쪽으로는 초원의 흙들이 모래로 바스러져 끝내 먼지가 되는 사하라까지, 아프리카 대지의 여러 상태를 겪었다.
나는 말리와 세네갈에서 음악을 들었고, 공부했고, 연주했다. 보이는 대로 CD들을 샀고 택시나 소트라마(Sotrama. 일종의 마을버스 – 사진 참조)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면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수많은 소리를 당시 가지고 간 고성능 디지털 녹음기로 녹음했다.
서아프리카 음악을 몸소 체험하는 일이 주목적이었던 말리 여행은 여러 좋은 인연들의 연결로 가능했다. 2008년 이전에 서울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베트남계 혼혈 사진작가인 뱅상 응우엔(Vincent Nguen)으로부터 역시 사진작가이자 부인이 말리 여자인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에릭 굴리에미(Eric Guglielm)를 소개받아서 파리에서 만났다. 에릭은 내게 사브 투레(Chab Touré) 라는 이름의, 아프리카 바마코에 사는 미술평론가이자 미학 이론가를 소개해 주었다. 파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6시간 정도 비행하여 바마코에 도착했을 때 샤브 투레가 또 한 사람의 ‘투레’인 우스만 투레(Ousman Touré)와 함께 공항에 나와서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나와 보니 밤이었다. 그들은 내가 뮤지션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도착한 바로 다음날부터 샤브와 우스만을 따라 음악 공연을 하는 클럽으로 직행했다. 클럽의 이름은 사바나(Savana)였고, 수요일이었다. 사바나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잼 세션이 벌어진다고 했다. 그날은 지비 파이브(Djibee 5)라는 밴드가 공연을 하는 날이었다. 공연 중에 지비 5의 리더인 지비가 한국에서 뮤지션이 한 명 왔다고 소개하며 나를 무대로 불러냈다. 어리둥절 했지만, 나는 그들이 건네 주는 낡은 기타를 받았다. 그렇게 사바나 역사상 최초로 말리 뮤지션들과 한국 뮤지션의 잼 세션이 벌어졌다.
무대 위에서 처음에는 조금 긴장했으나 클럽의 분위기와 지비 5 멤버들의 태도 덕분에 이내 마음이 놓였다. 그들은 나를 음악의 언어로 소통할 친구로 대했다. 낯선 아프리카 땅에서 그와 같은 환대를 받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나는 들떠 있었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과 음악적으로 대화했다. 잼 세션이 끝나자 관객들이 큰 박수를 쳐주었다. 그 당시에 썼던 일기장을 펼쳐보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너무나 편안하게 잼을 할 수 있었다. 마치 여기가 내 고향인 양, 평소 내가 치던 기타 라인을 과감하게 내뿜었다. 10여 분, 몰입의 시간이 지나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타를 들었다. 왠지 자신 있었다. 나는 나만의 기타 다루는 방법이 있다. 내가 잘 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잼에 동참하는 일은 잘 치고 못 치고와 별 관련이 없다. 나는 그냥 내 방식으로 줄을 만지는 거다. 내가 자연스러운 나일 때 사람들은 ‘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가 살아온 시간, 아니, 그 소리에 도달하기까지 저 사람이 살아낸 시간을 음미한다. 그게 잼이다. (…) 연주를 끝내고 내려왔는데 말리 사람 여럿이 내게 악수를 청한다. 잘 들었다고 하면서, 어떤 사람은 ‘대단해!(formidable!)’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2008.10.15. 수요일의 일기)
그런데 놀라웠던 것 중의 하나가, 내가 연주한 곡이 말리의 전통 악곡이라는 사실이었다. 계속해서 그 날의 일기장을 펼쳐 본다.
“나와 함께 연주했던 친구가 다가와서 “이 곡은 말리 전통 곡이야.”라고 말해주길래 “그래? 몰랐어, 전혀” 하고 대답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래. 그런데 재밌었어. 제대로 했어 너.” 그래서 “고마워.”하고 대답해 주었다.” (2008.10.15.수요일의 일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프리카에서 여행을 떠난 음악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 사례의 하나가 바로 ‘아프로-큐반(Afro-cuban)’ 음악이다. 아프로-큐반은 아프리카 음악이 멀리 카리브해의 쿠바로 떠난 여행길에서 변신한 장르인데, 그 아프로-큐반이 말리로 되돌아와 말리의 전통음악과 다시 플러그-인 되면서 말리 특유의 살사(Salsa)가 되었다. 나는 말리에 체류할 당시 여러 클럽에서 살사를 비롯한 아프로-큐반 풍의 음악이 얼마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바마코의 사바나 바로 옆에 있는 디플로마트(Diplomate)라는 클럽에서는 작년 여름(2023.7.27.)에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말리 살사의 선구자이자 거장인 플룻 주자 무싸 트라오레(Moussa Traoré)가 이끄는 타라스(Taras)라는 밴드의 음악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타라스’는 무싸의 예명이기도 하다. 이 밴드에는 ‘모모’라는 이름의 호호 할아버지 멤버가 있었는데, 그는 이 음악들의 정체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말을 내게 해주었다.
“이 음악은 밀림과 사바나에서 태어나 더 북쪽으로 사막을 거쳐 바다를 만나 여행을 시작했다가 되돌아온 음악이죠. 음악 자체가 여행이에요.”
이 대목에서 내가 떠올린 뮤지션은 바로 알리 파르카 투레(Ali Farka Touré)다. 말리 북부 통북투 지역 출신의 위대한 뮤지션 알리 파르카 투레는 말리의 전통 음악과 미국 흑인의 음악문화에서 비롯한 블루스를 결합시킨 이른바 ‘말리 블루스(Mali Blues)’의 창시자다. 그의 음악은 블루스라는 음악이 어떻게 출발지로 돌아와 재 플러그인 되는지를 참 잘 들려준다.
알리 파르카 투레의 생전 공연 모습
전 세계의 음악들 중에 가장 길고도 기구한 여정을 따라 여행해왔고 지금도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프리카 음악이다. 나는 이미 나도 모르게, 아프리카 음악의 여행길에서 그 음악을 만났던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아프리카 음악의 여행은 어떤 운송수단을 통해 가능했을까? 투마니 디아바테라는 뮤지션은 예전에 알았지만 코라라는 악기를 실제로 처음 본 것은 말리 바마코에 가서였다. 아프리카의 타악기 젬베(Djembe)의 소리를 예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아프리카산 통나무를 파고 이 위에 소가죽을 댄 진짜 젬베를 처음 만져본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음악의 어떤 실체가 여행을 하다가 나를 만난 것일까?
아프로 모듈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프리카가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일견 아프리카는 동아시아의 끝,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대륙일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는 이 생각이 그릇된 선입관에 가깝다. 아프리카가 아주 가까이, 그것도 우리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대중음악은 어디에 있을까? 다름 아닌 스마트폰 안에 있다. 전 세계인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중에서 아프리카적인 음악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아프리카 음악을 아프리카에서 찾을 게 아니라 우리의 휴대폰 안에서 찾으면 될 일이다. 사실 아프리카 음악은 전 세계의 대중음악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종의 ‘공유 플랫폼’으로 구동되고 있다. 나는 2012년에 발간한 <모듈>(문학과지성사)이라는 책에서 이미 아프리카 음악의 이러한 측면을 ‘문화적 생존방식’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바가 있다. 잠시 그 책에서 한 대목을 인용하면,
“사람들은 아이팟에, 하이브리드 카 오디오에, 휴대 전화에 아프로를 넣어서 들고 다닌다는 것을 생각하진 않는다. (…) 아프로의 사운드는 전 지구인의 귓전에 맴돈다. 껍데기는 (…) 휴대폰이고 삼성 메모리고 모든 휴대폰에 들어가는 콸컴 칩이지만 그 내용은 아프로다.” (성기완, 2012: 256)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아프리칸 African’과 ‘아프로 afro-’의 구분이다. 아프로는 독자적인 형용사로도, 때로는 명사로도 쓰이지만 단어의 앞에 붙으면서 보통 하이픈(-)으로 연결되는 접두사 형태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는 ‘아프로’라는 모듈로 존재한다. 모듈화 된 아프로는 플러그인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아프리칸’이다. 아프리카는 ‘아프로 모듈’의 형태로 전세계의 대중음악에 플러그인 되어 왔고,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책에서 나는 이 대목을 ‘아프로 모듈’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바 있다.
“요즘 음악의 흐름을 보면 각 문화권의 음악적 모듈들의 전 지구적인 이동과 결합, 호환을 통해 새로운 모듈이 생성되는 방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프로’적인 요소는 음악문화의 호환에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 그것은 일종의 음악적인 ‘칩’이다. 아프로의 프로토콜은 비트(beat)다. 아프로는 비트 단위로 존재한다. 비트를 중심에 놓는 음악문화에 있어서는 아프로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아프로의 전 세계적 호환은 정체성이 분명한 개별 문화 단위들이 어느 경로를 통해 이동하면서 어떤 허브를 중심으로 모이고 어떻게 결합하는지 잘 보여준다.” (성기완, 2012: 254)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음악어법은 어떤 과정을 통해 전 세계인의 음악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근대에서 21세기 동시대에 이르는 전세계적 문화의 흐름과 교류의 자취를 따라가며 특별한 지형도를 그려내야만 한다. 그 자체로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또다른 주제인 것이다. 이에 관해서, 필자는 2023년에 프랑스문화예술학회에서 주최한 학술포럼에서 발표한 ‘내 안의 무엇 – 국가간의 문화적 소통을 이해하는 한 방식’이라는 글을 통해 설명을 시도한 바 있다.
“제국주의적 지배담론으로서의 ‘미국문화’와 피지배담론으로서의 ‘흑인음악’이 혼재된 채 전달되는 문화적 소통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문화적 뒤엉킴’이라 부르고자 한다. 문화적 소통 과정의 ‘뒤엉킴’은 우리가 전달받았다고 여기는 것과 진짜로 전달된 것 사이의 거리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 뒤엉킴이 발화자/전달자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뒤엉킴은 문화적 실체들 자체의 작용이다. 따라서 전달자가 의도한 메시지나 문화적 내용물들은 문화적 대상 안에 정확히 약호화되지 않는다.” (성기완, 2023)
이 글에서 나는 ’문화적 뒤엉킴(cultural entanglement)’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문화적 뒤엉킴은 세계자본주의의 문화적 유통체계를 통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특징짓는데, 아프로 모듈이 전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어법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이 시스템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한 그 배경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디아스포라를 겪은 아프리카 사람들 특유의 역사적 경험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 디아스포라를 통해 ‘아프로 모듈’이 세계 곳곳으로 산종(dissemination)되는데, 동아시아 끝에 있는 한국 역시 아프로 모듈이 세계적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독특한 문화적 뒤엉킴을 겪는다.
우리 안의 아프리카
한 마디로 아프로 모듈은 미국의 대중음악으로 포장된 음악적 패키지 속에 비트의 DNA로 들어 있었다. 그 DNA가 20세기 후반의 50년 동안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세계 각 지역의 로컬 음악과 결합하는 과정이 동시대 대중음악의 성립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가 너무 장황해질 것 같아 이에 관한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그치도록 하자. 흥미로운 것은 아프리카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K-Pop의 지존 BTS 안에는 얼마나 많은 ‘아프로’가 들어 있을까? 그 비율을 정확하게 측정할 잣대는 없지만, 동시대 대중음악의 창작과정에서 ‘리듬’의 존재감이 멜로디나 화성의 존재감을 압도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BTS의 음악 속에도 최소한 50% 이상은 아프로적인 것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피터 오코예(Peter Okoye), 폴 오코예(Paul Okoye), 이렇게 두 명의 멤버로 구성된 나이지리아 출신 2인조 그룹 ‘피-스퀘어(P-Square)’의 <Shekini>라는 노래가 있다. 유튜브에는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BTS의 군무연습 동영상이 있다. 영상에 나오는 BTS의 춤은 물론 P-Square의 음악에 맞춰서 춘 것이 아니다. 대신 BTS가 자신들의 노래 <Idol>에 맞춰 군무연습을 하는 영상에 피-스퀘어의 노래를 오버더빙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마치 처음부터 BTS가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춤과 노래의 궁합이 잘 맞는다. 이 영상 역시 BTS의 노래 안에 있는 ‘무엇’이 ‘아프리카’적임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BTS의 음악 안에 과연 정확하게 몇 퍼센트의 아프로가 들어 있는지 측정해보자고 여러 전문가 분들에게 제안한다.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것 같다.
아프리카, 음악 중심 사회
다시 말리 여행으로 돌아가 보면 ‘아프로 모듈’이라는 음악적 DNA로 전 세계의 대중음악이 생성되는 중심 플랫폼을 만들어낸 아프리카의 음악은 그들의 사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상의 곳곳에 스며들어 엄청나게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2008년 말리 여행 당시 나는 알음알음으로 수소문해서 찾아다니며 말리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의 집을 방문했고 여건이 되면 그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서아프리카의 전통 악기인 코라(Kora)의 대가 투마니 디아바테(Toumani Diabaté)의 집을 주소도 없이 찾아가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고생 끝에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1]
그의 집에 가려면 바마코에서 아무 택시나 집어 타고 투마니네 집으로 가자고 하면 된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2008년 당시에는 내가 택시 기사에게 투마니 디아바테의 집에 가자고 했더니 기사가 이렇게 대답했다.
“오케이. 그런데 집이 세 채야. 그 중에 어느 쪽으로 갈래?”
나는 약간 당황해서 그 중에서 나 같은 외국인이 더 자주 방문하는 집으로 가달라고 했다. 기사는 대뜸 알겠다며 그 집으로 가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기사는 내리라며 이렇게 프랑스어로 말한다.
“브알라(Voilà). 다 왔어.”
프랑스 사람들도 브알라를 자주 쓰지만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브알라를 참 잘도 쓴다. 원래 뜻은 ‘저기(there)’ 정도인데 이 브알라라는 말의 주머니 안에 채워진 아프리카적인 의미는 무궁무진하다. 어쨌든 너무도 당연하게 안내를 받고 택시에서 내리며,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고 잠시 어리둥절해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가령 투마니 디아바테 정도면 우리로 치면 조용필 쯤 되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 택시기사에게 조용필 네 집 가자고 하면 누가 데려다 주나? 오히려 이 사람이 혹시 스토커 아닐까 의심할 확률이 훨씬 높아 보인다. 그러나 말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투마니 디아바테는 말리 사람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음악적 영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K-pop 아이돌처럼 미디어의 구중궁궐에 갇혀 살지 않는다.
투마니 디아바테는 말리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투마니네 집이 저기 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저 그럴 뿐이다. 투마니 디아바테의 집은 대 스타의 그것 답게 으리으리했다. 우리로 치면 빌라의 한 동 전체 정도되는 규모였다. 집 안마당에는 고급 차가 여러 대 서 있었다. 그러나 입구에 경비원 같은 사람은 없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너른 마당에서 여인네들이 무슨 수확을 했는지 열매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투마니 디아바테 계신가요?” 하고 물어봤더니 익숙한 질문이라는 듯 거의 쳐다도 안 보고 대답을 해 주었다.
“유럽 투어 나가셨어요.”
아쉽게도 투마니 디아바테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조카인 또다른 디아바테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역시 그리오의 후손답게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었다. 촉망받는 코라의 신예인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입은 옷도 근사했고 풍겨오는 냄새도 고급스러웠다. 나는 투마니 디아바테의 집을 드나들면서 그의 문하생 중의 한 명이자 역시 그리오인 부바카르 시소코(Boubacar Cissokho)에게 코라 수업을 들었다. 투마니의 집에는 코라 명인을 꿈꾸며 공부하는 많은 코라 문하생들이 여럿 있었다. 2008년에 코라 레슨을 받은 이후로는 한 번도 연락해본 적이 없는 그를 혹시나 해서 웹에서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유명한 코라 연주자로 성장해 있었다. 그는 현재 프랑스 뮤지션인 얀 탕부르(Yann Tambour)의 프로젝트인 스트랜디드 호스(Stranded Horse)에도 참여하는 등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부바카르 시소코와 스트랜디드 호시스의 공연 모습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만난 말리는 기본적으로 ‘음악중심 사회’였다. ‘음악중심 사회’가 뭔지를 설명하려면 또다른 긴 지면이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음악 자체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되는 사회’라는 정도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음악중심 사회에서 음악의 힘, 즉 권력과 영향력을 발생시키고 지탱하는 계층이 바로 ‘그리오(Griot)’다. 그리오는 세습되는 전문 음악가 계급인데, 우리의 세습무나 남사당패의 연희자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오는 당연히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단순한 음악적 여흥의 영역을 넘어선다. 말리에서 보니 차라리 그리오는 의사나 판사 같은 전문 기능인 쪽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오에게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담당하고 해결해야할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전문 업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리듬 속에서 새로운 리듬으로 태어나는 아프리카 음악
말리 체류 중에 얻은 특별한 성과의 하나는 말리를 대표하는 유명한 뮤지션의 한 사람인 하비브 쿠아테(Habib Koité)와 인터뷰하고 함께 잼 세션을 한 일이었다. 하비브 쿠아테는 말리의 전통음악과 동시대 대중음악의 접합점에 관해 자세히 말해 주었다. 나는 그와의 인터뷰 전과정을 좋은 디지털 녹음기로 녹음했고 지금도 그 파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음악과 리듬 속에 태어나고 그 속에서 자랐습니다. 이 리듬 속에서 자라난 사람은 따로 기록해둔 것은 없어도 음악에 대해 더 알 거예요.”
리듬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그 말에 나는 무릎을 쳤다. 비트 단위로 존재하며 비트들의 결합으로 생성되는 리듬들이 서로 플러그인 되면서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프리카 음악이다.
하비브 쿠아테의 노래 타캄바 Takamba. 타캄바는 말리 북쪽 가오 Gao지방의 전통 장단, 음악, 춤인 타캄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곡이다
필자가 그리오 출신 서아프리카 음악인 아미두 디아바테 Amidou Diabaté와 함께 결성한 밴드의 연주 모습
우리는 아프리카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늘 뭔가를 공짜로 줘야만 생존할 수 있는 땅덩어리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지만 음악적인 면에서 보자면 반대다. 오히려 전 세계인 모두가 매순간 아프리카를 나눠 쓰고 있다. 지구인들은 아프로에 무상으로 접속하여 그 양식을 나눠 먹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미국의 애플이 하드웨어로 전세계인의 일상을 잠식했다면 아프리카는 음악적 소프트웨어와 컨텐츠로 전세계의 일상 속에 들어와 산다. 아프리카 음악은 지금도 전 세계의 음악과 지속적으로 결합하며 또다른 아프로를 생성 중이다.
저자 소개
성기완(kumbawani@hanmail.net)은
시인이자 음악가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9년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를 결성하여 활동해오고 있으며 아프리카 뮤지션 아미두 디아바테와 앗싸 AASSA, 트레봉봉 Tresbonbon 등의 밴드를 만들어 다문화적 하이브리드 음악을 시도하고 있다. 실험적 산문집 <모듈>(문학과지성사, 2012), 가사평론집 <노래는 허공에 거는 덧없는 주문>(꿈꾼문고, 2017) 등의 책을 출판했으며 <히피와 반문화>(문학과지성사, 2015), <나는 지구가 아프다>(이음, 2023)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참고문헌
- 성기완. 2012. <모듈>, 문학과 지성사.
- 성기완. 2023. “내 안의 무엇 – 나라 사이의 문화적 소통을 이해하는 한 방식,” 프랑스문화예술학회 학술포럼 발표자료, (6월 23일).
[1] 그 역시 뼈대있는 그리오 가문 출신이다. 디아바테, 또는 쟈바테는 서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그리오 성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