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변거리에서 차이나타운, 그리고 중국국적 이주자의 모빌리티 관문으로: 대림동 이주자 밀집 지역의 진화

대림동은 그들의 일상성이 형성되는 한국 내의 장소이자, 진짜 중국은 아니지만 중국을 재현하는 곳이며 동시에 한국도 중국도 아닌, 그사이에 끼인 제3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글은 대림동이 중국국적 이주자의 밀집 지역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대림동의 누적된 장소성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유입된 중국국적 이주자를 국내의 다른 곳으로 보내는, 모빌리티 관문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곳으로 바뀌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외국인 이주자의 밀집 거주지 이상의 대림동을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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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경 (건국대학교)

 

이주의 시대의 외국인 밀집 거주지

세계화의 진전과 정보통신기술 및 교통수단의 발달은 정보, 상품, 자본의 이동성을 증대시켜왔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인간 활동의 범위에도 영향을 미쳐 국가 간 인구의 이동, 즉 이주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주는 사실 인류의 역사와 맞닿아 있을 만큼 매우 길고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여러 형태의 이주가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이주의 시대(Castle et al., 2013)”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제 이주는 보편화되고 일상화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민 송출국이었던 우리나라 역시 이주의 시대에 주요 이주 유입국으로 변화하고 있다. 2019년 6월 기준으로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이주자는 약 242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2019), 이는 2009년의 약 117만 명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통계청, 2019). 체류 외국인의 양적 증가는 출신 국가, 체류 유형 및 체류 기간의 다양화로 직결되어 국내 이주의 지형을 보다 복잡하게 형성하고 동시에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체류 외국인의 급증과 그에 따른 변화에 대해 사회학, 인류학, 사회복지학 및 지리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반에서 관련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왔다. 외국인 이주자의 밀집 거주지에 관한 연구는 그중에서도 두드러진다. 특히 외국인 밀집 거주지의 현황, 형성 과정 및 지역별 분포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세계화와 다문화 현상이 발생하는 지역을 유형화하고 지도화하여 이주자 밀집 지역의 공간적인 분포와 특성을 밝힌 연구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곳’에 우리와 다른 외국인이 주로 거주하고, 이로 인해 그 ‘어떤 곳’의 장소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로 본격화된 국내로의 이주가 장기화되면서 나타나는 외국인 밀집 거주지가 겪고 있는 역동적인 변화를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은 중국국적 이주자, 재중 동포 혹은 조선족의 국내 최대 밀집 거주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행정구역상 대림2동[2]은 실제 국내 체류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외국인의 거주지로서 한국인의 눈에 비친 대림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동포 노동자를 수용하던 가리봉동과 함께 성장한 ‘옌볜 거리’, ‘조선족 거리’였고, 그 규모가 커지면서 ‘조선족타운’, ‘차이나타운’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영화 <황해>, <범죄도시>, <청년경찰> 등에서 묘사된 폭력적인 이미지와 실제로 발생한 몇몇 사고 이후 ‘무법지대’ 이미지가 낙인화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진정성 있는 양꼬치와 칭따오 맥주, 그리고 마라샹궈를 먹을 수 있는, 진짜 중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림동을 체류 외국인의 밀집 거주지로만 이해하는 것은 충분치 못하다. 중국국적 이주자가 경험하고 구성해내는 대림동은 분명 다르다. 대림동은 그들의 일상성이 형성되는 한국 내의 장소이자, 진짜 중국은 아니지만 중국을 재현하는 곳이며 동시에 한국도 중국도 아닌, 그사이에 끼인 제3의 공간이기도 하다. 본 글은 대림동이 중국국적 이주자 밀집 지역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대림동의 누적된 장소성을 분석함으로써, 외국인 이주자의 밀집 거주지 이상의 대림동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대림동이 중국국적 이주자의 국내 최대 밀집 지역이 되기까지

국내 체류 외국인의 절반가량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중국국적 이주자이다. 2019년 6월 현재 한국계 중국인이 약 71만 명, 그 외 중국인이 약 39만 명을 차지한다. 중국국적 이주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행정단위는 2016년 1분기 현재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이다.[3] 대림2동은 영등포구의 최남단으로 도림로, 대림로, 시흥대로, 도림천에 둘러싸여 있으며 흔히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16년 대림2동의 전체 등록 외국인은 9,845명인데 이 중 중국국적 이주자가 9,772명을 차지할 만큼 중국국적 이주자가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곳이다.

(단위: 명)
2006년 2010년 2016년
대림제2동 5,073 가리봉동 7,754 대림2동 9,845
가산동 3,766 대림2동 7,258 구로2동 9,073
가리봉제1동 2,908 구로1동 6,783 가리봉동 7,430
독산제1동 2,485 독산1동 5,895 구로4동 5,364
구로제6동 2,314 가산동 5,454 독산3동 5,013
구로제5동 2,073 신길1동 5,157 자양4동 4,998
한남제1동 2,047 구로2동 4,503 대림3동 4,753
이촌제1동 2,043 대림1동 4,203 가산동 4,177
신길제1동 2,040 신길5동 3,991 신촌동 3,892
신길제5동 2,016 도림동 3,537 구로5동 3,730
서울시 등록 외국인 수의 동별 순위 2006-2016
출처: 서울열린데이터광장 (2019)

 

그러나 처음부터 대림2동이 대표적인 중국국적 이주자의 밀집 지역인 것은 아니었다. 1992년 한중수교 수립 이후 조선족이 이주 노동자로 대거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상당수는 대림동보다 가리봉동에 먼저 정착했다(이민주, 2007). 당시 가리봉동은 구로공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벌집(작은 사글셋방 여러 개, 공용 화장실 및 마당을 공유하는 형식의 집합 주거형식)과 같은 저렴한 단기 임시 주택시장이 형성되었었다. 그러나 구로공단의 많은 공장들이 지방이나 해외로 이전하면서 주택시장에도 공백이 생기고 임대료가 낮아지고 있었는데, 이를 조선족이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가리봉동은 남구로역 인근의 인력시장과 인력사무소와 가깝고 많은 영세 소기업이 위치해있어 노동 이주를 택한 조선족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부상했다. 하지만 2004년부터 가리봉동 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점차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서 조선족은 인근의 보다 저렴한 지역인 대림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림동은 저렴한 주택 임대료 외에도 조선족을 유인할 다른 조건이 존재했는데 바로 편리한 교통이다. 대림동은 1980년대부터 서울 시내를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어 있어 주변 가리봉동과 구로동으로의 이동이 용이했고, 2000년에는 지하철 7호선이 개통되면서 서울뿐 아니라 부천시, 광명시, 인천광역시로부터 접근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하철뿐 아니라 버스 노선을 통해 시흥시, 안산시, 수원시 등과의 연결성 역시 증가하면서 경기도 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족을 비롯한 중국국적 이주자들이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된 것이다. 즉, 대림동은 강남 일대의 식당과 가사도우미로 주로 활동한 조선족 여성과 수도권 인근의 공단과 건설 현장에서 활동하던 조선족 남성 모두에게 편리한 곳, 최적의 장소가 된 것이다.

특히 가리봉역이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뀌고 오래된 공단이 새롭게 연구중심의 지식산업센터, 오피스, 아울렛 등이 공존하는 새로운 복합상권으로 변화한 것은 기존 가리봉동에 거주하던 중국국적 이주자의 대림동 이동의 촉매제로 작동했다. 가리봉동에 여전히 중국국적 이주자가 많지만, 역 주변에 깨끗하고 높은 건물들이 등장하면서 같이 인상된 임대료와 가리봉동 균형 발전촉진지구 지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리게 된 중국국적 이주자는 저층 주거단지가 밀집되어 있고 저렴한 임대 주택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편리한 교통 조건을 가진 대림동 일대로 빠르게 유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재외동포법 개정과 2007년 방문취업제도의 시행은 조선족의 입국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형성된 조선족 밀집 지역과 이들의 커뮤니티가 발달하면서 비조선족 중국인 이주자들도 대림동 일대로 유입되기도 했다(이화용·이영민, 2018). 예를 들어 2006년 약 120명에 불과했던 비조선족 중국인은 10년 만에 약 1,400명으로 증가했다. 비록 동별·국적별 외국인통계자료가 2016년 이후로 제공되지 않기에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2016년 이후에도 비조선족 중국인은 대림동 일대를 비롯한 영등포구에서 증가하고 있다.

대림2동 조선족과 비조선족 중국인의 추이변화 2007-2016
(출처: 서울열린데이터광장, 2019)
(단위: 명)

대림동 일대에서 조선족의 증가가 비조선족 중국인을 유입시켰다면, 내국인의 상황은 어떠할까? 2000년 24,434명이었던 대림동의 전체 인구는 2018년 22,231명으로 약 2천여 명이 감소한 상태이다. 전반적으로 서울시의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지만, 대림동의 인구 감소는 눈여겨볼 만하다. 같은 기간 동안 내국인은 24,254명에서 12,778명으로 약 절반가량이 빠져나간 것이다. 반면 외국인(대다수가 중국국적 이주자)은 2000년에 약 89명에 불과했지만, 2018년 9,453명으로 100배 이상이 증가했다. 약 20년 사이에 100배 이상으로 증가한 외국인과 절반 이하로 떨어진 내국인, 이렇게 대림동은 드라마틱한 인구 구성 변화를 겪으면서 외국인 집단 거주지 이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대림동의 낮은 진입장벽으로 유입해 온 중국국적 이주자는 여기서 과연 무엇을 할까? 대림동은 중국국적 이주자의 ‘거주’를 위한 곳으로만 기능할까?

대림2동 내국인과 외국인의 인구추이 2000-2018
(출처: 서울열린데이터광장, 2019)

 

대림동 상권 형성과 발달: 이주자의 밀집 거주지에서 모빌리티 관문으로의 진화

이주자의 밀집 거주지의 형성은 이들만의 상권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LA의 코리아타운과 북미의 차이나타운이 그렇듯이 이주자의 밀집 거주지 주변에는 이주자들 고유의 문화를 재현하는 상권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대림동 역시 그랬다. 초반에는 주로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특히 식문화와 관련된 업종을 중심으로 상권이 생겨났다. 중국의 조식 매식 문화를 반영하여 새벽부터 두유, 요우티아오(꽈배기 도넛)와 전병을 파는 가게에서부터 고수, 화자오, 마라소스, 라장, 지마장 등의 고유한 식재료, 소와 돼지의 부속물과 같이 조선족이 선호하는 음식 등에 이르기까지, 이젠 우리에게 익숙해진 대림동 차이나타운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7호선 대림역 12번 출구에서부터 대림중앙시장에 이르기까지 먹거리를 중심으로 한 대림동 상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상권의 형성은 대림동이 대림동 거주자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살던 이주자들이 주말마다 찾아와서 식재료를 비롯한 중국 상품을 쇼핑하고, 저렴한 월세를 기반으로 주말 동안 가족과 친척이 모여 쉴 수 있는 곳으로 기능함을 의미한다. 즉, 대림동의 접근성이 구로공단 일대뿐 아니라 전국 단위로 커진 것이다.

대림동의 접근성이 커지면서 대림동 상권의 서비스업의 종류도 점차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먹거리와 직업소개소 등 일부 업종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주자 커뮤니티의 확대와 이들의 장기 정착 생활에 밀착된 서비스업종들이 새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초적인 식재료 중심의 먹거리 상권은 양꼬치, 훠궈, 마라탕 등을 파는 본격적인 식당으로 확대되었고, 중국으로의 이동을 용이하게 해 주는 여행사가 생겨났다. 생활필수품이 된 휴대폰 판매 업체와 이동통신사 대리점이 들어왔고, 중국으로의 송금을 위한 은행과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환전소도 입점하기 시작했다. 체류가 장기화되면서 체류자격의 변동이나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법률·행정적 문제를 도와주는 행정사 사무소가 증가했으며, 노래방과 유흥주점과 같이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국국적 이주자의 평균연령이 낮아지고 연령대가 다양해지면서 웨딩플래너와 같은 결혼서비스업체도 생겨나고 있으며, 노년 이주자를 대상으로 한 상조·장례서비스업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림동 중앙시장과 먹거리 상점
(출처: 저자 제공)

이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업종의 증가는 저렴한 주택임대료와 편리한 교통 조건과 더불어 대림동으로의 접근성을 더욱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동시에 유입된 이주자를 대림동에 배태시키기도 한다. 중국국적 이주자가 급증하면서 작은 중국 혹은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대림동은 이주자들에게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생활환경이 편리한 지역이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 지속적으로 발달하면서 이 지역에 장기적으로 체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지점은 비조선족 중국인의 대림동 유입과 조선족의 유출이다. 대림동의 접근성과 배태성은 분명 증가하여 조선족뿐 아니라 비조선족까지 들어오고 있는데 정작 대림동을 형성시킨 조선족의 일부는 대림동을 떠나고 있다. 이들은 왜 대림동을 떠나며 대림동을 벗어나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반대로 여전히 대림동으로 새로 들어오거나 머무르는 조선족과 비조선족은 왜 이곳을 고수할까? 이들이 대림동을 떠나고 동시에 고수하는 의미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조선족의 복잡한 체류자격 시스템은 이를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다. 조선족이 합법적으로 국내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일정한 체류자격을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 이 체류자격은 그 안정도, 체류 기간 및 노동 활동 분야 등의 차이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되는데, 조선족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체류자격은 H2(방문 취업)와 F4(재외 동포)이다. H2 비자는 2007년에 도입된 중국 및 구소련 지역 동포를 위해 도입한 방문취업제도 시행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비자이다. 이 제도 시행 이전 조선족이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한국에 연고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러나 H2 비자를 받게 되면 연고가 없는 조선족도 최대 3년간 체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방문취업제도의 실시는 기존의 3개월 정도만 국내에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었던 무연고 조선족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그 이후 조선족의 국내 입국은 폭발적으로 급증한다. 실제로 H2 비자로 입국한 조선족은 2007년 약 13만 명에서 2008년 약 25만 명으로 1년 사이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고민경·백일순, 2019).

대림동 중국국적 이주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업
(출처: 저자 제공)

그러나 H2 비자의 유효기간은 3년에 불과하여(연장신청이 성공하면 1년 10개월 동안 추가적으로 체류할 수 있다.), 최장 4년 10개월 이후에는 중국으로 출국 후 재입국을 해야 하며, 단순 노무업종에만 종사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어 안정적인 이주 생활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지점에서 법무부가 2012년 신설한 재외동포비자는 유효기간이 없고 3년마다 갱신만 하면 국내에서 계속 체류할 수 있어 조선족이 가장 선호하는 체류자격이다. 재외 동포 전문가 양성이라는 취지에서 법무부가 주도적으로 만든 이 비자는 국가기능사 이상 자격증 소지자·대학졸업자·기업대표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할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단순 노무 활동 및 사행 행위를 제외한 국내 모든 취업 활동이 허용되고 취업 절차 또한 내국인과 동일하다. 더 나아가 의료보험 수혜, 부동산 거래 및 국내 토지의 취득과 보유가 가능한, 즉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비자로 누구나 선망하는 체류자격이다. 원래는 60세 이상 재외 동포만이 F4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60세 미만 재외 동포도 장기적 체류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60세 이하·무연고 조선족도 기능사 자격증을 딴다면, F4 비자를 받고 국내에서 취업을 하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 주로 건설 현장과 공장, 식당 등지에서 단순노무직종에 종사하던 기존의 조선족과 달리, 이제 F4비자 소유자는 정보처리기능사, 세탁기능사, 제빵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통해 다양화된 직종에 종사할 수 있고, 이들의 (잠재적) 체류지의 범위도 훨씬 넓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존의 조선족 밀집 지역이었던 대림동에는 F4 비자를 받는 조건인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돕는 학원과 비자변경을 도와주는 행정사·여행사 사무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대림동 F4 비자 변경 대행업체와 이를 위한 자격증 학원의 광고
(출처: 저자 제공)

F4 비자 발급의 증가는 조선족의 대림동 탈출을 두 형태로 생산해냈다. 첫째는 발급자의 연령이 점차 어려지고, 대림동에서 자격증을 딴 이후 취직이나 거주를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이주 기간이 오래된 기존 조선족에게 대림동은 고향을 재현한 곳이며, 중국어가 사용되고, 중국의 고유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던 반면, 최근 입국한 젊은 조선족에게는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자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곳 정도의 의미이다. 이들은 빨리 자격증과 비자를 받은 후, 다른 곳으로 취직을 하여 신촌이나 홍대와 같이 훨씬 매력적인 곳으로 가길 원한다. 온라인과 미디어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해진 젊은 조선족에게 대림동은 성공적인 한국 이주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단기적 체류를 통해 한국의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관문일 뿐, 더 이상 장기거주대상의 공간이 아니게 된 것이다.

조선족의 대림동으로부터의 또 다른 탈출은 한국 사회에 보다 동화되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2차 정착지 형성이다. 가리봉동에서 시작하여 대림동과 인근 영등포구로 이전해 온 조선족은 이제 대림 일대를 벗어나 광진구 자양동에 주로 자리를 틀기 시작한다. 자양동, 특히 자양4동은 소규모 제조업 공장이 밀집했던 성수공단을 중심으로 조선족을 유입시켰고, 대림동과 유사하게 뚝섬유원지역과 건대입구역이라는 2호선·7호선이 위치하여 서울시 내에서의 접근성이 용이한 곳이었다. 더 나아가 동서울터미널과 잠실이라는 거대 교통 환승지가 있어 서울 외곽의 일자리 접근성도 좋은 편이었다. 쇠퇴하기 시작한 성수공단 주변의 주거지는 이렇게 조선족의 새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 결과 2016년 자양동은 서울시 내에서 6번째로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 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자양동 일대는 자영업 활동의 제약이 없는 F4 비자 소지자의 자유로운 무대가 되었다. 이들은 주로 음식점―양꼬치, 마라 등―을 운영하는데, 대림동이나 가리봉동에 비해 다른 서비스업종이 크게 발달하지 못한 점이 눈에 띈다(이석준·김경민, 2014). 음식점과 식료품점은 이주자들이 자신들의 밀집 주거지역을 형성할 때 가장 먼저 발생하는 대표 업종이긴 하다. 그러나 자양동의 경우 타업종, 특히 행정사, 직업소개소, 여행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의 비율이 낮다. 대림동의 음식점과 다른 서비스업종의 주요 고객이 조선족과 중국인, 즉 중국국적 이주자라면, 자양동 중국 음식점의 주요 고객은 한국인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건대·로데오거리 인근 상권에 조선족이 침투해 들어가면서 한국 식당이 급감했지만, 한국인을 타겟으로 한 “자양동 양꼬치거리(중국음식문화거리)”로 지역 상권의 발전을 도모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자양동의 중국인 거주지와 이들이 형성시킨 상권은 처음부터 생긴 것이 아님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대림동과 가리봉동, 더 넓게는 영등포구와 구로구 근처에서 정착하고 한국사회에 적응을 충실히 마친 조선족들의 이동의 산물이다. 대림동이 초기에 갖고 있었던 접근성의 유용성이 이주자들을 이곳으로 몰리게 했지만, 이제 다시 이들을 다른 곳으로 내보내는, 즉 이들의 모빌리티를 새로이 생산해내는 곳, 모빌리티 관문으로 진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모빌리티 관문으로의 진화는 조선족에게 국내 다른 곳으로의 이동과 보다 안정된 체류를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그동안 이주노동자 특히 단순 노무 직종 종사자로만 우리에게 단순하게 알려진 조선족의 분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들의 체류 기간이 길어지고 체류자격이 다양화되면서 이제 조선족은 국가기능사 소유자, 전문직 종사자, 그리고 자영업자가 되어 우리 사회로 스며들고 있다.

이렇게 중국국적 이주자의 밀집 지역을 대표하는 곳인 서울 대림동은 지난 20여 년 동안 성장해왔다. 분명한 것은 대림동을 이제 자연적으로 발생한 단순한 조선족의 밀집 거주지로만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미디어와 언론에 의해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대림동의 모습에 이 지역의 도시재생사업 등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림동 자체가 가리봉동의 쇠퇴와 관련하여 형성·성장해왔다는 사실은 일방적인 철거나 도시개발사업이 이 지역에 이루어졌을 때 또 다른 문제 혹은 비슷한 지역의 양산이나 다른 사회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한다. 그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림동을 ‘그들만의 리그’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관문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국지적인 옌볜거리나 차이나타운이 아닌 이주자의 모빌리티 관문으로서의 대림동이 앞으로 어떻게 또 진화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저자소개

고민경(leriel@snu.ac.kr)
건국대학교 HK+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도시사회센터 객원연구원으로, 이주와 글로벌 모빌리티 증대에 따른 사회 공간의 변화를 주요 연구주제로 삼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결혼이주여성의 가정 너머 불안정성: (잠재적) 다문화강사의 가정 너머 불안정성의 생산 사례를 중심으로 (2019)”, “이주 중개인을 통해서 본 이주 인프라의 형성 과정 (2019, 공저)” 등이 있다.

 


[1] 대림동 일대에서 거주하는 중국국적 이주자는 주로 조선족, 재중 동포, 혹은 중국동포로 불린다. 그러나 최근 중국 한족(漢族)과 같은 비조선족 중국인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기 시작하고 있어 이들을 모두 조선족이나 동포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들을 ‘중국국적 이주자’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지칭한다.

[2] 대림2동뿐 아니라 대림1동과 대림3동 즉, 대림동 전체에 중국국적 이주자가 밀집해있다. 그러나 본 글은 그 중 중국국적 이주자가 가장 많고 주요 상권이 발달한 대림2동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3] 2016년 2분기부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국적·동별 등록외국인의 통계는 공개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고민경·백일순. 2019. “이주 중개인을 통해서 본 이주 인프라의 형성 과정.” 한국지역지리학회지 25권 2호, 207-229.
  • 이석준·김경민. 2014. “서울시 조선족 밀집지 간 특성 분석과 정책적 함의.” 서울도시연구 15권 4호, 1-16.
  • 이화용·이영민. 2018. “중국국적 이주자 밀집지역 내 경계와 질서의 재구성: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2동을 사례로.” 로컬리티 인문학 10권,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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