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이주와 초국적 도시 공간의 풍경들: 카트만두 그리고 서울

노동 이주는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주요한 형태의 이주로 도시 공간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네팔에서 한국으로의 이주는, 2007년 이후 고용허가제 하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주로 전환되었고, 이와 함께 네팔과 한국에 두 개의 초국적 공간을 만들어 왔다. 바로 카트만두의 한국어 학원들, 그리고 서울의 ‘네팔 타운’ 이다. 이 두 공간은 다양한 물질과 문화의 만남을 통해 각각의 도시 경관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초국적 공간의 형성과 변화 속에서 우리는 이주를 둘러싼 국가간 권력의 역학관계, 고용허가제라는 노동이주정책 그리고 이주자들의 행위들이 갖는 관계성과 상호작용의 과정을 볼 수 있다.

5453

서선영 (연세대학교)

카투만두 그리고 서울의 풍경들

카트만두: 수많은 외국어 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바그 바잘 거리Bag Bazaar Road. 토플, 아이엘츠, 일본어, 독일어, 히브르어 사이에서 한국어 그리고 EPS-TOPIK 이라고 쓰여진 간판이 여기저기 보인다. 카트만두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어 학원인 S 아카데미의 문을 열자 이른 아침부터 네팔 청년들로 가득하다. 학원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허리를 깊이 숙여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라고 말하며 공손히 인사를 한다. 안내 데스크 뒷면 벽에는 한국의 고층 빌딩과 한강 사진이 인쇄된 포스터가 붙어있고, 포스터 속 화려한 서울의 야경은 교실 밖 비포장 거리의 풍경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교실 안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한국의 전통 노래인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른다. 이어서, 한국어 선생님이 오른 손을 번쩍 올리며 “우리는 한국에 갑시다!” 라고 구호를 선창하자, 학생들은 모두 “우리는 한국에 갑시다!” 라고 크게 따라서 외친다.

네팔 바그바잘 거리의 한국어학원
(사진: 저자 촬영)

서울: 화려한 네온 사인이 눈부신 토요일 밤의 동대문역 3번 출구 앞.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과 바쁘게 지나가는 행인들이 뒤섞여 좁은 거리는 분주하다. 출구를 나오자 오른편에 파슈파티Pashupati 슈퍼마켓이 보인다. 바로 옆 건물 2층에 있는 에베레스트 Everest 커리 월드, 그리고 작은 골목길 건너편의 뉴 룸비니 Lumbini 레스토랑 입구에는 네팔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지하철 출구 앞 큰 길, 그리고 그 뒷편의 작은 골목 골목에 여러명의 네팔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Namaste dai, Kechha hal khabal? Yaha ke gardai hunuhunchha?” “Tetikai ghumirakheko Chhu”[1]. 3번 출구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한무리의 네팔 청년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쳐다보거나,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몇몇 사람들은 동대문 야시장에서 막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고, 몇몇은 고향 친구들과 함께 뒷골목에 위치한 네팔 식당으로 향한다.

카트만두의 바그바잘 한국어 학원가, 그리고 서울의 동대문 ‘네팔 타운’ 의 풍경은 급격히 변모해가는 아시아 지역 도시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는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러한 이주는 도시 공간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Wong and Rigg 2011). 특히 이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저임금 노동 이주자들은 도시 공간을 경험하고 또 변화시키는 주요 행위자로 역할을 해왔다. 바로 네팔과 한국 사이의 노동 이주자들이 카투만두와 서울에서 장소, 사람, 정보, 재원, 물건, 문화적 가치 등이 국경을 넘어 연결된 초국적 공간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 글은 이러한 국제노동이주와 관련하여 초국적 공간이 서울과 카트만두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한다.

Massey(2007)는 공간은 단순히 현상과 사건이 발생하는 정적인 무대나 배경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 관계가 얽혀있는 특정한 접합점이자, 다른 접함점들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임을 지적하며, 공간/장소의 관계성과 과정을 강조했다. 특히 이주와 관련하여 도시 공간을 분석하는데 있어 이러한 관계성과 과정에 대한 이해는 국제 이주를 촉진하거나 규제하는 국가의 다양한 정책, 규율과 규칙을 연결해서 설명할 때 가능하다(Collins 2012). 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네팔에서 한국으로의 노동이주의 역사 및 한국의 노동이주정책에 대해 기술하고, 이어 네팔의 바그바잘 한국어 학원가와 한국의 동대문 네팔타운의 형성과정, 그리고 각각의 도시 공간에서 보여지는 초국적 풍경 이면에 어떠한 사회적 권력 관계들이 상호작용하고 있는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네팔에서 한국으로의 노동이주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조정으로 아시아 지역내 국가간 불균등한 경제 발전이 심화되자, 저개발 국가에서 산업화된 국가로의 지역내 대규모 노동이주가 급속히 증가했다. 네팔 사람들이 한국으로 이주를 시작한 것도 바로 1980년대 후반이다[2]. 당시 한국에서는 정부의 제조업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자 규모가 큰 기업들은 해외로 이전을 했고, 자본이 부족한 중소 기업들은 임금 상승과 노동력 부족을 겪으면서 값싼 해외 노동력의 유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같은 시기, 네팔은 세계 경제 체제에 편입해 들어가면서 국민들의 해외여행과 이주를 촉진하는 여행자유화 정책을 실시했고, 이에 1990년 초반부터 자국의 만성적인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황을 피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네팔인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Yamanaka 2000). 한국에 있는 네팔 이주자에 대한 첫번째 언론 보도는 1991년 1월에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이며(한겨레 1991)[3], 1993년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17명의 등록, 2913명의 미등록자를 포함하여 2930명의 네팔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시기 대부분의 네팔 사람들은 사업비자 혹은 관광비자로 한국에 입국을 한 후에, 비자가 만료된 후에도 계속 체류를 하며 소위 3D 업체라고 불리는 제조업 공장에서 일을 했다.

‘비공식 네팔 이주자’들의 유입에 이어, 공식적으로 네팔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94년이었다. 1993년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정책으로 산업기술연수제도를 도입한 후, 1994년 33명의 네팔노동자들이 최초의 산업연수생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도착했다(연합 1994).

ⓒ DIVERSE+ASIA
ⓒ DIVERSE+ASIA

한국 체류 네팔 노동자들의 숫자는 1994년 이후 점진적으로 늘어났고, 2007년 이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면서 2018년 말 4만여명에 이르렀다[4]. 이는 2004년 한국정부가 산업연수제도의 폐해를 인정하고 새로운 노동이주 정책으로 고용허가제를 시행한 후, 2007년 네팔 정부와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생긴 변화이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산업기술연수생제도가 이주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편법을 사용함으로써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국내외의 비판을 받고 있었고, 이러한 제도적 문제는 수십만의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있었다. 특히,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한국으로 오기 위해 이주자들이 본국에서 사설 에이전시와 브로커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었기에, 국가간 협정을 통해 이주의 출발부터 귀환까지 양국 정부가 이주의 절차를 합법적으로 관리하는 고용허가제의 행정적 측면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정부 기관이 이주 관리를 하는 것에 대한 신뢰와 이주 비용의 하락이 네팔의 젊은이들이 한국행을 결정하는데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네팔 이주자들은 이러한 고용허가제의 합법적 과정을 통해 과거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지만, 그 댓가로 이주의 전 과정에서 정부와 사업주의 철저한 규제를 받게 된다. 이는 고용허가제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을 좀 더 공식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목적을 둔 임시이주노동제도의 한국판 버젼이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 네팔 이주자들은 본국에서 출국을 하기 전부터 양국 정부가 진행하는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야 고용허가제 노동자로 지원을 할 수 있고, 트레이닝 센터에서 “노동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후, 집단적으로 한국에 입국한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출국전 본국에서 계약을 맺은 제조업 공장이나 농장에 배치되어 일을 시작하게 되며, 여기서부터는 철저히 사업주의 통제 속에서 노동을 시작한다. 법적으로 허용된 4년 10개월의 체류기간 동안 직업 및 사업장 이동은 매우 제한적이며, 그로인해 많은 권한이 사업주에게 주어지고 사업장에 문제가 발생해도 이주노동자는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노동이주의 제도적 변화는 네팔 이주자들의 인구 구성에서부터 노동환경, 사업장 문화, 공동체 활동 등 여러 방면에서 변화를 가져왔는데, 변화의 지점들과 상호작용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네팔과 한국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초국적 공간들이다.

 

카트만두 한국어 학원: EPS-TOPIK그리고 예비 이주자들의 선행적 사회화 공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노동자로 취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본국에서 EPS-TOPIK이라는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의 경쟁률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상대 평가로 응시자들의 통과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응시자들은 한국어 학원에 등록하여 집중코스 과정을 통해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2007년 네팔과 한국 정부가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체결한 후, 해마다 수만명의 네팔 청년들이 EPS-TOPIK에 지원을 했고, 그 중 약 7-8%만이 선발되는 높은 경쟁률을 보이자 네팔 전역에 문을 연 한국어 학원의 숫자가 많게는 2000여개에 이르렀다 (아리랑TV 2010).

네팔 어학원 내부 전경
(사진: 저자 촬영)

EPS-TOPIK 시험이 있기 몇달 전 “한국어 시험 시즌” (Hindman and Oppenheim 2014:479) 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수의 한국어 학원들이 도시의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 낸다. 학원을 광고하는 현수막, 포스터, 간판이 도시 곳곳에 걸리고, 학원 근처 서점에는 한국어 시험 교재, 한국영화와 드라마 DVD를 손쉽게 볼 수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네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식당, 화장품, 식품, 의류 매장 등이 이러한 도시 경관의 변화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특히 한국어 학원들은 더 많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적인 것’들로 학원 내부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학원 입구에는 전통 한복이 걸려있고, 한국의 경제적 발전을 보여주는 고층 빌딩과 한강 사진, 유명 연예인이 소주를 들고 있는 포스터, 그리고 태극기가 곳곳에 장식되어있다. 강의실 벽에는 ‘아리랑’ 가사가, 화장실 안에는 “머문 자리가 깨끗해야 아름답습니다” 라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화장실 문구까지 한글로 쓰여져 있다.

네팔과 한국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언어가 연결되고 교류되는 초국적 공간인 한국어 학원. 이 학원들은 네팔의 사설 교육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원하는데로 네팔 예비이주자들이 한국에 노동자로 가기 전에 배워야 하는 특정 지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하게된다. 한국 정부는 제조업체와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될 예비 이주자들을 위해 일반적인 한국어 능력시험 TOPIK 과는 다른 EPS-TOPIK 을 특별히 만들었고, 이 시험을 통해 언어 능력과 한국 사회에 대한 기본 이해를 갖춘 이주자들을 평가하고 걸러내어 ‘자격이 있는’ 노동력만을 유입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한국어 학원 입장에서는 등록한 많은 학생들이 시험에 통과해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가는 것이 사업의 성패를 가리는 것이기에, 한국 정부가  EPS-TOPIK을 통해 예비 이주자들을 교육하고, 특정 지식을 전달하여 노동자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일을 실질적으로 돕게 된다. 즉, 예비 이주자들이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행한 “한국어표준교재’와 “공개문제집”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학원들은 이 교재를 네팔어로 번역하여 교재의 의도와 목적에 맞춰 수업을 하고 시험 준비를 한다.

특히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한국어 시험이 필수 요건이 되면서 네팔에서는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자본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갖고 있는 고학력 중산층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노동이주를 하여 최하층 노동자가 되어 하강적 계급 이동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 예비 이주자들이 한국의 노동자가 되기 전 교육을 받는 공간이 바로 한국어 학원이고, 이곳에서 한국에 가기 전 이미 네팔에서 한국사회의 노동자가 되기 위한 사회화, 즉 ‘선행적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비 이주자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는 시험을 위해 필요한 언어 및 한국사회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데, 주 내용은 ‘외국인 노동자’로서 한국의 일터와 사회에서 적응하는데 필요한 ‘공장 문화’ ‘고용허가제와 법규’ ‘일터에서의 규칙’과 한국의 역사 문화를 다루고 있다. 시험 준비를 위한 교육 과정에서 예비이주자들은 한국어표준교재와 한국어 학원 강사들을 통해 한국사회, 문화, 언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로서 기대되는 통제 가능하고 복종적인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형성하고 내면화하도록 장려된다. 즉, 고용허가제 하에서 한국어 학원들은 초국적 공간으로서 카트만두에 새로운 도시 경관을 만들어 내는 것과 동시에, 네팔의 고학력 중산층 젊은이들의 이주에 대한 열망, 그리고 이들이 한국에서 최하층 노동자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제도, 또 이러한 하강적 계급이동을 준비하는 과정이 교차하고 있는 공간이다.

 

서울 네팔 타운: 이주 관리 그리고 네팔 노동자들의 가능성의 공간[5]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네팔에서는 한국어학원이 만들어내는 공간성이 이주자를 보내는 국가 내 도시 공간의 변화를 보여준다면, 한국에서는 네팔 노동자 숫자의 증가와 함께 서울 동대문 ‘네팔 타운’의 확장이 눈이 띠게 드러났다. 언론에 드러난 네팔 타운은 종로구 창신동의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부터 네팔 식당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주변 골목지역을 가리키지만, 네팔 사람들 사이에서 네팔타운은 ‘동대문’으로 불리우며, 지하철 역 주변의 작은 골목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거주하는 창신동 마을과 가내수공업 형태의 봉제 공장 밀집지까지 포괄하는 확장된 공간을 의미한다. 창신동은 역사적으로 한국인 저임금 노동자들의 일터이자 주거지로, 1990년대 후반 이후 이 지역 봉제공장에 중국, 베트남, 몽골, 네팔 출신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취업을 하면서 지역 인구 구성에 변화가 생겼다. 한 네팔 향우회 회장의 증언에 따르면[6], 1997년에 본인과 몇몇 친구들이 창신동으로 이사를 한 첫번째 그룹이라고 한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동대문역 주변 및 창신동에 몇몇 네팔 식당과 상점이 생기면서, 이 지역은 네팔 노동자들이 자주 모이기 시작했다.

2007년 이후, 네팔 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동대문역 3번 출구는 전국 각지에 있는 네팔 사람들이 주말과 휴일에 모이는 가장 유명한 만남의 장소가 되었고, 지하철역 주변 거리와 골목은 “네팔인의 거리”(주간 경향 2008), “네팔 빌리지”(SBS  뉴스, 2008), “네팔 타운” (서울 경제 2011)등으로 알려지며 주목을 받게 된다. 주말이면 동대문역 3번 출구와 주변 골목 곳곳에 있는 네팔 사람들, 우리은행 입구에 붙어있는 네팔어 송금 광고, 여기 저기 걸려있는 네팔 국기, 그리고 네팔식당과 상점의 간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초국적 경관을 만들고 있다. 네팔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친구와 가족을 만나고, 네팔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공동체 회의를 하고, 문화 행사와 스포츠 경기를 조직하기도 한다. 네팔 가족들에게 송금을 하거나 물건을 보내고, 네팔의 민족 축제일을 기념하고, 네팔에서 정치인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기도 한다. “네팔 사람들에게 동대문은 집(Home)과 같은 곳이에요” 라고 많은 이들이 얘기하듯이, 이곳은 네팔 사람들이 만든, 네팔 사람들을 위한, 네팔과 연결된 공간이다.

지난 10여년간 네팔타운이 확장되는 과정은 고용허가제 하에서 네팔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겪고 있는 사회적, 공간적 배제, 고립감, 이동성의 제한 그리고 열악한 노동 및 주거 조건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주자들이 겪는 문제들은 고용허가제가 임시이주노동체제의 근원적인 특성인 이주자들의 “임시적 체류”(temporary status) 허가와 “이주관리” (migration management)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체류의 ‘임시성’은 네팔 이주자들을 ‘노동력’으로만 볼 뿐, 한국사회의 영구적인 구성원으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주체로서 삶을 사는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특히 이들에게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가족 동반을 원천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물리적, 정신적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 또한  ‘이주 관리’는 임시이주의 과정- 출국전 준비, 도착국에서의 노동, 본국으로의 귀국-을 국가간 상호 양해각서를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규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효율적인 ‘이주 관리’의 과정속에서 네팔 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계약된 회사 혹은 농장의 고용주가 정해준 숙소에서 생활을 하도록 강제되기 때문에, 특히 이주의 초반에는 공간적,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며, 대부분의 사업장과 농장이 도시 외곽의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이동성도 상당히 제약된다. 고립되고 열악한 숙소에서의 낯설고도 힘든 경험은 네팔 노동자들이 일을 시작하자마자 더욱 강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한국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익숙해지는 단어가 “빨리 빨리” 라고 종종 이야기되듯이, 사업주는 작업 중 시간, 리듬 그리고 속도를 이 한 단어로 통제하고, 공장 이나 농장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을 경우에는 이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일상 또한 통제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강요된 노동과 일상의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 제한이 사업주에게 권한을 전적으로 부여하기 때문이다.[7]

Castles(2003)가 임시이주의 과정에서 유입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차별적 배제 (differential exclusion) 가 이주자들의 민족 및 국가 정체성을 더욱 강화해 민족 공동체가 형성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듯이, 고용허가제 하에서 네팔 노동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배제, 고립감, 열악한 작업 환경과 숙소의 문제는 이들이 주말과 휴일에 네팔타운에 모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네팔 타운은 고립되고 분산되었던 개별 네팔 노동자들이 다시 연결되어, 같은 국가 혹은 같은 민족 사람들과 함께 안전함을 느끼는 ‘집(Home)’을 만드는 곳이다. 또한 사업장과 일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네팔 공동체를 통해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네팔의 지역, 민족, 카스트, 언어 등에 기반한 이 공동체들은 사회봉사, 정치 활동, 문화 행사 개최 등의 일도 하는데, 이러한 공동체 활동은 한국 주류 사회 안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네팔 노동자들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며, 네팔 타운을 ‘가능성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즉, 고용허가제 하에서 한국 정부와 사업주의 ‘이주 관리’가 네팔 노동자들의 이동성을 제한하고,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열악한 노동과 주거 환경을 가져왔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장소 만들기를 통해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더 나아가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을 모색한다.

 

변화하는 초국적 도시 공간들

이 글에서는 카트만두와 서울에서 네팔과 한국이 연결되고 교차되는 초국적 공간의 형성과 변화가 이주를 둘러싼 국가간 권력의 역학관계, 고용허가제라는 노동이주정책 그리고 이주자들의 행위들이 갖는 관계성과 상호작용의 과정임을 살펴 보았다. 이 글의 서두에 묘사한 카트만두 바그바잘 한국어 학원과 서울 동대문 네팔 타운의 풍경은 내가 현지조사를 했던 2012년부터 2013년 사이에  참여 관찰한 것이다. 지난 5-6년 동안에도 한국어 학원은 네팔 이주자들을 한국의 노동계급의 위계 속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통제 가능하고 복종적인 노동자로 만들어 내려고 하는 선행적 사회화의 공간이었고, 네팔타운은 이들이 한국에 와서 최하층 노동자로 실질적으로 겪게되는 차별과 배제, 착취의 구조에 대한 반작용으로 만들어진 가능성의 공간으로 역할을 해온데는 큰 변화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각각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 이주자들은 단일한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통치의 공간인 한국어 학원에서도 선행적 사회화에 저항하는 힘이 작용을 하고 있을 것이며, 또한 가능성의 공간으로서의 네팔 타운에서도 여성 이주자들 혹은 카스트 하위 계급 사람들과 같이 공동체 안에서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이 존재할 수 있음에 대해 고려해야 할 것이다(Seo, forthcoming). 이들 초국적 공간은 지금도 이러한 전지구적, 지역적 그리고 개인적 층위에서 다양한 권력 관계가 상호 작용을 하며 계속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저자소개

서선영 박사(98sonia@hanmail.net)는
이주학을 전공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이주, 다문화, 인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이주, 도시공간, 정체성, 개발, 초국가주의이며, 박사논문으로 “Neoliberal labour migration regimes and changing class identities of migrants: The case of Nepal–South Korea migrations”를 썼다.  주요 저서로 “Transnational migration, social activism and the formation of new subjectivities: a case study of Nepalese migrants returned from South Korea”( 2012, Uppsala University, Book chapter), “Regulatory migration regimes and the production of space: The case of Nepalese workers in South Korea” (2017, Geoforum), “Temporalities of class in Nepalese labour migration to South Korea” (2018, Current Sociology)가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에 있는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1] “안녕하세요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그냥 이 주변을 걸어다니고 있어”

[2] 2013년에 본 연구자가 직접 대화를 나누었던 네팔 공동체 대표들에 따르면 당시, 한국에서 미등록 상태로 장기체류를 하고 있는 네팔 노동자들 중에는1988년 서울 올림픽 직후 한국에 온 몇몇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3] 2013년에 본 연구자가 직접 대화를 나누었던 네팔 공동체 대표들에 따르면 당시, 한국에서 미등록 상태로 장기체류를 하고 있는 네팔 노동자들 중에는1988년 서울 올림픽 직후 한국에 온 몇몇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4]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통계월보 참조
http://www.moj.go.kr/viewer/skin/doc.html?rs=/viewer/result/bbs/160&fn=temp_1548720809280100

[5] 이 글의 일부는 Seo S and Skelton T (2017)에서 인용

[6] 2012년 6월, 네팔 포카라에서 비공식 인터뷰

[7]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의 노동 경험에 대해서는 Seo, S (2019) 참조

 


참고문헌

  • Castles, S., (2003). Migrant settlement, transnational communities and state strategies in the Asia Pacific Region. In: Iredale, R., Hawksley, C., Castles, S. (Eds.), Migration in the Asia Pacific: Population, Settlement and Citizenship Issues. Edward Elgar, Cheltenham, Morthanmpton, MA, pp. 3–25.
  • Collins, F.L., (2012). Transnational mobilities and urban spatialities: notes from the Asia-Pacific. Prog. Hum. Geogr. 36 (3), 316–335.
  • Hindman, H. and Oppenheim, R. (2014) Lines of labor and desire: ‘Korean quality’ in contemporary Kathmandu. Anthropological Quarterly 87(2): 465–496.
  • Massey, D. (2007) Space, Place and Gender: 서울대 출판문화원, 정현주 역
  • Seo, S. (2019) Temporalities of class in labour migration from Nepal to Korea, Current Sociology 67(2): 186-205
  • Seo, S. (Forthcoming) “Space of emancipation or space of insecurity?: gendered dimensions in “Nepal Town”, South Korea”,  Fee, L. K et al. (ed) International Labour Migration in the Middle East and Asia” Singapore: Springer.
  • Seo, S. and Skelton, T. (2017) Regulatory migration regimes and the production of space: The case of Nepalese workers in South Korea. Geoforum 78: 159–168.
  • Wong, T-C and Rigg, J. (2011). Asian Cities, Migration Labour and Contested Space. NY: Routledge.
  • Yamanaka, K. (2000). Nepalese labour migration to Japan: from global warriors to global workers. Ethnic Racial Studies.23 (1), 62–93.
  • 아리랑TV (2010). “Korean language rises in Kathmandu, Nepal” <https://www.youtube.com/watch?v=3HMOX5JQsqo> [2019 3.5 접속]
  • SBS  뉴스 (2008) SBS News, 2008. [마켓 & 트렌드] ‘‘여기가 서울이야? 프랑스야?”, 2008년 1월 24일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367333> [2019년 3월 5일 접속]
  • 연합 (1994) “오늘 30일 네팔인 80명 외국인 연수생 1호 입국”, 1994년 5월 27일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3845656> [2019년 3월 5일 접속]
  • 서울 경제 (2011)”외국인 밀집지역 상권 뜬다”, 2011년 8월 3일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1&aid=0002172602> [2019년 3월 5일 접속]
  • 주간 경향 (2008) “[르포] 외국인 100만명 시대 ‘서울의 이방인 터전”, 2008년 2월 19일.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6851&pt=nv> (accessed 14 April, 2015) [2019년 3월 5일 접속]
  • 한겨레 (1991) “불법취업 네팔인 산재 사망” 1991년 1월 20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12000289115011&ed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1-20&officeId=00028&pageNo=15&printNo=830&publishType=00010> [2019년 3월 5일 접속]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PDF 파일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