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의 험난한 길 – 필리핀 무슬림 분쟁

필리핀 무슬림 분쟁은 지난 50여 년간 지속되면서 120,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러한 인명 피해와 더불어 지속되는 무력 분쟁은 국제적으로 필리핀에 불안정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는 해외 관광객 유입은 물론 각종 교류나 경제적 투자에도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리핀 정부는 지속적으로 반군 단체와 평화 협상을 추진해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1월 21일 실시된 국민 투표를 통해 새롭게 출범하는 방사모로무슬림자치구(Bangsamoro Autonomous Region in Muslim Mindanao, BARMM)는 그동안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던 무슬림들의 진정한 정치적 자치와 경제적 자립을 최대한 보장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이를 통해 민다나오섬 무슬림 지역에 평화가 정착되고 경제적 번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필리핀 무슬림에게 주어진 평화를 향한 이 새로운 길에는 다양한 장애물이 존재하며,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 또한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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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부산외국어대학교)

평화를 향한 새로운 길
필리핀 술루 지역 성당 폭탄 테러
출처: 연합뉴스

지난 1월 27일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술루 지역에 있는 한 성당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23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다. 이 테러의 배후로 술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슬림 테러조직 아부사얍(Abu Sayyaf Group, ASG)이 있다고 발표되었다. 이어서 30일에는 인근 잠보앙가시에 있는 한 모스크에 폭탄이 투척되어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지난 50여 년간 지속되며 120,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필리핀 무슬림 분쟁의 종식에 대한 기대가 높은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아키노(Benigno Aquino III) 정부와 필리핀 무슬림 최대 반군 조직인 모로이슬람해방전선(Moro Islamic Liberation Front, MILF)과 맺은 평화 협정을 실현할 실행법이 오랜 진통 끝에 의회를 통과하고 이를 확정하기 위한 국민 투표가 지난 2019년 1월 21일에 실시되었다. 이 실행법에 근거해 기존의 민다나오무슬림자치구(Autonomous Region in Muslim Mindanao, ARMM)는 방사모로무슬림자치구(Bangsamoro Autonomous Region in Muslim Mindanao, BARMM)로 대체될 예정이다. 이번 국민 투표는 기존의 ARMM 포함 지역과 참여 의사를 밝힌 인근 두 도시(Cotabato City, City of Isabela)에서 실시되었다. 그 투표 결과가 발표되던 1월 27일에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술루 지역은 이번 투표에서 방사모로조직법 (Bangsamoro Organic Law, BOL)에 반대하는 표가 더 많이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폭탄 테러 사건이 이제 막 출범하려는 BARMM과 민다나오 무슬림 지역의 평화에 혹시나 악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과거에도 무슬림 반군과의 다양한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이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들의 저항이 이어지면서 제대로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 관점에서 필리핀 무슬림 분쟁은 소수 민족 분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필리핀 무슬림이 인종적으로 다른 필리핀 국민들과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톨릭이 지배적인 국가에서 소수인 무슬림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문화적 소수 민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소수 민족 분쟁은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에스테반과 레이(Esteban and Ray 2011)는 분쟁의 발생 원인에 관해 차별적인 정부 정책과 이에 대한 소수 민족의 저항으로 봤다. 특히 소수 민족 내부의 불평등 구조도 분쟁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주목했다. 즉 소수 민족 내부에 투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물질적 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부유한 계층이 있고, 더불어 경제적 상황이 절망적이어서 전쟁터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 다수의 빈곤층이 존재할 때 이들 간의 연계를 통해 분쟁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에스테반과 레이의 이론은 필리핀의 무슬림 분쟁 발생 배경을 설명하는데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필리핀 무슬림 사회는 필리핀 국가 전반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일부 전통적 엘리트 그룹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다수의 무슬림 민중들은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분쟁의 발생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구어(Gurr 1993)는 소수 민족 분쟁이 촉발하는 배경으로 정치적 권리, 경제적 권리, 그리고 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불만의 고조를 꼽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분쟁으로 이어지기 위한 또 다른 조건으로 네 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 소수 민족의 불만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으며, 둘째로 중앙 정부가 이를 억제할 정도의 능력을 보이지 못하며, 셋째로 소수 민족에 대한 외부의 지지와 지원이 존재하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환경을 활용하려는 정치적 야심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구어의 소수 민족 분쟁의 발생 배경과 조건에 관한 이론도 필리핀의 사례에 적용될 수 있다. 필리핀 무슬림 분쟁이 본격화되던 1970년대 초의 상황은 구어의 소수 민족 분쟁 발생의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구어에 따르면, 소수 민족 분쟁에 대한 중앙 정부의 정책은 크게 무력진압과 타협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이는 분쟁을 일으킨 소수 민족의 요구사항과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중앙 정부의 태도 여부에 따라 분쟁이 지속되기도 하고, 또한 합의에 도달하여 분쟁이 종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수 민족 분쟁의 이슈로 자주 등장하는 분리 독립 주장은 특수한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현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개별 사안에 따라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필리핀의 경우 무슬림 분쟁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데에는 주요 반군 단체인 MILF가지속적으로 분리 독립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전개되고 있는 평화의 움직임은 MILF가 그동안 고집해 왔던 분리 독립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대신 실질적인 자치를 요구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이는 필리핀 정부와 MILF 사이에 상호 정체성을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공동 번영을 모색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수차례의 평화 협정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는데, 이번에 추진하는 BARMM은 과연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본 글에서는 필리핀 무슬림 무력 분쟁의 성격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새롭게 출범하는 BARMM이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무력 분쟁의 지속 현상을 필리핀 무슬림의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BARMM이 이와 같은 분쟁의 내외적 요인들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될 수 있을지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지난 수년 간 필리핀 무슬림 문제를 연구하여 수편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김동엽 2013, 2014, 2015). 이 과정에서 수차례의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많은 무슬림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필자의 연구 경험이 본 글의 주요 자료와 논점을 제공하였으며, 최근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필리핀 현지 언론 보도와 분석 자료를 활용하였다.

 

분쟁의 배경과 구조

필리핀의 무슬림 반군 문제는 표면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적 분쟁으로 보여 질 수 있다. 이는 서구와 아랍 세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그 근원은 멀리 구약성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도 두 종교 간 갈등의 골을 깊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에 와서 중동 국가들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스라엘의 배후로 지목되는 미국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간의 충돌에 종교적 신념이 관여되어 있다. 필리핀 무슬림 분쟁을 종교적 이유에서 찾는다면 그 근원은 스페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718년부터 1492년까지 무어(Moor)족 무슬림에 대한 벌였던 재정복전쟁(Reconquista)을 들 수 있다. 스페인은 본토에서 수백 년간 무슬림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필리핀에 와서 마주하게 된 또 다른 무슬림도 정복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종교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필리핀 무슬림 반군 문제는 종교적인 원인보다는 세속적인 원인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필리핀 무슬림분쟁의 역사와 구조(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보실 수 있습니다.)
ⓒDIVERSE+ASIA

언제부터 필리핀에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히 할 수 없지만, 기록에 따르면 14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전파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1450년경에는 일부 민다나오 중서부 지역에 이슬람 술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Majul 1999, 11-13). 이슬람은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1521년에는 그 세력이 이미 마닐라까지 미칠 정도로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필리핀 무슬림은 스페인의 정복 전쟁에 지속적으로 저항했으며, 이는 필리핀의 주권이 미국으로 이양된 1898년까지 이어졌다. 미국의 식민 통치 하에서 필리핀 무슬림들은 최초로 필리핀 정치 공동체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이는 당시 술루의 술탄이 자치권과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는 조건 하에서 미국과 맺은 베이트 협약(Bates Treaty)에 근거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 협약을 파기하고 1902년 직접 통치를 위한 법안을 공포했다(Finley 1915, 259). 이후 필리핀 무슬림들은 가톨릭이 지배적인 필리핀 사회에 소수 민족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이는 오랜 고립의 시기에서 벗어난 필리핀 무슬림 사회의 근대적 전환을 의미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부 전통적 지배 계층은 새로운 정치 체제의 지도층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오늘날까지 필리핀 무슬림 사회의 지배 엘리트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필리핀 무슬림 사회는 미국 식민 통치 시기부터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주변화를 경험한다. 이 때부터 시작된 타지역 사람들의 민다나오 이주 정책은 1946년 필리핀 독립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며, 이는 많은 무슬림들을 자신의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몰아내는 원인이 되었다. 새롭게 무슬림 지역에 이주하여 정착한 사람들과 현지 무슬림 간의 갈등이 점차 격화되었고,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무장하기 시작하면서 분쟁은 사병 집단을 동원한 유혈 충돌로 발전했다. 이처럼 사적이며 간헐적으로 발생했던 분쟁이 전면적인 반정부 투쟁으로 변화하게 된 주요 사건은 1968년 3월에 발생한 자비다(Jabidah) 학살사건이었다. 이는 필리핀 군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무슬림 병사 30명이 병영에서 집단으로 학살당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최초의 무슬림 반군이 조직되었다(Islam 1998, 448). 1972년 마르코스 대통령이 공산 반군 활동과 무슬림 독립 운동을 빌미로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무슬림 반군은 정부군과의 전면적인 투쟁을 시작하였다. 이 때 등장한 무슬림 반군 단체가 체계적 군사 훈련을 받은 젊은 무슬림들로 조직된 모로민족해방전선(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 MNLF)이었다.

이후 MNLF는 무장 투쟁을 지속하며 필리핀 정부와의 평화 협상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투쟁과 협상의 과정에서 MNLF 내부의 분열이 나타났다. 이는 필리핀 무슬림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이 반군 세력의 주도권 경쟁에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었다. 필리핀 무슬림들은 종교적으로는 같지만 종족, 언어, 문화, 그리고 정치적 역사 또한 동일하지 않다. 필리핀 무슬림 사회는 주요 13개의 종족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중 3개 종족 집단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민다나오 남서부에 작은 섬들로 구성된 술루 지역에 거주하는 따우숙(Tau Sug, 해류의 사람)과 민다니오 섬 남서부 평원에 거주하는 마긴다나오(Magindanao, 범람원 사람), 그리고 그 북쪽에 위치한 거대한 라나오(Lanao) 호수 인근에 거주하는 마라나오(Maranao, 호수의 사람)가 있다. 스페인 도래 이전 술루와 마긴다나오에는 커다란 세력을 거느린 무슬림 술탄 왕국이 존재했으며, 라나오 지역에는 다수의 소규모 술탄들이 상호 연합한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했다. 1970년대 최대 반군 조직이었던 MNLF의 지도자였던 미주아리(Nur Misuary)는 따우숙으로서 초기 무슬림 무장 단체를 이끌며 국내외적으로 필리핀 무슬림 무장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70년대 초 MNLF는 오일머니(oil money)로 그 위력이 막강해진 국제 이슬람협력기구(Organization of Islam Cooperation, OIC)의 지원을 등에 업고 마르코스 정부와의 평화 협상에 임했으며, 그 결과 1976년 최초의 평화 협정인 트리폴리협정(Tripoli Agreement)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으며 MNLF 내부의 분열만 가져왔다. 필리핀 무슬림 반군의 단일 조직이었던 MNLF의 분열은 분쟁의 양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오늘날까지 필리핀 무슬림 분쟁이 다양한 평화 협정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된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

 

평화에 대한 기대와 실망

1976년 마르코스 정부와의 평화 협상 과정에서 MNLF의 의장 미주아리의 독단과 협상 결과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일부 세력이 부의장으로 있던 살라맛(Hashim Salamat)을 중심으로 MNLF에서 이탈했다. 살라맛과 그 추종자들 대부분은 마긴다나오 종족으로서 이들은 1977년에 새롭게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을 조직했다. 이때부터 필리핀 무슬림 반군세력은 종족적 구분에 따라 크게 MNLF와 MILF로 나뉘어졌다. 더욱이 MILF의 지도자 살라맛은 이슬람 학자출신으로서 분리 독립이라는 강경 투쟁노선을 견지하면서 필리핀 정부와의 타협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이후 필리핀 정부는 타협의 여지가 있는 MNLF와 먼저 평화 협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86년 마르코스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들어선 아키노(Corazon Aquino) 정부에서는 무슬림 지역에 자치구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1987년 필리핀 헌법에 명기하고, 1990년 11월에 민다나오무슬림자치구(ARMM)를 설치함으로써 분쟁의 종식과 평화를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 아키노 정부에 이어 1992년 라모스(Fidel V. Ramos) 정부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평화 협상이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1996년 MNLF와 최종평화협정(Final Peace Agreement)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ARMM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막대한 정부 예산과 국제사회의 원조를 투입해 민다나오 무슬림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모색코자 했다. 이 평화 협정에 따라 MNLF는 무장 투쟁을 포기하고 ARMM의 주도 세력으로 편입되었다. MNLF의 지도자인 미주아리는 정부의 지원 하에 ARMM의 주지사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주아리가 주도한 ARMM은 많은 기대와는 달리 필리핀 무슬림 사회에 평화를 정착하지도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지도 못했다. 특히 ARMM 지도부의 주도권 싸움과 부정부패의 만연은 많은 무슬림들의 실망을 낳았다. 이와 같은 ARMM의 실패 원인에는 또 다른 반군 조직인 MILF를 중심으로 지속된 반군 활동이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무력 분쟁이 지속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한 각종 개발 사업이 지장을 받게 되고, 외부의 투자는 예정대로 추진되지 못함으로써 지역 경제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의 지속은 젊은 무슬림들로 하여금 생계를 위해 반군에 가담하는 현상을 낳았고, 이는 MILF 세력을 더욱 확장시켜 최대 반군 조직으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또한 MNLF의 해산과정에서 일부 하부조직이 이탈하여 아부사얍(ASG)이라는 극단적 테러 조직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후 라모스 정부는 MILF와 평화 협상을 시도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라모스 정부의 뒤를 이은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 정부에서는 MILF와의 평화 협상을 포기하고 이들의 소탕을 위한 전면전을 선포하여 대규모 군사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MILF 조직을 와해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국민혁명(People Power II)로 물러났다. 그 뒤를 이은 아로요(Gloria Macapagal-Arroyo) 정부 때에는 MILF와 평화 협상이 진척되어 2008년에 공동 합의안(Memorandum Agreement on Ancestral Domain, MOA-AD)을 도출하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그동안 MILF를 이끌었던 살라맛이 2003년 사망하면서 그의 뒤를 이은 지도부가 분리 독립이라는 투쟁의 목표를 포기함으로써 합의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로요 정부에서 체결된 MOA-AD는 법제화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대법원으로부터 헌법 불일치 판정을 받음으로써 실현되지 못했다.

2010년 출범한 아키노(Benigno Aquino III) 정부는 MILF와 평화 협상 추진하여 2014년 3월 27일 최종 합의안(Comprehensive Agreement on Bangsamoro, CAB)에 조인했다. 물론 CAB에는 기존의 ARMM을 재조직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에 대해 필리핀 무슬림 사회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MNLF 지도자였던 미주아리와 술루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무슬림들은 MILF가 주도하는 합의안에 불만을 드러냈다. 또한 MILF 조직 내부에서도 평화 협정에 반대하여 이탈하는 그룹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방사모로이슬람해방전사(Bangsamoro Islamic Freedom Fighter, BIFF)를 새롭게 조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노 정부는 CAB의 실행법안인 방사모로기본법(Bangsamoro Basic Law, BBL)이 입안하여 2014년 9월 10일 의회에 제출했다. 아키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BBL의 통과를 희망했으나 2015년 1월 무슬림 지역인 마긴다나오(Maguindanao)의 마마사파노(Mamasapano) 지역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을 계기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무력 충돌은 테러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투입된 필리핀 경찰 특수 부대가 그 지역 주둔 MILF 병력과 여타 반군 조직들의 공격을 받아 경찰 44명을 포함해 총 66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필리핀 국민들 사이에 무슬림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고조되었고 BBL에 대한 의회 논의는 중단되었다. 2016년 7월 출범한 두테르테 정부는 BBL를 수정하여 새롭게 방사모로조직법(Bangsamoro Organic Law, BOL)을 입안해 의회에 제출했으며, 그 법안이 2018년 7월 의회를 통과하였고, 2019년 1월 21일 국민 투표를 거쳐 최종 확정되었다.

방사모로조직법(BOL) 의회 통과
출처: 연합뉴스

 

분쟁의 종식과 평화 정착을 위한 선택, BARMM

BOL를 통하여 출범하게 될 방사모로무슬림자치구(BARMM)는 무슬림의 자치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하여 1국가 2체제라는 새로운 공존 모델이다. BARMM 정부는 무슬림 사회 내부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자치의회가 주도하는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ARMM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중앙 정부와의 종속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예산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였다. 이처럼 제도적 차원에서 새로운 시도가 될 BARMM이 필리핀 무슬림 분쟁을 종식시킬 최종 방안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경험적으로 보더라도 단순히 이상적이라고 생각되어 합의된 제도의 도입이 분쟁의 종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주요 요소로서 기술문명의 발달과 함께 해당 사회의 새로운 담론의 출현, 그리고 이를 실현하려는 강력한 주도 세력의 존재를 꼽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이 출범하는 BARMM의 추진 여건을 살펴보고, 또한 BARMM이 지난 50여 년간 지속시킨 분쟁의 내적·외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BARMM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은 아주 우호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50여 년 간 끌어온 무력투쟁은 반군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필리핀 무슬림 다수에게 피로감을 누적시켰다. 즉 무력 투쟁의 지속이 자신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고 있으며, 반군 지도부도 이제 노쇠하여 투쟁의 의지가 저하되어 있다. MILF 의장 이브라힘(Murad Ibrahim)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제 새로이 출범하는 BARMM에서는 자신과 같은 투쟁 세대들보다 새로운 젊은 무슬림들이 주도하여 번영된 무슬림 사회를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를 위해 젊은 무슬림 120명을 해외에 파견하여 정부운영에 관한 훈련을 받도록 했다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표현했다(ABS-CBN News, 2019). 과거에도 이러한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수용할 필리핀 국민들의 의지와 이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정치력이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반면 현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최초의 민다나오 출신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모계 쪽이 무슬림 종족인 마라나오라는 점을 부각하여 무슬림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또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집권과 더불어 시작한 ‘마약과 부패와의 전쟁’으로 국민 다수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강한 지도자를 표방하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의회나 사법부에 대한 높은 장악력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아로요 정부에서 MOA-AD가 사법부의 위헌 판정을 받은 것이나, 아키노 정부에서 BBL이 의회를 넘지 못한 것과 달리 두테르테 정부는 BOL의 의회 통과와 BARMM의 출범을 큰 무리 없이 이루어냈다. 과거 라모스 정부에서 맺은 MNLF와의 최종평화협정이 또 다른 반군 조직인 MILF를 포함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BARMM의 출범에 있어서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직접 MNLF 지도자인 미주아리를 만나 신뢰를 구축하고 협력을 구하는 노력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둘째로 BARMM이 무슬림 사회의 내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BARMM 체제로부터 이탈하는 그룹을 최소화하여 점진적으로 모든 무장 투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또한 종족적 다양성에 따른 분열 구조를 새로운 정치 체제 속에서 발전적 경쟁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월 21일 실시된 국민 투표에서 MNLF의 근거지인 술루 지역은 BARMM에 반대하는 표가 더 많았다. 이는 새롭게 출범하는 BARMM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기존의 술루 중심의 따우숙이 주도하던 ARMM이 마긴다나오가 주도하는 BARMM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소외감을 느끼는 지역과 종족에 대한 배려와 포섭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향후 3년 동안 MILF 주도의 방사모로전환위원회(Bangsamoro Transition Commission)가 BARMM의 본격적인 출범을 주도할 예정이다. 필리핀 무슬림 사회에는 반군 세력 이외에 전통적 엘리트 그룹이 존재하며, 이들은 그 동안 중앙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 왔다. 이제 새롭게 들어설 BARMM에서는 지역의 정치에 대한 중앙 정치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 예상됨으로 이들이 무슬림 자치 정부의 경쟁적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을 수 십 년간 반군 활동에 몰두해 온 MILF 지도부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주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2014년 필리핀 정부와 큰 틀에서의 평화 협정에 조인한 이후 많은 국제기구와 단체에서 다양한 지원과 협조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전환위원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정치 체제의 틀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특히 새롭게 출범하는 BARMM이 필리핀의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인물 중심의 정치 행태를 지양하고, 정당이 주도하는 내각책임제를 도입한 것은 다양한 무슬림 세력들이 지역 정치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방사모로무슬림자치구(BARMM) 위치
출처: Wikimedia Commons

셋째로 외적인 문제인 필리핀 정부와의 종속적 관계를 청산하고 비무슬림 필리핀 국민들의 차별적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무슬림 사회의 진정한 자치의 실현과 평화정착, 그리고 경제발전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BARMM은 제도적으로 정치적 자치를 보장하기 위한 재정적 자율성을 확대했다. 필리핀 정부는 매년 세입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자동적으로 BARMM 정부에 명목을 정하지 않고(block grant) 제공하기로 했으며, 향후 10년간 분쟁으로 인한 피해복구 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매년 50억 패소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자원개발에 따른 각종 세입의 지방 정부 몫을 70%에서 75%로 늘려 BARMM의 재정적 자립도를 높였다. 더불어 지난 ARMM 실패의 주요 원인이었던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감사 제도를 자치 정부와 중앙 정부로 이중화함으로써 예산의 부적절한 사용에 대한 여지를 줄였다. 평화 정착과 관련하여 BARMM이 출범하는 현 상황은 비록 소수의 반대 세력이 있기는 하지만 주류 반군 세력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기대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생계를 위한 반군 활동이 없어지도록 경제적 활동이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BARMM의 출범에 대해 주변 이슬람 국가들은 물론 서방국가와 일본 등 많은 주요 국가들이 환영과 함께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적 투자가 계획대로 이루어질 경우 그동안 지체되어 왔던 경제 발전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무슬림 지역의 평화 정착과 경제 발전은 필리핀의 비무슬림 국민들의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평화와 번영의 길

필리핀의 오랜 무슬림 분쟁은 필리핀 국가 전체의 안전 혹은 안정에 대한 국제적인 이미지에도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해외안전여행에 관한 국가별 기본 정보가 나와 있다. 동남아시아 지도에 표기된 국가별 여행경보 상황을 보면, 유일하게 필리핀의 민다나오섬이 검은색 사선으로 표기된 특별 여행경보 지역으로 나타나 있다. 세계 각국의 평화 지수를 발표하는 글로벌피스인덱스(Global Peace Index 2018)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조사한 163개 국가 중 필리핀은 137위를 차지하여 122위를 차지한 미얀마보다 평화지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불안정한 국가 이미지는 해외 관광객 유입은 물론 각종 교류나 경제적 투자에도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즉 필리핀의 무슬림 분쟁은 비단 민다나오섬 분쟁 지역뿐만 아니라 필리핀의 국가 경제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필리핀의 정치적 지도자들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는 매번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무엇보다도 먼저 반군 단체와의 평화 협정을 추진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떤 정부에서도 무슬림 반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구어의 연구에서도 나타나듯이 소수 민족 분쟁의 평화적 해결은 결국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스페인의 필리핀 진출 이후 수백 년 간 지속된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주변화의 결과인 오늘날 필리핀 무슬림 사회의 빈곤과 저발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진정한 평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은 무엇보다도 무력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오랫동안 지속된 투쟁의 과정 속에서 필리핀 무슬림 사회는 종족적 차이와 노선의 차이에 따라 분열되었고, 이는 분쟁의 양상을 더욱 복잡하고 해결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처럼 과거의 실패한 경험을 거울삼아 현 BOL은 중앙 정부와의 관계는 1국가 2체제로 하고, 무슬림 사회 내부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자치 정부를 내각책임제로 하는 등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또한 필리핀 무슬림 스스로가 자신들의 지역 발전에 주체가 되어 추진할 수 있도록 재정적 자율성을 확대하고, 또한 이중 감사 제도를 도입하여 책임성을 강화했다.

오랜 분쟁으로 인해 접근할 수 없었던 필리핀 무슬림 지역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천해의 관광자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화가 정착되고 외부의 투자가 본격화되면 무슬림 지역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예상되며, 이러한 경제적 가능성은 많은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어 젊은 무슬림들에게 제공되면, 그동안 많은 경우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여했던 반군 활동으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무슬림 반군 조직의 부활을 막고, 기존에 활동 중인 소수 테러단체의 활동도 위축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필리핀 무슬림 지역의 전반적인 변화는 필리핀 주류 사회 내의 무슬림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 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새로운 관계 정립이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그 길에는 다양한 장애물이 존재할 것이며,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 또한 과제로 남아 있다.

필리핀 정국은 이제 5월에 있을 중간 선거 캠페인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선거 경쟁이 치열한 필리핀 정치적 환경 하에서 BARMM 문제는 그다지 대중적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는 5월의 선거 결과는 BARMM의 미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오는 5월 중간 선거 이후 선거 공약이었던 연방제로의 헌법 개정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 추진력은 선거 결과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대부분의 필리핀 중간 선거는 옷자락 효과(coat tail effect)를 나타내어 집권 세력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단임제 대통령제의 특성과 인물 위주의 정치 행태를 고려할 때 선거 이후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이 급속히 약화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과거 정부에서도 수차례 시도하다 실패했던 헌법 개정은 물론 BARMM의 온전한 추진과 정착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김동엽(dykim@bufs.ac.kr)은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지역원 HK부교수로 필리핀국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남아 지역연구와 필리핀 정치·경제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필리핀 이슬람 분쟁의 원인과 전망에 관한 연구를 수년 간 실시하기도 했다. 최근 저술로는 『나를 만지지 마라 I & II』(2015, 역서), 「Transforming Western Democracy in Southeast Asia: The Case of Lanao del Sur, the Philippines」(2018, International Journal of Asia Pacific Studies) 등이 있다.

 


참고자료

  • 김동엽. 2013. “필리핀 무슬림 분리주의 운동의 발생과 전개: 이슬람 부흥운동의 맥락에서.” 『동아연구』 제32권 2호: 263-300.
  • 김동엽. 2014. “필리핀 방사모로 이슬람 정당의 장래: 라나오 델 수르의 옴피아당이 남긴 교훈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연구』 제24권 4호: 147-194.
  • 김동엽. 2015. “필리핀 사회 속의 무슬림 소수민족: 필리피노와 모로의 평화적 공존을 위하여.” 『동아연구』 제34권 2호: 213-260.
  • ABS-CBN News. 2019.1.25. “After Bangsamoro Organic Law is ratified, now comes the hard part.” https://news.abs-cbn.com/focus/01/25/19/after-bangsamoro-organic-law-is-ratified-now-comes-the-hard-part (검색일 2019.1.25.)
  • Finley, John P. 1915. “The Mohammedan Problem in the Philippines Ⅰ.” The Journal of Race Development 5(4): 353-363.
  • Islam, Syed Serajul. 1998. “The Islamic Independence Movements in Patani of Thailand and Mindanao of the Philippines.” Asian Survey 38(5): 441-456.
  • Majul, Cesar Adib. 1999. Muslim in the Philippines. Quezon City: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Press.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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