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리(이민정책연구원)
필리핀-한국 사람 이동성의 동력
필리핀과 한국 간 사람의 이동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양국 간 임금이나 생활비 격차를 들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6월말 기준으로 취업 자격[1]으로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필리핀인은 총 28,530명이다. 필리핀인의 해외 취업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필리핀인들에게 해외 취업은 아주 예외적인 삶의 선택은 아니다. 수많은 직업소개소가 경쟁적으로 해외의 일자리를 알선하고 있어 필리핀인의 해외 취업은 여느 때보다 용이하다.
필리핀인들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일하기 시작하는데[2], 현재 필리핀인들이 아시아 지역에서도 한국을 선호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때문이라고 한다. 2017년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고용허가제(E-9)을 통해 한국에 취업하고 있는 필리핀 노동자의 78.4%가 높은 임금 때문에 한국을 취업지로 선택했다고 응답하였다. 한국은 2004년 외국인 취업에 대한 정책을 정비하면서 최저임금과 같은 노동자 보호 조치를 하였고, 이것이 강력한 유인책이 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에게 필리핀은 사업, 교육 등 다양한 목적지로 고려되고 있는데, 저렴한 인건비, 교육비, 생활비가 유인책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저렴한 비용이 이점으로 작용한 것은 1990년대 이후로 그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삶의 궤적을 살아온 한국인들이 소규모로 필리핀을 찾았다.[3] 1990년대 들어서 한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한국 중소기업의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한국인의 필리핀 방문도 잦아졌고,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필리핀에서 소자본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 소자본 개인 사업자들도 필리핀으로 이주하였다.
필리핀에 한국 기업들의 직접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북부 수비크 지역에 한진 공업과 그 협력업체들이 진출하면서부터이다. 최근에는 포스코건설, 두산중공업 등 대기업도 필리핀의 건설공사에 진출하고 있다. 2018년 기준 대필리핀 한국 투자액은 총 4,846만 달러이고, 투자국 순위로 볼 때 10위 정도의 수준이다. 같은 해 기준 투자액 측면에서 가장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 분야는 제조업(54.3%)이고, 다음으로 건설업, 부동산업 순이다.
필리핀은 또한 한국인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를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영어로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국민의 비율은 높지 않지만,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하 영어가 교육 언어로 채택이 되었고, 정부 문서는 주로 영어로 되어 있다. 1990년대부터 조기유학의 목적지로 필리핀이 부상하였는데, 필리핀은 한국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하는 ‘기러기 아빠’들도 쉽게 필리핀에 있는 가족을 방문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도 하다.
또한, 한국 청년들은 영어권 국가에서 본격적인 어학연수를 시작하거나 호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참여하기 전에 필리핀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받고 있는데,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와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 어학연수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기본적인 영어 학습을 하는 것이다. 한국 청년들에게 필리핀은 온전히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되기 전에 준비하는 디딤돌 같은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한국인들에게는 휴양지로 잘 알려진 세부에 있는 영어학원 중 60%가 한국 학생들을 위한 학원이라고 한다.
대중매체를 통해 필리핀과 한국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이 역시 양국 간 사람의 이동을 촉진하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와 가요 등이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인기로 인해 필리핀에서는 한국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한국 전자제품, 식음료품, 패션 용품, 미용용품 등에 대한 관심과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더 페이스 샵, 네이처 리퍼블릭과 같은 로드숍 브랜드들이 필리핀 쇼핑몰에 다수 입점해 있고, CJ는 필리핀 홈쇼핑 시장에 진출하여 한국 제품을 필리핀에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리핀인들에게 한국은 한 번쯤 꼭 방문해 보고 싶은 국가로 꼽힌다.
반대로 필리핀은 한국인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질 좋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장소로 인식되기도 한다. 여행업체는 여름에 세부나 보라카이 여행상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필리핀에서 휴가를 보낸 사람들이 SNS를 통해 휴양지에서의 경험을 전달하면서 필리핀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1985년 이래 필리핀에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 수는 계속 증가했는데, 1989년 한국 정부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1990년대 이후 특히 필리핀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증가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관광객 수가 급감하기는 했지만, 이후 점차 증가하여 2000년에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2006년부터 한국인은 필리핀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2018년에는 필리핀을 방문한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이 23.6%를 차지하였다. 최근에는 필리핀에서 활동해 온 산다라 박, 그레이스 리 등 한국 국적 방송인들이 필리핀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하면서 필리핀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주고 있기도 하다.
필리핀과 한국 정부의 직접적인 유치정책이 양국 간 사람의 이동을 촉진하기도 한다. 한국은 현재 ‘고용허가제’로 불리는 제도를 통해 외국인이 단순노무직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전 세계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취업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고, 필리핀을 포함한 아시아의 16개국을 대상으로 취업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 필리핀과 한국 간 사람의 이동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더불어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한국은 국가 정책적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는데,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 초청 장학금(Global Korea Scholarship) 등을 지급하고 있다. 2018년 4월 1일 기준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필리핀 유학생은 총 657명이고, 이 중 98명은 (전문)대학 재학 중이고, 389명은 대학원 재학 중이다. 그 외에는 한국에서 어학연수(96명)와 기타연수(74명) 중이다.
반대로 필리핀 정부가 한국인만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은 부재하지만, 한국인들은 필리핀 정부가 신설한 ‘은퇴자’를 위한 특별 거주 비자(Special Resident Retiree’s visa)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50세 이상인 자는 연금이 있는 경우 1만 달러(약 1,200만원) 이상,[4] 35~49세에 해당하는 자는 5만 달러 이상을 필리핀 은행에 예치하면 필리핀에 제한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은퇴비자 소지자는 가족 동반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인은 은퇴비자를 신청한 후에 자녀의 유학과 연계하여 이주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필리핀 내 한국인 유학생 규모는 2008년 4월 초 기준 1,923명이었고, 그 규모는 2014년까지 증가 추세였지만, 이후에는 연도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통계 집계기관이 달라 대상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2017년 4월 초에는 13,257명인데 반해 2018년 같은 시기에는 900명 수준에 머물렀다.[5] 은퇴자 비자의 연령층이 실제 은퇴 연령 인구와 다르기 때문에 30~40대 중에도 해당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가는 경우도 있다.
한국 정부 역시 한국에서 필리핀으로의 이주를 정책적으로 촉진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정부가 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해외 취업을 지원, 홍보하고 있다.(K-Move 스쿨, WorldJob+ 등), 필리핀은 한국 정부가 선정한 ‘해외 진출 유망국가’ 15개국에 속하지는 않지만, 필리핀 취업을 희망하는 한국 청년들을 위해서 정례적으로 취업박람회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취업을 목적으로 필리핀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한국 청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일정 기간 일을 한 후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필리핀인들도 포함된다. 현재 한국 정부는 단순노무직 종사자로 분류된 외국인 노동자의 ‘한시적’ 취업만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취업 기간이 만료된 이들은 의무적으로 한국을 떠나야 한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따라 한국인과 필리핀인들은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이동하고 있다.
필리핀과 한국 간 사람의 이동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양국에 정착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이다. 한국인의 필리핀행 이주, 그리고 필리핀인의 한국행 이주가 본격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간 외교적 관계가 수립되면서부터였다. 1946년 7월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필리핀은 1949년 3월 한국과 수교를 맺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필리핀은 UN군의 일환으로 7천여 명의 병력을 남한에 파견하였고, 전후 복구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 중에서도 한인의 규모가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필리핀 내 한국 관련 사업을 통해, 그리고 한국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면서, 양국 간 사람, 상품 등의 이동을 촉진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에 정착하는 필리핀 출신자 중 다수를 차지하는 집단은 한국인과 가정을 구성한 사람들이다. 국내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0년 필리핀 여성과 한국 남성 간 혼인 건수는 1,174건이었고, 2012년 2,216건으로 증가했다가 지난 몇 년간 850여 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필리핀 남성과 한국 여성간 혼인 건수는 2007년까지 30건 미만이었는데,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80건을 기록하여 최근에야 큰 변화를 보인다. 이들은 필리핀 혹은 한국에 정착하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동성은 그들의 중요한 삶의 방식이 되고 있다. 한국은 가족초청 이민을 허가하고 있지 않지만, 양육 등의 필요가 있을 때 필리핀에 있는 가족구성원들이 한국에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필리핀인-한국인 비이동성의 기제
한국 정부는 노동력이 부족한 산업 분야 필리핀인을 포함한 16개 아시아 국가 출신자의 취업을 허가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취업인구를 무한정 확대해 주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연간 산업별 할당량을 정해서 국내 노동시장에 부정적인 영향(내국인 일자리 침해, 근로조건 저하)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규모를 조절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운영방식에 따르면 외국인이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에 따라 지난 15년간 한국에 입국한 필리핀인은 2004년 832명에서 2009년 9,183명으로 급증하였다가 2014년 이래 4천~5천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운용방식으로 인해 수많은 필리핀인들이 한국어 능력시험에 통과하지만 정작 한국에 실질적으로 취업할 기회를 갖지는 못한다. 더불어 한국 정부는 국내 노동시장을 고려하여 외국인이 취업할 수 있는 분야를 법으로 정하고 있는데, 가사 분야에서는 중국 출신 한인이나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외교관의 가사노동자 등)를 제외하고 외국인의 취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필리핀이 영어 학습지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필리핀인들은 영어 회화 강사로 취업을 할 수 없다. 국내에서 외국어를 교육하는 강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회화 사증(E-2)을 취득해야 하는데, 필리핀인에게는 해당 사증/체류 자격이 발급되지 않는다. 이러한 법규정으로 인해 한국에서 취업하려는 모든 필리핀인들의 욕구는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관심 증가로 필리핀인들은 한국 방문을 희망하고 있지만, 임금 격차라는 취업 유인책으로 인해 소위 ‘선의’의 관광객조차 이동성에 제약을 받고 있다. 즉, 필리핀에 방문하고자 하는 한국인과 달리, 한국에 방문하려는 필리핀인은 59일 체류기한의 단수 관광 사증(C-3)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은행 잔고 등 각종 서류가 필요하여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6] 예외적으로 단체 관광인 경우에는 입국이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한국 관광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필리핀 입국자의 규모는 1987년 16,354명에서 51,145명으로 급증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는 하지만, 한국인의 필리핀 입국 규모에 비하면 크게 증가하고 있지는 않다.
필리핀 정부는 한국인을 관광과 투자 유치의 관점에서 이들의 이동을 지속적으로 촉진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한국인의 대량 유입에 저항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오래전 신문기사이기는 하지만, 필리핀 언론들은 한국인의 필리핀 방문 및 거주 증가, 한국인 마을의 형성을 ‘침략(invas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2007년 필리핀의 한 언론에 “한국인 증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Uncertainty Over the Growing Korean Presence Triggers Tensions)”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대한항공의 한국 인천-필리핀 클락 노선이 신설된 2003년 10월 말 이래 백만 번째 한국인 여행객을 성대하게 맞이한 사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이 기사는 한국인들이 필리핀에 관광을 오고, 어학연수를 하지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휴양 시설을 이용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어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결국 한국인의 유입이 필리핀인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7]
더불어 한국인의 투자와 비즈니스가 필리핀의 환경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한국인들이 필리핀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고립된 채로 생활하고 있다는 점 역시 한국인의 유입에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한인 소비시장이 필리핀 지역 상권과 접합점이 없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한인사회는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존재로 비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 저렴한 교통수단의 확충 등으로 인해 한국인에게 필리핀은 언제든 방문할 수 있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러한 이동의 자유가 실제 이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전파되는 필리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비이동성의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필리핀이 한국인들에게 이국적인 휴양지이자 은퇴 후 노년을 보내는 장소, 그리고 단기 영어연수 및 조기유학을 위한 목적지로 알려졌지만, 동시에 필리핀은 치안이 불안정한 국가라는 인식이 한국인들에게 팽배해 있다. 필리핀이 한국인 범죄자의 도피처로도 유명하기에 필리핀인이 개입되지 않은 한국인끼리 벌이는 사건도 적지 않지만, 총기 소지가 허용된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표적으로 하는 납치와 살인이 지속되면서 급기야 한인 파출소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한국 청년층의 해외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WorldJob+ 홈페이지에는 취업 목적지의 정보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다른 국가들의 경우 일반적인 치안 정보가 소개되는데 비해 필리핀의 경우 한국인을 특정한 사건·사고가 기록되어 있다.
이동성의 시대,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
2019년은 한국과 필리핀 수교 7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지난 70여 년간 필리핀과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이동을 통해 심리적 거리를 단축해 왔다. 필리핀과 한국 간 이동의 공간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전략, 낭만이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물론 우리는 이동성의 불균형을 목격하고 있고, 이러한 이동성에 저항하는 기제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이동성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일한 필리핀인들은 한국 정부의 취업허가 기간이 지나면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일부는 필리핀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있기로 결정하기도 한다. 필리핀으로 돌아가 일반 필리핀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된다면 한국에서 받는 급여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일을 해야 하고, 그나마 한국어 등 한국 경험을 활용하고 근로조건이 나은 직장에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필리핀 현지에서 유학을 한 한국 청년, 한국에서 유학한 필리핀 청년 등 양국의 교육 및 사회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을 떠난 후에도 또 다른 해외 취업을 알아보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인 이들에게 한국은 계속 머물고 싶은 장소가 된다.
2017년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비전문취업(E-9) 필리핀 노동자의 81.2%가 취업 기간 이후에도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더불어 한국이 공식적으로 외국인의 취업을 허가하기 전인 2000년대 초까지 한국으로 이주하여 오랫동안 한국에서 일을 하고, 가족생활을 해온 필리핀인들은 수년째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자녀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친구들도 모두 한국에 있으며, 한국에서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필리핀으로 돌아갈 경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지만, 자녀가 필리핀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도 걱정되고, 한국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이들은 선뜻 필리핀으로 돌아갈 결정을 내리지 못 한 채 수년째 한국에 머물러 있다.
저자소개
최서리(sr.choi@iom-mrtc.org)는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노동이주에 관한 글로벌 동향, 정책수단, 정책평가를 주요 연구주제로 하고 있다. 필리핀인의 국제이주에 관한 저서로는 「국내 이주민의 취업 및 사회생활: 필리핀 출신자를 중심으로」(2016), 「Migratory Experiences of Filipinos in Korea and Their Return to the Philippines」(2018), 「The Philippines-Korea and Philippines-Taiwan Migration Corridors: A Comparison of Recruitment Systems and Their Outcomes」(forthcoming) 등이 있다.
[1]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제23조 기준
[2] 1980년대 필리핀인의 해외 취업이 활발해지면서 아시아 각국에서 음악밴드나 가수, 무용수, 가사노동자로 취업하는 필리핀인들이 증가하였는데, 한국에도 연예 사증을 받아 필리핀 음악밴드가 들어왔다.
[3] 김민정(2014)에 따르면 1970년 이전 필리핀으로 이주한 한인들은 일본 식민지하에서 군인 신분으로 필리핀에 방문하였거나, 일본으로부터 독립 후 유학이나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필리핀에 이주하거나, 한국전쟁 이후 필리핀 군인 등과 결혼한 경우로 알려져 있다. 1970-80년대 이주한 한국인들은 한국 기업의 필리핀 진출로 주재원으로 이주하였거나, 국제 지구나 외국기업에 근무하던 사람들, 유학생이나 선교사 신분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4] 연금이 없다면 2,400만원 이상
[5] 한국 교육부 자료 참조. 2017년은 필리핀 이민국 제공 통계이고, 2018년은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 제공 통계이다.
[6] 한국을 최근 4년 이내 1회 이상 방문한 사람, 전문직 종사자, 연간 1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 등에 대해서는 복수사증도 발급하고 있다.
[7] 한국인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이들을 고객으로 한국인들은 필리핀에서 여행업, 숙박업, 음식점업 등에서 비즈니스를 해오고 있다.
참고문헌
- 김동엽. 2009. “동남아 은퇴이주의 실태와 전망: 필리핀을 중심으로.” 동아연구 57, 233-267.
- —–. 2018. “이주 시기와 형태에 따른 필리핀 한인동포의 국가 정체성 연구.” 동아연구 75, 287-317.
- 김민정. 2014. “한국과 필리핀 ‘사이’: 세계화정책 이전 필리핀의 재외한인과 결혼이주.”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299-231.
- 박현식. 2013. “필리핀 베이비부머 교민의 성공적 노후준비.”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3(10): 302-312.
- 교육부. 2018년 국내 고등교육기관 외국인 유학생 현황
- 코트라(KOTRA), 2018년 대필리핀 외국인직접투자(FDI) 동향
- 통계청, 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E-9) 국가별 도입현황
- 한국관광공사, 국민해외관광객 주요 행선지 통계’
- Eulsub Song, “Migration of South Koreans to the Philippines: Its History, Challenges and Impact.”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Science and Humanities Research, 6(2): 764-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