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근 (숙명여자대학교)
지정학 X 퀴어
최근 몇 년 사이에 ‘퀴어’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정치·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그렇다. 이 글은 최근의 몇 가지 경향들을 동아시아에서의 퀴어 지정학이라는 관점으로 읽어보고자 한다. 소제목의 X는 지정학적 요소들과 퀴어 사이의 아직 확정되지 않은 교차의 양상들을 의미한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지정학’을 다시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지정학은 학문이기보다는 남성 국가엘리트들 사이의 증강현실이었다. 자주 다툼과 경쟁으로 표현되곤 하지만 사실 지정학 담론은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그들의 연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비판지정학과 페미니스트 지정학은 기존의 지정학이 국제정치에 대한 현실주의적 분석이기도 하지만, 국제정치 자체를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권력의 실천이기도 하다는 점을 발견해왔다. 시스젠더 남성 엘리트들의 독점적 영역으로서 지정학은,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거기에 무엇이 포함되고 무엇이 배제되는가, 그리고 누가 지정학을 논할 수 있는가를 결정해왔던 것이다.
지정학은 세상에 대한 인식과 실천에 관여하는 하나의 통치적 레짐으로 작동하며, 국가영역의 안과 밖, 경계, 현실과 가상, 더 안전한 지역과 더 위험한 지역, 더 살기 좋은 곳과 그렇지 못한 곳, 더 문명적인 곳과 야만적인 곳, 친밀한 관계가 (불)가능한 자들의 목록 등 시공간의 조직화와 자기정체성에 연결되어 있다. 지정학을 이렇게 해체할 수 있다면, ‘퀴어’는 SDGs의 어딘가에 해당하는 범분야 이슈(cross-cutting issue)로서 지정학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시야를 넓힌다면 기존의 지정학 자체를 재구성(queering)하는 새로운 움직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냉전분단체제 X 퀴어
동아시아의 사회정치 구조와 국가 간 관계를 규정해 온 냉전분단체제는 퀴어와 교차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대만을 살펴보자. 매년 가을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자긍심 퍼레이드(Pride Parade)는 올해 대만의 동성혼 합법화를 기념하면서 예년보다도 성대하게 열렸다.
婚姻平等의 달성을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 “Let’s celebrate love with love”, “Asia’s NO 1 Gay Pride Parade and Party” 등의 구호를 내걸고 2·28공원을 중심으로 타이베이 중심지에서 열린 2019년 대만 자긍심 행진(Taiwan Pride Parade)에는 아시아 전역으로부터 약 20만 명이 참가하였다. 참고로 타이베이 인구는 약 265만 명이며, 최근 중국당국의 대만 여행 통제를 생각한다면 이 숫자는 큰 의미를 가진다.
이날 아시아의 첫 번째 동성혼 법제화를 축하하는 행진의 저변에는 지난 10여 년 간 국경을 넘어 맺어진 수많은 친밀성의 네트워크들이 있었다. 성소수자들의 역사적 장소인 홍로우(紅樓)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고, 타이베이의 가장 큰 호텔에서도 기념파티가 열렸다.
대만의 퀴어정치는 양안관계와 얽혀있다. 민진당 정부와 대만의 젊은 세대 대부분의 성소수자 인권과 동성혼 제도화에 대한 지지는 독립국가로서의 대만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오래된 친중세력과 독립세력의 구도 속에서 퀴어 이슈는 대만이 전체주의 대륙중국과 완전히 다른, 국제적 시간성에 동조되어 있는 민주주의 현대 국가임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대만의 가장 큰 성소수자 서킷파티의 이름이 ‘포모사(formosa)’라는 것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선다. 이미 1990년대부터 대만의 진보적 아카데미는 ‘퀴어’ 이슈를 진보정치 속에 담론화해왔으며, 독립국가를 꿈꾸는 젊은 세대는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중국정부를 비판하며 퀴어를 그들의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여 왔던 것이다. 2년 안에 동성혼 관련 법규를 만들라는 2017년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대만입법원(국회)은 2019년 5월 17일, 반대파가 제출한 ‘동성간 시민결합’ 등 ‘결혼’이 아닌 형태의 입법안 등을 놓고 ‘결혼’이 들어간 가장 진보적인 법안을 최종 채택했다. 이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이 제도화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서 2019년 기준으로 28개 국가가 동성혼을 인정하게 되었다. 후보시절부터 동성혼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던 차이잉원 총통은 법안 통과 직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사랑이 이겼다’고 축하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시민들의 축하 속에 수천 커플이 결혼을 신고하였다. 대만의 이러한 행보는 권리의 정치를 넘어 앞으로 (동)아시아 퀴어정치에 어떤 이정표로 기능할 것이다.
퀴어는 냉전분단체제의 희생물이기도 하고, 그것을 깨뜨리는 힘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는 기본적으로 진보와 보수 양 진영 모두에게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정치에서의 무관심은 한국사회가 성소수자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냈고, 성소수자 혐오는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담론을 계기로 더욱 조직화되었다.
특히 보수집단은 성소수자 이슈를 진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종북게이’)으로, 그리고 보수적 종교·정치 세력 내부의 차이를 봉합하고 단결시키기 위한 하나의 위기담론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시우, 2018). 수년째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반대편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부채춤을 추고 북을 두드리며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그리고 한 손에는 태극기 다른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하느님의 심판”, “Park Won-Soon OUT”을 외치는 사람들은 퀴어가 냉전분단체제와 어떻게 교차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에게 퀴어는 ‘안보’와 ‘전통’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이념적·실천적 죄악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찬양하는 미국은 대사관 차원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한국의 소도미법(군형법 제92조의6)이 참조하였던 미국의 소도미법은 이미 위헌으로 폐지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퀴어는 냉전분단체제와 교차하면서 기존의 냉전지정학이 결국 그들만의 퍼포먼스일 따름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한편 퀴어이슈에 무관심과 소극적 태도로 대응했던 진보세력에 대한 젊은 세대와 성소수자들의 실망과 비판이 이어졌다. 최근까지도 일부 진보세력은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등의 태도로 일관해왔다.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생명의 문제라는 주장 앞에 “나!중!에! 나!중!에!”를 외치기도 했다.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에 항의하며 퀴어들이 서울시청을 점거했을 때 이들을 비판하였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적어도 현실정치의 측면에서는 냉전분단체제에 종속되어 있으며, 이 복잡한 교차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중요한 퀴어정치의 과제로 남아있다.
자유주의 X 퀴어
그런가 하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및 젠더표현, 성적 특징에 기반한 차별의 철폐 및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국제적 규범의 형성은 동아시아 국가들을 더 선진적-문명적인 곳과 그렇지 못한 곳으로 위계화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엔 인권이사회는 국가별로 매 4.5년마다 성소수자를 포함한 인권현황에 대해 보고(UPR)받고 있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한국정부가 방기하고 있음을 매번 지적하고 있다.
Human Freedom Index, Rainbow Europe 등의 인덱스는 성소수자 인권친화적인 제도가 얼마나 마련되어 있는가에 따라 국가를 서열화한다. UNDP와 세계은행은 2019년 3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의제에 맞추어 51개 지표로 이루어진 “LGBTI inclusion index”를 제안하였다. 앞으로도 성소수자 인권 의제는 국가경쟁력의 주요한 지표로 점점 더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은 사회일수록 성소수자 차별은 공고하게 나타난다. 이 말은 민주주의가 발전된 국가에는 성소수자 차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잘 보장된 국가들에서 성소수자 차별은 철폐되고 있으며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이나 소도미법의 폐기 등의 가시적 노력이 없는 한, 아마도 이러한 지표들에서 한국은 세계의 중하위 어디쯤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와 같은 국제적 압력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응하는 방식들은 흥미롭다. 동성혼의 제도화가 퀴어정치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효과들은 또 하나의 퀴어 지정학을 구성한다. 최근 뉴질랜드 대사 부부를 동성혼 관계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보여주었던 한국정부의 태도는 국제적 시간성이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위치되는가를 보여준다.
뉴질랜드 대사는 청와대 리셉션에 자신과 배우자를 초청해준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지만, 외교관 동성배우자 인정 지침 개정과 이 사건을 홍보하는 데 있어 정부는 매우 소극적으로 임했다. 참고로 한국 정부(‘진보’든 ‘보수’든)는 유엔과 같은 ‘외부’ 활동에서는 성소수자 인권보호 결의안 같은 것에 매번 찬성하면서도 국내에서는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부양자로서 외부에서는 국익을 위해 국제적 흐름에 동조하지만, 내부에서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바꾸는 것은 내가(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몫이라는 철저한 자유주의적 태도이다.
‘선진국’과 한국의 ‘낙차’라는 것은 명확한 시공간적 분리(역사,지리,민족,전통…)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낙차’의 위상학적 관계를 만드는 것은 다층적 레벨에서 작동하는 자유주의(적 주체들)이다. 그렇다고 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퀴어와 반대되거나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교차되고 어떤 효과들로 이어지는가가 중요하다.
한편 올림픽을 앞 둔 일본은 벌써 26개의 지자체가 동성 파트너쉽을 인정하는 조례를 제도화해왔다. 2016년 후생노동성은 직장내 ‘성희롱(セクハラ)’의 범위를 LGBT 등 성소수자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일본의 기업들도 성소수자 친화적인 일터와 쇼핑공간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것들은 자유주의적 제스처에 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자민당 중의원은 2018년 방송 인터뷰에서 “동성애는 개인의 기호, 취미와 같은 것이며, 따라서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는 있어도 (차별금지나 동성혼 등을) 합법화할 필요는 없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동성혼 이슈는 일본 보수세력의 오래된 염원인 헌법9조 개헌과 연결되기도 한다.
올해 초 시모무라(下村博文) 자민당 중의원(자민당헌법개정추진본부장)은 헌법개정에 야당을 포섭하기 위한 제스처로 개헌시 동성혼 논의도 포함시킬 수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결국 이는 여당내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일본은 여전히 G7국가 중 유일하게 동성혼을 법제화하지 않은 나라이며, 이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 여기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정권 연장을 협상하는 카드이다. 퀴어정치는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아시아 국가들의 다양한 대응들은 그것이 국제적 규범이나 트렌드, 혹은 앞선 시간성에 얼마나 동조되어 있는가의 평가와 상관없이, ‘더 안전한/문명적인/진보적인/살기 좋은’ 곳과 ‘더 위험하고/야만적인/후진적인/살기 나쁜’ 곳의 위계와 같은 지정학적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평가되든 국가의 대응은 퀴어들의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리스트에서 한국은 어디에 위치할 것이며,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경학 X 퀴어
지난 10여 년 간 동아시아에서 성소수자들의 인적·물적·정보의 초국경이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해왔다. 각 사회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 형태를 만들어왔다. 자국내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발전해 온 핑크산업들은 이제 외국인을 주요한 소비자로 설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흥업소뿐만 아니라 패션잡화, 예술공예품, 음식점과 카페, 헬스클럽 등 다양한 서비스 상품들, 정보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 핑크경제의 발전 정도와 자본의 크기는 해당 국가의 경제규모와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가시적인 격차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경학은 아시아 각국을 이동하는 몸들의 형태와 연결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성소수자 초국경 이동은 시스젠더 남성 동성애자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으며, 이는 그들이 다른 집단들 – 예컨대 여성 동성애자나 트랜스여성 등 – 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제적 독립성과 남성연대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패싱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것은 아시아 사회의 젠더불평등으로부터 기인한다.
먼저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최대 규모로 핑크경제가 발전해왔다. 이미 1970년대 초부터 성소수자들을 위한 상업적 잡지가 나타났으며,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성장하였다. 따라서 일본의 성소수자 문화와 산업의 형식들은 – 예컨대 가라오케 바나 남성성의 스타일들 – 한국과 대만 등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본의 화보·잡지, 만화, 성인물 등 게이·야오이 컨텐츠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오가며 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졌으며, 오랜 기간 동아시아 각국의 성소수자는 직접 연결되기보다는 일본을 정점으로 한 위계적 산업구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인터넷과 개인여행의 증가, 그리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발달은 이것을 보다 수평적인 관계들로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까지 시야를 넓힌다면 여전히 내셔널리티와 경제력 차이가 아시아 지역내 수직적 관계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중국은 최근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배타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핑크경제 자체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 중국정부는 성소수자가 시민권적, 정치적 주체로 나아가지 않고, 사적인 영역에 행위로서만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동성혼은 물론이고 퀴어 이슈가 어떠한 담론이나 모임이나 가시적인 어떤 것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고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이래 퀴어 관련 기사나 미디어 콘텐츠가 크게 줄어가고 있으며, 모든 미디어를 관리·통제하는 국가광전총국(SAPPRFT)은 2017년 동성애 묘사를 금지시켰다. 2018년에는 처음으로 ‘성적지향’이란 단어가 <정보안전기술 개인정보안전규범>이라는 국가 공식문서에 포함되게 되면서, 국가가 개인 동의 없이 수집할 수 있는 개인정보의 하나로 정립되었다. 2018년 중국의 가장 큰 SNS인 웨이보는 중국 사이버보안법에 따라 “정화” 캠페인을 벌여 동성애 콘텐츠를 삭제하다가 큰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성소수자 시민단체의 등록도 거부된다.
특히 2018년 광저우 당국의 관련 사회단체 두 곳을 강제적으로 해체하고 활동을 중지시킨 사건은 중국 당국이 성소수자의 정치주체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순적인 것 같지만, 이러한 배경 속에서(에도 불구하고) 중국 대도시는 이미 아시아 게이씬과 서킷파티의 중요한 장소들이 되었으며, 중국에서 개발한 남성 성소수자 데이팅 어플은 아시아 지역내 가장 큰 사용자와 자본력을 가지고 있다. 이 어플의 개발업체는 중국 각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지역 내의 이벤트를 조직하거나 투자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란이 있기도 했다.
초국경 친밀성 X 퀴어
2000년대 이래로 아시아 지역의 퀴어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친밀성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왔다. 이것은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냉전과 내셔널리즘 등 오랜 기간 ‘내셔널리티’를 중심으로 굳어버린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제도적-심리적 장벽들을 뛰어넘는 움직임이었다. 초국경적 만남과 우정, 연대와 사랑, 그리고 같은 삶의 방식의 공유는 기존의 지정학을 허물고 그것의 가치를 되묻고 있다.
전통적인 ‘퀴어’ 담론의 틀로 본다면 이러한 현상들은 퀴어정치라기보다 정체성 정치의 한계로 인식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만남과 친밀성이 가져올 효과들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꼭 그럴 필요도 없다. 물론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지경학적 측면들, 즉 젠더와 경제적 차이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낭만화시키는 것은 위험한 주장일 수 있다. 다만 제한적이나마 이 현상이 가지는 의미는 기존의 지정학적 상상들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 그리고 “삶의 방식으로서의 우정friendship as a way of life”(Foucault, 1981)2)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퀴어 미래성queer futurity”(Munoz, 2009)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
아시아 초국경 퀴어 친밀성은 다양한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먼저 가상공간은 서로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되었으며, 특히 SNS는 퀴어들이 국경을 넘어 손쉽게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는 종종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의 SNS 이용이 국가에 의해 통제된 중국 퀴어들과의 네트워킹 제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태국, 일본, 대만, 중국, 한국의 대도시에서 번갈아가며 개최되는 서킷 파티Circuit Party와 같은 상업적 이벤트 또한 특정 퀴어 집단들에게 있어 국적, 인종, 계층, 세대를 넘어 서로 만나 신나게 즐길 수 있는 한시적 시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각국 당사자운동이나 시민단체 간의 연대도 중요한 축이다. 활동가들은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한국, 대만, 일본의 자긍심 퍼레이드에 교차하여 참여한다. 2019년 8월 한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국제단체 중의 하나인 국제성소수자협회(ILGA)의 아시아지역 컨퍼런스가 “운동을 연결하기3)”라는 주제로 열리기도 했다. 도쿄의 20대 10명 중 1명이 외국인일 정도로 젊은 아시아 이주자가 급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2017년 재일 외국인 남성 성소수자들의 고립을 해소하기 위한 자조모임 ‘Not Alone Cafe’가 결성되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국적과 출신지역을 떠나 같은 퀴어 정체성을 기반으로 자발적인 도움과 연대의 장을 마련해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지역 퀴어 예술가, 창작자, 연구자들의 교류와 공동작업도 최근 빈번해지고 있다. 2015년에 시작되어 올해 5회차로 개최된 서울프라이드페어에는 외국인 팀을 포함하여 80여팀의 창작자, 예술가 집단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퀴어 당사자성의 협소한 틀거리 너머 퀴어적 세계관의 형질전환에 연결”되는 한편 “동시대적 연대의 표현”을 만들어가고 있다(남웅, 2019)4).
지식권력 X 퀴어
마지막으로 한국 아카데미에서 ‘퀴어’의 위상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퀴어queer는 영미권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90년대를 전후로 아카데미와 문화예술계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이성애규범적인 사회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성찰과 자기긍정의 용어가 되었다. 알려져 있듯이 ‘Queer theory/studies’는 이미 서구권 아카데미에서 가장 섬세하고(복잡하고!) 첨단적인(이해하기 어려운!) 논의지형과 학제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그 논의지형의 변두리에서 그것의 뒤를 쫓고 있으며, 그 시간적, 지리적, 언어적 격차는 퀴어 연구자들에게 ‘멜랑콜리’라는 정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정민우, 2012).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작 된지 30년이 된 퀴어연구가 한국의 아카데미 안에 위치하고 있는 모습은 참담할 정도이다.
본래 학제간·융합적 분야이기는 하지만, 대학이나 연구소 어디에도 퀴어연구를 하나의 제도적 교육과정이나 연구 아젠다로 설정한 곳이 없다. 관심과 수요는 높은데 그것을 강의하고 연구할 사람들에게는 안정적이고 정당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퀴어연구는 여전히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무게감 없는 ‘취미’와 같은 연구영역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퀴어’라는 용어 자체는 적어도 아카데미에서조차 낡은 지정학의 희생물인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과 아시아의 연구자, 활동가, 예술가들은 지난 10여 년 간 ‘퀴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왔다. 예전부터 사용해왔던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바이’ 또는 ‘성(적) 소수자’는 분명히 사회운동과 권리주장의 차원에서 매우 효과적이며, 또 그 의미도 분명하다. 그에 비해 ‘퀴어’는 의미도 불분명하고, 논란도 있으며,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용어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점점 더 ‘퀴어’를 이야기할까?
그것은 필자가 이 글 전체에서 필요에 따라 LGBT와 성소수자와 퀴어를 선택해서 사용한 전략적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퀴어함queerness은 기존의 성소수자 범위를 넘어, 보다 다양한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제한하고 구조화해왔던 기존의 지정학을 넘어, 또 다른 가능성들, 또 다른 관계들, 또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들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저자소개
전원근(wonggui@sookmyung.ac.kr)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1970년대 국토경관의 사회적 구성”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시아에서 섹슈얼리티, 공간, 친밀성, 과학기술이 안보의 정치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현상들에 관심이 있다. 연구로는 “1980년대 「선데이서울」에서 나타난 동성애 담론과 남성 동성애자들의 경험”(2015), “1970년대 국가 프로젝트로서 ‘땅굴’과 전방의 냉전경관화”(2019) 등이 있다.
1) www.hani.co.kr/arti/PRINT/914654.html
2) caringlabor.wordpress.com/2010/11/18/michel-foucault-friendship-as-a-way-of-life/
3) 류민희, “운동을 연결하기” – 제8회 일가 아시아 컨퍼런스를 마치며, 웹게시글
hopeandlaw.org/운동을-연결하기-제8회-일가-아시아-컨퍼런스를-마/
4) 남웅, 동시대 퀴어/예술의 예속과 불화: ‘퀴어’,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웹게시글
www.zineseminar.com/wp/issue02/동시대-퀴어-예술의-예속과-불화/
참고문헌
- 시우, 2018, 퀴어 아포칼립스: 사랑과 혐오의 정치학, 현실문화
- 정민우, 2012, 퀴어 이론, 슬픈 모국어, 문화와 사회 13, pp,53-100.
- Jose Esteban Munoz, 2009, Cruising Utopia: The Then and There of Queer Futurity (Sexual Cultures), NewYork University Press.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