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수피즘의 춤과 음악, 그리고 테러 -왜 수피 성자들의 영묘에 대한 테러는 증가하고 있는가-

파키스탄은 이슬람의 수피즘이 갖는 관용과 사랑, 그리고 형제애를 강조하면서 이를 국가 이념으로 수용해왔다. 하지만 독립 이후 파키스탄의 무슬림 지도자나 정치세력은 파키스탄 내 최대 계파인 치슈티 수피즘에 대해 양면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수피즘에 대해 국민적으로 합의되지 않는 종교적 관점들과 그로 인한 이슬람 운동들이 서로 대립하면서, 그 간극 사이로 테러가 발생하고 있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파키스탄의 거의 모든 곳에서 수피즘에 대한 테러가 일어나고 있으며 더 빈번해지고 있는 경향이다. 특히 2000년 이후로 수피즘에 대한 폭탄테러는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수피들의 묘당이 압도적으로 많다. 테러리스트들은 왜 단순히 대표적인 관광지나 마스지드(masjid)가 아니라 위대한 수피들의 묘당을 테러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파키스탄 무슬림들에게 수피들의 묘당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이에 대한 공격은 파키스탄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시사하는 것인가.

1311

심재관(상지대학교)

춤와 음악에 대한 테러

누구나 종교에 매료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열어주는 문은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나에게 이슬람이 새롭게 다가온 것은 음악이라는 문이었다. 특히 파키스탄의 카왈리(Qawwali)는 인도의 그것보다 더 특별했다. 카왈리를 통해서, 비록 무슬림이 아닐지라도, 이전에 잘 느끼지 못했던 파키스탄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감성, 또는 이슬람을 통해서 느끼는 진정한 종교적 기쁨이 어떤 것인가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카왈리는 남아시아 수피들이 음악과 시를 통해 망아의 상태에서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 펼치는 음악과 시의 향연이자 동시에 수행의 한 방법이다. 위대한 수피 성자들의 기일(忌日)에 맞춰 행해지는 축제 속에서, 또는 성인의 영묘(靈廟)를 찾아오는 무슬림들을 위해서 이 카왈리 공연은 어김없이 펼쳐진다. 연주자와 청중, 그리고 이들과 함께한 파키르(Faqir 방랑수행자)1)들이 음악과 시의 연주 속에서 서로 하나가 되어 신이 지금 이곳에 현전함을 느낀다.

파테푸르 시크리의 카왈리 가수들
출처: Creative Commons
저자: Joshua Singh

파키스탄 내의 수피 교단은 여러 분파가 있으나 가장 일찍 정착한 교단의 하나가 치슈티(chishti) 교단이다. 주로 이 교단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한정되어 있는데, 이들의 수행은 특히 다른 교단과 달리 음악과 춤을 신에 이르기 위한 수행 속에 통합시킨다. 음악과 춤이라는 점에서 터키에서 볼 수 있는 메블레비 교단의 사마(sama)와 같지만 그 형태는 꽤나 다르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수피즘은 그들의 음악 카왈리와 함께, 때때로 같은 무슬림 사이에서도 완전히 다른 해석과 오해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격렬한 논쟁과 폭력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 특히 수피즘에 가해지는 폭탄테러는 수피즘의 오랜 전통이 지향하는 덕목들, 말하자면 신에 대한 헌신적 사랑이나 인종과 종파를 초월한 형제애, 또는 아름다운 시와 음악에 대한 애호, 청빈과 지혜 등의 가치와는 너무 상반된 것이어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도대체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신비주의는 왜 테러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이 글은 그 대답의 배경을 위한 것이다.

2000년 이후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수피즘 관련 테러는 수십 건에 이른다. 한 조사에 따르면 29건이 수피즘과 관련된 테러였다. 생각나는 대로 몇 건을 헤아리면 다음과 같다: 2006년 4월 카라치의 니슈타르 공원에서 자살폭탄테러로 57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공원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바렐비 수니파 주관으로 열리고 있었다. 2009년 3월에는 페샤와르에 있는 라흐만 바바(Rahman Baba) 영묘가 거의 다 무너질 정도로 파괴되는 테러가 있었다. 라흐만 바바는 무굴시대의 수피 고행자이자 시인이었다. 2010년 7월에는 라호르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다. 라호르에는 남아시아 최대의 수피 영묘인 다따 더르바(Data Durbar)가 있는데 여기서 자폭테러가 발생했다. 어린 소년을 이용한 자폭으로 50여명이 죽고 2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영묘는 11세기의 수피 성자였던 알리 후즈위리(Ali Hujwiri)를 모신 곳이었다. 2016년 6월에는 카라치에서 유명한 카왈리 가수 암자드 사브리(Amjad Sabri)가 테러로 살해되었다. 파키스탄 탈레반 암살단원들이 그의 차에 총격을 가해 살해되었는데 그들의 입장에서 암자드 사브리의 죄목은 이단이었다. 2017년 신드(Sindu)주 세흐완에 있는 랄 샤바즈 깔란다르(Lal Shahbaz Qalandar) 영묘에서는 90여명이 사망하는 폭탄테러가 있었다. 여기서 작년 2019년 5월에 다시 자폭테러가 일어나 10여명 가량이 사망했는데, 마찬가지로 탈레반에게 세뇌된 15세 소년이 폭탄조끼를 입고 자행한 테러였다.

랄 샤바즈 깔란다르 영묘에서 일어난 IS 자폭테러 현장
출처: 연합뉴스

이 테러들은 거의 대부분 수피 성자들의 영묘에서 일어난 것들이거나, 수피즘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이 테러들의 특징은 거의 모두 수피들의 성지를 대상으로, 그것도 모스크가 아닌 유명한 수피 성자들의 무덤에서 발생했다. 탈레반을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반정부적인 무조건적 테러가 아니라 수피즘을 겨냥한, 특히 수피 성자의 영묘를 겨냥한 테러라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관용과 신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표하는 수피즘에 대해 탈레반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는 왜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더구나 왜 수피 성자들의 영묘가 그 테러의 목표가 되고 있는가. 이에 답하기에 앞서 파키스탄 수피즘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대표적 수피즘, 치슈티 교단

파키스탄 국민 대다수는 무슬림들이며 이 가운데 85~90% 정도가 수니파, 그리고 대략 15-10% 정도가 시아파로 나누어진다. 다시 다수파인 수니 무슬림은 크게 세 개의 그룹으로 구분하는데, 바렐비(Barelvi)와 데오반디(Deobandi), 그리고 아흘리 하드스(Ahle Hadith) 등이 그것이다. 단순히 바렐비와 데오반디만을 구분해서 대비시키는 경우도 많은데, 그것은 두 분파의 대조적인 입장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서다.

(좌)파키스탄 무슬림 종파 (우)파키스탄 수니 무슬림
출처: ⓒDiverse+Asia

이 분파들은 영국 식민지배와 19세기 기독교의 선교가 주었던 자극을 통해 이슬람에도 근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느낀 율법학자들(ulama)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의 정체성 정립은 선결과제였고, 이슬람의 정체와 수피즘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피즘에 대한 관점을 놓고 볼 때 두 분파의 차이는 확연해진다. 바렐비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수피들의 수행방법과 관습들을 그대로 인정하려는 입장이었고, 후자는 수피의 전통적인 관습들을 이슬람과는 관련이 없는 요소로 인식해 새로운 국가 이념으로서 자리하게 될 이슬람의 정체로부터 이를 거세하고자 했다. 특히 결정적인 차이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수피 성자들을 단순한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신성한 신의 매개자로 볼 것인가에 있다. 수피즘에 대한 수니파 내부의 이러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서 이슬람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대립이 발생한다. 그 결과, 훗날 이슬람 무장세력에게 수피교도와 신자들의 신앙을 반이슬람적 이교도의 행위라거나 신성모독으로 몰아서 테러를 가하게 하는 그럴듯한 빌미를 주게 되었다.

여기서 바렐비 수니파의 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들은 수피즘의 대중적이며 개방적인 전통들, 예를 들면, 춤과 노래를 수행에 결합하는 점, 성자들에 대한 숭배를 중요시하거나 신자들에게 예언과 축복을 제공한다는 점 등에 관대하다는 점이다.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에는 바렐비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파키스탄 무슬림이 자신들의 이슬람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또는 이슬람에 대한 테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예배 중인 파키스탄 무슬림
출처: 저자 제공

그렇다면 파키스탄의 수피즘은 어떠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정말 인도나 파키스탄 수피즘의 어떤 특징은, 같은 나라이자 같은 수니파 분파들끼리도 견해를 완전히 달리할 정도로 이슬람의 전통과 융합되기 힘든 것이었을까.

남아시아의 수피즘은 여러 교단(tariqah)들이 있는데, 카디르(Qadiri) 교단이나 치슈티(Chishti) 교단, 낙슈반디 교단(Naqshbandi), 수흐라와르디(Suhrawardi) 교단 외에 다수가 있다. 그 가운데 수피즘의 개방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단이 바로 치슈티 교단이다. 12세기 이후 성립한 이 교단은 사회적 평등과 관용의 정신, 절제된 정신적 수행 등을 통해서 인도에 빠르게 정착한 교단이었다. 더구나 치슈티 교단은 인도 내에서 초기부터 널리 확산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수피 교단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다른 종파들과 혼합되는 경향이 보이는데 이러한 특징으로 중세 인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나간 수피즘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교단의 특성상 인도와 파키스탄 지역에 한정된 수피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수피즘을 이야기할 때는 자연히 이 치슈티 수피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피 교단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교파’나 ‘종파’의 어감이 주는 집단적 규범이나 그로 인한 교단의 중앙집권적 통제가 훨씬 약하다. 대신 교단 내 신뢰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계보’라는 인간적 관계망을 더 중시한다. 이는 마치 선불교가 종파의 규범화된 윤리적 질서와 체계적 가르침을 벗어나 스승과 제자 간의 직접적인 법통 계승을 더 중시하는 것처럼, 수피즘도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인적 맥락을 통해 수행의 가르침과 신으로 이르는 길을 제자들에게 전승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수피 스승을 중심으로 그를 따르는 후속 제자들의 계보를 보통 ‘실실라(silsilah)’2)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계보의 맨 위쪽은 예언자 무함마드와 상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치슈티 교단은 12세기 아프가니스탄 치슈트(Chisht) 지역 출신의 이슬람 성자였던 무인알딘 치슈티(Muinaldin Chishti)가 인도로 건너가 가르침을 펴면서 형성된 전통이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등장하면서 치슈티 교단에는 여러 계보(Chishtiya silsilah)가 존재하게 되었다. 치슈티 교단 초기에 이미 치슈티 니야미(Chishti Nizami)와 치슈티 사비리(Chishti Sabiri) 두 계파로 나뉜다. 두 계파가 확연히 차이를 드러낸다고는 볼 수 없지만, 치슈티 사비리가 좀 더 금욕적이고 은둔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 계파에서는 수행자들이 왕실이나 세속의 일에서 벗어나기를 권장하였는데, 사치스러운 사원이나 묘당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을 위한 설교도 최소화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당연히 소수의 한정된 제자들을 받아들였으며, 저작물도 최소화하였다.

 

영묘(dargah)순례와 성자숭배

치슈티 수피즘이 보여주는 특징의 하나는 성자에 대한 숭배이다. 이 특징은 아마도 근본주의 무슬림들이 수피즘을 지목해 우상숭배를 하는 이단이라 낙인찍는 주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성자를 숭배하는 것은 비단 치슈티 수피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며 이 교단의 현상만도 아니다. 비교적 초기 시아파에서도 알리나 후세인과 같은 인물들을 숭배했으며 그들의 영묘를 순례하는 관습도 있었다. 시아파와 수피즘에서 보이는 성자숭배의 전통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수피들이나 그들을 따르는 대중들은 독특한 ‘성자’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삐르(pir) 혹은 쉐이크(shaykh)라 부르는 수피 스승들은 무슬림이 걸어가야 할 도덕과 수행의 길을 보여줌으로써 신에게 이르도록 도와주는 거룩한 존재이자 동시에 성자의 반열에 있는 존재이다. 이들은 신의 보호를 받으며 몸이 죽어도 언제 어디서나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이 수피 성자들을 ‘왈리(wali)’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신의 친구’라는 뜻이다. 이들은 신자에게 은총을 내리거나 예언을 하기도 하는데, 질병도 치료하는 등의 신성한 능력이 있다고 여겨졌다. 이들의 힘은 중세 인도의 왕실 권력을 위해서도 중요했다. 술탄들은 이들을 후원함으로써 그들이 내리는 신의 은총이 왕권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이 수피 성자들이 죽으면 그들의 무덤을 순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위대한 성자의 무덤이라면 왕들이나 귀족은 최대한 그 무덤 가까이에 자신이나 친족의 묘를 쓰고자 애썼다. 사후 축복을 받기 위해서다.

치슈티 성인인 파리드 간지 샤카르 영묘
출처: Wikipedia Commons
저자: Malikumerajmal77

따라서 이러한 위대한 수피 스승들의 무덤이 무슬림 대중들에게 순례의 대상이자 성지로 지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치슈티의 3대 성지는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에 흩어져 있다. 제일의 성지는 두말할 나위 없이 라자스탄주 아즈메르(Ajmer)로, 인도 이슬람의 메카이다. 아즈메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치슈트에서 탄생한 무인알딘(-1236)이 인도땅에서 가르침을 열고 사망한 곳이다. 두 번째는 파키스탄 펀잡주의 팍빠탄(Pakppatan)으로 파리드 간지 샤카르(Farid Ganji Shakar)(-1265)가 묻힌 곳이며, 세 번째인 델리(Delhi)는 샤카르의 제자인 니잠알딘 아울리야(Nizam al-din Awliya)(-1325)가 묻힌 곳이다. 세 성지가 보여주듯이 이 장소들은 치슈티 성자들이 가르침을 펴다 죽은 장소이며 그들의 죽음을 모신 영묘가 있는 곳이다. 이 영묘에서 수천수만의 무슬림들이 모여 이들의 기일을 기념한다.

이들 성지가 치슈티 교단의 주요 성자들의 묘지라는 점은 파키스탄 수피즘(또는 남아시아 수피즘)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왜 성자의 탄생일이나 탄생지가 아니고, 성자의 죽음과 그의 기일(忌日)을 기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성자의 기일을 보통 우르스(urs)라 부르는데 이는 결혼이라는 뜻이다. 치슈티 교단이 이들의 죽음을 “결혼”이라고 묘사한 것은 마치 신랑 신부가 첫날밤 육체의 결합을 이루는 것처럼 성자의 영혼이 신과 하나가 되어 결합하는 것으로 죽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성자가 승천한 날은 결혼과 같이 기쁜 날이며 그의 영묘를 참배하는 것은 그 신과 하나 됨을 되새기는 일이 된다.

다른 지역의 수피 전통이 스승과 제자 간의 긴밀한 사자상승(師資相承)을 통한 지적이고 영적인 관계망을 중요시한다면, 인도와 파키스탄의 수피즘은 그러한 스승-제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스승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 스승과 일반 신자들이 맺는 관계가 훨씬 더 개방된 양상을 보인다. 기적과 예언의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수피 스승과 그를 맹목적 헌신으로 따르는 대중 신자들(muridi) 사이의 관계는 마치 힌두교의 리쉬(ṛṣi)나 사두(sādhu)들에 대한 대중들의 헌신적인 신앙형태를 보는 것과 같다. 이는 어쩌면 남아시아인들의 종교적 소질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성자 숭배는 수니파 교단 내에 당연히 논쟁거리가 될만한 것이었다. 수피 지도자를 성자로 숭배하는 것은 유일신 알라를 모독하는 것이며 다신교를 믿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식민관료들과 파키스탄의 일부 종교개혁가들은 수피즘의 이 전통이 우상숭배이며 힌두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것은 힌두 다신교의 영향이며, 이슬람 퇴락의 징표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신에게 이르기 위한 음악, 카왈리(Qawwali)

아마도 치슈티 수피 교단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춤과 음악의 활용이다. 음악을 듣는 일(sama)을 수행의 중요한 방법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 가운데 치슈티 사비리 계열은 특히 더 사마 의식을 강조한다. 다른 교파의 수피들도 고립과 금식, 명상(muraqaba), 기도문이나 신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염송하는 지크르(zikr)3) 등을 수행의 방법으로 택하고 있지만, 치슈티 수피에게 더 본질적인 수행은 사마(sama“듣는 일”)이다. 이들은 음악이 곁들여진 시를 들으며 정신적인 통찰을 고양시키는 의식에 참여하게 되며, 이 과정 중에 회전무와 같은 율동이나 망아(忘我)의 춤을 함께 추기도 한다. 이 음악회를 통해 수행자와 신자들은 신에 대한 찬양과 접신(接神)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수피들의 이러한 음악전통은 오랜 시간 동안 왕과 귀족들뿐 아니라 대중의 넓은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의식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은 대체로 앞서 말한 수피 성자들의 영묘(dargah)이다. 수많은 영묘에서는 그 영묘에 모신 성자들의 기일에 맞추어 수피 성자들과 수천수만의 무슬림들이 방문하여 축제가 열린다. 그 며칠 동안의 축제 동안 춤과 음악이 계속된다.

근본주의 무슬림의 관점에서 이러한 춤과 음악은 이교도의 관습이거나 신에 대한 불경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특히 청중들이 어느 순간 망아의 황홀경 속에서 광적인 춤을 추는 모습은 더 그렇게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수피 숭배나 영묘 순례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전통은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초기 치슈티 수피 성자들은 직접 시를 짓고 노래를 하기도 했다. 바로 ‘인도의 목소리’라고 부르는 아미로 쿠스로(Amir Khusrau)가 그런 경우이다. 그는 수피 시인이자 음악가이며 철학자였는데, 신에 대한 사랑과 찬양의 시를 페르시아어로 쓰고 노래 불렀다. 그는 앞서 말한 수피즘의 한 일파였던 치슈티 니야미의 창시자인 니자무딘 아울리야(Nizamuddin Auliya)의 제자였는데 그를 카왈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치슈티 수피들은 일 년에 네 차례, 위대한 치슈티 성자들의 기일(urs)을 기념하기 위해 그들이 잠들어 있는 영묘로 함께 순례여행을 떠난다. 치슈티 수피 수행자들을 위한 음악연주(특별히 이것을 ‘메흐필레 사마 Mehfil-e-Sama’ ‘함께 모여 듣는 일’이라 부른다)는 일반적으로 성자들의 기일 밤에 열리는데 묘실 주변에 붙어있는 별실이나 실외의 뜰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성자들의 기일에 열리는 메흐필레 사마가 있는가 하면, 일 년 내내 목요일 밤마다 정기적으로 열리기도 한다. 이것은 영묘의 관리위원회 원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대중화된 카왈리 연주 자체를 위해 거리에서나 극장의 무대 위에서 카왈리 밴드가 올라 공연하기도 한다.4)

아즈메르 샤리프 영묘에서의 카왈리
출처: Wikimedia Commons
저자: Saswat swarup mishra

영묘에서 열리는 카왈리 연주는 삐르(pir)라 부르는 수피의 정신적 지도자가 제자들과 함께 자리하면 시작된다. 신에 대한 귀경례, 무함마드에 대한 찬양의 시를 읊는 것으로 시작하여 위대한 성자들에 대한 찬양이 노래와 함께 시작된다. 음악을 담당하는 연주가(까왈 qawwal)들의 그룹은 대략 5-9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하모니움과 타블라, 돌락(dholak)5) 등의 악기를 서너 사람이 잡게 되고 그 외 구성원은 보조 가수들로 이루어진다. 하모니움을 잡는 한 두 사람이 그룹의 리더 격이라 할 수 있는데 시를 노래해 가면서 전체적인 음조(raga)를 결정하게 된다. 보조 가수들은 중간중간에 추임새를 넣거나 노래의 일부를 하는데 계속 박수를 쳐가면서 가락을 잡는다. 공연이 진행되는 중간에 수피 스승들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 신자들이 앞으로 나가 절을 하고 보시(nazar)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역에서 꽤나 명망이 있는 사업가나 정치인들은 소액권의 돈다발을 풀어 수피 스승들에게 뿌리거나 카왈리 연주가들에게 뿌린다.6)

이들 까왈의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특정한 곡이 절정에 달하기 직전, 청중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때로는 일어나도록 부탁받기도 한다) 즉석에서 자신만의 춤을 추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전통적인 레퍼토리는 ‘아즈랑헤 Aaj Rang Hai’(보통은 랑Rang이라 부른다)7)가 연주된다. 이 때의 춤은 집단적 망아(忘我) 상태를 보여주는데, 음악에서 느낀 신적인 비전과 감각 속에 몸을 완전히 맡기게 된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끝없이 위아래로 흔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메블레비의 수피처럼 회전무를 추기도 한다. 이 춤은 필자가 보기에 정형화되지 않았지만 일부 깔란다르 수피들은 다소 정형화된 회전무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공연의 내용이야 어떻건, 처음 이 공연을 야간에 접한 사람들은 아마도 다소 당혹스럽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성스러운 공간 내에서 행해지는 다소 시끄럽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집단적인 춤과 음악이 이슬람적인 요소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에서 보게 되는 이슬람의 경건함과 엄숙함과는 정반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근대화 시기 수피즘에 대한 종파적 분열

앞서 말한 파키스탄 수피즘의 특징들을 염두에 두고 이들이 근대 파키스탄에서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를 간단히 생각해본다면 수피즘에 대한 테러가 단순히 소수의 폭력집단에 의해 우발적으로 행해진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과연 전통적인 수피의 모습들은 영국 식민주의를 거치면서 이슬람의 재건을 꾀했던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부강한 경제와 합리적 민주주의를 꿈꾸었던 파키스탄 건국의 일부 사회개혁가들에게 전통적 신비주의의 풍속들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은 당연했다. 또한 비이성적이고 이교도적인 냄새를 풍기는 신비주의의 관습들이 이슬람을 국가 건설의 이념으로 삼고자 했던 일부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수피즘에 대하여 앞서 말한 파키스탄 수니파의 두 분파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지 다시 고려해보자.

먼저 데오반디 수니의 울라마들(율법학자)은 19세기 후반 인도에서 이슬람 전통을 다시 부활시키기 위한 이슬람 개혁자들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수피 수행자들이 샤리아와 수피즘의 전통에 대해 ‘실제로’ 무지하다는 이유로 이들에게서 수피의 영묘(또는 그와 연계된 토지)의 운영과 관리 권한을 박탈하고자 했다.8) 게다가 이슬람 사회에서 수피 스승(pir)에 대한 숭배는 이단적 행위이며, 미신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또한 수피 스승과 율법학자(ulama)에 대한 차이를 없애버림으로써 수피의 기능적 의미를 율법학자가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율법적 해석을 위해 한 개인이 학자를 찾아가는 것은 마치 정신적인 각성을 위해 개인이 스승(삐르)를 찾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학자가 정신적 스승의 역할을 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수피즘의 무용론을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데오반디와는 달리, 바렐비는 수피즘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 전통, 예를 들면 성자들의 영적인 능력에 대한 믿음, 그들에 대한 숭배, 기일(忌日)을 위한 축제, 영묘 순례, 음악과 춤에 대한 관용적 태도, 그들의 계보 등을 옹호한다. 바렐비들에게 있어서 수피 지도자인 삐르는 신자들에게 속죄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신의 은총을 대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유행하던 카왈리 음악 또한 수피의 수행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두 파의 상반된 관점을 생각하면 교파의 세력에 따라 수피즘에 대한 대중들의 여론이 어떻게 갈리게 될지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 무슬림들 가운데 바렐비 수니파는 대략 60%가량에 해당하고 데오반디 수니파는 15% 정도이다. 바렐비 수니파가 압도적 다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대 파키스탄 무슬림들의 과반수가 치슈티 수피즘에 호의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서로 다른 이 두 분파의 입장은 각각의 신학교인 마드라사(madrasa)를 통해 젊은 층과 대중들에게 확대 재생산되었는데, 마드라사 운영 비율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데오반디 수니파 측은 과거에도 파키스탄의 마드라스 대부분을 운영하고 있다. 1947년 파키스탄에는 137개의 마드라사가 있었는데, 현재는 대략 1만여 개의 마드라사가 있다.

마드라사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출처: 저자 제공

데오반디와 바렐비 등에 속한 마드라사는 1970년대 중반부터 확산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펀잡주에서 그 확장세가 매우 두드러진다. 이로 인해 두 파의 종파적 갈등이 심각해졌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당시 라호르에서만 그 수가 75개소에서 324개소로 늘어났는데, 거의 대부분 데오바니 수니파가 운영하는 마드라사였다. 당시 수니파의 본산이자 수피즘에 대해 단호한 박멸의 입장을 취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메레이트 정부가 데오반디에 밑돈을 댄 것이 마드라사가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말은 파키스탄 내의 종파적 대립과 갈등의 원인이 반드시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반(反)수피즘 교파 데오반디는 8천3백여개의 마드라사를 운영하고 있고, 친(親)수피즘 교파인 바렐비는 1천700여개를 운영한다. 전체 무슬림 인구의 15%인 데오바니 파가 60%의 마드라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무슬림 인구 60%의 바렐비 파가 17% 정도의 마드라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에서 종파에 따른 마드라사의 증가
출처: Wikipedia Commons
저자: Jalal0

마드라사를 통한 데오반디의 교육과 선동이 모두 수피즘에 대한 테러의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워도 파키스탄 내 국민들의 수피즘에 대한 이질적 정서와 견해가 가속화될수록 이들에 대한 무장세력들의 테러 또한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것은 당장 과거 10여 년 동안 증가하고 있는 수피 성자들의 영묘에 대한 폭탄테러의 규모와 횟수가 말해준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지속적인 테러의 도발을 통해 경직된 파키스탄의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극단주의자들은 테러의 공포를 통해 수백 년 혹은 천 년 전의 박제화된 신앙 속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슬람 무장 세력들은 무슬림의 신앙을 오직 꾸란과 하디스의 축자적인 해석에만 의지하려는 살라피즘(salafism)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역사성과 이슬람이 지나간 각 지역의 독자성을 모두 무시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테러 후에 나타난 극단주의 무슬림들의 폭력을 이겨낼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물론 형식적인 치안상태를 유지하는 행정관료들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으나, 그보다는 본래 파키스탄 수피즘이 보여주었던 관용과 형제애의 발현에서 그 해답을 기대해본다. 예를 들면, 2017년 랄 샤바즈 칼란다르 영묘 테러로 90여명이 사망했을 때, 칼란다르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더욱 열렬하게 영묘를 방문했다. 테러가 있던 바로 다음 날, 예전과 같이 이른 새벽에 영묘의 문을 열었고, 그날 예정되어 있던 전통적인 춤의 의식도 계속되었다. 수피의 본래 정신을 간직하는 것이야말로 테러에 맞서는 길이라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었다.

 

저자소개

심재관(phaidrus@empas.com)
현재 상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다.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파키스탄 펀잡 대학에서 고문서 아카이브 프로젝트에 참여해 일했다.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승려와 원숭이》등의 책과 관련 논문이 있다. 금강대 HK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서울대, 동국대, 상지대 등에서 강의했다.

 


1) 파키르(Fakir)는 일반적으로 수피 무슬림을 가리키는 말이며 일반 신자보다는 주로 세속적인 인연과 소유를 멀리하고 빈곤하게(fakr) 떠돌아다니는 수행자를 가리킬 때 더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이슬람 이외에 힌두교나 불교의 고행자를 파키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단어로, 깔란다르(Qalandar), 말랑(Malang), 말라마띠(Malamati) 등이 있는데, 파키르 보다는 훨씬 이슬람 수피의 맥락에 가까이 있는 단어들이고, 특정 수피즘의 종단에서 말하는 방랑 고행자를 지시할 수도 있다.

2) 실실라(silsilah)는 정확히 교파라는 의미가 아니라 ‘고리, 연쇄적인 관계, 계보’를 뜻한다. 이는 아마도 필자의 감각으로 현대 한국선불교에서 말하는, ‘가풍’이나 ‘문중’, 또는 ‘법통’ 등의 어감에 더 가까울 것이다. 구산 문중, 효봉 가풍, 성철 법통 등처럼 말이다. 혹은 더 넓게, 법맥이나 선맥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불교의 법맥과 같이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의 계보 속에 있는 스승 혹은 제자가 다른 계보 속에 있는 제자나 스승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3) 지크르(Zikr) 혹은 디크르(Dhikr)라고 말한다. ‘(신을) 회상하는 일’을 뜻한다. 신의 이름이나 꾸란 등에서 발췌한 짧은 기도문을 반복적으로 빨리 염송(念誦)하는 것이다. 불교나 힌두교에서 불명(佛名)이나 만뜨라 등을 반복할 때 염주를 사용하는 것처럼, 수피들도 이러한 도구를 통해 신을 떠올리는 일에 더 몰입하게 된다. 99개 혹은 100개의 구슬로 된 염주들을 주로 쓴다.

4) 파키스탄의 카왈리 보컬로 유명했던 느스랏 파테 알리칸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관심과 유행에 따라 카왈리는 전통적인 종교음악의 경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독립된 음악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연주장소도 영묘와 같은 전통적인 공간에서부터 결혼식을 치르는 호텔까지 천차만별이다. 연주의 의미와 기능이 다양화되는 중이다. 유명한 카왈리 밴드들과 현대 대중 음악 사이의 협연이나 크로스오버 앨범들도 있고,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밴드들도 있다. 심지어 한국인으로 구성된 밴드도 있다.

5) 돌락(dholak)은 한국의 장구보다 훨씬 작고 더 길게 생겼으며 양손으로 치게 된다. 소리를 조절하는 장치가 없으며, 탄성만 겨우 조절할 수 있다. 카왈리에서 돌락을 한 사람이 맡아서 연주하는 경우도 있고 타블라 연주자가 가지고 있다가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돌락은 타블라와 달리, 특별한 타법이 거의 필요 없다.

6) 나자르는 본래는 수피 스승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보시자가 돈을 스승 앞에 놓으면 스승이 가볍게 돈 윗면을 건드려서 받았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그대로 둔다. 그러면 보시자가 수피 스승의 발에 입을 맞추며 절을 할 때 그에게 축복을 내리게 된다. 요즘은 보시할 사람이 고액권을 가지고 무대 귀퉁이로 가면, 카왈리 밴드의 구성원 중 한 명이 즉석에서 미리 준비한 소액권(보통 10루삐정도) 지폐 다발로 바꿔준다. 하나의 절차로 정착된 모습이다. 카왈리 연주가 계속되는 중간에 보시자는 무대 앞쪽으로 가서 이것을 연주자들이나 수피 스승의 머리 위쪽으로 ‘돈비’가 내리듯 연속해서 뿌린다. 이런 모습은 현대적으로 변형된 경의의 표시다.

7) ‘랑’은 앞에서 말한 수피 시인 아미르 쿠스로(Amir Khusrau)의 작품으로 자신의 스승인 니자무딘 아울리야를 위해 지은 것이다. 치슈티 사원축제의 카왈리 연주에서 보통 가장 절정에 다다를 때 이 곡을 연주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함께 춤을 추게 된다.

8) 사실 이것은 1957년 소위 서(西)파키스탄 와크프 재산 법령(The West Pakistan Waqf Properties Ordinance)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이 법령으로 그동안 종교적인 목적으로 기탁되었던 모스크와 영묘, 토지 등의 모든 재산을 정부가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상의 토지개혁법이었던 이 법령은 지방의 주지들이나 수피 지도자가 행사할 수 있었던 정치적이고 경제적 권위를 징발해버렸다. 본래 성자가 죽으면 그의 아들이나 제자에게 그의 영묘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책임을 맡게 되는데, 다시 성자의 계보에 오르게 된 제자는 영묘를 중심으로 그 성자와 인연을 맺은 부족장들이나 주지들로부터 자발적으로 기금과 토지를 기탁받는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귀족이나 주지들로부터 재산을 기탁받아 이 공공의 재산을 모스크나 영묘를 유지하는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또는 가난한 대중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생계를 보존토록 도와주었다. 이것이 잘 알려진 와크프(Waqf) 전통이다. 따라서 특정 지역의 성자들은 영묘나 신학교 등과 같은 종교적 시설에 헌납된 재산(주로 토지)에 대해 일정한 운영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지역의 주민들을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이기도 했다.

 


참고문헌

  • Aquil, Raziuddin 2012 “Music and Related Practices in Chishti Sufism- Celebrations and Contestations”. Social Scientist Vol. 40(3/4), 17-32.
  • Ernst, Carl W. and Bruce B. Lawrence. 2002. Sufi Martyrs of Love -Chishti Sufism in South Asia and Beyond. Palgrave Macmillan.
  • Ewing, K. 1997. Arguing Sainthood -Modernity, Psychoanalysis, and Islam. Duke University Press.
  • Ewing, K. 1983. “The politics of Sufisim -Redefining the Saints of Pakistan”.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Vol. 42, No. 2, 251-268.
  • Frembgen, J. W. 2012. “Dhamal and the Performing Body-Trance Dance in the Devotional Sufi Practice of Pakistan”. Journal of Sufi Studies 1(1), 77-113.
  • Green, N. 2008. “Making Sense of Sufism in the Indian Subcontinent” Religion Compass 2(6) 1044-1061.
  • Martin, Nicolas. 2015. Politics, Landlords and Islam in Pakistan. Abingdon: Routledge.
  • Metcalf, Barbara D. 2009. Islam in South Asia in Practic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 Nasr, S. V. R. 2000. “The Rise of Sunni Militancy in Pakistan : The Changing Role of Islamism and the Ulama in Society and Politics” Modern Asian Studies Vol. 34(1) 139-180.
  • Rozehnal, Robert. 2006. “Faqir or faker? : The Pakpattan tragedy and the politics of Sufism in Pakistan” Religion 36, 29-47.

 

PDF 파일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