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식(성공회대학교)
‘신성(神圣)한 노동(자)’의 추락
1918년 11월 16일 베이징대학의 총장 차이위안페이(蔡元培)가 한 강연에서 ‘노동자의 신성함’(劳工神圣)을 언급한 이래로, 사회주의 시기 중국에서 노동자는 줄곧 국가의 주인공이라는 위상을 부여받았다.1)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 계급이 지도하고, 노농동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주의독재 사회주의 국가”라는 중국 헌법 제1조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40여 년이 흐른 현재,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노동의 존엄과 노동자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2010년 중국 광둥성의 둥관에 소재한 폭스콘 공장에서 14명의 노동자가 잇달아 투신자살한 참극이었다. 애플 제품의 최종 제조업체인 폭스콘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인프라 지원과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중국 전역에 40곳 이상의 거대한 산업단지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평균 17세에서 25세의 100만 명에 육박하는 청년 노동자와 직업학교를 통해 공급되는 수십만 명의 학생 인턴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과잉노동, 폭력적인 규율에 시달리며 끝내 죽음으로 살아있었음을 증명해야만 하는 참혹한 현실이 숨어있다(제니 챈 외, 2021).
이에 대해 그 자신이 폭스콘의 생산직 노동자로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쉬리즈(许立志)는 폭스콘 노동자들의 죽음을 땅에 떨어지는 나사에 비유했다.2) 불과 60년 전 “국가와 인민을 위해 영원히 녹슬지 않는 작은 나사”가 되겠다던 레이펑(雷锋, 1940~1962년)은 현재까지도 노동자 인민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오늘날 현실 속 중국의 노동자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생을 다할 때까지 착취당하다가,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기계의 나사처럼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 실제로 폭스콘 노동자들의 연쇄 투신자살 이후, 회사 측이 내놓은 대안은 기숙사 건물에 자살 방지용 그물과 창살을 설치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궈타이밍 폭스콘 사장은 태업, 시위, 자살의 형태로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인간 노동력을 100만대의 로봇으로 점차 대체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신성’하다고 여겨졌던 노동자의 존엄과 생명이 이렇게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땅에 떨어진 나사>
나사 하나가 땅에 떨어지네
야근 중의 이 어둔 밤에
수직으로 떨어져, 가벼이 소리를 내네
누구의 관심도 못 끌겠지
지난번처럼 이토록 어둔 밤에
누군가 땅에 떨어졌을 때처럼
— 쉬리즈, 2014년 1월 9일
시진핑 신시대: 중국의 꿈과 노동자 현실의 괴리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하에서 중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시진핑 주석은 2017년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대회 보고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바야흐로 ‘신시대’에 진입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공식 확정된 2022년 제20차 당대회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전면적 건설을 위한 전략적 목표를 좀 더 구체화했다. 즉 서구식 현대화와 차별된 중국 특색에 기반한 중국식 사회주의 현대화를 통해 공동부유(共同富裕),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공생, 평화발전 등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진핑 체제 들어서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것을 향후 국가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를 살아가는 중국 노동자들에게 모든 인민이 풍요롭고 행복한 중국식 사회주의 현대화의 미래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실제로 시진핑 시기 중국에서는 임금 체불, 사회보험금 미납, 열악한 노동조건 등에 항의하는 노동자 파업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콩에 기반을 둔 노동 NGO 단체인 중국노동회보(中国劳工通讯, China Labour Bulletin)에 의하면 시진핑 시기 10년간 연평균 약 1,453건의 크고 작은 파업이 발생했다.
물론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과 쟁의는 2010년부터 급증했지만, 시진핑 시기가 좀 더 특징적인 것은 노동운동 관련 NGO 단체, 학생, 학자, 변호사 등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더욱 거세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자들의 파업이 가장 활발했던 광둥 지역에서는 2015년 12월 공안 당국에 의해 노동 NGO 단체의 활동가들이 대규모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시진핑이 강조하는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가 제기한 ‘노동계급의 해방’이라는 원대한 사회주의적 이상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사회주의 없는 사회주의’, ‘마르크스 없는 마르크스주의’를 풍자하기 위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한 말이 바로 ‘루커스’(‘鹿’克思)이다. 마르크스의 중국어 음역이 ‘마커스’(‘马’克思)임에 착안해, 오늘날 중국의 현실을 사슴을 말이라고 속여 진실과 거짓을 바꿔치기한다는 ‘지록위마’(指鹿为马)의 고사에 빗대어 풍자한 것이다(하남석, 2020). 요컨대 시진핑 주석과 중국 정부는 신시대를 맞아 ‘중화민족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질서와 안정유지를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이라는 ‘중국의 꿈’과 노동자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가 시진핑 신시대의 중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이자 과제가 되고 있다.
시진핑 신시대: 불안정 고용의 확산과 부유하는 노동자
특히 중국 정부는 코로나의 충격에 따른 실업률 증가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 유연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불안정 고용(특히 여성, 농민공, 대학생 등 청년)이 더욱 확산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의 안정성이 더욱 위협받고 있다.3) 구체적으로 중국 국무원은 2020년 7월에 ‘유연한 취업(灵活就业) 다각화를 위한 의견’(国务院办公厅关于支持多渠道灵活就业的意见)을 발표해 코로나로 인한 노동시장의 충격에 대응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여기서 ‘유연한 취업’이란 시간제, 임시직, 탄력근로 등과 같이 노동 유연성이 높은 취업형태를 의미하는데, 플랫폼 배달노동자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 방역 기간에 많은 기업이 파견노동, 기간제, 외주 등을 확대했으며, 코로나의 위협에 가장 먼저 노출됐던 집단도 파견노동과 외주업체에 종사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이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각종 유연한 형태의 고용 종사자들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소득 감소 등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는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고용 및 민생을 안정화하겠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즉 중국 국무원 및 인력자원과사회보장부는 2020년 5월 ‘디지털 플랫폼 경제를 통한 고용 촉진과 빈곤 탈출 행동’ 방안을 발표해 플랫폼 경제의 긍정적 효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플랫폼에 기반해 창출된 고용은 기존의 전통적인 노동관계와는 달리, 사실상 임시로 서비스 계약을 맺고 일감을 수주하는 불안정 고용형태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중국 유연고용 노동시장 발전 연구보고’(中国灵活用工市场发展研究报告)에 의하면 2021년 중국의 임시직과 비정규직 등을 포함한 비표준적 유연 고용 노동자는 약 2억 명에 달하는데, 이는 총 취업인구의 26.7%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약 7800만 명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플랫폼 노동자이다(李嘉娜, 2022). 주지하듯이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한 외주화 및 노동 유연화가 최적화된 고용 형태이다. 즉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전통적 고용 관계가 서비스 계약관계로 바뀌면서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관계에서 점차 열악한 지위로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실현이라는 환상과는 달리 거대 플랫폼 기업에 이윤이 독점화되는 불평등 구조를 내재하고 있으며, 플랫폼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과 비용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개인에게 외주화된다. 더구나 플랫폼 노동은 흔히 ‘자유로운 노동’으로 선전되지만, 실제로는 자동화된 알고리즘 통제 시스템에 의해 노동과정과 노동시간, 노동 평가 등이 훨씬 체계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만성적인 임금 체불이나 가혹한 노동환경에 항의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쟁의와 파업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중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정규식, 2022a). 따라서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노동형태에 대한 법제도 및 권익 보호 시스템 구축, 플랫폼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는 사회보험 체계의 수립, 플랫폼 노동에 대한 노동감독과 쟁의 조정 및 중재 정책의 개선 등이 향후 시진핑 시기 중국 노동정책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불안정 노동의 가속화와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무한경쟁의 상황에 내몰린 일용직 청년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싼허(叁和)와 하이신신(海新信) 인력시장에서 날품팔이로 생활하는 ‘싼허청년’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초저가의 길거리 음식을 먹고 누군가 버리거나 훔친 싸구려 옷을 구매하고, 불법 PC방이나 허름한 여관방을 전전하며 의식주를 해결한다. 그리고 돈이 필요하면 배달이나 건설 일용직으로 하루 일하고 그날 번 돈으로 며칠간 멍하니 노는 삶을 살아간다(하남석, 2021). 중국의 사회학자인 톈펑(田丰)은 이러한 ‘싼허청년’ 현상에 대해 중국이 지구화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가치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며 나타난 부정적 결과라고 말한다. 즉 중국의 경제성장과 사회적 정체 사이의 모순이 청년세대 집단에 실현된 것이며, 그렇기에 이들은 중국 사회의 유산이며 시대가 유기한 ‘부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싼허청년’들이 권리의식도 강하고 불공평에도 민감하지만 권리를 지킬 수단이 없기에 절망으로 항의를 하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국가에 저항하고 있다고 평가한다(田丰·林凯玄, 2020). 이처럼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모두에게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는 ‘공동부유’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삶 속에서 부유(浮游)하고 있다.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 다시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주체화를 향해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노동의 존엄과 위상은 크게 훼손되었으며, 더욱이 시진핑 체제하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더욱 극심해지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이제 삶의 안정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왕후이(汪晖)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표명하는 국가 혹은 정당과 노동자 계급 간에 존재하는 심각한 단절이 중국 정치체제가 직면한 위기를 보여주는 가장 심각한 징후라고 지적한 바 있다. 노동자 계급이 국가를 영도한다는 중국 헌법의 원칙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편 왕후이는 폭스콘 노동자 투쟁 등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불만과 항의에서 신(新)노동자4)의 집단의식이 싹트고는 있지만, 아직 정치적 계급을 형성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汪晖, 2014). 즉 신노동자 집단은 20세기 노동자 계급이 갖고 있던 강렬한 정치의식이 없으며, 헌법이 규정하는 바와 같이 국가 영도계급의 일원으로 대우받기를 바라는 희망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에서 포스트 사회주의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생겨난 또 다른 산물인 ‘신빈민’(주로 일정한 교육 배경과 계층 상승의 꿈을 안고 있고, 소비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대학생 등 청년집단을 의미함)과의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상호작용이 발생하기 힘들다는 점도 정치적 주체화의 가능성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지난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성취된 ‘노동자 국가’로서의 선언과 이를 명문화한 헌법적 원칙은 중국 정치체제에서 결코 간단히 부정될 수 없다. 실제로 중국 노동자들의 저항에서 사회주의 시기의 기억과 담론들이 여전히 소환되고 있으며, ‘노동자 인민의 주인됨’을 실천한다는 사회주의적 이념이 지역과 세대, 그리고 계층을 넘어 전승되고 있다(장윤미, 2019).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주로 광둥(广东) 지역에서 발생한 ‘신노동자’들의 파업과 저항은 이들이 점차 노동자로서의 계급의식을 형성하고 있으며, 시민권 획득을 위한 ‘권리 보호’의 성격을 넘어 사회변혁을 촉진하려는 조직적 운동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2018년 선전(深圳)시에 소재한 제이식[佳士科技股份有限公司, Jasic Technology] 기업에서 독립노조를 설립하려는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고 정부와 회사 측의 탄압을 받는 사건이 발생하자, 주요 대학의 학생들이 이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모습에서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도 감지된다(정규식, 2022b).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제이식’ 노동자 투쟁에 연대했던 학생들이 주로 베이징대, 런민대, 난징대, 중산대 등 주요 대학의 ‘마르크스연구회’ 소속 학생들이었고, 이들이 노동 현실 비판의 근거로 삼은 것이 ‘사회주의 혁명사상’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런민대 학생으로 제이식 투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천커신(陈可欣)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완전히 합법적이에요.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고 사회주의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편에 함께 설 것입니다. 정부가 우리를 겨냥할 수는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개혁개방 이후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경험한 청년세대들이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체제와 현실 간의 괴리를 비판하고 있으며, 현장 노동자들과의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주체화를 시도하고 있다. 제이식 투쟁은 시진핑 체제하에서 당국의 무자비한 탄압과 연행으로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노동자와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투쟁에 나섰던 경험은 또 다른 기억과 유산으로 계속 전승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래로부터의 지역사회 건설을 표방하며 문화 활동과 공동체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는 ‘베이징 노동자의 집’(北京工友之家) 사례도 중국 노동운동 및 정치사회의 향방과 관련해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베이징 노동자의 집’은 베이징 수도공항 근처의 노동자 밀집 지역인 피춘(皮村)에 위치하며, “신노동자 집단의 문화 구축, 다양한 교육 활동, 공동체 경제 및 상호 협력적 연합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종의 코뮌[公社]을 지향한다. 이러한 지향성을 ‘피춘 정신’으로 통칭하며, 노동자 주체의 문화예술 공연단체인 ‘신노동자예술단’, 노동자 자녀를 교육하는 ‘동심실험학교’, 사회적 기업인 ‘동심호혜공익상점’, ‘노동자 문화예술 박물관’, 노동자대학인 ‘동심창업교육센터’, 지역노동조합인 ‘노동자의 집 사구(社区) 공회’, 생태농원인 ‘동심도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문화가 없으면 우리의 역사가 없고, 우리의 역사가 없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는 인식하에 노동자들의 현실적 생활과 필요에 기반한 공동체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즉 ‘피춘’이라는 지역사회를 근거지로 새로운 생산방식을 고민하고, 재생산의 필요를 자율적으로 충족하며, 이를 공동으로 운영해 나가는 거버넌스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제까지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수동적 농민공에서 노동자로서의 존엄과 도시에 대한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신노동자’로 주체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노동자 개인의 주체화로부터 신노동자 집단의 조직화, 나아가 사회적 변화까지 추동하는 유기적 결합체로서의 코뮌 공동체 건설을 지향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실천과 경험은 국가 제도와 자본 논리가 규정하고 허용하는 ‘권리’를 넘어 새로운 유형의 생활양식을 상상하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정부의 탄압과 개발의 논리에 부딪히면서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비틀거리며 계속 나아가고 있는 이들의 ‘공동체 운동’은 중국 신노동자들이 사회변혁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정규식, 2022b). 이러한 측면에서 체제와 권력의 논리에 저항하는 신노동자들의 정치적 주체화 가능성이 시진핑 시기 중국 사회의 향방을 가늠하는 하나의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정규식(guesik@daum.net)은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연구교수이다. 성공회대 일반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공동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주로 중국 사회문화와 대중정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성과로 『노동으로 보는 중국』, 『도시로 읽는 현대중국2』(공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공역),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공역) 등이 있다.
1) “내가 말하는 노동자란 금속 노동자와 목공 노동자 등만이 아니다. (…)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우리는 스스로 노동자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노동자는 신성하다!”(汪晖, 2014)
2) 쉬리즈(许立志, 1990~2014년). 1990년 광둥 출생. 2011년부터 선전의 폭스콘 공장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함. 2014년 9월 24세의 나이로 선전의 한 허름한 숙소 옥상에서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함. 쉬리즈의 시는 그의 사후인 2015년, 친샤오위(秦晓宇)의 편집으로 작가출판사에서 <새날>(新的一天)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음. 그리고 같은 해에 프랑스어판 <기계는 당신의 신이자 주인>(La machine est ton seigneur et ton maître)이 2018년에는 미국에서 <쉬리즈 시 선집(1990-2014>)(Selected Poems of Xu Lizhi)이 출판되었음.
3) 중국 국가통계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0년 4월 전국 도시지역 조사실업률은 6.0%로 코로나 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인 2019년 12월의 5.2%보다 0.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치에 근거해 조사실업률 6.0%에 상당하는 실업자 규모는 약 2천 7백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편 정부가 발표한 이러한 실업률 수치에 반박하며 실제 실업률은 약 20.5% 정도이고 최근 7천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新浪财经, 2020).
4) 최근 신세대 농민공들은 자신들이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있으며, 기존의 농민공이라는 ‘차별적이고 이중적인 신분 정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신노동자’로 호명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참고문헌
- 정규식. 2022a. “중국 플랫폼 노동의 특성과 노동통제 구조 분석.” 중국사회과학논총 제4권 2호, 4-30.
- _____. 2022b. “도시에 대한 ‘관리’와 ‘권리’ 너머: ‘베이징 노동자의 집’ 코뮌 공동체의 정치사회적 함의.” 아시아리뷰 제12권 2호, 301-330.
- 장윤미. 2019. “중국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경험 및 기억의 전승: 노동자 존엄과 사회적 연대를 향하여.” 중국사회과학논총 제1권 1호, 62-92.
- 제니 챈·마크 셀던·푼 응아이 저. 정규식 외 역. 2021. 『아이폰을 위해 죽다』. 서울: 나름북스.
- 하남석. 2020. “시진핑 시기 중국의 노동운동 탄압과 저항의 양상들.” 도시인문학연구 제12권 1호, 87-112.
- _____. 2021. “시진핑 시기 중국의 청년 노동 담론: 내권(内卷), 당평(躺平), 공동부유.”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18권 4호, 12-33.
- 李嘉娜. 2022. “平台用工劳动关系的现状, 挑战与应对”. 工会理论研究 第1期, 15-29.
- 汪晖. 2014. “两种新穷人及其未来: 阶级政治的衰落、再形成与新穷人的尊严政治.” 开放时代 2014/06, 49-70.
- 田丰·林凯玄. 2020. 岂不怀归:叁和青年调查. 海豚出版社.
- 新浪财经(2020.4.26.). “中国实际失业率有多高?”.
- https://finance.sina.com.cn/stock/relnews/us/2020-04-26/doc-iircuyvh9843233.shtml(검색일: 2023.02.10.)
- China Labour Bulletin. 2023. “Strike map”,
- https://maps.clb.org.hk/statistics?i18n_language=zh_CN&map=1&startDate=2013-01&endDate=2022-12&eventId=&keyword=&addressId=&parentAddressId=&address=&industry=&parentIndustry=&industryName= (검색일: 2023.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