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목포대학교)
아동노동이 만연한 네팔
남아시아에서 네팔은 아동노동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특히 하층 카스트인 달리트와 자나자티로 일컬어지는 종족집단에서 아동노동 비율이 높았다. 아동노동은 네팔 농촌지역은 물론 도시지역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까지 아동노동은 일상적인 행위이자 심지어 사회화 과정의 일부분으로 간주되어왔다. 달리 말하면 아동노동은 오래전부터 관습처럼 성행해왔으며, 아동노동이 아동들의 교육과 장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높은 빈곤율과 낮은 교육 수준, 그리고 아동노동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아이들을 학교가 아닌 일터로 내몰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파렴치한 지주 혹은 공장주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지급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으려 미숙련 아동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다루기가 쉬울 뿐 아니라 위험한 작업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아동 노동자는 주로 일반 가정집, 벽돌공장, 의류 제조공장, 운송업, 식당, 공사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일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아동들은 반복적이고 고된 업무에 투입되거나 성적으로 학대당할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아동노동의 주요 원인은 빈곤이다. 빈곤은 네팔 전역에 만연해 있지만, 농촌지역의 빈곤(27.4%)이 도시지역(15.5%)에 비해 월등히 높다(ILO & Government of Nepal, 2021). 사회경제적 빈곤층이 선택할 수 있는 방편 중 하나가 아동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빈곤층 가정은 무상교육체제임에도 교재와 교복 등을 구입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할 정도로 생계가 곤란한 가정에서는 아동노동을 하나의 탈출구로 삼고 있다. 아이들을 임금 노동자 혹은 취업 전선으로 내모는 부모들 역시 대대로 아동노동의 희생자였던 사람들이다.
네팔 정부는 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1990), 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의 취업 최저연령에 관한 협약(2003), 가장 나쁜 형태의 아동노동 협약(1999), UN의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1979) 등 아동노동과 관련된 거의 모든 협약을 비준하였다. 네팔의 1990년 헌법에서는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 착취를 금지하였다. 2015년 헌법에서도 여러 항에 걸쳐 아동에 대한 혜택과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였다. 특히 2000년에 제정된 아동노동법에는 14세 이하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형태의 노동 및 고용을 금지하였다. 아울러 14세 이하의 아동을 설득, 기망, 위협, 협박 등으로 아동의 의지에 반해 일을 시키면 최대 징역 1년 혹은 5만 루피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였다. 2018년에 개정된 아동법은 아동의 권리를 명시하였으며, 정부와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동법에 따르면, 14세 이하 아동은 가업을 포함하여 어떠한 위험 작업도 할 수 없다. 모든 아동은 노동과 경제적 착취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이처럼 네팔 정부는 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비준한 다음부터 국가 차원의 5개년 개발계획에 아동의 권리와 보호를 포함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제15차 개발계획에는 모든 형태의 아동 폭력과 착취 및 학대를 종결하고, 아동을 국가 발전을 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시킨다는 목표와 함께 아동 친화적인 사회 건설을 천명하였다. 아울러 2009년 교육법은 8학년까지 모든 아동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한다고 명시하였다. 이런 정책들은 어린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아동노동을 근절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려는 범정부 차원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아동 노동자 수는 2008년 약 1,600,000명에 달했지만, 2018년에는 1,100,000명으로 감소하였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 네팔의 아동노동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여타 국가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네팔의 아동노동 역시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무지에서 비롯된다. 빈곤은 미미한 가내 수입과 낮은 교육 수준, 불충분한 건강 상태, 그리고 전기 및 식수와 같은 기반 시설 부족과 연계되어 있다. 네팔 사회의 빈곤은 만성적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정치적 차별에서 비롯되었다. 네팔의 빈곤 지표는 2006년 59%에서 2017년 28.6%로 크게 호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백만이 넘는 가구가 빈곤 상태에 근접해 있으며, 5세 이하 아이가 있는 가구의 약 80%가 연간 1인당 지출액이 374$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Human Rights Watch, 2021: 33). 요컨대 아동노동의 이면에는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부모의 무지와 강요 등이 복합적 요인으로 작동되고 있다.
통계와 수치로 짚어 보는 네팔의 아동노동 현황
2021년 ILO 및 네팔통계청(ILO & Government of Nepal, 2021)에서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네팔에서 5세부터 17세 인구는 7,074,756명이었다. 5세~13세 인구 중 18%, 그리고 14세~17세 인구 중 9.76%가 아동 노동자였다. 5세~13세 남자 인구 중 14.94%, 그리고 여자 인구 중 21.53%가 아동 노동자였다. 14세~17세 남자 인구 중 11.74%, 여자 인구의 7.77%가 아동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5세~17세 남자 인구의 13.88%, 여자 인구의 16.77%가 아동 노동자였다. 아동노동의 정도는 지역 간 편차가 심하였지만, 대체로 농촌지역(20.4%)이 도시지역(12.1%)보다 높았다.
아동노동은 인구집단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다. 네팔의 인구는 인종과 종교 등에 따라 다양한 집단으로 구분된다. 크게는 인도-아리안계에 속하는 산록 지역의 ‘카스트 힌두’, 티베트-몽골계로 분류되는 다양한 종족집단(자나자티), 그리고 인도계 이주민이 대부분인 테라이 주민(마데시)으로 범주화된다. 카스트 힌두의 주축은 브라만/크샤트리아로 불리는 ‘바훈/체트리’이지만, 불가촉천민(달리트)을 비롯하여 다양한 카스트 집단이 혼재해있다. ‘자나자티’로 불리는 종족집단은 구룽, 마가르, 라이, 림부 등과 같은 토착민 집단을 포함한다. 마데시는 평원지대인 테라이 지역 거주민을 가리킨다. 비교적 최근에 인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다양한 카스트 집단과 종족집단이 뒤섞여 있다. 네와르는 종족집단에 속하지만, 상층 카스트 힌두와 마찬가지로 정치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2018년 자료는 네팔의 인구집단을 a) 테라이 카스트, b) 브라만/체트리, c) 무슬림 및 기타 카스트, d) 자나자티, e) 달리트, f) 네와르로 구분하고 있다. 5세~17세 인구의 집단별 아동노동 비율은 달리트(19.4%), 자나자티(18.1%), 브라만/체트리(14.5%), 테라이 카스트(12.7%), 무슬림 및 기타 카스트(12.8%), 네와르(9.9%) 순이었다. 전체적으로 카스트 위계가 낮은 달리트와 주변 집단인 자나자티에서 아동노동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브라만/체트리 집단에서도 아동노동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 사회적 위계와 아동노동과의 연관성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네와르 집단을 제외하고는 모든 집단에서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가 아동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았다.
네팔에서 서비스 및 판매업, 공예품거래, 공장 기계 조작, 단순 허드렛일 등은 위험직업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동 노동자들은 이와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5세~17세 연령대에서 아동노동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분야는 개인 사업장이었다. 다음으로는 단순 허드렛일, 서비스 및 판매업, 기술/반기술 농업노동, 공예품거래업, 공장 기계 조작 순이었다. 아동노동은 학교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5세~17세 연령대의 재학생 중 14.1%가 아동 노동자였지만, 동일 연령대의 비 재학생은 25.1%가 아동 노동자였다. 성별을 불문하고 학교에 다니지 않을수록, 그리고 나이가 많을수록 아동 노동자 비율이 높았다. 아동 노동자는 주당 평균 15시간 일하고 있었으며, 평균 수입은 주당 3,116루피였다. 간혹 주당 최대 96시간까지 일하기도 하였다.
아동노동은 부모의 교육 수준과 직업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직업이 무직이거나 비공식적 영역에 종사할수록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가내 경제 수준과 가족 구성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아동노동은 아동의 건강과 복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하는 아동들은 고질적인 신체적 및 정신적 위해는 물론 장래의 희망과 기회가 차단된다. 아동노동은 무엇보다 교육의 기회 박탈로 이어진다.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면서 대대손손 무지와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악순환은 특히 여자들에게 대물림된다. 네팔 정부는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국가 기본 계획(2018-2028)’에서 대표적인 아동노동 현장을 17개로 파악하였다. 여기에는 가내노동, 농업, 봉제, 벽돌공장, 광산, 운송업, 구걸, 마약 밀매 등이 포함되었다. 네팔에서 악명높은 아동노동 현장인 벽돌공장, 카펫 제조 및 의류 공장의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벽돌공장
2000년대부터 네팔 정부는 법으로 모든 종류의 강제노동 혹은 세습 노동 제도를 금지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예속노동(bonded labour) 관행이 나라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강제노동 혹은 예속노동 형태의 관행은 주로 벽돌공장과 같은 사적인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벽돌공장과 같은 사적인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예속노동 및 아동노동에 대한 공식적 통계자료는 찾기 어렵다. 2019년 네팔통계청에서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벽돌공장 가운데 301개소를 대상으로 표본 조사하였다(ILO, UNICEF & Government of Nepal, 2020). 표본조사에서 103,548명이 주 노동자로 파악되었으며, 이들의 가족이 벽돌 제조를 보조하고 있었다. 주 노동자는 대개 가구주였다. 가족 성원을 포함하여 육체노동자 176,373명이 강제 노동자였다. 주 노동자(103,548명)의 4%(4,144명)가 강제 노동자였다. 강제 노동자의 대부분은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하지 않고는 직장을 떠날 수 없는 형편이었다. 10명 중 8명이 벽돌공장에서 일하지 않는 한 빚을 갚을 수 없는 지경이었고, 벽돌공장을 떠나는 경우 아예 임금조차 받을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앞의 조사에서 5세부터 17세 사이의 아동 34,593명이 벽돌공장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들 중 17,738명이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전체 노동자의 10%에 달하는 규모이다. 즉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어린이의 96%가 ‘아동노동’ 형태였으며, 벽돌공장 내부에 거주하고 있는 어린이 49%가 ‘아동 노동자’였다. 벽돌공장에 거주하고 있는 어린이 15,400명(44.5%)이 위험작업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들이 직면한 위험작업은 먼지와 화염(64.3%), 주당 36시간 이상의 과도한 노동(42.6%), 야간작업(29.5%), 과중한 물건 운반(32.1%) 등이었다. 부모가 있는 아동 노동자의 11%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89%의 아동 노동자가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원인으로는 ‘가내 수입 부족’, ‘학교에 관심 없음’, ‘중도 퇴학’ 등이 거론되었다. 벽돌공장에서 아동노동이 근절되지 않고 만연한 이유는 무엇보다 아동노동법에 대한 노동자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저취업연령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겨우 4%에 불과하였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아주 소수에 불과하였다. 응답자의 겨우 0.4%가 조합원이었다. 반면 고용주의 66%는 노동법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88%가 아동노동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네팔에서 벽돌공장은 주요한 산업이다. 매년 1,000개가 넘는 벽돌공장에서 60억 개의 벽돌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벽돌공장 종사자는 대략 140,000명으로 추산되며, 이들 대부분은 무학자이며 극빈층이다. 전국적으로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벽돌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이다. 2015년 발생했던 지진으로 전국 곳곳에서 가옥과 건물이 붕괴되면서 벽돌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졌다. 벽돌에 대한 수요 급증은 벽돌공장 노동자 증가로 이어졌다. 모자라는 노동력 일부를 아동노동으로 메우게 되면서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아동 노동자가 늘어났다고 한다. 벽돌공장에서 아이들은 부모를 도와 진흙을 개어 벽돌을 만들고 나르는 일을 한다.
카펫 제조 및 의류 공장
네팔에서 카펫 제조업은 1950년대 후반부터 티베트 난민촌에서 카펫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상업화되었다. 1964년 스위스에 처음으로 카펫을 수출한 이래 국제적으로 수요가 증가하면서 네팔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네팔인들이 카펫 제조업에 뛰어들면서 카펫 산업은 주요 수출 품목으로 성장하였다. 한편 의료 제조업은 1985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의류 제조업은 가장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는 업종이다. 전성기에는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종사하였으며, 전체 노동자의 12%를 차지하였다. 현재 의류와 카펫은 네팔의 최대 수출 상품이다. 이들 품목 다음으로는 캐시미어, 가죽제품, 두류(豆類), 수공예품, 향신료, 약초 등이 있다.
카펫 제조 및 의류 공장에 얼마나 많은 아동이 일하고 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네팔의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회사 측에서는 아동노동이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비정부기구에서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2020년 월드비전(World Vision, 2020)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카펫 제조 및 의류 공장은 10명 미만 사업장이 29%, 10~20인 규모의 사업장이 44%에 이를 정도로 영세한 사업장이 많았다. 조사 대상 290개 사업장 중에서 69개소(14.59%)는 아예 등록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카펫 제조 종사자 5,859명 중 남성이 2,058명, 여성이 3,801명이었으며, 의류 공장 종사자는 총 2,624명으로 남성 1,393명, 여성 1,231명이었다. 18세 이하 인구는 카펫 제조업에서 남성이 7.92% 여성이 5.98%였으며, 의류 제조업에서는 남성 1.60% 여성 1.66%였다. 카펫 제조업에서 아동노동 비율이 높다는 것은 네팔의 카펫 산업이 여전히 아동노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카펫 산업은 1990년대에 가장 활발했으며, 카펫 제조 종사자 수가 무려 25만 명에서 30만 명에 이르렀다. 당시 카펫 수출액은 1억 9천만 달러로 네팔 연간 수출액의 65%에 달하는 규모였다. 카펫 수출은 1995년을 기점으로 감소하였다. 수출 감소는 국제적 경기 둔화의 영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동노동 산업이라는 도덕적 비난이 작동한 결과였다. 이후 정부의 아동노동 금지 조치와 노력으로 아동노동 비율은 크게 줄어들었다. 1993년 제조업에서 아동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50%에서 2019년에는 6.66%로 대폭 감소하였다. 하지만 카펫 제조 및 의류 공장에서 여전히 강제노동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카펫 제조업에서는 1,000명당 2명이, 의류 제조업에서 1,000명당 11명이 강제노동이라고 한다. 의류 공장에서는 강제노동은 여성은 1,000명 14명이며, 남성은 1,000명당 8명이다. 즉 남성보다 여성이 강제노동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반면 카펫 제조업에서는 성별 차이가 거의 없었다.
코로나는 아동노동 현장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네팔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극심한 내전을 겪었었다. 2006년 평화협상으로 내전이 종식되었으며, 2008년 힌두 왕국에서 민주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2015년 인도의 국경봉쇄와 대규모 지진 등 내우외환이 겹치면서 나라 전체의 경제 사정은 크게 악화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빈번한 정권교체와 정치적 불안정, 부정부패가 만연하면서 경제 성장은 지지부진하였다. 2019년 네팔은 저개발 국가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팬데믹 전염병인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경제는 곤두박질쳤으며 실업자는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국민 총소득은 다시 저개발 국가 수준으로 전락하였다.
지난 20년간 국내총생산 성장 속도가 느리고 불안정함에도 빈곤율은 몰라보게 감소하였다. 1996년 41.8%에서 2004년 30.9%, 2011년 25.16%로 크게 줄어들었다. 빈곤율을 감소시켰던 배경은 비농업 분야의 소득 증대 및 해외 이주 노동자의 송금이었다. 해외 노동자의 송금이 나라 전체의 빈곤율을 25% 이상 감소시켰다고 한다. 해외 송금은 국민총소득에서 농업을 능가하고 있다. 2018/19년 기준으로 송금은 국민총소득의 25.4%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높은 송금 의존도는 유입국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 위협 요소로 작동하였다. 송금을 대체할 수 있는 수입처가 부재한 상태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새로운 고용 창출이 사실상 어려운 현실에서 맞닥뜨린 지진 피해는 국내 경제를 극심한 불황으로 내몰았다(김경학, 2022). 게다가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잠정적으로 해외 노동 이주가 봉쇄되자 나라 전체의 경제가 흔들리게 되었다.
2021년 국제인권감시기구에서 조사한 자료(Human Rights Watch, 2021: 37-39)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네팔의 아동노동은 이전보다 늘어났다고 한다.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초래된 사회경제적 위기는 인구의 취약층을 포함하여 아동노동에도 큰 타격을 가하였다. 특히 빈곤층은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하였다. 가족의 소득 감소와 학교 폐쇄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노동 시장으로 내몰았다. 코로나가 창궐하자 정부에서 봉쇄령을 발령하였다. 정부의 이동제한 조치는 노동 시장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였다. 기존 직장이 폐쇄되거나 노동 시간이 제한되면서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 노동자들은 일거리가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지고, 농부들은 과일과 채소 등 농작물을 판매할 수 있는 시장과 통로가 막혀버렸다. 이동 제한 조치로 카펫 공장이 멈추었다. 한 달 넘게 도로 교통이 막히면서 카펫 제조에 필요한 자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빈곤층에서는 지주나 친인척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 이외의 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이동 통제가 길어지면서 빚더미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2020년 4월 월드비전(World Vision)에서 면담한 가구주 618명 중 68%가 팬데믹 이후 수입이 2/3 수준으로 감소하였으며, 절반은 빚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 정부에서 식량과 기름, 그리고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지급하였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생색용에 지나지 않았다. 팬데믹 기간 아동 노동자들은 정부가 아닌 자신들이 일하는 공장이나 주인에게서 끼니를 해결하였다. 2020년 3월 18일 전국의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휴교 조치는 곧바로 8백만이 넘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교육부에서는 인터넷, 라디오, TV 등을 이용한 원격 교육을 방안으로 내세웠다. UNICEF에 따르면, 당시 네팔 어린이의 2/3가 원격 교육에 접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9년 기준으로 네팔의 거의 모든 지역에 전기는 가설되었지만, 인터넷은 겨우 34%만 접속이 가능한 상태였다. 빈곤층 학생들이 코로나 확산 기간에 핸드폰이나 TV를 통해 원격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핸드폰이나 TV를 살 형편이 못되었던 빈곤층 학생들은 원격 수업에서도 소외되었다.
코로나로 부모의 수입이 줄어들자, 곧바로 어린 자녀들이 타격을 받았다. 아이들이 집세와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혹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학교가 폐쇄되면서 아이들이 일거리를 찾는 데 큰 ‘장애물’이 사라졌다. 휴교 기간이 두 달 이상 지속되자 끼니를 걱정하는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들이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일부 아이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생계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빈곤층 아이들은 벽돌공장, 카펫 공장, 건설공사장 등에서 단순노동을 하거나 기술공, 인력거꾼, 목수로, 혹은 길거리에서 차(茶), 솜사탕, 풍선, 마스크 등 잡동사니를 파는 장사꾼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하루 8시간에서 12시간까지 일하기도 하였다. 아동 노동자들은 반복적인 동작으로, 장시간 쭈그린 자세로 일하면서 혹은 종일 무거운 짐을 나르느라 만성 피로와 졸음, 팔다리와 손발, 눈과 귀, 그리고 등허리에 만성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Human Rights Watch, 2021: 37).
코로나 기간에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 시간이 늘어났다. 일자리를 두고 경쟁이 일어나면서 수입은 오히려 감소하였다. 카펫공장에서는 아침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무려 18시간 동안이나 작업하는 사례도 있었다. 벽돌공장의 아동 노동자는 대개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보조자 역할을 한다. 카펫공장이나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보수는 일한 양에 따라 계산되어 아이가 아닌 부모의 일당에 부가된다. 즉 아이들이 일한 대가는 부모의 일당에 덤으로 합산되어 지급된다.
2018년 기준으로 네팔의 최소 임금은 월 13,450루피(115,60$) 또는 일 517루피(4.44$)였다. 하지만 아동 노동자들의 수입은 대부분 최소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네팔-인도 국경 근처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와 싸우면서 마스크와 씹는담배를 팔고 있는 14살 소년의 하루 수입은 겨우 200~300루피(1.70$~2.55$)였다. 카트만두 왕궁 광장에서 새 모이와 풍선을 팔고 있는 10살 소년의 하루 수입 역시 200~300루피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 13시간 동안 짐차에서 물건을 올리고 내리는 하역작업을 하는 15살 소년의 월수입은 8,000루피(68$)였고, 공사장에서 벽돌과 모래, 자갈을 나르는 일을 하는 16살 소년의 일당은 600루피(5.10$)였다. 네팔-인도 국경 인근 도시에서 매일 14시간 인력거를 끌고 있는 14세 소년의 하루 수입은 인력거 임대료 600루피를 제외하면 400~600루피(3.40$~5.10$)였다. 하지만 임대료조차 벌지 못하는 날도 허다하다고 하였다
네팔 정부의 관리 혹은 감시 체제 아래에 있는 카펫 제조 및 석재 운반과 같은 분야에서는 아동노동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지만,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는 도로변의 단순 소매상, 각종 차량 정비소, 허드레 짐꾼, 자수업(刺繡業) 등과 같은 업종에서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정부와 비정부기구의 아동노동 근절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아동은 주물 공장이나 방적 공장과 같은 위험한 작업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아동의 권리 보호를 주창하고 있는 정부 및 비정부기구의 구조적 한계, 그리고 관행으로 고착되어있는 아동노동을 근절하거나 개선하려는 사회적 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소개
박정석(hansan721@mokpo.ac.kr)은
목포대학교 교수이다. 인도 하이데라바드 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로 인도와 네팔의 사회문화, 카스트, 노동 이주, 종족 정체성 등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였다. 관련 저서로는 『카스트를 넘어서』, 『외사촌 누이와 혼인하는 사람들』, 『네팔, 힌두 왕국에서 인민의 나라로』, 『네팔의 비주류 집단들』 등이 있다.
참고문헌
- 김경학, 2022, “2015년 네팔 지진과 여성”, 문화역사지리 34권 2호, 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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