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를 통해 표현되는 필리핀 가톨릭의 예수와 성모 숭배

필리핀 가톨릭에서 아이 예수와 성모 숭배, 그리고 사순절과 성주간의 고행 의례는 공감을 통해 호혜성이 발휘되는 가족관계의 이상을 신과의 관계에 투영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어른이 아닌 ‘아이’ 예수상을 모시면서 신의 계시나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좀 더 편안하고 일상적일 수 있다. 사순절에 낭독하는 예수 수난사 텍스트와 부활 주일 예수와 성모의 상봉 의례에서 성모는 예수의 어머니라는 점이 강조된다. 아들을 향한 성모의 고통과 기쁨의 마음에 공감하는 의례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성모가 공감하고 도와줄 것이라는 호혜성을 기대한다. 성금요일에 예수가 겪는 고난을 물리적으로 재현하는 고행의례도 이러한 의례적 공감의 맥락 안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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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강원대학교)

가톨릭은 필리핀에서 어떻게 토착화되었는가?

보통 기독교인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 애니미즘적 유령을 모두 믿는다. 종교학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르고 심지어 상충하는 시상을 동시에 인정하는 행위와 각기 다른 원천에서 가져온 의례와 관례를 혼합하는 행위에 대한 명칭으로, ‘제설(諸說)혼합주의’를 썼다. 실제로 제설혼합주의야말로 단 하나의 위대한 세계 종교일지 모른다.

– 하라리의 『사피엔스』 (2015:317)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스페인의 탐험가 마젤란(Magellan)이 1521년에 오늘날의 필리핀의 세부(Cebu) 지역에 도착한 이래 가톨릭은 필리핀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가톨릭 신자의 비율은 1990년에 83%를 차지했으나, 최근 들어 가톨릭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마젤란의 도착으로부터 5세기가 흐른 2020년의 센서스에서도 전체 인구의 79%가 가톨릭 신자라고 답할 만큼 필리핀에서 가톨릭의 위상은 여전히 확고하다.

세계 종교의 전파와 개종은 제설혼합주의가 종교의 본질이기에 가능하다. 부활절 영어 명칭(Easter)의 기원이 북유럽의 새벽 여신(Eoster) 이름이고 부활절 의례의 여러 요소가 유대교의 봄축제인 유대절(Passover)에서 온 것처럼 가톨릭은 여러 외래 요소들을 포함한다. 필리핀의 가톨릭은 제설혼합적 가톨릭(syncretistic Catholicism), 토착 가톨릭(folk Catholicism), 필리핀 가톨릭(Filipino Catholicism) 등으로 소개된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이전부터 실천했던 애니미즘 신앙이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톨릭의 주요 상징인 성수나 십자가, 기도 문구, 성지(聖枝, palaspas), 성상 등은 교회의 공식 의례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에서도 주술적 방식으로 활발히 사용된다(Demetrio, 1978). ‘제설혼합적 가톨릭’은 가톨릭 의례와 애니미즘적 요소가 결합했다는 점을, ‘토착 가톨릭’은 교회의 승인 아래에서 토착 종교의 요소가 가톨릭 믿음 체계로 포섭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McCoy, 1984). 스페인의 통치 시기에 행정 중심지와 주변 지역에서 선교가 불균등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근대 이후 농촌과 도시 지역의 가톨릭에서 토착 애니미즘의 비중은 다르게 나타난다 (Jocano, 1967).

‘필리핀 가톨릭’이라는 표현은 종교의 지역화에 주목하여 현실의 사회관계와 권력 개념이 종교에 투영되는 점을 강조한다(Mülder, 1992). 필리핀 가톨릭의 중요한 특징은 기도와 봉헌을 통해 신앙심을 드러내는 종교 실행이 교리보다 우선한다는 점이다(김민정, 2003:223-226). 그 배경에는 스페인 통치로 가톨릭을 받아들인 이래 줄곧 사제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토착적 믿음 체계를 통해 가톨릭 상징을 받아들인 역사가 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인 SWS(Social Weather Stations)가 2023년 2월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교회에 가는 사람이 응답자의 38%이지만 하루에 한 번 이상 기도를 하는 사람은 69%에 달한다. 이러한 결과는 종교 의례에 참여하는 것 이상으로 기도와 같은 개인 신앙이 중시됨을 보여준다(Ramirez, 2023).

성상 숭배는 개인의 신앙심이 표현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필리핀의 신자들은 창조주 하느님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를 믿지만, 멀리 있는 하느님보다는 더 가까운 곳에서 자신과 신을 매개하는 성인들을 통해 필요한 도움과 위안을 구하려 한다.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에게 닿기를 바라며 성모와 성인들을 중개자로 삼아 드리는 기도와 봉헌은 절대자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축복을 대가로 받기 위해 신에게 바치는 헌신을 의미한다. 이는 현실의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우땅 나 로옵(utang na loob: 마음의 빚)에 기반한 호혜적 관계로 바꾸려는 인식과 유사하다(Hollnsteiner, 1973).

여기서는 필리핀 가톨릭의 제설혼합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성인 숭배에 가족관계의 호혜성이 투영되는 방식과 예수와 성모의 고통과 희생에 공감을 표하는 고행 의례의 방식을 살펴보려 한다. 아래에서는 어른이 아닌 ‘아이’ 예수를 통해 일상적으로 신앙심을 표현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에 낭독하는 예수 수난사 텍스트에서 성모의 위상이 어떠한 방식으로 강조되는지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성금요일에 예수가 겪은 육체적 고통을 물리적으로 재현하는 고행의례의 의미를 검토한다.

 

아이 예수상 숭배: 행운을 가져다주는 아이

의례 수행자들이 산또 니뇨(Santo Niño: 아이 예수)를 대접하는 방식은 필리핀 사회에서 어린이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대부분의 농촌 지역에서 아이들은 신의 선물로 여겨지며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아이를 돌보지 않는 것은 큰 죄로 여겨지며, 아이는 씻기고 다정하게 접촉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복종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아스왕(aswang: 필리핀의 민간전승에 나오는 변신하는 흡혈귀 같은 존재)의 위협이나 다른 강압적 압력을 동원하여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아이에 대한 보살핌의 이러한 내면적 감정과 태도는 무의식적으로 아이 형상을 의인화한 물체에 투영된다. 산또 니뇨는 아이이며 아이처럼 대우받아야 한다. 그래서 종교 행렬을 하기 위해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 전에 숭배자들은 그 형상을 목욕시키고 적절한 옷으로 갈아입히며, 비가 오기를 바라는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익사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다.

– Jocano의 “Filipino Catholicism” (1967:52~53) (괄호 안의 설명은 필자)

필리핀 가톨릭의 성상 숭배 의례에는 가족같이 친밀한 관계와 연관된 정서가 초자연적 능력에 대한 믿음에 투영되어 있다(Mülder, 1992). 예수의 여러 이미지 중에서 아이 모습을 한 산또 니뇨(Santo Niño)를 열심히 숭배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인 예수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 그 자체이지만, 아이 예수에게는 ‘산또(Santo)’라는 수식어를 붙여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성인으로 숭배한다(김민정, 2003:232-233). 아이 예수상 숭배의 역사는 1521년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부 지역의 통치자였던 라자 후마본(Raja Humabon)의 아내가 개종하자, 마젤란은 그에게 나무로 만든 산또 니뇨상을 전달하였다고 한다. 40여 년 후 다시 세부에 와서 스페인의 식민지를 세운 레가스피(Legazpi)가 이 산또 니뇨상을 발견하고 최초의 가톨릭교회를 지은 이래로 아이 예수상 숭배는 필리핀 전역으로 퍼져나갔다(Ness, 1992).

교회에 모셔진 산또 니뇨는 화려하게 금실로 수놓은 망토를 입고 왕관을 쓴 어린 왕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게나 집안에 모신 성상은 여행자나 농부의 복장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평소에 이 성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며, 산또 니뇨를 모시는 마을에서는 목욕시켜 새 옷을 입힌 성상을 앞세우고 마을을 도는 종교 행렬을 한다. 산또 니뇨 숭배가 시작된 세부 지역에서는 아이 예수가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위험을 경고해주기도 하고, 벼농사를 위해 비를 내려주는 기적을 내리기도 했다고 알려졌다(Jocano, 1967). 일반적으로 산또 니뇨는 아픈 어린이들의 병을 낫게 해준다고 하며, 돈을 잘 벌게 해주는 존재로 여겨져서 가게나 식당, 환전소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맨 왼쪽은 다바오(Davao)시 아이 예수 성전(Prague Shrine)에 있는 성스러운 아이 예수상이다. 호텔 로비(가운데 사진)나 환전소(오른쪽 사진)에 있는 산또 니뇨상은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원을 표현한다. 출처: 저자 제공

산또 니뇨 숭배에는 산또 니뇨 자신이 아이이므로 아이들의 고통에 더 잘 공감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담겨있다. 또한, 가족이나 친척이 아이들을 만나면 과자도 사주고 용돈도 주는 것처럼, 아이인 산또 니뇨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푸근함을 불러일으켜 돈과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도 반영된다. 아이 예수는 성인 예수와 달리 사람의 원죄를 일깨우거나 참회를 촉구하지 않는다. 대신 순진하고 친근한 아이와 같은 존재로서, 자신을 잘 돌봐주는 사람에게 직접 도움을 주거나 이들을 다른 도움의 손길과 연결해 준다.

 

예수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신성한 어머니 성모

“어머니, 언제나 저를 편안하게 돌보아주신 / 사랑하는 어머니 / 어떻게 제가 / 슬픔에 잠긴 성모(Poon)에게 /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정하세요, 어머니 / 그리고 제가 아버지를 따를 수 있게 / 허락해주세요, 이곳을 떠나는 것 외에 /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아 아, 복되신 어머니 / 여인들 중 특출나신 분 / 저의 출발을 인정해주시는 / 마지막 징표로 / 이 당신의 아들을 안아주세요”

Cruz의 Kasaysayan(1994[1814])에서 발췌; 김민정(2003:242~243)에서 재인용

성모 숭배 또한 필리핀 가톨릭을 특징짓는 종교 실행이다. 성모는 달력, 그림, 성상 메달, 묵주, 기도문 등을 통해 예수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이미지와 방식으로 가까이 접하고 일상적으로 숭배한다(김민정, 2003:233-234). 특히 농촌 마을의 가정은 성경책은 없어도 묵주나 묵주 기도 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성경책은 보통 자녀가 학교에서 단체로 첫영성체를 받을 때 교회에서 나누어주면 나중에 꺼내 읽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묵주 기도 책은 매일 밤 기도를 드릴 때나 가족 성원의 기일, 장례식, 마을의 구역 묵주기도에 참여할 때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여러 지역에서 꽃의 오월(Flores de Mayo)로 불리는 5월 한 달 내내 저녁마다 성모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꽃을 바친다. 10월은 성모의 달로 마을에서 묵주기도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이처럼 성모는 개인적인 기도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족 집단의 종교 의례나 마을 공동체 수준의 종교행사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렇게 성모 숭배가 활발한 것은 필리핀 가톨릭에서 성모의 위상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부활절을 예고하는 사순절 기간에 하는 빠바사(pabasa: 낭송)는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김민정, 2003:247-249). 사순절의 고행의례(penitensya) 중 하나인 빠바사는 천지창조에서부터 예수의 죽음까지를 기록한 책인 빠시온(Pasyon: 예수수난사) 전권을 사람들이 집이나 교회에 모여서 낭독하며 밤을 새우는 것으로, 어머니의 위치에 있는 나이 든 여성들이 주도한다. 오늘날 사용되는 빠시온 책은 1814년에 마닐라 주교의 공인을 받은 판본으로, 1703년에 예수회에서 인쇄공으로 일하던 필리핀인 벨렌(Belen)이 타갈로그어로 쓴 것을 원본으로 한 것인데, 여기서 성모는 예수가 존경하고 허락을 구하는 어머니로 그려진다(김민정, 2003:236-238).

사순절 고행의례의 하나인 빠바사는 빠시온 전권을 밤을 지새우며 낭독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출처: 저자 제공

앞에 인용한 글은 성주간 중 성수요일(Mierkoles Santo)에 평소와 다른 점을 느낀 성모가 예수에게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물으며 떠나는 것을 만류하자 예수가 답하는 내용이다. 끝까지 떠나야 한다는 말에 크게 충격을 받은 성모는 결국 예수의 결정을 받아들이지만, 이는 예수가 원해서가 아니라 성모 자신이 하나님께 직접 묻고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필리핀의 빠시온에서 성모와 함께 있을 때 예수의 신성은 다소 모호하게 그려지며, 성모의 위치는 예수의 신성만큼이나 강조된다(김민정, 2003:238-245). 예수의 탄생처럼 성모의 출생 과정이 설명되며, 성주간에 예수가 겪는 고난은 성모와 예수의 장황한 대화를 통해 성모의 아픔과 슬픔으로 전달된다.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는 성모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며, 성모는 죽은 후 천상에서 예수의 옆자리에 함께 한다. 또한, 성금요일 밤에 예수의 관을 들고 장례를 치르는 종교 행렬에는 상복을 입은 성모상이 함께 하며, 부활절 일요일 새벽에는 성모가 천상으로 올라가 예수를 만나는 상황을 재현하는 살루봉(salubong, 반김)이라는 의례가 거행된다.

성금요일 밤 예수의 관을 들고 장례를 치르는 종교 행렬 (붉은 원은 상복을 입은 성모상)
출처: 저자 제공
2023년 부활절 일요일 새벽 케손시 산토 도밍고 교회에서 거행된 ‘살루봉’ 의례 모습
출처: Philippine News Agency, by Yancy Lim (https://www.pna.gov.ph/photos/60963)

필리핀의 빠시온에서 아들 예수의 죽음을 맞은 성모의 태도는 중세 유럽의 라틴어 빠시온의 성모와 확연히 다르다(김민정, 2003:245-247). 후자의 성모는 예수와 함께 죽겠다면서 감정을 쏟아내고 그 충격으로 인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실신한다. 결국, 성모는 예수의 시신을 남성 사도들에게 넘기고 여인들의 부축을 받아 요한의 집으로 들어간다(Bestul, 1996:129-133). 그러나 필리핀 빠시온의 성모는 넘쳐흐르는 슬픔에도 의연함을 지키는데, 남성 사도들은 성모에게 허락을 구한 후 십자가에서 예수의 시신을 내리고, 성모는 이를 받아 무릎에 놓고 길게 애통함을 표하며, 사도들은 다시 성모에게 예수의 시신을 가져가도 될지 허락을 구한다(Cruz, 1994:170-172). 필리핀 빠시온이 그리는 성모는 중세 유럽의 성모 숭배에서 강조되는 순결한 여성이 아니며, 가부장적 관계에서 복종하고 헌신하는 수동적 어머니도 아니다. 빠시온 전반을 통해 성모는 자식인 예수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어머니로서 확고한 위상을 드러내며, 숭배의 대상으로서도 예수와 거의 맞먹는 위치를 차지한다.

 

채찍질 고행의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다.

… 필리핀은 “폭력에 물든 격동적인 역사를 지닌 나라”로 소개되며, 그와 같은 포괄적인 묘사에 대한 명확한 맥락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 같은 방식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라는 유명 다큐멘터리의 진행자인 – 필자] 팰턴은 성주간 의식들(십자가형과 채찍질 고행)을 필리핀의 안녕과 질서라는 난제와 비교하는 잘못된 비유를 든다. 그는 “전쟁 지역에 가지 않아도 유혈사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밖으로 운전해서 나가기만 하면 볼 수 있었지요.”라고 말하며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참회자들을 보여준다. 때로 장황하고 두서없는 그의 논평은 어떤 면에서 심오한 영성을 보여주는 이 의식을 비하한다.

– 모라틸라의 『페니텐샤』(2020:82~83)

모라틸라는 필리핀 가톨릭의 고행의례를 다루는 북미 유명 저널리스트의 방식이 편견에 가득 차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드러내는 것처럼 매년 성주간의 성금요일에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십자가형과 채찍질 고행에 대한 평가는 필리핀 가톨릭의 안과 밖에서 매우 극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에 행하는 고행의례에서 신자들은 이런저런 고행을 실천할 것이니 이런저런 소원을 들어달라고 신에게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빠사의 경우에서, 앞으로 10년간 바빠사를 할 테니 아픈 아이가 낫게 해 달라고 신에게 요청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러한 종교적 실천은 사람과 신 양쪽 모두가 개입되는 약속의 형태를 띠며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거래이다(김민정, 2003:247, 252-253). 필리핀의 사순절과 성 주간에는 매우 다양한 고행의례가 행해지는데, 성별에 따라 주로 행하는 의례가 구분된다. 여성들이 주로 실천하는 고행의례는 바빠사와 교회 순례이다. 교회 순례 중에는 교회 입구에서부터 제단까지 무릎으로 기어가 바닥에 십자로 엎드려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한편, 예수의 고통을 모방해서 성금요일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전후 상황을 물리적으로 재현하는 고행의례는 주로 남자들이 한다. 필리핀 국내외 언론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중부 루손의 빰빵가(Pampanga) 지역에서 하는 십자가형이다. 여기서는 빠시온에 나온 예수처럼 십자가에 묶여 손에 못 박히는 형벌을 ‘실제로 재현’한다. 다른 많은 지역에서는 예수의 고통을 물리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등을 채찍질하면서 행진하는 의례를 행한다. 이렇게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고행은 주로 젊은 남성들이 수행한다. 그렇다면 위 인용문에 등장한 저널리스트 팰턴의 주장처럼 필리핀의 고행의례는 “폭력에 물든” 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혈사태”일까?

필자가 20여 년 전에 현지조사 때 농촌 마을에서 목격한 채찍질(paghampas) 고행의례 장면은 당시 작성한 필드 노트에 자세히 담겨있다. “두 남자가 눈구멍만 낸 검은 천으로 만든 두건을 얼굴에 쓰고, 가시나무 월계관처럼 만든 나뭇가지 관을 머리에 쓰고, 웃통은 벗고 긴바지를 입고, 허리에 마른 바나나 잎을 긴치마처럼 두르고, 맨발로 걸어왔다. 오른손에 대나무 토막을 여러 개 묶어 만든 곤봉을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휘둘러 자기 등을 때리면서 천천히 걸어왔다. (이들의 가족이거나 과거 고행자였던) 예닐곱 명의 여자와 서너 명의 아이들이 이들을 뒤따랐는데, 여자들은 머리를 풀고 장엄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은 물을 들고 가다가 가끔씩 피가 흐르는 등에 뿌려서 엉긴 피로 피부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해주었다. 고행자 한 명은 한 발걸음마다 무릎을 굽히는 동작을 하여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과거에는 행진 시간을 늘려서 고통을 더 심하게 하려고 한 걸음 걷고 반걸음 물러서면서 가기도 했다고 한다.) 교회에서 9시경 시작한 이 행진은 1시경 마을 강가에서 끝났다. 둘은 강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고 뒤따르던 사람들은 강변에서 기다렸다. 이 긴 진행 시간 동안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조용히 내다볼 뿐 아무도 나와 보거나 구경하는 태를 내지 않았다. 평소와 너무도 다른 필리핀인들의 모습이었다.”

예수의 고난을 따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고행자들의 행진 출처: (좌) 저자 제공 / (우) Brian W. Tobin (https://flic.kr/p/3tMLM)

타인의 고통을 몸으로 함께 겪는 것은 그 고통의 이유와 의미에 공감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예수가 사람들을 위해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자처한 것처럼 고행자들이 자처한 고통 역시 대개는 부모나 자식을 위한 것이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고행의례는 이렇게 예수가 겪은 고난에 대한 공감을 전시적으로 드러내면서 예수 역시 자신의 고난에 공감할 것을 적극적으로 기대하고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종교 실행이다. 즉 교회와 마을의 공간에서, 가족이나 이웃과 더불어, 의례적 상징과 의미를 담아 연행하는, 육체적 고행은 신앙심을 근본으로 한다.

마닐라동물원의 성 가족상. 예수와 성모의 모자 관계로 대변되는 가족상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관계의 전형으로 제시된다.
출처: 저자 제공

아이 예수와 성모 숭배, 그리고 사순절과 성주간의 고행의례는 공감을 통해 호혜성이 발휘되는 가족관계의 이상을 신과의 관계에 투영하는 필리핀 가톨릭의 제설혼합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어른이 아닌 ‘아이’ 예수상을 모시면서 신의 계시나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마음은 더 편안하고 일상적이 된다. 성모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점은 사순절과 부활주간의 의례에서 강조되며 사람들은 죽음을 자처한 아들을 보는 성모의 고통과 부활한 아들을 천상에서 재회하는 성모의 기쁨에 공감을 표한다. 성금요일에 예수가 겪는 고난을 물리적으로 재현하는 고행의례도 이러한 의례적 공감의 맥락 안에 놓인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것처럼 성모와 예수도 자신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와줄 것이라는 호혜성을 기대한다. 이렇게 예수와 성모의 모자 관계가 대변하는 가족관계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관계의 전형으로 제시되면서 신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려는 필리핀 가톨릭의 종교 실행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저자 소개

김민정(minkimee@gmail.com)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이다.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제이주로 인한 젠더와 가족, 국가의 변화에 관해 연구한다. 저서로 『이주시대의 젠더: ‘다문화’ 한국사회의 필리핀 출신 여성들』 (2020)이, 공저서로 『오늘을 넘는 아시아 여성』 (2023), Redefining Multicultural Families in South Korea (2022), 『경계를 넘는 한인들』 (2021), Transnational Mobility and Identity in and out of Korea (2019) 등이 있다.

 


참고문헌

  • 김민정. 2003. “필리핀 가톨릭의 성모 이미지와 어머니 역할: 부활절 의례를 중심으로.” 『비교문화연구』 9(2):22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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