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접합 공간, ‘개성공단’

개성공단은 한반도의 지리, 역사적 주요 결절지역이었던 개성의 입지적 특성을 이어받아 남북 경협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이다. 남북 관계의 변동에 따라 순조롭게 운영되지 않았던 기간도 많았지만, 여전히 개성공단은 남북 간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는 주요 상징 지표로 간주되고 있다. 개성공단의 공간은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두 국가 간의 끊임없는 제도적 진화 과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글은 개성공단의 공간 분석을 통해 상호 간의 공간적 사고가 전달, 수용되는 과정들이 반복될 때, 평화적 가치들이 공유될 수 있는 기회가 증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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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판문점 선언’은 2007년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진행하며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우선 추진한다는 합의를 통해 새로운 남북경협 추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말하자면, 판문점 선언의 성과는 10년 이상 단절되었던 남북 간의 대화와 상호 이해의 가능성들이 연대와 협력의 공간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의가 있다.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이 합의한 다양한 협력 사업들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개성공단은 2016년 가동 중단이 결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남북한의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 지표로 작동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서도 개성공단의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수도권을 시작으로 하여 개성공단, 평양·남포, 신의주를 연결하는 ‘서해안 산업·물류·교통 벨트’와 금강산과 원산·단천을 거쳐 청진·나선을 개발한 뒤 남측 동해안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동해권 에너지·자원 벨트’는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그리는 새로운 통일 국토 비전의 핵심이다.

이 구상안에서 개성공단은 남북한의 경제 공간을 연결하는 것과 함께 산업 구조 재편을 위한 중심 공간이자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중핵지점으로 볼 수 있다. 남북통일 정책에서 개성공단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기대가 한층 커지는 가운데, 개성공단에 기업을 운영했던 기업인들과 관계자들도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위해 적극적인 방안들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2019년 6월 미 연방하원을 방문하여 개성공단의 경제적 효과와 더불어 한반도와 전 세계의 평화적 가치 실현을 위해 재개의 중요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된 것도 그러한 차원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남북한을 연결하는 공간, 사고와 사람이 만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개성공단은 그것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한반도 내 개성의 위치가 지리,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입지였음을 확인하고, 개성 지역에 조성된 개성공단의 공간을 분석하여 그것이 가지는 함의가 무엇인지를 추적함으로써 한반도의 접합공간으로서 개성공단의 유의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한반도 결절점으로서의 개성과 개성공단

개성(開城) 일대는 온화한 기후와 기름진 토양, 우수한 접근성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한반도 인류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다. 발해와 신라가 대치한 남북국시대에는 변방으로 간주되어 쇠퇴의 길을 걷던 개성 일대가 도시로서 급격하게 성장한 계기는 개성을 황도(皇都)로 하는 고려의 건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한국역사연구회, 2002).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 일가는 후삼국 시대부터 개성 일대를 기반으로 하는 무역을 통해 영향력 있는 지방 호족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궁예 역시 이 지역의 지리적 입지에 주목하여 태봉 건국 초기에 잠시 수도로 삼음으로써 개성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조선팔도지도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개성의 지리적 입지는 풍수적으로 3대 길지 중 하나이며, 예성강과 임진강, 한강의 물길이 만나 서해로 나가는 지점과 인접해 있는 천혜의 교통입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개성의 이러한 입지적 장점을 활용하기 위하여 태조 왕건은 건국 직후부터 예성강 하구인 벽란도를 국제무역항으로 새롭게 개발하고 개경과 벽란도를 연결하는 교통체제를 조성함으로써 개성의 개방화와 국제화를 추진하였다.

『고려사』를 비롯한 여러 사료에 각국의 내왕과 교류 기록(박종기, 2002)에서도 개경에서 12km 떨어진 외항인 벽란도는 국제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중국, 일본은 물론 멀리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인도의 사신과 상인들이 드나드는 고려의 국제무역특구가 되었으며 이들은 최종 행선지인 개경에 집단적으로 체류하며 교역활동을 있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해, 13세기 초 개경과 벽란도 일대 인구는 50만으로 추정되며 이는 동시대 피렌체 인구 10만을 훨씬 상회하였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의 건국 이후 한양 천도가 이루어지면서 국제도시 개경의 명성은 쇠퇴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려시대부터 형성된 상업의 중심지로서 개성의 정체성은 조선시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500년 국제무역도시 개성을 통해 전국 유통망을 구축했던 ‘개성상인’은 오히려 상업이 쇠퇴했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그 존재가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개성상인(일명 松商)은 창의적인 경영과 상술로 전국 상권을 장악하고 조선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번창하였으며, 전국에 송방을 설치하여 포목 판매를 관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보부상의 중심 행위자로 활약하였다(노혜경 외, 2011). 개성상인은 축적된 상업 자본을 바탕으로 개성을 인삼의 재배 및 홍삼 제조의 중심지로 삼아 전국 인삼 보급과 해외 가공수출을 독점했으며 이들의 활약은 조선 말 한반도 초기 상업주의가 싹트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이르러, 개성은 장점으로 여겨졌던 상업적 특성에 의해 조선총독부로부터 많은 고난을 겪게 되는데, 개성상인들은 인삼 재배 및 유통권을 박탈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립군 군자금을 제공하고 독립군을 이동시키는데 협조했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말살되었다. 500년 고도 개성의 문화유적 역시 도굴되거나 방치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과거의 화려했던 역사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광복 후 개성은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으로 미군정 지역에 편입되었고 1949년 개성시로 승격, 대한민국의 최북단 접경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북한에 포함되면서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 정치행정체계에서 또다시 변방지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개성은 수도인 평양과는 달리 남북한의 접경지역에 위치하여, 인구, 물자가 원활히 공급되지 못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시 발전 계획상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 하였다.

그러다가 제 1차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2000년대 이후 역사적인 남북화합의 공간이 된 개성은 개성공단의 조성과 더불어 2003년 개성특급시로 변경되면서 지역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개성공단의 등장은 단지 산업단지의 조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접합공간으로 다양한 지점에서 갈등과 합의를 반복하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개성공단의 공간 분석을 통해 남북한의 상호 조응 방식과 진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서로 다른 두 체제가 만들어낸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개성공단 연혁
© DIVERSE+ASIA

 

개성공단, 한반도 공간 재구조화의 실험실

북한의 지역 개발을 포함한 공간 관련 연구들은 개발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에 대한 분석이 주요 관심이었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은 사회, 경제, 정치적인 입지로 인해 다양한 공간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으나 기존의 연구들에서는 ‘남북 간의 노동력, 자본, 상품 등이 초국경적인 형태로 연계된 지경학적인 공간인 동시에 남북 양측이 지정학적 논리를 내세우고 관철하는, 그 결과 지정학적 갈등이 직접적으로 표출되고 매개되는 모순적 공간이자 미완성, 불안정, 불확실성이 구조적으로 내재한 공간(김병로 외, 2015)’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개성공단은 개발과 운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관련 규정을 설정함으로써 북한의 영역성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예외공간(이승욱, 2016)으로 탄생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규정을 통해 해당 지역에서만 예외적으로 작동하는 다층적인 법적, 제도적 공간이 형성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이효원, 2011).

그동안 정치, 군사적인 요인으로 인해 일반 연구자들은 개성공단 정보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공간 구조와 경관 분석에 대한 연구는 극히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조성은 해당 지역 및 인근 지역의 공간구조를 변화시켰으며, 이러한 재구조화가 개성을 비롯한 남북한 접경지역에도 사회, 경제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개발계획과 시행 과정에 따른 공간구조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은 유의미한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산업단지로서의 경관 특성과 더불어 북한에서는 볼 수 없는 개성공단 특유의 경관들이 형성되어 있다. 주요 건물들의 배치,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빈터, 도로 등의 연결망을 분석하는 것은 개성공단이 가지는 위치적 장, 단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의 공간적 특성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한국의 ‘이식 경관’이다. 개성공단은 남측의 산업단지와 상당히 유사한 경관체계를 갖는데 이는 건물의 배치와 동선에 있어 한국의 제도와 경관 계획을 적극적으로 도입,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 단지 조성 계획도는 일정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산업단지의 공간배치는 단지의 특성에 따라 이루어지며, 충분한 녹지 공간을 확보하여 단지의 쾌적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산기능 지역은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배치하며, 주요 생산공간과 연관 생산 공간의 합리적인 배치로 생산과정의 계열화, 협업화를 도모해야 한다(대한국토계획학회, 2014). 이러한 공간 생산의 방식이 ‘최대 효율, 최소 비용’이라는 목적 아래 개성공단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 개발 계획 구상안을 살펴보면, 남한의 산업 단지와 유사하게 조성되도록 유도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토지이용계획에 따르면, 공장용지는 적정 수요로 배분하여 업종 간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배치하고 상업 및 지원시설용지를 단지 중앙부 선상으로 배치하여 이용자의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구상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 공간의 배치에는 북한의 법적, 제도적 제한으로 인해 제한된 부분이 일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남측의 산업단지 형태를 그대로 복제하였으며 일종의 ‘이식(李植) 경관’으로서 북한 도시 공간에 새로운 파급효과를 발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 지구단위계획도
출처: 개성공단지원재단, 2008

생산 공간뿐만 아니라 여가나 휴식의 공간에도 이식경관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북한에서는 공원 및 유원지의 성격과 사명에 대해 근로자와 청소년들의 문화 휴식장소이자 그들을 정치사상적인 측면에서 혁명적으로 교양하는 학교이며 과학지식의 보급기지로 간주된다(김동찬, 1995). 그러나 개성공단에 조성된 공원의 경우, 계몽적 목적보다는 다른 용도구역 간의 완충지대나 자연 자원을 활용하는 녹지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개성공단 내의 위치하는 공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존의 북한 내에서 통용되었던 입지, 목적 등이 상이한 공간들이 조성됨으로서 개성공단 내에서만 볼 수 있는 경관들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개별 건축물 단위에서도 이식경관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데, 개성공단의 기업 및 공공 기관의 건물 등은 남한의 산업 경관이 압축적으로 표현된 곳이라 할 수 있다. 개성공단 내, 외부의 가로망 체계를 보면, 개성공단과 개성시의 관계뿐만 아니라 개성 공단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공간 사용 규칙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북한의 근로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한 동선이 명확하게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기업, 공공 기관 등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 아파트형 공장이나 단독 공장 등의 건축물을 건축하였다. 특히 개방형 구조를 통한 주요 도로변 저층부에 사무동이나 쇼룸 등의 공간 배치를 하도록 장려되었는데, 이는 초기 공단의 정착 단계 이후 폐쇄적 공단의 형성이 우범화로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개성공단 내의 공간의 배치와 구성은 남한에서 사용되는 공간 계획과 건물의 배치 방식을 일부 혹은 전면 수용함으로써 북한의 도시 계획과는 다른 비(非)정치적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개성공단의 공간 구성과 사용은 결과적으로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수렴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 북 상호 이해의 완충지대의 가능성

개성공단을 평가할 때,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입지 측면에서 이 지역의 유용성을 꼽는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는 임가공산업단지의 입지적 특징을 갖추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개성시, 개풍군, 장풍군 일대가 잠재적인 노동력 풀로 제공될 수 있다고 평가된다.

또한 고속도로를 이용한 육상교통로로 한 두 시간 내에 최대 배후시장(수도권)에 접근 가능하다는 점을 통해 단거리 트럭 운송이 용이하여 물류와 하역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시장의 변화를 민첩하게 수용할 수 있고 빈번하고 빠른 이동이 가능하여 급변하는 시장상황에 대처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즉, 개성공단은 소규모 배치생산에 최적화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최신 산업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입지적 장점을 가진 지역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 사용 및 문화적 동질감을 일정 정도 공유함으로써 소통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어, 문화적 차이의 최소 지역이라는 장점이 개성공단에 농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개성공단의 입지적 장점은 한반도의 접합 공간으로서 개성공단이 남북의 주요 자원, 사람, 아이디어 등을 연결해준다는 부분에서 그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개성공단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남북의 연결공간은 더욱 확대될 것이며. 남북의 통일 공간을 조성하는데 있어 개성공단이 가지는 중요성 역시 커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개성공단 조성 초기에 도로, 전력, 용수의 공급 등과 같은 인프라의 조성은 단순히 개성공단 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 개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남측의 인원과 물자 등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로 설명될 수 있다. 즉, 남한의 선진화된 기술력을 통해 북한의 자원 효용성과 공간 활용성을 높임으로써 남북경협의 공간적 효과는 산업단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확산되어 더 많은 지역으로의 파급효과를 발생시켰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 운용을 위한 용수의 공급처로 월고저수지는 개성시와 장풍군 지역에 대한 식수․용수 공급을 위해 1992년부터 장풍군 일원에 축조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잦은 집중호우로 공사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였다. 남북한은 용수의 공급처 위치 선정을 두고 2년 이상 대치하다가, 월고저수지의 현대화로 합의를 마무리하였으며 2007년 9월 13일, 북한의 용수를 받아 남한의 기술로 정수 처리된 상수가 최초로 개성공단 및 개성시에 공급되었다(개성공단지원재단, 2008).

또 다른 접합 공간으로서, 판문점 CIQ와 같은 출입경 시스템은 남북한을 연결하는 주요 시설로서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이어짐과 닫힘을 반복하였다. 이 장소들은 남북한의 연결공간에서 가장 민감하게 작동하는 곳으로서 국가 중심의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 지리적 지식들이 국가 시스템의 재생산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 조직, 사용되는지에 대한 것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에서 개성공단 가동 이면에는 한반도의 접합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남북한의 끊임없는 조정 과정이 숨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성공단과 같은 월경적 지역협력 모델은 경제적 보완성, 지리적 접근성, 사회문화적 기반에서의 유사성이라는 장기적 차원의 조건과 중단기적 차원의 정책과 제도 양립성을 통해 여러 가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 간의 접경 지역 협력 관계는 단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통합의 수준에 따라 내생적 혹은 외생적 발전을 이룰 수 있으며, 공조적 내-외생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제도적인 양립성 제고와 연계적 비교우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개성공단의 유용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김상빈 외, 2004).

 

공간적 포용성, 남북관계의 이해의 시작점이 되어야
개성공단의 일상과 마주침을 담은 영화<우리 지금 만나>

2019년 개봉한 ‘우리 지금 만나’라는 영화에서는 개성공단으로 식자재를 배달하는 남한 청년 ‘성민’과 그곳에서 매일 마주치는 북한 직원 ‘숙희’라는 인물들이 음악을 매개로 교감을 하는 내용이 짧게 다루어진다. 연출을 맡은 김서희 감독은 개성 공단에 편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작 계기로 삼아 ‘개성공단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사람들의 마주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해보고자 영화화하였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남녀간의 미묘한 긴장과 설렘에 포커스를 두고 그려지는 것처럼 이해되지만, 이들의 만남이 가능했던 것은 개성공단이라는 만남의 장이 존재했기 때문이었고, 그 공간이 통해 그들이 살아왔던 남한과 북한이라는 삶의 경험들에 기인한 편견과 오해의 벽을 낮출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의 공간이 갈등과 반목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접합’ 의 공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의 남북관계 악화 상황이 지속되면서 전면 철수가 결정된 이후, 2019년 현재까지 개성공단의 가동이 중단된 상태이다. 2017년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가동에 대한 반발과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의 방북 거절을 통해 남북 간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듯하였으나, ‘판문점 선언’ 이후로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공단에 개설하기로 합의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화, 상호협력, 상생의 가치를 가진 공간으로서 개성공단은 ‘함께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이다. 개성공단에서 실제로 근무하고 생활한 관계자들의 이야기들(김진향 외, 2015)에서, 상대방의 생각과 경험의 차이에 놀라고 서로에게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개성공단의 공간 형성 과정을 정리해보면, 개성공단은 남북한의 갈등이 현실적으로 나타난 가장 경직된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끊임없는 협상의 시간을 거쳐 공동의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유연한 공간이었다. 따라서 앞으로의 남북 관계의 방향성에 있어 상호 관계에 대한 신뢰는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 포용적인 공간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저자소개

백일순(thinki01@snu.ac.kr)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선임연구원으로, 탈냉전 평화도시의 관점에서 본 한반도의 지정학적 변화뿐만 아니라 글로벌 모빌리티 증대에 따른 사회 공간의 재구성 등을 연구주제로 삼고 있다. 편서로는 한반도의 신지정학: 경계, 분단, 통일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박배균 외 공저, 2019)이 있으며, 논문 ‘외국인 주택 시장과 초국가적 주택 여과 과정: 조선족 사례를 중심으로(2018)’, ‘한반도 접경지역에서 나타나는 ‘안보-경제 연계’와 영토화와 탈영토화의 지정-지경학(2019)’ 등이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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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찬, 1995, 북한의 도시광장 및 거리 형성에 관한 연구, 대한국토계획학회지 80(6), 99-123.
  • 김병로, 김병연, 박명규, 김윤애, 김정용, 김천식, 송영훈, 이효원, 정근식, 정은미, 홍순직, 2015. 개성공단 : 공간평화의 기획과 한반도형 통일 프로젝트, 진인진.
  • 김상빈, 이원호, 2004, 접경지역연구의 이론적 모델과 연구동향, 한국경제지리학회지 7(2), 117-136.
  • 김진향, 강승환, 이용구, 김세라, 2015. 개성공단 사람들 :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기적의 공간, 내일을여는책.
  • 노혜경, 노태협, 2011, 개성상인의 공급사슬망 변화와 유통 관리적 유형, 경영사학, 26(4), 49-73.
  •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2014, 단지계획, 보성각.
  • 박종기, 2002, 『高麗史』 地理志 譯註 (2) : 開城府編, 한국학논총 24권, 41-63.
  • 이승욱, 2016. 개성공단의 지정학 : 예외공간, 보편공간 또는 인질공간?, 공간과 사회 56, 132-163.
  • 이효원, 2011. 개성공단의 법질서 확보방안, 저스티스 124, 352-377.
  • 한국역사연구회, 2002, 고려의 황도 개경, 창비.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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