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모독죄: 인도네시아의 종교 자유와 관용의 축소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로 무슬림을 대상으로 하여 적용되던 신성모독죄가 비무슬림에게 확대적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계 기독교도로 자까르따 주지사였던 아혹에게 제기된 신성모독 의혹은 수십만 명의 무슬림이 참가하는 시위를 촉발했고 그를 선거에서 낙마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모스크 마이크에서 나오는 기도 소리가 너무 크다는 불교도의 항의가 주변 무슬림을 분노케 하여 폭동으로 이어졌으며, 그녀는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비무슬림에 대한 신성모독죄의 적용은 불간섭과 통제라는 이슬람식 관점에서 규정된 종교도간 화합을 강제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신성모독죄 관련 사건의 전개 과정에 대한 이해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종교 자유와 종교적 관용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검토할 유용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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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강원대학교)

종교 자유와 종교모독의 자유

웹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워마드‘(Womad)는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남성 중심적 질서에 대한 반감과 저항을 ’배설하듯’ 여과 없이 표출함으로써 워마드는 극단적 찬반양론에 휩싸이며 사회적 담론의 중심부로 이동했다. 남성 혐오는 때로 기존 질서 일반에 대한 분노와 혐오로 전환되었으며 최근에는 성체가 그 공격 대상에 편입되었다.

예수를 비난하는 표현이 적힌 성체를 불태운 사진이 워마드 사이트에 게시되고 이것이 SNS를 통해 전파되자 곧바로 전통 미디어의 뉴스 소재로 편입되었다. 성체 훼손이 공론화됨에 따라 워마드에 대한 비판이 비등해졌고 워마드 사이트를 처벌하고 폐지하자는 청원이 청와대 신문고 게시판에 게시되었다. 천주교 주교회의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종교인이 존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한 공개적 모독 행위는 절대 묵과”할 수 없음을 밝힌 주교회의는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주장하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과 공동선에 어긋나는 사회악이라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고 법적인 처벌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1]

주교회의가 거론한 법적 처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회의적이다. 종교자유가 종교를 비판할 자유를 포함하며, 정교분리로 인해 국가가 간섭할 여지가 적은 상황에서 성체 훼손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반영한 듯 처벌에 대한 논의는 ‘절도죄’, ‘재물손괴죄’, ‘예식방해죄’, ‘모욕죄’, ‘명예훼손죄’ 등과 같이 종교외적인 영역으로 흘러갔다.

성체 훼손 사건은 헌법의 종교 자유가 종교적 활동과 믿음을 자유롭게 행하고 표현할 권리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불만과 비방을 제한 없이 행하고 드러낼 권리를 포함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표현의 자유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며 종교모독이 신성 불가침적 권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방글라데시 신성모독 반대 시위
출처: 연합뉴스

 

이슬람과 신성모독(blasphemy)

성체 훼손 같은 사건이 다른 종교, 특히 이슬람을 대상으로 하여 발생한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대답은 살만 러시디(Salman Rushdie)의 소설 ‘악마의 시’(Satanic Verses)이다. 선지자 무함마드(Muhammad)를 모욕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소설이 출판되자 전 세계 무슬림의 공분을 자아냈고, 이란의 호메이니는 그의 살해를 명하는 파트와(fatwa: 종교적 결정)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후 영국 시민권자인 저자는 오랫동안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무함마드에 대한 모독이 국제적 관심사로 부상한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2005년 무함마드의 모습을 담은 삽화와 기사를 게재한 덴마크 일간지는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고 관련자에 대한 테러가 이어졌다. 이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 2015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이슬람을 포함한 종교 풍자만화를 자주 게재하던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잡지사에 무슬림 테러리스트가 침입하여 10여 명의 기자를 살해했다.

샤를리 엡도 추모 장면
출처: 경향신문

무함마드 모독 사건은 유럽에서 발생했다. 그런데도 지리적으로 떨어진 이슬람권 국가에서 대규모 반대시위, 나아가 직접적인 테러까지 일어난 이유는 신성(종교)모독(blasphemy)의 폭발력 때문이다. 종교적 의무 수행을 중시하는 무슬림에게 있어 신성모독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이로 인해 무슬림이 다수를 구성하는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종교적 영역에 적용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될 뿐만 아니라 종교 모독을 세속법으로 처벌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무슬림에게 있어 신성모독은 오랫동안 심각한 문제였지만 최근 들어 이 경향이 강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소위 ‘이슬람화’(Islamization)라 불리는 움직임, 즉 종교적 의무를 실천하고 종교적 관점에서 주변을 바라보려는 무슬림의 증가 현상이 1960-70년대 이후 모든 이슬람권 국가에서 전개되었고 이것이 신성모독의 민감성을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먼 곳에서 벌어진 일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대응하려는 경향이 발생했고, 유럽에서 일어난 모독 사건에 대한 동남아 무슬림의 분노가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최근 상황을 고려해보면 무슬림이 다수를 구성하는 국가에서 신성모독 사건이 어떻게 취급될지를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신성모독을 행했다고 믿어지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물리적 공세가 집단적으로 가해질 수 있으며, 신성모독 관련 법을 통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신성모독에 대한 대응을 종교적으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신성모독의 기준조차 유동적이어서 이전까지 고려되지 않던 차원이 새로 첨가되기도, 이전에 중시되던 차원이 간과되기도 한다. 신성모독은 종교적 성격을 가지지만, 그것이 발생한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유명세를 치른 두 사건은 신성모독이 다양한 종교 외적 요인과 얽혀 있음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사건은 자까르따 지사 선거에 출마한 현직 주지사 아혹(Ahok)을 중심으로, 두 번째는 北수마뜨라州 소도시에 거주하는 메일리아나(Meiliana)라는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났다. 이들은 무슬림에 의해 신성모독을 행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건은 신성모독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전개되는가뿐만 아니라, 이슬람화라는 종교적 흐름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변용되어 이용되는가를 이해할 자료를 제공해 준다.

 

기독교도를 대상으로 한 이슬람 모독죄의 적용

‘아혹’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바수끼 짜하야 뿌르나마(Basuki Cahaya Purnama) 前주지사는 2012년 자까르따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조꼬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의 런닝 메이트였다. 조꼬 위도도가 2014년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부지사였던 그가 주지사 자리를 이어받았으며 2017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중국계로서 기독교도인이며 수마뜨라섬 변방 출신이라는 핸디캡에도 그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재선을 자신할 수 있었지만, 갑작스레 신성모독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아혹이 쿠란 알 마이다(al Maidah) 51절을 언급하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해석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 연설을 비디오로 접한 사람이 핵심 단어 하나를 제외한 채 그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이것이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자 이 사건은 핫이슈로 전환되었다. 아혹의 의도가 왜곡되어 전달되었음이 이후 사실로 판명되었지만[2] 그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역사상 가장 많은 참가자가 모인 규탄 시위가 자까르따에서 2차례 행해졌고, 그에 대한 지지세는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1차 선거에서 그는 다른 두 명의 후보를 제치고 1위에 올랐지만 결선 투표에서 패했고 이후 신성모독죄 위반으로 구속되었다(Damayanti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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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혹을 비판하는 자까르따 시위 (1) http://indonesiaatmelbourne.unimelb.edu.au/bigger-than-ahok-explaining-jakartas-2-december-mass-r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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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혹을 비판하는 자까르따 시위(2)
http://en.tempo.co/read/news/2017/04/28/057870344/Jakarta-Police-Tell-GNPF-MUI-to-Stop-Staging-Anti-Ahok-Ral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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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아혹의 연설 내용이 신성모독적 성격을 띤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알 마이다 51절의 핵심 단어인 ‘아울리야’(‘awliya[wali]: 한국어 쿠란에서는 ’친구‘ 및 ’보호자‘로 표현)는 ’가까운 친구‘, ’보호자‘, ’지도자‘ 등 상이한 의미로 해석됐으며 이러한 다의적 해석 가능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혹은 이러한 해석 중 한 편을 수용하여 다른 편을 비판했는데, 이러한 방식 역시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Black 2016).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기독교도라는 점으로서, 비무슬림이 쿠란의 논쟁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의문을 제기하도록 했다.

이슬람화가 본격화된 1970년대 후반 이후 무슬림은 이슬람식 프레임을 통해 종교도간 관계를 설정하고자 시도했는데, 그 핵심은 불간섭과 국가의 통제였다(김형준, 1997). 즉,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타종교도의 삶에 간섭하지 않아야 종교도간 화합이 가능하며 국가가 이를 뒷받침할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선교로 인해 무슬림의 기독교로의 대규모 개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에 기반을 둔 이 관점은 1980년대 이후 정부 정책에 적용되어서 선교, 종교 건물 사용과 건축 등을 규제하는 법령이 속속 제정되었다. 이 시각을 확대적용할 경우 기독교도가 이슬람에 대해 언급하는 행위는 불간섭 원칙을 어긴 것이라 규정될 수 있다.

이슬람식 관점에서 본다면 아혹의 쿠란 구절 언급은 그 상황과 관계없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것이다. 여기에 그의 연설이 정치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종교도간 규범을 어긴 것이라는 해석을 도출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보수적 견해와 다른 해석을 선택하여 보수세력을 비판했다는 사실은 그가 이슬람 교리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왜곡하여 이용하려 했다는 즉, 신성모독을 했다는 비난을 가능하게 했다.

선거 패배 후 아혹은 신성모독죄로 2년을 선고받았고 항소를 포기하여 그 형이 확정되었다. 그의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는 제 이슬람 단체를 대표하는 조직인 ‘인도네시아 이슬람지도자위원회’(이하: MUI)였다. 신성모독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취지의 MUI 회장의 증언은 유죄 판결을 뒷받침할 결정적 요소로 작동했다.

이전까지 신성모독죄의 주요 적용대상이 이단으로 간주되는 이슬람집단이었기 때문에 기독교도를 대상으로 한 이 사건은 이례적이었다. 무슬림의 공세에 대해 기독교도가 소극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교리를 매개로 한 종교도간 갈등이 최소화되었음을 고려해보면, 이 사건은 아혹 자신에 의해 촉발된 면이 있을지라도 특정 무슬림 집단의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개입된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사건이 종결되고 얼마 되지 않아 아혹의 상황이 이례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또 다른 사건이 공론화되었다. 새로운 사건은 아혹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발생했고 사건의 주인공 역시 정치 활동과는 거리가 먼 일반인이었다.

메일리아나는 중국계 불교도 여성이었다. 사건은 집 앞 모스크에서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그녀가 이웃에게 불평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그녀의 집을 방문한 모스크 관계자에게 그녀가 항의하자 이 소식이 와전되어 확산되었고 분개한 무슬림 군중이 그녀의 집으로 몰려왔다. 그녀를 찾지 못한 군중은 동네의 절과 차량을 파괴하고 방화했다. 폭력 사태는 그날 밤 멈추었지만, 분이 풀리지 않은 무슬림들은 그녀를 신성모독죄로 기소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으며 재판에 넘겨진 그녀는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투옥되었다(Monza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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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리아나에 분노한 무슬림 군중이 파괴한 차량
https://nasional.tempo.co/read/1119663/ini-kronologi-kasus-penistaan-agama-meiliana-di-tanjung-b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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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리아나에 분노한 무슬림 군중이 파괴한 절 https://beritagar.id/artikel/berita/mengapa-amuk-massa-terjadi-di-tanjung-b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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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리아나 사건은 신성모독죄 적용의 또 다른 유형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아혹 사건과 달리 이 유형에서 신성모독은 지역 사회의 다이내믹스와 관련된다. 보통 독자적인 종교 해석을 제시하거나 종교 외적 이유로 인해 기성 종교 세력과 마찰을 빚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집단적 공격이 이루어진 후 신성모독죄 적용을 요구하는 압력이 지역 경찰에 가해진다. 메일리아나는 부유한 중국계로서 이웃의 종교 활동에 비협조적이었거나 경제적으로 열악한 무슬림을 무시했거나 무슬림과 비종교적 이유로 갈등상태에 놓여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러한 불만이 그녀의 항의를 빌미로 표출되었으리라 추정된다.

메일리아나의 기소를 요구한 지역 MUI의 파트와를 보면 종교 외적 요인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대신 그녀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방문한 모스크 관계자에게 거친 언사로 대응했음이 지적되어 있다. 지역 MUI의 파트와는 재판 과정에서 핵심 근거로 인용되어 그녀의 유죄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혹과 메일리아나 사건 모두 이전에 발생한 신성모독 사건의 주요 구성요소를 포함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이들이 무슬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빈번하게 발생했던 교회 파괴에 대해 기독교도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음이 시사하는 것처럼 무슬림의 공세에 비무슬림이 지극히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 왔기 때문에 비무슬림에 대한 신성모독죄 적용 요구는 이전까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아혹과 메일리아나 사건은 인도네시아의 종교도간 관계에 새로운 차원을 첨가할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 신성모독죄가 무슬림에 의해 비무슬림의 행동을 통제할 수단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특히 메일리아나 사건은 모스크의 마이크 소리에 대한 항의라는 일상의 일조차도 문제시될 수 있음을 무슬림과 비무슬림 모두에게 환기해주었다. 이를 극단화하여 이해할 경우 비무슬림이 이슬람과 관련된 어떤 것에 대해 언급해도 신성모독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우울한 전망을 제기하도록 한다.

 

신성모독법 제정과 종교 외적 요인의 작동

신성모독법은 수까르노(Sukarno) 정권 말기인 1965년 초 대통령령으로 발표되었고 이후 형법 156조에 편입되었다. 대통령령 1조는 아래와 같다.[3]

인도네시아에서 신봉되는 종교의 종교 활동과 유사한 활동을 하거나 이러한 종교에 대해 해석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이러한 종교의 근본 교리에서 벗어난 활동과 해석을 공개석상에서 의도적으로 말하거나 제안하거나 그에 대한 일반의 지지를 얻고자 시도해서는 안된다.

수까르노 정권 말기라는 대통령령 발표 시점은 이 규정에 정치적 고려가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한다. 대통령령 2조 2항의 적용대상이 신성모독을 범한 집단으로 설정되어 있고 이들에 대한 강제 해산권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점은 그 목표가 개인보다는 집단, 특히 당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전통종교 신봉집단(aliran kepercayaan)의 통제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던 공산당의 독주에 대해 우려가 제기된 상황에서 수까르노는 공산당과 연대를 맺고 있는 이들 집단의 활동을 억제하려 했다.

신성모독법의 정치적 가치는 다음 대통령인 수하르또(Suharto)에 의해서도 공감되어서 그의 집권 중반기를 거치며 5개의 전통종교 신봉집단이 금지되었다(Silalahi 2010: 23). 같은 이유로 인해 수하르또의 통치가 공고해진 이후 이 법의 적용 사례는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사문화된 것처럼 보였던 신성모독법은 1990년대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여기에는 두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하나는 이슬람화 움직임의 강화에 따라 종교를 실천하려는 무슬림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슬람에 대한 정부의 태도 변화로서 후계 문제를 고민하던 수하르또는 탄압 대상이던 이슬람 세력을 회유하려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성모독법의 적용이 이루어졌고, 1990년대에 발생한 두 사건은 이후 이 법의 주요 적용 패턴을 예시했다.

인도네시아 신성모독의 세 가지 사례 비교

잡지사 모니터(Moniter) 주지사 아혹(Ahok) 살레(Saleh)
공통점 1. 대중의 집합적 행동 발생
2. 종교 외적 요인이 집합 행동을 추동
사건개요 잡지사 설문이 비판 받자 편집장을 신성모독죄로
유죄 판결
기독교도인 아혹의 연설에 대해 신성모독죄 2년형
선고
살레의 언행에 대한 법원 판결에 무슬림들이
불복하여 폭동 일으킴
사건패턴 정부가 무슬림 세력의 불만을 법적 절차로 해소 지역적 수준의 문제
종교 외적 요인 정권에 대한 불만 정치적 불만 지역수준의 갈등
© DIVERSE+ASIA.

첫 번째 사례는 잡지사 모니터(Moniter)와 관련되었다. 1990년 모니터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간단한 설문을 진행했고, 무함마드가 11위에, 모니터 편집장이 10위에 자리매김한 결과를 가감 없이 보도했다. 이에 분노한 무슬림의 집단적 시위와 주요 이슬람 단체의 항의가 지속되자 이러한 움직임이 대중 정치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한 정부는 서둘러 잡지사를 폐간하고 편집장을 신성모독죄로 기소하여 유죄 판결을 얻어냈다(김형준, 2001: 173-176).

이 사례는 신성모독죄와 관련된 하나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이슬람과 관련되어 주류 무슬림 세력의 공분을 살만한 상황이 발생하여 비판과 시위가 격화되면 이에 굴복한 정부가 법적 절차를 통해 이들의 불만을 해소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된다.

2000년대 들어 집단적 힘에 의존한 무슬림의 대응은 보다 조직적이고 폭력적으로 전환되었고, 그 중심에는 ‘이슬람수호자전선’(FPI)과 같은 급진 단체가 있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이단으로 간주되었지만 활동을 지속하던 아흐마디야(Ahmmadiyah), 시아(Shia) 추종자들의 거주지를 공격하고 그들을 다른 지역으로 쫓아버리는 폭거를 자행했다. 오랫동안 비판 받아온 집단이라는 이유로 인해 중도보수적 성향의 이슬람 단체가 침묵하자 정부는 적극적인 행보를 펼칠 수 있었다. 1965년 대통령령 2조 1항에 따라 종교부와 내무부, 검찰청 명의로 아흐마디야의 교리 확산을 금지하는 훈령이 2008년 발표되었다. 대통령령 2조 2항이 적용되지는 않아서 아흐마디야 집단의 자체적 활동은 금지되지 않았다(Detiknews 2008).

신성모독죄 적용의 또 다른 유형은 메일리아나 사건과 같이 지역적 수준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를 예시할 사례는 살레(Saleh)라는 무슬림에 대한 처벌이었다. 동부 자바의 한 마을에서 모스크를 관리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던 살레는 자신의 이웃이자 친척이며 사설 종교기관을 운영하는 자이니(Zaini)에게 알라가 보통의 인간일 뿐이며 이 지역에서 존경받던 종교지도자가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분개한 자이니는 살레의 언행을 주변에 퍼뜨림과 동시에 이슬람 단체 엔우(Nahdlatul Ulama: NU) 지부에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요구했다.

엔우는 이 사건이 엄중하지 않은 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신성모독죄 적용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굴하지 않은 자이니가 살레를 고발하여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마지막 공판에서 참극이 발생했다. 5년형이라는 선고에 대해 재판을 참관하던 수 천명의 무슬림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이들은 사형을 요구하며 평소 불만의 대상이던 주변 기독교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수십 개의 교회와 성당이 불타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후에야 폭동은 잠잠해질 수 있었다(Mudzakkir, 2010: 122-129).

사건의 명확한 사실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이니라는 인물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사건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보인다. 살레에 대한 그의 악감정은 사건의 촉발 요인인 듯하다. 자신의 견해가 다른 종교지도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대중적 힘을 과시하려 했고, 이를 위해 신성모독죄라는 수단을 이용했다.

신성모독죄의 주요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두 사례의[4] 공통점은 대중의 집합적 행동이다. 이를 통해 문제가 공론화되면 경찰과 검찰은 기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집합적 힘이 작동하는 상황에서의 무죄판결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결과이다. 이와 함께 고려되어야 할 측면은 종교 외적 요인의 중요성이다.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교리 문제는 촉발 요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종교 외적 요인이 집합 행동을 가속할 핵심적 힘으로 기능한다. 아혹 사건에서처럼 정치적 불만이, 메일리아나 사건에서처럼 종족적, 경제적 불만이, 모니터 사건에서처럼 정권에 대한 불만이, 살레 사건에서처럼 지역수준의 갈등이 집합 행동을 추동했다. 신성모독법이 내포한 애매모호함은 종교 외적 불만이 종교를 매개로 하여 분출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

 

종교 자유와 종교적 관용

기존의 주도적 패턴과 많은 유사성을 갖지만 아혹과 메일리아나 사건은 그 주인공이 비무슬림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사건은 이슬람화의 진전에 따라 이슬람식 시각을 체화한 무슬림이 증가하고 급진적 무슬림 세력의 활동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않은 채 전개되는 상황에서 종교도간, 특히 기독교도에 대한 무슬림의 불만이 표출될 또 다른 통로로 신성모독이 부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 사건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그 전개 과정에서 일정한 차이가 나타났음을 간과할 수 없다. 아혹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부재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는 인도네시아 무슬림 사회에서 주변적 위치에 놓인 인물이나 단체에 의해 제기되었다. 메일리아나 사건의 경우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사건이 공론화된 후 유수프 깔라(Yusuf Kalla) 부통령은 판결의 적절성에 의문을 표했다. 모스크의 마이크 소리에 대한 불만은 있을 법한 일로 이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가혹하다는 것이다. 종교부장관 역시 유사한 견해를 제시하며 메일리아나의 행동이 신성모독법과 직접 연관되지 않음을 주장했다. 몇몇 국회의원 역시 법원의 판결에 반대하는 태도를 밝혔다.

최대 이슬람 단체인 엔우 소속 유력 지도자들 역시 동일한 의견을 표명했다. 엔우의 입장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의견은 엔우 전체의 입장인 양 미디어에 보도되었다. 제2의 이슬람 단체인 무함마디야(Muhammadiyah)의 회장은 법원 판결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함과 동시에 판결이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거론함으로써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려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Putri et al. 2018; Voa Indonesia 2018)

무슬림의 집합적 행동이 초래한 법적 판단에 대해 고위 관료와 국회의원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들의 입장표명이 용이했던 이유는 사건의 도화선이 된 행위가 신성모독법 상의 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들은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은 채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고[5] 이들의 시각이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음에도 무슬림의 집합적 행동에 대해 반대 의견이 제기되고 공감될 수 있었다는 사실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다. 이는 보수적, 극단적 세력의 집단행동에 대한 이전의 호의적 혹은 방관자적 태도와는 차이 나는 것으로서 인도네시아 사회의 급진화라는 흐름에서 일정 정도 벗어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앞으로 열리게 될 메일리아나 사건의 항소심 공판은 인도네시아 사회의 종교적 관용도, 중도적 이슬람 세력의 영향력 등을 검토하기 위한 유용한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첫 재판과 동일한 판결이 나올 경우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제기한 인물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상이한 결과가 제시될 경우 급진적, 보수적 이슬람 세력의 어떻게 반응할지의 문제는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현재적 상황, 종교도간 관계, 종교적 관용을 검토하기 위한 중요한 지시계로 작동할 것이다.

 

저자소개

김형준(hjunkim@kangwon.ac.kr)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도네시아의 사회문화적 변화, 이슬람, 이슬람 경제 등을 연구해왔으며, 인도네시아 이슬람 단체 무함마디야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슬람과 민주주의에 관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최근 저술로는 『히잡은 패션이다: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의 미에 대한 생각과 실천』 (2018, 서해문집), Revolusi Perilaku Keagamaan di Pedesaan Yogyakarta (2017, Suara Muhammadiyah)이 있다.

 


[1] “보도자료: 성체 모독과 훼손 사건에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 2018년 7월 11일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300&bid=13013435&page=1&key=&keyword=&cat=

[2] “믿는자들이여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그리고 보호자로서 택하지 말라”라는 내용이 포함된 알 마이다 51절은 때로 非무슬림을 지도자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으로 해석되었고, 선거에서 비무슬림 후보에게 투표하지 말아야 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확대해석되기도 했다. 무슬림이 자신에게 투표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한 아혹은 그 이유로 알 마이다 51절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제시하는 집단에 속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알 마이다 51절을 이용하여 [여러분을] 기만해서’라는 표현에서 ‘이용하여’라는 단어를 삭제한 내용이 SNS를 통해 유포되었는데, 이로 인해 ‘알 마이다 51절에 속아서’라는 식으로 아혹의 의도가 왜곡되어 전달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이용하여’라는 단어를 생략한 채 아혹의 연설문을 유포했던 사람은 이후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3] 대통령령은 인도네시아어로 Penetapan Presiden Republik Indonesia Nomor 1/PNPS Tahun 1965 tentang Pencegahan Penyalahgunaan dan/atau Penodaan Agama이다.

[4] 신성모독법 적용의 또 다른 패턴은 주류 해석과 차이 나는 주장을 한 인물이 주위 사람에 의해 고소되는 것이다. 이 경우 법원 공판을 통해 대중적 소요 없이 조용하게 일이 마무리된다.

[5] 외부인과 일부 무슬림에게 사소한 것처럼 비추어질 수 있는 이 문제는 특정 무슬림 집단, 특히 기독교도의 불법적 선교로 인해 기독교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에 익숙한 무슬림에게 있어 사소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는 종교도간 화합 유지를 위한 최적의 방식으로 불간섭이 요구되었다는 점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이들이 거론하는 불간섭을 극단화하여 설명할 경우 이는 종교 활동, 나아가 일상 활동의 분리를 지시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메일리아나의 행위는 종교도간 화합을 뒷받침하는 기본 원칙을 깨고 다른 종교의 활동에 간섭한 것으로서, 표면적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중한 위반 행동을 행한 것이라 평가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형준. 1997. “종교 자유에 대한 변화하는 해석: 인도네시아의 사례.” 동남아시아연구 5권, 3-23.
    ______. 2001. “인도네시아의 변화하는 이슬람과 국가.” 김영수 외. 『동남아의 종교와 사회』. 151-182. 서울: 오름.
  • Black Diamond. 2016. “Pendapat dan Sikap Keagamaan MUI terhadap Ahok Bukan Fatwa, Benarkah Surat Al Maidah Ayat 51 tentang Pemilihan?" https://www.kompasiana.com/blackdiamond/5826d1a54423bd79346e4821/pendapat-dan-sikap-keagamaan-mui-terhadap-ahok-bukan-fatwa-benarkah-surat-al-maidah-ayat-51-tentang-pemilihan-pemimpin?page=all
  • Damayanti Annisa Ulva. 2018. “ Jalan Panjang Kasus Penistaan Agama Ahok, dari Al Maidah 51 hingga PK.” Okezone News (February 26).
  • Detiknews. 2018. “Ini Dia SKB Pelarangan Ahmadiyah.” Detiknews (June 09).
    Monza Lil Askar. 2018. “Ini Kronologi Kasus Penistaan Agama Meiliana di Tanjung Balai.” Tempo (August 23).
  • Mudzakkir. 2010. Tindak Pidana terhadap Agama dalam Kitab Undang-Undang Pidana dan Undang-Undang Nomor 1/PNPS/1965 tentang Pencegahan Penyalahgunaan dan/atau Penodaan Agama. Jakarta: Kementerian Hukum dan Hak Asasi Manusia.
  • Putri Prastiti et al. 2018. “Beda Pendapat Soal Vonis untuk Meiliana.” Detiknews (August 24).
  • Silalahi MRM. 2010. “Protecting The One and Only God: A Human Rights Assessment On Indonesian Blasphemy Law.” MA Thesis, University of Oslo.
  • Voa Indonesia. 2018. “Kasus Meiliana: Menteri Agama hingga Wapres Beri Dukungan di Tengah Pro-Kontra Netizen.” https://www.voaindonesia.com/a/meiliana-penistaan-agama-azan-dukungan-menag-wapres/4541550.html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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