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은 어떻게 체결되었나: 미국과 중국의 입장 그리고 한국의 선택

우리가 중국 주도의 RCEP과 미국 주도의 CPTPP 중에서 중국을 선택했다는 담론이 있다. 이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긴 것이다. 본고는 RCEP과 CPTPP의 체결과정을 미국, 중국, 일본 등 관련국들의 입장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우리의 선택 이유를 살펴본다. 오바마 행정부는 TPP에 가입했으나 의회의 비준을 받는 데 실패했고, 트럼프는 아예 탈퇴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복귀하기 힘들다. 중국은 ASEAN이 주도하고 한·중·일이 외연을 넓힌 RCEP 협상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으나 인도가 빠진 상황에서 향후 중국의 시장과 생산력이 핵심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중국은 CPTPP에도 가입 의사를 밝혔으나 그것은 반미전선 형성을 위한 전략이다. 미국은 GVC에서 물러나 국내 공급망 확충에 나섰는데 그것이 초래할 공급과잉에 주의해야 한다. 한국이 RCEP에 가입한 것은 자연스러운 반면 CPTPP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부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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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수(세종대학교)

 

CPTPP과 미국의 입장 변화

주지하다시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에서 미국이 빠지면서 형성됐다. 그러나 TPP의 시작은 미국이 아니라 2006년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브루나이가 논의한 P4(Pacific 4)이다. 미국이 TPP의 문을 두드린 것은 자유주의 무역질서를 추구하던 오바마 정권 때였다. 이에 따라 2010년 미국은 호주 및 페루와 함께 TPP에 참여했고, 그 후 베트남, 말레이시아, 캐나다, 멕시코, 일본까지 태평양 국가들을 중심으로 멤버가 확장됐다. 그 결실은 2015년 6월 12개국 협상타결, 2016년 2월 협정서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기 TPP는 미국 의회의 비준을 받는데 실패했다. 2016년 11월 당선된 트럼프는 공약에 따라 2017년 1월 TPP 탈퇴를 선언했고 미국이 빠진 TPP는 와해되기 직전까지 상황이 악화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적극적인 리더쉽으로 2017년 11월부터 미국을 제외한 11개국 간 CPTPP 협상이 재개되었다. 포괄적ㆍ점진적(Comprehensive and Progressive)이라는 두 글자를 앞에 단 채였다. CPTPP는 2018년 1월 타결과 3월 공식 서명을 거쳐 12월에 각국 의회를 통과하여 정식 발효되었다.

오바마 정권은 자유무역 질서가 궁극적으로 미국을 강하게 만들고 중국의 영향력을 억누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주류 엘리트는 자유무역 질서가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백인들을 소외시킨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짐짓 무시했다. 트럼프는 그 틈을 파고 들어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멕시코와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잠식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한 이 주장은 민주당 진보 계열에서도 종종 등장한 것이었다. 민주당 주류는 그 주장을 반영하지 못했던 반면, 트럼프는 그것을 적극 활용했다.

 

트럼프의 재선을 막고 민주당 정권이 다시 등장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CPTPP 혹은 TPP의 재가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이는 자칫 미국에게 치명적인 실수일 수 있다. 중국마저 CPTPP 가입 추진을 천명한 마당에 미국이 역으로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복귀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진보파와 공화당에 포진한 반(反)세계화 세력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권에서 2016년 내내 TPP 의회의 비준을 막았던 세력은 오히려 더 강해져 있다.

 

RCEP은 중국이 주도한 것?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도 TPP처럼 회원국 구성 과정이 복잡했다. 첫 기원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1990년 제기한 동아시아 경제협의체(EAEC)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공조 필요성을 절감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부터 ASEAN+한중일 정상회담을 매년 개최했다. 이 틀은 2001년 EAFTA(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 구상으로 진화했다. 이 구상에는 NAFTA와 EU에 버금가는 동아시아 경제블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뒷받침됐다. 한국과 중국이 이 구상에 밀접하게 공조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에 대해 일본이 2006년 CEPEA(동아시아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를 제안했다. CEPEA는 EAFTA에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더한 것이다. 이 멤버쉽이 훗날 RCEP으로 진화하게 된다. 공식적인 계기는 2011년 11월, 당시 ASEAN 의장국이었던 인도네시아가 RCEP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 후 RCEP의 최고 협상단위는 ‘RCEP 장관회의’로 정해졌으며, 그것을 ASEAN 장관회의와 연계하기로 하면서 형식상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ASEAN이 됐다.

RCEP의 협상은 쉽지 않았다. 구성원의 숫자가 많았고, 구성원 간의 경제발전 수준과 체제도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협상에서 자기 주장을 고집하기로 악명 높은 인도가 걸림돌이 됐다. 결국 RCEP이 타결된 것은 CPTPP가 타결된 후인 2019년이었다. 인도는 결국 빠졌다. RCEP은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불리지만 양허수준은 CPTPP에 비해 높지 않다. 그러나 누적 원산지 규정이 있어서 멤버간 교역 촉진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RCEP의 체결 과정에서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중국이 CPTPP에 대항할 RCEP의 체결을 간절히 바랬던 것은 맞지만 양허안을 먼저 제기한다거나, 협상 스케쥴을 재촉하거나 하지 않았다. 중국은 인도를 구슬리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발언을 자제했었고, 오히려 우리나라가 물밑에서 협상 분위기를 조성했었다고 한다. 만약 중국이 RCEP을 주도하는 형국이었다면 쿼드(QUAD) 멤버인 일본ㆍ호주ㆍ인도는 참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중국이 없었다면 RCEP은 체결이 더 늦거나 힘들었을 것이다. 중국의 시장과 생산 클러스터에 접근하려는 각국의 의지가 RCEP 체결의 중요한 동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협상의 동기와 과정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RCEP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한국,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제안을 거쳐 ASEAN 주도로 체결됐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CPTPPRCEP 타결 이후 미국, 중국, 일본의 셈법

“중국이 주도한 RCEP”은 틀린 말이지만 “중국이 주도할 RCEP”은 맞는 말일 수 있다. 미국이 글로벌 밸류체인과 절연한 사이에 RCEP을 활용한 중국의 영향력은 아태지역에서 더 커질 것이다. 최근 십여년 전세계 밸류체인이 축소되는 중에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밸류체인은 더 커졌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중국의 존재감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발병지(發病地)로서 중국의 평판은 손상됐지만 질병 통제에서 나타난 중국의 거버넌스는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안전한 투자 대상국 리스트에서 중국을 제외시키기 어렵다. 2020년 중국의 외자유치액은 사상 처음 미국을 넘어섰다.

베이징에서 개최된 RCEP 장관급회의 단체 사진(2019.8.3.)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CEP_MEETINGS,_SATURDAY_3_AUGUST_2019.jpg

 

중국은 CPTPP에까지 가입 의사를 밝혔다. 그것도 실무자가 아닌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직접 나섰다. 그러나 중국의 저의는 실제로 가입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중 갈등의 전선을 혼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중국의 CPTPP 가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USMCA 멤버인 캐다나와 멕시코가 중국과 무역협정을 맺기 힘들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NAFTA를 USMCA로 재편하면서 ‘비시장경제국’과 경제협정을 맺으려면 다른 멤버들의 허락을 받으라는 독소조항을 삽입했다. 미국의 허락하지 않으면 캐나다와 멕시코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수 없다. 실제로 중-캐나다 FTA는 협상 검토 중이었으나 USMCA로 인해 중도폐기 됐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CPTPP 가입 의사를 천명함으로써 첫째, 자신이 포용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유무역질서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었다. 둘째, 중국 시장을 탐내고 중국의 가입을 바라는 참여국과 그렇지 않은 참여국 사이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이 CPTPP에 가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CPTPP 회원국도 아닌 미국 때문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효과도 있다. 중국은 가입하지도 않은 CPTPP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한편 미국은 자체 공급망 확충에 나섰다. 막대한 재정을 동원하여 미국의 제조 인프라를 재건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바이든은 2조 2천억 달러의 인프라 구축 예산을 공언했지만, 2021년 6월 의회를 거치면서 우선 9천억 달러가 통과됐다. 중국이 적대국과 우호국 사이에서 어렵게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동안 미국은 달러를 발행하여 훨씬 쉽게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것은 ‘달러체제’라는 일종의 비대칭 전력을 활용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반도체와 배터리 잔치에 초대받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우리는 미국발 공급과잉을 걱정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국가 뿐 아니라 기업들마저 자체 파운드리 설립과 배터리 자체조달에 나서고 있다. 이대로라면 철강과 태양광에서 나타났던 중국발 공급과잉을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미국 버전으로 경험하는 수가 있다.

한편 일본의 입장이 복잡해졌다. 일본이 “ASEAN+한중일”의 EAFTA에 호주ㆍ뉴질랜드ㆍ인도를 포함시켰던 이유 중 하나는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RCEP이 인도를 빼고 체결됨으로서 이러한 일본의 의도가 흔들렸다. 일본은 이를 만회하고자 2020년 7월 일본ㆍ인도ㆍ호주의 “3국 공급망 복원 구상(Trilateral Supply Chain Resilience Initiative, SCRI)”을 제안했다. 쿼드(QUAD) 멤버들만의 공급망을 구상한 것이다. 이는 장차 쿼드의 경제협력 기제로 확장될 수 있다.

자료: 각종 언론보도와 정부문건을 참조하여 저자 작성

 

한국의 RCEP 가입은 미·중 간 중국을 선택한 것?

한국의 RCEP 가입은 자연스러운 선택인 반면 CPTPP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좀 부자연스럽다. 우선 RCEP을 보자. 이는 한국이 초기 구상에 참여한 EAFTA의 확장판이다. 북미와 유럽과 같은 동아시아 경제블록 형성은 통상형 개방국가를 표방하는 우리나라가 오래 추구해온 이상이다. 통상적(通商的) 이익으로 봐도 RCEP의 필요성은 명백하다. 최대 교역 대상국인 중국은 물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역 대상국인 베트남 등과 지역경제협정을 맺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이들과의 교역에서 원산지누적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다면 한국은 RCEP의 최대 수혜자일 수 있다. 비록 대일 무역적자가 고착화될 것을 우려하여 일본과의 FTA 추진과정이 중단된 상황임을 고려하면 한국의 RCEP 가입은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다.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RCEP을 통해 일본에게 추가 개방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요인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우리 스스로를 소외시킬 수는 없다.

같은 논리를 적용해보았을 때 한국이 아직 CPTPP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사실상 미국은 일본과 한국이 함께 TPP에 가입하기 원했고 2011년부터 공식ㆍ비공식적으로 한국을 초대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첫째, 한미 FTA를 맺었기에 TPP 가입의 가장 큰 이유인 미국 시장 접근을 이미 완수했다.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 중 미주대륙에 속하지 않았으면서 주요 산업을 갖춘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1). 일본ㆍ대만ㆍ중국ㆍ독일은 모두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다. 미국 시장 선점을 위해 쫓기는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 한미 FTA 국회 비준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은바 있어서 미국과의 통상 교섭을 다시 벌이기 어려웠다. 한국은 한미 FTA 비준 과정에서 광우병 파동과 농민시위를 비롯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결국 2007년에 타결된 한미 FTA는 2011년에 가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만에 하나 미국이 농산물 추가 개방을 요구하기라도 하면 간신히 마무리 지은 한미 FTA 협상을 다시 반복할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셋째, TPP 가입 요청을 받았을 무렵 우리는 중국과의 FTA 협상에 몰두하고 있었다. 불투명하고 위험한 TPP를 건드리기 보다 최대 교역 상대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한미 다음은 한중”이라는 논리는 단순하고 명백했다. 넷째, 여러 무역협정을 동시에 추진하기에는 한국의 협상 역량이 부족했다. 2011년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박태호는 “한국처럼 가용재원이 적은 나라는 ‘전쟁터’를 여러 개 만들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2) 새로운 기획을 하고 실무에 투입할 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TPP는 양허수준이 높고 새로운 무역규범이 적용될 중요한 협정이라서 한국도 빨리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3)는 제기됐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없는 역량을 쥐어짜서 섣불리 낯선 협상에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선택에 대한 평가

2018년에 우리나라가 참가하지 않은 채 CPTPP가 타결되었다. 이듬해인 2019년에 우리나라가 포함된 RCEP이 타결되었다. 이제껏 살펴봤듯이 이러한 결과는 미중 사이의 선택이 아니었다. 한국은 스스로의 로드맵에 따라 적극적이고 자주적인 FTA 정책을 실행했고, 우리가 만든 현실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지 진영논리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 주요국과 빠짐없이 FTA를 체결한 자유무역 모범국이다. 진보정권이 한미 FTA를 타결했고 보수정권이 한중 FTA를 타결했다. 그리고 어느 정권에서건 일본과의 무역협정을 보류해왔다. 종합적으로 보건데 한국의 통상정책에는 진보ㆍ보수를 아우르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정치논리가 통상협정에 개입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우리의 논리와 그에 따른 결과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TPP가 전격적으로 진행되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굳이 한미 FTA를 미리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중 FTA와 TPP를 동시에 추진할 수 없는 역량의 한계도 있었다. 게다가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을 피할 줄 알았지만 결국 RCEPㆍ한중일FTAㆍCPTPP를 통해 일본과 엮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비하지 못했다.

이러한 잘못은 반성하여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선도적으로 FTA 체결을 추진한 결과 나름 성공적인 통상국가로 자리잡았다. 앞으로 CPTPP에 추가 가입하면 잠재적인 불이익도 사라질 것이다. 한국은 2021년 4월 말레이시아에게 공식적으로 CPTPP 가입 관련 협조를 요청했다. EU를 탈퇴한 영국도 CPTPP 가입을 정식 신청했다. CPTPP의 기존 회원국들은 한국과 영국의 가입에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 소개

최필수(ccppss@gmail.com)는
세종대학교 중국통상학과 교수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 학사와 경제학 석사를, 일본 히토츠바시 ICS에서 MBA를, 중국 칭화대학 경제관리학원에서 박사를 받았다. 중국경제와 한중관계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1) https://www.fta.go.kr/main/situation/fta/world/ (검색일 2021. 6. 3.)

2) TPP 失機논란, 진실은 (동아일보 2015.10. 8.)

3) [논쟁] TPP 협상 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2013.10.26.)

 


참고문헌

  • “RCEP 위험하다” 최대 수혜국 일본, 축포 안 쏘는 이유 (조선비즈 2020.11.16.)
  • [논쟁] TPP 협상 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 ( 중앙일보 2013.10.26.)
  • “세계 최대 FTA, 중국이 RCEP 협상 주도? 틀렸다” (한겨레신문, 2020.11.16.)
  • “한-일 FTA 어려운 5가지 이유” (중앙일보, 2007. 4.10.)
  • TPP 失機논란, 진실은 (동아일보 2015.10. 8.)
  • 권율ㆍ정인교ㆍ김양희ㆍ권경덕, 2002, 동아시아 FTA의 산업별 영향과 대응방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용역보고서 (2002.12.23.)
  • 세계최대무역협정 TPP 끝내 폐기…”오바마, TPP비준 추진 포기” (연합뉴스 2016.11.12.)
  • 중국 주도 RCEP엔 가입, CPTPP는 불참…난처한 한국 (중앙일보 2020.11.14.)
  •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PIIE), 2020, Rebuild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back better (2020.11.30.)
  • FTA 포털 https://www.fta.go.kr/main/situation/fta/world/ (검색일 2021.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