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양안(兩岸) 결혼이주여성 사례를 통해 본 돌봄의 역설

이 글은 대만과 중국 사이의 결혼, 양안결혼 초기 1세대의 노동에 관한 연구이다. 1세대 양안결혼이주여성들은 결혼 초기에는 노동권과 시민권의 제약으로 주로 집 안에서 배우자를 돌보아야 대만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지만, 법적 시민권을 획득한 이후에는 그동안 해왔던 경험을 살려 간병인 자격증을 획득하며 대만 사회의 돌봄을 담당한다. 표면적으로는 여성들이 대만 사회로 진출하고 노동의 대가를 얻는 듯이 보이나 여기에는 대만 정부의 의도-기존의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 돌봄을 위탁한 비중을 줄이고 노인이 되어가는 양안결혼이주여성들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서-가 존재한다. 이다. 이 상황을 이 글은 ‘돌봄의 역설’이라고 정의하며, 가정 내 돌봄을 탈피한 듯 보이나 사회의 돌봄을 다시 떠안으며 ‘돌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양안결혼이주여성들의 돌봄노동을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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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何楷平, 2018, "全台外籍看護25萬人 雙北人數占最多", 《現代保險》雜誌 (9월 1일)

문경연(서울대학교)

들어가며: 대만의 결혼이주와 돌봄노동이주의 교차점

대만, 홍콩, 일본, 한국, 싱가폴 등은 아시아 여성 이주의 주요 목적지로 알려진 곳들이다. 여성이 이주의 주체로 등장했다는 ‘이주의 여성화(Feminization of Migration)’의 실제 사례일 뿐 아니라 결혼이주와 노동이주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여성 이주는 주목받아왔다. 특히 대만은 이 아시아 여성 이주 역사가 상당히 긴 편에 속하며, 오랫동안 이주자들에 대한 법-제도-정책을 만들어왔다.

대만에서 이주를 담당하는 기관은 이민서(National Immigration Agency)이며, 이민서에서는 결혼이주와 노동이주를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1] 먼저 대만의 결혼이주를 살펴보면, 중화인민공화국(이후 중국) 출신과 그 외 국가 출신의 결혼이주자들을 따로 분류하여 관리한다. 이는 중국 출신과 그 외 국가 출신의 결혼이주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 출신 결혼이주자들에게는 ‘대륙지구와 대만지구의 인민관계조례(大陸地區與台灣地區人民關係條例, 이후부터는 양안조례)’를 적용하고, 외국 출신 결혼이주자들에게는 국적법과 이민법을 적용한다. 그리고 중국 출신 결혼이주자는 대륙배우자(大陸配偶, 陸配)로, 외국 출신 결혼이주자들은 외국배우자(外籍配偶, 外配)로 부른다. 그리고 이들의 배우자들을 대만배우자(臺灣配偶)라 부른다. 외국배우자와 대만배우자의 결혼을 국제결혼(跨國婚姻), 대륙배우자와 대만배우자의 결혼을 양안결혼(兩岸婚姻)이라 부른다.

대만의 결혼이주통계(1987~2019)
자료: 이민서

이렇게 결혼 이주라는 비슷한 동기로 대만에 들어온 이주자들에게 ‘다른’ 법적-제도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이유는 바로 대만과 중국의 관계를 각자의 입장 차 때문에 ‘국가’로도 ‘지역’으로도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양안관계(兩岸關係)’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중화민국이 소멸되었고 그 뒤를 이은 국가가 중화인민공화국이기 때문에 대만 역시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며, 정치적인 입장 차이로 다른 정치체제가 대만에 있지만 곧 수복할 것으로 주장해왔다. 반면, 대만은 집권정부가 그 국가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중화민국’과 ‘대만’ 사이를 번복하기 때문에 양안관계는 초국가와 초지역 사이에 존재하곤 했다. 그래서 대만은 중국에서 온 결혼이주자에게는 ‘양안조례’라는 특수법령을 적용해 외국배우자보다 더 법적-제도적 시민권 획득을 제한해왔다. 예컨대 외국배우자가 대만에 들어온 지 4년 후 대만의 법적-제도적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면, 대륙배우자는 6년 이후에야 이를 획득할 자격이 생긴다.

관리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대륙배우자’라는 하나의 범주로 인식되지만, 대륙배우자들은 언제 자신이 대만으로 이주해왔는가, 대만의 어떤 사람과 결혼했는가, 어떤 결혼과정을 거쳤으며, 이주 후 어떤 가족을 이루게 되었는가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문경연(2019)은 이를 결혼유형과 이주 시기에 따라 세대별로 분화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양안결혼 초기 1세대는 1987년 대만이 중국과의 문호를 개방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49년 국공내전의 패배로 대만으로 이주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퇴역군인들이 이 교류의 물결과 함께 고향을 방문하여 자신을 돌볼 ‘파트너’를 데려온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이들의 결혼은 고향 방문에서 친지나 지인의 소개로 이뤄졌기 때문에 동향혼의 특징을 지니며, 70세 이상의 퇴역군인들과 2~30세의 나이 차가 나는 재혼 이상의 여성들로 이루어진다. 반면 2세대 양안결혼은 양안교류의 확대와 제도화로 진행된 대만 상인과 현지처의 연애결혼으로 이뤄졌으며, 생활여건에 따라 중국과 대만에서 살아가기에 1세대 양안결혼과는 다른 가족의 형태로 살아간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로 양안결혼 초기 1세대 부부이다. 이 결혼은 ‘재생산’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다른 결혼이주보다 홀로 남은 퇴역군인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대만 정부의 고민에서 비롯되었지만, 중국과의 특수한 관계로 이 돌봄을 지속할 만한 체류의 조건을 지속하지는 못하였다. 즉, 대만정부가 퇴역군인들의 ‘돌봄’을 떠넘기기 위해 퇴역군인들에게 자신을 ‘돌볼’ 동향 아내를 데려오게는 허락하였지만 이 여성들이 대만에서 계속 살 수 있는 체류권, 노동권, 건강권은 제공하지 않았다.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여성들은 ‘6개월’마다 한 번씩 중국으로 돌아갔다 와야 했으며, 대만 내에서의 취업과 건강보험이 모두 금지되었다. 이후 2000년 제한적인 노동권과 건강권의 보장, 2003년 ‘6개월’의 체류제한이 조금씩 완화되면서 퇴역군인들에 대한 돌봄을 제공할 때 대만 사회의 시민으로 인정되었다(문경연 2019).

같은 후난성 출신인 샤오(남, 95세)와 아핑(여, 72세)은 1991년 결혼하였다. 샤오는 1947년 상하이의 군관학교를 다니다 대만에 오게 되면서 후난의 가족들과 이별하게 되었다. 이후 대만의 아내를 만나 3남매를 두었지만, 아내를 일찍 떠나보냈다. 1987년 다시 찾은 고향에서 아핑을 소개받았다. 아핑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한 명을 키우며 홀로 살고 있었다. 후난의 방언이 통한다는 점, 후난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아핑의 상냥함에 끌려 샤오는 결혼을 서둘렀다. 그러나 아핑은 기대와는 달리 대만에서 샤오와 오랫동안 살 수 없었다. 6개월마다 한 번씩 후난으로 돌아가야했다. 아핑에게는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샤오와 자꾸 떨어져야 한다는 점, 한번 중국에 돌아갈 때마다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은 좋지 않았다. 결국 보다 자유로운 샤오가 아핑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 지내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이후 샤오의 건강이 나빠지고, 대만의 규정이 완화되면서 아핑은 샤오와 대만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샤오의 건강을 위해 요양사 자격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샤오와 아핑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세대 양안결혼이주여성의 삶은 ‘돌봄’이 주가 되고 있었다. Lu(2012)는 비단 1세대 양안결혼이주여성만이 돌봄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퇴역군인들과 여성들의 돌봄이 교환되는 것으로 보았다. 퇴역군인들은 1세대 대륙배우자들과 그들의 친정가족을 경제적으로 돌보고, 1세대 대륙배우자들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퇴역군인의 가사나 요양을 담당하면서 돌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이 가정에서 일어나던 ‘돌봄의 교환’이 대만 정부의 기획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그리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다음 절에서는 대만의 돌봄노동에 대한 선행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다룰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를 바탕으로 돌봄 노동은 1세대 중국 출신 결혼이주자에게 어떤 의미이며, 대만 사회의 ‘시민되기’와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가? 대만 정부의 1세대 중국 출신 결혼이주자의 돌봄에 관련된 의도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한다.

 

대만의 돌봄노동 지형도

대만 사회에서 돌봄의 공백이 생기게 된 것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아지면서 원래 여성이 담당하던 돌봄이 위기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서부터이다. 이 돌봄의 위기를 대만 정부는 1992년 고용서비스법을 도입하며, 다른 이에게 넘기게 되었다. 이 다른 이란 바로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이주돌봄노동자(migrant care worker)들을 의미한다. 이현옥(2016)과 Lan(2006)은 이 흐름을 비단 돌봄의 공백, 돌봄의 부족에서만 찾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고학력 여성이 많아지면서 ‘신부의 부족’ 현상도 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한다. 즉 돌봄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신붓감을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데려와 무급돌봄노동을 함께 시키면서 이 결혼이주가 오히려 돌봄의 사회화를 저해했다는 것이다.

대만 사회가 감당해야 했던 돌봄은 결혼이주자와 이주돌봄노동자가 오롯이 담당해야 했다. 특히 이주돌봄노동자는 크게 두 범주로 나뉘며 돌봄의 두 영역인 가사노동과 요양을 담당했다.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이주돌봄노동자를 외국인 가사노동자(Foreign domestic helper), 가정이나 요양기관에 입주하는 이주돌봄노동자를 입주돌봄제공자(live-in caregiver)로 부르게 된 것이다(Chien 2018). 이 중 월급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은 요양기관 입주돌봄제공자(care institute live-in caregiver)이며, 중국 국적은 ‘양안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외국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고, 중국 국적의 노동 이주를 허가하지 않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는다.

연도 이주노동자 이주돌봄노동자 외국인 가사노동자 입주
돌봄제공자
‘가구(가정 내)’ 입주 돌봄 제공자 ‘요양기관’ 입주 돌봄제공자
1992 15927 669 363 306
1997 248396 39112 12879 26233
2002 303684 120711 6956 113755 110378 3377
2007 357937 162228 2526 159702 152067 7635
2012 445579 202694 2164 200530 189373 11157
2014 551596 220011 2153 217858 204733 13093
2016 624768 237291 1921 235370 221139 14192
2019 718058 261457 1797 259660 244379 15281
대만의 이주돌봄노동자 수
출처: 대만 노동부 홈페이지

위의 표를 살펴보면, 이주돌봄노동자를 받아들인 1992년부터 2019년까지 그 수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외국인가사노동자의 수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입주돌봄제공자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입주돌봄제공자의 90% 이상이 가정 내 입주돌봄제공자이며, 요양기관 입주돌봄제공자의 수는 5~6%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 내 입주돌봄노동자들은 가정 안에서 일하기 때문에 노동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임금도 약 2만 NTD(한화 약 80만원)으로 현재 대만의 최저 임금인 약 2만 2천 NTD(한화 약 88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또한 ‘돌봄’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고용주들은 가사노동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

가정 내 입주돌봄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채용 중개업체를 이용해서 건강검진을 받고 훈련센터에 입주하여 90시간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을 받아야지 대만으로 갈 수 있는 비자가 나온다. 원칙적으로는 최대 14년까지 일할 수 있지만 고용주의 가정에서 고용 연장을 해주어야만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어서 고용주의 권력이 크게 작용한다. 돌봄노동자가 만약 사망하거나 사라지게 되면 고용주는 6개월 내에 이민서에 신고하여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용주의 권한이 막대하다. <영화 10년-대만편>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연구자가 현지조사를 하던 2014년의 대만에는 고용주가 아버지를 간호하던 인도네시아 출신 가정 내 입주돌봄노동자를 강간하여 임신시킨 후 돌봄노동자가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고용을 취소하여 임신한 돌봄노동자가 비합법체류자가 되어 강제출국을 당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많았다.[2] 이렇게 가정 내 입주돌봄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이나 체류조건은 제약이 많다.

반면, 요양기관에서의 고용과정은 조금 다르다. 대만에서 고용주가 고용허가 신청을 하면 고용허가서가 발급되고 중개업체가 이주돌봄노동자의 모집과 선발을 진행한다. 고용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노동자가 입국하고, 고용자는 이 노동자에 대한 고용안정비를 납부한다. 이주돌봄노동자는 먼저 2년의 취업허가비자를 받은 후, 고용주가 희망하면 1년을 연장하고 이후 기간을 재연장하는 방식으로 최대 14년까지 대만에서 일할 수 있다. 그런데 고용주가 초청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를 모집했기 때문에, 사업장 이동이 절대 불가하다. 이주돌봄노동자는 독자적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는 없으나 참여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만의 돌봄노동이 어디에서 고용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아니라 어떤 종족적 배경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요양기관에서 일하는 대만인, 대륙배우자, 이주돌봄노동자 간의 비교연구(Chen 2016)에 따르면, 세 집단 모두 노동보험, 산재보험, 의료보험 등은 가입할 수 있지만, 노동연금은 대만인과 대륙배우자, 정주허가를 얻은 외국인만이 가능하고, 고용보험은 대만인과 대륙배우자만이 가능하며, 출산수당이나 장애인 고령자 연금이 포함된 국민연금은 대만인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즉, 이주돌봄노동자는 최소한의 혜택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주돌봄노동자는 주로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진 이들이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차등적인 지위나 근무조건 때문에 여러 여론이 빗발치자 대만 정부는 약 70만 명에 육박하는 이주노동자(이주돌봄노동자 포함)들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 방법은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이미 30여 년 동안 대만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특히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대만에서 노인돌봄은 거의 인도네시아 출신 가정내 입주돌봄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닐만큼 그 영향력이 상당했다. 정부는 이 가정 내 입주돌봄노동자들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2007년 교육부의 장기요양 자격제도를 개발하고 2008년 장기요양 10개년 계획을 세우는 등 간병/요양을 자격화하여 대만인들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안하고 있었다. 이 때 이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집단이 정부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1세대 대륙배우자들이었다.

 

돌봄노동을 둘러싼 대만 정부와 여성들의 의미 경합

여성들: ‘돌봄의 확대, ‘live-in’에서 ‘live-out’으로

허베이성 출신인 아화(70대, 1995년 결혼이주)는 2013년에 퇴역군인이었던 남편을 떠나보냈다. 20세 연상이던 남편과는 허베이성 동향이었고, 첫 남편을 잃고 홀로된 아화에게 두 아들을 잘 키워주겠다는 약속을 한 채 아화는 현 남편과 재혼을 했다. 아화는 중국에서는 극단의 배우였지만, 대만에서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북방 만두를 내다 팔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웃들의 신고와 추방이었다. 그러다 법이 바뀌면서 아화는 신분증을 따게 되었고, 요양자격제도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당시 대륙배우자들의 학력도 인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화의 높지 않은 중국의 중학교 학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아화는 남편의 불평을 마다하며 남편의 수발을 전문적으로 들 수 있다고 설득하며 야간학교로 학력을 따내고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을 열심히 치뤘다. 자격증 훈련은 국가에서 무료로 해주었다. 아화는 자격증을 따자마자 남편도 돌보는 한편, 간병 알바를 다녔다.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일을 구하기는 쉬웠다. 남편을 떠나보내는 아픔도 간병일을 하며 잊고 지냈다. 자격증이 있는 간병인의 일급은 4시간에 1000NTD(한화 약 40000원)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직장보다도 월급이 괜찮은 편이었다. 아화는 오늘도 여러 병원을 다니며 간병일을 한다.

아화의 사례처럼 여성들에게 돌봄은 대만에서 안정된 체류자격과 남편의 신분보장을 얻기 위한 일종의 자격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돌봄’의 경험은 법적-제도적 시민권이 해결된 이후에도 노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되었다. Lu(2012)는 이러한 과정을 여성들이 돌보는 아내(Caring wives)에서 굴종하는 돌봄노동자(Subservient care workers)로 변했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연구자는 이 변화과정에는 두 가지 역설이 있다고 보았다. 돌봄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그 과정을 ‘돌봄-시민’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여성들의 삶에서는 ‘돌봄’이 빠질 수 없다. 달라지는 것은 누구를 어떻게 돌봐야하는가의 과정이다. 비록 퇴역군인을 돌보다가 그가 사망한 이후에는 대만노동시장의 저임금 직업으로 다시 굴복하며 들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은 자신들이 굴복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아화처럼 국가가 발급하는 자격증을 가지고 집에서 나가 대만사회에 기여한다는 점, 그리고 전에 비해 노동의 대가를 공정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생활반경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일을 ‘좋게’ 보고 있었다.

정부 : 돌봄의 역설을 만드는 주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돌봄의 역설에는 대만 정부의 기획이 들어 있었다. 대만 정부는 30여년 전에도 국가가 세심하게 돌보기 어려운 ‘싱글’ 퇴역군인들의 돌봄을 대륙배우자에게 맡긴 전력이 있었다. 지금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주돌봄노동자들에 대한 부담을 해결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이때 주목하게 된 것이 이미 ‘법적-제도적 시민권’을 얻어 체류에 대한 부담이 없으면서, 나이가 들어 대만의 의료나 사회보장제도 등의 복지제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 대륙배우자 여성들이었다. 바로 이들의 노동력이 새로운 대만사회의 돌봄 공백을 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비록 임금은 더 줘야 하지만, 이주돌봄노동자의 체류나 관리보다 훨씬 노력이 덜 들기 때문에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간병인 자격제도는 이제 타이베이시뿐 아니라 각 지방정부의 돌봄서비스 훈련 과정에 들어가며 신분증을 가진 대륙배우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이제 요양기관은 중국 출신 할머니들, 가정 내 입주돌봄노동자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출신 여성들이라고 할 만큼 대만의 돌봄노동(시장)은 점점 분리되고 있다. ‘노인돌봄’에 익숙하고 잘 훈련되었으며 대만 호적을 가지며 자격증을 지닌 1세대 양안결혼이주여성들은 대만사회의 돌봄을 떠넘기기 매우 적합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들이 가정 내 돌봄을 떠난 것처럼 보이나 ‘사회의 돌봄’을 다시 떠맡는 연쇄과정처럼 보인다. 이미 이 돌봄이 수입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계속 돌봄을 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돌보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후 연구가 진행되면서 더 보충해야 할 것은 요양기관 내에서 이 여성들과 다른 국적 출신의 이주돌봄노동자의 관계라든지, 이 대륙배우자들을 연결해주는 중개업체의 역할이라든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앞선 양안결혼의 세대분화에서도 설명했던 것처럼 중국이나 대만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양안결혼 2세대들은 이 일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노동에 종사하곤 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이 ‘돌봄노동’에 대해 좀 더 다각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저자소개

문경연(gangs3114@snu.ac.kr)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8년부터 아시아의 이주, 젠더,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등에서 다문화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脱离“韩国人外籍配偶”身份的女人—中国汉族女性在韩国离婚的个案研究>, <대륙배우자는 말한다: 대만내셔널리즘과 대륙배우자의 정치운동> 등이 있으며, 중국과 대만 간 결혼이주와 노동이주에 주목하여 ‘아래로부터의 양안(兩岸)관계’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1] 결혼이주자와 노동이주자의 대만 내 ‘신분’을 관리하는 기관은 이민서이지만, 대륙배우자는 행정원 대륙위원회가 외국배우자는 외교부가 그리고 노동이주자는 외교부와 노동부가 이민서와 협력하여 대만 생활을 관리한다.

[2] 지금도 가정 내 입주돌봄노동자가 당하는 성폭력과 불평등한 노동조건은 문제가 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The Storm Media 19/07/22) 참조할 것.

 


참고문헌

  • 문경연. 2019. “아래로부터의 양안(兩岸)관계: 대만 내 중국 출신 결혼이주자의 시민권의 정치”,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 이현옥, 2016 “동아시아 맥락에서의 돌봄레짐 변화와 이주의 여성화”. 『경제와사회』, 110: 239-269.
  • Chen, C.-F. 2016. “Insiders and outsiders: Policy and care workers in taiwan’s long-term care system”. Ageing & Society, 36(10), 2090-2116.
  • Chien, Yi-Chun. 2018. “The Struggle for Recognition: The Politics of Live-in Caregiver Program in Taiwan,” Critical Sociology, 44(7/8), 1147-1161.
  • Lan, Pei-Chia. 2006. Global Cinderellas: Migrant domestics and newly rich employers in Taiwan. Duke University Press.
  • Lu, Melody Chia‐Wen 2012. “Transnational marriages as a strategy of care exchange: Veteran soldiers and their mainland Chinese spouses in Taiwan.” Global Networks 12(2), 233-251.
  • 謝孟穎, 2019, “近5萬名外籍移工在台失聯、生子即成「黑戶寶寶」…移民署卻無相關數據 監委啟動調查” The Storm Media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