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의 이주와 디아스포라 그리고 난민 위기

‘남아시아’는 ‘인도 아대륙’과 종종 혼용된다. 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주자의 발원지이자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는 지역권이다. 근대 이후 남아시아의 이주, 디아스포라, 난민 문제는 아대륙에 대한 영국 식민 지배의 역사와 밀접하다. 아대륙 사람들이 카리브해 등 세계 도처로 이주해 디아스포라를 형성한 것도 영국식민지 시기에 노예제와 다름없는 ‘계약노동제’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남아시아가 직면한 난민 위기도 이 지역의 분할 독립과 갈등의 역사와도 관련된다. 개별 국가·민족·종교 디아스포라를 넘은 ‘남아시아 디아스포라’ 가능성과 한계는 이 지역의 유사한 사회·문화적 특성과 갈등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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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인의 주요 이주 경로. 보라색 점선은 ‘구 디아스포라’ 이주노선으로, 주로 영국 제국주의 시기 남아시아에서 이주한 경로다. 감청색 점선은 재이주(twice migration) 노선으로, 동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에서 영국으로 재이주하거나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 카리브해에서 영국으로 재이주한 노선이다. 실선은 남아시아가 독립한 이후 자발적으로 이주한 경로로, 소위 ‘신 디아스포라’의 이주 경로를 보여준다.
출처: Anitha, S. and Pearson, R. (2013) Striking Women. Lincoln: University of Lincoln. Available from: https://www.striking-women.org/page/map-major-south-asian-migration-flows

김경학(전남대학교)

영국식민지 시기 인도 아대륙이주자, ‘구 디아스포라’(old diasporas)

‘인도 아대륙’(Indian Subcontinent)은 히말라야산맥에서 인도양으로 남쪽에 있는 남아시아의 지리적 영역을 말하는데, 지정학적으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 몰디브를 포함한다. ‘인도 아대륙’은 흔히 ‘남아시아’라는 용어와 종종 혼용되지만, ‘남아시아’라는 용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 연구’(area studies) 학계와 정책 전문가들이 세계를 일련의 인접 지역으로 구분하려는 지정학적 상상력에서 만들어진, 다시 말하면 인도 아대륙 외부에서 필요에 따라 고안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식민 지배를 받던 인도 아대륙이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 독립’(partition)되고, 다시 파키스탄(동·서 파키스탄)이 분리되어 1971년 방글라데시가 탄생하는 두 번에 걸친 분할 독립으로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었다. 아대륙 이주의 역사는 중앙아시아·동아시아 여러 지역의 불교 전파와 더불어 코로만델(Coromandel) 해안의 왕국들과 동남아시아 섬 간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아대륙의 힌두교와 불교의 신화 및 문화가 동남아시아 사회와 문화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역사가 매우 깊다. 그러나 아대륙 사람들이 지구상의 먼 지역까지 대규모로 이주하게 된 것은 상업자본주의의 아시아 침투로 특징지어지는 유럽 식민주의에 의해서이다.

계약노동제로 트리니다드로 이주한 인도인 노동자들
출처: Wikipedia

영국령 인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이주는 영국 제국주의 성장과 해외 식민지 확장을 위한 전략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식민 각국의 산업과 상업, 특히 플랜테이션 농업을 확장함에 따라 이에 필요한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하였는데 이들의 많은 부분을 인도에서 징발했다. 1833년 아프리카 노예제가 폐지된 후 흑인 노예를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노예 산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인도에서의 영국 제국주의의 수탈과 착취는 인도인의 삶을 피폐하게 하여, 특히 일자리 없는 농촌의 인도인에게 해외 노동 이주는 생존을 위한 가능한 선택 중 한 가지였다.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본격 시작되어 1938년에 종료된 ‘계약노동제’(indentured labour system)와 ‘캉가니제’(kangani system)로 1834년 모리셔스를 시작으로 1838년에 가이아나, 1845년에 트리니다드 토바고, 1860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 1873년에 수리남 그리고 1878년에 피지로 인도인들이 송출되었다(김경학, 2006).

이주한 인도인들은 현지에서 계약 기간 만료 후 일부는 귀국했지만, 많은 수가 현지에서 자유노동자 신분으로 소작농이나 임금노동자로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현지에 정착한 인도인은 카스트, 종교, 출신 지역에 따라 다양하였으나, 인도에서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했던 노동자 출신이 가장 많았다. 한편 19세기 중반~20세기 초에 걸쳐 차 재배와 고무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동력으로 실론(스리랑카), 말라야(말레이시아), 버마(미얀마) 등으로 이주한 대부분의 인도인도 현지에 정착하였으며, 특히 약 200만 명 이상의 인도인이 이주한 말레이 인도인은 현지에 집단으로 체류해 현지 사회에 동화되지 않은 채로 자신들의 공고한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플랜테이션 노동자와는 달리 목수와 대장장이 등 기술을 지닌 인도 펀자브 출신의 인도인들은 계약노동제를 통해 1886년~1902년 사이에 영국령 동부 아프리카 케냐의 몸바사(Mombasa)와 우간다의 캄팔라(Kampala)를 잇는 철도 공사의 인력으로 송출되어 동부 아프리카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계약제로 해외 도처로 이주한 인도인은 당시 열악한 교통과 통신수단의 상황으로 해외로 노동 이주한 후 인도 대륙과 연락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들은 현지에서 인도인 공동체를 형성하여 다양한 맥락에서 원주민과 갈등, 화합하며 삶을 영위했으며, 이들 공동체를 흔히 ‘구 디아스포라’(old diasporas)로 부른다.

가내 의례를 수행하는 남태평양 피지 인도인. 19세기 말에 계약노동제로 피지에 정착한 인도인의 후손들이다.
출처: 저자 제공

구 디아스포라의 정착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영국 식민주의 시기 인도에서 해외로 이주한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일반적 성격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계약노동제로 노동 이주한 인도인의 일상은 초과 노동, 저임금, 영양실조, 고질적 질병, 취약한 거주와 의료 시설, 구타와 벌금 부과 및 구금 등의 육체적 고통이 따랐고, 현지에서 노동 도구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또한 이들 디아스포라는 종교와 언어를 중심으로 원주민과 유럽인 간의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상호작용 속에서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이 구성되었다. 이들은 힌두사원과 모스크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재건해 종교기관 기반 학교를 운영하였으며, 인도인 후손들이 이 학교를 통해 교육의 기회를 얻어 현지의 정치·경제적 기회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정착지 국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소수민족 인도인은 정치, 경제적으로 원주민과의 종족집단 갈등을 경험하였다.

 

남아시아인의 이주와 신 디아스포라’(new diasporas)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 등 이 지역의 경제·사회·정치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지역 전문가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1940년대 후반부터 미국 국무부 등 공식 정책 결정 기관과 유엔 및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아대륙 지역을 ‘남아시아’로 부르기 시작했다( Mohammad-Arif and Ripert, 2014). 남아시아 국가들은 빈곤과 불평등, 부패, 종족-종교갈등, 근대화와 경제발전 수준 등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인 면에서 국가별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유사한 경험과 특성을 공유하였다(Riaz, 2021). 급기야 1985년에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outh Asian Association for Regional Cooperation, SAARC)이 창설되면서 ‘남아시아’라는 명칭1)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지역 협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정착하였다.

2014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정상회의 마지막 모임에 참석한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회원국 지도자들
출처: Flickr 저자: MEAphotogallery (https://flic.kr/p/pVNhBF)

1947년 분리독립 이후 개별적 국가가 된 인도와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남아시아인의 유럽 특히 식민종주국이었던 영국으로의 이주가 두드러졌다. 전후 부족한 비숙련 노동력 충원을 위해 인도와 파키스탄 이주자들은 현지의 노동계급과 ‘영세 부르주아’의 일부를 구성했다. 또한 20세기 초부터 일부 인도인들이 북미와 호주로 이주했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 여러 남아시아 국가 출신이 북미와 호주 및 유럽으로의 이주를 본격화하였다. 영국의 대도시 등 구 제국으로 이주한 노동자와 1970년대 이후 걸프 지역으로 이주한 대부분은 미숙련 또는 준숙련 노동력이었다. 한편 남아시아에서도 학력과 기술을 갖춘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숙련 기술자, 과학자, 의사, 법조인,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1970년대 이후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남아시아 사회에서 ‘인재 유출’(brain drain) 문제도 부각되었다.

국제이주기구(IOM)의 ‘2022년 세계이주보고서’(World Migration Report, 2022)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약 4,340만 명의 이주자가 자국 밖에 체류하는 남아시아는 이주자의 세계 최대 발원지였다. 약 1,800만 명이 해외에 거주하는 인도는 남아시아 최대의 이주민 출신 국가이자 세계 최대 송금 수취(830억 달러) 국가이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도 약 700만 명과 600만 명의 이주자로부터 각각 260억 달러와 220억 달러를 송금받아 세계 10위권 내 송금 수령 국가에 해당한다.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목적지는 걸프 지역 국가들이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서구 선진국으로의 숙련 이민자와 학생의 이주도 많이 증가했다.

남아시아 출신 신 디아스포라의 공통점이 가장 뚜렷하게 발견되는 이주지역은 단순 노동력과 준숙련 노동력이 대규모로 이주하는 걸프 지역 국가들이다. 현대적 의미의 남아시아인의 걸프 지역 국제이주는 1960년대 말에 소규모로 시작되어, 1970년대 초반부터는 매우 적극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석유 자본으로 부를 축적한 걸프국가들은 석유 자원 생산과정에 필요한 시추 시설, 파이프라인과 항만 건설, 이와 관련된 기반 시설 구축뿐만 아니라 자국민을 위한 학교와 병원 등 다양한 기반 시설 건설을 위한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1970년대까지 걸프 지역의 최대 이주노동력은 아랍 출신이었으나, 아랍인과 비교해 저렴한 비용으로 노동에 임할 준비가 돼 있고, 훨씬 순종적으로 열심히 일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면서 홀로 이주해 국가 부담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1990년대 중반~2000년대에 걸쳐 걸프 지역 노동자의 ‘남아시아화’(South Asianization)가 진행되었다. ‘남아시아와 걸프 간 이주 회랑’이 확고하게 형성되면서, 2017년 기준 걸프 지역 내 총 2,80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 중 약 60%에 해당하는 1,690만 명이 남아시아 출신이었다. 남아시아와 걸프 간의 ‘이주 회랑’은 걸프 지역과 남아시아 지역 간의 ‘송금 회랑’으로 이어졌다. 남아시아 국가에서 걸프 지역으로의 노동 이주를 통해 유입되는 송금 수입은 해당 국가의 외환 보유율 제고뿐만 아니라, 이주자 개인적으로도 가족의 생계지원과 건강 및 교육 등의 복지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UNDESA, 2017).

걸프 지역으로의 이주는 남성 위주의 이주로서 현지 영구 정착이 허용되지 않고, 노동시장의 환경에 따라 이주 규모에 변화가 있지만 자발적인 이주이다. 이들 이주자는 정기적인 송금과 본국 방문을 통해 본국의 가족 및 공동체와의 초국적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 걸프국가에 거주하는 남아시아 이주자들은 학력과 숙련도에 무관하게 현지 국가의 ‘카팔라제도’(kafala system)2)라는, 이주 레짐(regime)이 만들어 놓은 엄격한 고용규제를 받는다. ‘후견인제도’ 또는 ‘보증인제도’에 해당하는 ‘카팔라제도’는 걸프 국가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감시와 관리 책임 및 권한을 사실상 자국민에 위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Dito, 2015). 게다가 2020~2022년까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회사의 고용계약 해지와 병행된 귀국 강요를 거부할 수 없었다. 걸프 지역 국가의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발생하는 남아시아 이주노동자 사망의 약 80%가 자연사로 보고된다. 그러나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막일에 맞추어 무리한 공사 일정이 진행되며 살인적인 더위 속에 강도 높은 작업이 강요되는 등 반인권적 노동환경이 이주노동자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2011~2020년 10년 동안 남아시아 이주노동자 6,500명이 사망했고, 여기에는 2,811명의 인도인, 1,641명의 네팔인, 1,018명의 방글라데시인, 824명의 파키스탄인 그리고 577명의 스리랑카인이 포함되었다.

 

남아시아의 난민 위기

남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 이주민이 발생하는 지역이면서, 가장 많은 남아시아 역내 난민을 수용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2021년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남아시아 국가 출신 난민의 수는 약 320만 명이고 남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약 350만 명의 난민을 수용했으며, 난민들 대부분은 출신 국가와 인접한 국가로 피난하였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정치적 분쟁과 민족 및 종교갈등으로 인한 적대감이나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남아시아 지역의 난민, 이재민, 망명 신청자도 급증하였다. 아래 그래프는 2021년에 1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도착한 남아시아 국가를 보여주고 있다. 남아시아 국가 중 주요 난민 발생 국가는 아프가니스탄(2,712,858명), 스리랑카(151,107명), 파키스탄(132,817명)의 순이다. 남아시아 역내 난민 이주자를 수용하는 주요 국가는 파키스탄(1,491,070명), 방글라데시(918,907명), 인도(212,413명), 아프가니스탄(66,949명)의 순이다.

출처: 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 / 자료: 세계은행(국가별 난민 수)

역사적으로 남아시아에서는 역내 이주가 활발하였다. 남아시아의 문화적·종교적·언어적 다양성은 사실 지역 내에서 이주하는 여러 민족과 집단 간의 상호작용이 빚어낸 결과이다. 경제적 기회를 찾아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개방된 국경과 문화적 친연성으로 인도-네팔, 인도-방글라데시, 인도-부탄,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넘는 인근 국가의 이주민이 늘 있었다. 또한 남아시아 역내 이주는 영국식민지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인도 아대륙에서 처음 발생한 난민의 대량 발생은 1947년 영국령 인도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 독립되면서였다. 당시 대규모 이주로 양쪽 국경에서 수백만 명이 새로운 국경을 넘어 반대편으로 이주하면서 유혈 사태, 학살, 납치 등 격렬한 폭력이 동반되었다. 이주 과정에서 새로 경계가 설정된 국경 양쪽에서 약 1,200만~1,8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종교적 노선에 따라 새로 그려진 국경은 상호 긴밀한 문화적, 혈연적 유대를 공유하던 국가, 공동체, 가족, 개인을 분열시켰다.

분리독립 이후 인도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로부터 상당수의 이주민을 수용하는 역내 이주의 허브로 부상했다. 인도와 네팔은 1950년 양국 간 평화우호조약을 맺어 양국 주민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개방형 국경을 공유하고 있고, 1949년 인도와 부탄 사이의 개방 국경과 인도의 시킴(Sikkim)주를 통과하는 부탄과 네팔 사이에도 이주 회랑이 있었다. 인도는 중국 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발생한 티베트 난민을 1959년에 수용해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임시정부를 허용하였다. 서파키스탄으로부터 수년간 차별 받아온 동파키스탄은 1971년 전쟁을 통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였는데, 당시 전쟁을 피해 수백만 명의 동파키스탄인이 인도 동부 아삼(Assam)주 등으로 피난해 왔다. 1983년 타밀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타밀민족해방전선’(LTTE,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과 스리랑카 군의 분쟁으로 약 30만 명 이상의 스리랑카 타밀 난민이 인도 남부로 피난 왔다.

인도뿐만 아니라 남아시아 다른 국가들도 인근 국가들의 강제 이주자를 난민으로 자국 정착을 허용하였다. 파키스탄은 1979년 소련 침공과 1990년 탈레반 정권의 등장으로 300만~50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자국에 이주하여 정착하도록 하였다. 네팔도 부탄에서 오랜 기간 인종적, 정치적 탄압을 받던 부탄 남부의 네팔 힌두 집단인 로트삼파족(Lhotshampa) 약 10만 명을 난민으로 수용했다. 가장 최근의 대규모 이주는 2017년 8월 미얀마 라카인주의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Rohingya) 약 100만 명이 차별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난하면서 발생했다.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Cox’s Bazar) 로힝야 난민 캠프
출처: flickr 저자: Mohammad Tauheed (https://flic.kr/p/LViN84)

이 밖에도 전례 없는 기후 변화의 영향은 기후 위기 이주자를 발생시킨다. 방글라데시는 남아시아 국가 중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편이다. 해수면으로부터 낮은 고도에 있는 방글라데시는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고 있어 2050년까지 해수면이 50cm 상승하면 약 1,500만 명이 거주하는 저지대 해안 지역의 11%가 유실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변화의 영향을 피하려는 방글라데시 취약 계층은 국내뿐만 아니라 인근 국가, 특히 인도와 미얀마로 불법 이주를 한다. 현재 방글라데시 도시 빈민가 인구의 50%가 기후 난민에 해당한다(Mukhopadhyay, 2022).

사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남아시아 국가들은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유엔 협약’(난민협약)과 ‘1967년 추가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인접 국가로부터 상시로 큰 규모의 난민이 유입되고, 이로 인한 이질적인 정치·종교적 성향의 집단 이주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는 국가 안보 우려를 내세우면서 비준에 부정적이다. 이들 국가는 국경을 넘는 난민을 둘러싼 분쟁 해결을 위한 다자적 접근 방식이 아닌 양자적 접근 방식에 의존하면서 난민 보호에 소극적이다. 난민을 수용하면서도 난민 지위의 합법화가 불필요하게 관련 국가들 사이에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남아시아 국가는 난민 보호나 인정 기준을 행정적인 편의나 국가의 이념적 목적에 따라 임시방편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2019년 인도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에서 온 힌두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파르시교, 기독교 신자인 ‘불법 이주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지만, 무슬림 인구가 절대 우위인 국가들 출신자를 배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시민권 수정법 2019(CAA, Citizenship Amendment Act)’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는 2014년 인도 수상으로 등극한 힌두 우익 정치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정권의 인도 내 무슬림 인구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는 자국 내 난민과 망명 신청자에 대한 대우와 보호의 불균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남아시아 디아스포라’(South Asian Diasporas)의 가능성과 한계

‘남아시아 디아스포라’ 명칭의 저널이나 연구 센터가 등장한 것이 상당히 최근의 일이며, 남아시아 디아스포라를 키워드로 하여 단행본과 저널 논문조차 많은 수가 검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학계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South Asian Diaspora’(Taylor & Francis)도 2009년에서야 창간되었고, 이 저널 내에서조차 ‘남아시아 디아스포라’라는 제목이 달린 개별 논문을 찾기가 힘들다. 반면 남아시아에 속한 국가나 이들의 종교, 민족, 언어나 출신지 등의 속성으로 구분된 디아스포라들, 예컨대 ‘인도인 디아스포라’, ‘파키스탄 디아스포라’, ‘타밀 디아스포라’, ‘무슬림 디아스포라’, ‘힌두 디아스포라’, ‘시크 디아스포라’, ‘구자라트 디아스포라’ 등은 흔히 학계나 사회·문화적 또는 정치적 맥락에서 자주 등장한다.

사실 디아스포라에 해당하는 남아시아인들이 이주하기 이전에 개별 국가인 모국에서는 스스로 ‘남아시아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외에서 살면서 남아시아인의 정체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특정 국가의 국민이었고, 힌두나 무슬림과 같은 종교집단이나 ‘타밀’과 ‘싱할라’와 같은 민족집단의 일원이었다. 이런 개별적 정체성은 종교나 언어를 토대로 자아와 타자가 구분되거나 정치세력에 의해 구분이 조장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모국을 떠나 해외에 정착하자마자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여 다수집단으로부터 배제나 차별적 경험을 하면서, 자국에 살 때 느끼지 못했던 이웃한 국가·민족·종교를 뛰어넘어 지역적(region, 남아시아), 역사·문화적 친연성으로 포괄적 성격의 ‘남아시아 정체성’을 느낄 수도 있다. 즉 동일 지역권 출신의 타자와의 연대와 환대를 특징으로 하는 선택적 공동체가 구축되는 순간을 느낀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Shooting like Beckham, 원제: Bend it like Beckham)은 영국의 남아시아인 사회에서 문화와 세대 간 차이와 정체성의 사회적 구성 등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는 축구 선수인 인도계 영국인 주인공 제스민더(Jessminder)가 축구 경기 중 유럽 출신 상대 선수로부터 ‘파키’(Paki)라는 용어를 듣자마자 강하게 반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파키’는 ‘파키스탄’ 국가명에서 유래했지만, 영국에서는 남아시아계 사람들 전체를 비하하는 인종 비하 용어이다. 사실 제스민더 가족은 영국식민지기에 인도 펀자브에서 동아프리카 케냐(Kenya)로 이주해 1963년 케냐의 경제 민족주의 운동이 거세지면서 인도인을 추방할 때 인도가 아닌 영국으로 재이주한 ‘구 디아스포라’ 인도인 자손이면서 시크교도이다. 이주 시기로 보면 인도와 파키스탄 분할 이전에 아프리카로 이주했기에, 현대의 인도나 파키스탄 어느 한쪽의 국가적 정체성을 갖게 되는지는 영화 속에서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제스민더가 출신 국적과 관계 없이 남아시아인들 모두를 향하는 ‘파키’라는 욕설에 대해 반발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실제 영화 밖에서의 남아시아인들은 ‘파키’라는 욕설에 반발하면서, 출신 국가나 종교 또는 언어적 정체성을 뛰어넘어 “세상에 당신도 나와 똑같이 생겼어요!”라면서 순간 ‘남아시아인’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상상된다. 남아시아 디아스포라라는 ‘상상의 공동체’는 거주 국가에서 소수집단으로서의 남아시아인들이 행하는 ‘인정의 정치’의 맥락에서 정치적 권리와 기회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원하는 투쟁 시에도 형성될 수 있다.

영화 ‘Bend it like Beckham’ (2002) 포스터
출처: IMDb

그러나 남아시아를 근간으로 하는 남아시아 디아스포라의 상상의 공동체는 남아시아 역내 국가·민족·종교집단 간 갈등이 심화하는 역내 정치적 지형의 변화로 그 기반이 흔들리기 쉽다. 또한 모국의 정치적 문제에 적극 참여하려는 ‘원거리 민족주의’(long-distance nationalism) 패러다임을 추종하는 남아시아 이주자와 이를 이용하는 남아시아 정치집단으로 인해 남아시아 디아스포라의 기반은 취약하다. 해외 힌두교 디아스포라의 일부가 인도 국내에서 전개되는 힌두 우익 정치적 이념인 ‘힌두뜨와’(Hindutva, 힌두 우월주의 이념)를 지지하는 일은 포괄적인 성격의 남아시아 디아스포라 형성 가능성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에 해당한다. 극우 힌두 민족주의자 모디 총리3)의 2014년과 2019년 선거 승리에는 사실상 해외, 특히 미국의 힌두뜨와 지향 힌두 디아스포라의 정치적, 재정적 지원이 한몫했다. 모디 총리는 당선 이후 대규모 대면 집회를 통해 힌두 디아스포라와의 관계를 진전시켜 왔는데, 가장 최근인 2019년 9월 22일 텍사스주 휴스턴(Houston)에서 약 5만 명의 힌두 디아스포라가 참석한 ‘안녕, 모디!’ (Howdy Modi!) 집회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집회는 디아스포라로 있으면서 모국 정치에 관여하는 초국가적 정치 행위를 하는 미국 힌두 디아스포라의 ‘원거리 민족주의’를 잘 보여준다. 대규모 미국 힌두 디아스포라가 집결한 ‘안녕 모디’ 행사는 해외 힌두뜨와 세력의 결집과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공간이었다. 이 집회를 문화행사로 치장한 모디와 일부 극우 힌두 디아스포라는 파키스탄이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즘’과 관련 있다는 비판적 발언을 통해 주로 힌두 디아스포라 청중에게 힌두 민족주의 정치적 의제를 환기한 바 있다.

이 행사를 위해 미국에 오기 직전에 모디 수상은 인도 아삼주에서 190만 명 이상의 ‘불법체류자’(대부분 무슬림)를 시민권자 명단에서 제외하는 ‘국가시민명부’(NRC)를 통과시켰다. 행사에서 그는 이런 조치를 인도인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테러리스트와 분리주의자들을 제거한 합당한 조치였음을 강조했다. 이 행사장 밖에서는 2019년 모디 집회를 인도인 디아스포라뿐만 아니라 남아시아 디아스포라를 분열시키려는 책동이라며 비판하는 힌두·무슬림·기독교도로 구성된 남아시아 단체가 집단적 항의를 했으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들 항의 집단은 2002년 구자라 폭동과 관련해 권력을 남용한 모디 수상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휴스턴 ‘안녕, 모디!’ 행사에 참여한 트럼프 대통령
출처: The White House, USA

 

저자 소개

김경학(khkim@jnu.ac.kr)은
전남대학교 문화인류고고학과와 대학원 디아스포라 협동과정 교수이다.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캐나다, 호주, 피지 등의 인도인 디아스포라를 연구하였고, 최근에는 국내 네팔 이주노동자와 고려인 이주자를 대상으로 ‘초국적 가족과 돌봄 문화’를 주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전남대학교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1) 2007년에 아프가니스탄이 SAARC에 가입하여 현재는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부탄, 몰디브, 아프가니스탄 8개국이 회원국이다. 남아시아 국가들 자체나 이 지역 외부의 국제기구나 연구 센터에서, 남아시아 국가에 포함되는 범주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합의가 없다. SAARC는 아프가니스탄을 회원국에 포함했지만, 세계은행은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의 일부 남아시아 연구 센터도 1937년까지 영국령 인도 영토였던 버마를 포함하지만, 아프가니스탄과 몰디브는 제외한다. 또한 ‘인도’와 ‘남아시아’라는 명칭 사이에도 연구 센터와 대학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상호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후자의 용어가 전자의 용어보다 우선시되거나 공존하는 때도 있다(Mohammad-Arif and Ripert, 2014).

2) 카팔라제도는 이주자를 ‘불안정’과 ‘일시성’에 놓이게 함으로써, 이주자의 시민적 권리 접근을 완전히 통제한다. 이주노동자가 보증인에 의한 여권 압수 등 다양한 어려움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은, 작업장 밖으로 이동하는 동선의 통제라는 공간적 측면 외에도 언제든지 고용주가 해고하고 송환시킬 수 있는 이주노동자의 일시성과 불안정성이란 고용 환경적 특성 때문이다.

3) 인도 구자라뜨주의 고드라(Godhra)에서 2002년에 힌두들이 타고 있던 열차 차량이 무슬림들에 의해 방화되어 58명의 힌두가 사망하였다는 이유로, 힌두민족주의 세력의 무슬림 공격으로 약 1천 명의 무슬림이 살해되고 약 15만 명의 무슬림의 가옥이 소실되었다. 당시 주 수상이었던 나렌드라 모디(2014년부터 인도 수상임)는 주 정부 공권력을 통한 아무런 대응조치를 하지 않아 실제로는 집단 학살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인도 국내외 인권 단체의 비난을 받았다.

 


참고문헌

  • 김경학. 2006. 『국제 이주와 인도인 디아스포라』. 서울: 집문당.
  • Dito, M. 2015. Kafala: Foundations of migrant exclusion in GCC labour markets, Khalaf, A., Alshehabi, O. & Hanieh, A. ed. Transit states: Labour, migration & citizenship in the Gulf. London: Pluto Press.
  • IOM. 2022. World Migration Report 2022. Geneva: IOM.
  • Mohammad-Arif, A. and B. Ripert. 2014. “Introduction: Imaginations and Constructions of South Asia: An Enchanting Abstraction?.” South Asia Multidisciplinary Academic Journal 10.
  • Mukhopadhyay, U. 2022. “Cross-Border Labour Migration and Refugee Crises in Southern Asia” bpb. 2022년 10월 13일. https://www.bpb.de/themen/migration-integration/laenderprofile/english-version-country-profiles/514317/cross-border-labour-migration-and-refugee-crises-in-southern-asia/(검색일: 2024년 2월 2일)
  • Riaz, Ali. 2021. Religion and Politics in South Asia. London: Routledge.
  • UNDESA(United Nations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 2017. International Migration Report 2017. New York: 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