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청년 세대와 국제노동이주

이주노동자의 송금이 전체 GDP의 약 30%를 차지하는 네팔에서 국제이주노동은 하나의 주요 산업이 되었다. 이주자 대부분은 청년 세대로서 이들의 이주 대상국가와 이주목적 및 이주유형은 카스트·종족·계층·교육수준·젠더 등의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하나의 ‘통과의례’가 된 국제노동이주는 네팔 사회에서 ‘이주 문화’로 자리 잡아, 지역사회와 가족의 관습과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네팔 청년 이주자의 절대 다수가 체류하는 걸프 지역 국가와 심지어 한국에서도 자살을 포함한 네팔 청년 이주자의 사망 비율은 이례적으로 높다. 청년의 해외 송출을 촉진하고 있는 네팔 정부에게 이들의 안전한 이주와 귀국을 담보할 수 있는 이주체계의 시급한 마련을 요청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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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학(전남대학교)

네팔 경제 : ‘농업경제에서 송금경제

네팔에서 국제 노동 이주는 경제적 생존을 위한 핵심 전략이 되었다. 2018년 네팔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화 약 840달러로 세계 최빈국의 하나에 속한다. 주요 산업인 농업에 네팔 전체 인구의 약 85%가 종사하지만, 생산량의 감소, 상속에 따른 농지 분할, 농업 생산성 제고에 필요한 적절한 비료와 종자 및 관개시설의 미비로 네팔의 농업부문은 매우 취약하다. 산업부문 역시 지난 1996년부터 약 10년 동안 지속한 내전과 정치체제의 변화에 따른 정치적 불안과 에너지 위기 등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인할 수 없는 형편이다. 네팔은 젊은 노동력을 해외로 송출해 생계를 잇는 주요 노동 수출국의 하나가 되어, 매일 약 1,500명 이상의 네팔의 젊은이가 해외 취업을 위해 네팔을 떠난다.

카트만두 ‘여권과’(Department of Passport)에서 해외이주를 위한 여권 발급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진: 필자 촬영
네팔의 송금액과 GDP대비 송금 비율
출처: Labour Migration for Employment A status Report for Nepal: 2008/09-2016/17

‘2015년 네팔 국가 청년 정책’(Nepal’s National Youth Policy 2015) 보고서에 따르면 네팔 청년의 나이는 16세~40세로 다소 느슨하게 규정될 수 있는데, 이 연령대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40.68%를 차지하고 있다. 매년 약 550,000명의 청년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이들의 약 91%가 국제이주노동을 떠난다고 하니 네팔 청년의 해외 이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18년 현재 네팔 전체 이주노동자 약 350만 명의 약 86.5%가 말레이시아와 걸프 지역 국가로 국제이주노동을 떠나며, 이들이 보낸 송금은 네팔의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차지함으로써 네팔 경제는 이미 ‘농업경제’에서 ‘송금경제’로 전환된 셈이다.

네팔 노동자의 주요 10대 이주국가
출처: Labour Migration for Employment A status Report for Nepal: 2008/09-2016/17

 

카스트와 계급 및 교육수준에 따른 이주 과정

자유로운 국경 통과로 인도를 넘나드는 네팔 청년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 문지기, 상점 종업원, 가정집 하인과 같은 인도 경제 위계의 최하위층의 일을 한다. 따라서 국제이주자의 약 86.5%의 네팔 청년은 고비용에도 불구하고 ‘맨 파워 에이전시’로 불리는 중개업소를 통해 주로 걸프 지역 국가들과 말레이시아로 이주한다. 일반적으로 가족의 농지 보유 정도 등 자금 동원력과 카스트 지위에 따라 이주 대상국이 선정된다. 가난하고 낮은 카스트 및 고졸 이하의 학력을 지닌 청년은 걸프 지역 국가들과 말레이시아로 이주노동을 떠난다. 2017년 기준 해외로 이주한 전체 이주노동자 가운데 약 92.4%의 네팔 청년(Ministry of Labour and Employment, 2018)은 ‘맨 파워 에이전시’에 높은 이주비용을 내고 걸프 지역 국가와 말레이시아로 이주했다. 이들이 이들 국가에서 받는 임금은 월 미화 400~600불 수준으로 매우 낮아 현지 생활비를 제외하고 약 100~200불을 송금한다.

2019년 1월에 필자가 만난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약 30km 떨어진 ‘날라’(Nala) 마을에서 재봉업을 전통 직업으로 하는 불가촉천민 ‘다마이’(Damai) 카스트의 아들(26)은 친척, 이웃, 사채업자로부터 이주비용 15만 루피(약 150만 원)를 빌려 사우디아라비아로 노동 이주했지만, 그가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 대부분은 한동안 채무청산비용과 가족의 일상 생활비로 지출되어 이주노동의 경제적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중상류층의 높은 카스트 집안 자녀들의 일부는 노동 이주가 아닌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호주, 북미,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다. ‘날라’ 마을의 체티르(크샤트리아) 카스트 지주의 큰딸(27)은 2017년 간호대학 졸업 후 간호학 박사과정을 위해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네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학대상국으로 떠오른 호주 유학을 준비하는 청년을 위해 카트만두 ‘바그 바자르’(Bag Bazar)에는 ‘IELTS’ 학원과 유학원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다. 해외로 일을 위해 떠나더라도 고교 졸업 이상의 대학생을 포함한 중산층의 상층 카스트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비자 받기 어려운 한국과 일본으로 이주노동을 준비한다. 2018년에 ‘고용허가제’(EPS)로 한국으로 이주한 네팔 청년은 네팔 국제이주노동자 총인원의 1.33%에 불과하지만, EPS는 국가 간 계약으로 고용이 안전하고 걸프 지역 임금보다 4배 이상 높으며 작업환경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므로 한국은 네팔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노동 이주 국가가 되었다.

카트만두 맨파워 업체
사진: 박경환 촬영

EPS로 한국 이주를 준비하는 청년 준비생들은 최소 1~2년 이상 한국어 학원에 재정적, 시간적 투자를 해야 한다. ‘바그 바자르’에 위치한 ‘신화’(Shinwha) 한국어 학원 원장(남, 50세)에 따르면 ‘EPS-TOPIK’ 시험에 합격을 위해 청년 준비생은 6개월 수강료와 숙식비용을 합쳐 6개월에 한화 약 100만 원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2019년에 지원자 92,376명 중 한국어 시험 합격자는 12,000명이었고, 기술시험까지 최종 통과한 네팔 청년 수가 6,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부담스러운 비용과 시간 및 학업과 기능적 소양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2020년 1월에 카트만두에서 만난 4명의 최종 시험 합격자 청년의 나이는 20세~23세였고, 모두 시골에서 카트만두로 올라와 학원을 다니기 위해 자취하였으며, 고등학교 졸업자와 네팔 명문대학인 트리부반 대학 재학 중이었다. 이들은 최종시험에 합격하였지만 한국 기업의 부름을 기다리며 값싼 아르바이트를 하며 카트만두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바그 바자르에 위치한 ‘신화한국어학원’과 원장
사진: 필자 촬영

 

여성의 국제노동이주

가부장적 질서가 강한 네팔 사회에서 여성의 물리적 이동은 남성 가족원의 엄격한 감시 하에 놓인다. 네팔 정부도 여성의 국제 이주를 제한하고 있어, 인접국가인 인도 국경을 통하거나 이민 중개업자를 통한 이주 등 비공식 채널을 통해 국제 이주하는 여성이 상당 수 있기 때문에 여성 이주자의 규모나 이주 대상 국가를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네팔 전체 이주노동자의 가운데 여성 이주자는 2012/2013년에 6.2%였으며, 최근 6-7년 사이에는 다소 낮아져 약 4~5%의 여성이 국제 이주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간호사로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등 영어사용 국가로 이주하는 소수의 숙련이주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네팔 여성 이주자는 청소부와 가사노동자로 해외에 이주한다. 2008~2017년까지 지난 10년 동안 여성 이주자가 이주한 주요 대상 국가의 약 60%는 아랍 에미리트(24.11%)와 쿠웨이트(11.21%)를 포함한 걸프 지역 국가들이며, 약 16%의 여성은 말레이시아로 이주했다.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여성 외에, 카타르(69%)와 사우디아라비아(96.7%), 아랍에미리트(72.1%)의 네팔 이주 여성은 더 많은 수가 청소부로 일하며, 말레이시아에서는 네팔 이주여성 약 85%가 제조업 분야에 종사한다(Ministry of Labour and Employment, 2018).

중동과 걸프 국가 지역으로 이주한 거의 대부분의 네팔 여성은 자신의 이름이나 겨우 쓰는 저학력의 낮은 카스트 출신들이다. 이들과는 달리 2019년 12월 말 현재 EPS-TOPIK 시험에 통과해 한국에서 주로 농업부문과 제조업 부문에서 종사하는 2,133명의 국내 네팔 이주여성은 고졸 이상의 학력 소지자로서 카스트와 계급 구조에서 낮은 지위의 여성은 많지 않다. 한편 쿠웨이트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하던 네팔 이주여성 ‘카니 세르파’(Kani Sherpa)가 고용주 남성에게 성폭력 당한 후 자살한 사건이 일어난 1998년에 네팔 정부는 걸프 지역 국가로의 여성 이주를 완전 금지시켰다(Adhikari, 2012), 이후 몇 번에 걸친 여성의 걸프 지역 이주에 대해 해제와 금지를 반복하였는데, 현재는 네팔 여성이 가사노동자로 걸프 지역 국가들로 이주하는 것은 불법화 된 상태이다. 카트만두 소재 NGO ‘포우라키(Pourakhi)는 네팔 여성의 이주 준비부터 정착국가에 대한 소개 그리고 귀환이주여성의 정착을 지원하면서 ‘안전한 이주’를 강조한다. 2020년 1월에 만난 이 단체의 만주 구릉(Manju Gurung, 여) 공동대표는 네팔 정부가 여성 이주의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걸프 지역을 향한 여성이주를 불법화 한 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포우라키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걸프 지역에 이주한 네팔 여성이 현지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안전을 이유로 네팔 여성 이주를 불법화시킴으로써 이주여성의 어려움이 오히려 커졌다고 주장한다. 이주 여성이 현지의 네팔 영사관 등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이주여성의 법적 지위를 약점으로 삼아 임금 착취 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김정선, 2013). 국가가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난극복과 가족의 복지를 위해 떠나는 여성 이주는 남성 이주와 동일하게 인식되어야 하고, 안전한 이주체계를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 합법적인 여성 이주를 장려함으로써 여성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 네팔 이주여성 관련한 이주 단체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청년들은 왜 국제이주노동을 떠나는가.

네팔의 청년들이 가족을 뒤로하고 이주노동을 떠나는 주요 동기가 네팔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데에 누구도 이의 없다. 한국과 네팔에서 만난 거의 모든 청년은 네팔에 적합한 일자리가 없어 외국으로 떠난다고 말한다. 사실 이주노동자가 보낸 송금은 거시적으로는 국가의 안정적이고 경기부양적인 외환보유로 작용하고, 미시적으로는 가난한 가구의 일상식 해결과 기본교육 및 보건혜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카트만두에서 만난 10여 명의 한국행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한국에 가서 돈도 벌고 기술을 배워 귀국 후 습득한 기술로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네팔 이주자 송금은 땅을 구매하여 집을 짓는 데에 지출된다. 이주자의 송금이 투자될 산업기반과 제조업 설비가 거의 없어서 집 장만과 소규모 상업 운영이 외국에서 벌어 온 이주자 투자의 전부이다. 멋진 집을 갖는 것이 지위 상승을 과시하는 상징자본으로의 기능하지만, 네팔의 경제적 불확실성과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고려할 때 귀환 이주자의 주택에 대한 투자는 자산증식과 안전 확보를 위한 장치로 비난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한 경제적 목적을 넘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을 위해 이주하는 청년도 드물게 만날 수 있다. 포카라(Pokhra)의 브라만 출신 이주노동자(남, 32)는 시내에 큰 규모의 2층집을 소유한 집의 외아들로서 경제적 형편만 봐서는 굳이 이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젊어서 바깥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한국을 다녀왔다고 말한다. 한편 농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주노동을 택한 일부 청년도 있다. 이들은 농사를 비생산적이고 후진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산업선진국의 도시 생활을 현대적인 것으로 생각해 농촌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이주를 택한 이들이다. 이들에게 한국과 일본 등 이주국의 도시에 있는 제조업과 건설업 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발전과 모더니티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인 것 같다.

한편 네팔의 고질적인 카스트 차별을 벗어나고자 이주노동을 떠나는 낮은 카스트 청년들도 적지 않다. 지난 10년 동안 ‘마오이스트’(Maoist) 주도로 당시 정부군과 치열했던 ‘인민 전쟁’으로 고질적인 카스트와 여성에 대한 차별이 다소 줄었다지만, 이들은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는 농촌사회를 차별을 벗어나고자 이주를 택했다. 이들에게는 외국에서 벌어온 돈으로 높은 카스트의 지주 계층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멋진 2층 집도 건축함으로써 좀 더 당당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발동한 것이다. 2019년에 박타푸르(Bhaktapur) 인근 농촌에서 만난 재봉업과 가죽구두 수선을 전통적인 직업으로 삼았던 불가촉천민 출신의 귀환 이주 청장년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에서 이주 노동함으로써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높은 카스트 이웃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들은 송금으로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주노동의 경험은 생각과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회적 송금’의 역할을 함으로서 자존심과 자신감의 상승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네팔에 남을 수 있는 청년

한국행을 위해 이미 최종합격했거나 시험에서 탈락해 다시 준비하고 있는 카트만두에서 만난 20대 청년들은 “한국 가서 기술을 배워 귀국 후 일자리를 만들어 다음 세대의 청년들이 더 이상 나갈 필요가 없게 하겠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외국에 나가서 네팔이 발전하지 않는다.”, “네팔에도 똑똑한 젊은이들이 있는데 일자리가 없어서 모두 나가서 안타깝다. 정치 지도자들이 정쟁만 일삼고 정치적 연줄 없는 사람은 취업도 어렵다.” 등등의 말로 자신들의 국제이주 이유와 청장년의 해외유출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설명했다.

이들은 외국에 가지 않고도 네팔에 살 수 있는 청년으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지사에서 일하는 사람뿐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입사할 때 약 3만 루피(한화 약 30만 원)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 후 엄청난 경쟁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급여 수준이 대기업 직원보다 높진 않지만, 사회·경제적 안전망이 취약한 자국의 상황을 생각할 때, 이들은 공무원이 되면 최소한 해외 이주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한국에서 근 5년 이상 상당수의 네팔 이주노동자를 만났음에도, 아직까지 공무원직을 내던지고 한국에 일하러 온 청장년을 필자는 만난 적이 없다.

카트만두에서 올해 1월에 두 명의 소위 엘리트 청년을 만났는데, 한 명은 대학 졸업 후 회계사 일을 하고 다른 한명은 국가수질공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모두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20대 후반의 이 두 청년은 고등학교 시절에 무척 공부를 잘했던 같은 반 친구 사이였는데, 공부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외국행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같은 반 졸업생 중에 자신들만 제외하고 거의 모든 동창들이 말레이시아와 걸프 지역 국가들에서 이주노동하고 있다면서, 이들 친구들은 대학 진학을 할 만큼의 학업성적이 좋지 않았고, 이주 노동하는 친구들이 네팔에 있었다면 아마 릭샤(삼륜차) 운전사, 버스 운전기사,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팔의 엘리트로 보이는 이 두 청년은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 삼성과 파나소닉 등의 외국계열 회사원, 네팔 최대 기업인 ‘초다리 그룹’(Chaudhary group) 회사원이 아닌 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젊은이들은 해외 이주노동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이주노동 경험을 이야기하는 네팔 청년들, 이중 일부는 다시 한국으로 갈 준비 중이다
사진: 필자 촬영

 

해외에서 희생되는 네팔의 청년 이주노동자

가족의 생활수준 향상과 자신의 미래 설계를 위한 자금 준비 및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적 경험을 위해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한국, 일본 등으로 이주노동을 떠난 네팔 청년들의 적지 않은 수가 현지 국가에서 죽어 나간다. 2008년~2017년의 10년 동안 1천명 이상의 네팔 노동자가 사망한 이주 국가는 말레이시아(2,127명), 사우디아라비아(1,635명), 카타르(1,195명)이며, 한국의 경우는 네팔의 ‘노동고용부’의 보고서(Ministry of Labour and Employment, 2018) 상에는 77명으로 기록되었지만 사실은 2009년~2018년 사이에 이보다 훨씬 많은 143명의 네팔 노동자의 사망이 국내에서 보고된 바 있다(서울신문 2019/09/22). 해외 네팔 이주자 사망 원인으로 약 27%의 심장마비 등의 질병사와 8%의 산업재해가 보고되었는데, 자살로 인한 사망은 11%로 이례적으로 높다. 원인불명과 자연사로 보고된 15%와 22%의 죽음을 재조사하거나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 정밀 조사한다면 산업재해와 자살의 비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인력송출회사를 통해 말레이시아와 걸프 지역 국가로 이주한 네팔 이주노동자는 현지인보다 엄청나게 낮은 임금과 사회 안전보장 없는 상황에서 초과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을 견디어야 한다. 이들은 걸프 지역의 무더운 기후 조건에서 냉방시설 없는 기숙사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위험에 노출된 작업환경으로 질병과 산업재해 늘 노출되어 있다. 2020년에는 한국행이 성사되기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네팔 청년들에게, 한국의 일상생활과 근로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사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시험에 최종 통과해 들떠 있는 이들 청년들은 다른 국가보다 훨씬 좋은 생활과 작업환경을 갖춘 한국에서 많은 돈을 벌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희망찬 믿음 속에 있었으며, 한류 문화의 영향이겠지만 활기차고 화려한 한국의 대중문화가 자신들과 같은 젊은 세대에게는 적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팔 노동자의 현지 사망 10대 국가 출처: Labour Migration for Employment A status Report for Nepal: 2008/09-2016/17
2008/09 2009/10 2010/11 2011/12 2012/13 2013/14 2014/15
말레이시아 2 4 37 27 34 41 44 189
사우디아라비아 1 4 8 14 17 18 33 95
카타르 2 11 8 7 15 13 12 68
아랍에미레이트 3 3 1 8 3 9 7 34
쿠웨이트 0 0 3 3 3 9 10 28
한국 0 0 3 3 3 3 5 17
레바논 1 2 1 2 1 1 0 8
오만 0 1 0 2 1 0 0 4
바레인 0 0 1 0 1 1 1 4
이스라엘 0 0 0 0 1 0 0 1
일본 0 0 0 0 1 0 0 1
러시아 0 0 0 0 1 0 0 1
파푸아뉴기니 0 0 0 0 0 1 0 1
9 25 62 66 81 96 112 451
이주국가별 네팔 노동자 자살자 수 (2008/09-2014/15)

지난 10년 동안 143명의 네팔 이주노동자가 사망하였고, 게다가 약 30%에 해당하는 43명의[1] 네팔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서울신문 2019/09/22)는 통계치는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자살을 선택한 네팔 청년들은 네팔에서 익숙지 않은 장시간 노동과 ‘빨리빨리 문화’ 그리고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고질적 차별과 갑질 및 홀대 등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매우 심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가족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모국의 음식과 축제 등의 문화적 향수로 외국 생활에서 경험하는 차가운 현실을 더욱 견디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대부분 고학력자로 송금 등 자신에 대한 가족의 경제적 기대를 잔뜩 받고 한국에 온 상황에서, 사업장에서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아도 귀국할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해 이들이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닌가 안타깝다. 가부장적 질서가 여전히 강한 네팔 사회에서 아들로서 또는 가장으로서 가족 기대를 저버리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귀국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회복하기 힘든 남성성과 자존심의 상실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팔과 한국의 양국 정부가 한국에서의 네팔 젊은이의 죽음, 특히 이례적으로 높은 자살에 대한 상세한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정책적 조치가 긴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네팔의 이주문화’(culture of migration)

네팔 현지인에게서 청년 이주와 관련해 가장 자주 듣는 말은 “한 가정에 한 명 이상 해외에 일하러 가지 않은 청년이 없다.”, “가정에 남아 있는 사람은 노인, 여성, 아이뿐이다.”는 것들이다. 이런 말들이 현실에서 비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2015년 네팔 대지진으로 피해가 큰 지역의 약 70% 이상의 가구에 최소한 한 명 이상의 국제이주 남성이 있었고, 지진 피해 사망자의 약 55% 이상이 여성, 아동, 노부모,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에서였다(Sijapati, 2015). 지진 발생으로 가옥이 붕괴하자 가족 구성원을 구조하고 대피시켜야 할 주요 당사자가 여성 가장인 경우가 많았고, 여성들은 가옥에 남아 있는 자녀와 노부모의 대피와 구조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경우가 많았다.

이주자를 배출함에 따라 네팔 사람의 생활방식에는 ‘이주문화’가 출현하여, 이주문화는 네팔 사회에 팽배해 있다. 국제이주가 특정 커뮤니티에 자리 잡아가면서 해당 커뮤니티의 가치와 태도가 미래의 이주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되는데 이를 ‘이주문화’로 볼 수 있다. 일단 이주문화가 형성되면 국제이주는 해당 커뮤니티의 젊은이들 중심으로 일종의 통과의례로 자리 잡아, 국제이주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해보지 않는 젊은이들은 게으르고 진취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되기 쉽다(Kandal and Massey, 2002).

해외 이주노동을 떠나는 네팔 젊은 세대의 국제이주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주노동을 채무로 시작한 가난한 가정의 젊은 이주자는 채무 청산 후 토지구매나 가옥신축을 위해서라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주 기간을 연장하거나 귀환 후 재이주를 떠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이주노동 중인 체트리 카스트 남성(37)은 23살에 결혼한 후 14년의 결혼생활 중 단 3년만 가족과 지내고, 남은 11년을 말레이시아와 한국에서 보내고 있다. 그는 본인이 해외에서 일하는 동안 부인이 자녀교육은 물론이고, 가옥신축과 은행 업무 등을 도맡았기 때문에, 부인이 결혼생활의 주체자로서 이제는 ‘경제 전문가’가 되었다고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남성 이주가 보편화된 네팔 사회에서 이제 여성은 경제적 영역은 물론이고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도 남성을 대신해야 한다. 네팔 사회에서 지역사회 구성원이 사망하면 화장터까지 시신을 옮기고 이를 화장하는 장례 의례에는 남성만이 참여하는 전통과 규범이 있다. 그러나 남성 대다수가 이주한 지역사회의 경우 장례 의례의 모든 절차에서 여성이 모든 의례적 일을 담당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성의 참여가 허용되는 등 장례 의례 전통이 변화하고 있다. 사실 네팔 사회에서 남성의 공동체의 공적 역할 포기가 용인되고 여성의 공적 영역에 참여 범위가 확장되는 것은 이주문화의 팽배로 인한 젠더 역할 등에 변화가 일어남을 방증하고 있다.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아들과 남편의 부재로 인해 여성 구성원에게 과중한 역할이 부과되고 있다. 남성 구성원의 부재로 인한 사회·문화적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구성원의 변화된 역할이 지속되는 것은 청년 이주노동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풍요에 대한 이주자와 이들 가족의 기대 때문이다.

 

네팔 사회가 직면한 청년 이주의 미래

네팔의 주요 일간지 사설과 대학 교수들은 네팔 청년의 대규모 이주배경과 현황 및 이주로 가져오는 국가 및 지역사회에 대한 경제적 기여 못지않게, 인재유출,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 증가, 가족 갈등과 해체의 급증 등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도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청장년의 국제이주는 기간산업인 농업 종사자의 급감을 가져오고 이에 따라 농산물 생산량의 급감 및 식량의 국외 의존도를 높인다고 우려한다. 국제 이주노동과정에서 배운 기술이 귀국 후 국내에 적용될 수 있는 제조업 기반시설에 국가적 투자가 있어야 한다거나, 모바일 폰 서비스와 인터넷 및 위성기술 등 신기술을 농업부문에 접목시켜 국외로 유출되는 청년 세대를 줄여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청년 세대를 네팔 국내에 잡아둘 뚜렷한 묘책은 없어 보이고, 더구나 국제이주노동은 이미 네팔 정부와 사회에 하나의 ‘정상적’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대규모 이주민을 해외로 송출하는 네팔 정부는 노동력 수출을 지원하는 공식적 기관과 제도뿐만 아니라 합법적으로 인정한 이주산업을 양산시키는 등 이주를 촉진하는 공식적, 비공식적 이주체계를 확고히 만들었다. ‘해외고용법’ 제정과 노동고용부처 내에 ‘해외고용과’(Department of Foreign Employment)를 별도로 두어 해외 고용을 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젊은 세대들의 해외 이주노동이 전망되는 마당에 네팔 정부에게 진정으로 시급한 것은 해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네팔의 젊은이의 수를 줄이는 등 안전한 이주와 귀국을 보장하고, 귀국 후 네팔사회에 재통합 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저자소개

김경학교수(khkim@jnu.ac.kr)는
전남대학교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이다.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문화인류고고학과와 디아스포라 대학원 협동과정에서 다문화, 이주, 디아스포라 등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전남대학교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장과 디아스포라 대학원 협동과정 BK21플러스 사업팀장을 맡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 등의 인도인 디아스포라를 연구하였고, 최근에는 국내 네팔과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및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이주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1] 네팔의 노동고용부(Ministry of Labour and Employment, 2018)의 해외이주 관련 보고서에는 2008~2017년 10년 동안 한국에서 자살한 네팔 자살자 수를 17명으로 보고하지만, 서울신문(2019/09/22)이 한국 주재 네팔대사관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2018년 10년 사이에 143명의 네팔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이 중 43명이 자살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참고문헌

  • 김정선(2013), “귀환이주여성들의 이주 안전망 만들기: 네팔 포우라키(Pourakhi) 액티비즘을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29권 4호, 191-235.
  • Adhikari, R.(2012), Perils and Prospects of International Nurse Migration from Nepal, Center for the Study of Labour and Mobility, Series 2.
  • Kendal, W and Massey, D.(2002) The Culture of Migration: a theoretical and empirical analysis. Social Forces 80(3): 981-1004.
  • Ministry of Labour and Employment, 2018. Migration for Employment: A Status Report for Nepal: 2015/2016-2016/2017. Government of Nepal.
  • Ministry of Youth and Sports(2015) Nepal Youth Policy 2072(2015). Government of Nepal.
  • Sijapati, M.(2015) Migration and Resilience: Experiences from Neplal’s 2015 Earthquake. Kathmandu: Center for Study of Labour and Mobility.
  • 서울신문(2019) “한국도 네팔도 외면한 28세의 청년의 죽음… ”이유라도 일고 싶어“ 2019년 9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