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일(원광대학교)
“순록의 사람들”, 에벤족
에벤족(Эвены)은 시베리아의 고대 만주 퉁구스 어족 민족의 하나로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합한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에벤족은 에벤키족과 매우 근접한 친족관계에 있는 민족이다. 에벤키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수렵에 종사하고, 언어도 에벤키어와 유사하다. 하지만 “시베리아의 원주민”이라 불리며 시베리아 여러 지역에서 거주하는 에벤키족과 달리 에벤족은 그렇게 넓은 지역에 퍼져 있지 않고, 주로 야쿠티야(Якутия), 하바로프스크 변강주(Хабаровский край), 마가단 주(Магаданская область)와 캄차트카 변강주(Качатский край)에 살고 있다. 에벤족을 불렀던 옛 이름들 중의 하나는 “라무트(ламут)”이다. 이 이름은 “라무(ламу)”라는 단어에서 나왔는데, “바다”를 뜻한다. 아마도 고대에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를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은 “오로첼(орочел)”이다. “순록의 사람들(оленные люди)”이라는 뜻이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의 에벤족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전 바이칼 호수 서쪽에 인접한 산악지대인 프리바이칼리예(Прибайкалье)라고 추측하고 있다.
2010년에 실시된 전 러시아 인구조사 자료에 의하면 러시아 국내에는 22,383명의 에벤족이 살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야쿠티야에 살고 있고, 나머지는 연방관구의 다른 변강주나 주에 거주하고 있다.
에벤족의 새 숭배
시베리아 제 민족들은 각기 성스러운 동물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각 부족의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의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민족과 부족에 따라 숭배하는 동물도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새는 전 세계 여러 민족의 신앙 체계나 신화와 설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망자의 영혼이 새로 변하기도 하고, 종족의 시조로 여겨지기도 하며, 신을 도와주는 존재이거나 샤만의 조력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암각화나 금속제 조형물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상징물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들은 새가 가지고 있는 비상의 능력이라는 본질적 상징 의미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비상의 능력이라는 새의 속성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세계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든다. 그래서 천상과 지상의 중개자로서의 새의 역할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사후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하늘을 날아 사후세계로 간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에게 있어 새는 다른 세계로 가는 영혼의 매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 간의 이동은 우주가 세 개의 세계, 즉 ‘위의 세계’, ‘중간의 세계’, ‘아래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시베리아 소수민족 전체의 신화적 개념에서 기반한다. 이 세 개의 세계를 다 왕래할 수 있는 것은 새, 특히 물새가 유일하다. 따라서 새는 시베리아 전 민족의 종교와 신화 시스템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요소가 되며 여러 가지 다양한 기능을 가지게 된다. 세계 창조 신화에서도 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베리아 소수민족들의 창조 설화에는 항상 오리, 아비새, 도요새, 물오리 같은 새들이 태초의 대양 바닥에서 첫 흙을 가져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벤족 설화 속에서 새가 가지는 신화적 형상들을 대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 창조 설화 속 신의 조력자
에벤족 설화에서 새가 가지는 다양한 기능들 중 하나는 세계 창조에 관여하는 것이다. 시베리아 여러 민족의 세계 창조 신화에서 오리, 아비새, 물오리, 도요새 등 여러 새들은 바다, 즉 아래의 세계에서 첫 번째 흙을 가지고 와서 지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한다. 땅의 기원에 대한 대다수 시베리아 전설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태초에 세계는 영원하고 또 끝이 없는 원해(原海)만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의 부탁을 받은 새가 이 원해의 밑바닥에서 흙을 가져와서 그것으로 신이 대지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에벤족의 대지 기원 설화에서 신 ‘헤프키(Хэвки)’가 땅을 만들 때 조력자로 등장하는 것은 아비새(гагара)이다. 신의 부탁을 받고 아비새는 바다 밑바닥에서 흙 한 줌을 부리에 물어 가지고 오고, 이 흙으로 헤프키는 땅을 창조한다.
예전에는 이 세상이 전부 물이었다. 헤프키가 있었고, 아린카가 있었다.
어느 날 신이 잠시 생각하고는 거위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진흙을 구해올 수 있겠니?”
거위가 대답했다.
“구해올 수 없어요. 추워서 죽을 거예요.”
신이 오리들에게 물었다.
“어디서 흙을 찾지?”
“저희는 찾지 못해요. 물속에서 죽을 거예요.”
다음에 아비새가 왔다. 신이 아비새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서든 진흙을 구할 수 없겠니? 네가 한 줌이라도 찾아오면 우리는 땅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러자 아비새가 말했다.
“나는 진흙을 구하러 이 바다 바닥으로 잠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진흙은 매우 적을 거예요.”
신이 말했다.
“조그만 한 조각이라도 커질 수 있어.”
아비새는 결심했다.
“진흙을 가지러 바다 밑으로 갈게요.”
그리고 바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
신은 기다리고 기다렸다. 아비새는 오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물새가 나타났다. 진흙 한 줌을 가지고 왔다.
아비새가 신에게 물었다.
“흙을 어디에 둘까요?”
신이 대답했다.
“부리에 물고 있어.”
아비새가 신에게 물어볼 때 아린카가 아비새 부리에서 진흙을 훔쳤다. 헤프키가 아린카에게 호통을 쳤다. 진흙이 아린카의 입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때 헤프키가 아린카에게 침을 뱉었다. 헤프키의 호통 소리에 땅이 쩍 벌어지면서, 계곡과 산들이 도드라져 올라왔다. 그렇게 땅이 창조되었다.
에벤족 창조 신화의 여러 텍스트들에서 헤프키(Хэвки)와 아린카(Аринка)는 대지를 창조하는 작업에 같이 등장하는데, 아린카는 그의 창조 작업을 방해하는 적대자(антипод)이다. 아린카는 에벤어로 악령, 악마, 마귀, 괴물을 뜻한다. 대지를 창조하는 역사에 동물들이 헌신적으로 기여했다는 고대인들의 상상력은 동물을 존경하고 숭배하던 의식의 소산이다. 동물들의 행동을 천지를 창조하는 모방적 몸짓으로 여길 정도로 동물들에게 우주의 속속들이 어디에나 미칠 수 있는 창조적 힘을 부여한 것이다. 육지를 생성하는 일에 동원된 비둘기, 닭, 오리, 백조, 거북, 두꺼비 등은 모두 발에 물갈퀴가 달려 있는 동물들이다. 그 물갈퀴로 물속에서는 수영을 잘할 수 있고, 땅에서는 모래를 파헤치고 긁고 뿌리는 행위를 하는 동물들이다. 아마도 고대인들의 상상력은 그 동물들이 항용 취하는 행위에서 바다 바닥의 흙을 건져 올려 육지를 만든 신의 행동을 유추하는 데까지 미쳤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혼의 상징
사람이 죽으면 새나 짐승으로 변하여, 그 모습으로 초자연적 존재로 산다는 믿음은 많은 민족들 사이에 존재한다. 애니미즘의 개념이 발전함에 따라 영혼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었는데, 고대의 민족들이나 문명화된 민족들에게서도 영혼은 짐승이나 새의 모습으로 생각되었다. 아마도 인간의 영혼이 짐승이나 새의 모습을 가진다는 개념에서 점차 종교적 사고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짐승이나 새로 변한다는 개념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제시되는 영혼의 모습은 주로 새이다. 이것은 신들이 하늘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새는 하늘을 날며, 초자연적 존재들 사이에서 교류하기 때문이다.
알타이인들은 영혼을 수탉의 모습으로, 야쿠트인들은 종달새로 생각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인 구론족은 비둘기의 모습으로 영혼을 그렸다. 영혼을 새로 형상하는 개념은 이집트인들이나 바빌론인들, 그리스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망자의 영혼이 몸에서 새의 모습으로 빠져나와 날아간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는 솔개의 모습을 가진다.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영혼이 비둘기나 다른 새의 모습을 가진다고 믿었다. 시베리아 민속품에서 날개를 펼친 금속제 새 형상은 장례 의식에서 필수품이다. 새가 망자의 영혼이 다른 세계로 옮겨갈 때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는 영혼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새가 이승과 저승을 연결시키며 영혼을 이동시키는 매개물로 인식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북방 아시아의 샤머니즘에서는 사람의 생명 혹은 수호신령(守護神靈)은 각종 새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또한 죽은 자의 영혼이 새나 다른 짐승으로 이동한다는 개념은 동물의 모습을 가진 조상 숭배로 이어진다. 시베리아 소수민족들 중 몇몇 부족은 자신들의 기원을 어떤 짐승이나 새에게서 찾는다.
죽은 자의 영혼이 짐승이나 새로 변한다는 개념은 짐승에 대한 조상숭배를 만들었다. 시베리아의 오비강 지역 위구르인들 중 몇몇 부족들은 자신의 기원을 어떤 동물이나 새에서 찾는다. 시베리아의 네네츠족에게 기러기는 그들의 부족에게 신성한 새로 등장한다. 핀 위구르족들은 자연에서 서식하는 짐승과 새를 용사였던 자신의 선조들로 생각하며, 러시아의 한티 만시 자치구의 서쪽에 거주하는 셀쿱족은 새를 자신의 조상으로 생각하며 숭배한다. 셀쿱족들은 자료에 따르면 부족의 시조를 새에게서 찾는 관념의 흔적이 매우 강하다. 오비강 지역 위구르족들은 자신들이 학, 흰뺨오리, 수리부엉이 등의 새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한다. 야쿠트족을 구성하는 많은 부족들이 독수리를 시조로 여긴다. 그래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독수리에게 빌어서 아기를 낳아 부족을 형성했다는 종족 발생 신화가 널리 퍼져 있다.
최초의 샤만과 샤만의 보조령
새의 주요한 신화적 기능으로 땅과 하늘을 연결시키는 기능을 들 수 있다. 새의 그런 신화적 의미 때문에 시베리아 종족들의 독수리 숭배는 세계수 및 샤머니즘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시베리아 소수민족들의 관념에서 세계수의 수관은 천상계에 닿아 있어 우주의 상부를 상징하는데 그 정상에 앉아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독수리가 바로 최초의 샤만을 탄생시킨 존재이다. 샤머니즘 기원 설화의 한 형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 이 세상에는 병이나 죽음도 없었지만, 어느 때부터 악령이 병과 죽음의 채찍을 사용해 인간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들은 인간을 돕기 위해 하늘로부터 수리를 내려 보냈다. 그러나 구원의 수리가 내려왔어도 그 수리의 말이나 목적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수리는 할 수 없이 신들에게로 되돌아갔다. 이에 신들은 수리에게 지상에서 맨 처음 만난 사람에게 샤만의 재능을 주도록 명했다. 신의 명을 받고 다시 땅으로 내려온 수리는 나무 밑에서 잠자고 있는 여자를 만났다. 이 여자는 남편과 떨어져 홀로 살고 있었다. 수리는 이 여자와 관계를 맺어임신을 시켰다. 임신을 한 여자는 이윽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이 사내아이가 최초의 ‘샤만’이다. (박원길 2001: 361-362)
이 ‘최초의 샤만’ 기원 설화는 시베리아 샤만의 무복에 달려있는 새 모양 장식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하나는 앞에서 보았듯이 최초의 샤만은 독수리와 여성의 교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샤만이 새가 되어 날고자 한다는 것이다. 샤만은 새처럼 날아서 보다 높은 곳으로 다가간다는 의미에서 실제로 새가 된다. 또한 새는 샤만의 보조령과 수호령이다. 에벤족의 설화에서 아비새는 샤만의 영혼이 비상을 할 때 연결시켜주는 보조령의 역할을 한다.
아무르강 상류에 거주하는 에벤키족들에게서 까마귀는 샤만이 의식을 집행할 때 샤만의 영혼을 보호하는 존재이다. 독수리는 샤만 신화에서 가장 주도적인 등장인물이다. 독수리는 샤만의 영혼에서 적대적인 영들을 쫒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유일한 새이다. 샤만의 모든 의식에서 독수리는 중요한 존재이고 샤만의 영혼을 나르는 새들의 보호자이다. 백조도 독수리처럼 샤만 의식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백조는 항상 쌍으로 준비되는데, 샤만이 필요한 곳으로 백조가 샤만의 영혼을 운반해 준다고 생각한다.
변신
설화의 주인공들이 새나 짐승, 물고기로 변하는 것은 에벤족 설화의 특징이다.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주인공들을 이렇게 이중적 존재, 즉 인간-새, 인간-물고기, 인간-짐승으로 묘사하는 것은 토템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또 이러한 토템의 흔적은 각 부족의 생산 경제 활동의 성격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북동 시베리아의 콜리마지역에 거주하는 에벤족들의 설화에서 까마귀는 신부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반대의 경우로는 우데게이족의 설화에서는 까마귀가 아름다운 젊은이로 변하여서 신랑으로 등장한다. 에벤족 설화에서는 영웅들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매로 변한다. 매우 흥미로운 이미지로 매가 에벤족들 중 한 부족의 토템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에벤족 설화에서는 부정적 인물들은 보통 독수리로 변하며 나쁜 역할을 수행한다. 거의 모든 이야기에서 독수리의 외모는 무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에벤족 이야기 속에서 나쁜 적은 머리가 둘 달리고 네 개의 날개와 네 개의 발톱을 가진 큰 독수리의 모습으로 날아와서 에벤족의 영웅들을 싸움에 불러낸다.
변신과 관계된 에벤족 설화에서 ‘백조 처녀(девушкалебедь)’의 형상은 매우 흥미롭다. 백조 처녀 설화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광포설화로 에벤족에게서도 발견된다. 이 백조 처녀의 형상에는 백조를 토템 시조로 보는 고대의 토템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주제는 부랴트, 타타르, 에벤키족의 동쪽 그룹 부족들의 설화에서 만나 볼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 알타이 제어 민족들의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새 숭배의 근원에 대해 말해준다.
에벤족 설화 「움체긴과 부윤쟈(Умчегин и Буюндя)」는 이 백조 처녀 설화이다. 두 명의 형제가 등장하며, 형이 움체긴, 동생이 부윤쟈이다. 형이 백조 처녀 중 한 명의 날개를 숨기고, 그녀와 결혼한다. 하지만 동생의 도움으로 백조 처녀는 자신의 고향으로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형은 아내를 찾는 기나긴 모험길에 오르고, 결국 그녀를 찾아서는 그녀의 날개를 불태워 버린다. 그렇게 해서 백조 처녀는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노인과 할머니에게 두 아들 움체긴과 부윤쟈가 있었다. 그들이 죽고 움체긴은 사냥을 하고 부윤자는 음식을 만들었다. 부윤쟈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일곱 마리 백조 처녀들이 놀러와서 공놀이를 하였다. 부윤쟈는 이걸 형에게 이야기해주기 위해 옷에 매듭을 묶었지만 기억을 하지 못했다. 다음날도 더 세게 묶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삼 일째 움체긴은 사냥터에서 몰래 집으로 돌아와 백조들이 날아 온 것을 알게 되고, 부윤쟈에게서 백조들이 털옷을 벗고 처녀로 변해서 놀이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흘째 되는 날 움체긴은 사냥을 가는 척하고 돌아와 백조들이 호수에서 노는 동안 털옷 하나를 나무 구멍 속에 숨겼다. 움체긴이 모습을 드러내자 여섯 백조는 날아갔지만 일곱 번째 백조는 털옷을 찾지 못하고 남게 되었다. 움체긴은 백조를 집에 데리고 가서 같이 살았다.
여름이 되자 백조 아내는 다시 놀고 싶어졌다. 부윤쟈를 불러 호수로 가서 공놀이를 하다 부윤자에게 공을 주고 털옷이 있는 곳을 알게 된다. 백조 아내는 털옷을 입고 날아가면서 자기가 임신을 했고 다시 찾지 말라고 말한다.
돌아온 움체긴은 아내가 날아간 곳으로 길을 떠난다. 도중에 땅 아래 숨겨진 천막 속의 노파들에게 도움을 받아 바다를 건너 일곱 백조들이 놀고 있는 곳까지 간다. 그곳엔 그의 백조 아내가 유모 새에게 아이를 돌보게 하고 있었다. 유모새는 움체긴이 온 것을 알고 노래를 부른다. “아가야, 울지 마. 네 아빠 움체긴은 용감한 분이야. 거대한 바다를 건넜어. 여기 도착했어.”
움체긴은 유모 새에게서 백조 처녀들의 털옷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서 아내의 털옷을 태웠다. 그렇게 백조 처녀는 영원히 지상의 여자로 변했고, 유모 새는 처녀로 변했다. 세 사람은 거대한 바다를 한걸음에 건넜고, 노파들과 함께 움체긴의 고향으로 갔다. 고향에는 부윤쟈가 죽은 채 뼈만 뒹굴었다. 그 뼈를 모아 물을 뿌리자 부윤쟈가 살아났다. 움체긴과 부윤쟈는 그렇게 잘 살았다.
「움체긴과 부윤자」에서는 변신, 잃어버린 아내를 찾기 위한 모험, 모험 과정에서 초월적 존재의 도움 그리고 사랑과 재생의 모티프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변신의 모티프는 백조가 털옷을 벗고 처녀로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움체긴이 백조 아내를 찾는 길고 긴 여행을 하며 담비, 새, 벌레로 변하여 길을 가는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 민족의 설화는 그 민족이 자신의 자연과 문화 환경 속에서 살아나오면서 축적된 문화인자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원형 자산이다. 그리고 설화에는 세계의 생성과 인간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각종 기원 설화, 동물 설화 등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새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능력은 조류 숭배 사상으로 이어지고, 하늘에 있는 태양과 연결되어 태양 숭배 사상에 연결되기도 한다. 또한 새는 세계 간 이동의 능력을 통해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며 샤만의 영혼 여행에서 보조령으로 나타나거나, 영혼의 운반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비상(飛上)에서 비롯되는 새의 능력의 의미적 상징화 작업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저자 소개
문준일(joonil@hanmail.net)은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이다.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에서 학문적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초기 한러관계사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신화, 사할린 디아스포라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논문으로는 「북방텍스트에 나타난 에벤키족의 샤머니즘과 생태사상」, 「시베리아 에벤족의 불 숭배 연구」 등이 있으며, 『사할린 한인사』와 『전함 팔라다』를 번역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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