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모(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지난 5월 다시 불거진 이-팔간의 군사적 충돌로 가자지구에 사는 230여 명(63명의 어린이 포함)의 팔레스타인과 12명의 이스라엘 측의 희생을 낳은 채 열하루 만에 휴전으로 끝났지만, 폐허 위에 남겨진 약 수천 명의 부상자들의 상처와 후유증과 함께 갈등의 원인들은 해소되지 못한 채로 여전히 불씨가 남았다.
지난 80여 년간 계속된 양자 간의 갈등에는 가까이서 보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정치적-군사적 충돌도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보다 뿌리 깊은 역사적-정서적 앙금이 자리한다. 사건의 인과 관계를 따질 때 역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문제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비극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충돌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스라엘 정부가 동예루살렘 셰이크 자라 마을의 아랍-팔레스타인 거주자에게 이주 명령을 강제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수십 년간 점령지 내 곳곳(요르단강 서안 지구, 동예루살렘, 골란 고원, 가자 지구 등)의 전통적인 아랍 마을에서 팔레스타인들을 내쫓고 그곳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으며, 오늘날 약 220여 곳의 정착촌에 53만 명가량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둘 사이에는 길이 770km, 높이 8미터의 분리 장벽이 가로 막혀 있다.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토착민들의 삶의 터전과 거주권을 빼앗는 반인륜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불법 점령과 반식민지 저항
팔레스타인 농촌 마을에서 나고 자란 런던 대학의 한 교수는 최근 자신의 칼럼에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이스라엘 점령지 내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언제나 ‘기본권이 거부된 이등 시민’(a second-class citizen, denied basic rights)으로서의 삶이었다며 두 집단 간의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상호 존중하는 공존의 모습은 어떤 곳에서도 없었고, 현실은 늘 분리와 불평등뿐이었다고 고백한다. 변호사로서 그에게 이스라엘의 정치적-법적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것이었으며, 특히 점령지 내에서 팔레스타인에게는 거주의 기본권조차 무시되어 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번 세이크 자라의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지난 50여 년간의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에 대한 ‘평등과 자유를 위한 반식민적 투쟁(anti-colonial struggle for equality and freedom)’이라 정의했다.1)
1948년 5월, 약 2천 년 가량 나라 없이 떠돌던 유대인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설한 배경에는 반유대주의라는 망령이 자리한다. 숱한 차별과 박해, 불평등과 부자유 속에서 살아온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최종적 해결책’이 바로 홀로코스트였다.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았다.: 아주 먼 옛날 어떤 사람이 그릇된 생각, 즉 ‘유대인은 나쁜 놈’이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 편견(偏見)은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집단적 기억, 즉 ‘유대인은 다 나쁜 놈’이라는 고정관념(固定觀念)을 만들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하나의 객관성을 띤 이미지(image)가 되어 모든 유대인을 샤일록처럼 이해하고 해석하게 만듦으로써 유대인을 악마화(惡魔化)해 나갔다. 이러한 이미지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유전자 속에 흡수, 저장되었다가 적절한 사회적 온도와 문화적 습도를 갖춘 정치적 토양과 만나자 가공할 힘을 가진 괴물로 나타나 유대인을 모두 멸절시키고 말았다. 해충에 약을 치듯이.
하지만 지독한 살충제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난 유대인들은 시온주의라는 이름의 강력한 새로운 유전자를 배양해 반유대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했다. 시온주의는 반유대주의의 역사적 산물이다. 시온주의는 여러 시대의 환경에 따라 모양을 달리해 나타난 다양한 얼굴의 반유대주의의 공격에도, 때로는 악질적인 변종 반유대주의의 공격에도 꺾이지 않고 급기야 유대 국가를 탄생시켰다. 이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고통 받던 유대인들에게 자신들만의 나라, 고향, 자기 정체성을 누릴 자격이 왜 없겠는가? (이는 지구상에 고통당하는 모든 민족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에 해당한다.)
시온주의와 반유대주의
그런데 유전자 변형을 거쳐 태어난 생물의 유전자도 유전되는 걸까? 시온주의의 씨앗은 자신이 성장한 거친 토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식되어 뿌리를 내린 팔레스타인 땅에서도 피를 먹고 자라 탱크처럼 억센 나무가 되었다. 무럭무럭 자란 그 나무는 어디서나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게 상처와 해독을 입히기 시작했다. 이슬람 반유대주의자들의 말에 따르면 ‘어제의 피해자’인 유대인이 이제는 ‘오늘의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불과 70여 년 전 ‘유대인을 박해한 나치’가 오늘날 ‘팔레스타인을 박해하는 유대인’과 동일시되고, 시온주의와 반유대주의가 등식(等式)을 이루고 있다. 누가 희생자이고 누가 가해자란 말인가?!
이는 역사의 불가해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반유대주의가 시온주의를 낳고, 시온주의는 이스라엘 건립을 낳고, 이스라엘 건립은 다시 반유대주의에 불을 붙인 ‘악순환의 고리’ 말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시온주의 운동의 아버지라 일컫는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은 “유대인 문제(Jewish Question)는 우리들 자신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억압받는 다른 존재들을 위한 문제이다.”라고 천명한바 있으며,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 건설을 지지한 영국의 밸푸어 선언(1917년) 역시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비유대인의 시민권과 종교적 권리 역시 침해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힌바 있으며, UN의 분할안(1947년)에서도 “팔레스타인의 미래 정부에 대한 관심을 채택하고 이행하기로” 합의한바 있다. 이번 이-팔 휴전 발표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조차 백악관 연설(2021년)에서 “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똑같이 안전하고 안정되게 생활하고 동등한 자유, 번영,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얼마나 멋진 약속들이며 미사여구(美辭麗句)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지만 현실의 벽은 이스라엘이 쌓은 8미터짜리 분리 장벽만큼이나 높다.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이러한 명시된 약속들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시온주의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벌어진 내부의 국가 정체성 논쟁의 흔적을 살펴보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그 실마리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아랍-팔레스타인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고 유대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하임 바이츠만이나 벤구리온과는 달리, 그것이 가져다 줄 필연적인 결과에 대한 예측과 비판을 예고한 여러 시온주의자들이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히브리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유다 마그네스는 “유대 국가의 실현이 무력에 의한 것 외에는 불가능한 것이라면, 이는 곧 유대 국가 내에 거주하는 타 민족을 통치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했고, 강경파 시온주의자 야보틴스키조차 “자국을 스스로 내놓을 국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도 그렇지, 힘으로 강점당하지 않는 한 주권을 포기할리가 없지 않은가?”라 말했으며, 유대 철학자 마르틴 부버 역시 “밸푸어 선언이 팔레스타인을 국제적 책략에 의해 ‘정복’할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는 해석을 받게 된다면, 시온주의에 대한 아랍인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할 뿐 아니라, 아랍인 측으로 보았을 경우 유대인과 아랍인 양 민족의 상호 이해를 위한 모든 노력은 의심을 받게 되어, 아랍인들은 이러한 노력이 진정한 의도를 은폐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고들 상상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라 비판했고, 아인슈타인 또한 “시온주의는 권력이 아니라 고결함에 목표를 둔 민족주의이다.”라며 자신들이 세울 국가는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상기시켰다.
평화 운동가이자 이스라엘의 유명한 소설가 아모스 오즈(Amos Oz)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 <유다>(2021)2)에서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아랍-팔레스타인과의 평화 공존을 꿈꾸며 이를 제창해 온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이라는 실존 인물을 불러내어, 비록 주류 시온주의자들로부터 거세되어 ‘민족의 배신자’라는 이름으로 비참하게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복원해 내고 있다. 우리는 그의 목소리 안에서 어떤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이 왜 우리를 사랑하겠어요? 갑자기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낯선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땅과 토지를, 농토와 마을과 도시를, 조상들의 묘지와 자식들이 물려받을 유산을 탈취해 갔는데, 아랍인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거기에 반대할 권리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우리는 그저 이 땅에 집을 짓고 정착하려고 왔을 뿐이라고, 우리의 날들을 옛적같이 새롭게 할 뿐이라고, 우리조상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유산을 상속하려고 왔을 뿐이라고, 기타 등등 말하지만, 이 세상에 갑자기 외국인 수십만 명이 밀려드는 것을 두 팔 벌리고 환영할 민족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또 외국인 수백만 명이, 멀리서부터 날아 와서 자기들이 가져온 거룩한 책에 따르면 이 땅이 자기들 소유라고 이상한 주장을 해 댄다면요?”(<유다> 153쪽).
“이 친구야,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명의 사내나 한 땅을 놓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두 민족은 — 커피를 강물만큼 나누어 마신다고 해도, 그 강은 그들의 미움을 끌 수 없고 많은 물로도 그것을 씻어 낼 수 없다네.”(<유다>, 204쪽).
“얼마나 센 힘을 말하는 건가? … 진실로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없어요. 미워하는 사람을 노예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가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어요.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광신도를 교양 있는 사람으로 바꿀 수는 없지요. 그리고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복수에 목마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요.”(<유다>, 157~8쪽).
세 유일신 종교의 요람이었고, 온 인류의 평화와 우애, 사랑과 공존을 가르쳐 온 중동지역이 이제는 전쟁과 증오, 파괴와 반계몽적 행위의 무덤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961년 몬트리올 맥길 대학에서 개최한 강의에서 아놀드 토인비는 “인간 생활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은, 예전에는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일이다.”라고 언급한바 있다. 자신 속에서 타자를 보고, 타자 속에서 타자와 더불어 자신을 사는 것, 이것이 삶의 해방을 위한 추동력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완전히 다르게 존재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같게 존재할 수도 있는 공존적 화해의 지구 공간, 그것은 유토피아(utopia)일까?!
저자 소개
최창모(ccmo55@snu.ac.kr)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이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연세대학교와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으며, 건국대학교에서 가르치다 정년 은퇴했다. 한국중동학회 회장과 외교부 정책자문 위원, KBS 해설위원을 역임했다. 저서(著書)로는 『유대인과 한국사회』(2019),『옛 지도로 세계 읽기』(2019),『중동의 미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2015), 기억과 편견 – 반유대주의의 뿌리를 찾아서(2004), 금기의 수수께끼(2003) 등이 있으며, 역서(驛書)로는 아모스 오즈의 소설 『나의 미카엘』(1998),『여자를 안다는 것』(2001),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2016), 『유다』(2021) 등이 있다.
2)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참고문헌
- 최창모. 2004. 『기억과 편견 – 반유대주의의 뿌리를 찾아서』. 책세상.
- —-. 2015.『중동의 미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푸른사상.
- 볼프강 벤츠. 2005.『유대인 이미지의 역사』. 윤용선 옮김. 푸른역사.
- 아모스 오즈. 2021.『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