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나자르바예프 시대의 개막? 갈림길에 선 카자흐스탄

1990년 카자흐스탄 국가 탄생이래 대통령으로 군림해온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2019년 3월 19일 갑작스러운 사임을 발표했다. 시민들이 놀란 가슴을 다스릴 겨를도 없이, 사임 발표 다음날 수도의 명칭이 아스타나에서 누르술탄으로 개명되었고, 4월 9일, 조기 대선이 발표되었다. 얼핏 예고없이 급박하게 전개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사건들은 지난 몇 년간 치밀하게 준비되어온 시나리오일 가능성이 높다. 나자르바예프는 사임 후에도 헌법상 현직 대통령 이상의 권력을 갖고 있다. 반정부인사들과 시민사회 측이 새로운 합법정당이나 단체를 조직하여 대선에 대응하는 것이 제도적,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현실에서, 6월 9일 선거 직후 개표가 진행되고 토카예프의 당선이 발표된다. 온라인과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선거부정을 규탄하고 ‘가짜’선거를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지지만, 나자르바예프를 정점으로 하는 현 정치엘리트들에 대항할 민주주의적 대안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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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진 (Nazarbayev University)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임

카자흐스탄의 가장 대표적이고 긴 연휴인 나우르즈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3월 19일 화요일 저녁 나자르바예프 누르술탄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로 사임을 발표했다. 새해의 시작과 봄이 온 것을 축하하며 가족, 친지들과 떠들썩하게 보내는 명절인 나우르즈를 앞두고 많은 시민들이 분주하게 장을 보거나,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거나, 또는 이미 해외로 여행을 떠났을 무렵이었다. 녹화본으로 보이는 15분 가량의 이 연설에서 그는 “사임 결정이 쉽진 않았지만 이는 차세대 지도자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예고없이 발표된 그의 사임은 많은 이들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자르바예프의 퇴진은 그의 고령(1940년 생)으로 인해 이미 최근 몇 년동안 예측되어 왔지만, 그것이 “서거”로 인한 것이 될지 아니면 그 전에 권력을 측근에게 이양하는 형식이 될지는 누구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올 초 나자르바예프가 헌법재판소 에 대통령의 사임 절차를 문의한 것이 알려지면서, 그의 사임과 조기 대선에 대한 추측이 무성했다. 그러자 나자르바예프는 즉시 텔레비전 연설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조기 대선 가능성을 일축하고, 시민들은 선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조용히 일상 생활에 전념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카자흐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나자르바예프는 이 국가가 처음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통치해 온 유일무이한 대통령이었다. 65세 이상 시민이 전체 인구의 7%에 불과한 반면, 30세 미만이 50%의 인구를 차지하는 이 나라에서, 다른 누군가가 그의 지위를 대체한다는 것은 쉬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가끔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를 Father라고 부른다. 많은 이들은 집권정당의 명칭 누르오탄 (Nur Otan [빛나는 조국])에 누르(Nur)가 들어간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사진 출처 :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 사이트
© DIVERSE+ASIA

사임 다음 날, 충격적인 발표가 또 이어졌다. 상원의장으로서 헌법에 따라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 상원의장 토카예프 (Kassym-Jomart Tokayev)가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Astana)를 누르술탄(Nur-sultan)으로 개명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아스타나가 수도라는 것은 헌법 제 2조에 명기되어 있었다. 헌법상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지 의회에서 처리할 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원래 수도는 알마티였다. 1997년 수도 이전이 결정되면서 광활한 황무지에 세워진 소비에트 스타일의 건물 몇몇과 도로에 불과했던 첼리노그라드(Целиноград)가 카작어로 수도라는 의미의 아스타나시가 되었다. 합동의회에서 수도 개명안이 통과되면서, 그간 예쁜 이름으로 사랑받았던 아스타나시는 하루아침에 누르술탄시가 된 것이다. 수도의 명칭을 누르술탄으로 하자는 주장이야 예전부터 간간히 있어왔음에도 이를 나자르바예프가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그가 승인했음이 명백해 보인다.

사임-상왕을 위한 차근차근한 준비

한편으로는 그의 자진 사임과 권력이양이 차근차근 준비되어 왔다는 근거들도 있다. 2018년 5월에는 의회에서 나자르바예프를 국방과 관련된 모든 대내외적 정책 결정 및 집행을 주도하는 권한을 지닌 국가안보회의 (Security Council) 종신 의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통과시켰다.[1] 동시에 이 개정된 헌법은 국가안보회의의 지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하였다. 그 전, 2017년 3월의 헌법수정안은 대통령의 역할을 “최고조정자 (supreme arbiter)”로 규정하고 외교정책, 국가안보, 국방과 관련한 전략적 기능들에 집중할 것을 명기하고 있다. 이 헌법개정을 통해 정부의 일부 기능들이 의회로 이양되었을 뿐 아니라, 의회는 내각 요인의 임명과 해임에 비록 권고 형태로라도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간 무소불위에 가까웠던 대통령의 권한 중, 행정부와 의회의 활동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 등을 삭제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헌법 개정은 나자르바예프 개인의 권력을 공식적으로 더욱 강화시켰다. 특히, 91조 2항에서 “헌법으로 확립된 국가의 독립, 카자흐스탄의 단일성과 영토 보전, 정부형태, 그리고 독립카자흐스탄의 창시자이자 첫 대통령 – 엘바시(Yelbasy, 민족의 지도자)가 수립한 근본 원칙들과 그의 지위는 향후 헌법개정이 있더라도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2011년 아스타나에 나자르바예프 대학을 설립하여 매년 전체 고등교육 예산의 ⅓ 가까이 쏟아붇고 있는 것도, 포스트-나자르바예프 시기를 염두에 두고 그의 업적을 확립하기 위한 주요 사업일 것이다. 화려한 대통령궁이 중심에 위치한 수도의 이름이 누르술탄으로 바뀌면서 그의 흔적이 추가되었다.

중앙아시아 인근국의 교훈

나자르바예프가 권력이양 과정을 정교하게 기획하게 된 배경으로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일어난 최근 몇년간의 사건들을 무시할 수 없다. 1989년부터 우즈베키스탄을 통치해 온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뇌출혈로 2016년 사망하자 새로 대통령에 취임한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는 곧바로 카리모프의 흔적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치안조직을 장악하자마자 카리모프의 친족들을 각종 부패 혐의로 수감시켰다. 카리모프의 장녀인 굴나라가 카리모프시대에 쌓아올렸던 금융 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현재 가택연금된 신세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패쇄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독립 이후 16년간 집권한 사파무라트 니야조프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2006년 사망한 후, 그의 측근이자 부통령이었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비록 전 대통령의 친족에 대한 공격은 미미하지만, 니야조프의 유산을 제거하는 작업들이 잇따랐다. 특히, 니야조프가 ‘민족의 영적 지도’를 목적으로 저술하여 학교 및 사회 전반에 걸쳐서 필수교양 도서로 지정되어 있던 루흐나마(Rukhnama, 영혼의 책)를 2013년경 부터는 공교육 커리큘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전국에 걸쳐 설치되어 있는 니야조프의 황금 동상들을 파괴하고 끌어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주변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지켜본 나자르바예프는 대통령 사임 이후에도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오지 않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개정으로 이전에 비해 권한이 약화된 대통령직을 내려놓았을 뿐, 그는 현재 공식적으로 카자흐스탄 국민회의(the Assembly of People)의 종신 의장, 국가안보회의 의장, 누르오탄당 의장, 헌법위원회 (Constitutional Council) 종신위원, 민족의 지도자이다. 권력 이양이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현 지배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나자르바예프가 장악한 이 정부 기관들이 그 과정을 철저히 주관, 단속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즉, 나자르바예프가 살아있는 한, 토카예프를 포함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당분간은 수렴청정 체제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나자르바예프 사임 전후의 권한 비교

통치 기간 동안 나자르바예프의 권력은 점차적으로 흔들리기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공고해졌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정적이 될만한 정치인들은 해외 추방 및 의문사 등으로 대부분 제거되었다. 그 중에는 2005년 대선 직전 살해된 야권의 대표인사였던 잠만벡 누르카딜로프와 2015년 초 오스트리아 교도소에서 죽은 첫째 사위인 라하트 알리예프가 포함된다. 나자르바예프는 1989년 고르바쵸프에 의해 카자흐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의 공산당 제 1서기 (the First Secretary)로 임명된 이래, 30년 가까이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는 1991년 소비에트가 붕괴되던 해 12월 1일 개최된 카자흐스탄 최초의 대선에 단독출마해 98%가 넘는 찬성표로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형식적이나마 경쟁후보가 있었던 1999년, 2005년, 2011년, 2015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그 동안, 나자르바예프의 사람들로 채워진 의회에서는 그의 임기 연장안 (1995년) 및 ‘공화국 첫 대통령’에 한 해 대선에 무제한 출마할 수 있는 종신 특권안 (2007년)을 통과시켰다.

나자르바예프의 사임 전후 직위 비교 및 헌법에 보장된 나자르바예프의 특권 요약
사진 출처 :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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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가 사임 후에도 갖고 있는 권한과 지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북한에서 김일성을 호칭할 때 영원자 지도자라는 수식어를 붙이듯이, 모든 공식 문서와 정부 통제 하의 언론에서 나자르바예프 이름 뒤에 민족의 지도자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처음 민족의 지도자 지위를 부여한 것은 2000년 헌법개정이었다. 이후, 2010년과 2017년의 헌법개정으로 더욱 그 지위가 강화되었다. 관련 헌법조항을 요약하면,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그가 수행하는 역사적 사명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권한들을 누린다.

따라서 나자르바예프는 헌법을 통해 이미 그의 사임 이후 자신과 그 친족들의 안전을 보장해놓은 동시에, 국가의 대내외 정책에 두루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 놓았다. 전술했듯이, 엘바시의 지위는 이후 헌법개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임 후거나 사망 후에도, 합법적인 방식으로 ‘초헌법적’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이다.둘째, 나자르바예프가 종신의장으로 이끄는 카자흐스탄 국민회의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책 자문기관으로, 공식적으로 130여 민족이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다양한 민족 구성원들을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1995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국민회의가 결정한 사안은 모든 정부, 시민사회 기관에서 엄중히 고려되어야 하며, 그 외에도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등, 입법과정과 정책수립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헌법이 보장한다. 특히, 언어와 인구 관련 정책들 및, 민족간 화합 유지에 관련된 정책들을 입안하고 검토하는 권한을 가진다. 또한, 전체 107명인 하원의원 중 유권자들에 의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선거로 선출되는 98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이 국민회의에서 선발된다.

셋째, 국가안보회의는 원래 자문기관이었으나, 2018년 헌법개정 이후 대내외 정책 결정 과정에 포괄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지역 행정 관료를 추천하고 검토할 뿐 아니라, 국내외의 치안 관련 정책과 법안을 검토하며, 치안 기관들 (국가정보원, 군대, 해외정보국, 내무부)간에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회의 구성원의 과반수를 나자르바예프가 임명할 수 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데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제도들을 전 대통령인 나자르바예프가 장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자르바예프가 당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는 집권 정당인 누르오탄이다. 누르오탄은 선출직 98석의 하원에서 84석을 차지하고 있다.[2] 공식적으로 100만에 가까운 당원 수를 자랑하며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는 약 1800만), 공립학교와 국립대학의 교직원 및 공무원 대부분이 당원에 속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이 시민사회와 국가 사이 어딘가에 있으면서 둘 사이를 연결하는 조직이라면, 누르오탄은 국가 조직에 훨씬 가깝다. 나자르바예프는 카자흐스탄 최대 정치조직의 수장으로서 여론을 주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당비례대표제로 치러지는 하원 선거에서 누르오탄 후보 명부의 결정 및 대통령 선거 후보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포스트 나자르바예프 시대의 잠재적 리더들

나자르바예프가 고령에 접어들면서 정치 무대에서 잠시사라지는 일이 잦아지자 (병 치료를 위해 해외 병원에 드나드는 것으로 추정),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에 대해 최근 몇년간 추측이 분분했다. 종종 나자르바예프의 후계자로 낙점될 것으로 회자된 인물들을 일단 살펴보자. 이번 대선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들 대부분은 나자르바예프의 최측근으로 최고 정치 엘리트 그룹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선, 나자르바예프를 대신해 현재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토카예프는 나자르바예프의 측근 중에서도 후계자 우선순위로 늘 꼽혀왔다. 1953년 생인 토카예프는1992년부터 나자르바예프의 내각에서 일했다. 국무총리직 및, 오랜 외교부 장관직과 유엔제네바사무소 사무국장, 헌법상 대통령 다음으로 권력 제 2인자인 상원 의장직을 거친 인물이다. 외교 무대에서 오래 활약한 만큼 공적인 자리에서 깔끔한 매너가 돋보일 뿐 아니라 유창한 영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며 경력, 전문성 면에서 확인된 인물이다.

다른 잠재적 후보군으로 카림 마시모프 (Karim Massimov)와 이만갈리 타스마감베토프 (Imangali Tasmagambetov)도 있었다. 두 차례 총리직을 역임한 카림 마시모프는 KGB의 후신으로 막강한 파워를 지닌 국가정보원 (National Security Committee)의 원장이다. 나자르바예프 일가의 최측근으로 오래 인정받은 인물로서,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왔다. 그가 경제기획부 장관이었던 시기 카자흐스탄은 2008년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겼고, 수출입 모두에서 카자흐스탄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중국 전문가일 뿐 아니라 크렘린과도 친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위구르 출신이라는 점은 대선 후보로서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카자흐스탄은 다민족 사회라는 현실을 적극 인정하면서 다른 문화 및 민족들에 비교적 관대한 사회이지만, 동시에 각 분야에서 대대적으로 “카자흐” 정체성을 창조 및 장려하는 국가 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그런 마당에 위구르인을 국가 최고위직에 앉힐 리는 만무한 일이다.[3] 총리, 양대 대도시인 알마티와 아스타나 시장, 국방부 장관을 두루 거친 이만갈리는 대중적 인기가 두드러진다. 그는 솔직한 화법과 대중적 행보로 일반 시민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만갈리가 2016년 부터 주러시아 카자흐스탄 대사를 역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최상위 권력엘리트 그룹에서 기껏해야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후술하겠지만, 헌법에 규정된 까다로운 대선 후보 자격 조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자르바예프의 장녀인 다리가 나자르바예바 (Dariga Nazarbayeba)를 빼놓을 수 없다. 나자르바예프는 (공식적으로) 아들이 없고 장성한 딸이 셋이다. 그 중 다리가만이 정치권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고 있다. 다리가가 2004년 창당한 아사르당(Asar, 카작어로 “함께”)은 11.4%의 득표율로 하원에서 4석을 얻었지만, 이후 2006년 나자르바예프의 친위정당인 누르오탄에 흡수되었다. 하원 부의장과 총리권한대행을 거쳐 상원의원이 되었고, 토카예프의 임시대통령 취임과 함께 상원의장으로 임명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정치/행정 경력이 약점이다. 다리가는 비지니스, 외교,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인맥을 쌓아왔지만, 전반적으로 여론은 그가 후계자가 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왕조식 권력이양에 대한 반감 및 그가 여성이라는 점이 포함된다.

향후 최고 권력의 향배에 관한 논의에, 나자르바예프의 최측근이자 친족인 티무르 쿨리바예프 (Timur Kulibayev)와 사맛 아비쉬 (Samat Abish)를 빼놓을 수 없다. 티무르 쿨리바예프는 나자르바예프의 차녀인 디나라 (Dinara Nazarbayeva)의 남편이다. 쿨리바예프 가족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부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쿨리바예프는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은행은 할릭은행(Halyk Bank)을 소유하고 있으며 여러 자연자원 관련 국영기업과 경영단체의 대표직을 두루 맡고 있다. 세계 최대 가스회사인 가즈프롬(Gazprom)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지배 엘리트 사이에서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가 가진 엄청난 부와 나자르바예프의 사위라는 지위로 인해 나자르바예프의 후계자로 늘 빼놓지 않고 회자되는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사맛 아비쉬는 나자르바예프의 조카이며, 국가정보원을 장악하고 있다 (First Deputy Chairman).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나자르바예프가 후원하는 인물 1순위라는 평도 있다.

 

나자르바예프가 출마하지 않는 최초의 대선

갑작스러운 조기 대선 발표

나자르바예프의 사임과 수도 개명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4월 9일, 토카예프는 조기 대선 실시를 발표했다. 그는 국영 텔레비전 방송 연설을 통해 조기 대선은 “나자르바예프와의 상의 끝에 내린 결정”이며, “정치, 사회적 합의 및 자신있는 국정의 운영,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불확실성이 해소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세계가 빠르게 급변하는 가운데, 카자흐스탄이 맞닥뜨린 현실이 녹록치 않다”고도 하면서, 이번 대선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4]

지난 대선이 2015년이었고 5년 임기이니, 원래 헌법 스케줄에 따르자면 대선은 2020년 12월이 될 터였다. 그러나 헌법상 대통령이 “비상 대선”을 결정할 수 있고, 그 결정 이후 2 개월 이내에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 조기 대선이 될지 1년 9개월 후가 될지 시민들로서는 아무런 예측이 어려운 가운데, 또다시 갑작스러운 발표가 이어진 것이다. 이 역시, 나자르바예프의 사임이 오래 전부터 기획된 시나리오의 첫 장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투표일까지 단 2개월 남은 상황에서 반대파가 제대로된 출마를 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간적으로 시민사회에 강력한 지지세력을 형성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다음과 같이 매우 까다로운 대선후보 요건 때문이다.

사진 출처 : Wikime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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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번째 요건은 국외에 어떤식으로든 파견 경력이 있는 이들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후보군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 이만갈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흥미롭게도, 토카예프는 유엔 제네바 사무소의 사무국장을 역임한 바 있는데 (2011-2013),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토카예프의 후보 요건 충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헌법위원회는 이 조항을 폭넓게 해석하면서 토카예프의 후보 자격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바 있다.[5] 두번째 요건은 지난 2017년 의회에서 대선 후보로 자기 추천 (self-nomination)을 금지하는 조항을 통과시키면서 추가된 조항이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7개의 합법 정당과 200여개의 합법 공공단체가 있다. 이 요건은 반대파 (비합법 단체)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누르오탄 내부의 경쟁을 잠재우는데 효과적이다 아무리 공고한 독재체제라고 해도, 내부의 권력 다툼과정에서 발생하는 탈당 등은 종종 체제를 흔들만큼 우려하기 충분한 사건이다. 야당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일당 지배 체제를 이끄는 집권정당이 둘 이상으로 분열될 수도 있다. 이 요건으로 오직 나자르바예프가 승인한 후보만이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공식적으로 카자흐스탄의 국어는 카자흐어이고, 러시아어는 공용어이다. 인구 구성면에서 카자흐인이 2/3에 달하고 러시아인은 20%남짓의 소수 민족이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인구의 수가 카자흐어 인구보다 많다. 이는 오랜 소비에트 지배 기간동안의 카자흐어 말살정책으로 러시아어만이 공식언어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독립 이후 정규 기초/고등 교육 과정에서의 적극적인 카자흐어 교육을 통해 현재 인구의 상당수가 카작어와 러시아어를 모두 구사하지만, 소비에트 시절에 정규교육과정을 거친 중장년층 시민들은 러시아어가 훨씬 자연스럽다. 또한, 젊은 층에서도 비카자흐 출신일 수록, 러시아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카자흐인에게 유리한 대선 후보 자격요건을 통해, “카자흐화” (Kazakhization)정책 노선을 대내외적으로 못박고 동시에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카자흐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네번째로, 5년 이상 공직 경력 요건은 지배 엘리트들에게 충분히 능력과 충성도를 검증한 후보만이 고려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요건을 채우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9번째로 광활하고 인구 밀도 순위가 215위 (7/km²)인 카자흐스탄 구석구석에 정당 조직이 침투해 있어야 한다. 누르오탄과 누르오탄이 후원하는 위성정당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 요건 역시 지배 엘리트 내부의 경쟁, 탈당, 창당, 출마, 집권정당의 분열로 이어지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토카예프와 기타 후보들

대선 후보 추천기간은 조기 대선이 발표 다음 날인 4월 10일부터 시작되어 4월 28일까지였다. 그 후 5월 10일까지 후보등록을 받고, 5월 11일부터 선거 전날인 6월 8일까지 선거운동기간이다. 총 9명이 각 정당/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았으나, 한 명은 사퇴하고 또 한 명은 카자흐어 시험에서 탈락함으로써, 최종적으로 7명만이 후보로 등록했다. 토카예프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선거를 주관해야 하기에 다리가가 집권정당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루머도 돌았지만, 결국 누르오탄의 후보가 된 것은 토카예프였다. 누르오탄 임시 전당대회 에서 당 대표인 나자르바예프가 직접 토카예프를 후보로 선출하는 안을 제안했고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6] 토카예프 이외에는 대중적으로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들이며, 친정부 성향 정당이나 단체의 추천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전국사회민주당이 합법 정당들 중에서 비교적 반정부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토카예프를 당선시키는 선거에 허수아비 후보를 세울 수 없다며 이번 대선에 보이콧을 선언했다.

카자흐스탄 조기대선 후보들
사진 출처 : 카자흐스탄 중앙선거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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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후보 중 눈에 띄는 후보는 토카에프를 포함한 세 명 정도이다. 전술하다시피, 토카예프 (66세)는 모스크바에서 교육받은 정통 엘리트 관료출신으로서 나자르바예프의 신임과 많은 경제 엘리트 및 투자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장성한 아들이 없는 나자르바예프를 이을 후계구도가 확정될 때까지 나자르바예프의 정책들을 포함한 그의 레거시들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만한 인물로 평가된다. 유럽 및 미국,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끼어 외교적으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카자흐스탄의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해, 외교 무대에서 전문성을 검증 받았다는 것이 그의 강점이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의 정지체제는 지배정당과 국가조직이 인력 면에서 상당 부분 겹쳐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당-국가체제와 유사하다. 즉, 공명정대한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없는 나라에서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하는 국가조직이 게임의 선수로 뛰는 상황이기에, 유권자 명부 관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거 단계에서 각종 부정이 예상된다. 한편, 그가 발표한 수도개명을 두고 시민사회가 상당히 동요했고 항의에 나선 일부 시민들이 체포, 구금되면서 그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퇴색하기도 했다.

  다음 살펴볼 후보는 민족의 운명이라는 카자흐 민족주의 단체의 추천을 받은 아미르잔 코사노브 (Amirzhan Kosanov)로, 언론인 출신이며 비교적 덜 친정부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89년 카자흐국립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주의 카자흐스탄 신문에서 일하다가, 1991년 독립 이후 청소년, 관광 및 체육, 언론 관련 다양한 국가 행정직을 거쳤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여러 단체와 정당을 조직하고 해체를 거듭하며 야권에서 나자르바예프 독재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이번 대선 공약으로 현재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헌법을 새로 디자인하는 것을 내세웠다. 그러나 선거운동을 위한 자금 및 조직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결과적으로 대선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허수아비 후보 역할에 불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마지막으로, 다니야 에스파예바 (Daniya Espayeva, 58세)가 악졸당(Ak Zhol [Bright Path] Party)의 추천을 받아 카자흐스탄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누르오탄이 절대 다수 (84석)를 구성하는 하원의회에서, 악졸당은공산당과 함께 각각 7석 을 보유한 소수 정당이다. 다니야는 비록 하원의원이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상하원 의회 모두 ‘고무도장’ 에 가깝기에, 의원들은 피라미드 형의 카자흐스탄 정치구조에서 최상층 엘리트 그룹에 끼지 못하며 의원 개개인의 대중적 인지도도 낮은 편이다. 더욱이 다니야는 오랜 지방 행정직 경력에 비해 중앙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 대선에서 다자녀 가정 이슈를 내세워 여성 표를 모으겠다고 했지만, 누르오탄의 후원을 받는 대표적인 허수아비 후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조기 대선의 결과와 함의

6월 9일, 필자가 일하는 나자르바예프 대학에도 투표소가 설치되었다. 20개 남짓한 건물들이 중정과 터널로 대부분 이어져 있는 이 대학 캠퍼스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엄격한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날만큼은 캠퍼스로 들어오는 정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시민들은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 투표부스에 들어갔다. 투표소 입구 주변에는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대중가요가 스피커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한쪽 코너에서는 대형 TV화면으로 축구중계를 관람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 차분한 축제의 절정에는 토카예프의 당선이 계획되어 있다.

카자흐스탄의 조기 대선의 후보별 득표율
이미지 출처 : 카자흐스탄 중앙선거위원회

결론적으로, 현재까지, 나자르바예프의 사임이 지배엘리트 그룹 내부의 권력투쟁을 촉발하거나 기타 정치적으로 심각한 불안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다만, 독재 체제의 틀 내에서 미리 계획되고 통제된 권력이양 프로세스의 개막을 알린 사건임에 틀림없다. 나자르바예프가 구축한 정치적 안정이 얼마나 지속될까? 시민사회는 최근에서야 몇몇 경제, 복지 이슈들을 중심으로 겨우 조직화를 시작했다. 다자녀가구 보조, 저임금 및 실업 대책,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차별대우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체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국내외 활동가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는 선거가 무엇인지, 민주주의적 정권 교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이제 막 생각하기 시작했다. 선거를 앞두고 양대 대도시인 알마티와 아스타나에서는 소규모의 시민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당신은 진실을 피해갈 수 없다.” “깨어나라” 등의 짧은 메시지가 온라인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 선거일을 전후해서, 아스타나와 알마티에서는 각각 수 백에서 수 천명에 이르는 전례없는 규모로 시민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 조직 대부분이 아직도 국가 관리하에 있다는 점과 정치적 반대세력 등장을 막기 위한 높은 제도적 장벽들 (대선 후보 자격요건, 약한 의회, 정당 설립의 규제, 의석을 얻기 위한 최소 득표율 7% 등)을 고려하면, 일부 시민들의 동요가 수 년 내에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치적 격변은 이 나라의 자본가들도, 유럽을 비롯한 해외의 투자자들도 반기지 않을 일이다. 다만 현재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이 나라에서 누구도 나자르바예프 수준의 개인숭배를 구축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과 현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의 통제된 자유화 (liberalization) 프로세스를 토카예프정부가 얼마나 유능하게 진행하느냐가 향후 카자흐스탄의 10년을 결정하는 열쇠라는 점이다.

 

저자소개

구세진 (sejinkoopols@gmail.com)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에 위치한 나자르바예프 대학교 (Nazarbayev University)의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텍사스 A&M 대학(College Station)과 서울대학교에서 각각 정치학 박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맥락에서 정당조직, 당원, 선거, 젠더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관련 연구로 관심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 Party Politics,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한국정치연구에 논문을 출판하였다.


[1] 국가안보회의는 총리, 대통령실장, 국가안보회의 서기, 국가정보원 (National Security Committee; 소비에트시절 KGB가 전신) 원장, 외무장관 및 국방장관, 이렇게 7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정부 최고기구라고 할 수 있다.

[2] 상원은 공식적으로 초정당 기관으로, 의원들이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3] https://thediplomat.com/2018/10/who-will-run-post-nazarbayev-kazakhstan/ (검색일 2019. 5. 15)

[4] https://tengrinews.kz/kazakhstan_news/9-iyunya-sostoyatsya-vyiboryi-prezidenta-kazahstana-366797/ (검색일: 2019. 5. 10)

[5] http://ksrk.gov.kz/news/konstitucionnyy-sovet-prinyal-reshenie-po-obrascheniyu-prezidenta-respubliki-kazakhstan (검색일: 2019. 5. 10)

[6] https://tengrinews.kz/kazakhstan_news/nazarbaev-predlojil-vyidvinut-tokaeva-kandidatom-prezidentyi-367745/ (검색일: 2019. 5. 10)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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