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은 (막스플랑크과학사연구소)
2024년 3월 10일, 미세먼지가 짙게 깔린 서울시 상공에 낯선 비행기가 한 대가 등장했다. 미세먼지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미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DC-8이었다. 이날 DC-8은 서울시의 대기 오염을 측정하기 위해 연세대 신촌 캠퍼스 상공을 지나 고려대 안암 캠퍼스를 향해 낮은 고도로 내달렸다. 비행기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캠퍼스에 있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들릴 정도의 저공 비행이었다. 고려대 상공을 지나 고도를 높인 비행기는 이번에는 남쪽으로 기수를 돌려 송파구로 향했다. 한강을 건넌 비행기의 오른쪽 창문을 내다보자 롯데월드타워의 옆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비행기가 마천루보다도 낮은 높이로 강남 한복판을 저공 비행하며 대기질을 측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비행기 안은 한국, 미국, 유럽 곳곳에서 모인 대기과학자들로 북적였다. 좌석과 승객이 있어야 할 공간에는 지상에 있는 대기화학 실험실에서 볼 법한 장비들이 가득했다. 비행기의 창문에 꽂혀 있는 튜브는 서울 시내의 공기를 동체 안으로 빨아들여 센서로 전달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뿜는 질소 산화물을 분석하는 레이저 센서, 미세먼지의 구성 성분을 분석하는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대기오염 샘플을 고도별로 수집하는 캐니스터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기계들이 윙윙거리는 소음이 가득한 연구용 항공기 안에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낀 과학자들은 기내 통신 시스템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 과학자가 자신의 센서가 발견한 사실을 공유하자 다른 과학자들도 서둘러 자신의 기기가 무엇을 감지하고 있는지 살폈다. 서울시 상공이 거대한 대기과학 실험실이 된 것만 같았다.
이날 비행은 나사의 연구자들이 한국,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연구진과 협업하여 기획한 대기관측 캠페인 ASIA-AQ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Heim and Aguirre, 2024). 다국적 과학자 그룹은 2024년 2월부터 3월까지 두 달에 걸쳐 아시아의 대도시 상공을 비행하며 각국이 겪는 대기오염의 원인과 그 해결방안을 탐구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지구과학을 역사적, 인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학기술학자인 나는 이 연구의 공식 참가자로서 과학자들과 동행하면서 연구용 항공기를 활용한 대기과학 국제 공동연구의 과정을 관찰했다. 나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까지 비행기를 끌고 온 이유가 무엇인지, 또 연구용 항공기가 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비행하는데 어떤 난관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또 이 낯선 항공기를 사용한 대기과학 연구가 아시아의 공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궁금했다.
아시아의 대기오염과 대기과학
20세기 중후반에 걸쳐 대기오염 문제를 겪고 또 어느정도 해결한 북미와 유럽과 달리 아시아의 대기오염은 현재진행형 문제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연간 200만명이 넘는 인구가 대기오염으로 인해 조기 사망한다(World Health Organization, 2018). 대기오염이 이처럼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 대응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대기질은 대기 중 다양한 오염물질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기상 조건에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어떤 오염원이 대기질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지, 또 어떤 원인물질을 규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기질 개선 방안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꾸준한 대기 측정과 분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대기과학자들에게 아시아는 새롭고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나사의 과학 연구는 북미나 유럽과는 다른 환경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 대도시에서 대기오염이 생성되는 과정을 규명하고 나아가 이를 효과적으로 저감하는 정책을 개발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은 새로운 대기 관측 기술을 다양한 나라에 적용하고 또 그 효과를 검증하는 데에도 관심이 있다. 나사 과학자들은 또한 대규모 국제 공동 연구가 대기 오염에 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할 것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언론의 많은 관심을 끄는 연구용 항공기를 사용한 연구는 대기오염 문제의 중요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나사와의 협업을 대기과학 연구 발전의 중요한 계기로 활용하고자 하는 아시아의 과학자들도 이러한 시도에 화답하고 있다.
나사의 과학자들이 연구용 항공기를 몰고 아시아를 찾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DC-8은 몇 차례 아시아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 연구들은 주로 빠르게 발전하는 동아시아에서 기원하는 오염물질이 태평양과 북미 상공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변화하는지를 탐구했다. 동아시아가 대기권에 미치는 전지구적 영향에 주목했던 과거의 연구들에 비해 보다 최근의 관심은 아시아 국가들이 겪는 지역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더 큰 초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6년 나사와 한국이 공동으로 수행한 KORUS-AQ라는 대기과학 캠페인에서 나사 과학자들은 서울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미세먼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과 미국 공동 연구진은 6주에 걸친 집중 관측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대기오염의 생성 과정을 밝히는 등의 큰 성과를 거뒀다.
한국과의 성공적인 공동연구는 나사 연구진에게 아시아 국가와의 협업이 중요한 과학적, 정책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한국과의 공동연구 이후 8년만에 다시 한번 아시아로 돌아온 나사 연구진은 이번에는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대도시 여러 개를 연달아 비행하자는 대담한 계획을 수립했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 나사의 연구용 항공기들은 필리핀 마닐라, 대한민국 서울, 태국의 가오슝, 태국의 치앙마이 상공을 날아다니며 대기오염 데이터를 수집했다. 동아시아 도심에서 이루어진 역대 최대 규모의 대기 관측 캠페인이었다.
하늘을 나는 과학
지상 측정소나 인공위성을 활용하는 대부분의 대기과학 연구와 달리 하늘을 직접 나는 연구는 오염된 공기를 직접 채취하고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연구용 항공기를, 그것도 여러 나라에서 띄워 연구하는 데에는 수많은 물리적, 행정적, 과학적 난관이 존재한다. 따라서 국제 공동 연구진에게 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연구하는 일은 단순히 연구 장소가 바뀌는 것 이상의 과제를 제시했다. 산발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국적 연구자들 사이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했다.
미국의 연구용 항공기를 아시아 국가들의 영공에 띄우는 데에는 여러 물리적 난관이 있다. 각 국가에서 비행기가 수 주 동안 머물 공항을 섭외하고, 유지관리 작업을 할 수 있는 격납고(hanger)를 마련하고, 비행에 대한 허가를 받아내는 것은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자국의 실험실에서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모품과 가스들을 먼 연구 장소까지 옮겨 보관하는 데에도 품이 많이 든다. 필요한 경우 과학자들은 채집한 공기 샘플을 아시아에서 북미로 실어 나르기도 해야 한다. 이러한 물리적 문제점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다양한 행정적 난관과 규제다. DC-8과 같은 큰 항공기를 대도시 상공으로 날리기 위해서는 항공 운항과 관련된 다양한 규제를 통과해야 한다. 대기과학자들은 특히 오염된 공기를 효과적으로 채집할 수 있는 저공 비행을 원하기 때문에 각국 항공운항부서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여러 아시아 국가의 대기를 동시에 연구하려는 과학자들은 상이한 종류의 대기 오염을 해석해야 한다는 과학적 과제와도 마주한다. 대기오염의 원인과 조성은 각국의 경제, 환경,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서울의 대기에서는 톨루엔(toluene)처럼 북미에서는 종종 검출되지 않는 유기화합물이 많이 발견된다. 두 나라의 산업과 환경 규제가 상이한 탓이다. 화전 농업이 발달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인위적 소각에 의한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서로 다른 기후와 식생도 대기질에 다양한 영향을 준다. 태국의 산불과 북미의 산불은 서로 다른 종류의 식물을 태우기 때문에 내놓는 대기오염물질의 종류도 다르다. 북미에서 개발된 대기질 예측 모델이 아시아 여러 나라의 대기질을 예측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이러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사 과학자들과 아시아 국가 과학자들 사이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지 과학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없다면 연구용 항공기의 비행을 위한 다양한 허가를 받아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지 과학자들은 또한 미국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각 국가의 오염원, 기상 상황, 대기질 현황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각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오랜 관측과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이러한 지식들은 다국적 과학자들이 더 효과적인 연구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필수적 정보가 된다. 성공적인 다국적 과학 연구는 북미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새로운 인적 관계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대기 실험실 아시아
다국적 과학자들이 2024년 2월부터 3월까지 수행한 대기과학 캠페인은 아시아 대도시에 관한 상세한 대기 데이터를 생산했다. 과학자들은 이제 이 캠페인에서 얻은 측정 결과를 한데 모아놓고 우리가 아시아의 대기에 관해 무엇을 새로 알게 되었는지 종합하고 토론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이들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의에 합의하고, 또 그 결과를 보고서로 정리해 내놓는데 까지는 앞으로도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비행기를 사용한 대기 연구라는 스펙터클한 광경에서 벗어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질 토론에서 나는 아시아의 대기에 대한 어떤 새로운 해석이 또 등장하게 될지 궁금하다. 낯선 비행기가 한데 묶어놓은 아시아 과학자들과 북미 과학자들의 인연이 앞으로의 연구 과정에서도 계속될 것인지 지켜보고 싶다.
저자 소개
김성은(sungeunkim2024@gmail.com)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과학기술학자이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4년 상반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를 거쳐 현재 독일 막스플랑크과학사연구소에 방문학자로 있다. 공저한 책으로 『호흡공동체』(창비)가 있다.
참고문헌
- Heim, Erica and Elena Aguirre. 2024. “NASA Collaborates in an International Air Quality Study.” Feb 12. https://www.nasa.gov/centers-and-facilities/armstrong/nasa-collaborates-in-an-international-air-quality-study/.
- World Health Organization. 2018. “One Third of Global Air Pollution Deaths in Asia Pacific.” May 2. https://www.who.int/westernpacific/news/item/02-05-2018-one-third-of-global-air-pollution-deaths-in-asia-pacif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