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광(고려대)
올해 초부터 이스라엘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작년 출범한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정부의 사법 체계 정비이다. 사법부를 약화하고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이다. 사법부 정비는 작년 말 출범한 네타냐후 연정에 극우파가 참여하면서 시작된 혼돈이다. 네타냐후는 2019년 뇌물, 사기, 배임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 중이지만 작년 말 리쿠드당 대표로 선거를 이끌었고 이른바 ‘방탄용’ 총선을 치렀다는 비판에도 승리를 거뒀다.
현 이스라엘 우파 연정이 매우 우려되는 것은 극우 정치인이 이끄는 종교 시온주의(religious Zionism) 정당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극우 정당 당수인 ‘오쯔마 예후딧(Otzma Yehudit)’ 당의 이타마르 벤그비르(Itamar Ben-Gvir)는 미 국무부가 1994년 테러 단체로 지정한 극우 유사 파시스트 단체 ‘카흐(Kach)’의 일원이었다. 카흐는 이스라엘 내 아랍인을 축출해야 한다는 아랍인 차별주의와 유대인 순혈주의를 주장한 유사 파시즘을 추종하고 폭력 사용을 정당화해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위험천만한 단체였다. 벤그비르는 현재 카흐의 사상을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카흐를 창설한 극우 인물 메이르 카하네(Meir Kahane) 추모 기념일 행사에 줄곧 참석해 의심을 사곤 했다. 재판 중인 네타냐후가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검찰 수사의 칼날을 무마하기 위해 형법 체계를 바꾸려는 극우당의 시도를 방조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네타냐후와 연대하는 극우파 지도자 베짤렐 스모트리치(Bezalel Smotrich)는 정치 시스템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사기와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모트리치는 이스라엘 사법 체계는 우파 정당과 우파 정치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꼭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극우파는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통과된 법률안을 대법원이 무효화시킬 수 있는 권한에 불만을 가져온 만큼 무효화시킨 법안을 다시 발의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려고 한다. 행정부가 임명할 수 있는 법관인사위원회 위원 숫자를 늘려 대법원에 영향력을 주려고 한다. 게다가 중요한 국가 정책을 심사할 권한을 가진 검찰총장의 권한도 약화하려고 한다. 이들은 소수의 대법원 판사들이 사법 체계를 쥐락펴락하는 것을 고쳐야 민주주의가 회복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극우파들이 제정했지만, 대법원이 무효화시킨 법안들은 문제의 소지가 많았다. 난민과 이주 신청자를 추방하기 전에 무기한 억류하거나, 정통파 유대교인 남성의 군복무 면제, 팔레스타인 사유지에 세운 정착촌을 소급해 합법화하는 법안이었다.
극우파, 사법부 정비를 외치는 목소리를 높이다
이스라엘 내 대법원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었다. 2012년 네타냐후는 사법 체계에 관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사법 체계와 특히 대법원의 수호자로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사법부 수호 정신은 리쿠드당 창당인이며 전 총리였던 메나헴 베긴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달랐고 그의 지도력 아래 사법부는 우익 및 극우 인사들의 반복적인 공격을 받았다. 네타냐후는 2019년 기소된 후 사법부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2020년에 시작된 재판이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네타냐후는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고 있다. 네타냐후가 한때 소중히 여겼던 법체계는 이제 그의 숙적이 되었고, 우파들은 판사들을 네타냐후뿐만 아니라 모든 우파를 무너뜨리기 위해 혈안이 된 좌파라고 낙인찍어 ‘우리’에 대한 ‘악한 그들’의 공격이라는 선악 구도로 몰아갔다. 반(反)법원 캠페인은 때때로 대법원 판결의 혜택을 받는 개인과 부문에서도 예외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법원은 국민과 국민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엘리트주의에 빠진 이기주의 단체로 인식되어 왔다. 2021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법원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41%에 불과했으며, 이는 2022년 말 시행된 설문조사에서 조금 상승해 절반가량인 52%가 신뢰한다고 답했다.
사법부 정비 지지자들은 법원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펼치는 관대한 팔레스타인 관련 정책은 물론 요르단강 서안지구 확장을 제한하는 정책에 신물이 난 자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법원이 중동지역 태생 유대인을 의미하는 스파라딤 출신은 적고 대부분 유럽태생 유대인인 아슈케나지 판사로 구성되었다는 편견이 존재하는 만큼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믿었다. 사법부 정비 지지자 가운데에는 이스라엘이 유대교의 영향 아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으며, 극소수는 신정정치를 꿈꾸기도 한다. 일부 지지자들은 선거에 승리한 정부가 특정 정책을 실행에 옮길 권리가 있으며 재정적 짐이나 부정적인 결과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정부 지지자들은 드디어 집권당이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 의제에 관심을 두고 일을 추진한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반네타냐후 진영의 의원들은 극우파들이 원하는 변화는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며 견제와 균형을 보장하고 있는 사법 체계를 뒤흔들 뿐만 아니라 삼권분립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법부 정비 반대자들은 극우파의 득세는 사법 체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아랍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UAE는 올해 초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성전산에 올라가자 불만의 표시로 네타냐후 총리의 방문을 취소했다. 극우파가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을 대규모로 확장하거나 성전산 내 유대인의 기도를 합법화하는 법률안을 통과시키면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2020년 이스라엘과 수교한 UAE와 모로코와 이집트까지 자극할 수 있다.
미국도 극우파의 득세에 우려를 여러 차례 표명하였다. 이런 소식과 함께 극우파 정치인 벤그비르가 국가안보장관직에 오르고 스모트리치가 재무장관과 국방부 내 정착촌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장관을 겸직하자 미국은 실망과 함께 우려를 표명했다. 벤그비르를 국가안보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미국의 일부 상원의원은 벤그비르 임명이 양국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벤그비르가 올해 초 카흐를 창설한 메이르 카하네 추모식에 참석하자 미 국무부 대변인 네드 프라이스는 “테러리스트 조직의 유산을 추모하는 행위는 혐오스럽다”라며 비판했다. 미국의 유력 유대인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과 미국유대인위원회(American Jewish Committee)도 극우 정치인 벤그비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직설적으로 사법부 정비 계획에 반대 의사를 밝혔으며 네타냐후 총리를 이른 시일 내에 백악관으로 초대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 국내 문제가 대미 관계에도 심한 손상을 준 셈이다.
‘이스라엘 종말의 시작’: 극우파는 사법부를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가?
사법부 정비 계획의 내용 자체가 그 동기를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대법원 법관과 판사를 임명하는 법관인사위원회는 대법원 판사 3명, 변호사 협회 2명, 장관 2명, 의원 2명 총 9명으로 구성되는데 현 정부는 변호사 협회 몫 2명을 법무부 장관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행정부가 총 6명(변호사 협회 2, 장관 2, 의원 2)의 위원을 임명해 사실상 대법원 법관과 법원의 판사 임명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기존에는 대법원 판사 3명이 변호사 협회 2명과 연대해 법관인사위원회에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해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사법부 정비 계획은 또 대법원이 의회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조치를 담고 있다. 현재 대법원은 정부의 법률안이 이스라엘의 13개 기본법, 특히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기본법에 위배될 때 법률안을 무효로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기본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 헌법의 일부가 될 예정이다. 그러나 야리브 레빈(Yariv Levin) 법무부 장관이 발의한 사법부 정비안에는 대법원이 무효로 판결한 법률을 국회의원 과반수(전체 120명 중 61명)의 찬성으로 다시 제정할 수 있는 ‘무효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개정을 원하는 다른 법안은 차장검사가 인선에 참여하고 검찰총장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부처 고문 변호사 대신 자신의 뜻에 맞는 변호사를 부처 장관이 직접 임명할 수 있도록 해 검찰총장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한다. 원래 정부 각 부처의 정책은 고문 변호사의 조언을 구해 법의 통치 안에서 이뤄져야 하며 고문 변호사는 검찰총장과 협의를 통해 조언을 할 수 있다. 사법부 정비가 원안대로 관철되면 이스라엘은 사법부가 독립성을 상실하고 정부가 자의적으로 행동하고 정책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 사법 제도 정비는 온갖 이름으로 제기되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존경받는 아하론 바라크(Aharon Barak) 전 대법원장은 사법 제도 정비를 이스라엘의 멸망을 묘사하는 예언적 표현인 “제3성전 종말의 시작”에 비유했다. “체제변동”과 “정치 쿠데타”라는 명칭은 반대파가 이 사건에 붙인 꼬리표이다. 격변을 주도하고 있는 레빈 장관은 이를 단순히 “개혁”이라고 불렀다. 어떤 정의를 선택하든 레빈의 계획이 실행된다면 단순히 사법 시스템을 정비하고 대법원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정권의 근간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새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기보다는 조직적인 복수처럼 느껴질 정도로 전임 정부의 흔적을 지우는 데 전념하며 잽싸게 움직이고 있다. 사상 최초로 극우 정당과 초정통파 정당이 포함된 정부의 각 장관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레빈 장관이 올해 초 1월 4일에 공개한 사법부 개혁의 시기를 보면 왜 그렇게 급히 추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법부 정비 계획은 대법원이 중동태생 유대인 스파라딤을 대변하는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샤스당(Shas) 대표 아리예 데리(Aryeh Deri)의 보건내무부 장관 임명이 적절한지에 대한 청원 심리를 시작하기 직전에 이루어졌다. 정부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장관인 네타냐후는 데리에게 장관직을 맡겨 임기 동안 가까이 둘 필요가 있다. 연정 합의 조건에 따라 데리는 2년 후 재무부 장관직을 맡게 돼 있지만 불과 1년 반 전 세금 포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심리 전날 대법원을 손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계획된 움직임이었다. 노동당 당수 메라브 미카엘리(Merav Michaeli)는 이를 “마피아와 같은” 행동이라며 비판했다.
사법부 정비, 이스라엘 민주주의를 위협하다
현 정부는 사법부 정비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거버넌스’를 위한 조치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스라엘 시민의 인권과 이미 수십 년 동안 인권침해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점령지 주민들의 인권에 대한 실질적이고 임박한 위험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국민은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사법부 정비가 이루어지면 이스라엘은 이제 동유럽의 일부 구소련권 민주주의 국가와 비슷한 ‘권위주의적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그나마 최악보다 나은 시나리오이다. 미카엘 벤야이르(Michael Ben-Yair) 이스라엘 전 법무장관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반적인 의회 다수파의 독재”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유는 제한되고 정부에 “종속”될 것이고 “국민 절반에 의한, 국민 절반을 위한, 절반의 이해관계자에 의해 운영되는 정부”가 될 것이며 개인과 소수자를 보호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시민, 유대인, 여성, 성소수자, 망명 신청자 등 모든 이스라엘인의 민권은 이번 기본법 개정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대놓고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는 장관과 의원들이 있는 현 정부의 사법부 정비 시도는 재앙이 될 것이다. 집권 세력의 일부가 법에 저촉되는 선상에 있기 때문에 개혁 사법부 정비가 이익 충돌을 일으킬 소지도 있다. 가장 좋은 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로, 그는 부패 혐의로 재판 중이지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의 재판은 측근인 레빈이 계획하고 주도하고 있는 사법 혁명과 동시에 진행 중이다.
전 법무부 장관이자 진보 정당 메레츠 대표를 역임한 요시 베일린(Yossi Beilin)은 특히 ‘무효 조항’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일부 주장과 달리 대법원이 의회 법안을 무효로 한 경우는 지난 20년 동안 22번이었으며, 대부분 평등과 인권의 원칙에 명백히 어긋나는 법 조항을 무효로 하는 데 사용되었다. 베일린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장”이라면서 “계획된 사법부 정비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민주주의의 외관만 남게 될 것입니다”라고 우려했다. 베일린은 사법부 정비가 진행되면 미래의 모든 정부가 이러한 권한을 갖는 것이 편하므로 정비 이전으로 다시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베일린은 “검찰총장이 책임져야 하는 고문 변호사 대신 사법부 정비를 밀어붙이고 있는 레빈 법무부 장관이 제안한 대로 부처의 충성스러운 누군가를 고문 변호사로 임명할 수 있었다면 내 정치 생활이 훨씬 더 편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베일린 전 장관은 최근 몇 년간 언론의 자유가 침해된 폴란드와 헝가리를 비교하면서 이스라엘도 곧 언론사가 다음 정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이스라엘 공영 방송국 ‘칸’을 폐쇄하겠다고 공언한 슐로모 카르히(Shlomo Karhi)를 신임 통신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공영방송 폐쇄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자 결정을 번복했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대법원장을 지낸 아하론 바라크는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한 ‘사법 행동주의’의 체계를 만든 인물이다. 이스라엘 소셜 미디어에서 그는 “큰 사탄”으로, 그의 제자들은 “작은 사탄”으로 불리기도 한다. “큰 사탄”과 “작은 사탄”은 일부 이란인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각각 가리켜 부르는 표현이다. 바라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레빈의 사법부 정비 계획이 자신이 구축한 사법 체계를 수정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레빈은 “우리에게 큰 재앙을 가져왔다”라며 바라크를 비난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바라크는 “나의 처형이 이 격변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총살대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라며 은유적으로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체계의 붕괴가 실제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사법부 정비는 단지 국내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의 점령 기간 국제 법조계에서 인정받는 이스라엘 대법원이 합법과 불법,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모든 도덕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국제 재판소와 기관의 개입을 일절 거부해 왔다. 사법부 정비가 실현되면 이런 주장은 더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게 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스라엘에서 근무한 판사들이 입을 모아 하는 주장은 이스라엘 사법 제도 정비 계획이 사법 독립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들은 “우리는 정부가 제안한 계획을 철회하고 사법 시스템과 법치에 대한 심각한 피해를 막을 것을 촉구합니다”라고 적은 서한을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방종의 정치’로 향하는 이스라엘 극우파
사법부 정비를 둘러싼 지지와 반대의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지만, 중재안 얘기도 들리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은 사법부 정비 내용의 일부만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연기하는 방안이다. 예컨대 정부 정책의 합리성을 심사해 무효로 하는 대법원의 권한을 제한하고 정부 장관이 직접 자신을 대변할 고문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나머지 정비안은 모두 연기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절충안이 제시되고 있다. 사법부 정비 내용을 수용하기 어렵다면 법관 인사 위원회 소속 정치인이 법관 인사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15명의 대법원 법관 중 7명은 별도의 독립적인 기구가 선출하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국가의 모든 정책을 사법부가 심사한다는 비판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법원이 국가의 ‘모든 정책을 합리성에 따라 심사하는’ 사법 행동주의를 축소해 국방이나 안보 문제는 심사하지 않고 순수한 법률문제만 다루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대법원이 무효로 한 법률안이 다시 이스라엘 의회 크네셋을 통과하려면 현재 사법부 정비를 추진 중인 집권당이 원하는 단순 과반수 61명이 아니라 75명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 대안도 논의되고 있다.
현 정부의 사법부 정비의 목적이 무엇인지 추론해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극우파가 주도하며 리쿠드당이 따라가는 형식이지만 사법부 정비는 결국 대법원, 판사와 검찰총장의 방해 없이 이스라엘 사회의 근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방식이 아닌 팔레스타인 주민을 2등 국민으로 만들거나 요르단강 서안 합병을 실현하기 위해 법적 제약을 없애고 그 근거를 만들 수도 있다. 방종의 정치를 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법원의 인기가 낮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보루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좌익과 우익이 번갈아 가며 집권해온 행정부의 극단적인 결정을 막아내는 최후의 방어막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이전 중동 유일의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부하던 이스라엘이 극우화로 가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현 정부가 극우파의 경거망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퇴행일 뿐만 아니라 2020년 체결한 아브라함 협정 이후 불고 있는 역내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이다.
저자소개
성일광(ilkwangs@naver.com)은
고려대 아세아 연구원, 중동·이슬람 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이다. 텔아비브대학에서 중동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대 중동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집트 지식인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최근 논문은 “Revolutionizing the past: representations of the Mamluks in Egyptian school textbooks, 1954–1970,” (Middle Eastern Studies vol.59, Issue 3, 2023, pp. 456-477)가 있다. 저서는『Mamluks in the Modern Egyptian Mind: Changing the Memory of the Mamluks, 1919-1952』(Palgrave Mcmillan, 2017)가 있다.
참고문헌
- Cohen Amichai, Yuval Shany. “No More Legal ‘Gatekeepers’? Plans to Downgrade the Status of Government Legal Advisors in Israel,” Lawfare, Tuesday, February 21, 2023.
https://www.lawfareblog.com/no-more-legal-gatekeepers-plans-downgrade-status-government-legal-advisors-israel - Galili Lily. “Netanyahu government’s judicial ‘regime change’ is good for him, dangerous for Israel,”
https://www.middleeasteye.net/news/israel-netanyahu-judicial-regime-change-good-dangerous - Lurie Guy, Daphne Benvenisty. “The Role of Legal Advisors – Explainer
- From Professional to Political: The Appointment of Legal Advisors,” The Israel Democracy Institute, April 04, 2023.
https://en.idi.org.il/articles/48989 - MEE staff. “Israel’s judicial reforms will ‘destroy’ legal independence say top officials,”
https://www.middleeasteye.net/news/israel-justice-reforms-destroy-legal-independence-letter - Oren Michael. “Judicial reform: Right problem, wrong solution,” The Times of Israel Blog, FEB 12, 2023.
https://blogs.timesofisrael.com/the-proposed-judicial-reform-addresses-the-right-issue-in-the-wrong-way/ - Shalom Jim. “The Continuing Israeli Protests: Perspectives and Challenges,”The Times of Israel Blog, May 21, 2023.
https://blogs.timesofisrael.com/the-continuing-israeli-protests-perspectives-and-challen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