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인도의 힌두이즘: 악샤르담 사원과 BAPS, 그리고 ‘소프트 힌두뜨바’

대한민국 대통령의 인도 방문 첫 공식일정이 악샤르담 힌두 사원이었다는 사실은 현재 인도 사회에서 힌두이즘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도의 종교와 문화가 힌두이즘과 동일시되는 현상은 힌두 민족주의 세력이 줄기차게 추진해 온 ‘힌두가 주인이 되는 인도 건설’이라는 힌두뜨바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한편으로는 무슬림과 기독교도를 대상으로 집단적 폭력을 행사하는 공격적 전략이 동원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힌두이즘과 힌두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소프트 힌두뜨바 전략이 동원된다. 악샤르담 사원과 BAPS는 세계화 시대의 주역인 중간계급이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평화적인 힌두이즘이며, 국제사회에서 세련된 힌두이즘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소프트 힌두뜨바를 통해 힌두이즘이 더욱 널리 확산되고 일상화됨으로써, 인도 땅에서 수천 년 간 공존해 온 다양한 종교와 문화전통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마치 힌두이즘만이 인도를 대표하는 종교, 문화인 것처럼 인식되는 위험한 착시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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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샤르담 사원 내 지성소에서 닐깐트 바르니(Neelkanth Varni, 젊은 스와미나라얀의 요가수행자 모습) 신상에 경배하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

자료: 청와대에서 2018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4유형으로 개방한 ‘악샤르담 사원 방문(작성자: 청와대)'을 이용하였음. 해당 저작물은 청와대 사이트 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3739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음.

정채성(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 방문 한국 대통령의 첫 공식일정, 악샤르담 힌두 사원: “인도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존중”?

지난 7월 8일 인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첫 공식일정으로 델리의 악샤르담 사원복합단지(Akshardham Temple Complex)를 찾았다. 문 대통령을 입구에서 맞이한 힌두 사제가 손목에 성스러운 실을 묶고 이마에 띨락을 찍어주는 모습을 시작으로, 대통령 내외가 사원 내 지성소에 모셔진 신상에 경배하고 물을 붓는 의식을 치른 후 경내를 둘러본 과정들이 여러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곁들여 보도되었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힌두교를 대표하는 성지에 방문함으로써 인도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며, 문 대통령은 사원 방명록에 ‘신들이 머무는 악샤르담에서 한국, 인도, 세계의 평화를 기원합니다.’라고 적었다(배재성, 2018).

문 대통령이 국가원수 자격으로 처음 방문한 인도에서의 공식일정을 힌두 사원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델리 곳곳에 산재한 수많은 힌두 사원들 중 유독 악샤르담이라는 특정 사원을 골랐다는 사실은 현재의 인도 사회, 특히 대도시에서 나타나는 힌두이즘(Hinduism)의 성격과 위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거대한 사원에서 화려하고 거창하게 치러지는 수많은 의례와 축제들이 중심이 되는 신앙생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와 각종 언론매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를 통해 힌두의 신과 의례, 축제들이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실천하는 힌두이즘은 점점 더 가정을 벗어나 공공장소에서 대규모로 화려하게 전시되고 상업화되며, 그 결과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해 온 인도에서 힌두이즘이 마치 인도 전체의 종교와 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간주되는 현상이 뚜렷해진다. 대통령의 악샤르담 방문 이유가 “인도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의미”라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인도의 종교와 문화를 힌두이즘과 자연스럽게 동일시한 바탕 위에서, 존중을 표하기 위해서는 힌두 사원에서 거행되는 의례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드러난다.

현재 인도에서 힌두이즘이 총 인구의 80%에 가까운 절대다수의 신앙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도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국가이며, 각각 수백만 명에서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독교도, 시크교도, 불교도, 자이나교도, 조로아스터교도 등을 비롯해, 비록 ‘힌두’로 분류되지만 힌두이즘과는 여러 모로 구별되는 신앙전통을 가진 2억 명 가까운 최하층 카스트와 1억 명 이상의 부족민들이 있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1] 이런 속사정에도 불구하고 힌두이즘이 인도의 종교와 문화를 대표하는 신앙이라는 주장이 198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 왔으며, 그 결과 21세기에 들어서는 인도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도 = 힌두’라는 등식이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악샤르담 사례를 중심으로 최근 힌두이즘의 특징적 양상들을 살펴봄으로써 인도 사회가 점점 더 힌두화되어가는 경향을 정리하고, 그것이 인도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

 

대중적 힌두이즘의 주류 박띠신앙(Bhaktism): 신과의 사랑, 헌신과 경배

힌두이즘으로 통칭되는 다양한 신앙전통과 형태들 중 대중적 힌두이즘의 주류는 박띠신앙이다. ‘Hinduism’이라는 영어단어가 이슬람교와 구별되는 식민지 인도인들의 신앙을 지칭하기 위해 18-19세기에 영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힌두이즘은 공통의 신이나 경전, 교단을 바탕으로 이어져 온 동질적인 종교가 아니다. 베다와 브라흐마나, 우빠니샤드, 대서사시인 마하바라따와 라마야나, 수많은 뿌라나와 경전들,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신앙의 전통들이 수천 년에 걸쳐 인도 땅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는데, 이런 수많은 신앙형태들을 한데 뭉뚱그려서 ‘인도인들의 종교’라는 뜻인 Hinduism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이다(Fuller, 2004).

5-6세기에 북인도를 중심으로 성립된 박띠신앙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략 10세기를 전후해서 지배층부터 일반대중까지를 아우르는 주류 신앙형태로 자리 잡았다. 흔히 ‘신애(神愛)’로 번역되는 박띠신앙의 핵심은, 신에 대한 밀접하고도 한없는 사랑을 바탕으로 신에게 헌신하고 경배함으로써 신과 하나가 되어 해탈을 이루는 것이다. 사랑의 대상인 신은 크게 유형(sagun)과 무형(nirgun) 두 종류로 나뉘는데, 절대다수의 힌두들이 선택하는 것은 역시 내가 직접 눈을 맞추고 쓰다듬고 말을 걸 수 있는 유형의 신들이다(Lorenzen, 1995). 사랑과 경배의 대상에 따라 비쉬누신앙(Vaishnavism), 쉬바신앙(Shaivism), 여신신앙(Shaktism) 등 세 갈래로 나눌 수 있지만, 사랑이 오직 하나의 신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서로 겹치고 뒤섞이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여러 지역에 걸쳐 널리 사랑받는 전국구급 신들로는 라마(Rama)와 하누만(Hanuman), 끄리쉬나(Krishna) 등 비쉬누파의 신들을 비롯해 쉬바(Shiva)와 가네샤(Ganesha) 등의 쉬바파, 그리고 두르가(Durga), 깔리(Kali), 락쉬미(Lakshmi)와 빠르바띠(Parvati) 등의 여신들이 있다. 이밖에도 각 지역이나 마을, 카스트집단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수많은 신들이 박띠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Fuller, 2004) ‘3억 3천만 신들이 사는 땅, 인도’라는 식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기도 한다.

박띠신앙에서는 바로 신이 나와 사랑을 나누는 상대이므로, 밀접하고도 개인적인 교감을 주고받는 행위들이 의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침에 일어나 경배실에 모셔둔 신에게 꽃과 향과 예물을 바치고 깔끔하게 단장시키는 것을 비롯해 특별한 일이 있거나 혹은 마음이 동할 때마다 행하는 각종 뿌자(puja), 신과 내가 눈을 맞추고 교감하는 다르샨(darshan), 신의 집을 찾아가는 사원 방문과 성지순례(tirtha yatra), 신에 관한 각종 이야기(hari katha)를 듣고 신과 함께 즐기고 노는 축제(mela) 등을 통해 신과의 사랑을 수시로 직접 느끼고 확인하는 것이 박띠신앙의 본질이며, 이 때문에 힌두의 일상생활은 신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개인적인 교감을 통한 헌신 및 경배와 더불어, 스승과 수행자, 사제들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 합당한 방식으로 박띠를 행하는 것도 중요하게 간주된다. 내 집의 경배실에 모신 신상이나 사원에 안치된 신상은 단순한 조각이나 그림이 아니라 실제로 신이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인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신이 깃들거나 혹은 신이 사람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이런 믿음의 바탕 위에서 특정한 스승이나 수행자를 신의 화신(化身, avatar)으로 숭배하는 경향도 박띠신앙에서 널리 나타난다.

 

악샤르담의 주인, BAPS Swaminarayan Sanstha: 세계화 시대 힌두이즘의 국제적 얼굴

델리의 악샤르담 사원복합단지가 준공되어 일반에 공개된 것은 2005년 11월 6일이었다. 붉은 사암과 대리석을 써서 전통공법으로 지어진 거대하고 화려한 사원뿐 아니라, 각종 전시관과 공원들에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서 마련된 온갖 볼거리들 덕분에 개장하자마자 델리에서 첫손 꼽히는 관광명소이자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악샤르담은 델리 시내 중심부 야무나(Yamuna) 강의 동쪽 강변에 위치하며, 100에이커(약 12만 평)에 달하는 광대한 부지에 거대한 사원을 중심으로 전시관과 공원, 사제용 사원, 연구소 등 여러 건물과 주차장이 들어섰다. BAPS의 신앙과 의례를 소개하는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매일 치러지기 때문에 악샤르담 문화복합단지(Akshardham Cultural Complex)라 부르기도 하며, 사원 입장은 무료지만 전시관의 공연과 아이맥스 필름, 야간의 워터쇼 등의 문화행사들은 유료이다(BAPS, 1999-2018).

델리 악샤르담 문화복합단지 전경
2005년 11월 6일 일반에 공개되었다. 사원 입장은 무료지만 전시관의 공연과 아이맥스 필름, 야간의 워터쇼 등의 문화행사들은 유료이다.
자료: BAPS Swaminarayan Sanstha

델리의 악샤르담을 세우고 운영하는 주체는 박띠신앙 중 비쉬누파로 분류되는 스와미나라얀(Swaminarayan) 교단에서 갈라져 나온 한 분파인 BAPS이다. 1907년에 BAPS를 개파한 샤스뜨리지 마하라즈(Shastriji Maharaj)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첫째, 스와미나라얀은 비쉬누 신(Purushottam)이며, 둘째, 그의 수제자인 구나띠따난드는 완벽한 신도(Akshar)이고, 셋째, 바로 이 둘의 ‘악샤르-뿌루쇼땀’ 관계를 본받음으로써 해탈(moksha)을 이룰 수 있는데, 넷째, 이를 위해 뿌루쇼땀인 스와미나라얀뿐 아니라 악샤르인 구나띠따난드와 그를 이은 구루(guru, 정신적, 영적 스승)들에게도 똑같이 경배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샤르담은 신의 거처이자 신과 하나가 된 악샤르들이 머무는 곳이며, 신도들이 한데 모여 스와미나라얀 신과 악샤르-구루들을 경배할 수 있는 거대하고 화려장엄한 악샤르담을 곳곳에 세우는 것이야말로 BAPS 신앙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BAPS, 1999-2018; Srivastava, 2015).

BAPS는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발상지인 구자라뜨(Gujarat)를 비롯해 주로 북인도 지역에 꾸준히 확산되었으며, 특히 구자라뜨인들의 활발한 해외 이주와 더불어 인도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영국과 유럽, 호주와 뉴질랜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지의 인도 교민사회로 퍼져나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많은 힌두 종파와 분파들, 구루와 현인신(god-man)들이 넘쳐나는 인도 내에서는 BAPS가 ‘비교적 잘 나가는 부유한 교단’ 정도에 그치지만, 해외에서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힌두이즘을 대표하는 얼굴로 인식되어 여러 힌두 교단들 중 가장 성장세가 빠르고 많은 신도를 확보하고 있다. 거대하고 장엄한 악샤르담 사원에 수많은 신도들이 한데 모여 화려하고 정교한 의식을 집단적으로 거행하는 것뿐 아니라, 신도들에게 철저한 채식주의와 비폭력, 남녀의 엄격한 분리, 가정의 화목과 사회봉사 등을 강조하는 BAPS의 가르침도 해외의 인도 교민들을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한편으로는 사원 중심의 각종 집단의례와 행사들을 통해 신도들 간의 공동체의식이 강하게 형성되고 유지될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신도들에게 엄격한 생활윤리를 요구하는 교단이 자랑스러운 상층 힌두 전통과 문화의 지킴이로 인식되어 선진국으로 이주한 화이트컬러 교민들에게 특히 긍정적으로 먹혀든 것이다(Kim, 2009; Kurien, 2007).

BAPS는 인도 및 세계 각지의 수많은 사원과 센터들을 글로벌 네트워크로 한데 엮어 운영하는데, 규모에 따라 거대한 사원복합단지(수도인 델리, 구자라뜨 주도인 간디나가르(Gandhinagar), 미국 뉴저지 주의 로빈스빌(Robbinsville) 등 3군데), BAPS가 새로 건축한 대규모 사원인 쉬카르바다 만디르(Shikharbaddha mandir), 다른 건물을 사서 개조한 하리 만디르(Hari mandir), 정식 사원에 못 미치는 센터 등 4종류로 구분하며, 2018년 현재 전 세계에 4,000개 가까운 사원과 센터들이 있다(BAPS, 1999-2011; 1999-2018). 구자라뜨 주 아메다바드(Ahmedabad)에 위치한 BAPS 국제본부인 스와미나라얀 사원과 제6대 악샤르-구루인 마한뜨 스와미 마하라즈(Mahant Swami Maharaj)를 정점으로 하는 700여 명의 사제(swami)들이 교단의 핵심조직으로서, 전 세계에 퍼진 BAPS 기구들을 중앙집중식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도 다른 힌두 교단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다. 국제본부와 악샤르-구루, 스와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사불란한 통제와 운영을 통해 전 세계 BAPS 교단의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동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단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신앙활동을 엄격히 관리해서 설립 초기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Kurien, 2007; Srivastava, 2015).

창시자와 악샤르-구르 설명은 그림 클릭하여 확인
자료: BAPS, 1999-2018; Kurien, 2007; Srivastava, 2015 등 참조해서 필자 정리
© DIVERSE+ASIA

 

델리 악샤르담의 실현과 신화의 탄생

1968년 당시 제4대 구루였던 요기지가 델리 중심부 야무나 강변에 악샤르담을 세우겠다는 서원을 한 이래로 델리 악샤르담은 BAPS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요기지를 이어 1971년 제5대 구루에 오른 쁘라무크 스와미는 지속적으로 델리 악샤르담 건설을 타진했으나, 무엇보다도 야무나 강변에 원하는 규모의 사원을 지을 만한 노는 땅을 구할 수 없었다. 델리 중심부에서 가까운 강변에는 델리에서 가장 큰 빈민촌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야무나 강변의 습지대 대부분이 환경적으로 매우 민감한 지역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드나들 거대한 사원을 짓는 것은 법적으로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30여 년에 걸친 이런 교착상태는 1999년 총선 결과 힌두 민족주의 노선을 대표하는 우익 정당인 인도국민당(Bharatiya Janata Party, BJP)이 중심이 된 우파 연립정권(National Democratic Alliance)이 집권하면서 극적으로 해결되었다. BJP정권의 모태이자 힌두 민족주의의 이념적 기반인 국민자원봉사단(Rashtriya Swayamsevak Sangh, RSS)의 지도부는 성스러운 야무나 여신의 품에 악샤르담을 봉헌하는 사업이야말로 진정한 박띠의 길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으며, 이렇게 RSS의 적극적 지원방침이 확실해지자 그때까지 사원 건축을 가로막고 있던 온갖 법적, 사회적 장애들이 일사천리로 해소되었다[2] (Srivastava, 2015).

그리하여 BAPS는 2000년에 현재의 자리에 30에이커(약 36,000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그해 11월부터 악샤르담 건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2002년에 델리개발공사(Delhi Development Authority)를 통해 70에이커(약 84,000평)를 추가로 확보하면서 지금과 같은 복합단지로 규모를 대폭 확대했다. 구자라뜨와 인도 각지에서 초빙한 사원 건축과 조각의 장인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벤치마킹한 테마파크 조성과 첨단기술 관련 전문가들, 그리고 세계 각지의 BAPS에서 모여든 10,0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쏟아 부은 3억 시간 이상의 노동을 밑거름으로 해서 만 5년이라는 짧은 시일 내에 ‘세계 최대의 힌두 사원’ 건설이 완료되었다(BAPS, 1999-2018; Srivastava, 2015). 중심 건물인 악샤르담은 철제 부속을 전혀 쓰지 않고 전통기법으로 사암과 대리석을 다듬어 234개의 기둥을 세우고 9개의 둥근지붕을 올린 후 20,000개의 신상과 각종 조각상을 들여놓았으며, 문 대통령이 구경했던 가젠드라 삐트(Gajendra Pith)에는 3,000톤의 돌을 써서 148마리의 코끼리, 42종의 새와 동물, 125명의 인물상을 조각하고 나무와 덩굴식물 등으로 배경을 장식했다(Srivastava, 2015). BAPS 사이트에는 이 정도 규모의 건축물을 순수한 전통기법으로 단 5년 만에 완성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로서 스와미나라얀과 악샤르-구루들의 가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며, 델리 악샤르담의 완성으로 BAPS는 세계 최대의 해외 힌두 사원(런던 악샤르담)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힌두 사원을 동시에 보유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BAPS, 1999-2018). 제4대 요기지의 꿈에 나타나 악샤르담 봉헌을 당부한 야무나 여신, 제5대 쁘라무크 스와미에게 전해진 스와미나라얀의 계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에게 꿈이나 명상 혹은 다른 경로를 통해 드러난 신과 구루의 계시 등은 BAPS뿐 아니라 수많은 힌두 교단과 구루들이 예전부터 즐겨 사용해 온 ‘신화 만들기’ 수법이지만, BAPS는 이에 더해 온갖 숫자와 항목들을 꼼꼼히 나열하고 기록함으로써 ‘과학적 사실’이라는 객관성으로 신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Kim, 2009; Kurie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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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젠드라 삐트(Gajendra Pith)
3,000톤의 돌을 써서 148마리의 코끼리, 42종의 새와 동물, 125명의 인물상을 조각하고 나무와 덩굴식물 등으로 배경을 장식했다.
자료: BAPS Swaminarayan San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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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젠드라 삐트를 구경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자료: 청와대에서 2018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4유형으로 개방한 ‘악샤르담 사원 방문(작성자: 청와대)’을 이용하였음. 해당 저작물은 청와대 사이트 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3739 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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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샤르담 현상의 의미: 힌두화되는 인도와 소프트 힌두뜨바(Soft Hindutva)

1925년 ‘힌두가 주인이 되는 인도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출발한 RSS의 역사가 어느덧 100년이 다 되어간다. RSS는 이 장구한 세월 동안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피와 땀을 밑천으로 꾸준히 풀뿌리조직을 다지고 새로운 조직들을 만들어가면서 인도를 힌두화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오랜 기간 축적한 광범위한 풀뿌리조직과 사회봉사의 힘을 밑바탕에 깔고 1980년대 이후 주로 무슬림을 대상으로 행사한 수많은 집단적 무력 과시 덕분에, RSS를 모태로 형성된 거대한 힌두 민족주의 세력인 쌍그 빠리바르(Sangh Parivar[3])는 드디어 1999년에 자신의 정당인 BJP를 집권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념적 기반인 RSS, 정치적 간판인 BJP, 그리고 인도와 세계 각지에 힌두이즘 전파를 담당하는 세계힌두협의회(Vishwa Hindu Parishad) 등이 쌍그 빠리바르의 세 축인데, 힌두성 혹은 힌두다움(Hinduness)으로 번역되는 ‘힌두뜨바’는 바로 이 세력이 주장하는 힌두 민족주의 이념의 핵심을 압축한 용어이다. 힌두가 주인이 되는 인도는 그 옛날 비쉬누의 화신인 라마가 다스렸다는 아요디야(Ayodhya) 왕국을 모델로 하는 인도이며, 힌두이즘의 가치가 구현되는 종교적인 국가로서의 인도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폭력충돌과 학살사건을 통해 집단의 힘을 과시하면서 공격적으로 힌두뜨바 이념을 전파하는 것이 쌍그 빠리바르의 기본전략이었으나, 2002년의 구자라뜨 대학살 이후 국내외에서 쏟아진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면서 이러한 기본전략이 얼마간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 즉 적나라한 대규모 집단폭력을 피하고 적절하게 공격성을 과시하는(disciplined aggression) 정도를 유지하되, 힌두이즘과 힌두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선전하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힌두뜨바 이념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나가는 소위 ‘소프트 힌두뜨바’로 전략적 무게중심이 바뀐 것이다(정채성, 2013; 2016).

악샤르담은 세계화 시대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힌두이즘의 자랑스러운 얼굴이며, 채식주의와 비폭력, 사랑과 헌신, 봉사를 강조하는 BAPS는 국제사회에서 고급스럽고 세련된 힌두이즘과 힌두 문화를 떳떳하게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다. 사랑하는 신께 거대하고 장엄한 사원을 봉헌하고 화려한 의례를 복고풍으로 정교하고 엄숙하게 거행하는 ‘힌두 전통의 계승’과 더불어, 첨단기술이 동원된 다양한 문화행사와 볼거리들을 제공하는 ‘초현대식 프로그램’은 바로 BAPS 신도의 주력이자 신자유주의 시대 인도의 주인공인 중간계급의 소비문화와 취향에 딱 들어맞는 것이다(Kim, 2009; Srivastava, 2015). 그런데, 델리뿐 아니라 전 세계 수천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사원과 센터들에서 BAPS가 ‘인도 문화’의 이름을 내걸고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의 외래종교와 문화가 철저히 배제되고 힌두이즘(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 인도에서 발생한 것들도 포함)만으로 채워진 것이다. 델리 악샤르담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보트 타고 동굴을 통과하면서 즐기는 1만년의 역사여행(Sanskruti Vihar)에 시기별로 전시된 인도사의 온갖 장면들은 모두 힌두이즘과 힌두 문화로만 채워져 있으며, 심지어 근대 인도의 독립운동가들 중에도 무슬림이나 비(非)힌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Srivastava, 2015). 힌두이즘과 힌두 문화, 즉 종교와 문화를 동일시하고 더 나아가 힌두이즘과 인도 문화 자체를 동일시하는 인식이 BAPS 프로그램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며, 바로 이 지점이 BAPS가 전파하는 스와미나라얀 힌두이즘과 쌍그 빠리바르가 추진하는 소프트 힌두뜨바가 사이좋게 만나는 접점이다.

RSS가 자신들의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힌두뜨바 노선과는 전혀 다른 BAPS의 델리 악샤르담 건립을 정부 권력까지 동원해가면서 적극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악샤르담이라는 새로운 성지순례를 통해 보다 많은 힌두들이 깔끔하게 세탁된 스와미나라얀 힌두이즘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힌두이즘이 더욱 널리 퍼지고 일상화되는 효과가 있으며, 또한 야무나 강변이라는 명백한 공공장소를 거대하고 장엄한 힌두 사원이 점령함으로써 누구의 눈에나 힌두이즘이 대세로 보이게 하는 전시효과도 아울러 거둘 수 있는 것이다. 힌두이즘과 힌두의 가치관을 널리 퍼뜨려서 일상화하는 것이 바로 소프트 힌두뜨바 전략의 핵심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BAPS처럼 세련되고 고급스러우면서 과시적인 힌두이즘이야말로 현재 힌두 민족주의 세력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전적으로 부합하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의 주역이자 갈수록 화려해지는 힌두 의례의 가장 큰 소비자인 도시의 고소득 전문직 중간계급의 입맛에 맞는 새롭고 세련된 힌두이즘을 제공하는 역할, 그것이 바로 BAPS를 비롯해 소위 잘 나가는 구루와 스와미, 요기(yogi)와 현인신들이 힌두 민족주의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기꺼이 분담한 역할이다(Nanda, 2009). 인도를 공식방문한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인도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존중을 표하”기 위해 힌두 신에게 고개 숙여 경배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보도된 것만으로도, RSS와 힌두 민족주의 세력이 BAPS와 델리 악샤르담에 투자한 수고는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보상을 받았다. 이런 이미지들이 쌓여가면서 ‘인도 = 힌두’라는 인식이 더욱 자연스럽게 강화되며, 그 결과 인도 내 소수집단들의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전통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인도를 힌두와 동일시하는 것은 수많은 종교와 문화전통들이 공존하는 인도의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일 뿐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포용을 거부하고 소수집단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공존의 전통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한 착시현상이기도 하다.

 

저자소개

정채성(bawoone4@empas.com)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학과 강사이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학사, 석사)와 델리대학교 델리경제대학(Delhi School of Economics) 사회학과(M. Phil.)에서 공부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힌두이즘에 대한 여러 논문들과 더불어, 최근에는 인도 대도시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1990년대 이후 진행되고 있는 사회문화적 변화의 여러 측면들을 연구하고 있다.

 


[1] 단, 힌두이즘을 비롯해 인도 대부분의 종교들에서 특정한 종교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출생에 의해 거의 자동적으로 정해진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힌두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은 힌두, 무슬림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은 무슬림 식으로 정해지며, 혼인도 대개 같은 종교집단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출생에 의해 정해진 종교적 정체성이 대물림된다. 이렇게 정해지는 집단적인 종교적 정체성과 별개로 개인의 실제 신앙은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는데, 필자의 델리대학교 시절 힌두 친구들 중에는 자신을 ‘힌두 무신론자(Hindu atheist)’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같은 ‘힌두’로 분류되는 종교집단 내에서도 신을 믿는지 여부부터 시작해서 어떤 신을 어떤 방식으로 믿는가 하는 문제들에는 개인적으로 매우 폭넓은 선택 가능성이 존재한다.

[2] 악샤르담 부지 관할 책임을 맡은 우따르 쁘라데쉬(Uttar Pradesh) 주정부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제기한 소송을 비롯해서 여러 시민운동단체들이 제기한 각종 소송의 주요 쟁점들은 법정에서 모두 무시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2005년에 전체 건축과정이 합법이었다는 확인 도장을 찍어주었다. 또한 악샤르담 완공 직후 수만 명의 빈민들이 수십 년 간 눌러 살던 바로 근처의 델리 최대 빈민촌인 낭갈 맛치(Nangal Matchi)도 깨끗하게 철거되었다(Nanda, 2009; Srivastava, 2015).

[3] RSS의 마지막 단어인 sangh에 가족이라는 의미의 parivar를 붙여서 만든 이름으로서, ‘힌두가 주인인 인도’를 공동의 목표로 삼아 RSS를 중심으로 일가족처럼 똘똘 뭉친 힌두 민족주의 세력을 통칭할 때 쓰인다. 핵심 조직들의 성격을 힌두 근본주의(Hindu Fundamentalism), 힌두 파시즘(Hindu Fascism), 힌두 극우파(Hindu Ultra Right) 등으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쌍그 빠리바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수많은 조직들의 다양한 성향과 노선까지 감안할 때는 ‘힌두 민족주의’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문헌
  • 배재성. 2018. “문재인 대통령, ‘악샤르담’ 힌두사원 방문,” 『중앙일보』(7월 9일). https://news.joins.com/article/22783626 (검색일: 2018년 7월 10일).
  • 정채성. 2013. “‘힌두성(Hindutva)’의 개념 규정과 문화민족주의 간의 상관관계 연구: 1980년대 이후 인도 사회의 변화를 중심으로,” 『인도연구』 18권 1호, 39-81.
  • 정채성. 2016. “소프트 힌두뜨바: 미국 사회의 힌두 근본주의,” 『한국일보』(10월 4일). http://www.hankookilbo.com/v/65d9c7cf232c497785e1c19fabaad49b (검색일: 2018년 7월 15일)
  • BAPS Swaminarayan Sanstha. 1999-2011. http://www.swaminarayan.org/ (검색일: 2018년 7월 25일)
  • BAPS Swaminarayan Sanstha. 1999-2018. https://www.baps.org/ (검색일: 2018년 7월 25일)
  • Fuller, Christopher J. 2004(revised 2nd ed.). The Camphor Flame: Popular Hinduism and Society in India.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 Kim, Hanna. 2009. “Public Engagement and Personal Desires: BAPS Swaminarayan Temples and Their Contribution to the Discourses on Religion,” International Journal of Hindu Studies 13(3), 357-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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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renzen, David N., eds., 1995. Bhakti Religion in North India: Community Identity and Political Action. New York: SUNY Press.
  • Nanda, Meera. 2009. The God Market: How Globalization Is Making India More Hindu. NOIDA: Random House India.
  • Srivastava, Sanjay. 2015. Entangled Urbanism: Slum, Gated Community, and Shopping Mall in Delhi and Gurgaon. New Delhi: Oxford University Press.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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