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 사회와 카스트
인도 사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단연 ‘카스트(Caste)’일 것이다. 인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인도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매체에서 보고 들었던 기억으로, 카스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도’에서 제일 먼저 연상되는 단어이다.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인도를 연구하고 통치했던 영국의 학자와 행정가들이 카스트를 ‘인도를 이해하는 사회학적 열쇠’라고 규정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인도 사회를 카스트 사회라고 이해 또는 오해해 왔다(Cohn, 1987).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카스트를 혈통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제도, 세계화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인도의 오랜 악습, 인도 저발전의 원인 등으로 생각하고 있다. 카스트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은 카스트를 처음 연구한 서구인들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으며, 식민지 시대 이후 인도를 이끌어 온 지식인들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해 왔다. 특히 민족주적 지식인들이 독립운동을 진행하고 인도공화국을1) 건설하던 국가형성기에 카스트는 인도의 발전을 저해하는 방해물로 여겨졌다. 비빤 짠드라와 같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는 카스트를 ‘사회분열의 원인’으로서 단결된 민족감정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Chandra, 2009). 식민지 시대에는 이와 더불어 평등주의와 종교적 박애주의에 입각하여 카스트가 출생에 의한 불평등이라는 반민주적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는 비판도 널리 호응을 얻었다. 특히 현존하는 불가촉천민제는 인도의 사회개혁가들과 영국 행정가들의 문제의식을 자극하였다. 카스트 제도 중에서도 인간의 태생적 불평등이 가장 극적으로 강조되는 비인간적인 부분이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과 착취였기 때문이다.2)
식민지 시대의 할당제와 논란
카스트 제도에서 기인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인도 지식인들은 오랫동안 사회개혁운동을 추진해 왔다. 많은 하층카스트 성원들이 교육과 계몽의 결과 반(反)카스트 운동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던 영국 행정가들도 미약하나마 교육과 사회정책을 통하여 카스트와 불가촉천민제에 의한 불평등한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하였다. 할당제를 도입하여 법제화고, 이를 통하여 교육받은 하층카스트 출신들을 행정과 입법에 참여시킨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인도의 식민정부가 카스트에 근거한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최초로 마련한 정책은 19세기 후반 마드라스(Madras) 정부가 교육기관에 제공한 보조금이었다. 피억압계급의3) 학생들을 위해서 특별 교수진을 제공하는 교육기관에 대하여 재정보조를 해 준다는 이 규정은 당시 상층카스트의 회피로 인하여 일반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기 어려웠던 하층카스트 학생들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었다. 1921년에는 주(州) 입법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주정부의 공무원 임용 시 비브라민(non-Brahmin)에게4) 일정 비율을 할당하는 조치를 취했다. 비브라민에 대한 할당제는 사실 영국 식민정부보다 지방의 군주국에서 먼저 시도되었다. 여러 가지 진보적인 사회개혁 조치를 취하던 마이소르(Mysore) 왕국은 1919년 위원회를 발족하여 할당제를 제안하였고, 1921년에는 정부 관직의 1/2을 비브라민에게 할당할 것을 명령했다.
1919년 인도정부법(Government of India Act, 1919)은 피억압계급의 정치적 역량 강화를 위한 입법은 포함하고 있지 않았으나, 다른 소수집단에게는 할당제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후 1930년부터 1932년까지 런던에서 열린 일련의 원탁회의에서의 토론과 뿌나협정(Poona Pact)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사회적 합의가 1935년 인도정부법(Government of India Act, 1935)에서 약 9.3%의 지정카스트(이전의 피억압계급)의5) 할당의석을 인정하는 단일선거구제라는 형태로 법제화되었다.6)
교육과 임명직 공무원과 같은 직업 분야에도 할당제가 적용되었다. 피억압계급에 대한 교육기관에서의 할당은 일찍이 1892년에 처음으로 허용되었고, 이어 하층카스트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교육 분야에서의 할당은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의 0%에 가까웠던 피억압계급의 문자해독률은 1921년에 남여 각각 6.7%와 4.8%로 상승하였으며, 하층카스트 학생들을 수혜자로 하는 장학금 수여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Sharma, 1982).
피억압계급의 교육수준의 향상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할당정책이 시행된 분야는 관료의 등용이었다. 1934년 식민정부는 신규 채용되는 행정직 중 25%를 무슬림에게, 8.3%를 지정카스트를 포함한 여타의 소수계층에게 할당하였다. 1931년 센서스에 의하면 피억압계급은 전체 인구의 12.5%로(Government of India, 1933), 당시까지는 인구 비율에 따른 할당제가 확립된 것은 아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지정카스트에 대한 할당이 행정직뿐 아니라 군대와 경찰의 채용에까지 확대되었고, 1946년부터는 할당비율도 인구비율에 따른 12.5%로 확립되었다(Chandran, n.d.).
인도공화국 할당제의 특징
카스트에 의해 차별받던 하층카스트에 대한 법적 배려는 독립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식민지 시기 반카스트 운동으로 시작하여 정치 활동을 통하여 불가촉천민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암베드까르(B. R. Ambedkar)는 제헌의회의원으로 선출되고, 헌법초안위원회의 의장으로서 헌법 제정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인도공화국 헌법은 정의,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전문(前文)에 명시하고, 불가촉천민제를 폐지하는 것은 물론, 카스트에 의거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카스트 차별을 무위로 돌리고, 과거의 차별에 대한 보상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할당제가 헌법에 명시되어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인도 이외에도 미국, 캐나다, 말레이시아 등 다원적인 사회 구성을 가진 국가들이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하여 할당제나 이와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일부 대학에서 시행하는 ‘농어촌특별전형’이나 각 정당에서 선거 입후보자 공천 시 적용하는 ‘여성할당’ 고위공직자 선정 시 고려되기도 하는 ‘지역균형’ 등도 모두 할당제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시되는 할당제가 대부분 법적 강제성이 없는 ‘고려’ 수준인데 반하여 인도의 할당제는 헌법에 독립된 조항들로 규정되어 있어 법적 강제성이 있고, 시행 방법도 상세하게 법제화되어 있다. 할당제가 갖는 평등권 침해라는 위헌적 요소가 논란거리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비하여 인도의 할당제는 아예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위헌 여부에 대한 논란은 원천적으로 없는 셈이다.
공공부문 고용에 있어서의 할당제를 명시한 헌법 조항은 각각 ‘사회적, 교육적으로 후진적인 계층 또는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의 향상을 위한 특별입법’과 ‘공직에서 적절한 대표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후진계층에게 공직을 할당해주는 입법’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Constitution of India 15(5), 16(4)). 이 조항에 의거하여 의회는 1957년 공공고용법(Public Employment Act)을 통과시켰고, 공직 할당의 구체적인 방법은 공무원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규정되었다. 각급 입법기관에서의 의원직 할당은 헌법 330조(연방 하원의석의 할당)와 332조(각 주 하원의석의 할당)에 의하여 규정되었다.
인도공화국 할당제 대상
인도 헌법에 나타난 할당제의 대상 집단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카스트에 의해 차별받아온 하층카스트 출신(지정카스트 Scheduled Castes), 전통적으로 카스트 사회에 편입되지 않았던 부족민들(지정부족 Scheduled Tribes), 그리고 기타후진계급(Other Backward Classes, 이하 OBC)이다. 기타후진계급이라는 범주는 헌법에 나타난 ‘후진계급(backward classes)’ 중 지정카스트·지정부족을 제외한 여타의 계층을 말하며, 후진계급위원회의 보고서나 여러 종류의 정부 문서, 실질적인 행정 과정에서 기타후진계급이라는 명칭이 명백히 사용되고 있다.
할당제의 명목으로 이들에게 인구수에 비례하여 할당하는 혜택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모든 국가 예산은 인구 비율만큼 지정카스트, 지정부족에게 배당해야 한다는 예산할당이 있다. 예를 들어, 오디샤(Odisha) 지역에 사이클론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여 중앙정부의 특별지원금이 교부되었다면,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은 그들의 인구비율만큼 이 자금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예산의 계획과 집행이 이러한 규정에 준하여 이루어진다. 이와 구분되어 개인에게 의석 또는 고용 등 ‘자리’를 주는 정원할당의 혜택은 식민지 시대의 제도와 비슷하게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각급 입법기관에서의 선출 의원직, 중앙정부와 주 정부를 포함한 공공부문 고용, 교육기관 입학 정원에 적용되는 할당제가 그것이다. 이 중 의원직 할당은 소수집단으로서 공직진출이 어렵고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적절한 대표성을 갖기 어려운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며, 직업과 교육기관에서의 할당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이들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보호적 차별이라고 구분할 수 있겠다.
공직 임명과 교육기관 입학 시의 할당은 헌법에 그 대의가 나타나기는 하나 실제 적용 시에는 많은 이의 제기가 뒤따랐고, 소송과 헌법 개정을 통하여 세부사항이 규정되었다. 개헌과 판례로서 오늘날 확립된 할당제의 세부사항 중 주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기관의 입학과 고용에서의 할당제는 반드시 국가기관과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교육기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정부 보조를 전혀 받지 않는 사립교육기관에까지 적용된다(2005년 개헌). 둘째, 직업 할당은 최초 고용 시에만 할당의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후 진급 시에도 적용된다(1995년 개헌). 셋째, 지난해에 임용으로 채워지지 못한 할당쿼터는 다음 해로 이월되어 다시 임용하며, 이월된 쿼터는 이번 해의 신규 쿼터와는 별개로 산정된다. 할당쿼터의 총합이 전체 신규고용의 50%를 넘을 수 없다는 규칙은 이월된 쿼터와 신규 쿼터에 따로따로 적용되며, 합산해서 적용되지 않는다(2000년 개헌).
할당제 논란
수혜대상에 대한 논란
할당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헌법에 나타나는 사회의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로서의 할당제는 그 대상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헌법에서 특별대우를 규정한 집단에는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 경제적·교육적으로 후진계급(economically and educationally backward classes), 그리고 이들을 통칭하는 후진계급 등이 있다. 그러나 헌법에는 이들의 명칭만이 등장할 뿐, 이들 집단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요건을 갖춘 집단의 사람들인지, 또는 이들을 규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나타나있지 않다. 대신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은 대통령이 각 주 주지사의 자문을 받아 공포하도록 되어 있고(Constitution of India 341(1); 342(1)),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을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의회의 입법에 의거하여야 한다(Constitution of India 341(2); 342(2)). 이 외의 후진계층에 대한 기준이나 후진계층의 지정방식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헌법에 부칙(Schedule)으로 달려 있는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의 목록은 원래 1935년 인도정부법에 부록으로 달려 있던 인도정부법 지정카스트령(The Government of India (Scheduled Castes) Order, 1936)을 대통령이 헌법 지정카스트령(The Constitution (Scheduled Castes) Order, 1950)이라는 이름으로 재입법한 것에 불과하다.
할당제의 수혜대상자를 결정하는 것은 각 카스트와 커뮤니티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이므로 많은 갈등과 논란을 야기해왔다. 지정카스트의 범위는 비교적 명확한 근거에 의하여 규정되므로 사회적 논의의 대상에서는 비켜나 있었다.7) 그러나 OBC의 지정 문제나 특정 카스트의 지정부족으로의 편입 등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혼란을 가져올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OBC에 대한 헌법상의 규정은 매우 모호하여 이들에 대한 할당제의 특혜는 법률상 근거가 희박하고, 그 대상자의 수효가 엄청나게 많으면서도 그 규모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반대가 많았던 것이다. OBC에게 직업과 교육기관 입학에서 27.5%의 할당을 권고했던 후진계급위원회 보고서(Report of Backward Classes Commission, 만달 보고서로 흔히 알려져 있음)의 권고사항이 실시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자, 1992년에 할당제의 수혜자가 될 수 없는 상층카스트의 극렬 시위가 계속되었고, 상층카스트와 후진계급 사이에 큰 충돌이 야기되었다. 이와 비슷한 혼란은 할당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될 때마다 최근까지도 반복되었다. 또한 2016년에는 자뜨(Jat) 카스트가 OBC 편입을 요구하였고, 이에 의해 상대적으로 혜택이 축소될 수 있는 구자르(Gujjar) 카스트가 지정부족으로 위치를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함으로써 북인도 일대에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위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OBC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선 OBC를 할당제의 수혜집단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권고한 만달 보고서는 OBC의 명단도 함께 발표했는데, 그 실질적인 내용은 전통적으로 슈드라에 속한다고 여겨지던 카스트 집단이었다. 결국 후진‘계급’의 기준이 ‘카스트’였다는 사실은 엘리트 계층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상층카스트 출신 중에도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하여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주장도 거세게 이어졌다. 또한 OBC의 명확한 인구비율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1931년 통계를 기반으로 계산된 OBC의 할당 비율 역시 많은 이들에게 불신을 사고 있다.8) 많은 OBC 성원들이 그들의 실제 인구비율은 1931년보다 훨씬 높으며 이에 따라 더 높은 할당 비율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인도정부는 2011년 센서스에서 카스트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으나, 결국 마지막에 철회되었다. 카스트 조사가 실제로 행해지고 그에 의한 인구 비율이 발표되었을 때 인도 사회에 미칠 엄청난 후폭풍을 우려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수혜집단간의 불균등 발전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 내에서도 커뮤니티별 발전 정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자,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상황이 보다 열악하여 할당제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소수 지정카스트들의 불만이 높아져갔다. 의석 할당은 인구 비율이 높은 거대 카스트 출신 후보들이 득표상의 이점을 이용하여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교육기관 입학과 공직에서의 할당도 먼저 전반적인 향상을 이룬 카스트와 부족들의 교육수준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지정카스트·지정부족끼리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으로 인하여 정작 할당의 혜택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후진적인 지정카스트는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이미 발전을 이룬 지정카스트보다 현저하게 낮아지게 되어, 할당제로부터 얻은 이득을 통해 커뮤니티 전체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할당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Roy, 1998; Wanjari, 1998).
인도 정부는 독립 후 할당제를 실시하고 15년이 지난 1965년, 수혜집단인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 목록을 개정하기 위하여 지정카스트·지정부족 실태조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회(Lokur Committee)에게 일임한 바 있다. 로꾸르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불가촉천민제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으며… 설사 불가촉천민제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에서도… 괄목할 만큼 희석된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고 진단하였다(Department of Social Security, 1965). 동 보고서는 ‘비교적 선진화된’ 커뮤니티 목록을 제시하였는데, 비하르(Bihar), 뻔잡(Punjab), 웃따르 쁘라데시(Uttar Pradesh)의 짜마르(Chamar), 마하라슈뜨라(Maharashtra)와 마드야 쁘라데시(Madhya Pradesh)의 마하르(Mahar), 안드라 쁘라데시의 말라(Mala), 서벵갈(West Bengal)의 도비(Dhobi), 나마수드라(Namasudra), 라즈반시(Rajbansi) 등 14개 부족과 28개의 카스트가 여기 포함되었다.9) 로꾸르 위원회 보고서는 정치권에서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새로운 지정집단 목록은 의회에서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로 시행되지 못했다.10)
로꾸르 위원회의 보고서에서 지정목록에서 빠져야 한다고 지목된 커뮤니티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충분히 선진화되었는가에 대하여 문자해독률을 기준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한 연구도 있다. 두쉬킨(Dushkin 1972)에 의하면 보고서의 ‘비교적 선진화된’ 커뮤니티 중 반 이상이 전인도 지정카스트 평균 문자해독률보다 낮은 문자해독률을 기록했다. 로꾸르 위원회 보고서와 지정카스트 문자해독률 통계는 결국 지정카스트라고 모두 후진적인 것도 아니며, 지정카스트에 속하는 특정 카스트의 후진성조차도 일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로꾸르 위원회 보고서에서 지목된 선진화된 지정카스트 중에서도 여러 세대에 걸쳐 할당제 혜택을 독점해 온 특정 집안만이 높은 수준의 사회경제적 진전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작 사회경제적인 후진성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할당제의 혜택을 필요로 하는 지정카스트 집단들은 이러한 ‘상류층(creamy layer)’과의11) 경쟁에서 이겨 할당제 혜택을 받을 전망이 어둡다.
하위쿼터 할당제와 혜택의 제한
이런 상황에 대한 개선책으로 현재 할당제의 시행방식을 수정한 새로운 방식이 일부 달리뜨 운동 집단으로부터 제안되었다. 현재까지 제안된 대안적 할당제의 요지는 현존하는 할당 쿼터 내에 하위쿼터(sub-quota, quota-in-quota)를 다시 두자는 것으로서, 하위쿼터의 수는 2-3개로 하자는 안이 일반적이지만, 모든 지정카스트·부족에게 인구별 쿼터를 제공하자는 안도 있다. 하위쿼터를 두는 할당제는 안드라 쁘라데시 주에서 입법되어(Andhra Pradesh Scheduled Castes (Rationalisation and Reservation) Act 2000 (AP Act 20 of 2000)) 주의 법률이 지배하는 범위 내에서 하위쿼터가 시행된 바 있다. 동 법률에 따르면 주 내의 지정카스트를 사회경제적인 발전 정도에 따라 4개의 소집단으로 나누고, 입학과 취업에 있어서의 정원할당에서 4개의 소집단에게 각각의 쿼터를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위헌심판 소송이 제기되어, 대법원에서 할당제 내의 하위쿼터는 헌법 341조에 의거하여 대통령이 공포한 지정카스트 목록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헌판결을 받고 동 법률은 폐기되었다(AIR 2005 SC 162).
이와 같이 하위쿼터를 두자는 의견은 많은 일반인들과 할당제 수혜집단으로부터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 위헌의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2010년 3월에 중앙 상원을 통과한 여성할당제의 경우 여성쿼터 내에 지정부족과 지정카스트의 쿼터를 다시 두는 하위쿼터가 존재하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만약 여성할당제가 현재의 모습으로 하원을 통과하여 실시될 경우, 향후 할당제의 형태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인도 하원은 이 법안에 대한 심의와 표결을 10년째 미루고 있다.
할당제 수혜집단 중 상류층의 할당 혜택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도 정부는 혜택에 제한을 두는 규정을 두고 있다. 소득 수준과 부모의 직업, 자산을 평가하여 기준치를 초과하는 경우 카스트에 의하여 OBC에 포함되더라도 수혜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이 규정은 2018년부터 지정카스트·부족의 할당에도 승진 시에 적용되고 있다. 이 규제에 의하여 할당제에 ‘계급’의 기준을 처음으로 적용하게 되었다.
카스트에서 계급으로?
계급의 기준이 할당제에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된 것은 2019년 1월에 있었던 제 103차 개헌에 의해서이다. 이번 개헌은 할당제를 명시한 헌법 제 15조와 16조에 대한 것인데, 기존의 지정카스트, 지정부족, 사회적·교육적으로 후진 계급 이외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부분(economically weaker section)에게 10%의 한도 내에서 할당제의 혜택을 부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기존의 할당제는 카스트 사회에 편입되지 않은 부족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이외에는 모두 카스트 기준을 적용하여 수혜집단을 결정하였다. 이는 OBC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할당제는 카스트 뿐 아니라 계급까지 기준으로 삼아 수혜집단을 결정하게 되었다.
개헌이 이루어진 것이 불과 4개월 전이기 때문에 아직 계급적 기준에 의한 할당제는 실시되지 않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경제적 취약 계층에게 할당제의 혜택을 줄지도 아직은 정해진 바가 없다. 구체적인 실시 방식은 헌법이 아닌 관련 법률의 개정이나 입법을 통하여 정해져야 하기에, 정부와 의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계급적 기준에 의한 할당제가 혜택에 필요한 이들에게 실질적인 구제책이 될지, 인도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아직은 불확실하며, 따라서 평가를 유보할 수밖에 없다.
명확한 것은 이번 개헌에서 명시한 경제적 계급을 기준으로 삼는 할당제가 할당제의 긴 역사에 있어서 전환점으로 평가될 만한 큰 변화라는 점이다. 식민지 시대에 시작된 최초의 할당제는 카스트 제도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왔던 이들에게 보상적 정의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실시되었고, 이후 종교적 기준에 의한 할당제가 큰 사회적 논란과 함께 도입되기도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으로 종교적 기준의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인식되어 다시 카스트가 할당제의 주된 기준이 되었다. 보다 넓은 의미의 평등을 구현하고자 하는 도구로 사용된 할당제는 인도 사회가 각각의 시대적 맥락에서 적극적 조치를 통해 권리를 보호해야 할 대상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반영해왔다. 이제 인도 헌법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할당제의 방향성을 재설정한 개헌은 인도 사회의 질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도 사회는 곧 카스트 사회이며,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이해만이 인도 사회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첩경이라 믿었던 과거 인돌로지 학자들의 주장은 이미 탄핵 당했다. 그럼에도 인도 사회가 카스트 사회라는 일반의 믿음은 쉽사리 바뀌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 인도 사회에 미치는 카스트의 영향력은 아직도 지대한 것이 사실이다. 인도 사회에서 카스트의 중요성을 굳건히 지키는 요소 중 하나가 카스트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시작된 할당제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이번 개헌이 가져온 할당제의 ‘계급’ 기준은 인도 사회가 카스트 사회에서 계급 사회로 변화하는 길에 이미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소개
이지은(jieunlee333@hotmail.com)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이다. 인도 자와할랄네루대학교(Jawaharlal Nehru University)에서 인도근현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화여대, 서강대, 서울대 등에서 가르치고 연구하였다. 식민지 시대와 독립 이후 인도 사회의 변동과 사회사상의 추이, 반(反)카스트 운동과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 『탈서구중심주의는 가능한가: 비서구적 성찰과 대응』, 『새로운 인도사』 등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참고문헌
- 이지은. 2010.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을 대상으로 한 인도 정원할당제—수혜집단 제한과 불균등 발전을 통해서 본 문제점과 그 개선안.” 『인도연구』 15권 2호, 109-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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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njari, Vinod 1998. “Mahars Cornering Reservations Has Deprived Mangs & Chamars.” Dalit Voice 18(2), 7.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