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웅(성공회대학교)
들어가는 말: 한류와 아시아
전환점은 2017년이었다. 이 해, BTS는 빌보드음악상(Billboard Music Awards) 소셜아티스트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일약 글로벌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5년 전의 싸이와 달리 BTS의 인기는 반짝 히트곡으로 끝나지 않았고, 이후 점점 더 상승하더니 이윽고 비틀스와 비견되는 존재가 되었다. 같은 해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는 루이스 폰시(Luis Fonsi)의 스페인어 곡 “Despacito”가 기념비적인 16주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 영미권 아티스트가 아니면, 영어 노래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버렸다. 이로써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영어권 대중음악이 누리던 강고한 독점에 균열이 가고 있음이 만방에 알려졌다. 이후 블랙핑크에서 뉴진스에 이르는 후속 케이팝 그룹들이 BTS가 만든 균열을 통과해 속속 세계적 스타들로 성장했다.
2019년에 영화 <기생충>이, 2021년에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각각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들을 휩쓸었다. 이는 20세기 말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한류가 파죽지세로 글로벌 대중문화의 중심에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세계는 케이팝을 넘어 한류 전체에 문을 활짝 연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한류의 성공이 반드시 한국의 성공으로만 담론화된 것은 아니었다. 한류와 케이팝은 종종 아시아 대중문화의 부상으로 이야기되었고, 글로벌 문화산업과 청중들은 아시아에서 “넥스트 빅 씽”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아시아 대중문화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기대 속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래퍼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과 태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품 비푸릿(Phum Viphurit) 등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에서도 감지되었다. 2018년에 쓴 글에서 나는 한국에서 주류와 인디를 불문하고 아시아 대중음악의 가시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했다(이기웅, 2018). 크고 작은 음악 페스티벌, 클럽 공연, DJ 쇼, 심지어 단독 공연에서도 중국계나 동남아 출신 아티스트와 음악을 접하는 것이 점점 일상화되었다. 이를 보면서 나는 “아시안 팝이 과거의 변방에서 벗어나 ‘월딩(worlding)’”하고 있으며, “21세기 글로벌 팝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될 것”이라고 바람 섞인 예언을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아시안 팝, 나아가 아시아 대중문화의 월딩은 아직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서 후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큰 진전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앞서 언급한 몇몇 아티스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류(印流) 혹은 태류(泰流)로 전화할 가능성은 적어도 근미래에는 희박한 듯하다.
아시아 대중문화의 글로벌화는 이처럼 불균등한 과정이다.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동등하게 참여하지 않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 것도 아니다. 한국, 일본, 인도 등이 앞서 나간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쫓아온다고 하기도 어렵다. 아시아 각국은 이들 주도국의 대중문화와 각자의 상이한 방식으로 관련을 맺는다. 각국의 소비자들은 상이한 문화상품에 반응하고, 문화산업은 상이한 콘텐츠를 수입하거나 모방한다. 각국의 정부는 권역의 지배적 대중문화에 대해 상이한 방식으로 규제하고, 상이한 문화정책을 통해 자국 대중문화에 특정한 형태와 발전 방향을 부여한다. 아시아 대중문화는 이처럼 다양한 행위자와 실천들의 결합으로서 복잡하고 다층적인 모양을 취한다. 이러한 복잡성은 아시아 대중문화에 대해 말하는 데 중대한 난점으로 작용한다.
아시아+대중문화의 난점
아시아 대중문화는 매우 어려운 두 개 단어가 결합된 용어다. 따라서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전에 단어에 대한 일정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먼저 ‘아시아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는 지구상에서 언어·인종·종교·문화가 가장 다양한 대륙이다. 역사적 경험과 사회체제에 있어서도 제국과 식민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병존한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는 화자의 위치에 따라서도 상이하게 나타난다. 한국에서 아시아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의미하지만, 유럽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등 서아시아를 지칭한다. 호주는 월드컵 축구대회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하지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는 유럽 국가로 참가한다. 이는 아시아가 정해진 답이 없는 자의적 범주임을 시사한다.
이런 문제로 인해 이 글에서는 아시아 전체를 다루기보다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로 그 범위를 한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도 그 자체로 자명하고 확실한 범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동아시아로 구획할 것인가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가변적이다. 상식적 견해는 한국·중국·일본이 동아시아로 통용되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동아시아사 교과서에는 여기에 베트남이 더해진다. 반면 지리적으로 인접한 북한이나 몽골은 제외된다. 이 글의 제목에서 ‘동’에 괄호를 씌운 것은 한편으로 동아시아 범주가 이처럼 모호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넓은 지역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대중문화 역시 그리 간단한 개념은 아니다. 대중문화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도시 노동계급의 문화로 등장한 근대적 제도의 하나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본격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은 방송, 음반, 영화 등 대중매체가 완비된 20세기부터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는 괄목할 성장을 거듭하면서 그 형식, 내용, 의미에서 심대하게 변화되어 왔다. 흔히 대중문화는 방송, 대중음악, 영화 등 텍스트 형태의 문화상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는 올드 미디어 중심의 20세기적 이해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기반의 21세기 대중문화에서 텍스트의 생산과 소비는 대중문화를 이루는 하나의 축 혹은 영역에 불과할 뿐 그 전부는 아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양방향성과 참여 동학은 대중문화의 성격과 범위, 작동 방식에 근본적인 변형을 가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의 대중문화는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텍스트의 생산과 소비 외의 새로운 축 하나는 사회적/커뮤니티적 축이다. 텍스트의 소비는 디지털 공간에서 무수한 대화와 논쟁, 담론과 부수텍스트(paratext)의 생산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드라마나 노래의 감상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에 관한 정보 혹은 자신의 감정과 견해를 교환하는 것에서도 큰 즐거움을 얻는다. 사회적/커뮤니티적 축은 대중문화의 팬덤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다른 하나의 축은 실천적 축이다. 스타와 팬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전제한 과거의 모델과 달리, 오늘날 대중문화 소비자와 스타와의 거리감은 훨씬 좁혀졌다. 연예인과 자신의 삶을 별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상품을 통해 보고 들은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한류의 발달이 극명하게 보여주듯 텍스트의 소비는 관광, 뷰티, 패션, 음식 등의 실천행위를 촉발하고, 이들 실천은 대중문화의 새로운 하위범주로 포섭된다. 이런 방식으로 과거 대중문화로 여겨지지 않던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들이 대중문화화되었고, 대중문화와 비대중문화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끝으로 (동)아시아 대중문화에 결부된 문제를 살펴보자. 이 말에는 다기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이를 구분하고 정리하지 않을 경우 자칫 큰 혼란에 직면할 수 있다. 첫째, (동)아시아 대중문화에는 (동)아시아산(産) 대중문화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대중문화라는 함의가 깃들어 있다. 20세기 중반 전 세계 극장가를 강타한 홍콩산 쿵푸 영화를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아마도 이는 (동)아시아 대중문화에 관한 가장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정의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정의는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일례로 유럽 시장을 겨냥해서 만든, 즉 (동)아시아 시장은 별로 안중에 없는 오리엔탈 시네마나 아시안 익스트림 영화의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동)아시아인들의 삶과 정서에서 유리된 콘텐츠를 ‘(동)아시아’ 대중문화로 범주화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러한 작품들에 붙여진 ‘아시아’라는 수식어가 종종 마케팅 목적에서 사용된다는 점은 이 정의의 문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둘째는 (동)아시아 권역에서 인기를 누리는 대중문화를 지칭한다. 2010년대 이전의 한류, 1990년대 제이팝과 트렌디 드라마 중심의 일류(日流), 1980년대 영화와 칸토팝 중심의 항류(港流)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중문화는 특정 시기 (동)아시아인들이 널리 사랑하면서 권역의 정체성과 공통의 문화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점에서 이를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 대중문화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상당 부분 특정한 미디어 기술의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권역적 대중문화의 기술적 토대를 이룬 것은 카세트테이프, VCD, DVD, 위성 및 케이블 TV 등 대량 복제가 가능하고 이동성이 높지만 이동 거리에 제한이 있는 초기 글로벌 미디어였다. 이는 실시간성과 확장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미디어 중심의 현재 매체 환경과는 적지 않은 격차가 있다.
셋째, (동)아시아 각국에서 현존하는 대중문화를 총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될 수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말한 “출판-자본주의”가 등장한 18세기 이래 매체는 국민국가를 단위로 조직되었고, 민족주의 확산의 견인차로 기능해왔다(Anderson, 1991: 224). 이는 20세기 들어 방송이 대중매체로 등장하면서부터 더욱 강화되었다. 대중문화의 이러한 성격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화된 디지털 미디어가 일반화된 현재도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중문화는 여전히 일차적으로 자국민을 위해 생산되는 국민문화로 남아있다. 물론 문화산업 인프라는 나라마다 다르고, 대중문화의 하위 분야에 따른 차이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대중음악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국 중심으로 영위되지만, 영화나 방송 등 고비용 분야는 외국 상품의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까지 논의된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세 난점은 궁극적으로 글로벌, 권역, 지역이라는 스케일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는 세 정의가 각각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취사선택의 문제라기보다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이루는 세 층위로 이해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에는 BTS, <오징어게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0) 등 지구적 인기를 누리는 것도 있고, <런닝맨>이나 중화권 비틀스라 불리는 대만의 록 밴드 우웨톈(五月天) 등 권역에서 절대적 지지를 획득한 것도 있다. 또한 각 나라의 국경 안에서만 유통되는 대중문화도 존재한다. (동)아시아 대중문화는 이 모든 것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각각의 층위는 상호 고립되어 작용하기보다 역동적 상호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와 근대성
나는 과거 한 글에서 아시아 대륙의 모든 나라를 관통하는 핵심어로 ‘변방성’을 제안한 바 있다.
변방성은 구식민지 국가들뿐 아니라 구제국인 일본까지 포괄하는 아시아 나라·지역들의 근원적이고 공통적인 역사적 조건이다. 이 말은 아시아가 오랫동안 글로벌 문화를 주도하기보다는 그것의 주변부에서 추종자로서, 모방자로서 머물러왔음을 지시한다(이기웅, 2018: 73).
다른 모든 근대적 제도가 그렇듯 대중문화도 서양에서 발전하고 유래했다. 근대화 후발주자로서 아시아는 처음부터 서양의 대중문화를 보고, 배우고, 동경하며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동시에 자신의 감각과 체질을 바꿈으로써 전근대인에서 근대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과정의 고통과 치열함은 윤심덕의 1926년작 “사의 찬미”나 1960년대 캄보디아 최고의 여가수 로스 세레이 소테아(Ros Serey Sothea)의 노래에서 느낄 수 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이들의 노래는 가수라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다. 음정은 불안하고, 리듬은 흔들리며, 고음은 거슬린다. 그런데 이러한 결함은 이들의 부적격성보다는 분투의 징표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본인에게 익숙한 음악에서 벗어나 낯설고 몸에 맞지 않는 음악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인의 20세기는 자신의 감각과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키기 위한 긴 여정이었다. 앞서 나온 ‘음악 언어’라는 표현은 이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창작자와 연행자들은 마치 외국어를 습득하듯 서양 대중문화의 문법과 어휘를 공부하고, 그것을 체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동)아시아 대중음악가들에게 지상의 목표는 서양 대중음악의 사운드에 최대한 근접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와 동시에 서양 대중음악의 압도적 위력에 대하여 자민족의 음악과 정체성을 방어하려는 시도도 일어났지만, 그것이 서구화라는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다(신현준·이기웅, 2017). 문제는 생소한 서양식 대중음악을 그 뉘앙스에서 느낌까지 자국어처럼 구사하는 것은 긴 시간을 요하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어색하고 서툰 느낌은 불가피했고, 이런 점은 (동)아시아 대중음악이 아류 혹은 조잡한 모방이라고 평가받는 주된 근거로 작용했다.
홍콩 쿵푸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 등 초기의 몇몇 성공 사례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20세기는 견습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동)아시아 대중문화는 드디어 글로벌 수준의 완성도와 감각, 그리고 정서적 보편성을 획득함으로써 오랜 아류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자국 대중음악의 인기가 서양 대중음악을 앞지르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 시장이 자국 영화 중심으로 재편된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제이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짐으로써 서양 대중음악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감성과 사운드를 성취하며, 1988년에는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세계적 성공을 거두면서 1990년대 <드래곤볼 Z>(1996년 영어판 북미 방영)나 <포켓몬스터>(1997)를 위한 길을 닦았다.
서양 대중문화에 대한 동경과 모방은 20세기 내내 (동)아시아 전역에서 진행되었다. 물론 이 역시 균등하고 동질적인 과정은 아니었다.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등 미군이 주둔한 나라들에서는 미국 대중문화가 미군 엔터테인먼트의 형식으로 직접 이식되었다. 반면 공산화 이전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는 식민 모국 프랑스의 영향 하에서 미국 대중문화의 유입이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국가로 개방개혁 이전까지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던 중국은 대만에서 유입된 카세트테이프들이 암시장을 통해 유통되는 방식으로 근대적 대중문화와 조우했다. 이처럼 과정과 경로와 속도는 달랐을지언정 (동)아시아는 서양에서 유래한 대중문화를 체화함으로써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달성했다. 그런데 이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향후 권역 내 문화교통을 가능케 하는 문화적 동질성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지구화와 권역화
20세기 말, (동)아시아 대중문화가 일정한 궤도에 오른 이후 권역 내 문화교통이 본격화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간헐적 교류는 있었고, 인접한 나라들 간의 국지적 교류는 활발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이 시기 들어 (동)아시아는 본격적 문화교통을 가능케 할 조건이 비로소 완비되었다. 각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달성하여 도시 중산층의 인구가 크게 늘어났고, 이는 문화상품의 수요를 급증시켰다. 1990년대 중반부터 (동)아시아는 케이블과 위성 TV라는 뉴미디어 시대로 진입했고, 21세기에 들어서는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각국의 민주화로 개방성이 증진된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울러 냉전이 종식되고 (동)아시아의 경제 블록화가 모색되면서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적극적인 정치적 시도가 있었던 것도 권역 내 문화교통을 촉진했다. 중심부와의 종적인 연결이 오랫동안 문화교류의 주된 형태였던 (동)아시아가 본격적인 횡적 연결을 시작한 것이다.
항류, 일류, 한류가 발생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애초 한류는 (동)아시아 지역에 한정된 대중문화 트렌드로 인식되었고, 앞선 항류와 일류처럼 일시적 유행으로 지나갈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발생한 디지털 전환은 한류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고, 한류는 권역을 넘어서는 글로벌 대중문화로 진화해갔다. 한류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중류(中流)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앞서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지구화는 불균등한 과정이라 했다. 한류의 성공에 자극받고 소프트파워의 가치에 주목하여 일부 (동)아시아 국가는 21세기 들어 적극적인 대중문화 발전 전략을 추진했다. 일본은 “쿨 재팬”이라는 슬로건 하에 만화, 영화, 음식 등을 국가 이미지 구축에 활용하는 전략에 매진했고, 중국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 문화산업 강국의 대중문화에 개입하는 “문화굴기” 전략을 채택하여 실행해 왔다(강성우, 2016; 김승수, 2016).
이들 외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유사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애초 여러 관측가들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넥스트 빅 씽’의 출현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한국, 중국, 일본을 좇아 대중문화를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고, 소프트파워 강국으로의 진입에 야심을 보이는 나라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는 여전히 낮고, 산업의 규모나 인프라의 확충도 미비한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을 생산하기는 어렵다. 이들 국가는 일차적으로 (동)아시아 3국, 특히 한국과 일본 대중문화의 소비 시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 한류의 영토가 지구 전체로 확장되면서 한류 담론의 초점은 북미와 서유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연구논문과 언론 보도가 미국과 서유럽에서 한류의 현황에 집중되면서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잊힌 대륙이 된 듯하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와 가장 깊고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류의 오랜 버팀목이다.
(동)아시아 대중문화가 권역 대중문화로서 한류와 관계 맺는 방식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앞서 언급한 직접 소비가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지화다. 2010년대 초부터 (동)아시아 각지에서는 케이팝 그룹을 모방한 로컬 아이돌 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인도네시아의 걸그룹 S.O.S(Sensation of Stage)를 비롯한 많은 아이돌 그룹이 한국 기획사의 지도 혹은 협력 하에 현지 케이팝 그룹으로 등장했다. 처음에는 이들 그룹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았고, 성과도 크게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등장하는 현지 아이돌 그룹은 인기가 높을 뿐만 아니라 케이팝과 다른 정체성을 표명하기도 한다, 필리핀 출신 보이밴드 SB19은 한국 기획사의 작품임에도 케이팝이 아닌 피팝(P-Pop)을 표방하며,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 출신 걸그룹 스타비(StarBe)는 현지 기획사를 통해 배출된 그룹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케이-인니팝으로 명명한다. 케이팝이 동남아시아에 도달한 지 20여 년 만에 이들은 모방을 넘어 케이팝의 형식을 재발명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대중문화의 의미에 대한 논의에서 언급했듯이, 미디어화 시대의 대중문화는 텍스트의 소비에 국한되지 않는 참여와 전유의 동학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대중문화가 실천의 지침 및 욕망의 대상이 되어 일상생활에 깊숙이 통합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10년 전만 해도 기피의 대상이었던 ‘덕후’ 서브컬처가 완전한 시민권을 획득하여 청소년들 사이에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한국 음식과 콘텐츠를 소비하는 ‘도한(渡韓)놀이’가 유행했다. 미얀마의 젊은 여성들은 일상 대화에 케이 드라마에서 배운 한국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대만의 젊은 남성들은 케이팝 뮤직비디오와 케이드라마에서 보이는 근육질의 몸을 선망하고 이를 갖기 위해 운동에 진력한다. 과거 (동)아시아인들이 서양 대중문화에 보내던 관심과 동경은 상당 부분 권역 내 대중문화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실천과 경험 지향적 대중문화는 과거의 응시적 대중문화와는 크게 다른 작동 방식을 지닌다. 과거의 대중문화가 텍스트의 형태로 감정적 소통을 지향했다면, 현재의 대중문화는 물질적 실천을 촉발함으로써 몸의 감각에 직접 작용한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인들은 유사한 감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몸들로 변화해 간다.
맺음말: 권역화된 대중문화의 의도치 않은 양상
2000년대 초, 한국과 (동)아시아 학자들은 한류의 학문적 가치에 처음으로 주목하여 한류 현상을 의미화하기 시작했다. 포스트식민주의적 문화연구를 지향한 이들이 한류에 대해 내린 해석은 (동)아시아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문화적 흐름으로서, 분절된 (동)아시아를 한데 모으고 문화적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토대라는 것이었다. 다소 희망적인 이 해석에서 학자들은 한류가 (동)아시아인의 공통적 문화 경험과 정체성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표현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이들의 바람은 어느 정도 충족된 것으로 보인다. 한류 이전 시기에 비해 현재 (동)아시아인들은 확실히 서로 간의 공통 분모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함께 이야기할 화제가 있고, 함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공통 경험의 토대가 있다. 그런데 그 토대의 내용은 애초 학자들이 기대했던 것과 좀 다른 것 같다. 학자들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구축을 통해 (동)아시아인의 정치적 각성과 공동체 의식의 형성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한류를 통해 구축된 문화적 공통재가 연예인에 대한 관심, 음식이나 미용 용품의 사용 경험, 미적 기준 등 ‘사소한’ 것들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보여준다. 간혹 정치적인 것과 결부된다 해도 영토분쟁이나 역사논쟁 등 파괴적인 지정학적 갈등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물론 소소한 일상의 소비적 실천들을 폄훼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거대한 서사의 예외성보다는 사소한 실천의 반복성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사실 일상적 실천의 공유는 무엇보다 탄탄한 권역 정체성의 근간이 될 수 있다. 하나 더 덧붙일 수 있는 것은 대중문화가 가끔 긍정적인 정치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덧 범아시아적 운동가요가 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대중문화가 소비자의 집단적 창의적 사용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의미와 기능을 부여받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이는 거센 지구화 속에서도 케이팝이 여전히 권역 문화로서의 의미를 유지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제시하는 사례다.
저자 소개
이기웅(keewlee@gmail.com)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이다. 영국의 런던정경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학위논문은 IMF 이후 한국 광고산업의 창의적 광고 실천을 통해 지구화의 수행적 성격과 복수성을 드러낸 연구였다. 서울과 아시아의 젠트리피케이션, 20세기 아시아 대중음악, 한류와 케이팝에 관한 이론적 이해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 강성우. 2016. “일본의 문화외교와 국가브랜드 전략으로서의 쿨재팬.” 동아시아문화연구 통권 65호, 215-241.
- 김승수. 2016. “중국 문화굴기의 역설.”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76호. 31-60.
- 신현준·이기웅 편. 2017. 『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 서울: 채륜.
- 이기웅. 2018. “아시안 팝: 변방에서 세계로.” 제20차 아세안 열린 강좌 시리즈: 다문화와 다양성. 서울. 10월.
- Anderson, Benedict. 1991.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London: Ver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