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민(가톨릭관동대학교)
저출산과 인구감소, 그리고 지방의 소멸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는 이제 우리에게도 낯선 단어가 아니다. 언론지면과 TV 뉴스에는 저출산, 인구절벽에 대한 보도기사와 더불어, 인구감소 및 고령화로 인해 농어촌 뿐만 아니라 적지않은 도시 지역들도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들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우리나라의 지자체 공무원들, 특히 농어촌 지역의 공무원들에게는 관할하는 지역의 전입인구와 출산률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는 것이 지상과제처럼 다가오는 듯도 하다. 실제로 필자는 10년쯤 전 개인 사정이 있어 경북 김천시의 면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긴 적이 있는데, 그 때 면사무소 직원들이 전입신고를 해줘 고맙다며 연신 허리를 숙여 가며 인사하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지방소멸 문제는 출산률 감소, 고령화 문제와 더불어, 우리보다 일본이 한걸음 앞서 겪기 시작한 문제이다. 언론지면에도 보도되고 있듯이, 일본 사회는 고령화와 출산률, 인구감소로 인한 빈집의 증가, 지방의 인구소멸 등과 같은 지방소멸의 문제에 우리보다 한층 앞서 직면해 왔다. 그리고 일본은 사회문화적, 정치적으로 우리나라와 유사점이 많아서인지, 일본의 지방소멸 문제는 향후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형태로 재현될 것이라는 관측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와테현(岩手県) 지사와 일본 총무대신을 역임한 마스다 히로야(増田寛也, 1951- )는 2014년 지방소멸 관련 보고서인 「마스다 보고서」를 출간하였다. 이 보고서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 문제와 일본의 수도권 집중 문제를 관련지어 일본은 물론 한국 학계와 사회에서도 지방소멸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보고서는 저출산과 인구감소 문제를 출산률 감소라는 관점 뿐만 아니라 지역간 불평등이라는 공간적 관점과 관련지어 접근하였다는 점에서,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마스다 보고서」는 수정과 보완을 거쳐 2014년 『지방소멸(地方消滅)』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고, 2015년에는 동일한 제목으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후 일본 정부는 2015년부터 지방 소멸에 대한 대응책으로 ‘지방창생(地方蒼生)’ 정책을 수립하여 실시해 오고 있다. 하지만 저출산과 인구감소 문제의 해결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지방창생 정책이 소멸할 위기에 처한 지방을 제대로 ‘창생’시키려면 많은 노력과 고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우선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론 개념 및 지방 살리기에 대해서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사례를 각각 하나씩 제시하고자 한다.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론과 지방창생
마스다 히로야는 일본 건설성(현 국토교통성) 소속 공무원 출신으로 1995-2007년 이와테현 지사를 역임(3선)한 다음 2007-2008년 총무대신을 지냈으며, 이후 민간 연구단체인 소세이카이(創成会)의 좌장을 맡아오고 있다. 소세이카이 소속으로 2014년 발표한 「마스다 보고서」는, 일본의 저출산 및 인구감소 문제를 출산률 저하라는 문제 뿐만 아니라 도쿄 일대(수도권)의 과도한 인구 집중이라는 일본의 사회적‧지리적 특성과 연관지어 논의하였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마스다의 지방소멸론을 우선 다음과 같이 소개해 보겠다.
마스다는 보고서에서, 현 추세의 출산률(1.35)이 지속된다면 일본은 2040년까지 노년인구 증가 및 생산인구와 유소년인구의 감소를 특징으로 하는 1단계, 2040-60년에는 노년인구의 유지 또는 소폭 감소 및 생산인구와 유소년인구라는 특징을 보이는 2단계, 2060년 이후에는 노년인구와 생산인구, 유소년인구가 모두 감소하는 3단계를 거치며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마스다는 2010년 기준으로 총인구 1억 2,800여만명(고령화율 23%)의 일본 인구는, 이상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2110년에는 총인구가 4,280여만명(고령화율 41.3%)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하지만 마스다는 일본의 인구문제는 이 같은 저출산 고령화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논의를 전개한다. 즉, 일본의 인구문제는 저출산 고령화 뿐만 아니라, 인구 특히 청년층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라는 문제를 연결지어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스다는 그의 보고서를 통해서 인구의 도쿄 유입으로 인해 지방 소멸은 더욱 가속화되고, 이로 인해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2040년경에는 일본 지자체의 절반에 달하는 896개 지자체가 소멸할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처럼 수많은 지자체들이 소멸하면서 도쿄 역시 과밀화 및 이로 인한 여러 사회문제의 누적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도쿄 역시 인구가 급감하고 종국적으로는 소멸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지방소멸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산업 유치, 대도시 인근의 베드타운 건설, 학교 및 연구기관 집적을 통한 학원 도시 조성, 국가 수준 또는 국제적 프로젝트 수준의 대규모 시설 유치를 통한 공공재 주도형, 인구감소 추세에 맞게 도시의 인프라를 중심지에 집중화시켜 효율적인 지자체 운영을 유도하는 콤팩트 시티 등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각각의 대안들은 고유한 특징과 장단점을 갖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 청년층의 전입을 유도하여 궁극적으로는 지방 소멸을 저지하고 장기적으로는 인구의 회복을 유도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물론 이러한 대안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마스다가 일본 ‘인구의 블랙홀’이라 묘사한 도쿄의 과밀화 문제의 완화 및 실효성있는 지역 균형 개발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마스다 보고서는 일본 사회에 지방소멸이라는 담론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기폭제 구실을 하였다. 이는 현 일본 정부가 지방창생(地方蒼生), 즉 지방 살리기라는 모토 하에 총리 직속의 지방창생본부를 설치하고, 지방 살리기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사람, 마을, 일자리의 창조와 선순환을 통해 지방을 되살리고 지역 균형 발전을 현실화하여 궁극적으로 인구 및 출산률 회복을 추구하는 일본의 지방창생 정책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물론 지방창생 정책의 결과와 성패는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다음에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이는 그만큼 지방소멸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만큼 지방소멸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 또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특히 마스다 보고서가 주는 메시지는, 일본 사회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성이 많은데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일본보다도 더욱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도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성을 가진다. 농어촌 지역은 물론 지역 거점도시나 심지어는 광역시조차도 소멸 위기가 거론될 정도로 수도권 집중 문제가 심각한 한국 사회의 경우에는, 마스다가 지적한 지방소멸의 위험성이 일본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다가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청년층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구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실효성있는 정책의 실천과 사회의 변화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절에서는 일본의 지방소멸 사례, 그리고 지방 살리기의 모범 사례를 하나씩 제시하겠다. 이를 통해서 지방소멸이 왜 일어나는지, 지방 살리기를 실천할 방향은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모색할 기회를 갖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일본 이상으로 수도권 집중 문제가 심하고 지방소멸의 위기가 큰 한국 사회가, 앞으로 인구문제 및 지역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가야 할지에 대해서 그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유바리의 몰락
유바리(夕張)는 홋카이도의 중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홋카이도에서도 명산으로 알려진 유바리산, 다이세쓰산(大雪山) 등을 경계로 유바리강이 흐르는 후라노(富良野) 분지상에 위치한 이 도시는, 토질이 기름진데다 인근에는 역청탄 산지까지 있는 그야말로 좋은 입지조건을 가진 도시라고도 할 수 있다. 여러 입지조건 중에서도 역청탄, 즉 석탄은 유바리라는 도시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메이지 정부 하에서 본격적인 홋카이도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1870-80년대에 유바리 일대에서 탄광이 발견 및 개발되면서 유바리는 광업도시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1892년에는 유바리탄광이 개장하는 한편 유바리와 오이와케(追分)를 잇는 홋카이도탄광철도가 개설되는 등 본격적인 탄광도시로서의 막을 올렸고, 이후 유바리는 일본의 산업과 경제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자원의 산지로 발달하게 된다. 이후 1943년에는 일본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로 승격되었고, 1960년에는 인구 11만 6천명을 돌파하여 유바리 사상 최대 인구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1960-70년대 이후 일본에서 석탄이 차지하던 에너지 자원으로서의 위상과 중요성이 흔들리면서, 탄광도시 유바리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줄어드는 석탄 수요와 맞물려 인구도 석탄 생산도 감소하기 시작했고, 결국 1990년대 들어 쇠퇴일로를 걷던 탄광은 결국 폐광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정선, 태백 등 한때 무연탄 생산지로 각광을 받다가 폐광촌으로 전락하기도 했던 우리나라 탄광도시들과도 비슷한 모양새인 듯 싶기도 하다. 오늘날 유바리에서는 더 이상 석탄이 채굴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보면 단순히 폐광도시의 몰락 정도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정선, 태백 등의 폐광지역에 레일바이크를 설치하고 강원랜드를 건설한 것 이상으로, 유바리는 석탄산업 사양화 이후의 자구책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구책들은 한때 성공한 지역개발의 표상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그 중에는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유바리의 특산물인 유바리멜론을 들 수 있다. 1960년대 품종개량을 통해 등장한 유바리 멜론은 일본에서도 최고급 과일로 명성이 높으며, 2018년에는 첫 수확한 유바리 멜론이 경매장에서 1개에 1,6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기까지 할 정도로 일반 멜론과는 격이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다.[1] 이처럼 유바리 멜론이 일본인들에게 최고급 과일로 인식되면서, 아이스크림, 젤리 등 유바리 멜론을 활용한 가공식품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 1990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또한 유바리라는 지명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있다. ‘판타스틱’이라는 이름답게 SF, 판타지, 공포 등 장르영화의 영화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 영화제는, 국내 영화계에서도 벤치마킹을 시도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외에도 유바리는 폐광 부지를 활용한 탄광 박물관을 조성하고 국립공원인 다이세쓰산, 명승지로 널리 알려진 유바리산 등과 같은 인근의 명산들과의 연계를 통해 관광지로서의 부활을 모색하는 등, 석탄산업 사양화 이후의 대책 모색에 적극 노력해 왔다.
이 같은 유바리의 자구책 모색을 위한 노력들을 살펴보면, 마치 지역개발의 훌륭한 모범사례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유바리는 1990년대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지역혁신의 성공사례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유바리 멜론의 이미지와 달리, 유바리는 인구가 큰 폭으로 계속 감소하여 오늘날에는 일본에서도 소멸할 위험이 대단히 큰 지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1960년대 12만에 육박하던 유바리의 인구는 2018년에는 9,000명을 밑도는 수준까지 감소했으며, 유바리에 속한 20개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문자 그대로 ‘소멸한 행정구역’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50%에 가까운 고령화율은 유바리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무엇이 유바리를 이토록 몰락시킨 것일까? 물론 석탄산업의 사양화와 탄광의 폐광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에 해당하기는 한다. 하지만 유바리의 몰락은 석탄산업 사양화 이후의 대안을 모색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무리하고 방만한 지역 개발 및 사업 운영에 따른 지자체의 재정 파탄에 따른 결과로 보아야 한다. 리조트 개발 등 관광업 진흥을 통해 침체된 지역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발상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존한 무리한 대규모 개발과 유바리시 시장을 비롯한 지자체의 방만한 경영은 관광업을 진흥시키기는커녕 빚더미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일본 버블경제 붕괴 이후의 불황으로 인해 관광 경기가 악화되면서, 유바리의 재정상황은 더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결국 2006년, 한때 지자체 혁신의 모범 사례로 각광받기도 했던 유바리시는 600억엔이 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되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즉, 유바리시는 파산해 버린 것이다. 물론 이후 유바리는 시 차원에서 재정의 회복과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노력을 기울여 왔다. 유바리 멜론은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재정 문제로 중단 위기에 처했던 판타스틱 영화제도 시민들과 독지가들의 노력과 후원 덕택에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멜론과 국제 영화제에도 불구하고, 유바리의 인구는 2018년 현재 여전히 감소 추세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유바리는 젊은 시장이 취임하여 행정 효율화 등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통한 인구 감소세 회복과 도시 재건을 추구하고 있지만, 유바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 현실이다.
유바리의 안타까운 사례는 우리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오늘날 적지 않은 지자체들이 출산률 감소, 고령화, 인구 감소 등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한국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러한 지자체들에게 인구감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의 모색은 절실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검토나 면밀한 계획 없이 무리하게 추진되거나 안일하게 운영되는 지역 활성화 시도는, 유바리시의 사례처럼 오히려 지역을 크게 쇠퇴시키고 나아가 지자체의 재정을 파탄내는 맹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역특산물이나 이름난 축제 등이 지역의 발전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쇠퇴나 소멸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지역의 운명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기대도 자칫 독이 될 소지가 크다.
그렇다면 지역소멸이라는 위기를 효과적으로, 현실적으로 극복할 해법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필자는 동남풍을 부르던 제갈공명처럼 지금 이 자리에서 대안을 제시할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지자체들은 오늘날 그런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꽤나 썩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를 통해 정답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지역 소멸을 지역 창생으로 바꾸어나가는데 참조할 만한 사례 정도는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절에서는 이와 관련된 일본의 사례를 하나 소개해 보고자 한다.
몰락한 온천과 올림픽 경기장의 부활, 나가노현 야마노우치정
앞서 살펴본 유바리시의 사례는 무리하고 안일한 관광 정책이 지방의 소멸을 오히려 앞당긴 경우이다. 하지만 관광개발 자체가 지방소멸로 이어진다는 식의 이해는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이 절에서는 몰락한 온천 관광지가 어떻게 재기에 나서는가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도쿄 북서쪽에 위치한 나가노(長野)현은 1998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곳이다. 이 말은, 나가노현은 산악지대에 위치함을 의미한다. 나가노현의 시모타카이(下高井)군에는 야마노우치정(山ノ内)정이라는 지역이 있다. 지명부터가 ‘산속’이라는 뜻을 가진 야마노우치정은 동계올림픽 당시 설상종목 경기장이 설치되기도 하였고, 지고쿠타니(地獄谷)온천과 노천온천인 유타나카(湯田中)온천은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관광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 관광객 감소로 노천탕, 상점 등이 폐업하는 사례가 증가하였고, 이는 지역 경기의 침체와 인구 감소로 이어졌다. 그러던 야마노우치정이 최근에는 관광 활성화를 통해서 지역 창생의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줄어들던 온천 관광객들의 발길을 돌린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자체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한 지역 관광의 혁신이었다. 야마노우치정은 2015년부터 정부계 펀드인 지역경제활성화 지원기구(REVIC), 그리고 나가노현 금융기관들의 투자로 설립한 관광진흥회사인 와쿠와쿠야마노우치를 토대로 침체된 관광의 혁신을 시도하였다. 와쿠와쿠야마노우치와 지역 주민들은 상호 협력을 통해 관광 인프라를 정비하고, 현내 관광지 홍보를 강화함은 물론 관광객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안락한 온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광시설의 운영방식도 대폭 개선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애물단지처럼 방치되다시파하던 동계올림픽 슬로프를 활용하여 저렴한 가격의 스키 체험 프로그램 운영, 설상종목 국제대회 유치, 올림픽 기념 행사 등 설상스포츠,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다양한 관광자원 및 상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인구 1만명이 조금 넘는 규모의 야마노우치정은, 최근 들어 연간 관광객 수가 4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관광업이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나가노현은 청소년 해외교류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는 등 현내 교육의 혁신도 주도하여, 청년층의 유입 및 지방 살리기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앞 절에서 살펴본 유바리시와 달리, 야마노우치정은 관광을 통해서 지방 살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지역은 2000년대 들어 관광업의 몰락으로 지역 경기 쇠퇴 및 인구 유출이 문제시된 적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지방 살리기는 무리한 사업 추진이 아니라 지자체와 중앙정부, 주민들의 긴밀한 협조와 상호작용을 통해서 지역의 경제를 의미있게 발전시키고 청년층 인구가 유입될 수 있는 실질적인 유인책을 조성해야 함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지방소멸 대책 역시 탁상공론이나 무리한 상명하달식의 대안이 아닌, 주민과 지자체, 중앙정부의 긴밀한 협력과 상호작용에 토대한 의미있는 지역 혁신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지방 살리기에 발벗고 나서야 할 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인구절벽 문제는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N포세대’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보여주듯 1997년 IMF 사태 이후 20년 이상 이어져온 청년실업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수많은 청년층은 결혼과 출산, 육아조차도 사치로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과도한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 이외의 지방에는 인구의 유출을 강요하는 한편으로 수도권 일대에는 집값 문제 등으로 인해서 서민층과 청년층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마스다가 지적한 지방소멸 문제, 다시 말해서 수도권 이외의 지방들이 대거 소멸하고 나아가 서울과 수도권마저도 붕괴시킬 위험을 현실로 옮겨올 우려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구호나 생색내기 수준이 아닌 실효성있고 의미있는 지방 살리기는,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절박한 과제라고 보아야 한다.
본고에서는 지방소멸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사례를 두 가지 살펴 보았다. 우선 유바리의 사례를 통해서, 안일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지역 활성화 정책은 지역을 살리는 ‘창생’을 실천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방의 소멸만 앞당기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나가노현 야마노우치정의 사례를 통해서, 지방 경제의 활성화와 생활 여건 개선 등을 통해 청년층 인구의 유입을 유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지방 살리기의 방향에 대해서도 살펴 보았다.
마스다 히로야는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며, 설령 늦었다 생각되더라도 하루빨리 대안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더 큰 피해를 예방하고 인구문제와 지방소멸 문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으로 이어진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70년대 초반에 발표된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수립 당시부터 수도권 과밀화 문제에 대한 대처가 명문화되었으나, 현실은 수도권 과밀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는 패턴을 보여왔다. 이는 오늘날의 저출산, 인구절벽 문제와 맞물려 머지않은 미래에 크나큰 재앙을 몰고올 우려도 있다. 그런만큼 한국 사회에서도 청년세대가 더 이상 ‘N포’ 대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수도권을 비롯한 여러 지방들도 낙후가 아닌 혁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문제를 걱정하기보다는, 이에 대한 실효성있는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때이다.
저자 소개
이동민(ldmin1988@cku.ac.kr)은
가톨릭관동대학교 지리교육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며, 지리교육 및 인문지리 관련 교과목들의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지리교육 분야의 교사교육 문제에 천착하고 있으며, Journal of Geography(SSCI), International Research in Geographical and Environmental Education(SCOPUS) 등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연구논문들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연구논문들로는 Toward a typology of changes in primary teachers’ awareness of geography based on receiving graduate education(Journal of Geography, 117권 5호, 2018년), Using grounded theory to understand the recognition, reflection on, development, and effects of geography teachers’ attitudes toward regions around th world(International Research in Geographical and Environmental Education, 27권 2호, 2018년) 등이 있다. 그리고 『지리의 모든 것』(2016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해양의 모든 것』(근간), 『세계화와 로컬리티의 경제와 사회』 등 여러 권의 번역서를 출간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에 정회원으로 소속된 수필가이기도 하다.
[1] 일본에는 그 해에 첫 수확한 과일을 일종의 행운의 상징과도 같이 특별하게 여기는 관습이 있으며, 특히 유명 지역특산물 등 고급 과일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유바리 멜론과 같은 최고급 과일의 첫 수확분은 개당 수백-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과일가게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 유바리 멜론은 이 정도의 가격에 거래되지는 않지만, 일반 멜론의 수 배를 호가하는 가격에 판매되는 고급 멜론으로 여겨지고 있다.
참고문헌
- 남황우, 2007, “유바리(夕張)시 재정파산에 관한 연구,” 도시행정학보, 20(3), 179-205.
- 연합뉴스, 2018년 5월 26일자 기사, “과일 한 개에 1천600만원…日 유바리 멜론 경매가 신기록.”
- 이정환, 2017, “인구감소와 지속가능한 지방만들기: 지방소멸(地方消滅)을 둘러싼 논쟁,” 일본공간, 21, 194-223.
- 중앙일보, 2017년 9월 19일자 기사, “”시골엔 정말 아무 것도 없나요“ 일본, 관광으로 지방 살린다.”
- 吉田博詞, 2017, “地域ブランディング戦略 地方消滅の近未来に備え観光客から選ばれる理由をつくろう,” 商業界 70(8), 42-45.
- 山田桐子‧宮崎均, 2008, “温泉街における地域特性からみたまちづくりに関する研究 : 地理的条件ならびに形成過程からみた地域特性の傾向,” 日本建築学会計画系論文集, 626, 819-826.
- 田中秀明‧姜秉哲, 2017, “地方財政健全化法の成果と課題(1)新法導入の経緯と仕組み : 夕張市の財政破綻はどう影響したか,” 地方行政, 10747, 2-5.
- 増田寛也, 2014, 地方消滅, 中央公論新社(김정환 역, 2015, 지방소멸, 와이즈베리).
- 浅川和幸, 2015, “「地方消滅論」と小規模自治体の活性化のあり方を考える: 西興部村の若き担い手の調査をとおして,” 北海道大学教職課程年報, 5, 11-36.
- 青木 正彦, 2013, “山ノ内地域の二つの話題 : 岩菅連峰にみられる雪窪について 山ノ内町のオリンピック後の観光について,” 長野県地理 (32), 3-6.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