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유권자 시민운동으로서 ‘불항복서약서’ 캠페인은 왜 실패하였나?

2022년 11월 실시된 대만 지방선거는 중국의 군사위협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국가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된 선거였다. 이 과정에서 대만의 일부 유권자 단체는 지방선거 출마자에게 중국 침공 시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불항복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약 3개월의 캠페인 끝에 서약서에 서명한 후보자는 민진당 등 범여권 후보에 그쳤다. 이 시민운동이 당초 예상만큼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정권심판론’ 등 다른 이슈가 선거판을 압도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촉발된 대만 ‘불항복서약서’ 운동은 이대로 소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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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항복서약서’ 캠페인 기자회견 모습 출처: 대만독립건국연맹 홈페이지

지해범(아시아연구소)

2022년 11월 26일 실시된 대만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이 참패하고 제1야당인 국민당이 승리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직에서 사퇴하였고 내각도 교체되었다. 그동안 중국과의 갈등을 불사하고 탈중친미(脫中親美) 노선을 걸어온 차이잉원 정부는 지방선거 패배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이는 2024년 1월로 예정된 차기 총통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안보 위기 속에 시작된 ‘불항복서약서’ 운동

지난해 대만 지방선거는 전례 없는 국가안보 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작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차이잉원 정부는 대미관계 강화의 일환으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초청하였고, 그의 방문(2022.8.2~3)을 전후하여 양안 간의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중국은 대만을 포위한 채 6개 해역(海域)에서 실사격 훈련을 벌이고 대만 상공을 가로지르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대만해협을 전면 봉쇄하는 군사훈련을 전개했다.[i] 작년 10월 16일 공산당 20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과의) 평화통일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무력사용 포기를 결코 약속하지 않을 것이고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ii]. 필요할 경우 무력통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안보 위기 속에서 대만의 일부 유권자들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선거에 출마한 시장과 현장, 시의원 후보들을 대상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 시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불항복서약서(不投降承諾書)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이었다[iii]. 대만 총통이 취임식 때 “국가를 보위한다(保衛國家)”는 선서를 하지만[iv], 이를 지자체장에까지 확대하는 의미가 있다. ‘중국에 저항하고 대만을 지킨다(抗中保臺)는 구호를 내건 이 운동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거나 중국과의 통일을 원치 않는 유권자 단체와 대학생 연합회가 주도하였다. 서명 캠페인은 대만의 시(市)와 현(縣)급 이상의 지자체 출마자를 대상으로 작년 8월부터 11월 초까지 약 3개월 간 전개되었다. 서약서의 공식 명칭은 《대만을 지키고 절대 항복하지 않겠다는 서약서(捍衛臺灣絶不投降承諾書)》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 (성명)는 2022년 지방선거 (직위)에 출마하면서, 대만이 중국과 그 맹방으로부터 받는 무력과 안전의 위협에 직면하여, 당선 여부에 관계없이 온 힘을 다하여 대만 인민의 저항 의지를 강화하고, 대만 각지에 민방위 체계를 완벽하게 하는 데 적극 협력할 것을 서약한다. 최고의 경각심으로 외부 적대세력의 침투를 막고, 말이나 행동, 혹은 기타 방식으로 (중국에) 항복하거나 저항을 포기하고 적과의 평화회담을 하자고 고취, 선전, 유세, 혹은 지지하는 어떠한 주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군사적 방법으로 대만을 침략·위협하고, 대만과 중국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본인은 죽음으로 대만의 안전을 보위하고 침략에 반격하며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 (서명)》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약서 운동’을 촉발

대만의 시민 단체가 ‘불항복서약서’ 운동을 전개한 결정적 계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민간 단체 중 하나인 ‘대만독립건국연맹’의 천난톈(陳南天) 주석은 작년 9월 5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금년 2월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고국에 남아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이러한 그의 결심이 전체 국민의 사기를 드높여 우크라이나에 괴뢰정권을 세우겠다는 푸틴의 음모를 저지하고 있다”면서 “대만이 마주한 것은 러시아보다 더 사악하고 더 강하며, 더 큰 야심으로 가득한 (시진핑) 정권이다. 대만의 이장과 촌장에서부터 대도시 시장에 이르기까지 공직에 출마한 후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용감하게 떨쳐 일어나 ‘죽음으로써 대만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운동 주체들은 양안 간의 ‘평화적 대화론’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대만제헌기금회의 숭청은(宋承恩) 부집행위원장은 “중국과의 접촉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최근 발표한 ‘대만정책백서(白皮書)’에 따르면, 대만의 운명은 중국과 합병하는 것이고, 대만 인민의 선택은 단지 ‘무력으로 정복되느냐’, ‘평화적 대화로 통일을 받아들이느냐’만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무력 위협 하의 평화적 담판이란 담판이 아니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항복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운동을 전개하던 당시 대만의 반중(反中) 여론은 매우 높았다. 2022년 8월 중순 대만 민의기금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50%가 ‘독립’을 선택했고, 25.7%가 ‘현상 유지’를, 11.8%가 ‘중국과의 통일’을 각각 지지했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 하에서도 대만 국민의 3분의 2가 ‘중국과 별도의 국가’로 남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불항복서약서’에 서명하지 않는 후보에게 투표하지 말자는 주장도 나왔다. 대만 2위의 반도체 회사인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聯華電子)의 창업주 차오싱청(曹興誠) 명예회장은 “대만 인민은 ‘안(대만)에서 밥을 먹고 바깥(중국)과 내통하는’[吃里扒外] 정치인에게 절대 투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차오 회장은 작년 9월 초 중국의 침공에 대비해 국민 정신무장과 군사훈련 교육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며 사재 30억 대만 달러(약 1335억원)를 기부한 인물이다. 이 돈은 향후 3년간 대만 민방위 대원인 ‘흑곰(黑熊)용사’ 300만명을 육성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대만 언론은 전했다[v].

<불항복서약서 홍보 이미지>
출처: 대만독립건국연맹 홈페이지

 

불항복서약서’ 운동이 실패한 까닭

시민운동 단체들은 매주 ‘불항복서약서’ 서명 진행 상황을 발표해, 후보자들의 서명을 유도하고, 유권자에게는 후보자의 대만 수호 의지를 참고하여 투표하라고 촉구했다. 최종 서명 결과는 대만 지방선거일을 나흘 앞둔 2022년 11월 22일 발표되었다. 이에 따르면, 서명 운동에 동참한 후보자는 모두 263명으로 집계되었고, 서명 결과는 소속 정당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vi].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타이베이(臺北), 타이난(臺南), 가오슝(高雄) 등 6개 직할시장 후보(총 30명) 중 서약서에 서명한 사람은 9명(30%)이며, 집권 민진당(6명)과 무소속(2명), 타이펑(臺澎)당(1명) 후보가 전부였다. 국민당 후보는 한 명도 서명하지 않았다. 지롱(基隆),자이(嘉義),신주(新竹),이란(宜蘭) 등 3시-13현에서는 48명의 시장-현장 후보 중 민진당과 시대역량(時代力量) 후보 14명(27.7%)만 서명했다. 국민당에서는 지방의원 후보자 한 명만 서명했다. 전체적으로 ‘불항복서약서’ 캠페인은 사실상 실패한 유권자 운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원인으로는 몇 가지가 지적된다. 국내외 보도와 필자의 개인 인터뷰를 종합하면, 첫째, ‘정권심판론’이 선거 국면을 압도했다는 점이다. 차이잉원 정부는 2019년 코로나 발생 초기 신속한 대응으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지만, 2021~22년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한 시기에 과도한 방역정책으로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 식당 객실 영업의 금지 등으로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야당의 ‘정권심판론’이 먹혀들었다고 한다. ‘불항복서약서’ 운동은 이런 굵직한 이슈에 묻혀 국민적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둘째, 차이 정부의 ‘반중(反中) 마케팅’이 역효과를 냈다는 점이다.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차이 총통이 펠로시 하원의장을 초청해 선거국면을 ‘반(半)중국’의 구도로 만드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 오히려 국민들의 피로감을 불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오젠민 대만 중국문화대 국가발전연구소장은 홍콩 명보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1월 대만 총통선거 때는 차이 총통이 홍콩 시위를 내세워 위기감을 끌어내는 데 싱공했지만, 이번에는 반중 재탕 전략이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불항복서약서’ 운동 역시 민진당의 선거운동으로 인식되었고, 그것이 이 사회운동의 확산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셋째, 서명운동 단체들은 이 서약서가 국가안보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데도 실패했다. 반면 국민당은 이 서명운동이 국가 안보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역공을 폈다. 가령 타이베이 시장에 출마한 국민당의 장완안(蔣萬安) 후보는 선거운동 당시 ‘불항복서약서’에 대해 “바보 같다. 이 문서에 서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느 나라가 침략해도 ‘항복’에 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서약서에 서명한다고 해서 곧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장제스(蔣介石)의 증손자인 장완안은 시장에 당선되었고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국민적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한 ‘불항복서약서’ 운동은 이대로 사그라들 것인가. 필자가 인터뷰한 대만의 한반도뉴스플랫폼(韓半島新聞平台) 양첸하오(楊虔豪) 대표는 “이 운동의 불씨는 남아있으며, 내년 1월 총통 선거 과정에서 되살아 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6월부터 민진당과 국민당은 총통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 돌입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양당 모두 ‘중국의 군사 위협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맺음말

작년 말 차이잉원 정부는 고조되는 안보 위기 속에서 병역제도를 2024년부터 지원병제에서 의무병제로 바꾸고, 복무기간도 4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대만 시민 단체의 ‘불항복서약서’ 운동은 이러한 사회분위기 조성에 일조한 측면이 있다. 또 환경, 여성, 인권 등의 영역에 머물던 시민운동의 범위를 ‘국가 안보’로 확장하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운동의 방법과 시기, 국가 정책과의 조화 등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노출한 것도 사실이다. 지방선거 출마자의 3분의 2가 외면했다는 점에서 이 운동은 전체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정부의 군사위협과 무력통일 의지가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대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만 국민이라면 한시도 외면할 수 없는 절박한 화두이다. 올 하반기 시작되는 총통 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항복서약서’ 운동이 다시 대만 사회의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은 높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vii] 대만과 마찬가지로 같은 민족(북한)의 핵 위협 하에 살아가는 한국민에게도 대만 사회가 ‘안보 이슈’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관찰하고 연구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특히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대만의 전쟁 위기는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와 연동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viii]. 이런 시기에 대만의 ‘불항복서약서’ 운동은 우리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저자소개

지해범(jhbum2020@naver.com)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에서 사회부, 경제부, 국제부 기자, 베이징특파원, 동북아연구소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로 중국의 외교전략과 한중관계 및 북중관계를 연구했다. 역저서로는 『화교네트워크』(1998), 『원자바오』(2007), 『제국의 황혼』(2011),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다루나』(2020) 등이 있다.

 


[i] 최현준. 2022.8.4 “중국 미사일, 대만 시민들 머리 위로…전례없는 일.” 한겨레신문

[ii] 조준형. 2022.10.16 “시진핑 ‘대만에 무력사용 포기 약속 안해…통일 필히 실현.” 연합뉴스

[iii] 臺灣獨立建國聯盟. 2022 “2022九合一大選候選人應簽署「捍衛台灣 絕不投降」承諾書 聯合聲明” https://www.wufi.org.tw/20220905_joint_declaration-ns/(검색일 : 2023.02.06)

[iv] 中華民國 總統府
https://www.president.gov.tw/Page/248 (검색일 : 2023.02.06)

[v] 이현택. 2022.9.3 “대만 2위 반도체 재벌, 中 공격 대비 ‘흑곰용사’ 300만명 육성한다.” 조선일보)

[vi] 關鍵評論 2022.“「捍衛台灣,不投降承諾書」最終統計263人簽署”
https://www.thenewslens.com/article/176892 (검색일자 : 2022. 11. 22)

[vii] 張競. 2022. “專家之眼 抗中保台必會捲土重來.” 聯合報(12월 10일) https://udn.com/news/story/6656/6828577 (검색일 : 2023.02.06)

[viii] 정욱식.2023. “중국-대만 전쟁 나면, 남북한도 끌려들어갈 수 있다.” 한겨레신문(1월30일)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077436.html(검색일 : 20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