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미(독립연구자)
통념상 연애라 하면, 주로 젊은 미혼의 두 남녀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 위해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으로써, 두 사람 간에는 정서적 친밀성과 상대에 대한 욕정의 정서가 공유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의 중심에 놓인 역동성이 바로 ‘성’이라는 문제이다. 연애 과정에 놓인 당사자 개인에게도, 그리고 이러한 연애 과정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성’이란 문제는 매우 중요한 자기 삶의 문제여서, 연애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주변인들과 공동체가 특정인의 연애 과정에 개입하는 상황도 쉽게 연출된다. 따라서 언뜻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로맨스의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사안이고, 그래서 개인들의 로맨스 실천도 그 사회의 성 관념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로맨스를 지배하는 성 관념을 먼저 개괄한 후, 이러한 관념들이 현실 속 로맨스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성 관념을 조형하는 이슬람의 성 관념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이슬람 가르침 속에서의 성 개념
이슬람의 가르침 속에서 성이란 인간 존재에 내재한 원초적 욕망(fitrah)이자(Riyani 2016: 54), 인간의 신체가 성숙하게 되면 거역하기 어려운 거대한 힘을 지닌 본능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 원초적 욕망에 대한 이슬람의 기본 태도는, 이 본능을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인간 삶의 풍요를 위해 동원 가능한 동력자원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인간 삶의 풍요라는 것은 신에 대한 헌신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이룸으로써 완성된다고 본다. 그래서 성이란 문제에 관한 이슬람의 강조점은 성적 욕망 자체가 아니라 성적 욕망 실현 방법에 놓일 수밖에 없다. 성적 욕망 자체는 인간의 존재 조건으로서 당연시되고, 선악과 불결과 순결의 가치판단에서 논외인 반면, 성적 욕망 실현을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부단한 관심과 경계 그리고 논의들이 이루어진다. ‘과연 어떤 성적 욕망 실현 방법이 신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에게 삶의 의미 있음과 풍요를 선사할 것인가’가 이슬람 사회의 중요 관심사란 뜻이다. 그래서 인간 삶에 의미 있음과 풍요를 실현하기 위해 확보된 동력이라는 측면에서, 성이란 무슬림의 삶 속에서 축복이고 은총이며 인간이 마땅히 향유해야 할 권리로서 이해되는 것이며, 다만 이슬람적 가르침의 안내를 받아 실현되어야 할 욕망인 것으로 간주된다(Mashur 2013: 145).
이슬람과 혼인제도
그렇다면 이슬람이 제안하는 성적 욕망 실현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혼인이라는 제도이다(Rasavena 2003: 18). 따라서 혼인관계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죄악이다. 이때, 혼인이 성적 욕망 실현의 방법으로서 제안되는 이유는, 인간의 성적 에너지를, 신에 대한 봉사와 인간 삶의 풍요 진작을 위한 에너지로 동력화하는 일에, 혼인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까닭이다. 즉, 혼인은 간음이라는 죄악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면서도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편이고, 또한 부부간의 성적 욕망 실현 행위는 자녀의 탄생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혼인은 가족 구성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실제적 복리후생의 편익을 제공하며, 가족 간의 헌신은 인간이 신에 대한 봉사의 활동들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구축한다(At-Tahami 2009: 9-10, 30-48). 따라서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된 혼인은, 성적향유의 기제로서 기능할 뿐 아니라, 가정이라는 종교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이 되고, 신실한 이슬람의 후속세대를 생산하고 양성하는 종교적 실천이 된다. 또한, 가족 간의 친밀성과 생계유지의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에게 존재의 기쁨을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도 하겠다. 요약하자면, 이슬람은 혼인제도를 활용해, 인간 존재에 내재한 성적 욕망을, 신에 대한 봉사와 인간 삶의 풍요 진작을 위한 에너지로 전환시킨다. 그래서 이슬람 사회에서 혼인과 성관계는 의심의 여지 없는 종교적 실천이다.
따라서 인구의 대다수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성 관념 또한 위와 같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조형되어 있을 것임은 쉽게 짐작 가능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가정을 종교공동체의 기본단위로 간주하여 이종교 간의 혼인을 거부하며, 성적 만족을 혼인관계 내에서만 찾으려 하고, 부부간의 성관계 또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식을 위한 것이라 이해한다(Wieringa 2002: 434).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를 ‘아낙 하람(anak haram)’, 즉 ‘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아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혼인과 화목한 가정생활 영위를 종교적 실천으로 이해한다. 규범적으로 그러하다. 이와 같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성 관념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성장 과정에서,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다양한 기회와 매체들을 통해 접하게 되는 종교 연설 및 성 담론들을 통해 공유된다. 이 과정 자체가 이 사회의 성교육이라 할 수 있다.
멀라유족의 연애 관행 ‘파차란’
그렇다면 이제 섹스를 혼인관계 안으로만 묶어두라는 종교적·문화적 요청과, 혼인을 종교공동체 구성 행위로서 간주하는 관념이,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의 연애와 배우자 선정 과정 중에 어떠한 모습으로 귀결되는지를 살펴볼 차례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고전적이고 일반적이며 또한 사회적으로도 용인되는 남녀교제의 양태는 ‘파차란(pacaran)’이라고 불리는 연애 관행이다. 이 말은 현재 인도네시아어로 ‘연애’라는 뜻이지만, 실은 그 어원을 따져 해석하면 ‘봉숭아 물들이기’라는 뜻이다. 이 ‘파차란’ 관행은 원래 신실한 무슬림인 것으로 유명한 멀라유(Melayu) 족의 관습인데, 이 종족은 이슬람적 가르침에 충실한 방식으로 미혼남녀들에게 평생의 배우자를 탐색할 기회를 부여해 왔던 것이다. 즉, 성적접촉을 혼인관계 안으로만 묶어 두면서도, 미혼의 젊은이들에게 평생의 로맨스를 준비할 기회를 허용하는 관행이 있었다.
‘파차란’은 이렇게 진행된다. 멀라유족의 청년은 호감을 가지게 된 처자가 있으면 그 여성의 집으로 사절단을 보내, 판툰(pantun)이라고 불리는 전통 형식의 시를 지어 읊게 한다. 이때 그 처자가 이 남성의 구애에 응할 용의를 보이면, 양가의 부모는 두 젊은 남녀의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3개월의 시간을 허락해 두 사람이 평생의 반려자로서 손색이 없는지 서로 탐색할 시간을 마련해 준다. 그런데 이 기간이 왜 3개월인가 하면, 두 젊은 남녀의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이 사라지는 기간이 3개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차란’이란 봉숭아물을 들인 동안의 교제를 의미하는 말일 터이다. 이 봉숭아물을 들인 기간 동안 남녀 양측은 다른 이성에 대한 탐색을 해서는 아니 되고, 봉숭아물을 들인 미혼남녀에겐 다른 사람들이 교제 목적의 접근을 시도해서도 아니 된다. 그러나 ‘파차란’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파차란’ 기간이 종료하는 시점까지 남성 측으로부터 공식 청혼이 없다면, 그간의 혼인을 위한 탐색은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고, 양측은 다른 배우자 후보를 찾아 새로운 탐색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이 숙려 기간 동안 혼인을 결심하게 되면, 남성 측은 여성 측에 공식 청혼을 하고 혼인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이 ‘파차란’ 동안 두 남녀가 따로 만난다든지 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미혼의 두 젊은 남녀는 부모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로 만나는 것이 규범이다(Illah 2016: 3-4).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성이란 인간의 신체가 성숙하게 되면 억제할 수 없는 본능으로 이해되는 것이니, 적절한 감시와 감독이 수반되지 않으면, 젊은 남녀 간에 자연스럽게, 그러나 일탈적일 수밖에 없는 성관계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인 것이다. 따라서 혼인관계 밖에 있는 사람들 간의 접촉은 통제되어 마땅하고, 젊은 연인들은 부모의 시야 속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 좋다.
사삭족과 자바족의 연애 관행
위와 같은 멀라유 족의 ‘파차란’ 전통은 현재도 인도네시아 사회의 지배적 연애 양상이다. 그래서 주로 남성이 여성의 집을 방문해 현관 앞 테라스나 집안의 응접실 정도에서 여성의 부모 시야 속에서 담소를 나누곤 한다. 이처럼 남성이 교제를 위해 여성의 집을 방문하는 일을, 롬복의 사삭(Sasak)족들은 ‘미당(midang)’이라 부르며 자바(Java) 사람들은 ‘응아펠(ngapel)’이라 부른다(Bennett 2005: 52-54; Smith-Hefner 2018: 337-339). 연애의 장소가 여성의 집이 되다 보니, 젊은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의 집 대문 앞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벨을 누르거나 신호를 보내는 일이 무척 망설여질 법하다. 그래서 여자 친구 집의 벨을 누르거나 문 열어달라는 신호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그 남성의 남성성을 평가하는 말들이 우스갯소리처럼 떠돈다. 일단 남성이 여성의 가족으로부터 어느 정도 신뢰를 얻게 되면, 그는 여성 집의 대소사를 조금씩 도우며 단둘이 심부름을 갈 기회까지 얻게 되는 관계 진전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 어머니의 요청으로 단둘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에 심부름을 갈 수도 있다. 두 남녀에겐 대단한 데이트 기회가 생긴 셈이다. 혹은 여성의 꼭 필요한 외출에 보호자로서 동행하도록 허락을 받는 수도 있다. 즉, 여성의 통학 시에, 혹은 여성의 사적 모임 참석에 동행하여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미혼 남녀들의 연애 과정을 관찰하다 보면, 마치 여성이 애인이라는 이름의 전속 기사를 얻은 것 같은 모양새가 된다. 여성을 등교시켰던 남자친구가 여성의 귀갓길을 책임지기 위해 학교 앞에서 기다린다든가, 혹은 여성의 모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모임 장소 밖에서 대기하는 남자친구들을 목격하기는 쉽다. 한편, 위와 같은 ‘파차란’ 유형 중에서도 조금 더 진전된 단계는, 토요일 밤의 ‘응아펠’이 성공하는 경우이다. 여성의 부모의 허락 하에 혹은 부모 몰래 커플이 주말 밤 외출을 한다면 이는 성공한 토요일 밤의 ‘응아펠’이 되고, 관계의 진전으로 읽힌다.
그런데 여성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넘어, 주말 밤의 외출이 성공한다 해도, 만일 그것이 부모의 허락하에 행해진 것이라면, 그것은 보통 제삼자의 동행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혼전의 남녀가 단둘이 외출하는 일은 종교적으로도 용인되기 힘들고 집안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남녀가 데이트를 나간다면, 보통은 동생이나 친한 친구들을 동행한다. 그리고 어떠한 외출이었건 두 남녀가 밤늦게 귀가하는 일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경향성은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두 남녀가 단둘이 한 공간에 머무는 일이나, 혹은 단둘이 외출을 나갔다가 밤늦게 귀가하는 일을 극히 경계하는 관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롬복섬의 사삭(Sasak)족들은 함께 외출 나갔던 남녀가 밤늦게 귀가하게 되면, 두 사람 간에 성적접촉 여부를 떠나 무조건 강제결혼을 시킨다. 필자는 롬복섬에서의 현지조사 중에, 이런 연유로 강제결혼해 아들딸 낳고 잘 사는 한 나이 든 커플을 만난 적 있었는데, 도대체 몇 시에 귀가한 것이냐고 묻자, 겸연쩍은 듯 웃으며, 대략 밤 9시경이었다고 답하였다. 또한 필자는 롬복섬 북서쪽에 위치한 길리 트라왕안(Gili Trawangan)섬에서, 단둘이 한방에 있던 외지인 남녀가 섬의 자경단원들에게 발각된 것을 목격한 바 있었다. 이때 두 남녀는 ‘고향 마을의 친지들에게 연락해 혼인식을 올리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자경단원들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고, 곧 섬 밖으로 추방되었다. 말하자면, 인도네시아 각지의 남녀교제의 규범은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남녀들 간의 성적접촉 기회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방식으로 조형되어 있다. 로맨스가 존재할 수 있음은 신의 은총으로서 주어진 원초적 본능의 발현인 것으로 감사히 인정하되, 공간적·시간적·사회적으로 단둘만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그 원초적 본능을 종교적 실천의 동력으로서 아껴 두려는 것이라 하겠다.
연애를 관리하는 하숙집들
하지만 만일 미혼의 남녀가 고향을 떠나 학업상 직업상 타지에서 홀로 살게 되면, 위와 같은 주변의 간섭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남녀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아직은 전통 정서가 강하고 종교 규범에 대한 복종의 정서도 강하기 때문에, 타지에서도 미혼남녀의 교제가 마냥 자유롭지는 않다. 이들이 머물게 될 하숙집들은 보통 고향집의 복사판이다. 하숙집의 운영 규칙 자체가 젊은이들의 로맨스에 대한 통제 기제로서 역할을 한다. 요즘은 혼성의 하숙집들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의 하숙집들은 남성용 여성용을 구분한다. 그래서 미혼 남녀가 어울릴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게다가 하숙집들은 하숙생의 야간 귀가 시간과 이성 지인의 방문을 제한한다. 이성의 지인이 방문하면, 하숙집 현관 정도에 따로 마련된 응접실에서 공개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러니 하숙집들을 고향집의 복사판이라 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보통의 하숙집들보다 더 강력한 윤리규범을 내세우는 하숙도 있다. ‘무슬림 하숙집’이라고 라벨을 단 하숙집들이다. 이러한 하숙집들의 라벨은 겉보기엔 종교를 입주 조건으로 삼는다는 뜻 같지만, 실은 하숙생들의 생활을 이슬람적 규범으로 보다 엄격하게 통제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담는다. 즉, 하숙집 내에선 마약은 물론 음주도 허용되지 않으며, 특히 이성을 초대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는다. 한편, 타지에서의 미혼남녀들의 행실을 감독하기 좋은 위치는 하숙집 주인에게 있다. 특정 하숙생이 몇 시에 귀가하는지, 그리고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는지를 알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아주머니 직접 운영’이라는 광고 문구를 더한 하숙집들은 타지에 자녀들을 보낸 부모들이 선호하는 하숙집이다. 혹시라도 미혼의 자녀가 심한 일탈 행동을 보인다면 고향의 부모들에게 연락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집을 떠나도 타지에서의 성윤리는 고향과 다를 바가 없기에, 부모의 감시를 벗어난 젊은이들이 보다 자유로운 방식의 연애를 하고 싶다면, 그 선택은 ‘자유로운 하숙집(kos bebas)’으로 분류되는 하숙집으로의 입주이다. 이 ‘자유로운 하숙집’은 하숙생들에게 대문과 현관문의 열쇠를 제공하여 언제든지 출입이 가능하게 해 주고 또한 귀가 시간을 제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하숙집’도 이성을 초대하는 일은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만일 그 이상으로 이성과 자기 방에서 단둘이 접촉하고 싶다면, 그 선택은 ‘라스베가스(Las Vegas) 형 하숙집’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하숙집들은 하숙생들의 사생활을 전혀 상관 않는다. 그리고 시설도 현대적이고 호화로워 고가의 하숙비를 받는다. ‘라스베가스’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라스베가스 형 하숙집’은 ‘무슬림 하숙집’의 반대편에서 종교적·도덕적 일탈의 극점에 놓인 영업 형태로 간주된다. 하지만 자녀의 입장에선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는 이상 ‘라스베가스 형 하숙집’에 거주하게 될 가능성은 난망이다. 물론 두 미혼의 남녀가 함께 월세방이나 집을 얻어 동거하는 것도 가능한 옵션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인도네시아에선 그리 확실하고 안전한 옵션은 못 된다. 계약 전 집주인이 혼인 여부를 물어 볼 것이고, 또한 마을의 통반장들도 새로 전입한 두 남녀의 혼인 여부를 질문할 기회가 있을 것이며, 성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되면 계약이 해지되고 마을로부터 제재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 러브호텔이 있을까?
그렇다면 러브호텔은 어떠한가? 이러한 시설들이 꽤 있긴 하지만, 이 시설들을 이용하는 것도 리스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호텔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영업 형태를 샤리아(syariah) 기준에 맞추려는 경향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호텔들에선 혼인증명서를 제시하지 못하는 커플에겐 투숙을 거부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호텔 투숙에 성공한다 해도, 운 나쁘면 지방정부와 경찰이 합동으로 진행하는 성윤리 단속에 적발되는 수가 있다. 혹은 더 운 나쁘면 이슬람 자경단에 걸려 혼쭐이 나는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역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사진까지 실리며 망신을 당하고 처벌된다. 앞서 언급했던 ‘라스베가스 형 하숙집’도 이러한 합동단속반의 타깃이다. 그러니 인도네시아의 미혼 남녀들에게 단둘만의 기회를 확보하는 일이란 참으로 지난한 일이라 하겠다.
위와 같은 사정들 때문에, 인도네시아 신랑신부들 중에는 ‘죄를 짓게 될까 봐 결혼하였다’고 혼인사유를 설명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혼인관계 없이 자신들의 마음속에 싹튼 로맨스와 친밀성을 성적 측면에서 발현하게 되면, 이는 종교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 되고 사회적 위험부담도 따를 것이니, 차라리 선제적으로 간음의 기회를 차단하기 위해 혼인을 선택하였다는 고백인 것이다. 간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 혼인이라고 보는 이슬람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고백이라 하겠다.
연애와 가정, 종교공동체
한편, 특정 이성과의 사이에 싹트게 된 로맨스가 혼인과 성적 실천으로까지 연결되려면, 아직 한 가지의 난관이 더 남아있다. 그것은 혼인으로 인해 구성될 가정이 종교공동체를 구성하는가의 여부이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남녀가 혼인한다면, 이 혼인으로 인해 구성될 가정은 종교공동체가 아닐 것이고, 부부간의 성적 실천도 종교적 실천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 남녀 간의 로맨스는 같은 종교 신자끼리 맺어지는 것이 최선이지만, 혹시라도 이교도 간의 교제였다면, 현실적 타협안은 두 남녀 중 일방이 배우자의 종교로 개종을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도 바람직한 것은 못 된다. 이 개종으로 인해, 앞으로 구성될 새로운 가정은 종교공동체가 될 것이지만, 그 개종한 사람의 이전 가정, 즉 부모 가정은 종교공동체로서의 속성을 잃거나 파괴당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도네시아 TV의 한 연예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종교 간의 혼인 뉴스를 접한 적 있다. 한 여성 연예인이 혼인을 위해 개종했다는 뉴스였다. 그런데 이 뉴스에서 그 여성 연예인의 어머니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다가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울부짖듯 외치는 것이었다. “이제 너는 나와 더 이상 가족이 아니구나! 너와 나는 이제 죽어서도 같은 방에 모일 수가 없게 되었구나!” 이 말은, 종교가 다르면 사후 영혼이 모이는 방도 다를 것이니, 이제 부모와 개종한 자식 간에 영적 유대가 완전히 상실되었음을 탄식하는 말이다. 부모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아픔이 어디 있겠는가? 필자는 이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종교 간의 혼인을 위해 혼인 일방이 개종하는 일에 대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보이는 반감을, 필자는 여태껏 이종교 간의 경쟁심과 질시 때문이라고만 쉽게 여겨 왔는데, 실은 개종이란 한 개인이 자신이 이제까지 몸담아온 가정을 파괴하는 일이고, 부모가 평생 일군 종교적 실천까지도 허사로 만드는 행위였던 것이다. 신실한 이슬람 후속세대를 양성하기는커녕 자식을 이교도가 되게 만들었으니 부모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낭패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종교가 달라 영적 유대가 끊긴 부모와 자식 간에는 종교법상 상속도 불가하다. 가족과 친족 간의 권리의무 관계도 다 변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해서, 인도네시아 부모들은 자녀들이 장성하면 혹시라도 이교도와 교제할까 염려하고 경계하는 말들을 한다. 종교적 이유로 헤어져야 했던 커플들의 애잔한 사연들도 흔한 이야기이다.
종교적 실천으로서의 성
정리하자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로맨스를 간섭하는 가장 큰 요인은 종교이다. 인간 존재에 심어진, 신이 주신 은총으로서의 원초적 본능을, 신의 영광을 위한 동력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관념, 그럼으로써 인간 스스로도 자기 삶의 의미 있음과 풍요로움을 향유하게 될 것이라는 관념이, 젊은 미혼 남녀들의 연애사를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본 관념을 해석하는 종교적 입장은 다양할 수 있다. ‘파차란’ 유형의 교제가 현재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젊은 날의 로맨스의 대체적 흐름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파차란’ 관계마저도 부정하는 종교적 해석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즉, 혼전 남녀 간에는 로맨스의 존재 자체가 부도덕한 것이라는 이슬람적 관점도 있다. 혼전에는, 그것이 비록 공식 청혼 후일지라도, 남녀 간의 신체접촉이나 단둘이 있는 일뿐 아니라, 욕망을 가지고 이성을 바라보는 일조차도 다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 속에서는, 연애 자체가 부도덕한 일이고, 간음에 가까운 행동으로 간주된다(Al-Bukhari 2006: 12).
그러나 여러모로 유연함을 특성으로 하는 인도네시아 사회는, 미혼 남녀의 연애에 관한 종교적 해석에서도 유연함을 잃지 않는다. 남녀가 간음에 이르지 않도록 본인들이 유의하고 주변인들이 감독하는 선에서, 청혼 전이라도 ‘파차란’을 허용하는 것이 대세이다. 이와 같은 최소한의 연애 규범이라도 확실히 관철하려는 의도에서, 인도네시아의 어른들은 각종 기회에 끊임없이 염려하고 외쳐댄다. “우리 아이들이 ‘섹스 베바스(seks bebas)’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종교교육을 강화합시다!” 이때 기성세대가 그렇게 염려해 마지않는 ‘섹스 베바스’란, 영어 ‘프리섹스(free sex)’에 해당하는 말로서, ‘혼인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섹스’를 의미한다. 성을 종교적 실천을 위한 동력으로 삼고, 혼인을 종교적 실천의 방편으로 삼되, 이러한 취지의 성교육을 위해 종교교육을 강화하자는 호소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남녀 간의 로맨스란, 종교에 의해 안내되는 것이고, 종교를 완성하는 길이다.
저자소개
조윤미(ibucho@yahoo.com)는
독립연구자. 인류학 박사. 인도네시아의 법문화와 소비문화 그리고 전통미용에 관한 연구들을 수행해 왔다. 최근엔 인도네시아에 관한 인류학의 연구 성과들을 기업현장에서 응용 가능한 지식정보들로 변환하는 문화번역을 실험 중이다. 최근 출간된 저서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성: 에스노 웰니스가 안내하는 ‘돌봄’의 섹스』(2021)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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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nnett, Linda Rae. 2005. Women, Islam and Modernity : Single Women, Sexuality and Reproductive Health in Contemporary Indonesia. N.Y.: RoutledgeCur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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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eringa, Edwin P. 2002. “A Javanese Handbook for Would-Be Husbands: The Serat Candraning Wanita.” Journal of Southeast Asian Studies 33(3): 431-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