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와 창업자: 금권 시대 인도네시아의 청년정치

가문정치, 세습정치가 인도네시아에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늘어난 ‘금수저 청년정치’ 현상은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이 2020년 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같이 주목받게 되었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에서 개방형 비례대표제로의 전환과 정당보조금 삭감이라는 제도적 변화가 정당정치를 약화시키고 정치의 개인사업화를 촉진하면서 차세대 정치인의 풀을 대폭 좁힌 현실을 조명한다. 20대 중반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대통령의 밀레니얼 특별보좌관으로 채용된 청년은 모두 부모의 배경이 있거나 창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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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란 라카부밍 라카(현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

서지원(창원대학교)

2020년 정치 유망주, 기브란

2020년 상반기에 코로나바이러스 다음으로 인도네시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름이 있다면 아마도 기브란의 이름일 것이다. 중부자바의 도시 솔로 시장을 역임하며 돋보이는 행정능력을 바탕으로 자카르타 주지사에 이어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작년에 재선된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Gibran Rakabuming Raka)는 싱가포르와 호주에서 유학한 1987년생의 사업가로서 솔로에서 케이터링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계 입문에 뜻이 없다던 기브란은 그의 솔로 시장 출마를 가정한 2019년 7월의 설문조사에서 인기도 90%를 기록한 이후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8월에 정계진출 의사를 밝히고, 9월에 아버지의 소속 정당이자 인도네시아 의회의 원내 제1당인 투쟁민주당(PDI-P)의 당원으로 등록했다. 10월에는 자카르타의 멘텡에 있는 투쟁민주당 총재 메가와티 수카르토푸트리의 자택을 방문했다. 멘텡을 찾아간 기브란의 셔츠에는 메가와티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그려져 있었다. 기브란은 수라바야의 리스마 시장, 중부자바의 간자르 푸르노오 주지사 등 정치 신인으로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거물들을 찾아가 만나며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7월, 투쟁민주당은 기브란을 솔로 시장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기브란의 투쟁민주당 시장 후보 지명은 정당정치에 대한 세습정치의 도전이었다. 투쟁민주당에는 정당의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하려면 적어도 3년 동안 당원으로서 활동해야 한다는 중앙위원회의 내규가 있었다. 투쟁민주당의 솔로 지부는 기브란의 출마에 대해 내내 부정적이었다. 조코위 대통령의 솔로 시장 재임 당시 부시장을 지냈던 투쟁민주당의 루디(FX Hadi Rudyatmo) 솔로 지부장은 기브란이 투쟁민주당에 입당한 바로 그날, 지부 차원에서 솔로 시장-부시장 후보를 지명했다. 투쟁민주당 솔로 지부가 지명한 시장 후보는 솔로 부시장을 지낸 1948년생 아흐마드 푸르노모(Achmad Purnomo)였다. 투쟁민주당은 솔로 의회 45석 중 30석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누가 투쟁민주당의 시장 후보로 출마해도 당선될 수 있었고, 지역에서 아흐마드 부시장의 인기도 높은 편이었다. 기브란이 일찍이 그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한 골카르를 비롯한 다른 정당의 지지를 업고 솔로 시장에 출마하기보다는 기어이 투쟁민주당의 후보 지명을 받으려고 했던 것은 솔로에서 절대적인 투쟁민주당의 지지세를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료: Hasto Kristiyanto 공식 트위터, Wikipedia

메가와티 총재가 기브란의 예방을 받았을 때 동석했던 하스토 크리스티얀토(Hasto Kristiyanto) 투쟁민주당 사무총장은 당시 메가와티가 기브란에게 “우리는 평등을 중시하니 먼저 지부에 후보 등록을 해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올해 2월, 메가와티는 2020년 단체장선거 출마자들 앞에서 “2024년 총선에서는 정치인들이 아이들에게 출마를 강제해서는 안된다”라는 내용으로 연설했다. “당이 차세대 주자를 양성할 필요는 있지만 차세대 주자가 현역 정치인들의 배우자나 자녀일 필요는 없다, 현역 정치인의 자녀와 배우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당의 청년 정치인들을 내 자식처럼 키워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의 딸 푸안(Puan Maharani)이 국회의장을 연임할 정도로 성장한 것은 나의 도움과는 상관이 없으며 오로지 푸안 자신의 능력 덕분이다”라는 것이 이날 연설의 요지였다. 첨언하자면, 메가와티는 투쟁민주당을 창당하기 이전에 민주당에서 비교적 단시간 내에 지도자로 부상하기는 했지만 지도부에 오르기 전 수년 동안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푸안도 당의 내규를 어기면서까지 당직이나 공직에 출마한 적은 없기에, 당의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메가와티를 직접 찾아가 후보 지명을 받아낸 기브란과는 경우가 다르기는 했다.

2020년 4월이 되면 투쟁민주당의 솔로 지부가 지명했던 아흐마드 시장 후보도 ‘대통령에게 이 문제와 관련되어 직접 부름을 받았다’라는 뒷이야기를 남기고 사퇴해 버리고, 오로지 루디 지부장만이 조코위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까지 단절하며 중앙당의 공식 후보 지명 직전까지 아흐마드의 출마를 주장했다. 그러나 당의 기풍을 세우기 위해 세습정치를 거부했던 루디의 싸움은 외로웠다. 기브란 이외에도 수많은 2세들이 2020년 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다. 조코위 대통령의 사위인 보비 나수티온(Bobby Nasution)은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인 메단의 시장으로, 투쟁민주당 사무총장 출신으로 내각사무장관(Sekretaris Kabinet)을 맡고 있는 프라모노 아눙의 아들은 동부자바 크디리 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마루프 아민 부통령의 딸인 시티 누르 아지자(Siti Nur Azizah)는 반튼주 남탕거랑시 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그린드라 대표이자 국방부 장관을 맡고 있는 프라보오의 조카 사라스와티 조요하디쿠수모(Saraswati Djojohadikusumo)와 맞붙게 된다.1)

자료: exbulletin.com, Wikipedia

 

민주화 이후 정당정치의 변화와 세습정치

세습정치와 족벌주의(nepotism)는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998년 경제위기 가운데에서 높아 가던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대중적 불만에 불을 당긴 요인 중 하나는 수하르토가 자신의 큰딸을 사회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부패 반대, 족벌주의 반대는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뜨린 시위대의 구호였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20년이 흐른 지금 세습정치는 일부 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 정당정치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세습정치의 일상화에 대해 민주화 이후 정당정치가 겪은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50년대 의회민주주의 시대에 인도네시아의 정당정치는 매우 활발한 편이었다. 민족주의 계열의 국민당, 이슬람 계열의 마슈미, 그리고 공산당 등 주요 정당들은 마을 단위까지 뻗어 있는 당 지부와 농민회, 노동조합, 청년회, 여성회, 학생회, 예술가 협회 등의 다양한 가맹단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정당은 자선단체와 금융조합을, 때로는 사립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계층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당과 가맹단체에 가입하여 정치적인 주체로 거듭났으며,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속한 알리란(aliran)과 함께 하는 활동에 할애했다. 인도네시아공산당 관계자들은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가 1억 명이던 1965년에 300만 명의 당원과 2,000만 명의 가맹단체 회원이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을 과장이 섞인 숫자라고 생각하더라도 정당 활동이 대단히 활발했음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1998년까지 이어진 수하르토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마을 단위의 정당 활동은 금지되었으며, 여러 야당들은 이슬람 계열의 통합개발당(PPP)과 비이슬람 계열의 민주당(PDI) 두 개의 정당으로 통합되었다. 여당인 직능집단 골카르(Golkar)는 정권의 후견-수혜 관계가 작동하는 경로로 활용되었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1999년 총선에는 47개 정당이 후보를 냈고, 이 중 20개 정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했다. 원내진출 정당의 숫자는 선거 때마다 지부설립 요건이 까다로워지고, 원내진출에 필요한 최소득표율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2020년 현재 신생정당을 설립하거나 정당에서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려면 전국 모든 주와 기초단위의 75%, 그 아래 읍면 단위의 50%에 지부를 설립해야 한다. 원내진출에 필요한 최소득표율은 4%로 높아졌다(Fionna and Tomsa 2020).

이처럼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기존 정당에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데도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정당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정치가 필리핀처럼 완전히 개인화된 파벌 중심의 정치로 갈 것인지, 그래도 예전의 정당정치 전통과 이슬람 대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균열, 그리고 기존 정당을 우대하는 정치제도가 있으니 그 정도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인지 하는 논쟁이 있을 뿐(Fionna and Tomsa 2020), 정당의 역할이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관찰자들이 동의한다.

정당의 약화를 낳은 제도적 변화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으며, 이 두 가지 모두 선거 및 정당정치에서 돈이 갖는 위상의 강화와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변화는 개방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다. 1999년 총선은 권역별 폐쇄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치러졌으나, 그 이후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취지 하에 개방형 비례대표제(선호투표제)의 요소가 도입되었다. 2004년에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은 후보가 정당명부에 후순위로 등재되어 있더라도 선출될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으나, 이 규정의 적용을 받아 원내진출에 성공한 후보는 전국적으로 2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2009년 선거를 앞두고 헌법재판소 판결로 갑자기 완전한 개방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었다.

2009년에는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지 못했던 정치인들도 2014년 선거부터는 개방형 비례대표제 하의 규칙에 충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보들은 이제 다른 당의 후보와 경쟁하는 것에 더해 같은 지역구에 출마한 같은 당의 후보와 경쟁해야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 지역에서의 선거운동은 정당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후보가 개인적으로 꾸린 선거운동 팀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른 후보와 차별화하기 위한 주요 전략은 잘 짜인 후견-수혜 네트워크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고, 나아가 돈을 주고 유권자들의 표를 사는 등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써야 하는, 이때까지 인도네시아 선거에서 관행화되어 있지 않았던 방식들이었다(Aspinall and Sukmajati 2016; Ridwan 2016).

후보자들은 자신의 선거운동 팀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주어야 하고, 매표 전략을 택하는 경우 유권자들에게 뿌릴 돈도 마련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 티셔츠, 포스터, 간판 등을 마련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을 도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일부 정당에서는 선거 당일 투표소에 파견할 투·개표 참관인에게 지급할 수고비 등 다양한 ‘운영비’ 명목으로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돈을 걷는다. 이런 식으로 드는 비용을 모두 합치면 1명의 후보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부담해야 할 비용은 한국 돈으로 1억 원에서 6억 원 사이라고 후보들은 밝혔다고 한다. 이것은 출마하기 한참 전부터 공동체에 봉사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이 지역에서 지출해 온 인프라 건설비와 종교시설 건립비용 등은 제외한 것이다(Ella 2020; Ridwan 2016).2)

두 번째 변화는 정당보조금 삭감이다. 유도요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5년에 이루어진 정당보조금 ‘개혁’ 이래 정당들은 이미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2004년에 보조금으로 35억 원 이상을 받은 투쟁민주당은 2006년에는 2억 원 정도밖에 받지 못했다(Mietzner 2007, 244).3) 선거비용뿐만 아니라 법에 따라 전국 각지에 두어야 하는 정당 사무실 운영비와 각종 행사비를 생각하면 애초에 받던 보조금도 충분한 돈은 아니었지만, 이 개혁의 결과 정당의 재정은 심각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2009년에 투쟁민주당이 공식 지출한 선거비용 중 국가보조금은 0.4%밖에 되지 않았다(Mietzner 2013).4)

정당보조금 개혁과 개방형 비례대표제로의 전환 이후 돈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길은 막히게 되었다. 이제 청년이든 중년이든 선거에 출마하려면 자신의 선거비용을 댈 수 있는 금전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자나 시민사회 활동가, 학생운동가 출신이 정치권의 새 얼굴로 등장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고, 사업가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정당은 각급 의회 선거와 단체장,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를 결정하는 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 출전하는 것은 정당 조직이 아니라 개인사업과 다름없는 선거운동 팀이다. 후보들은 선거운동 팀을 꾸릴 때 가족 구성원을 기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업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가족들이 가장 열심히 일하고 충성심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Ridwan 2016, 387).

금권 정치의 시대를 맞아 정당조직이 수행해 온 자체적인 충원기능도 약화되고 있다. 1999년 총선 직후에는 각 정당에서 청년회 활동이 비교적 활발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투쟁민주당의 청년회(sayap pemuda)에 대해 검색을 해 보면 ‘타루나 메라푸티’(Taruna Merah Putih)라는 단체가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단체의 트위터 계정 팔로어 숫자는 고작 3,973명이며, 2018년 7월에 마지막 트윗을 올린 것으로 되어 있다. (혹시나 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보았는데, 마지막 인스타 사진은 2018년 6월에 게시되었다.) 학생단체나 청년단체, 종교단체 활동을 거쳐 정당의 청년회나 여성회에서 정당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야심찬 중산층 청년들의 출세길은 이제 거의 막혔다. 정당들이 충원하는 청년 정치인은 자신의 선거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사업가 집안의 자녀, 정치가 집안의 자녀 또는 사업을 하는 정치가 집안의 자녀로 국한된다. 이렇게 세습정치의 시대가 열리고, 정치는 가족 사업이 되었다. 메가와티가 자신의 딸을 국회의장으로 만들고, 유도요노가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자신의 아들을 자카르타 시장 후보에서 나아가 당 총재로까지 만드는 마당에 우리 집안이 그렇게 못 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금수저’ 청년 정치인의 약진

세계적으로 ‘밀레니얼 세대’와 청년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흐름을 타고 2019년 인도네시아 선거에서도 청년정치의 바람이 불었다. ‘밀레니얼 정당’을 표방하며 청년 후보를 다수 출마시킨 신생 정당 연대당(Partai Solidaritas Indonesia)의 포스터가 자카르타 중심부를 뒤덮었고, 다른 정당에서도 청년 후보들이 여럿 출마했다. 연대당은 자카르타 의회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국회 선거에서는 4%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의회에 진출한 것은 다른 여러 정당에서 출마시킨 20대 후보들이었다. <표1>에는 2019년 10월에 임기를 시작할 당시 23세에서 26세 사이였던 초선 국회의원 10인의 프로필이 정리되어 있다.5)

자료: Wikipedia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는 청년 후보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청년 후보에 대한 인도네시아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대 정치인이라는 현상 자체는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현재 동부자바 주지사인 코피파 인다르 파라완사(Khofifah Indar Parawansa)는 1965년생으로서 대학 졸업 직후인 1992년에 통합개발당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동시에 통합개발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그린드라의 파들리 존(Fadli Zon) 역시 1971년생으로서 1997년에 국민협의회에 선출되고, 곧이어 이슬람 계열 월성당의 공동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당시에도 정치인 집안 출신으로 정치에 진출하는 청년들이 있었지만, 코피파나 파들리처럼 특별한 집안 배경 없이 출세하는 청년 정치인들도 적지 않았다.

2019년에 당선된 10명의 초선 의원의 프로필을 보면 공통적으로 내세울 만한 집안 배경이 있어 부모의 도움을 받아 정치에 진출한 소위 ‘금수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전직 국회의장 아데 코마루딘의 딸 푸트리 코마루딘이나 아버지가 현직 주지사로 있는 지역구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아르카나타 아크람은 부모의 영향력을 등에 업었음을 쉽게 알 수 있는 경우이다. 이외에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기초단체장(군수)이거나 은행장, 경찰간부인 경우 등이 있다. 내세울 만한 부모가 없는 경우는 전무하다.

2019년에 임기를 시작할 때 26세 이하였던 인도네시아 국회의원 10인의 프로필

금수저 청년 정치는 특정 집단만의 전유물일까? 예전에는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과 달리 주로 세습을 통해 정치에 진출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10명의 초선 의원 중 남성이 6명, 여성이 4명인 것을 보면 금수저 청년 정치가 특정 성별과는 무관한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지역적으로는 외곽도서라고 불리는 술라웨시와 칼리만탄에서 당선된 인원이 4명으로 인구에 비하면 많은 편이지만, 금수저 청년들은 서부자바와 반튼, 중부자바와 동부자바에서도 당선되었다. 즉 금수저 청년 정치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정당을 보면 주로 수하르토 시대의 여당이었던 골카르와 정치적 야심을 가진 개인들이 골카르에서 탈당하면서 만든 그린드라, 나스뎀, 민주당에 금수저 청년 정치 현상이 집중되어 있기는 하나, 이들의 소속 정당이 9개의 원내 진출 정당 중 5개임을 생각하면 어느 특정 정당에 국한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리즈키 나타쿠수마(반튼주 판덱랑군수, 아버지와는 다른 당 후보로 출마하여 같은 선거구에서 당선)
자료: Rizki Natakusumah 공식 트위터

아버지가 통합개발당에서 번영정의당으로 이적한 정치인인 반면 아들은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리즈키 나타쿠수마(Rizki Natakusumah), 그리고 삼촌은 초대형 부패 사건으로 유명한 민주당 정치인이고 아버지는 2019년까지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는데 본인은 그린드라로 출마하여 당선된 무함마드 라훌처럼 부모와 자녀의 소속이 다른 경우도 더러 있다. 이것은 금수저 청년 정치가 정당에 구애받지 않는 가족 중심의 사업임을 드러낸다.

이들이 출마하면서 신고한 재산의 중앙값은 4억 2천만원이며, 30억원 이상의 부동산과 주식을 신고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재산이 2천만원 이하인 것으로 신고한 후보도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재산 신고액이 크게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본인 소유 재산이 3392만원이라고 신고한 파크리 의원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면 지역 군수의 딸과 결혼하면서 신부대금으로 니켈 광산을 내놓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금수저 청년 의원들의 출신학교이다. 10명 중 프로필에 출신대학을 기재하지 않은 2명을 제외하면 모두 8명이 4년제 대학 졸업자이고, 개중에는 대학원을 졸업한 경우도 있다. 이들 중 영국, 호주 등 외국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의원이 5명이며, 인도네시아에서 학사학위과정을 밟은 의원은 3명으로서 소수이다. 20대 중반이라는 이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성인으로서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해 본 적도 없는데 국회의원이 되어 입법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학생 출신 의원 중에는 이미 10대부터 국내외의 국제학교에서 공부한 경우가 많았다. 동부자바에서 26세의 나이로 당선된 디아 로로 에스티 의원은 아예 초등학교부터 국제학교를 나왔고, 석사학위까지 있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인도네시아어로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경력의 소유자이다.

여기에서 금수저 청년 의원으로 소개한 10명은 부모의 직위와 지역구를 그대로 물려받지 않았고, 일부는 부모가 정치인이 아니기에 아주 엄격한 잣대로 따지자면 ‘세습정치인’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들은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이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손녀’라는, 가족의 명성에 따른 ‘후광’을 입었다기보다는 (추정컨대) 부모의 재산과 인맥이라는 쏠쏠한 자원을 물려받아 정계에 진출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리고 이들을 제외한 같은 연배 청년 의원의 부재는,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가 겪은 금권 정치 발달과 정당정치 약화의 산물이며, 인도네시아 정치가 정당의 브랜드를 빌린 개인과 가족의 사업처럼 되어 버린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기브란을 비롯한 현직 정치인 가족의 정계 진출과 다르지 않은 현상이다.

 

금권정치 시대의 청년정치

조코위 대통령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전문성이 없는 정당정치인 대신 각계의 전문가를 내각에 기용하겠다는 약속으로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2019년 대선 이후 꾸려진 내각을 보면 조코위 대통령이 생각하는 ‘전문가’란 ‘성공한 사업가’임을 알 수 있다. 택시 호출 앱으로 출발하여 각종 배달, 출장 서비스로 인도네시아인들의 일상을 바꿔 놓은 신생기업 고젝(Go-Jek)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를 지낸 35세 나딤 마카림이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한때 프로축구단 인터밀란의 최대주주였던 재벌 2세 사업가 에릭 토히르는 조코위 대통령의 선거운동본부장을 거쳐 공기업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에릭은 2024년 대선주자로 꾸준히 거론된다. 이제 사업가들은 구태여 정당에 많은 돈을 내고 선거에 뛰어들거나 당권에 도전할 필요 없이 전문가라는 명목으로 내각에 바로 기용된 후, 장관으로서의 입지를 바탕으로 대권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조코위 대통령은 2019년 11월, 14명의 특별보좌관(Staf Khusus) 중 7명을 ‘밀레니얼 세대’로 임명했으며, 이들을 대통령궁에서 직접 소개하는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표2>는 밀레니얼 특별보좌관 7명의 프로필을 조코위 대통령에게 소개받은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2019년 조코위 대통령이 임명한 ‘밀레니얼 특별보좌관’

이들 중 언론재벌의 딸로 싱가포르에서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닌 23세 푸트리 탄중은 앞에서 소개한 금수저 청년 정치인들과 프로필이 유사하다. 나머지는 같은 밀레니얼이지만 나이가 30대이고, 인도네시아에서 명문대학을 나온 후 외국 유명 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는 전통적인 코스를 거친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조코위는 이들의 인도네시아 학력은 생략하고, 대학원 학력만을 언급했다). 밀레니얼 특별보좌관에는 청각장애인과 파푸아인 등 소수자가 포함되어 있어 다양성을 고려한 흔적도 보인다.

외국의 명문대 학위가 있다는 것 외에 밀레니얼 특별보좌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창업을 한 사업가라는 것이다. 7명 중 5명이 CEO 직함을 쓰고 있고, 이 중 기업을 창업한 청년이 4명이다. 인도네시아에서 20대나 30대 청년이 창업해서 성공하는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조코위 대통령이 밀레니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채용한 특별보좌관의 대다수가 사업가라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인도네시아 국내 대학을 나와 변호사, 학자 등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중산층 출신의 엘리트는 이제 선거에 출마하는 형태로 정계에 진출하기 어렵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기 자본이 필요하지 않은 대통령의 자문역 자리에서마저 밀려났다. 아무것도 창업하지 않은 사람은 이슬람학생운동이라는 학생단체 의장 출신의 아미누딘밖에 없는데, 아마도 종교계를 홀대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포함한 것 같다.

밀레니얼 특별보좌관들 중 2명은 근무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업적 혜택을 받으려 한 ‘이해충돌’ 사건의 발생으로 직에서 사퇴했다. CEO라는 명칭을 굳이 사용했지만 6명 중 3명은 사회적기업과 비영리재단 운영자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일반 기업을 운영하는 남성 100%, 또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재벌 가문 자녀가 아닌 사업가 100%가 문제를 일으킨 셈이다. ‘이해충돌’ 사건, 그리고 이들이 전일제로 근무하지도 않으면서 월급을 400만원씩이나 받는다는 기사 외에 달리 밀레니얼 특별보좌관의 역할이 부각된 적은 없다.

 

차세대 족벌주의의 정치 독점?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정치 가문’의 존재는 새롭지 않은 현상이다. 현재 원내 정당에 진출한 9개 정당의 대표들(<표3> 참조) 중에서도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아들 아구스 유도요노는 ‘빼박’ 세습 정치인이며,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딸 메가와티 전 대통령과 명문가 조요하디쿠수모 집안 출신으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프라보오 수비안토 역시 넓게 보아 세습정치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업가 출신이 정치를 하는 것도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골카르에서 갈라져 나와 나스뎀을 창당한 수르야 팔로는 언론사 사주이다.

하지만 이슬람 학생운동가 출신인 국민각성당의 무하이민, 학자 출신인 번영정의당의 소히불 이만 등 이슬람 계열 정당의 대표들은 금수저도, 창업자도 아니다. 대선주자군으로 거론되는 자카르타와 서부자바·중부자바·동부자바 현직 주지사도 금수저나 사업가가 아니고 학자, 건축가 등 전문직이거나 청년시절부터 정계에 몸담아온 전업 정치인이다.

태국, 필리핀 등 1990년대에 민주화된 역내 다른 나라에 비해 정당정치가 비교적 잘 작동하고 있었던 인도네시아에서 정당정치가 쇠퇴하고 가족주의 정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시사주간지 『템포』에 인용된 어느 신진 학자에 의하면 지난 5년간 당선된 단체장 중 117명이 정치 가문 출신이며, 2019년에 임기를 시작한 국회의원 575명 중 104명이 정치엘리트 가문과 연계가 있다고 한다(tempo.co 2020). 향후 인도네시아 정치는 예전처럼 비교적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엘리트를 충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까, 아니면 금수저 세습정치인과 수퍼리치들이 독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까? 어느 쪽이든 지금의 제도 하에서 소요되는 막대한 정치자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도네시아 정치는 금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2019-2024 인도네시아 원내진출 정당과 정당 대표 프로필
– 자료: tirto.id, Wikipedia, Wikimedia Commons

 

저자소개

서지원(suhjiwon@changwon.ac.kr)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부교수이다.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도네시아 정치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정치와 인권, 과거청산, 민족주의에 대해 주로 연구하며 이와 관련된 저역서와 다수의 국·영문 논문을 출판하였다.

 


1) 이 소절의 내용은 Margareth and Ganug(2020), tempo.co(2020), Wayan(2020) 등 신문과 잡지 기사 내용을 참조하여 작성했다.

2) Ridwan(2016)에 의하면 ‘1억 원에서 6억 원 사이’라는 것은 후보의 주장이고, 그의 같은 정당 동료는 아마 국회의원 당선인이 선거에 25억 원(300억 루피아)은 썼을 것이라고 귀띔했다는 것이다. 자야푸라 지역에서 거론된 이러한 비용이 얼마나 일반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Ridwan(2016)의 글을 보면 파푸아에서는 선거사무원을 매수한 부정선거도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이 보편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환율은 최근 환율(루피아*0.085=원)로 계산했으며, 원문에는 ‘15억에서 70억 루피아 사이’라고 되어 있다.

3) 보조금은 2007년 8월 환율(루피아*0.1=원)로 계산했다.

4) 최근에는 정당보조금 지급액 규모가 2005년의 ‘개혁’ 이전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5) 인도네시아 국회 공식 사이트 dpr.go.id에 공개된 프로필과 각종 신문기사 등을 참조했다.

 


참고문헌

  • Aspinall, Edward, and Mada Sukmajati. 2016. “Patronage and Clientelism in Indonesian Electoral Politics.” In Electoral Dynamics in Indonesia: Money Politics, Patronage and Clientelism at the Grassroots, edited by Edward Aspinall and Mada Sukmajati, 1-37. Singapore: NUS Press.
  • “Beware of Nepotism in Politics.” 2020. tempo.co. 6월 17일. https://en.tempo.co/read/1354647/beware-of-nepotism-in-politics
  • Budi Sutrisno. 2020. “Megawati Tells Politicians Not to ‘Force’ Children to Run in 2024.” The Jakarta Post, 2월 21일자 4면.
  • Ella S. Prihatini. 2020. “Islam, Parties, and Women’s Political Nomination in Indonesia.” Politics & Gender 16(3), 637-659.
  • Fionna, Ulla, and Dirk Tomsa. 2020. “Changing Patterns of Factionalism in Indonesia: From Principle to Patronage.” Journal of Current Southeast Asian Affairs 39(1): 39–58.
  • Margareth S. Aritonang and Ganug Nugroho Adi. 2020. “Gibran, exception to PDI-P’s own rules.” The Jakarta Post, 7월 21일자 1면.
  • Mietzner, Marcus. 2007. “Party Financing in Post-Soeharto Indonesia: Between State Subsidies and Political Corruption.” Contemporary Southeast Asia 29(2): 238–263.
  • Mietzner, Marcus. 2013. Money, Power, and Ideology: Political Parties in Post-authoritarian Indonesia. Singapore: NUS Press.
  • Ridwan. 2016. “North Jayapura, Papua: Buying the Voters and Buying the Administrators”. In Electoral Dynamics in Indonesia: Money Politics, Patronage and Clientelism at the Grassroots, edited by Edward Aspinall and Mada Sukmajati. Singapore: NUS Press.
  • Wayan Agus Purnomo. “Jokowi’s Son Maneuvers Towards Candidacy.” Tempo English, 2020년 6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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