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년세대와 신생대영화, 그 현재와 미래

최근 중국 영화의 화려한 외적인 성장과 그 이면에 놓인 이러한 변화들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주요한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위치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 글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중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경로로서 최근 중국 영화계의 변화와 그 주역인 청년세대의 문화소비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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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도(성공회대학교)

중국 영화계에 드리운 암운, 코로나19? 혹은?

2020년 새해 벽두부터 중국 우한(武漢)을 진앙지로 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의 심각한 확산 사태가 중국과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직도 확산 일로에 있는 탓에 언제쯤 진정국면에 접어들지 예상하기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이번 사태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방면에는 물론 문화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영화계 역시 마찬가지인데 특수를 누리는 주요한 시즌인 겨울방학과 설 연휴, 그리고 졸업, 입학, 개학 등으로 이어지는 1~3월 내내 관객 수 급감으로 인해 흥행수입 상의 급격한 감소를 겪거나, 일부 영화의 경우 개봉 일정의 취소나 연기 등의 상황이 연이어지고 있다.

2019년 중국 영화 성적표
출처: 중국 국가전영국(国家电影局), 신화사, 인민망 한국어판

코로나19의 진앙지 우한이 있는 국가이자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낳은 최대의 피해국이기도 한 중국의 경우 그 타격은 더욱 큰 데, 2020년 1월 24일 중국 전국의 오프라인 영화시장에서의 상영이 중단된 이후로 아직까지도 극장 상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전년도 같은 시기에 벌어들였던 114억여위안(한화로 약 1.94조 원)의 수익이 사라져버린 셈이 되었다. 만일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이 사태가 4월말 무렵에나 종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 해 영화 극장 상영 수입의 1/3가량인 198.28억 위안(한화 약 3.4조 원)을 날릴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중국 영화계로서는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 되는 것이다.(杜威. 2020) 최근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면서 단지 중국에 국한된 상황이 아니게 되었고, 또한 영화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와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2위의 영화시장에 뒤이어 올해에는 미국을 꺾고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라서리라 예상하고 있었던 중국 영화계로서는 사실 최근 상황이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외적 충격에 의해 드리워진 암운은 사실 그 충격의 요인이 해결되거나 사라지면 더 조속한 회복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모순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순조롭게 전반적인 사회 상황과 경제가 회복된다면, 조만간 중국이 예상해왔던 세계 영화시장 1위라는 꿈은 조만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적인 성장이나 시장논리에만 매달려 정작 문화로서의 영화의 본질에 대해 외면하거나 간과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본질적이면서도 심각한 암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정치적 동원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만 바라보거나 혹은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해한다면, 외형적인 성장은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자유로운 소통과 공론, 그리고 공감의 장으로 영화가 지닌 풍부한 역할과 의미를 발전시킬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화계라는 문화적 장(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단연 청년세대라 할 수 있다. 영화의 가장 주요한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소비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주역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실 중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며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장이모우(張藝謀), 천카이거(陳凱歌)와 같은 제5세대 감독이나 자장커(賈樟柯) 같은 제6세대 감독들이 모두 서른 전후의 나이에 그런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미 기성화되어버린 이들을 대신해 7세대라는 새로운 흐름을 창출해 낼 만큼 두각을 나타내는 청년 감독 세대가 잘 보이지 않게 된 중국 영화계의 현실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최근 중국 영화시장의 화려한 외형적인 성장과 그 이면에 놓인 새로운 변화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주요한 재현하는 주체이자 재현되는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청년은 대중문화로서의 영화를 어떻게 소비하고 수용하며, 그 속에서 어떤 위상과 역할을 지니고 있는가? 이 글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중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경로로서 최근 중국 영화계의 변화와 그 주역인 청년세대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국뽕’과 코미디 사이
중국 역대 최고 흥행작 ‘전랑2’의 포스터
출처: 北京登峰国际文化传播有限公司, 五洲电影发行有限公司

2017년 7월 개봉한 ‘전랑(戰狼)2’는 글로벌 흥행수입 8.7억 달러(한화 약 1조 원)를 거둬들여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역대 박스오피스 상으로도 72위를 기록하여, 비(非)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10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영화가 되었다. ‘전랑2’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비의 1/10 정도에 불과한 3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거의 30배 가까운 수익을 거둬들였는데, 3.56억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28억 달러의 수익 역대 글로벌 박스오피스 1위인 ‘어벤져스: 엔드 게임’과 비교해 봐도 그 수익률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그것도 단지 자국 내 영화시장에서만 전체 흥행수입의 98%에 해당하는 8.54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사실도 놀랍다. 이는 자국 시장에서의 박스오피스만 놓고 보자면, 전 세계의 모든 영화 가운데 ‘스타워즈: 에피소드7 깨어난 포스’(미국 시장 내 9.36억 달러), ‘어벤저스: 엔드게임’(미국 시장 내 8.58억 달러)에 뒤이어 3위에 해당하며, 7.6억 달러를 벌어들인 4위 ‘아바타’를 훨씬 앞지르는 기록이다.(Box Office Mojo. 2020)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 (電影票房. 2020참조)

순위 국적 장르 감독 영화명(중국명) 흥행수입 (억위안) 흥행수입
(억원)
상영연도
1 중국 액션 우징 (吳京) 전랑2 (戰狼2) 56.39 9,595 2017
2 중국 애니메이션/판타지 쟈오즈 (餃子) 나타지마동강세 (哪吒之魔童降世) 49.34 8,396 2019
3 중국 액션/SF 궈판 (郭帆) 유랑지구 (流浪地球) 46.18 7,858 2019
4 미국 액션/SF 루소 형제 어벤저스4: 엔드게임 (復仇者聯盟4:終局之戰) 42.05 7,155 2019
5 중국 액션 린차오셴 (林超賢) 오퍼레이션 레드씨 (紅海行動) 36.22 6,163 2018
6 중국 코미디 저우싱츠 (周星馳) 미인어 (美人魚) 33.9 5,768 2016
7 중국 코미디 천스청 (陳思誠) 당인가탐안2 (唐人街探案2) 33.71 5,736 2018
8 중국 드라마 천카이거 (陳凱歌)
쉬정 (徐崢)
닝하오 (寧浩)
원무예
(文牧野) 외
나와 나의 조국 (我和我的祖國) 31.46 5,353 2019
9 중국 드라마 원무예 쉬정 나는 약신이 아니다 (我不是藥神) 30.75 5,232 2018
10 중국 드라마 리우웨이창 (劉偉強) 캡틴 파일럿 (中國機長) 28.84 4,907 2019
11 미국 액션 F.게리 그레이 분노의 질주8 (速度與激情8) 26.49 4,508 2017
12 중국 코미디 옌페이 (閆非) 평다모 (彭大魔) 서홍시수부 (西虹市首富) 25.27 4,300 2018
13 미국 액션 제임스 완 분노의 질주7 (速度與激情7) 24.26 4,128 2015
14 중국 액션/판타지 쉬청이 (許誠毅) 몬스터헌트 (捉妖記) 24.21 4,120 2015
15 미국 액션/SF 루소 형제 어벤저스3: 인피니티워 (復仇者聯盟3:無限戰爭) 23.7 4,033 2018
16 중국 액션/판타지 쉬청이 몬스터헌트2 (捉妖記2) 22.19 3,776 2018
17 중국 코미디 송양 (宋陽) 장츠위 (張吃魚) 수수적철권 (羞羞的鐵拳) 21.9 3,727 2017
18 중국 코미디 닝하오 크레이지 에일리언 (瘋狂的外星人) 21.83 3,715 2019
19 미국 액션 제임스 완 아쿠아맨 (海王) 19.97 3,398 2018
20 미국 액션/SF 마이클 베이 트랜스포머4: 사라진 시대 (變形金剛4:絕跡重生) 19.79 3,367 2014

3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는데, ‘전랑2’가 택했던 전략은 기본적으로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상위권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다른 영화들과 유사한 방향성, 즉 소위 ‘국뽕’[1]이라 할 만한 방향성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군사 소요 사태로 위험에 빠진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중국인 교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반군의 백인 용병들과 맞서 싸우는 퇴역한 중국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원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소위 ‘중국판 람보’라 불리기도 하는 ‘전랑 2’는 중국의 ‘군사 굴기’에 과도한 애국주의를 버무린 ‘국뽕’ 영화의 대표주자라 할 만한 영화이다. ‘유랑지구(流浪地球)’, ‘오퍼레이션 레드씨(紅海行動)’, ‘나와 나의 조국(我和我的祖國)’, ‘캡틴 파일럿(中國機長)’ 등에 이르기까지 Top 10 가운데 절반이 그런 유형의 영화들인데, 이들은 각기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전랑 2’와 마찬가지로 ‘굴기하는 중국’, ‘자랑스러운 위대한 중국’이라는 ‘중국몽’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주제의식을 다룬 ‘국뽕’ 계열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장르상으로 보자면 건국 7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옴니버스 영화 ‘나와 나의 조국’을 제외하면 나머지 영화들은 중국의 군사 굴기, 우주 굴기 등의 소재에 화려한 CG와 액션을 결합하여 만든 액션영화들로, 이런 영화들이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관객층은 주로 청년층이다. 이런 영화들은 청년 관객층들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모방하여 그와 매우 유사한 영화문법과 장르적 특성들을 도입하여 작품을 만들기는 하였지만, 그런 선악의 대립이나 재난적 상황에서 등장하는 영웅 내지는 구원자가 더 이상 미국인이나 백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는 차이점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비록 중화주의적 ‘국뽕’이라는 요인 탓에 중국 이외의 시장, 특히 동아시아권의 시장에서는 흥행에 거의 실패하기는 하였지만, 역으로 그 덕분에 중국 내 영화시장만으로도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글로벌 흥행수입을 능가하는 수입을 거둘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자면, ‘국뽕’이야말로 중국 영화자본과 상업영화들이 놓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 하겠다.

중국 박스오피스 상위권 20위 내에서 또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미인어(美人魚)’, ‘당인가탐안(唐人街探案)2’, ‘서홍시수부(西虹市首富)’, ‘수수적철권(羞羞的鐵拳)’, ‘크레이지 에일리언(瘋狂的外星人)’ 등과 같은 코미디영화들이다. 이런 코미디영화들도 세부적으로는 각기 다른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겠지만, 대체로 소위 우리터우(無厘頭)형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코믹한 상황을 그려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터우란 코미디영화로 유명한 홍콩의 감독 겸 배우 저우싱츠(周星馳)가 만들어낸 좌충우돌하는 괴짜 캐릭터를 말하는데, 일상의 사리에 맞지 않는 황당한 말과 행동으로 때론 바보같기도 하고 무뢰한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추악하기까지 한 세속적 인간의 욕망을 비웃고 부조리한 권력과 현실을 풍자하는 통쾌함을 담고 있기도 한 독특한 인물형상이다. 코미디영화 가운데 박스오피스 최고의 기록을 갖고 있는 ‘미인어’ 역시 저우싱츠가 감독한 영화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우리터우형 코미디는 홍콩에서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도 수십 년간 큰 인기를 누렸으며, 다른 상위권 코미디들 역시 이와 유사한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코미디영화에서 홍콩 반환 이전의 저우싱츠 영화에서와 같은 현실 비판적 뉘앙스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저우싱츠식 코미디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이들 대륙판 우리터우 영화들이 최근 중국 상업영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B급 정서 가득한 상황극 위주의 코미디영화들은 언어나 유머감각 등의 차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 미국식 코미디영화와는 달리 중국인들이 좋아할만한 중국 특색의 유머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 만들어내기 시작한 이런 저예산 영화들이 초대박 행진을 이어가면서 이런 부류의 코미디영화와 이를 만들어온 영화제작사 및 감독, 배우들이 이제 중국 영화계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위의 표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박스오피스 상위 20위권 영화들 가운데 수입영화(엄밀히 말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불과 6편에 불과하며, 이들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오락성 강한 액션/히어로영화들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국가 영화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시장을 놓고 이런 할리우드 영화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은 주로 ‘국뽕’류 영화와 코미디영화로, 20위권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흥행 실적 역시 수입영화들을 훨씬 상회하며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이처럼 흥행순위 상위권에 현재 중국의 굴기를 다룬 ‘국뽕’류 액션영나 중국 대륙판 우리터우류의 코미디영화가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은 2010년대에 와서야 나타난 현상으로, 이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영화계에서의 세대 교체, 내지는 트랜드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하겠다.

 

청년 관객, 중국 영화 트랜드 변화의 힘

최근 중국 영화시장에서의 이 같은 형세 변화는 대체로 아래 세 가지 요인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중국 정부와 정책의 영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워낙에 영화를 당-국가를 위한 이데올로기 선전 수단으로 보아왔던 기존의 사회주의적 문화정책으로 인해 공산당과 중국정부의 검열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영화 제작에 있어서 장르나 주제선택, 그리고 장면 묘사 등에 있어서 상당 부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역사를 곡해하고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는 내용, 중요한 역사 인물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내용, 해방군·경찰·사법권을 폄하하는 내용, 음란하고 비속한 저급한 내용, 자극적인 살인, 폭력, 공포 등의 내용, 구체적인 범죄행위 묘사, 종교 간 모순과 충돌을 부추기고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내용 등은 검열에 의해 삭제되거나 혹은 심하면 아예 상영금지 처분이 내려질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폭력이 담긴 범죄물이나 관리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다루는 사회 비판물, 현대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물 같은 장르는 제작이 쉽지 않다. 더욱이 시진핑 정권이 시작된 2012년 무렵부터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검열과 통제가 더욱 강화되면서[2] 중국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직시나 클로즈업을 강점으로 하던 6세대 영화는 물론, 상업영화 가운데서도 정부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요소가 담긴 작품이나 장르들 역시 제작 자체가 쉽지 않게 되었다. 또한 대륙의 영화계에서 정책에 비협조적인 홍콩계 감독과 배우들이 점차 배제되고 그 대신에 대륙 출신의 감독과 배우들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애초에 영화 장르나 주제 선택 자체가 몇몇 제한된 장르와 주제로 한정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 당국이 선호할 만한 애국주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국뽕’ 영화와 검열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코미디영화야말로 영화 제작에 있어서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덜 받을 수 있는 영화 장르인 것이다.

둘째로, 영화제작자와 투자자의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른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제작자로서는 당연히 앞서 언급하였던 정부의 검열과 통제로 인한 리스크가 적다는 점에서 ‘국뽕’영화나 코미디영화를 선택하기도 하겠지만, 경제적 논리에 따라 더 적은 투자로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런 영화는 강점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자긍심이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활용한 영화야말로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낼 수 없는 중국인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중국인만을 위한 영화시장 내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도 충분히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전략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특히 주로 아이디어만을 가지고도 승부할 수 있는 코미디영화의 경우 화려한 CG나 스펙타클 같은 요소를 필요로 하는 액션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주요 관객층인 청년세대의 ‘국뽕’영화와 코미디영화에 대한 선호와 소비가 있다. 사실 제작 단계에서의 장르 및 주제의 제약이나 제작자들의 전략적 선택만으로 시장에서의 트랜드나 전반적인 형세 자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런 장르와 주제의 영화들을 선택하여 소비하는 관객들의 능동적인 행위야말로 2010년대 중국 영화시장에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청년세대: 80후와 90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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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대별 인구분포 상 청년 세대를 규정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흔히 중국 내에서 자주 사용되는 ‘80후(後)’와 ‘90후’에 해당하는 세대가 주요한 청년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이후 출생한 80년대생을 가리키는 ‘80후’가 2.23억 명, 그리고 ‘90후’가 1.93억 명으로 이 둘을 합치면 전체인구의 30% 가까운 비율을 차지한다. 인구 비중 상으로는 30%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영화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히 90년대 출생자들인 20대가 전체 흥행수입의 55%(2019년 기준)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向阳. 2020)

이처럼 가장 중요한 영화 소비자층을 이루고 있는 80후와 90후 세대는 개혁개방 이후에 태어나서 문화대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 사실상 급성장해온 중국의 시장 자본주의와 함께 자라온 세대라 할 수 있다. 사회 경제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나면서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이루어진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경제적 물질적 발전도 겪었지만, 또한 그만큼 부모들이 겪어야만 했던 국영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시아강(下崗: 실업), 그리고 농민공의 이농과 이민의 과정 속에서 극단적인 빈익빈 부익부의 폐해 또한 함께 겪어온 세대이기도 하다. 80후세대가 성장해온 지난 40년 동안 중국 사회 전반의 급속한 경제적 성장과 함께 인구 상당수의 신분상승과 중산층화가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또 한편으로 극단적인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로 인해 부유층과 동시에 하층민 역시 규모가 확대되는 과정 속에서, 청년세대 역시 부모의 신분과 경제력에 따라 양극화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형제 없이 독자 혹은 독녀인 경우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청소년기에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한국의 대중음악과 게임 등을 즐기며 성장해왔으며, 특히 영화 방면에 있어서는 홍콩의 무협 액션 영화나 저우싱츠의 코미디영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온 세대라 할 수 있다. 주로 불법복제판 VCD/DVD이나 인터넷 상의 불법 다운로드 등을 통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문화상품을 소비해오던 이들이 2010년대 불법복제 및 다운로드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규제, 그리고 합법적인 상영시장의 확대와 함께 극장 관객층의 주력으로 전환해온 것이다.

이들은 70후 이전 세대들이 공유해왔던 과거 문화대혁명의 상처나 사회주의적 가치와 같은 거시적인 정치 담론이나 무거운 주제의 서사보다는 가볍고 탈정치적인 서사를 더 선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서구세계나 선진국들로부터 받아왔던 차별과 멸시에 대한 반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동안 이룬 경제적 성취에 대한 자부심 등으로 인해 민족주의 내지는 애국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하기도 하다. 이런 중국의 청년세대들에게 있어서 ‘국뽕’ 액션영화야말로 이들을 극장가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유인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대인들이 각박하고 비참한 현실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웃음과 유머를 담은 코미디영화 역시 이들의 대중적 취향에 적합한 장르라 하겠다. 특히 괴짜 루저의 성공신화나 중산충 소시민이 해외에 나가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최근 대륙의 코미디영화들은 비록 과거 저우싱츠식 우리터우처럼 하층민에 대한 페이소스나 현실 사회에 대한 풍자적인 요소가 잘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서민들의 정서와 공감대를 자극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중국몽을 다룬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나 일상 현실 에피소드를 희화화한 코미디영화들이 최근 청년세대 관객층의 대중적 취향과 선호 트랜드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6세대 감독을 대신해 새롭게 등장한 ‘70후’와 ‘80후’의 신예 청년(혹은 장년층) 감독들의 역할이 컸다.

 

포스트6세대 혹은 신생대감독

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명인 왕샤오슈아이(王小帥) 감독은 2010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젊은 세대의 감독들을 나이나 졸업연도 같은 기준만으로 7세대나 8세대 같은 범주로 묶는 것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짓이라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감독의 개성이 갈수록 강조되면서 어떤 집단적 특성이나 공통성이 사라져버린 상황 속에서 이미 5세대나 6세대같이 단괴(團塊)화된 형태의 감독군을 묶어서 범주화하는 세대론 자체가 이제 더 이상 의미 없는 다원화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Fan Shuhong. 2018) 그런 의미에서 제6세대 감독 이후는 7세대로 묶기보다는 그저 ‘포스트6세대’ 혹은 새로운 감독군이라는 의미에서 ‘신생대감독’이라 부르는 편이 나을 듯하다. 이들 가운데는 여전히 작가주의적인 작품 활동을 지향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에 그리 연연하지 않거나 혹은 위에서 언급한 박스오피스 상의 흥행을 지향하는 상업주의적 영화를 위주로 만드는 이들도 적지 않다. 딱히 이들을 묶어서 정형화할 유파적 특징이나 공통점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앞서 언급하였던 80후 세대들이나 그보다 살짝 앞선 70후 세대가 지니는 유사한 경험과 시대적 특징들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표에서 살펴본 상위 20위 안의 영화들을 만든 감독들의 경우만을 놓고 보자면, 묘하게도 모두 홍콩 출신의 60년대 생 감독들을 제외한 나머지 감독들은 모두 대륙 출신의 1970-80년대 생이라는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다. 액션영화, 판타지 애니메이션, SF영화 등의 중국판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만들어낸 우징(吳京, 1974년생), 쟈오즈(餃子, 본명 楊宇, 1980년생), 궈판(郭帆, 1980년생) 등이나, 중국의 서민 정서에 부합하는 소재들을 가지고 저예산 코미디영화를 만들어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쉬정(徐峥, 1972생), 닝하오(寧浩, 1977년생), 천쓰청(陳思誠, 1978년생), 원무예(文牧野, 1985생), 옌페이(閆非, 1983년생), 펑다모(彭大魔, 1983년생), 송양(宋陽, 1982년생), 장츠위(張吃魚, 1985년생) 등이 모두 그에 해당한다.

사실 이처럼 유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성장 시기를 거쳤다는 공통점을 지닌 것은 단지 신생대감독들만의 특징은 아니다. 하지만 신생대감독들이 기존의 5세대나 6세대 감독들과 다른 점은 상당수가 베이징전영학원(北京電影學院)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5세대 감독들이 베이징전영학원에서 4세대 감독들로부터 예술적 미학적 전통을 이어받는 한편 그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예술적 발전을 이루어냄으로써 자신들의 세계적 명성을 날릴 수 있었고, 6세대 감독들 또한 5세대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서 그들의 한계를 넘어 중국 현실에 한발 더 다가감으로써 작가주의적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일종의 엘리트적인 작가주의의 계보라는 차원에서 그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신생대감독들 가운데 일부 베이징전영학원 출신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상하이전영학원이나 중앙희극학원, 인민해방군예술학원 등과 같은 다양한 학교들 출신으로, 각기 다른 대학 및 지역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베이징전영학원을 매개로 한 하나의 작가주의적 계보보다는 할리우드영화나 홍콩영화와 같은 대중적인 장르영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상업영화의 길로 들어선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오히려 이들은 졸업 이후 ‘카이신마화(開心麻花)’같은 희극 극단이나 혹은 닝하오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화이허우즈(壞猴子)’ 같은 영화사 등을 매개로 일련의 작품 활동을 함께 하면서 묶어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존에는 없던 감독군 내지는 영화인들의 다소 새로운 형태의 기업화된 네트워크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신생대감독의 작품들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청춘들의 모습은 기존의 6세대 감독의 영화들에서의 청춘들과는 전혀 다르다. 자장커(賈樟柯) 감독의 ‘소무(小武)’나 ‘플랫폼(站台)’, 혹은 왕샤오슈아이 감독의 ‘북경자전거(十七歲的單車)’, 로우예(婁燁) 감독의 ‘여름궁전(頤和園)’ 등과 같은 6세대 감독의 영화들에서 청년 형상은 주로 상처받고 유동하는 농민공이나 학생들의 모습이었다고 한다면, 최근 흥행 상위권의 주류 상업영화들 속에서 청년(혹은 장년)은 대부분 위험에 빠진 중국인이나 인류를 구하는 영웅, 아니면 신분상승이나 욕망실현을 위해 좌충우돌하는 우리터우형 인물들뿐이다. 이들의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중국식 영웅과 우리터우라는 두 개의 청년 이미지는 언뜻 다른 듯이 보이지만, 사실 둘 다 국가 차원에서의 ‘중국몽’과 개인 차원에서의 ‘자본주의적 성공신화’라는 두 개의 이데올로기 담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공유된 꿈을 재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 영화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국뽕’영화와 코미디영화의 유행은 어쩌면 중국 청년 관객층의 자연스러운 문화소비 트랜드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중국 당국의 국가주의적 논리와 중국 영화자본의 시장논리가 만들어낸 합작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영화계가 자국 내 흥행수입에 만족하며 자국 중심주의적인 주제와 장르에만 함몰된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중국 청년세대가 지닌 문화적 다원성과 자유로운 표현의 가능성들이 제한되어 중국 영화의 질적 발전이 뒷걸음질치게 된다면, 이는 코로나사태보다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중국영화계에 대한 암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중국의 포스트6세대영화 혹은 신생대영화를 통해 5세대와 6세대를 넘어서는 보다 다원화된 발전의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저자소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의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에서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중국, 홍콩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근현대 사상•문학 및 문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홍콩 영화 100년사』(공역, 그린비, 2014), 『정동하는 청춘들: 동아시아 청년들의 정동과 문화실천』(편저, 채륜, 2017) 등을 비롯하여 영화 및 문화연구 분야 관련 다수의 저서 및 논문을 출판하였다.

 


[1]이런 류의 영화에 대해 ‘신(新)주선율 영화’, 혹은 ‘범(凡) 주선율 영화’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강내영. 2016) 과거 ‘주선율 영화’가 지향했던 사회주의적 가치들보다는 주로 다른 민족들을 타자로 한 중화주의 내지는 자민족 중심주의적인 가치들이 부각되고 있는 이런 영화들은 한국에서 주로 ‘국뽕’이라는 속어로 표현하는 영화들과 더 유사해 보인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국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다,

[2] 시진핑 정권 2기가 시작된 이후로 2018년 4월 영화부문에 대한 주관부처를 기존의 국무원 산하의 광전총국(國家新聞出版廣播電影電視總局, 약칭 廣電總局)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로 이관하였는데, 이는 공산당 선전부의 직접적인 지도 및 통제 권한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제도적으로 가시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참고 문헌

  • 강내영. 2016. 『중국영화의 오늘; 영화대국에서 영화강국으로』. 부산: 산지니.
  • 杜威. 2020. “中国票房“休市”一个月,全球电影市场慌了?“ 騰訊網(2월19일)
    https://new.qq.com/omn/20200219/20200219A0OL0C00.html (검색일: 2020.2.20.)
  • 電影票房. 2020. “内地电影票房总排行榜”
    http://58921.com (검색일: 2020.2.20.)
  • 向阳. 2020. “90后成观影主力,2020中国电影市场发展现状、产业链及问题分析”. 艾媒网(1월12일)
    https://www.iimedia.cn/c1020/67996.html (검색일: 2020.2.20.)
  • BBC 비주얼 저널리즘. 2020. “아카데미 작품상 ‘기생충’ 아시아 영화에 새 길을 열다”. BBC News 코리아(2월 10일)
    https://www.bbc.com/korean/resources/idt-16e190f9-02be-4193-a2cf-0af0b04ca76c (검색일: 2020.2.20.)
  • Box Office Mojo. 2020. ‘All-Time Charts’
    https://www.boxofficemojo.com/charts/overall/?ref_=bo_nb_ydw_tab (검색일: 2020.2.20.)
  • Fan Shuhong. 2018. “Meet the New Wave of Chinese Filmmakers”. RADII (August 2)
    https://radiichina.com/meet-the-new-wave-of-chinese-filmmakers/
  • KOFIC KoBiz. 2020. “세계영화산업”
    http://www.kobiz.or.kr/new/kor/03_worldfilm/foreign/main.jsp?conCd=WORLD
    (검색일: 20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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