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성(전북대학교)
인도네시아, 동남아 노동운동의 선봉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은 오늘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수하르토 독재정권 말기였던 1990년대 초반부터 연쇄적 파업으로 행동적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시기에 도처에서 노동조합들을 설립하고 복수의 노동조합총연맹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였다. 공장을 넘어 지역적으로 연대하여 최저임금을 꾸준히 인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시다발 전국 시위로 정책적 영향력도 행사해왔다. 노동권 방어 수준에 그치지 않고 국민건강보험 도입을 비롯한 복지제도 개혁도 이끌어 냈다. 매해 국제노동절이나 노동 관련 입법이 추진될 때면 노동자들의 연대 시위 소식과 노동조합연맹 지도자들의 발언이 미디어에 빈번하게 소개된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역동성은 우선 인구학적 측면에서 비결을 찾아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주지하다시피 인도,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다. 인구가 2억 7천을 넘어섰고 경제활동참가율도 67% 정도로 높은 편이다. 더구나 연령대가 어릴수록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깔때기 모양의 인구 구성을 이루고 있다. 풍부하고 젊은 노동력은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지닌 힘의 원천이다. 같은 동남아라 하더라도 노동력이 부족해 주변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와야 산업이 돌아가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에서 활발한 노동운동을 기대하긴 어렵다.
꾸준한 고도성장도 노동의 힘을 키워주는 바탕이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1990년대 말의 아시아 경제위기 국면과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제외하면 1960년대 후반부터 반세기가 넘도록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경제성장은 권위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10년간 평균 5.4% 경제성장률을 보여주었고, 2022년 성장률도 5.3%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다. 경제성장에 연동되어 계속 줄고 있는 빈곤률과 실업률은 노동의 교섭력을 증강시켜주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많은 인구가 제공하는 풍부한 노동력, 젊은이의 비중이 높은 인구 구조, 경제성장과 실업률 감소 추이에 더해진 민주화는 인도네시아를 동남아 노동운동의 선봉으로 끌어올린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효과는 권위주의 체제 동남아 국가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정치적 개방 시기에 눈부시게 피어나던 미얀마 노동운동은 2021년 쿠데타 직후 목숨을 걸고 시민불복종운동의 선봉에 나섰으나 군부의 예봉을 맞아 공장 단위의 파업마저 어려운 실정에 처하게 되었다. 베트남 노동자들은 공장 단위에서 빈번한 살쾡이 파업 행동을 통해 급속한 산업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나, 공산당 일당체제의 통제를 받는 노동조합연맹이 노동자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대변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선거권위주의 체제의 상황도 유사하다. 태국 노동운동은 왕실개혁을 요구하는 청년과 학생들을 지지하는 몇몇 노동운동가들의 이야기 정도가 외신을 타고 있어 노동운동은 청년저항의 주석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말부터 2013년 벽두에 걸쳐 총파업으로 위력을 보여주었던 캄보디아 노동운동은 훈센 정권의 지속적인 야당 탄압과 상징적인 노동자 포섭을 통해 약화되었다.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노동조합의 전성시대가 부활하다
수하르토 권위주의 체제 말기였던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이 연쇄적으로 발생했고 이러한 노동자 행동은 동아시아 기적의 사례에 포함되던 급속한 산업화의 그늘을 드러내며 권위주의 체제의 정통성을 타격했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물가 인상에 따른 생계형 폭동은 1998년 5월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로 귀결되었는데, 이로부터 이른바 ‘개혁시대’(Reformasi)라는 눈부신 전환기가 열리게 된다.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한 하비비 대통령은 정당 자유화로 자유총선거의 길을 열었고 동티모르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선거도 허용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설립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단일한 노동조합연맹을 통한 국가조합주의적 통제를 포기해 버렸다. 이런 개혁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비비 대통령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협약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쾌속의 해결을 꾀했다. 국제노동기구의 입법 컨설팅과 사회적 대화의 결과, 노동조합 설립 문턱이 높지 않고 복수의 조직 결성도 허용하는 새로운 노동조합법이 2000년에 탄생하였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1965년 10월 이후 사라졌던 노동조합 전성시대를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노동조합연맹의 수가 급속히 불어났다. 권위주의 붕괴 국면에서 하나뿐이었던 노조연맹이 쪼개지고 새로운 연맹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노동조합법에 따라 노동조합총연맹들도 결성되었다. 노동법과 노동분쟁조정법까지 포함하여 노동3법의 개정이 완료되는 2004년에는 전국단위 3개 노총과 산하 41개 업종별 노동조합연맹 그리고 40개 독립 노동조합연맹이 인력부에 등록하였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20년 노동조합 지도부 명부를 보면 인도네시아 인력부에 등록된 노동조합총연맹이 16개, 그 산하 업종별 노동조합연맹이 106개, 독립 노동조합연맹이 55개에 달한다. 2004년과 비교하면 16년 사이 노총의 수는 3개에서 16개로 다섯 배 늘었고, 노동조합연맹의 수는 81개에서 161개로 두 배 증가하였다. 그런데 인력부에 등록된 55개 독립 노동조합연맹 가운데 단 한 곳을 제외하곤 주소지가 전부 수도권이다. 인력부의 지부에만 등록한 독립 지역노조연맹까지 포함해야 인도네시아 전체 노조연맹의 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별도의 조사 없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노조연맹이 수백 개에 달할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역동성은 이런 수백 개 노조연맹의 존재와 조직화 경쟁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1999년 자유총선거, 2004년 대통령 직접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직접선거의 시작은 노동운동에 호의적인 환경을 조성하였다. 경쟁적인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노동자 표를 획득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조치를 하거나 약속하고 득표가 예상되는 노동조합 간부들을 입후보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선거민주주의가 노동의 편에 힘을 보태는 작용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인도네시아에서 민주주의란 노동운동 안과 밖에서 치열한 경쟁을 낳았고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조건을 형성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수많은 노동조합은 어떻게 연대했나?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보장 개혁
민주화 이후의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명백한 약점도 수반했는데 그것은 바로 조직적 분열이다. 조직 가능한 노동자의 수는 제한적인데 노동조합연맹의 수가 너무 많은 데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비관하고 개탄하는 활동가와 연구자가 많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분열은 국가가 조직노동 전체를 포섭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일부 노동조합연맹들을 국가 정책에 동조 세력으로 끌어들이더라도 수백의 노조연맹을 다 포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분열은 흥미롭게도 노동자 이익과 권리의 방어 측면에서 장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조직적 분열은 연대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연맹들은 사안별 연대 전략을 구사해 왔고 특히 매년 지역별 최저임금 협상 국면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지역별로 이루어지는 최저임금 협상 시기에 노동조합연맹들은 조직의 구별을 넘어 연대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지방정부를 압박하였고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성과를 누렸다. 주요 산업 지대에서는 노조들이 한시적인 연대를 넘어 상설 연대협의체를 꾸린 곳도 더러 있다.
방어적이거나 단기적인 이익추구에서 연대가 효과를 발휘하더라도 공세적이고 장기적인 이익추구에서 실효적일지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보건복지 개혁을 추동하는 역할을 201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수행하였다. 노동조합연맹들이 시민사회단체 및 보건복지 전문가들과 함께 연대하여 전국민 의료보장 제도의 도입을 앞당기고 근로자 사회보장제도도 강화하는 성과를 달성하였다.
공식부문 노동자들은 근로자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포괄하는 보편적 건강보장(UHC: universal health coverage)을 요구하기 위해 거리에서 시위하고 의회에 압력을 행사하는 데 앞장섰다. 그들은 건강보장에서 제외되는 가족들을 위해 투쟁하였고 불안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투쟁하였다. 언제든 실직할 수 있는 육체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은 사회보장개혁을 위한 행동의 기초가 되었다. 모두를 위한 투쟁을 전개한 덕분에 노동자들도 더 나은 건강보장과 새로운 연금보장(실직, 산재, 사망, 노후, 연금보장)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노동운동은 2011년 사회보장관리공단법 제정, 2014년 1월 제1(건강)사회보장공단과 2015년 1월 제2(인력)사회보장공단의 출범을 성사시키는데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공단과 제도가 적절히 가동되는지 감시하는 운동도 전개하게 되었다. 공단 감시활동으로 유명인사가 된 팀불 시레가르(Timboel Siregar)는 금융노련의 활동가였는데 사회보장개혁 연대활동에 가담하면서 건강보험과 연금제도를 비롯한 사회보장이 노동운동의 매우 중대한 사안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는 공단 출범이 성사되자 사회보장공단감시단(BPJS Watch)이라는 새로운 시민사회단체를 창설하였다. 팀불은 노조, 학자, 정치인,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광범하게 협력하고 빈번한 신문 기고와 미디어 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제시하며 정부가 주최하는 정책 자문 회의도 마다치 않고 참여하고 있다.
사회보장개혁 연대운동의 선봉에 섰던 인도네시아노총(KSPI)은 공단 출범 이후 건강보험감시단(Jamkes Watch)을 결성하고 전국에 천여 명의 활동가를 배치하여 국민건강보험이 적절히 운영되는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환자들이 적절한 건강보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노동조합의 존재와 활동을 알리는 효과도 있다. 이 노총은 야심찬 사이드 이크발(Said Iqbal) 위원장의 주도로 2014년 대선 때부터 선거연합에 가담하고 지방의회의원들을 배출하며 정치활동을 벌여왔기에 건강보험 감시활동은 노조가 유권자를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요즘 이 노총은 내년 총선에 참여하기 위해 노동당(Partai Buruh)을 재건하고 노동조합연맹들, 농민조직, 어민조직, 교사단체, 여성단체 등을 규합하며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매우 전투적일 것이라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사업장 단위에서 노동자들은 대화하고 타협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수행한 인도네시아 200개 한인기업 설문조사에서 경영자들은 자기 회사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순응적이고 온건하다고 답했으며 비타협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1.3%에 불과했다. 노사협상의 의제도 임금이나 수당처럼 협상 가능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드물게 파업이 발생하더라도 하루 이틀 사이에 종결되곤 했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전투성은 주로 사업장 밖의 거리에서 전개하는 연대행동을 통해 정부와 의회를 압박할 때 발휘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낳은 경쟁의 자유는 조직적 분열도 낳았지만,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나름대로 약점을 보완해 왔다. 여기서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진면목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인구구조, 경제성장, 민주주의라는 조건의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이익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전략적 행위자의 위상을 확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과 응전: 코로나19, 플랫폼 기업, 옴니버스법
코로나19 대유행은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다. 세계의 심각한 다른 권역보다 양호한 편이지만 동남아 안에서 비교하면 인도네시아는 사망자가 많아 방역에 성공적이지 못했던 축에 든다. 2020년에 경제성장률은 –2.4%로 하락했는데, 특히 호텔 관광업의 피해가 극심했고 공장들도 멈추곤 했다. 앞서 언급한 한국노동연구원 2020년 200개 한인기업 설문조사를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매출 감소(65.5%), 계약물량 급감(59%), 방역조치로 인한 부대비용 증가로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적지 않은 기업들이 휴직(61.7%), 채용 중단(59%), 인력 조정(40.5%) 등의 인사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여러 기업이 노동시간 줄이기, 일시적 가택 대기 같은 고통분담 방식을 택해 사원들을 보호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했다. 다행히 ‘대규모 사회적 제약’이라는 방역 조치가 종료되고 회사도 노동자도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노동자들이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데 스스로 쟁취한 사회보장, 특히 보편적 건강보장제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몇 년 전부터 그랩(Grab)이나 고젝(Gojek) 같은 새로운 형태의 회사가 주도하여 시작된 공유경제(gig economy)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더욱 활성화되었다. 오토바이택시에서 가사노동까지 비공식부문을 공식부문으로 바꿔가고 있다. 노동 측면에서 보면 흥미로운 도전적 과제를 안겨준다. 예전에 비공식부문에 속했던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할 기회가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부 노총이 재빨리 조직화 작업에 돌입했다. 그런데 온라인 플랫폼 회사를 통해 오토바이나 택시를 운전하는 이들이 스스로 노동자가 아니라 회사에서 칭하듯이 ‘파트너’라 인식하고 자신들의 결사체를 노동조합이라 부르기를 꺼리는 경향도 관찰된다 한다. 더구나 이들은 임금을 받지 않고 수수료를 받기에 법적으로 노동권 인정 대상이 아니라는 정부의 해석도 있다. 이런 인지적 법률적 한계를 노동운동이 어떻게 돌파하여 조직력을 확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동유연성을 강화하려는 정부 정책도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이다. 정부의 지향은 2020년 고용창출법(옴니버스법) 제정 과정에서 드러났다. 정부의 규제를 줄이고 고용을 유연화하여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것이다. 계약직 고용 기간을 연장하고 파견 노동 사용 범위를 늘이고 사원 해고 제한 요건을 완화하는 등 노동권을 약화시키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그런다고 일자리가 늘 것인지 알 수 없고 늘더라도 좋은 일자리가 아닐 것이며 노동자의 권리만 약화시킬 뿐이라며 여러 노조연맹이 반대하였다. 그리고 2021년에 헌법재판소로부터 고용창출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헌재는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입법과정의 문제도 언급했다. 당사자들끼리의 숙의란 인도네시아의 정치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코 위도도(이하 조코위) 대통령은 2022년 연말에 긴급한 필요가 있다며 고용창출법 대체 정부령을 발포하면서 헌재의 판결에 대응하였다. 고용창출법 수정본인 이 정부령을 5월 초반까지 이어지는 이번 회기 의회에서 승인받아 헌재의 위헌판결을 비껴가려는 것이다. 당연히 지난 연말과 연초에 노동자들의 반대 시위도 많았다. 이렇게 2년 넘게 정부와 노동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옴니버스법이 그랬듯이 1,117쪽에 달하는 이번 정부령은 옴니버스법의 문제를 대부분 온존시켰고 더 개악한 조항들도 담고 있다고 한다. 긴급한 필요가 있다는 이번 정부령 선포는 조코위 대통령이 78개 법을 일거에 고치는 효과를 지닌 옴니버스법 제정에 진심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노동유연성과 규제 완화로 투자 증대가 이루어지면 일자리가 늘고 빈곤이 줄어든다는 대통령의 믿음이 강고하다는 것이다. 정치스타로서 대중적 인기가 여전하고 일부 노조연맹들의 지지도 받는다. 대연정(grand coalition)을 형성하였기에 야당 의석수는 입법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전례 없는 무리수였으나 감염병, 기후변화, 미중경쟁, 우크라이나전쟁 같은 비상한 세계정세가 비상한 입법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민주화 25년 만에 최대 수세에 몰린 것이다.
그런데 5년마다 치르는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2월 선거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역대표의원,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일거에 뽑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이벤트가 될 것이다.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은 더이상 선출될 일이 없는 조코위 대통령과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표가 필요하고 노조연맹들의 로비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이번 선거 국면을 활용하여 노동자의 이익과 권리 방어를 위한 반격의 출로를 찾고자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코위 대통령을 자문하는 이들은 대통령에게 최소한 두 가지 사실을 추가로 조언해야 한다. 하나는 투자자들과 경영자들은 불안정을 싫어하여 법적 불확실성도 싫어한다는 것이다. 옴니버스법 논란이 4년째 접어들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기준과 절차도 누차 바뀌며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헌재의 위헌판결에 사회적 대화의 부족이 인용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의미를 되새기라 이야기해야 한다. 2004년 노동체제가 지닌 견고함은 6년간 노동3법을 제정하며 전개한 포괄적인 사회적 대화 덕분이었다. 당시 입법과정에서 정부와 의회가 기업과 노동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는 것이다. 요즘 노동운동 측도 대화를 원하고 있으니 입법 논의에 초대해야 한다. 입법과정의 사회적 대화가 포괄적이지 못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위헌판결을 또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법적 불확실성도 반복될 것이다.
저자 소개
전제성(jjeseong@gmail.com)은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동아시아·다문화융·복합연계전공 주임교수와 동남아연구소 소장 직을 겸하고 있다. 민주화 시기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변화에 관한 논문으로 2002년에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인도네시아 노동문제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한인기업, 외교관계, 고등교육, 보건개혁 등에 관한 연구도 수행한 바 있다. 올해 한국동남아학회장으로 선출되어 3월부터 2년의 임기를 시작하였다.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인도네시아』, 『맨발의 학자들』, 『말레이세계로 간 한국기업들』, 『한국의 동남아시아연구』, 『동남아시아 농업분야 개발협력사업 성공요인 분석』, 『한국 시민사회의 동남아시아 연대운동』, 『인도네시아 노동체제와 한국기업의 적응에 관한 연구』, 『코로나19에 맞서는 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건강보장』 등의 책을 공저하였다.
참고문헌
- 박명준, 김유빈, 엄은희, 이준구, 전제성. 2020. 『인도네시아 노동체제와 한국기업의 적응에 관한 연구』. 세종: 한국노동연구원.
- 전제성. 2004. “인도네시아의 경제위기와 노동법 개정: 통제와 보호로부터의 ‘이중적 자유화’.” 『동아연구』 47.
- 전제성·엔당 로카니. 2021. “인도네시아 노동권에 대한 일자리창출법의 파장: 현지의 노동변호사 겸 활동가 인터뷰.” 전동연 이슈페이퍼 11호.
- 프란시스쿠스 조요아디수마르타·전제성. 2022. “인도네시아 노동운동과 복지의 정치: 현지의 노동 전문 연구자 인터뷰.” 전동연 이슈페이퍼 19호.
- Dinna Prapto Raharja, Fransiscus S Joyoadisumarta, and Timboel Siregar. 2022. “Legalizing Deficit of Decent Work? Social Dialogue in Indonesian Gig Economy for Online Ojek (Ojol).” Synergy Policies Research Report, Jakarta.
- Kementerian Ketenagakerjaan Republik Indonesia(인도네시아공화국인력부). 2020. “Daftar Nama Pimpinan Serikat Pekerja /Serikat Buruh Berdasarkan Konfederasi dan Afiliasinya.”(총연맹과 소속 노동조합 지도자 명부).
- Nabiyla Risfa Izzati. 2023. “Indonesia’s emergency labour regulation changes spark worker anger a year out from election, but Jokowi’s government is unwavering.” The Conversation, January 13. https://theconversation.com/indonesias-emergency-labour-regulation-changes-spark-worker-anger-a-year-out-from-election-but-jokowis-government-is-unwavering-197281 (검색일: 2023.02.16.)
- Partai Buruh(노동당). https://partaiburuh.or.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