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고전(古典)의 활용: 『끼에우傳』(Truyện Kiều)을 중심으로

베트남인들은 『끼에우傳』의 많은 구절을 암송할 수 있으며, 『끼에우傳』을 인용하여 공감을 얻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어려서부터 이 소설을 듣고 말하며, 각급 학교과정에서 이를 학습했기에 베트남인의 생각에서 그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신의 운명이 마치 그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베트남인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설날에는 『끼에우傳』으로 운명을 점치는 ‘끼에우점’이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베트남인의 호응을 얻기 위하여 베트남의 정치인과 베트남을 방문한 외국 정상들은 『끼에우傳』을 인용하곤 한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과 베트남 간의 경제교류 및 인적교류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양국 간의 관계가 보다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여 진정한 동반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베트남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는 지를 알아가는 노력일 것이다. 문화에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시작은 『끼에우傳』와 같은 고전읽기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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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진(아시아연구소)

“Truyện Kiều còn, tiếng ta còn. Tiếng ta còn, nước ta còn(『끼에우전(傳)』이 있는 한 베트남어가 살아있고, 우리 언어가 있으면 나라가 존재한다.)”1) 베트남의 학자 팜꾸인(Phạm Quỳnh)2)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이다. 그 짧은 글은 18세기 베트남의 작가 응우옌주(Nguyễn Du)가 저술한 『끼에우傳』이 베트남인들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많은 학자들이 『끼에우傳』을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드』나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반열에 올려놓고 이 소설이 베트남 사회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연구할 정도이다.

 

베트남 최고의 古典끼에우

베트남 역사에서도 『끼에우傳』의 위치는 심심치 않게 확인된다.‘응우옌(阮)왕조 제2대 민망(Minh Mạng) 황제는 『끼에우傳』에 심취해 관리들에게 암송하도록 했으며 학사들에게 필사해서 후대에 전하도록 했다. 제4대 트득(Tự Đức)은 국가 대소사를 의논하는 곳에서 『끼에우傳』을 감상하고 이에 관한 시를 짓도록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끼에우傳』는 일상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영극, 영화, 창, 판소리, 회화 등의 예술로 확대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끼에우傳』은 자신의 운명이 마치 그 내용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영혼 깊은 곳까지 사로잡고 있다. 심지어 한 해의 운세를 알아보는 경전으로 『끼에우 傳』을 활용하는 끼에우점(bói kiều)이 있을 정도다(안경환 2015, 223).

그림 『끼에우傳』 그림 2 『끼에우점』 그림 3. 호치민의『끼에우傳』 인용 사례 모음집

 

끼에우은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

『끼에우傳』은 베트남이 낳은 대문호 응우옌 유(Nguyễn Du, 1776-1820)에 의하여 창작된 6ㆍ8구체 형식의 소설이며, 재·색(才色)을 겸비한 한 여인 끼에우(Thuý Kiều)의 파란만장한 삶에 관한 이야기다. 『끼에우傳』은 여자 주인공 취교(翠翹, Thuý Kiều)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지만 ‘재명사상’, ‘효도 사상’, ‘권선징악’, ‘인과응보’와 같이 인간사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교훈이 담겨져 있다. 또한 표현이 매우 시적이고 인물을 매우 사실적이며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어 베트남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끼에우는 봄나들이에서 만난 김 쫑(Kim Trọng)과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은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옥에 갇힌 아버지와 남동생을 구하기 위해 몸을 팔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고 이 와중에 연인 김 쫑과 연락이 끊기게 된다. 끼에우는 여러 사람에게 속아 홍등가를 떠돌거나 첩 생활을 하면서 모진 고생을 한다. 우연히 혁명군 지도자와 인연을 맺었으나 혁명군이 패배하면서 다시 노비로 전락한다. 기구한 운명을 비관하여 강물에 몸을 던졌으나, 스님에게 구조된다. 절에서 수양하던 중 입신양명한 옛 연인 김 쫑과 재회하게 되고, 김 쫑의 요청에 따라 재결합을 하여 행복하게 산다.

『끼에우傳』등장인물들은 특정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표현할 때 자주 활용된다. 한국의 고전『흥부傳』에 나오는‘놀부’가 ‘욕심 많은 사람’을 의미하듯이 『끼에우傳』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특정 성격을 표현하는 전형으로 사용된다. 끼에우를 유혹해서 홍등가로 팔아넘겼던 서 칸(Sở Khanh)은 ‘바람둥이’, 끼에우를 아꼈던 남자의 본처 호안 트(Hoạn Thư)는 ‘질투의 화신’등을 들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가정과 사회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끼에우傳』을 접하고 있으며, 각급 학교의 교재를 통하여 최고의 고전으로 학습하고 있다.

 

끼에우인용은 높은 품격의 상징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 주석도 틈만 나면 『끼에우傳』을 읽었고 글을 쓸 때, 대화할 때 그 구절을 활용하거나 문장 전체를 인용하기도 하였다. 외국 정상과 만나고 헤어질 때에 적절한 구절을 창조적으로 인용하여 분위기의 품격을 드높였다는 기록이 있다. 1957년 소련 보로실로프 수상과 환담할 때 『끼에우傳』을 9구절 인용하였으며, 1963년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을 환송할 때는 『끼에우傳』의 2248행 Cánh hồng bay bổng tuyệt vời/ Trông mòn con mắt phương trời đăm đăm! (기러기 높이 날아가니, 눈이 시리도록 먼 하늘만 바라보는구나!) (안경환, 158)를 인용하여 수카르노 대통령과의 우의를 강조한 일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이러한 호치민 주석의 『끼에우傳』활용사례는 책으로 엮어져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현대 베트남어3) 사용과 근대식 교육의 확대로 일반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쓰게 되기 전까지는 소설의 내용이 대부분 구전을 통해서 전달되었으나, 소설의 내용과 인물특성은 일반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었다. 주석서인『취교전상주(翠翹傳詳註)』에 따르면 “고문에 조예가 있는 사람만이 잘 알 수 있다”라고 했으며, 『끼에우傳』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재학식(才學識) 삼자(三者)를 갖춰야 하는데, 고전에 대한 지식이 결여된 사람이 멋대로 해석해서 표현의 묘미를 잃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최귀묵 2010, 485).

『끼에우傳』의 내용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생활 속에 깊이 체화된 상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들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하려 할 때 이 고전에 대한 필수적이라 생각된다. 베트남을 방문한 외국 정상 중에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베트남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가장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베트남인이 가장 존경하는(admire) 사람을 조사할 때 오바마 대통령은 항상 높은 순위에 위치한다.

베트남 식당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의 초탈한 모습은 많은 베트남인의 호응을 받았다.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13476480@N07/27144294392

2016년 5월 24일 하노이 미딩 컨벤션센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했던 연설을 베트남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두 나라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는 취지를 『끼에우傳』을 인용하여 호소하였다. 베트남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이『끼에우傳』을 인용하여 베트남 청중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내용으로 크게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if I can say it another way — in words that you know well from the Tale of Kieu— Please take from me this token of trust, so we can embark upon our 100-year journey together.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끼에우傳』의 표현에 의한다면, 이 제가 드리는 이 믿음의 증표를 받고 100년간의 여정을 같이 시작합시다.)이라고 연설을 끝맺었다.

반면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의 연설내용은 현재와 미래의 우호 협력을 다짐하는 현실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수교 이후 2022년 2월까지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 국가수반은 6명4)이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5)에 보관된 기록물 중 베트남 관련 21건의 연설문을 보면 대부분의 내용이 1) 경제교류, 2) 투자진출, 3) 공적지원이다. 연설마다 베트남의 속담, 한국과의 역사적 교류, 스포츠나 문화교류 등의 에피소드가 활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이라 보기는 어렵다. 베트남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문화와 가치로부터 추출된 내용이라면 그들의 호응을 좀더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공감의 요소는 대부분 문화, 즉 『끼에우傳』과 같은 고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의 베트남 관련 연설 내역

대통령 유형 제목 연설일자
김영삼 환영사 도 므어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위한 만찬사 1995.04.12
김영삼 환영사 도 므어이 베트남 당서기장 주최 만찬 답사 1996.11.20
김대중 환영사 르엉 베트남 국가주석 내외 주최 만찬 답사 1998.12.16
김대중 기타 르엉 베트남 주석을 위한 만찬 연설 2001.08.23
김대중 기타 한·베트남 석유개발 성공 기념식 연설 2001.08.23
김대중 기타 쩐 득 르엉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한·베트남 수교 10주년 축하 메시지 2002.12.21
노무현 기념사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를 위한 오찬사 2003.09.16
노무현 환영사 [베트남 국빈방문]쩐 득 르엉 베트남 주석 만찬답사 2004.10.10
노무현 성명 [베트남 국빈방문]한·베트남 경제인 초청 오찬 연설 2004.10.10
노무현 환영사 [베트남 국빈방문]호치민시 인민위원장 주최 만찬 답사 2004.10.11
노무현 환영사 농 득 마잉 베트남 서기장을 위한 만찬사 2007.11.14
이명박 기타 [베트남 방문] 젊은이와의 대화 2009.10.20
이명박 환영사 [베트남 방문] CEO포럼 오찬 연설 2009.10.21
이명박 환영사 베트남 국가주석 초청 국빈 만찬사 2011.11.08
박근혜 환영사 한.베트남 경제협력 만찬 간담회 2013.09.07
문재인 기타 (베트남방문)APEC 기업인자문위원회(ABAC)와의 대화 2017.11.10
문재인 기념사 (베트남방문) 한·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 착공식 2018.03.22
문재인 성명 (베트남방문)아세안 청년일자리 협약식 및 취업 박람회 2018.03.23
문재인 성명 (베트남방문)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 2018.03.23
문재인 성명 (미국 방문 | 유엔총회) 한·베트남 정상회담 2021.09.21
문재인 성명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한·베트남 정상회담 2019.11.27
맺는말

유네스코는 2002년 “문화는 한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에서 나타나는 예술, 문학, 생활양식, 더부살이, 가치관, 전통, 신념 등의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특징”으로 정의하였다. 문화는 한 집단의 고유의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고유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외부인과 내부인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외부인이 한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친구 또는 내부인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집단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베트남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중 베트남인이 사랑하는 고전(古典)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며 베트남인들이 쉽게 수긍하는 접근법이 될 것이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과 베트남 간의 경제교류 및 인적교류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양국이 지속 가능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도약하여 진정한 친구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베트남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는 지를 알아가는 노력일 것이다. 그 노력은『끼에우傳』과 같이 베트남인들이 사랑하는 고전(古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저자소개

장 진(jjplaza2@gmail.com)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이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베트남 마케팅연구소장으로 활동중이다. <대베트남 한국투자진출기업의 공장부지 결정요인>을 주제로 목원대학교에서 부동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호치민시에 8년간 주재하면서 베트남을 연구하였으며, 베트남 진출기업 및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하고 있으면 베트남 문화를 주제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1) Minh An. 2016. “Khánh thành tượng nhà văn hóa Phạm Quỳnh”
https://tuoitre.vn/khanh-thanh-tuong-nha-van-hoa-pham-quynh-1109326.htm(검색일 :2023.2.12.).

2) 1892년 – 1945년에 활동한 베트남의 언론인 및 학자. 문학지 ‘Nam Phong’을 창간. 현대 베트남어의 문체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학자.

3) Quốc Ngữ. 베트남어의 로마자 표기법. 1885년 프랑스가 베트남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사용을 장려하였으며, 1910년 이후 베트남 학자들에 의해서 문명퇴치와 민족주의운동을 위하여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4)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6명

5)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2023. https://www.pa.go.kr/index.jsp(검색일:2023.2.12.)

 


참고문헌

  • 안경환. 2015. 『쭈옌 끼에우』.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 최귀묵. 2010. 『베트남 문학의 이해』, 서울: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