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남 (유라시아정책연구원)
빗나간 민주주의 이행론
중·동 유럽의 탈공산화에 이어 1991년 12월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정치학자 및 언론인들은 중앙아시아 5개국을 포함한 소연방 구성국들이 민주주의 정치체제로 변화 및 발전, 즉 ‘민주주의로의 이행’(transition to democracy)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러나 독립 후 2004년 EU와 NATO 가입을 통해 서유럽 정치·경제·안보 질서에 편입한 발트 3국을 제외하고 여타 12개 국가들은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여타 12개 국가들을 민주화 정도에 따라서 ‘과도기적 또는 하이브리드 정권’(Transitional or Hybrid Regime: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 ‘반(半) 공고화된 권위주의 정권’(Semi-consolidated Authoritarian Regime; 아르메니아), ‘공고화된 권위주의 정권’(Consolidated Authoritarian Regime: 러시아,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중앙아시아 5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Freedom House, 2020)
독립 후 수년 동안 중앙아시아 5개국들이 탈공산화를 위한 정치체제 전환을 추진하면서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해 낙관론이 상당하였다. 서방 국가들 및 국제기구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사회 또는 서방세계의 기대와는 달리 1990년대 중반부터 중앙아시아에서 권위주의가 점차 공고화되었다. 실제로 프리덤하우스는 1998년 보고서에서 카자흐스탄은 지극히 제한적인 반정부 활동을 허용하는 ‘독재국가’,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은 ‘공고화된 독재국가’, 키르기스스탄은 ‘이행기 국가’ 등으로 분류하였다.(Freedom House, 1998)
한편 2011년 1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혁명이 중동·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권위주의 국가들로 확산되면서 소위 ‘아랍의 봄’(Arab Spring)이 발발하자, 이러한 민주화 움직임이 이슬람 국가인 중앙아시아로 확산될 지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비등하였다. 그러나 2005년과 2010년 시민혁명를 통해 대통령이 교체된 키르기스스탄을 제외한 4개국에선 시민혁명이 발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가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대통령의 사망과 조기 사임으로 최고 리더십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이들 국가의 국내외 정책변화와 이에 따른 역내정세의 변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본 글은 중앙아시아 권위주의 장기집권 정치의 발전과 현황, 그리고 그 배경을 분석하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정치의 특징을 알아보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 정치 탄생 배경
- 민주적 거버넌스를 위한 정치제도 개혁 : 대통령제와 의회제도 도입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통령제는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1990년 행정권의 강화를 통해 정치·경제 개혁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목적으로 대통령제를 도입하면서 시작하였다. 당시 소련 헌법(기본법)에 의하면 15개 공화국은 연방정부의 정치제도 변경 또는 개혁과 동일하게 정치제도를 변경 또는 개혁해야 했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이 중앙아시아 5개국은 대통령제와 의회제도를 새롭게 도입했으며, 독립 후 신헌법 채택을 통해 3권분립에 기초한 강력한 대통령제를 확립하였다.
독립 후 중앙아시아 5개국은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민주주의 원칙, 즉 인권, 의회 선거, 대통령제, 국제법 우위 등을 존중하는 헌법개정을 통해 정치제도를 개혁하였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민주적 거버넌스를 위한 제도와 과정에 기초해 정치제도를 확립하였다. 그 결과 자유선거와 다당제를 통해 대통령이 선출되고 의회가 구성되었으며, 민주적 거버넌스를 성공적으로 이행할 제도적 기반이 구축되었다.
- 민주적 거버넌스의 시행, ‘민주주의로의 이행’실패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국제기구와 자국 내 시민사회로부터 민주적 거버넌스의 원칙들이 현실에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즉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민주적 거버넌스를 위한 제도와 원칙들을 성공적으로 헌법에 명문화하고 이를 정치제도화 했지만, 이를 현실정치에서 지배적인 통치원칙으로 이행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 약간의 차이, 특히 키르기스스탄과 여타 4개국 간 차이가 있지만 1990년대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요인들을 몇 가지 지적할 수 있다. 쿠케예바와 쉬카루악(Kukeyeva & Shkapyak, 2013)은 중앙아시아에서 민주적 개혁이 불충분하게 추진된 요인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비교적 짧은 체제이행 기간이다. 소련이 붕괴된 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기존의 중앙집권적 정치권력과 경제구조를 점진적이고 진화적으로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추진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둘째, 이들 국가는 서방세계와 명백히 다른 역사적, 문화적 토대 위에 민주적 제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적인 사회 경제적 전제 조건, 즉 민주적 권위 기관, 자유주의적 사회정신, 사적 소유권에 기초한 시장경제, 강력한 시민사회 등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지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통치 또는 의사결정과정에 동등한 권리로 참여할 수 있는 권력 위임이 포함되는 거버넌스를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정부 당국이 시민을 정치과정에 전혀 참여시키지 않거나 접근을 제한하는 등 특정 패턴의 민주화를 발전시켰다. 야당은 파편화되어 있고 명확한 전략이나 정의된 정치적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약하고 민주적 과정에 건설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 ‘아시아식 민주화 모델’: 정치 민주화보다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우선하는 권위주의 정치 선호
1990년대 중반 들어 의회를 확립하고 민주적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반드시 효과적인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중앙아시아 학자 및 정책결정자들은 여러 다양한 의견과 함께 각국의 정치발전을 위한 특별한 경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 대통령과 정치 엘리트들은 서구의 민주주의 모델과는 다른 자국의 역사, 전통, 문화 및 정신에 뿌리를 둔 권위주의 정치를 선호하게 되었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통령과 정치 엘리트들은 정치의 민주화보다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우선시하는 ‘아시아식 민주화 모델’, 특히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의 한국, 싱가포르의 민주화 모델을 선호하였다.(Kukeyeva & Shkapyak, 2013) 그 결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최고 정치 지도자들은 자국의 모든 주요 국내외 정책 방향을 결정하였고, 국가와 국가권력의 상징 및 수호자로서 군림하였다. 또한 이들은 통치권 강화를 위해 야당을 무력화하면서 시민사회의 반정부 활동을 탄압하였다.
이러한 권위주의 통치 방식은 당연히 대통령의 권력확대로 이어졌고, 이는 민주적 기구와 과정의 질에 영향을 미치면서 공평한 공직 선거 및 투표 참여, 법치, 정책결정과 집행의 투명성 등을 저해하였다. 또한 민주주의 정치에서 가장 보편적 자유인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이 억압되거나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또한 대통령의 권력강화는 의회와 사법부의 권한과 기능 약화를 초래하였고, 이들 기관의 행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증대시켰다. 그 결과 아래 그래프가 증명해 주듯이 중앙아시아 5개국의 민주화 정도가 2005년 시민혁명을 통해 장기집권 양태를 무너트린 키르기스스탄을 제외하곤 탈공산화된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아래 그래프는 권위주의 정치가 장기화되면서 민주화가 대체로 후퇴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의 발전 과정
중앙아시아 권위주의 정치의 두드러진 현상은 2005년 시민혁명을 통해 장기집권 정치현상을 혁파한 키르기스스탄을 제외하고 여타 4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통령의 장기집권 현상이다. 물론 우즈베키스탄에서 카리모프(Islam Karimov) 대통령의 급사(2016. 9)와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ev) 대통령의 조기 사임(2019. 3)으로 이들 국가에서 대통령의 장기집권 현상이 끝났지만, 투르크메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의 대통령은 장기집권 속에서 부자세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장기집권 정치현상은 여타 지역의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 헌법개정을 통한 장기집권 : 임기 연장 또는 연임 규정 무효화 조치
그렇다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체제로 발전되었는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독립후 3권 분립에 입각한 헌법을 채택했으나,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였고, 의회는 집권당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형태의 1.5 정당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헌법 개정을 통해 당시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연임규정을 무효화하는 조치를 취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소련 말기인 1990년 4월 카자흐스탄 최고회의 의장이던 나자르바예프는 최고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95년 국민투표를 통한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가 2000년까지 연장되었고, 1999년 실시된 조기 대선과 2005년 실시된 대선에서 나자르바예프가 각각 당선되었다. 이후 2007년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2번 연임 규정을 철폐하였고 나자르바예프의 종신 대통령의 길이 열렸다. 의회는 2010년 중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자산보장과 불기소 특권을 보장하면서 국가 지도자(Leader of Nation)인 ‘엘바시(El Basy)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의회는 2010년 12월 향후 2번의 대선 실시를 취소하는 국민투표를 제안했으나 2011년 1월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이후 2011년 4월, 2015년 대선이 각각 실시되었고, 나자르바예프가 압도적인 다수표(약 95%)를 얻어 연임에 성공하였다. 나이, 건강 등의 이유로 후계자를 물색하던 나자르바예프는 자신의 권한 유지를 위한 2017년 헌법개정(국내외 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안보회의 의장직 영구 수임, 의회와 내각의 권한 강화)을 마무리한 후 2019년 3월 조기 사임하였고, 현재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수임하고 있다. 후임 대통령으로 토카예프(Kassym-Jomart Tokayev) 총리가 대통령직 대행을 하다가 2019년 6월 5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소련 말기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제1서기이던 카리모프는 1990년 3월 최고회의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1995년 국민투표(99.6% 지지)를 통해 2000년까지 임기를 연장하였다. 당시 카리모프는 국민투표의 결과를 갈음해 2000년 대선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으나 의회의 반대로 동년 1월 실시된 대선에서 91.9%의 득표를 얻어 재선되었다. 그리고 2002년 국민투표를 통해 그의 임기를 2007년까지 연장했으며, 헌법이 2번 이상 연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2015년 실시된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16년 들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후계문제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제고되었으나, 후계자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가운데 2016년 9월 갑자기 사망했다. 그 결과 당시 장기간 총리직을 수행하던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ev)가 대통령직 대행을 하다가 2016년 12월 실시된 대선에서 88.6% 득표로 승리했다.
타지키스탄의 경우, 독립 후 발발한 내전(1992-97)의 와중인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라흐몬(Emomali Rahmon)은 수 차례의 암살위기(1997)와 쿠데타(1997. 1998)를 극복하면서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해 오고 있다. 라흐몬은 헌법개정을 통해 1997년 실시된 대선에서 7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재선되었고, 2003년 국민투표를 통해 2006년 이후 7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두 번 더 출마할 수 있게 보장받았다. 그 결과 2006년, 2013년 실시된 대선에서 비록 선거부정 논란이 있었지만 각각 79%, 84%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라흐몬 대통령은 대통령직의 부자 승계를 준비 중인데, 아들(Rustam Emomali; 현재 32세)의 대선 출마를 위해 2016년 대선 후보 가능 연령을 35세에서 30세로 낮추는 헌법개정을 했다. 또한 라흐몬의 아들은 2017년 수도 두산베 시장에 임명되었으며, 2020년 4월에는 대통령 유고시 권력승계 1순위인 의회(Majlisi Milli) 상원의장에 선출되었다. 타지키스탄은 2020년 10월 11일 대선이 실시될 예정이며, 현재 누가 대선에 출마할지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우, 생존시 세계에서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거명되었던 니야조프(Saparmurat Niyazov)는 1990년 1월 최고회의 의장에 당선되었으며, 최고회의는 1991년 6월 초대 대통령으로 임명하였다. 독립 후 1992년 실시된 대선에서 단독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1993년 자신을 ‘투르크멘의 지도자’(Turkmenbasy)로 선언하였다. 니야조프는 1994년 향후 10년간 국가발전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명목으로 2002년까지 임기를 연장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99.9%의 찬성을 얻었다. 그리고 의회는 1999년 12월 니야조프를 종신 대통령으로 선언하였다. 니야조프는 2006년 12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고, 당시 부총리이던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imuhamedov)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다가 2007년 2월 실시된 대선에서 97%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대선 전에 대통령 임기를 7년으로 연장하고 70세 나이 상한선을 철폐하는 헌법수정을 주도했으며, 2017년 2월 대선에서 승리하였다. 2020년 들어 베르디무하메도프는 의회 내 상원 신설 등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구축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2005년 시민혁명으로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가 종식되었으나 초대 대통령 아카예프(Akskar Akaev)는 14년 6개월이나 재직하였다. 학자 출신인 아카예프는 1989년 소련 최고회의 의원으로 당선된 후, 1990년 10월 현지 최고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91년 10월 단독후보로 출마하여 국민 직선으로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이후 1995년 12월, 2000년 10월 선거부정 주장 속에서 각각 재선되었다. 권력남용, 부정부패 등에 항의하는 데모가 2002년부터 시작된 상황에서 2005년 임기 말이 다가오자 부자세습의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아들과 딸이 출마해 당선되었다. 부정선거를 항의하는 데모가 남북 간 지역갈등과 연동되어 대대적인 반정부 데모가 발생해 아카예프와 그의 가족들이 러시아로 피신하면서 아카예프 정권이 종식되었다. 이후 2005년 7월 대통령 대행이던 바키예프(Kurmanbek Bakiev)가 당선되었으나, 2010년 시민혁명이 발생해 오툰바예바(Roza Otunbayeva) 대통령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이원집중제 성격의 내각중심제 헌법, 대통령 임기 6년 단임 등을 규정한 헌법개정을 하였다. 이후 2011년 12월 당선된 아탐바예프(Almazbek Atambayev) 대통령이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후, 2017년 11월 실시된 대선에서 현 대통령인 제엔베코프(Sooronbay Jeenbekov)가 당선되었다. 다시 말해,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두 차례의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가 종식되었다.
권위주의적 장기집권 체제의 구축 동인2)
- 정치적 요인
소련정치의 유산. 우선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적 장기집권체제를 발전시킨 1차적 요인으로 소련정치의 유산을 지적할 수 있다. 소련 말기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과 정치체제 형성과정은 다른 소련 구성국들과 중요한 차이점을 지닌다. 중앙아시아 국가에서는 비록 여타 구성국들에서와 같이 민족주의가 분출되긴 했지만 공산당과 민족주의 세력 간의 갈등구도가 형성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독립 전에 정권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구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이 몰락하거나 정치 엘리트층에서 배제된 반면, 중앙아시아 4개국에서는 공산당 최고위층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공산당은 명칭만 바꾼 채 헤게모니정당의 역할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차별적 독립과정은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정치 엘리트 및 관료들의 직장과 지위를 보장함과 동시에 소련식 권위주의적 통치체제 및 행정관리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고위 관료들이 소련식의 하향식 정치운영 및 경제관리 그리고 인사권 행사를 통한 수직적 권력관계 구축이 매우 효율적이라는 믿음을 가진 인물들이었음을 의미한다.
소련정치의 또 다른 유산은 광범위한 ‘후견-피후견 네트워크’(patron-client network)이다. 소련의 공식제도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지만 그것을 보완하여 개벌적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지연·혈연·인맥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특히 후견-피후견 관계는 필수적이었다. 독립 후에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러한 후견-피후견 네트워크는 집권세력의 공고화와 권력연장의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였다.
시민사회의 미발달과 정치적 대안세력의 부재. 사회운동과 민주화에 관한 이론들에 따르면, 시민사회와 잘 조직화된 정치적 대안세력(예: 야당)의 존재는 민주화를 위한 필수요건이다. 소련 구성국인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2004-05)와 조지아의 장미 혁명(2003-04) 사례와 비교해 보면, 이들 국가에서는 국제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국내 야당 및 NGO의 활약이 대단하였다. 하지만 중앙아시아 5개국의 경우, 시민사회의 결성과 활동은 권위주의 정부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았고, 과도한 등록비와 관료적 레드테이프(복잡한 서류절차), 정치적 억압으로 시민사회의 결성과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다시 말해, 약한 시민사회의 역할은 권위주의 공고화를 용이하게 하였다. 한편 정치적 대안세력의 부재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1인 지배체제의 구축과 함께 소련시대부터 내재화된 ‘후견-피후견 네트워크’를 통한 대안세력의 정치엘리트로의 진입 배제 및 통제를 통해 상당 부분 가능하게 하였다.
- 경제적 요인
경제성장에 따른 생활수준 향상.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초·중반 체제이행 과정에서 경기불황과 회복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은 점진 개혁정책을 표망하면서 체제이행 초기부터 상당한 경제 안정성을 보였으며,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경제정책은 오히려 2007-08년 세계적 경제·금융 위기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카리모프 정권의 지배를 공고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1995년까지 경제침체를 거듭해오다가 IMF와 공조를 통해 지속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해 4-5%대의 안정적인 성장세로 진입했으며, 2000년부터는 국제유가의 상승 및 가스, 비철금속과 같은 수출품의 국제가격이 상승하면서 2000-08년 간 연평균 10%의 수준의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 투르크메니스탄도 비록 폐쇄적인 경제정책을 폇으나 풍부한 가스 수출을 통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 국민들의 사회보장을 확대해 국민들의 정권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괄목할만한 경제성과 및 경제적 안정성은 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 동인으로 작용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였다.
사유화와 민영화 과정에서 특헤 부여. 중앙아시아 5개국 간 사유화와 민영화의 수준 차이가 존재하며 그 설명력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권위주의 정부들이 소련시대에 깊이 뿌리내린 ‘후견-피후견’ 관계를 이용하여 사유화, 민영화 과정에서 생겨난 막대한 부와 이권을 선별적으로 배분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지지 및 정권의 연속성을 확보하였다.
풍부한 지하자원. 피쉬(Fish, 2005)는 러시아의 민주화 실패에 관한 연구에서 풍부한 천연자원과 민주화의 부정적 관계를 통계와 사례연구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의 ‘천연자원의 저주’에 관한 주장은 풍부한 지하자원이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지대(rent)를 창출한다는 데서 시작한다. 국가재정이 국민들의 세금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운영 가능하게 되면서 국민들의 민주화 및 정치에 대한 책임(accountability)의 요구가 낮아지고, 권위주의 정부는 지대를 국민들 간 그리고 정치 엘리트들 간에 선별적으로 분배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하는 기제로 사용한다. 중앙아시아의 경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은 천연자원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며, 권위주의 장기집권이 지속되거나 지속되었던 나라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천연자원의 수출비중이 낮은 키르기스스탄에서는 2005년 시민혁명 이후 장기집권이 종식되었다.
- 사회·문화적 요인
씨족정치. 중앙아시아에서 권위주의 정치가 공고화된 요인으로 정치·문화적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중앙아시아 전통, 즉 가부장적 전통, 인민들의 권위에 대한 순응성, 권위 및 연장자에 대한 존경, 취약한 민주적 기구 등이 중앙아시아에서 권위주의적 정치의 구축과 공고화에 기여했다. 또한 집단 구성원들의 유대와 결속을 일체화하는 기능을 지닌 전통적 ‘씨족정치’(clan politics) 또한 ‘민족적 충성감’, ‘씨족에 대한 동원과 지지의 메커니즘’ 양상을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의 1인 지배체제를 공고화하는데 기여하였다(Collins, 2006).
순응형 정치문화. 소련시기 형성된 정치문화, 즉 권위주의 정치문화와 국민들의 정치생활에서의 소외 또는 무관심이 현 중앙아시아 국민들의 권위주의 정치에 대한 순응 또는 지지에 영향을 미쳤다.
- 대외적 요인
서구와 취약한 연계성. 중앙아시아에서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가 가능한 요인으로 서구와의 취약한 연계성을 지적할 수 있다. 레비츠키와 웨이(Levitsky and Way, 2005)는 민주화와 서구와의 연계성(linkage)을 강조하였는데, 연계성은 지리적 근접성 뿐만 아니라 서구의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문화에 대한 접근성 및 재정적·조직적 지원의 정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서구와의 연계성이 강할수록 민주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의 시민혁명에서 증명되었다. 중앙아시아의 경우, 키르기스스탄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비록 지리적으로 서구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체제이행 초기 급격한 개방정책을 통한 서구문화의 유입, NGO 활동에 대한 지원 및 협력·교류의 확대가 2005년 시민혁명을 가능케한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러시아의 존재.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적 장기집권 체제 구축에는 러시아의 존재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는 과거 종주국으로서 현재에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다자협력 또는 통합체, 즉 독립국가연합(CIS),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을 주도하고 있으며, 양자 차원에서도 긴밀한 정치·경제·안보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역사적, 지리적 요인에 의해 여러 부문에서 대러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며, 그 결과 러시아의 자국에 대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민주화를 추진하면서 서방세계와 가까워지는 것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며, 그 결과 러시아는 자국의 대중앙아 정책에 순응하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지지해 오고 있다.
중앙아시아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는 국내외 요인들에 의해 구축, 지속되어 왔으나 향후 진로는 과거와는 다른 국내외 정세에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된 국내외 정세에 영향을 받아 중앙아시아 정치는 ‘권위주의 2.0 시대’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중앙아시아에서 권위주의 정치는 지속되겠지만, 헌법에서 허용하는 중임 이상의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정치지도자는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부자세습의 성공여부가 관심사항이지만, 이들 국가에서 부자세습이 이루어지더라도 중임 이상의 장기집권을 획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 소개
고재남(jnko92@gmail.com)은
유라시아정책연구원 원장이다. 미국 미주리대학고(University of Missouri-Columbi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외교부 국립외교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슬라브·유라시아학회 회장,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한국외대 지역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연구 분야는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옛 소련지역의 정치·외교·안보 이슈이며, 주요 저서로는 『구소련지역 민족분쟁의 해부』(1996), 『러시아 외교정책의 이해: 대립과 통합, 푸틴의 길』(2019), 그리고 연구분야 관련 수원백편의 연구물이 있다.
1) 민주화 정도는 스케일을 1-7까지 구분해 숫자가 1에 접근할수록 민주화 정도가 높고, 7에 접근할수록 민주화 정도가 낮게 평가됨. 민주화 정도는 national democratic governance, electoral process, civil society, independent media, local democratic governance, judicial framework & independence, corruption의 점수를 합친 평균값임.
2020년 Freedom House는 중앙아시아 5개국을 ‘공고화된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하고 있으며, 민주화의 정도에 따라서‘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Partly Free))인 키르기스스탄을 제외한 4개국은 ‘비자유 국가’(Not Free)로 분류함.
2) 고재남, “카자흐스탄의 권위주의적 장기집권체제의 발전과 동인,” 이재영, 고재남, 박상남, 이지은, 『카자흐스탄 정치 엘리트와 권력구조 연구』, 전략지역심층연구 09-03(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0), 145-162.
참고문헌
- 고재남. 2010.“카자흐스탄의 권위주의적 장기집권체제의 발전과 동인.” 이재영, 고재남, 박상남, 이지은. 『카자흐스탄 정치 엘리트와 권력구조 연구』. 전략지역심층연구 09-03(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0), 145-162.
- Collins, Kathleen.2006. Clan Politics and Regime Transition in Central Asia.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Fish, M. S. 2005. Democracy Derailed in Russia: The Failure of Open Polit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Freedom House. 2020. Nation in Transit 2020.
- Kukeyeva, Fatima, Oxana Shkapyak. 2013. “Central Asia’s Transition to Democracy,” Procedia-Social and Behavioral Science 81, 79-83.
- Levitsky, Steven and Lucian A. Way. 2005.“International Linkage and Democratization.” Journal of Democracy, No.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