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연(아시아연구소)
아랍의 봄이 가져온 새로운 어둠
2010년 말 중동 및 북아프리카(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이하 메나) 지역을 휩쓴 반정부 시위 물결, 이른바 아랍의 봄은 메나 지역에 새로운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드높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아랍의 봄 시위의 확산 속에서 메나 지역의 정치적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강력한 독재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30년간 장기 독재를 하였던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 속에서 대통령직에 물러나 지난 2020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42년간 리비아를 장악하며 독특한 의상과 발언으로 한때 서방으로부터 아랍의 망나니 소리도 듣기도 한 카다피 최고지도자는 아랍의 봄 시위를 피해 도주하던 중 시민군의 발포로 사망하는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이 밖에도 강력한 철권 정치를 보여주었던 예멘의 살레흐 대통령, 튀니지의 벤알리 대통령도 반정부 시위로 대통령직을 버리고 최근 모두 사망하며 한 시대를 호령했던 메나 지역의 독재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렇게 세상을 영원히 지배할 것만 같았던 독재자들의 시대가 끝을 내리면서 메나 지역에는 새로운 자유롭고 공정한 정치가 들어설 것이라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의 순간은 찰나일 뿐이었다. 독재자들이 물러난 자리에는 더 강한 독재자가 자리를 꿰찼다. 일부 국가에서는 독재자 퇴출 후 생겨난 정치적 공백 속에서 다양한 정치 행위자들이 난립하며 내전이라는 최악의 위기가 발생했다. 그리고 아랍의 봄 뜨거웠던 반정부 시위 물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걸프의 부유한 산유국 왕정 국가들은 주변 권위주의 정권들의 몰락을 통해 자신들의 정권의 취약성을 깨닫고 한층 더 고삐를 당겨 정권 강화에 나서며 강력한 왕정으로 거듭나고자 하고 있다. 아랍의 봄이 아니라 아랍의 겨울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메나 지역의 정치는 오히려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메나 지역을 지배하는 권위주의 정치
아랍의 봄 이후 대부분 메나 지역 국가들의 정치 체제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주의 수준을 판단하는 대표적인 척도인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나 EIU 지표에 의하면 튀니지, 모로코, 레바논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권위주의 체제란 무엇인가? 권위주의 체제란 흔히 독재 정치로 불리기도 하는데 권위주의 체제 반대의 개념은 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독재라 하면 한 지도자가 장기간 정권을 장악한 체제를 지칭한다. 독재라는 단어 앞에 항상 수식어처럼 따라오는 장기 독재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선거를 통해서 주기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민주주의 체제와는 달리 한 지도자 혹은 한 정당이 교체 없이 몇십 년 동안 지속하는 시스템을 독재 혹은 권위주의 체제라고 한다. 즉, 권위주의 체제 혹은 독재 정권은 정권의 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의 정권 혹은 지도자가 지속해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저항 세력을 강압적으로 억제할 수밖에 없다. 정권을 심판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하는 야당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라는 법적 제도가 정치인들을 심판하고 정치인들이 유권자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거나 주기적으로 처벌하는 정치적 도구의 역할을 한다. 현재의 대부분의 메나 지역 국가들은 한 명의 지도자가 장기 집권하는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면서 정권을 이어간다. 비록 선거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이 선거는 형식적인 장치일 뿐 정치변화를 주도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이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권위주의 정권과 민주주의 정권의 모습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한 개방, 궁극적 목표는 권위주의 정권 유지
실제로 권위주의 정권은 정권에 반하는 야당 세력과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은 큰 변수가 없다면 정권 교체 없이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히려 공식적으로 야당이나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불확실성(opacity)이 크다고 볼 수 있다(Schedler 2013). 이에 따라, 늘 미래 예측 가능성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권위주의 정권은 자신들의 장기 집권을 위한 정치적 합법성 마련, 위협이 될 요인을 억압하고 동시에 불만을 달래는 유화 정책, 세 가지 틀을 기반하여 정권을 유지한다(Gerschewski 2013). 권위주의 정권은 이러한 세 가지 기틀을 적절히 정치적 환경에 맞춰서 혼합하여 사용하면서 궁극적으로 정권 생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권위주의 체제는 역사적, 정치적 흐름에 따라 그 형태나 정치 전략을 카멜레온처럼 변화해 왔다. 그리고 메나 지역의 권위주의 정권들도 국제 질서, 주변 정세, 국내 상황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전략적으로 바꿔 왔다. 1990년대 동구권 공산 국가들의 몰락,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 물결 속에서 기존 권위주의 체제들은 민주주의로의 전환에 대한 압박을 대내외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내외적 압력을 견디지 못한 권위주의 국가들은 제한적으로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나 정당 설립 등을 받아들이면서 표면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였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와 이로 인해 정치적 변화에 대한 국내 대중의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메나 지역 권위주의 국가들도 유화 정책이라는 기조를 택하여 민주주의 제도를 일부 받아들이고 대중에게 정치 참여 기회를 조금 열어주었다. 하지만, 이는 권위주의 정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대중의 불만과 국제적 압박을 완화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이러한 권위주의 정권들 가운데는 이집트나 튀니지 등 아랍의 봄을 통해 강력한 반정부 시위를 경험하고 기존의 독재 정권이 무너진 여러 메나 지역 국가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러한 정권들의 특징은 형식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였을 뿐 여전히 독재자들의 정권 유지는 건재하다는 것이었다. 즉, 겉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차용했다고 보여줌으로써 정권의 안정과 정당성을 국내 및 국제사회로부터 보장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점점 더 많은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적 외양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학자들은 이러한 정권을 가리켜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 혹은 하이브리드(hybrid) 정권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Levitsky, 2002). 하지만 하이브리드 정권의 등장은 이미 정권이 취약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권위주의 정권이 시민사회나 야권 세력의 정치적 참여를 허용한 것은 정권의 정치적 억압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정치적 억압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이러한 불만을 축소하기 위해 시민사회나 야권 세력의 정치적 참여를 허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혹은 제한적으로 받아들인 민주주의 제도는 오히려 대중의 불만을 가중할 뿐이었다. 2010년 말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도 무바라크 대통령이 2011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려 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촉발된 것이었다. 선거와 정당과 같은 허울뿐인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것은 종국에는 대중들이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적 부패를 깨닫게 하는 악수가 된 셈이다. 한편 이렇게 선거를 정권을 연장하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해온 메나 지역의 공화정 국가와 달리 왕정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쿠웨이트, 바레인, 요르단, 모로코 같은 왕정 국가들은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고 민주주의 제도를 접목한 서구 왕정 국가들의 입헌군주제 이미지를 표방하였다. 오히려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왕정 국가에서 선거는 국왕에 대한 정치적 비난의 화살을 국회로 돌리는 효율적인 방어막이었다. 2010년 아랍의 봄 당시, 모로코도 반정부 시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부분적 정치 개혁을 통해서 다수당이 교체되는 것으로 왕정은 유지할 수 있었다.
독재자가 물러난 자리, 더 강력한 독재의 등장
아랍의 봄 이후, 많은 국가들에서 기존 독재 정권이 무너졌음에도 정치적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아랍의 봄의 시발점이나 마찬가지였던 이집트는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에 성공하여 모르시(Morsi) 대통령이 탄생하였지만 모르시만의 새로운 권위주의적 행보는 엘시시라는 새로운 강력한 군부 권위주의 정권이 등장하는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예멘이나 리비아는 여전히 내전이 지속되는 상태이다. 한편, 아랍의 봄을 통해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걸프 산유국 왕정 국가들도 새로운 정치적 위기에 닥쳤을 때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새롭게 구축하면서 권위주의 왕정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한편, 아랍의 봄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튀니지는 최근 카이스 사이에드(Kais Saied)라는 무소속 출신의 후보가 정당 정치와 기성 정치 엘리트에 반기를 들며 대통령에 당선된 후,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권한을 확대하고 정당의 역할을 축소하는 등 튀니지마저 권위주의 정치로 퇴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로부터 학습, 억압의 정치: 이집트 엘시시 정권
강력한 대중 시위로 무바라크 정권이 퇴진하고 무슬림형제단이 부상한 이집트에서는 엘시시가 이끄는 군부가 과거의 경험과 교훈을 토대로 더욱 강력한 군부 정권을 구축했다. 아랍의 봄 시위를 통해 무바라크 정권이 축출되었던 만큼 엘시시 정권은 반대 세력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전략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먼저, 이집트 군부 정권에 가장 위협이 될 수 있는 무슬림형제단을 근절하기 위하여 미국과 주변 걸프 국가들과의 협력에 힘입어 무슬림형제단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단체로 지정하였다. 또한, 무슬림형제단 출신 인사 대부분을 체포해 무슬림형제단을 와해시켰다. 한편, 엘시시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여 정권 연장의 합법성을 마련하였다. 엘시시 대통령은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득표율 97.8%를 얻어 압도적으로 정권을 재연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쟁이 될만한 야권 후보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한 채 당연히 엘시시가 당선되게 만들어진 선거일 뿐이었다. 즉, 엘시시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안보적 합법성, 그리고 압도적인 당선이라는 제도적 합법성 두 가지를 근거로 하여 장기 독재의 정당성을 마련하였다. 이와 함께, 반정부 시위를 통해서 대중들의 정치적 분노가 쌓이면 정권 퇴출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한 만큼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를 철저하게 억제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결사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새로운 법안을 만듦으로써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를 억압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억압 방식에서 나아가 이집트 군부는 정부가 시민사회를 정의하면서 시민사회를 만드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하야 카리마(Haya Karima)다. 이는 시민사회 활동의 영역을 정부가 정의하여 자발성이 특징인 시민사회를 정부의 개입으로 규제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적 개입과 함께 엘시시 군부는 정치 권력뿐만 아니라 경제 권력까지 독점해 경제 기관 및 경제적 이권을 장악함으로써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모두를 다 통제하고 장악하는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로 거듭나고 있다.
개혁에 가려진 강력한 절대 군주의 부상: 사우디 빈살만 왕정
이집트가 강력한 군부 독재로 거듭나고 있다면 아랍의 봄 여파에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미미한 영향을 받았던 사우디는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 정책은 사우디 왕정의 정치적 안정 토대가 되었던 석유 기반 경제의 존속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사우디에서도 아랍의 봄 시위가 확산된 여파로 유전 지대가 밀집한 동부 지대의 시아파 집단의 시위 사태도 발생했고 주변국인 바레인의 시아파 세력의 반정부 시위를 경험하면서 사우디 또한 정권의 취약성을 확인했다. 심지어 이후 미국 셰일 혁명에 따른 미국의 원유 가스 생산 증가로 국제 유가는 크게 하락하였고 그 결과 사우디 정부는 재정 적자와 실업률 상승 등 국내 경제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들의 정치적 불만도 가중되었다. 이에 따라, 사우디 왕정은 더이상 석유에 기반한 경제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음을 판단하고 탈석유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기조에서 시작된 정책이 비전 2030이다. 사우디는 석유 위주의 경제에서 탈피하여 경제를 다각화하고 심지어 탈탄소 정책까지 추구하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 탈석유 탈탄소를 외치고 있는 셈이다. 네옴시티(Neom City)라는 SF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개혁 군주 혹은 젊은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상하였다. 경제적 개혁뿐만 아니라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는 사회적 개혁도 과감하게 시행하였다. 근본주의 이슬람 성격이 강한 와하비즘에 기반한 사우디 왕정은 여성에 대한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는 이슬람 학자(울라마)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는 과감한 사회적 개혁을 시행하였다. 물론 이러한 왕정의 과감한 개혁 시도는 사우디 사회를 한층 자유롭게 하고 개방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억압만 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인식한 임시방편의 조치로도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사회적 개방 정책의 일환이었을 뿐 정치적 개혁은 아니었다. 사우디 절대 왕정의 존속은 유지하면서 외부에 보여주기식의 사회 개방 정책을 통해서 마치 굉장한 개혁을 시도하는 것처럼 인식되게 하였다. 사우디 왕정은 정치적 개혁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화(Liberalization) 조치는 시도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우디에서는 대중의 정치 참여가 억제되고 있으며 정부와 대립하는 반정부 혹은 야권 세력의 정치 참여는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우디의 절대 왕정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카슈끄지 살해 사건을 필두로 왕정에 대한 비판 세력은 철저히 억압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사우디 여성 두 명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왕정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장기 수감되었다. 사우디 시민 정치 권리 연합(Saudi Civil and Political Rights Association, ACPRA)의 창립 멤버, 사우디 해외 도피인들이 결성한 국가 의회 정당(National Assembly Party, NAAS)들의 회원들이 징역을 선고받거나 이유 없이 살해되는 등 정치적 비판을 하는 인물이나 집단에 대한 탄압은 여전하다(Freedom House, 2023). 정치적 억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국무총리로까지 임명되면서 모든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과거 국왕이 왕족들에게 권력을 배분하며 광범위한 왕권을 유지했던 것과 반대로 빈살만 왕세자는 대부분의 권한을 자신에게 집중함으로써 사우디 왕정은 이전의 어느 정권보다 더욱 강력한 절대 왕정이 되어 가고 있다. 사우디 왕정은 경제 권력도 독점하기 경제 관련 기관을 하나로 통합하여 경제 및 개발 위원회(Council of Economic and Development affairs)를 창설하는 등 다각도로 정치 및 경제적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포퓰리즘과 권위주의 경계: 튀니지 카이스 대통령
한편, 아랍의 봄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튀니지마저 포퓰리스트의 모습을 한 권위주의 정치로 향해가는 또 다른 스트롱맨이 등장하였다. 현 튀니지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은 2019년 무소속 후보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대통령에 당선됐다. 튀니지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아랍의 봄을 통해 민주주의로의 전환에 성공한 사례로 평가되어왔다. 시민사회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세속 정당과 이슬람 정당 간의 갈등을 봉합하며 아랍의 봄 시위를 겪은 국가 중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실현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4년 권력 분배를 위해 개정된 헌법에 기반한 정당 간 합의의 정치는 시민들에게 비효율적인 정치적 갈등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튀니지의 경제 악화로 대중들은 정치인들이 비루한 논쟁에만 몰두하고 실질적인 생활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카이스 사이에드는 정당 정치와 정치 엘리트들을 부정하면서 오직 인민(people)만을 위하겠다는 포퓰리스트적인 구호를 들고 나와 대통령직에 당선되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치적 비효율성을 개혁하겠다며 정당의 역할을 줄이고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는 골자의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제시했고, 국민 투표를 통해 헌법이 승인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결국 사이에드 대통령이 권위주의 정치로 퇴보하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만 증폭시키고 있다.
스트롱맨 정치의 세계적 확산
이러한 중동 국가들의 권위주의 정권의 재부상은 전 세계적인 스트롱맨 정치의 등장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스트롱맨 정치란 역사적으로는 자비로운 군주를 표방하면서 강력한 철권을 행사한 고대 군주를 묘사하던 용어로 사용되었다(Nadeem paracha 2020).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냉전 시대 권위주의 정권을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였다(Nadeem paracha 2020).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속 민주주의가 세계를 주도할 정치적 사상으로 자리를 잡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도 오래 가지 못했다. 미국 주도의 단극 질서가 무너지고 다극화 질서로 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러시아와 중국 등이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세계 질서 변화 속에서 등장한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에 이어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까지 스트롱맨 정치라는 용어는 강한 이미지를 지닌 지도자를 일컫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스트롱맨이라는 호칭을 갖는 정치인들은 전반적으로 기존의 정치 질서를 부정하고 자신을 새로운 정치를 펼쳐나갈 선구자로 대중들에게 인식시킨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대중들을 쉽게 사로잡을 수 있는 민족주의에 의지하거나 종교적 사상을 주장하는 등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메시지에 중점을 두기도 한다(Lemieux 2022). 스트롱맨은 기성 정치 엘리트를 부정하고 인민(people)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스트와도 혼재되는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Lemieux 2022). 최근의 스트롱맨 정치의 모습이 과거 냉전 시대와 달리 권위주의, 민주주의 체제 구분 없이 등장한다는 점은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나아가 이러한 스트롱맨 정치의 등장은 중국-러시아를 중심으로 권위주의 축(axis of authoritarianism)의 부상과도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메나 지역으로 확대되는 권위주의 축(Axis of Authoritarianism)
냉전 종식 이후 미국 및 유럽 주도의 민주주의 체제가 세계 질서를 지배할 것으로 예상됐던 시기에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 전환이 주변국으로 이어진다는 민주주의 확산(democratic diffusion) 효과나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이론인 민주주의 평화론(democratic peace)이 세계를 주도했다. 과거 냉전 종식 이후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채택한 민주주의 체제가 당연한 지배적인 정치 시스템이었던 시기에는 민주주의 확산 분위기 속에서 많은 권위주의 국가가 비록 결함이 존재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선거와 정당 등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이는 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권위주의 확산(authoritarian diffusion)이나 권위주의 평화론(authoritarian peace)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세계 질서가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판단된다. 최근 나타나는 메나 지역의 정치 변동 양상은 이 두 용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메나 지역에 민주주의를 세우겠다던 미국은 더 이상 중동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중동 떠나기 전략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틈을 타서 중국과 러시아가 메나 지역에 발을 들이며 새로운 파트너 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메나 지역의 권위주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들과 정치적 지향점이 맞는 러시아나 중국의 권위주의 스트롱맨 지도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즉, 중국-러시아를 잇는 권위주의 축이 메나 지역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중국 중재의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는 메나 지역에서 중국의 정치적 영역이 확대되었음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도 OPEC+협의체를 통해 사우디 등의 메나 지역 산유국과 협력하고 있으며 시리아 내전에 적극 개입하는 등 메나 지역에서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이제 메나 지역의 스트롱맨들은 미국과 같은 서방 국가들의 눈치만 보던 시대에서 벗어나 새롭게 메나 지역에 발을 딛기 시작한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새로운 세력과 연대하면서 세계적인 권위주의 축의 확산에 동조하고 있다. 더욱 강력해진 권위주의적 스트롱맨의 부상, 중국-러시아-중동을 잇는 권위주의 축의 확대 속에 중동의 민주주의 정치는 더욱 요원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메나 지역 국가들의 스트롱맨 독재자들은 당분간 세계적인 권위주의 축의 확산 속에서 권력을 확대하며 정권을 유지해갈 것으로 보인다.
저자 소개
안소연(soyeonahn727@gmail.com)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이자 동 연구소 서아시아센터 방문연구원이다. 단국대학교 아시아중동학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권위주의 선거에서의 시민들의 정치적 인식과 행동>으로 2022년도에 미국 텍사스 휴스턴 대학교(University of Houston)에서 정치학(Political Science) 박사학위를 받았다. MENA 지역의 정치체제, 정당, 선거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최근 아랍 국가들의 선거 결과 분석 및 의미」,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위기: 튀니지 사례를 중심으로」,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 역사를 토대로 바라본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야권 세력의 생존을 위한 정치적 투쟁, 성공 그리고 실패」, 「걸프 왕정 국가들의 기성 정치 질서에 도전하는 카타르 유인 분석-수정주의 국가 관점을 기반으로」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 정당이 직면한 변화와 도전에 대한 고찰: 모로코와 튀니지 이슬람 정당의 소외 정당에서 기성 정당으로의 변모 과정」 등이 있다.
참고문헌
- Freedom House in the World 2023. “Saudi Arabia”
https://freedomhouse.org/country/saudi-arabia/freedom-world/2023 (검색일: 2023. 4.15.) - Gerschewski, J. 2013. “The three pillars of stability: Legitimation, repression, and co-optation in autocratic regimes.” Democratization, 20(1), 13-38.
- Levitsky, Steven, and Lucan A. Way. 2010. Competitive Authoritarianism: Hybrid Regimes after the Cold War, Cambridge University Press.
- Nadeem paracha. 2020. “The return of strongmen in politics”,
- https://www.dailypioneer.com/2020/columnists/the-return-of-strongmen-in-politics.html (검색일: 2023. 4. 15)
- Pierre Lemieux, “The Age of the Strongman”, CATO Institute,
- https://www.cato.org/regulation/fall-2022/easy-path-strongman-be (검색일: 2023. 4. 20)
- Schedler, A. 2013. The politics of uncertainty: Sustaining and subverting electoral authoritarianism, OUP Oxf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