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라는 산불을 멈추기 위해선

검은 토끼가 주인공인 2023년이 시작되었을 때, 서아시아에서 밝고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화두에 떠오른 것은 팔레스타인 문제였다. 무장정파 하마스의 선제 공격에 이은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으로 가자지구에서 학살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의 가자 시티는 물론 남부의 칸 유니스까지 공격하며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영토 문제는 왜 반복되는 것일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문제의 흐름을 산불에 비유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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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한국외국어대학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지극히 상투적이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동(東)지중해에 맞닿은 가나안(Canaan)을 상징한다. 2000년 넘게 사용된 수식구인만큼 상투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기는 하다. 이 표현은 모세오경의 4번째 책인 민수기(Numbers)에서 처음 등장했다. 민수기는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民)의 머릿수(數)를 직접 조사해 가며 유대 민족의 정착치를 찾은 과정을 이야기한다. 14장 8절에서 ‘그 땅은 정녕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며 가나안을 묘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나안은 고대부터 지정학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고대 중동 문명의 중심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나안은 초승달의 양대 축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가장 안전한 경로로 사용되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둘을 잇는 유일한 통로는 시리아 사막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리아 사막에도 팔미라처럼 오아시스를 끼고 발달한 도시가 군데군데 있기는 했다. 그러나 육상 교통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사막을 뚫고 지나간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다. 하물며 당대에는 위험이 더 컸으리라. 그러니 교통 요지인 가나안에는 예로부터 다양한 민족이 있었다. 아랍은 물론 유대,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사마리아, 모압, 암몬, 아람, 에돔, 나바테아 등이 가나안을 오고 갔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이쯤에서 눈을 감고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리고 다양한 외국어가 들리면서 다채로운 물자를 구경할 수 있는 가나안의 모습을. 어쩌면 가나안에 흐르고 있다는 젖과 꿀은 이런 경제적인 풍요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물론 가나안을 유대에 점지한 것은 하느님의 의도라 기록되어 있지만, 모세가 유대 민족의 땅으로 가나안을 낙점한 것은 내심 그런 이유가 기저에 깔려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난데없이 성경 속 가나안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이 바로 근자에 뜨거운 감자가 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7일, 가자지구를 실효지배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Hamas)[1]는 ‘알-아크사 홍수 작전(Operation al-Aqsa Flood)’을 전격 감행해 1,400명에 달하는 이스라엘인을 살해하고 약 240명을 납치했다. 이후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 간의 충돌은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이스라엘은 ‘철검 작전(Operation of Iron Sword)’을 개시해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 공격에 나섰고, 휴전이 이루어진 11월 22일까지 14,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결국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한 이래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기 보다는 슬픔과 증오가 흐르는 곳에 더 가까운 모습이 되었다. 비단 올해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이스라엘인을 찾는 벽보
출처: Wikipedia Commons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출처: Wikipedia Commons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된 산불[2]

끊임없이 반복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보노라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마치 산불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이 산불의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돌멩이끼리 부딪혀 생긴 정전기가 되었든, 담배에서 떨어진 재가 되었든, 아주 사소한 불씨로부터 그 기미가 보인다. 이윽고 그 불씨가 낙엽이나 나뭇가지와 같은 연료원(fuel source)과 결합했을 때 비로소 산불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충돌의 낙엽과 나뭇가지, 즉 연료원은 영국의 삼중밀약으로부터 시작된 ‘영토 문제’다.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약속을 남발한 탓이다. 우선 아랍측에는 1916년 후세인-맥마흔 서한(Hussein-McMahon Correspondence)[3]을 통해 오스만 제국에 반기를 드는 조건으로 현재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을 아우르는 지역인 레반트와 아라비아 반도에 아랍 독립국 건설을 약속했다. 애석하게도 영국은 이 약속을 이행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와 러시아에게는 레반트 분할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4]이라는 비밀 조약이 체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17년에는 영국 외무대신 아서 벨푸어(Arthur Balfour)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건설을 약속한다는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5]까지 공표하기에 이른다. 이는 수십년에 걸쳐 분쟁을 야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사이크스-피코 조약에 따른 중동 분할안
A구역은 프랑스 관할 지역, B구역은 영국 관할 지역이다
출처: Wikipedia Commons

그렇다면 올해 연료원을 태우기 시작한 불씨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난 2023년 4월 5일 새벽에 있었던 ‘알-아크사 충돌(al-Aqsa clashes)’이다. 성전산(Temple Mount)에는 이슬람의 주요 성지 중 한 곳인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이곳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 진입을 막기 위해 모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유대교의 명절인 유월절을 맞이하여 일부 극우 유대인들이 제사를 올리기 위해 성전산 진입을 시도했던 탓이다[6]. 그런데 이스라엘 경찰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무력 진압이 발생했고, 이에 따른 폭력으로 인해 성별에 관계없이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 일은 곧 소셜 네트워크에 전파되어 팔레스타인은 물론 아랍인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7]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올해의 알-아크사 충돌이 그리 예외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종교(Abrahamic Religions)[8] 공통의 성지이다. 예루살렘에서도 성전산이 핵심으로 꼽힌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창조된 곳, 아브라함이 친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 무함마드가 승천하여 천국을 보고 돌아온 곳 등 주요 역사적 이벤트가 벌어진 장소가 바로 성전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인 통곡의 벽과 이슬람의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 그리고 바위의 돔은 모두 성전산에 사이좋게 맞붙어 있다. 그런 이유로 성전산에서의 소요 사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계속되어 왔다.

우경화라는 이름의 불쏘시개

그렇다면 4월에 있었던 충돌이 전쟁으로까지 이어진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연료원과 불씨가 이스라엘 건국 이후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산불로 비유하자면 불쏘시개를 찾아야 한다. 연료원과 불씨의 만남이 언제나 산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씨와 연료원의 조우를 화재로 발전시키는 주범은 다름 아닌 산소(oxygen)다. 연료원 주변의 산소가 불씨와 반응하여 불의 크기를 키울 때 비로소 큰 불이 된다. 지난 알-아크사 충돌의 불쏘시개, 즉 산소는 바로 ‘이스라엘의 우경화’다.

우경화의 핵심에는 역대 최장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가 있다[9]. 그는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인물이다. 특히 팔레스타인 무장활동가들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친형의 사망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형인 요나탄 네타냐후(Yonatan Netanyahu)가 군 장교로서 엔테베 작전(Operation Entebbe)에 투입되었다가 사망했기 때문이다(Thomas, 2009: 144)[10].

반(反)네타냐후 동맹을 꺾고 만인지상으로 복귀했기에 자신의 정치적 노선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던 것일까? 작년말 있었던 총선에서 권토중래한 네타냐후는 최근 우(右)클릭이 더욱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선거 승리 직후 연립 정부 구성부터 극우파의 참여가 돋보였다. 반(反) 아랍을 내세운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Otzma Yehudit; OY)’, 유대우선주의 극우 정당 ‘독실한 시온주의(Religious Zionist; RZ)’와 ‘토라 유대주의연합(United Torah Judaism; UTJ)’ 등 다양한 극우 세력이 네타냐후와 손을 잡았다. 특히 우려할 점은 이들 정당에 할당된 부처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부처들이라는 점이다.

37기 이스라엘 내각에서 극우정당에 할당된 부처 목록
출처: Jewish Virtual Library

이후 네타냐후 내각은 일각의 우려대로 팔레스타인과 무슬림을 고려하지 않는 극우 정책을 연이어 펼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팔레스타인기(旗) 게양 금지, 서안지구에서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재개, 사법부 권한 축소 및 무력화, 초정통파 유대교도 지원 예산 배정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정책은 정작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전통적 우방인 미국 역시 이에 대해 우려를 표했을 정도다. 산소는 양날의 검과 같은 원소다.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과하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생명체에 필요한 산소의 농도는 40% 이하로 알려져 있으며, 고농도에 장시간 노출되면 산소 중독이 발생해 사망에 이른다. 네타냐후의 우클릭 역시 국내 정치 측면에서는 정권 유지와 내부 결속을 위해서 일정 부분 불가피한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다면 결코 옳다고 할 수 없다.

산불의 또 다른 불쏘시개, 인도적 위기

산불은 적절한 후속 조치가 없을 경우 발생한 곳에서 재발하기 쉬운 특징이 있다. 발생지에서는 토양 산성화가 급격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흙 속의 영양분이 속절없이 씻겨 내려간 탓인데 이는 새로운 생명이 자리잡는 데 방해로 작용하고, 이어 산불이 반복 발생하는 조건이 된다. 팔레스타인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1948년 제1차 중동 전쟁 이후로 영토를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제대로 진화되지 않은 낙엽 더미 속 잔불이 또 다른 산불을 만드는 것처럼 팔레스타인 문제는 항상 온전하지 않은 채로 봉합되었기 때문이다.

건국 이래 이스라엘은 적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영토 확장과 이주 유대인 정착에 열을 올렸다. 적법하고 평화로운 방법이 아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으로.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했으며,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합의가 맺어진 이후에도 서안지구에 지속적으로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왔다. 이스라엘은 위압적인 방법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사유지를 강제 몰수했으며, 국유지로 만든 후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졸지에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국제법상 보장된 원거주지 귀환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난민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런 비인간적인 과정을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은 동물원 희귀 동물을 구경하듯이 웃고 즐기며 관조한다. 연료원인 영토 문제 밑에 잔불이 계속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림 2> 팔레스타인 영토 축소와 이스라엘 영토 확장

그 중에서도 가자지구의 상황이 서안지구보다 더욱 나쁘다. 가자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은 모두 철거되었지만 사실상 거대한 교도소가 되었다. 2006년 이후 해상 통로는 통제되었고, 육상 통로는 장벽이 설치되어 몇 개의 검문소를 제외하고 완전히 차단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식량, 식수, 생필품, 전기, 의약품 등 생명 영위에 필요한 모든 자원에 대한 인도적 위기가 초래되고 있다. 한 NGO에 따르면 가자지구에 공급되는 물의 97%는 식수에 부적합하며, 전기는 하루에 12시간 이하로만 공급된다(옥스팜 2022/07/01). 게다가 가자지구의 면적은 365㎢인데 반해 인구는 237만 명이나 된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경기도 용인특례시 처인구(467㎢)보다 좁은 땅에 대구광역시 전체 인구(246만 명)에 필적하는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다. 교도소로 비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산불의 재발을 막으려면

산불의 재발은 영토 확장에 대한 이스라엘의 태도 변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제1차 중동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영토의 80%를 확보했고, 나머지 20%의 영토마저도 시나브로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않는다면, 산불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방식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극단으로 내몬다는 점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에서 극단주의자가 활동할 반경을 넓혀 주고 있으며, 결국에는 하마스의 극단화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의 의도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극단주의자, 테러분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자신들의 불법적인 영토 확장에 명분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실상 ‘두 국가 해법’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향적인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도 산불은 끊이지 않고 발생할 것이다.

모세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Deuteronomy) 26장 9절에는 “저희를 이 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저희에게 주셨다”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아랍인인 팔레스타인 주민들 역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유대인의 이주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가나안의 주인은 팔레스타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팔레스타인과의 평화와 공존이 이룩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역시 ‘젖과 꿀’을 온전히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뿌린 극단주의의 총부리는 결국 이스라엘을 정조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태도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저자소개

강원구(wgkang@hufs.ac.kr)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모로코 왕정 체제에 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단국대학교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한 바 있으며, 마그레브 정치와 사회, 걸프의 소프트 파워, 팔레스타인 문제 등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2023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A-1 유형)에 선정되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구성주의적 연구: 메가 이벤트 유치를 통한 소프트 파워 구축”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1] 현재 팔레스타인 정치 지형은 서안지구(West Bank) 통제권을 가진 파타(Fatah)와 가자지구(Gaza Strip) 통제권을 가진 하마스로 양분되어 있다. 파타는 이스라엘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하마스는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이번 공격을 주도한 것은 하마스로, 파타는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2]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비유로 사용된 산불에 대한 내용은 사이언스 타임즈의 기사를 참조했다. 사이언스 타임즈. 2004.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산불”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AA%A8%EB%93%A0-%EA%B2%83%EC%9D%84-%EB%B9%A8%EC%95%84%EB%93%A4%EC%9D%B4%EB%8A%94-%EB%B8%94%EB%9E%99%ED%99%80-%EC%82%B0%EB%B6%88/

[3] 후세인-맥마흔 서한은 1915년부터 1916년까지 영국령 이집트 주재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Henry McMahon)이 메카의 지도자 후세인 빈 알리(Hussein bin Ali) 사이에 교환된 일련의 서신을 뜻한다. 후세인은 사도 무함마드의 가문인 하심(Hashim) 출신이어서 아랍인의 대표자로 간주되었다. 이 서신에서 후세인은 오스만 제국 패망 이후 아랍 국가 건설을 약속 받았다.

[4]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1915년부터 1916년까지 영국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피코(François Georges-Picot)가 주도하여 체결한 비밀 협정이다. 이 협정을 통해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오스만 패망 이후 레반트 지역 분할에 합의했다. 그러나 협정 체결 직후 볼셰비키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면서 이 협정이 폭로되었다.

[5]  벨푸어 선언의 내막은 다소 복잡하다. 20세기 초반 영국에는 러시아에서 유입된 유대인 난민이 14만 명에 이르러 이들에 관한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더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소요되는 막대한 전비를 국고로 모두 충당할 수 없어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 Family)의 힘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통제권을 가지게 된 팔레스타인에 영국이 유대 국가 건설을 약속하게 된 것이다.

[6] 공교롭게도 아브라함 종교의 명절이 올해에는 모두 겹쳤다. 유대교의 유월절, 기독교의 부활절, 이슬람의 라마단이 모두 겹치면서 이들 사이의 충돌과 대립이 평소보다 빈번했기 때문에 알-아크사 충돌이 더욱 거세진 측면이 있다.

[7] الجزيرة. 2023. وسم “الأقصى يستغيث” يتصدر المنصات واستنكار لاعتداءات الاحتلال

https://www.aljazeera.net/news/2023/4/5/%D9%88%D8%B3%D9%85-%D8%A7%D9%84%D8%A3%D9%82%D8%B5%D9%89-%D9%8A%D8%B3%D8%AA%D8%BA%D9%8A%D8%AB-%D9%8A%D8%AA%D8%B5%D8%AF%D8%B1-%D8%A7%D9%84%D9%85%D9%86%D8%B5%D8%A7%D8%AA

[8] 아브라함 종교는 셈족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Abraham)의 유일신 신앙을 계승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을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다. 셈족 계보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장남이자 서자인 이스마엘(Ishmael)은 아랍인의 조상이며, 차남이자 적자인 이사악(Isaac)은 유대인의 조상이다. 따라서 이들로부터 비롯된 세 종교가 아브라함 종교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9] 베냐민 네타냐후는 1996년 이후 총 3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의 총 재임 기간은 올해 10월을 기점으로 16년을 돌파했고, 이에 따라 역대 최장수 이스라엘 총리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10] 엔테베 작전은 납치된 에어 프랑스 여객기를 구출하기 위해 1976년 7월 4일 실시된 대(對)테러작전이다. 텔아비브를 출발하여 파리에 도착할 예정이던 AF139편은 중간 기착지인 아테네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대원들이 주도한 테러범들에게 피랍되었다. 피랍기가 리비아 벵가지를 거쳐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착륙했을 때 이스라엘은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이스라엘군은 해당 작전에서 납치범 7명을 모두 사살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동시에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을 잃는 비극을 맞이했다. 여담으로 우간다는 20세기 초 영국이 유대인 측에 제안했던 유대 국가 설립 후보지이기도 했다.

 


참고문헌

  • 옥스팜. 2022. “가자지구: 국경 봉쇄 15년 ‘지붕 없는 감옥’” https://www.oxfam.or.kr/emergency-appeal-palestine/ (검색일: 2023. 10. 30).
  • Gordon, Thomas. 2009. 『Gideon’s Spies: The Secret History of the Mossad』. New York: St. Martin’s Griffin.
  • Jewish Virtual Library. 2022. “Israel Cabinet & Ministers: Thirty-Seventh Government” 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israel-cabinet-ministers-thirty-seventh-government (검색일: 2023.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