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호(강남대학교)
1990년대까지 제조업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에서 담당하였으며, 개인(시민)은 기업에서 개발·제조된 대량 생산품을 받아들여, 사용·소비하는 주체였다. 즉, 1990년대까지 제조업에서는 생산자(제작자)와 소비자(사용자)가 명확히 분리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생산자와 사용자의 분리를 해소할 수 있도록, 양자 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획기적인 움직임이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소비자가 자신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그 성과를 세상에 널리 공유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이를 사용자 혁신(User Innovation)이라 불린다. 이러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요인으로는 소비자 요구의 다양화에 따른 대기업 주도의 대량 생산품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점, 3D프린터 등 디지털 공작기계가 특허 소진이나 기술 진화 등에 의해서 저가격화되어 가고 있으며, 점차 개인이 구입 가능한 친숙한 기기가 되고 있는 점, SNS나 동영상 사이트 등 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개인이 폭넓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용이하게 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사용자 혁신이나 프로슈머(Prosumer: 생산소비자, 자기 만족을 얻기 위해 생산활동을 하는 소비자)의 출현에 호응하여 디지털 공작기계를 갖춘 시민 디지털 제작터나 코워킹 스페이스 등 개인이 제작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세계 각지에서 설치되고 있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1]은 하드웨어 설계와 아이디어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하고, 공유된 정보를 바탕으로 3D 프린터, 공작기계 등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개인이나 집단이 직접 제작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제작을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라고 부르며, 제작 공동체 형태의 사용자 참여를 통한 지속 가능한 개방형 혁신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Stacey, 2014).
이러한 새로운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의 흐름 중에서 신흥국·개도국에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Fab Lab (Fabrication Laboratory or Fabulous Laboratory)은 제작 시설(디지털 실험 공방이라고 부름)을 갖춘 글로벌네트워크이다. 새로운 디지털 제작 기술과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디지털 제작 공방은 기존의 대량생산·대량소비의 맥락과 대비되어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다(Anderson, 2012; Troxler, 2013).
본 연구에서는 첫째, 옛 구루쿨라(Gurukula)[2]제도의 현대판인 빅얀 아쉬람이라는 농업공동체(대안학교)가 팹랩이라는 디지털 제작 랩과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신흥국의 모범적 디지털 제작 커뮤니티로 거듭난 사례를 살펴본다. 둘째, 인도 팹랩의 현황을 통해서 현지 실정에 맞는 팹랩의 지속가능성을 탐색한다.
팹랩의 개요
팹랩이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메이커 이니셔티브는 크게 세 가지(Makerspace, Hackerspace, Fab Lab)로 구분할 수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도구가 있는 커뮤니티 센터이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제조 장비, 커뮤니티 및 교육을 결합하여 커뮤니티 회원이 혼자 서는 만들 수 없던 제품을 디자인, 프로토타입 및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해커 스페이스는 주로 매니아들이 기술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회원들 간 학습이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 기반 공간이다. 팹랩은 ‘Fab’은 ‘Fabrication: 소규모 제작’과 ‘Fabulous: 유쾌한, 훌륭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팹랩은 학습과 혁신을 위한 플랫폼이며. 현지인의 기업가 정신을 자극한다. 교육적 관점에서 위의 정의를 볼 때 세 가지 메이커 이니셔티브의 공통 주제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 공간에서 기기를 사용한다는 것, 공간에서 수행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누구나가 자유롭게 정보를 발신할 수 있게 된 것처럼 팹랩이 각지에 보급됨으로써 누구나가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기대되고 있다. 또, 디지털 공작기계는 급속히 저가격화되고 있고, 머지않아 3D 프린터나 디지털 커팅기가 PC와 같이, 한 집에 1대씩 보급되는 시대가 다가올 것으로 전망된다.
메이커 이니셔티브는 대기업에 의한 대량생산과 시장의 논리에 제약되고 있던 제작 활동을 시민(소비자)에게 개방하고, 개인에 의한 자유로운 제작 가능성을 확대해‘자신들이 사용하는 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만드는 문화’를 배양하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지속가능한 자원순환형 사회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디지털 공작기계의 이용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제작자와 사용자 간 제작활동의 분리의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활동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개방적인 세계적 네트워크 팹랩은 3D 프린터나 커팅기 등 디지털에서 아날로그까지의 다양한 공작기계를 갖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실험적 시민 디지털 제작 공방의 세계적 네트워크이다. 지역 커뮤니티에 뿌리를 둔 시민의 제조를 위한 지역의 각 공방 시설과 그 집합체인 글로벌 네트워크 전체를 가리킨다.
이 같은 팹랩 개념을 제창한 사람은 매사추세츠공대 비트앤아톰센터(MIT’s Center for Bits and Atoms) 소장인 닐 거센펠드(Neil Gershenfeld) 교수로, 팹랩의 아버지로 불린다. 거센펠드는 2002년 인도의 빅얀 아쉬람에 세계 최초로 팹랩을 설치했다. 그 후, 선진국·개발도상국을 불문하고, 거센펠드의 생각에 공감한 전 세계 사람들에 의한 풀뿌리적인 활동이 활발해져, 그 거점 수는 2020년 10월 현재 세계 150여 개국 1,966개소로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국가별 설치된 팹랩을 살펴 보면, 현재 팹랩의 발상지인 미국이 238개소로 가장 많아, 세계 전체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 주요국의 팹랩 수를 살펴보면 프랑스 228개, 스페인 69개, 인도 69개, 영국 47개, 중국 46개, 한국 40개, 일본 20개이다.
팹랩은 세계의 폭넓은 지역에 입지하고 있지만, 현재는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 지역에 더 중점을 두고 설치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주로 정부·지자체 지원하에 디지털 제작터가 메이커 스페이스, 팹랩, 무한상상실, 시제품 제작터라는 명칭하에 전국적으로 설치․운영 중이다.
한편, 팹랩 운영 형태는 정부·지자체나 대학·연구기관이 지원하고 있는 경우, 대학·전문학교 내의 시설에 설치된 경우, 지역 커뮤니티 센터·문화시설이 운영하는 경우, 과학박물관 및 도서관과 일체화된 경우, NPO·NGO나 개인에 운영하는 경우, 사단법인·재단법인·영리기업이 운영하는 등 다양하다. 저마다 독자적인 운영 스타일이 모색되고 있다.
팹랩의 재정 구조를 살펴보면, 팹랩에서는 운영·관리비용으로 디지털 공작기계의 유지·유지관리비용과 임대료, 공간 임대료, 광열비 등이 주요 비목으로 추정되며, 그 재원도 운영형태와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각 국의 팹랩에서는 회원제에 의한 회비를 징수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이용자가 랩의 기재 이용을 위한 강습회를 수강하거나 기재를 실제로 이용할 때마다 강습회 참가비나 기재의 사용요금(정액이나 시간제 대여 등 랩에 의해서 다양)을 징수하는 사례도 있다.
한편, 기자재 구입 등을 위한 설비 투자 비용은, 회비 외에 개인이나 기업의 출자금, 기자재 제조업체 등 기업의 현물 기부(기증)나 무상 대여 등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팹랩 기타카가야에서는 장소와 설비의 유지를 참가회원의 연회비로 조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드는 장소를 스스로 확보한다는 점에서도 제작에 참가하는 전원이 대등한 관계성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팹랩의 특징
⓵. 현실과 가상을 융합한 네트워크
개별 팹랩은 어린이, 학생, 퇴직한 시니어, 엔지니어, 디자이너, 장인, 연구자 등 다종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이 자유롭게 모여 자유로운 발상·아이디어로 실제로 제조할 수 있는 오픈 워크숍 공간으로, 사용자 간 얼굴을 대면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현장이다.
팹랩에서는, ‘Learn(도구의 사용법을 배우고)’→ ‘Make(도구를 사용해 실제로 물건을 만들고)’→ ‘Share(그 성공 체험이나 실패 체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를 글로벌 공통의 기본 사이클로 하고 있으며, ‘팹랩은 기자재 대여의 장소가 아니고, 모인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장소’라는 발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팹랩에 모인 사람들이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배경을 넘어, 느슨하게 연결되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팹랩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데이터를 바탕으로 3D프린터 등 디지털 공작기계를 이용해 제작하는‘디지털 패브케이션’은 개인에 의한 제작을 가리키는‘퍼스널 패브리케이션(Personal Fabrication)’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지만, 팹랩에서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은 공동창조에 의한 제작을 가리키는 ‘소셜 패브리케이션’이 조금 현실에 부합된다. 바꾸어 말하면, 팹랩은 ‘DIY: Do It Yourself(스스로 만든다)’로부터 ‘DIWO: Do It With Others(함께 만든다)’로의 진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⓶ 전 세계의 팹랩을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개별 팹랩 내에서 시민의 느슨한 연결과 함께 전 세계의 팹랩을 중개하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팹랩의 중요한 특징이다. 글로벌 네트워크에는 설계 데이터의 공유 등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의 특성을 잘 활용한 ‘가상의 공간’이다. 즉, 팹랩에서는 웹 환경을 활용하고, 제조에 관한 지식·노하우나 디자인 등의 세계적 규모의 공유 활동, 바꿔 말하면 오픈 소스화로 대응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로서 공통의 권장 기자재를 갖추고, 그리고 실제로 이 활동에 협력·참가하는 것이 팹랩의 명칭을 이용하기 위한 조건도 되고 있다.
오픈 소스화의 한 예로는 팹랩 가마쿠라에서 현지 가죽 장인과 디자이너가 만든 유닛 ‘KULUSKA(크루스카)’에서 만들어진 슬리퍼 키트 데이터를 웹상에서 오픈했는데, 케냐의 팹랩이 그 사용이 허가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현지 소재인 물고기 가죽(세계 최대의 식용어인 나일퍼치의 가죽을 테구스로 누빈 것)를 이용하는 등의 개선을 추가하여 상품으로 판매하여 해당 팹랩의 수익원이 되었다.
전 세계 팹랩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장소로서 세계 팹랩 회의가 연 1회 세계 어디선가 개최되고 있어 국제적 네트워크로서 면대면의 ‘실재 공간’이 되고 있다. 여기서는 워크숍, 실습, 심포지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정보공유가 심화되고 있다. 2020년 Fab15 (글로벌 컨퍼런스)는 8월 3일 ~ 4일까지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되었다.
⓷ 현장과 가상 공간을 최적 융합한 네트워크 구조
팹랩에서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의 특성을 살린 웹 환경하에서 오픈 소스화의 추진으로 전 세계 팹랩 간 가상적으로 완만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랩의 DIWO를 위한 대응이나 세계 팹랩 회의의 개최 등에 의해 얼굴이 보이는 현장의 구축에도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상의 공간과 현장을 최적 융합시킴으로써 지역 및 글로벌 수준에서 지식과 창의적 연구를 결집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팹랩의 네트워크를 사회적 자본이론을 적용하면, 지역 차원에서는 개개의 팹랩 내에서의 인적 네트워크의 긴밀성을 완만하게 높이면서, 글로벌 차원에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팹랩 사이를 연결하는 사회적 자본을 국경을 초월하여 연결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개개의 팹랩에 모이는 사람들이나 전 세계의 팹랩에 있어서 랩의 4개 요건[3]이나 팹랩 헌장이 공통의 근거가 되고 있으며, 이것이 완만한 만들기 커뮤니티의 일치 결속을 추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도의 팹랩
인도 팹랩의 현황
2002년 인도 최초의 팹랩이 설치되었다. 인도의 팹랩은 지역사회의 풀뿌리 공동체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인도의 팹랩은 초기 도입 단계에서 다양한 토착 지식과 결합하여 새로운 신기술이 탄생시켰다. 디젤 엔진보다 정확한 타이밍의 역할을 수행하는 타이밍 보드를 개발하여 현지의 다양한 이동 수단에 도입하였으며, 우유의 품질을 결정하고 감시하는 데 사용되는 장치도 개발하였다. 이러한 기술들은 인도 공동체의 풍부한 아이디어와 팹랩을 활용한 상향식 접근법을 사용하여 저비용으로 개발하였다.
인도 전역에 69개의 팹랩이 있으며, 이는 러시아의 48개를 앞서는 신흥국 최대 규모이다. 인도의 팹랩은 6개월마다 주기적인 모임을 통해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많은 스타트업을 양산해내고 있다. 인도의 스타트업은 팹랩을 통하여 시각장애인용 체스, 구글 지도를 통한 공해 매핑 기술, 실크를 이용한 바이오 디거밍 기술, 뮤지컬용 계단 제작, 하이브리드 자전거 제작, 백라이트 개발 프로젝트, 홀로그래픽 개발 프로젝터, 브레인 제어가 가능한 휠체어 의자 등의 기술을 개발하였다.
팹랩 빅얀 아쉬람(Vigyan Ashram)의 탄생 배경
1980년대에는 인도 인구의 90%가 학교 교과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했으며, 75%는 여전히 학교가 부족하고 교육시스템이 잘 갖추어지지 못한 시골 지역에 살았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칼백(Kalbag) 박사는 푸네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파발(Pabal) 마을에 빅얀 아쉬람(Vigyan Ashram)이라는 대안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대안학교의 학생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부모의 자녀들로 교육 기간은 2년이었다. 빅얀 아쉬람은 1983년 2월에 설립되었으며, 교육, 기업 개발 및 농촌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둔 마을 기반의 자발적 조직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였다. 빅얀 아쉬람의 목적은 스스로 기술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가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육을 통한 개발 및 개발을 통한 교육’, 즉 RDES (Rural Development through Educational System)를 제공하는 장소이다. 이 학교에는 2개의 핵심 프로그램이 있다. 즉, 교육을 받지 못한 초보자를 위한 DBRT (Diploma in Basic Rural Technology)와, 초보자를 위한 IBT (Introduction to Basic of Technology)가 있다.
2000년 팹랩의 창시자인 MIT 비트 앤 아톰센터(Bit and Atom Center) 소장 거센펠드가 이곳을 방문한 후, 팹 재단(Fab Foundation)은 빅얀 아쉬람의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제작 기계와 도구를 제공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팹랩 빅얀 아쉬람이 시작되었다. 미국 MIT에서 팹랩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이후, 첫 번째 팹랩이 탄생한 것이다.
팹랩 빅얀 아쉬람의 성과물
팹랩 빅얀 아쉬람은 현지인이 자신의 손으로 물건을 제작하기 위한 공동 공작시설로서 운영되고 있다. 팹랩 빅얀 아쉬람은 레이저 커터, 비닐 절단기, 밀링머신, 플라즈마 금속 절단, 3D프린팅, 전통적 제작 도구를 모두 갖추고 있다.
팹랩 빅얀 아쉬람은 초보자를 위한 워크숍과 소규모 캠프를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와 초보자를 위해서는 아두이노(Arduinio) 기반 프로젝트, 엔지니어를 위한 디지털 제작 도구 사용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 외 팹 아카데미(Fab Academy)는 6개월 동안 미국 MIT와 연계된 원격학습을 통해 풀 타임으로 디지털 제작에 대한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과정이다.
팹랩 빅얀 아쉬람에서 만들어진 것은 저수를 위한 비닐 시트, 폴리 하우스, 날씨 데이터 축적기, 태양열 조리기, 자전거를 개조한 발전기, 관수기, 인터넷용 무선 안테나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다. 예를 들어, 마을에 저수를 위한 비닐 시트를 설치한 결과, 개나 고양이가 접근하다 추락하여 물속에 빠져버리는 문제가 다수 발생하였다. 그래서 발명한 것이 동물이 싫어하는 초음파를 발생하는 장치(전자 회로)를 추가로 개발하여 개나 고양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자전거를 개조한 발전기는 페달 발전기는 전기가 닿지 않는 오지에 살고 있는 집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도는 몬순 기간이나 우기에는 밤에 전등으로 사용하는 LED 단자를 충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팹랩의 디지털 제작장비를 이용하여, 자전거와 충전 회로 연결한 자전거 페달 발전기를 만들었다. 이 제품은 2007년 세계은행 시장개발공모전에서 수상하였으며, 오지 마을의 40여 개가 넘는 기숙학교에 공급되었다.
인도 팹랩의 지속가능성을 향하여
인도는 13.5억 명의 전체 인구 중, 중산층이 8억 명 정도이다. 중산층이 전체 소득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중산층의 소득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앞으로 이들이 인도 전체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도의 휴대폰 보급률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중 스마트폰의 보급률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는 ICT 분야에서 많은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인건비가 낮으며, 영어가 가능한 고급 기술인력이다. 또한, 정부가 ICT 산업 육성에 적극적인 정책을 펼친 덕분에 ICT 아웃소싱 입지로서의 요건을 두루 갖출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인도는 글로벌 ICT 서비스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IBM을 비롯한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인도에 R&D 센터를 설립하여 운영 중이다.
팹랩은 기존의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생산자(만드는 사람)와 소비자(사용하는 사람)의 분리 행위를 수정하려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을 실천하는 순환과정은 ‘배우고 (Learn)’, ‘만들고 (Make)’그 과정과 결과를 ‘나누는 (Share)’것이다. 팹랩 로고는 그 철학을 구현한 3색,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Osunyomi, 2015).
인도에서 팹랩의 이념은‘대량생산(Mass Production)에서 대중에 의한 생산(Production by Mass)’으로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견해를 현재화된 것이다. 인도의 팹랩은 인도 문명의 하부구조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늘 몸에 지니고 다녔던 물레는 영국 면직물 제품을 대체할만한 의류를 자급자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팹랩 빅얀 아쉬람은 간디의 자급자족의 정신을 계승하여, 자신이나 커뮤니티가 필요로 하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 조달한다는 공동제작의 정신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공동제작의 정신이 거센펠드의 디지털 제조와 접목하면서, 세계 최초로 팹랩이 만들어진 것이다. 즉, 지역의 문화가 글로벌 디지털 제조와 결합하여 디지털 제조 커뮤니티의 모델 사례로 발전하고 있다.
디지털 제작이 가능한 팹랩 네트워크는 제품 대부분을 현지서 제조할 수 있고, 제도에 대한 지식을 얻어서 외부로 전파할 수 있다. 이것은 지역사회의 풍요함을 증가시키고, 제품의 지역별 분산 생산을 가져올 것이며, 더 나아가 도시에서 마을로 고용 기회의 역이동을 촉진하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인도는 ICT·SW 서비스 분야의 세계적 강국이며, 간디의 생각처럼 필요한 것은 스스로 제작하는 문화가 있어서 팹랩을 활성화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수익 창출, 교육, 공공사업 등의 다양한 면모를 동시에 지니는 팹랩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방대한 지역 혹은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슈퍼 팹랩으로 도약할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최근 국제연합(UN)에 따르면 세계 도시 인구는 점점 늘어나 2050년 전 세계 인구의 75%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주택, 교통, 공해, 에너지 등 도시문제도 함께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원을 소비하는 도시에서 시민 주도로 자체 생산력을 갖춘 도시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팹시티(Fab City)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팹 재단(Fab Foundation)이 추진하는 팹시티 프로젝트는 지구촌의 지속 가능한 자원 순환형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2054년까지 도시의 자급자족률을 50%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도의 팹랩은 향후 자국 내 IT SW·서비스를 기반으로 팹랩의 제작기반을 결합할 경우, 신흥국의 지속 가능한 디지털 제작 사회의 유력한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 예컨대 정부의 태도, 교육 수준, 생활 수준, 그리고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하여 그 잠재력을 냉정하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진단할 필요가 있다.
저자 소개
김윤호(kic555@naver.com)는
강남대학교에서 강의중이며 아시아의 저소득층, 팹랩(Fab Lab)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에서 학사학위를 마치고, 경영학과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우송대학교 초빙교수, 서울과기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팹랩 관련 실적으로 저·역서(팹랩과 팹시티, 팹 라이프) 및 논문(일본 팹랩 사례와 적정기술 진흥 정책, 필리핀 팹랩 보홀의 업사이클 플라스틱 개발, 적정한 신기술 프로토콜 2.0) 등을 게재하였다.
[1] Manufacturing은 공장의 대규모 조립라인에서 생산하는 제조 활동을 말하며, Fabrication은 소규모 가공 제작을 말한다. 본 연구에서는 기존 문헌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Digital Fabrication을 디지털 제조가 아닌 디지털 제작이라는 용어로 사용한다.
[2] 산스크리트어로 ‘빅얀’은 진실의 추구, 아쉬람은 소박하게 살되 깊은 사고를 하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빅얀은 모든 것이 평등한 단체이므로, 옛 구루쿨라(GuruKula)제도의 현대판이다. 구루쿨라는 구루의 집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이며, 구루쿨에서 학생들(쉬시야)은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지내고 구루로 부터 배우고 구루의 일상생활을 도와준다(Walter-Herrmann & Büching, 2014).
[3] 팹랩의 4대 요건은 일반 시민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랩과 공통되는 공정과 도구, 기술세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팹랩 헌장에 서명하고, 준수해야 한다. 팹랩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참여해야 한다.
참고문헌
- Anderson, C. 2012. Makers: the new industrial revolution, London: Random House Business
- Osunyomi, B. D. 2015. Value Creation: FabLab’s Journey so far. Helmut Schmidt Universitat. Pozyskanoz: https://www. greenlab-microfactory. org/publications.
- Stacey, M. 2014. “The FAB LAB Network: A Global Platform for Digital Invention, Education and Entrepreneurship.” Innovations: Technology, Governance, Globalization 9(1-2), 221-238.
- Troxler, P. 2013. “Making 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 – The Struggle for Polycentric Structures and New Peer-Production Commons in the Fablab Community.” In. J. Walter-Hermann & C. Buching, eds. Fablab of Machines, Makers and Inventors. Biefield: Transcript Verlag, 181-198.
- Walter-Herrmann, J., & Büching, C. Eds. 2014. FabLab: Of machines, makers and inventors. transcript Verl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