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아시아연구소)1)
동아시아 사회와 경제적 약자로서의 청년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본격화된 21세기 이후부터 청년들을 ‘경제적 약자’로 보는 세대론이 비등하고 있다. 과거 활기차고, 미래의 희망으로 표상됐던 청년 이미지와 달리, 이제는 빈곤, 불평등, 불안 등으로 청년 정체성이 설명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는 글로벌 경제 위축, 세계정세의 불안정화 등으로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대체로 기성세대에 의해 세대론이 제기되어 왔는데, 광고와 언론이 만들어낸 90년대의 신세대/X세대라든가, 2000년대 후반기 비정규직 청년들의 상황을 반영한 88만원세대(우석훈),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내면화되어 경쟁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생존주의 세대(김홍중) 등이 대표적이다. 아마도 헬조선, 수저계급론 정도가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담론일 것이다. 최근에는 능력주의와 결합된 공정성 담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며,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도 활발하다. 공정성 담론은 비정규직이나 여성 같은 약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반발로도 드러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도 기성세대와 주류 매체의 청년 이미지에 반발하여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담론들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따공런(打工人)’, ‘996과로’, ‘탕핑(躺平)’ 등이 대표적이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 이전 세대 담론들의 연장선상에서 중국의 사회변화에 따른 중국 청년세대의 의식 변화를 특히 ‘따공런’ 담론을 통해 진단해보고자 한다. 따공런 담론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청년층 자기정체성의 심대한 변화이다. 과거 청년 화이트칼라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갖은 노력을 통해 계층상승을 하면서 빈자/농민공과 자신을 구분하고 구별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그러한 노력이 좌절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빈자/농민공과 동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사회구조 변화와 청년세대의 분화
주지하다시피 도시와 농촌 간 이동의 자유를 호구제를 통해 정책적으로 제한하는 등의 ‘도농이원구조’는 중국 사회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도농이원구조의 영향 속에서 청년들 역시 도시청년과 농촌청년으로 구분되고 청년세대 내부의 이질성과 계층적 분화가 형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후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시행한 ‘한자녀 정책’은 도농 간의 분화를 더욱 강화했다. 왜냐하면 농촌에서는 자녀 수가 곧 생산성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도시에서보다 한자녀 정책이 잘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 조사에 의하면, 1980년대생 한자녀 가정 비율이 도시는 51%, 농촌은 11%에 불과하다. 1990년대생의 경우, 도시는 72%, 농촌은 27%로 역시 큰 차이가 난다. 한 아이에게 가족의 모든 자원이 집중되는 대다수 도시 출신 청년보다 농촌청년은 불리한 조건에 놓여왔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농을 막론하고 청년들의 대학진학률은 급격히 증가해왔다. 대학진학률은 1999년 20%에서 2015년 40%로 두 배 증가했다. 대학에 진학했다고 계층상승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승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높아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도시청년과 농촌청년의 대학진학 상황에는 큰 격차가 존재해왔다. 대학에 진학한 도시청년과 농촌청년의 전체 규모는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대학에 가지 않은 농촌청년의 수는 도시청년의 5배나 된다. 농촌 출신청년은 도시로 이주하여 대학교육을 받아야 비로소 계층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도시 청년집단 내부에도 물론 계급적 차이가 엄존하지만, 특히나 도농이원구조로 분화된 중국 청년은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청년의 구조적 분화에도 불구하고, 중국 청년들은 코로나 시기에 따공런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지난 십수 년간의 중국 세대담론의 전개를 검토해야 한다.
빠링허우와 개미족의 동시 등장
한국에도 이미 소개된 ‘80후세대’(80後, 이하 빠링허우)는 1980년대생 청년집단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처음 주목받게 된 것은 몇몇 1980년대생 작가들이 유명해지면서부터다. 빠링허우들은 처음에는 엘리트주의적이면서도 저항적인 속성을 부여받았다. 그러다가 2008년 원촨대지진 봉사, 베이징 올림픽 시기 티벳 독립 맞불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을 계기로, 빠링허우는 애국주의 세대라는 이미지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엘리트주의 색채를 벗어나 1980년대 출신인구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엘리트주의적인 빠링허우 세대론과 ‘개미족(蟻族)’ 담론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개미족은 2000년대 말 처음 등장했는데, 2010년을 전후한 시기에 한편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1980년대생 농촌청년은 도시로 유입되어 ‘신생대 농민공(新生代農民工)’이 되었고, 다른 한편 대학에 진학한 1980년대생 지방중소도시 출신 청년이나 농촌청년이 졸업하여 개미족이 되었다. 개미족을 연구한 렌쓰(廉思)에 따르면, 개미족은 대졸, 저소득, 집단주거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는 개미의 높은 지력, 집단거주, 작지만 큰 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짚어내면서 이 집단을 개미족으로 명명했다. 이러한 특징은 저소득, 무시당하는 삶, 사회문제 유발 등과 연결된다. 하지만 개미족 담론에는 노력 이데올로기에 대한 동의가 여전히 발견된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렌쓰는 개미처럼 근면한 태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정신으로,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는 개미족은 화이트칼라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개미족과 신생대 농민공의 차이가 보기보다 모호하다는 점이다. 비록 개미족은 농촌 출신 ‘대졸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개미족과 신생대 농민공을 지나치게 분리하여 보는 것은 현실과 유리되는 분석일 수 있다.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계층상승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이들 가운데 절대다수가 대도시 성중촌(城中村)2)에 농민공과 더불어 거주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대졸자, 고학력자, 화이트칼라인 개미족은 좁은 집에서 살지만 그래도 그것이 ‘일시적’이라고 여겼고, ‘미래에는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노력 이데올로기를 계속 견지했다. 하지만 이후의 청년담론을 보면, 개미족 세대들의 이러한 계층상승 전망, 미래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미족에서 따공런으로: 세대 담론의 진화와 변형
2011년에 온라인 소셜 플랫폼에서 ‘댜오쓰(屌丝, 찌질이, 루저)’라는 말이 등장했다. 댜오쓰는 집안 배경 없고 돈 없고 못생긴 남자를 일컫는다.3) 이들은 비루한 삶을 살면서도 남들에게는 고상한 자태를 연출하고자 한다. 댜오쓰로 자칭하는 이들에 기업직원, 대학졸업생도 가세하면서, 자신의 처지가 좋지 않음을 인정하는 고등교육 수료자가 등장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댜오쓰적 태도는 비루한 환경에서도 정신적 도피처를 마련하면서 ‘정신승리’를 추구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처지의 비루함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따공런 현상의 전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상문화(喪文化)’ 담론은 2016년에 급속히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어차피 실패할 것이니, 기대치를 낮추고 ‘자아보호’ 전략을 취하자는 것이다. 상문화를 대표하는 격언들을 보면, 현실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관찰을 보여준다.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노력하자는 서사를 만들기보다, ‘실패의 필연성’을 드러내며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사회 양극화와 불안한 미래를 성찰하면서 노력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등장한 ‘불계청년(佛系青年)’은 ‘정신승리’의 극단화라 할 수 있다. 살기 위해서 업무와 경쟁을 적당히 하거나, 현실로부터 정신적 거리를 둘 필요가 생긴 것이다. 혼자 살기, 자유롭게 살기를 추구한다. “시키는 것을 절대 거절하지는 않지만, 절대 스스로 일을 찾아 하지는 않는다. 업무의 질은 늘 합격이지만, 결코 뛰어나게 하지도 않는다.” 불계청년은 계층상승의 장벽에 부딪친 청년들이 일상에서 직면한 극심한 경쟁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도피하는 것에 가깝다.
2019년 코로나 직전에는 ‘996 과로’ 담론이 등장했다. 996은 <매일 9시 출근, 밤9시 퇴근, 1주일 6일 근무>, 즉 극심한 과로의 문제를 지적하는 단어다. 996과로는 2016년에 탄생했는데, 2019년에 젊은 프로그래머들이 장시간 근무상황을 고발하기 위해 996.icu 페이지를 개설하면서 주목받았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알리바바 총수 마윈(馬雲), 이커머스 2위 기업 징둥(京東) 창업자 등이 996을 찬양했다가 청년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4) 마윈은 이때 다른 요인도 겹치면서 회장직을 내려놓았던 바 있다. 마윈은 ‘댜오쓰’의 대표자로서 청년 계층상승과 자수성가의 희망으로 받아들여지다가, 996 찬양으로 인해 청년들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996’처럼, 과로를 하더라도 직업의 안정, 적절한 보상, 미래의 전망이 보장되지 않으면, 과연 중국 청년들이 계속 과로하면서 불계청년 마인드로 버틸 수 있을까? 따공런 이전까지 제기된 세대담론은 도농이원구조,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이분법, 학력의 차이를 여전히 반영하고 있다. 계층상승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지친 정신과 육체를 달래는 것에 가까운 것이다. 이 글이 주목하는 후랑 사건과 따공런 담론은 이러한 기존 중국 청년담론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했다.
후랑 동영상이 묘사한 청년 이미지의 파장
코로나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 5‧4청년절에 중국버전 유튜브라 할 수 있는 빌리빌리(bilibili)는 후랑(後浪)이라는 영상을 방영했다. 이 영상은 CCTV, 광명일보, 중국청년보, 환구시보 등 여러 매체가 공동으로 제작하고 발표한 것이다. 중국 중견 대배우 허빙(何冰)이 청년들에게 연설하는 영상이었는데, 빌리빌리에 공개되자마자 3시간 만에 조회수 100만회를 넘어섰다. 이 영상에서는 중국의 발전을 찬양하는 애국주의적 메시지와 함께 청년들의 선택의 자유가 강조되었다. 무엇보다 청년들의 역동성을 찬양하고 그들을 ‘칭찬’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특히 영화, 여행 등 소비주의적 실천들과 패러세일링, 레이싱, 잠수 등 고가의 스포츠가 많이 등장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엄청나게 부정적이었다. “영상 속 청년들의 삶은 우리와 거리가 멀다”, “기성세대가 우리가 영상처럼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두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심지어 자신이 여기서 호명되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에 자조하고 자책감까지 드러내기도 했다. 후랑 영상에 달린 중국교육보(中國教育報)와 같은 관변 매체의 공식적 댓글은 조회수가 적어서 조롱과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네티즌은 ‘반어법’을 사용하여 관변매체의 “댓글 순위를 앞으로 보내자”고 외쳤다. 검열의 위험이 있음을 수시로 지적하면서 “얼른 (후랑 영상을) 칭찬해”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이처럼 후랑 동영상은 이미지와 나레이션을 통해 코로나 사태에 직면한 청년들에게 새로운 현실 인식과 주체인식을 가져오는 ‘사건’으로 작용했다. 청년들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빌리빌리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지식 공유 엔진 사이트 ‘즈후(知乎)’에서는 후랑 동영상에서 재현된 주체와는 다른 ‘생존에 시달리는 청년주체’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빈부격차에 대해 마음속으로 분노하고 있는 무산자 청년, “하루 300위안이라도 벌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도시에서 일하는 농촌출신 청년 등이 출현하여 ‘진정한 후랑’, ‘진정한 청년’이 누구인지 따져 물었다.
‘따공런’의 등장: 우리 모두 농민공이다!
2020년 9월 소셜 미디어에서는 따공런 담론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과거 농민공만이 따공런으로 불리던 시기에, 고학력 청년들은 “나는 농민공과 다르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따공하지 않는 존재’로 구별 지었다. 그런데 따공런은 이제 화이트칼라, 불루칼라, 엘리트, 일반노동자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와 청년에게 적용되는 명칭이 되었다. “우리 모두 따공런”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기존의 양극화 추세가 심화되고 고학력 화이트칼라 청년들도 계층상승이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상과 현실의 격차로 인한 내적 갈등이 가시화되었다. 고학력 금융업 종사자도 ‘따공런’을 자처하게 되었다. 따공런 담론은 많은 밈(meme)들과 격언들을 남겼다.
몇 가지 이미지들만 살펴봐도, ‘화이팅’이라고 말하지만 노력의 무의미성, 양극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그런데 따공런 담론은 단순한 사회 비판과 냉소에 그치지 않는다. 청년들은 격화되는 경쟁과 계층 고착화라는 현실에 직면하여, 계층상승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노력 이데올로기’를 버리기 시작했고, 결국 육체노동/정신노동이라는 사회분업의 표상을 변경하면서 자아정체성을 재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빈민/농민공과 구별 지으면서 ‘계층상승하는 주체’로 바라보다가, 이제는 육체노동하는 ‘농민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5) 이는 화이트칼라도 블루칼라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인식, 즉 기존의 육체/정신노동의 분업을 해체하는 인식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종합해보면 따공런 담론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따공런 담론에서 발견되는 육체노동/정신노동 구분의 붕괴가 그야말로 자본주의적 노자관계, 다시 말해 생산수단이 없는 피고용인은 모두 ‘노동자’라는 전통적인 노동계급의식의 부활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成傑 외, 2022).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를 계급의식의 부활이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주류 매체들이 곧바로 따공런 담론을 다시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래도 노력하라!”라는 ‘긍정 마인드’와 ‘노력 이데올로기’로 전유하고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주류 매체에 의한 따공런의 의미 변질: 다시 ‘노오력’하라
따공런은 여러 언론에서 선정한 2020년 탑10 유행어가 되었다. 2020년 10월 CCTV 뉴스는 위챗 공식계정으로 “굿모닝, 따공런!”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 글은 네티즌들이 풍자를 통해 따공의 괴로움을 해소한다고 소개하면서, 따공런은 ‘고생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따공런 담론의 저항적 의미를 탈각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이상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담긴 서사를 여러 개 소개했다. 종일 고된 목공 일을 하고도 깡충깡충 신나게 집으로 뛰어 퇴근하는 노동자, 17년 농민공으로 일하면서 도서관에서 12년이나 책을 읽고 있는 노동자,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책 대신 벽돌을 보면서 시를 낭독하는 농민공 등등. 이제는 관변 매체에 의해 따공런이 자기계발과 노력으로 점철된 ‘괴물적 주체’가 되어버린다. 가난해도 열심히 일하고, 일상 속에서 여가와 취미를 찾아내는 노동자의 ‘휴먼스토리’를 만들어 노력 이데올로기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몰래 따공하여 모두를 놀라게 할 것”, “일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일을 필요로 하는 것” 등의 격언들이 말해주듯이, 따공런은 다시 노력하는 주체, 자기계발 주체, 계층상승을 향해 달리는 주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후 따공런의 유행은 잦아들었다.
지배적 담론을 거부하는 청년들?: 탕핑주의와 샤오전쭤티지아
중국의 블로거 뤄화중(駱華忠)은 2021년 4월 17일 바이두 게시판에 ‘탕핑’(躺平·똑바로 드러눕기)을 시작하자는 글을 올렸다. “스트레스는 주로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과 “어른들의 통념”에서 비롯된다. “디오게네스처럼 나무통에서만 자고 햇볕을 쬐며,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동굴에 살면서 ‘로고스’를 생각할 수 있다.”, “눕는 것이 바로 나의 지혜로운 운동이고, 눕는 것만이 만물의 척도다.” 계층상승의 욕망을 접고 적당한 선에서 평탄하게 살자는 생각을 담음으로써,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자는 관념에 다시금 역행한 셈이다. 당국은 탕핑 커뮤니티를 폐쇄하고, 웨이보에서는 탕핑과 탕핑의 영문 해시태그 검색조차 금지시켰다. 2022년 주목받은 ‘샤오전쭤티지아(小鎮做題家)’는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결국 여러 면에서 도시 청년과의 경쟁에서 밀려 아무리 노력해도 회의와 불안에 빠지는 소도시나 농촌 출신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종의 고학력 ‘흙수저’ 서사라 할 수 있다.
비록 따공런 담론은 거의 사라졌지만, 탕핑이나 샤오전 담론처럼 노력의 불가능성과 계층상승의 어려움, 빈민에의 동일시는 여전히 불규칙하게 지속되고 있고, 후랑 동영상과 같은 유사한 충격이 다시 온다면 ‘재분출’될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의 청년세대는 유사한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특유의 역사적 경험지평 속에서 살고 있다. 이는 중국의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정치경제의 변동과 각 나라의 특수한 사회구조에 따라 청년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유동할지 지켜볼 일이다.
저자소개
김란(jinlan8080@naver.com)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강사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중국 가족과 보육‧청년‧문화 등에 대한 연구를 비교적 시각에서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 노동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라: 1980년대 이후 중국 ‘부녀회가(婦女回家)’ 담론의 전개와 굴절(2022)」, 「잡지 『부모필독』을 통해 본 중국 개혁개방 이후 보육 사사화(privatization)의 곤경: ‘조부모 보육’ 담론을 중심으로(2023)」,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국 청년의 脫호명 정치: 후랑(後浪) 현상과 따공런(打工人) 정체성을 중심으로(2023)」 등의 논문을 썼다.
1) 이 글은 필자가 최근에 발표한 다음 글을 축약한 것이다. 김란‧박치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국 청년의 탈호명 정치: 후랑 현상과 따공런 정체성을 중심으로”, 『사회이론』 2023년 봄/여름.
2) 성중촌은 일반적으로 도시가 도시화되면서 과거 도시 인접 농촌이 도시행정구역에 편입되었으나 미개발 상태로 유지되면서 저렴한 주거비로 생활할 수 있는 구역을 말한다.
3)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내가 성공했으니 80%의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라고 했을 만큼 전형적인 댜오쓰였다.
4)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은 “996는 전생에 덕을 쌓아서 얻는 행복(996是前世修來的福報)”이라고 했으며,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京東)닷컴의 창업자 류창둥(劉強東)은 “게으름뱅이는 나의 가족이 아니다(混日子的人不是我兄弟)”라고 했다.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雷軍)은 “우수한 인재는 기꺼이 매일 12시 퇴근하고 싶어한다(優秀的人心甘情願每天12點下班)”고 발언했다.
5) 사실 빈민/농민공과 자신을 구별짓는 고학력 화이트칼라의 인식은, 자신과 다른(실패한?) 빈민/농민공들을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정당화하며 차별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참고문헌
- 김란‧박치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국 청년의 탈호명 정치: 후랑 현상과 따공런 정체성을 중심으로.” 사회이론 2023년 봄/여름, 91-152.
- 廉思. 2009. 『蚁族: 大学毕业生聚居村实录』. 广东: 广东师范大学出版社.
- 成傑‧林仲軒‧羅煒. 2022. “消失在流行语中的‘打工人’: 网络时代青年群体身份认同的话语建构.”媒介与文化研究 第197期, 73-120.
- 李春玲. 2017. “青年群体中的新型城乡分割及其社会影响.” 北京工业大学学报(社会科学版) 第17卷 第2期, 1-7.
- 李春玲. 2019. “改革开放的孩子们: 中国新生代与中国发展新时代.” 社会学研究 第3期,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