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대중과 교류 40년 : KBS아랍어방송, 아랍한류의 동력

BTS와 슈퍼주니어가 아랍에서 단독 공연을 여는 시대가 되었다. 검은 히잡 쓴 아랍 아미(팬클럽) 수 만 명이 K팝을 떼창하는 세상이다. K팝스타들은 그간 아시아, 동남아, 미주, 유럽까지 가서 공연을 하면서도, 그 발길을 중동까지 내딛지는 못했다. 불안한 중동 정세, 이슬람문화와의 괴리감, 불투명한 시장성 등이 주요인이었다. 그러나 올해 BTS 까지 사우디 공연을 함으로써, 아랍은 이제 한류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이 글은 아랍 한류가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44년간 전파외교사절로서 KBS 아랍어방송의 역할과 한류의 모멘텀을 소개한다. 아랍 대중과의 소통이 내용과 형식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했는지, 향후 어떤 모습으로 관계 맺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현장 종사자의 고민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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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아랍어방송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2015. 5. 29)
출처: KBS 아랍어방송 제공

배정옥 (KBS)

아랍 한류의 장면들

#1 KBS 아랍어방송과 아랍 한류 팬들은 정말 한 번도 보지 못한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의 안방에 앉아서 아랍 한류 팬들은 KBS 아랍어방송에 떼 지어 댓글 청원을 올린다. ‘이번 주 KBS 뮤직 뱅크 라인업에 우리 오빠들 그룹00이 들어 있다, 아랍어방송은 같은 KBS 조직이므로 서둘러 달려가 오빠들을 인터뷰하라’는 식이다. PD조차 미처 확인하지 못한 뮤직뱅크 출연가수 라인업을 그들은 먼 나라 사막 도시 한가운데 앉아 훤히 꿰뚫고 있다.

#2 2019년 2월 어느 날, KBS 라디오 라이브공연 스튜디오. 이라크에서 온 아랍관객들, 한국 가수들, 제작진들로 북적인다. ‘한국-이라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이라크 한류 팬들이 자비로 방한했다. 이라크 청년 ‘무스타파’는 방송도중 즉석에서 일어나 한국 아이돌 밴드그룹이 연주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한참 유행하던 방탄소년단의 ‘페이크러브’(Fake love) 포인트 안무다. ‘제1회 이라크 K팝 페스티벌’ 입상자답게 춤이 제대로다. 한국 가수들과 무스타파는 처음 호흡을 맞추는 것인데도 쿵 짝이 잘 맞는다. 이날 관객은 이라크 한류동호회 (이라크 한국 사랑방(Iraq Korea Sarangbang))회원들이다. 모두들 방탄소년단 안무를 그대로 흉내 내는 무스파타의 춤에 열광하며 함께 들썩인다.

KBS 아랍어방송 공개방송에 참여한 이라크 한류 팬들 (2019. 2.15)
출처: KBS 아랍어방송 제공

바야흐로 아랍 한류 팬들도 국내 청취자들처럼 방송국에 와서 공개방송을 보는 시절이 되었다. 간헐적이지만, 아랍 팬들도 한류스타 라이브 공연을 즐기게 된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같은 부자 나라의 한류 팬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이라크, 수단, 팔레스타인처럼 정치적 상황이 불안한 곳에서도 K팝은 사람들의 가슴을 녹였다. 이라크 같이 멀고 험한 곳에서도 기꺼이 자비를 들여, 복잡한 한국 비자 발급 과정을 인내하며 기어이 ‘사랑하는 오빠들’의 나라에 와 본다.

한국보다 중동에서 더 유명해진 비아이지(B.I.G)와 같은 아이돌그룹도 나오기 시작했다. 팝송, 샹송에 중국, 일본노래를 커버하던 한국 가수들이 이제는 아랍어를 배우고, 아랍의 히트곡을 커버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비아이지 ‘쓰리다캇 (3Daqatt)’, ‘라비자프(La Bezzaf)’, 그룹 써드아이의 ’타지(Taj), 슬레이(Slay)가 그것이다. 이제는 K팝스타들이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찍고’가 아니라, 먼저 ‘아랍 찍고 유럽, 미국, 세계’로 가는 ‘新한류’ 스타 도전 공식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비아이지 KBS아랍어방송 인터뷰장면
출처 : KBS아랍어방송 제공

 

아랍 한류 씨앗은 대중동 아랍어 라디오방송

아랍속담에 “폭우도 비 한 방울로 시작 된다 (‘awal ghayth qatra)”는 말이 있다. 아랍 한류도 그러하다. 오늘날의 규모와 역동성을 띠기까지, 시작은 단촐했다. 중동을 향해 하루 15분 아랍어로 한국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을 열며 씨가 뿌려진 것이다. 거시적으로는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홍보 전략, KBS의 글로벌 전략, 그에 걸 맞는 콘텐츠의 결합이 바탕이 되었다. 그 역사를 간단히 언급해보자.

1973년 10월, 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미국과 중동 국가들 사이에는 정치적 갈등이 빚어졌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대 미국 석유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유가는 치솟았고 석유자원의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동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 시급했다. 한편 유가 급등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부유해지면서 소위 중동 건설 붐이 시작되었다. 많은 건설 인력들이 중동으로 나갔다. 그러나 막상 중동에 진출한 기업과 근로자들은 현장에서 애로가 많았다. 아랍인들의 한국에 대한 턱없이 낮은 인지도 탓이었다. 정부는 국가 홍보와 경제적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으로 아랍어방송 개설을 결정했다. 아랍인을 청취 대상으로, 그들의 언어인 아랍어로,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1975년 9월10일 KBS에 아랍어방송을 개설했다. 이로써 아랍대중들의 가슴에 닿을 ‘소리 길’이 열린 것이다.

 

아랍 한류의 시작은 <겨울연가>이집트 지상파 방영

2000년대 초반까지도 아랍어 방송의 한국 홍보노력의 결과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 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계기가 찾아왔다. 바로 드라마 KBS 드라마<겨울연가>의 이집트 방영이었다. 아랍어 사용국가가 22개국이다. 그 중 왜 한국 방송은 이집트 시청자를 먼저 공략했을까? 그것은 이집트가 중동의 문화예술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 카메라 겸 영사기를 처음 만들었는데, 이집트는 바로 그 다음해인 1896년부터 이를 들여와서 영화산업을 시작한 곳이다. 그 만큼 영화 드라마 콘텐츠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중동에서 영화, 드라마 제작자, 연예인이 중동 시장을 석권하고 싶다면 일단 이집트 시장에서 호평을 받아야 한다. 마치 헐리우드 영화가 아시아 시장 성공을 위해 일단 수준 높은 한국 시장을 먼저 노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겨울연가>의 이집트 방영은 당시 KBS의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었다. KBS는 2003년 7월, ‘KBS월드 TV’를 출범시킨 후 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에서의 <겨울연가> 성공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마침내 2004년 5월, KBS는 이집트 국영방송사(ERTU)와 한국 드라마 방영에 합의하면서, 중동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때마침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중동에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제고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대량살상무기(WMD) 제조를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하였다. 당시 높은 파병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파병을 결정했다. 아랍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연이어 2004년 6월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랍된 한국 군납업체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이 피살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과 아랍간의 상호이해증진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했다. 2005년은 외교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해였다. 정부는 ‘겨울연가’ 이집트 방영을 한국-이집트 수교 10주년 사업으로 적극 지원하였다. 여러모로 한국 콘텐츠가 중동시장으로 진출하기에 적절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겨울연가>는 2005년 1월, 이집트 국영방송(ERTU) 채널2로 저녁 8시 황금시간대에 총 20여회 분량으로 방송되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집트 신문에 보도된 겨울연가 방영 소식
출처 : 이집트 최대 일간지 ‘알아흐람’ (2004.5.17)
불씨를 살리자! 아랍 한류 확산을 위하여..!

<겨울연가>방영은 KBS 아랍어방송 제작진과 청취자간에 소통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겨울연가>방영 전에는 아랍 청취자 피드백은 대체로 느리고, 활기도 없었다. 소극적인 신청곡 사연이나, KBS가 낸 퀴즈 문제에 정답을 보내오는 엽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겨울연가> 방영 이후 아랍 세계의 호응은 실감나는 것이었다. KBS 아랍어방송 제작진은 모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청취자들의 격한 반응에, 한류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드라마 ‘겨울연가’ 아랍어 홈페이지 (2005.1.)
출처 : KBS 아랍어방송 제공

서둘러 <겨울연가> 아랍어판 특별사이트를 제작했다. 현지 팬들의 뜨거운 호응을 담을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 사이트에는 드라마, 출연자 소개, 포토, 제작 뒷얘기를 아랍어로 제공했고, 청취자 게시판에는 아랍 시청자들의 감상문을 등록할 수 있게 했다. 아랍 팬들은 KBS사장과 드라마 주인공(최지우, 배용준) 앞으로 게시판에 편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또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좀 더 알고 문화교류를 했으면 좋겠다”, “아랍어 홈페이지를 마련해 줘서 감사하다”, 더 많은 한국 드라마와 문화가 소개되기를 바란다” 등의 반응을 올리며,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머니투데이스타뉴스,2005).

곧이어 한류 관련 기획도 늘렸다. 중동에서 방영되는 한국드라마 OST 음악의 선곡 횟수를 늘리고, 한국 연예계 뉴스를 확대했다. 또한 한국어 강좌프로그램도 확대 편성했다. 청취자들의 한국어 배우기가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아랍어로 된 교재와 CD를 제작하여 아랍 현지까지 무료로 보내주었다. CD시대 이후에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교재를 제공했다. 지금은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어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드라마 한국어>를 편성하여 소구력을 높이고 있다. 한류의 주된 흐름이 드라마에서 K팝으로 옮겨가자, K팝 전용 채널을 추가 편성해, 청취자들이 K팝에 흠뻑 빠져들도록 했다.

아랍한류는 ’99도씨까지 잠잠하던 물이 100도씨에서 끓어 넘치 듯’, 그동안 보이지 않는 숱한 1도의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아랍 한류’열풍으로 터진 것이다. 아랍한류는 어찌 보면 정체된 아랍의 사회 문화 환경에 대한 반작용이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욕구와 그에 대한 적절한 화답의 결과인 것이다. 제작진은 문화를 전파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며, 한국문화에 대한 아랍인의 수요에 대응하고, 또 그 관심과 호응이 우리 문화의 보다 높은 차원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고민했다.

드라마로 그 가능성이 확인된 중동한류는, 곧이어 K팝, 예능프로그램, 케이뷰티, 음식, 의료, 관광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2019년 현재 아랍 한류는 한창 진행형이다.

중동한류지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DIVERSE+ASIA

 

아랍대중과의 콘텐츠, 매체, 소통 방식의 변천 과정

KBS 아랍어방송의 매체, 콘텐츠, 아랍 청취자들과의 소통방식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처음에는 중동을 향해 하루 15분 한국뉴스를 단파로 송신했다. 미미한 시작이었다. 이후 단파에만 의존하던 매체전략이 다양해졌다. 1997년부터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고 곧 이어RSS(Really Simple Syndication)와 팟캐스트를 추가했다. 또 위성 라디오(WRN: World Radio Network)시스템을 도입하고, 페이스북, 트위터,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각종 소셜미디어로 플랫폼을 확장했다.

콘텐츠도 확대했다. 일일 15분짜리 뉴스는 1995년부터 정규 1시간 방송으로 확대되었다. 단순 한국 뉴스채널이 주당 총 13개의 뉴스, 교양, 오락을 포괄하는 종합편성채널로 바뀌었다. 내용도 다변화되었다. 세계인의 관심사인 북한이슈는 물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한국어, 한국문학, K팝을 다루는 광범위한 프로그램으로 확대됐다.

아이돌 GOT7이 KBS 아랍어방송에 출연하여 게임을 하는 모습 (2016. 4.15)
출처: KBS 아랍어방송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arabickbs/photos/a.1099185113479941/1099185130146606/?type=3&theater)

타깃 청취층도 이원화했다. 라디오는 보도, 문화, 심층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을 주로 편성했다. 아랍 남성들과 현지 사회의 오피니언 층이 주청취자임을 감안한 것이다. 반면 소셜미디어는 <K팝 스타 인터뷰>를 비롯한 소프트한 한류 콘텐츠를 집중 편성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KBS 아랍어방송은 이제 중동의 대표적 한국 전문 채널로 뿌리를 내렸다.

KBS 아랍어방송에 출연하여 이집트의 투자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는 모하메드 마이트 이집트 재무장관 (2019.3. 8)
출처: KBS 아랍어방송 공식 사이트 (http://world.kbs.co.kr/service/contents_view.htm?lang=a&menu_cate=people&id=&board_seq=359398&page=3)
소통의 질적 양적 변화

과거에는 한국의 아랍어 방송을 통해 아랍에 한국문화를 이식하고 이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 양태를 살폈다면 이제는 상호 소통의 시대가 되었다. 제작과정에 청취자의 의견이 즉각 반영되고, 제작자의 감과 일방적인 판단에 근거한 기획물이 차츰 지양되고 있다. 이제는 확실한 피드백과 계량화된 데이터 수치를 근거로 수용자의 선호도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소통 메시지의 전달 시간이 획기적으로 준 사실도 놀라운 변화다.

KBS 아랍어방송 인스타그램 계정은 약 13,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출처: KBS 아랍어방송 인스타그램 계정 (https://instagram.com/kbs_world_arabic?igshid=l9uxp5fb9ulb)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방송 2,3개월 후에나 청취자 답신이 도착했다. 간간이 신청곡 주문과 사연, 지난 방송에 대한 피드백이 왔지만, 제작자와 청취자 간의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힘들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제작진은 방송을 이용해 쌍방향 소통을 시도했다. 다만 시간이 걸렸다. 최소 한 달 전에 다음 방송 주제를 사전 홍보하고, 한 달 후에나 그 주제에 대해 청취자들이 보내온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는 식이었다. ‘나드와툴 무스타미인 Nadwat Al-Mustame’en(청취자 포럼)’이라는 제목의 청취자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그 덕에 늘 인기였고,15년 이상 장수했다

이제는 소셜미디어의 발전 덕분에 아랍대중들과도 곧바로 소통하는 세상이 되었다. 페이스북에 ‘00에 대한 생각?’을 묻고, 올라오는 댓글을 모아 바로 방송한다. 2017년부터는 SNS 라이브 방송도 시작했으니, 이제는 그야말로 실시간 소통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아랍 한류 팬들의 충성도는 각별하다. 중동 지역과의 시차는 5시간(사우디)에서 9시간(모로코)이 난다. 한국에서 종종 라이브를 실시하는 금요일 오후 1시는 현지시간 새벽 서너시다. 아랍 팬들은 밤을 꼬박 새우며, 기꺼이 K팝 스타의 실시간 인터뷰를 기다린다. 실시간으로 ‘하트’와 ‘좋아요!’, 각종 질문과 댓글이 부지기수로 올라온다. 방송 중에 운 좋게 한류스타와 국제전화라도 연결되면 환호성을 내지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K팝을 부르고, 서툰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한다. 아랍어방송이 한류스타와 한류 팬들의 직접 소통 공간이 된 것이다. BTS와 슈퍼주니어도 이 공간에서 아랍 팬들에게 현지공연을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좌) KBS아랍어방송 ‘청취자 일일 MC’ (오른쪽 세번째)가 슈퍼주니어를 인터뷰하고 있다.(2010.10.03.)
출처 : 국민일보(2010.10.03)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4177374
(우) 슈퍼주니어 첫 사우디 콘서트 현장
출처 : 블로그 둘라의 아랍이야기 (2019.7.14.)
(https://www.dullahbank.com/m/1392)

피드백 형식도 변했다. 중동의 인터넷 보급이 빨라질수록 ‘엽서와 손 편지’라는 ‘아름다운 풍습’은 급속히 사라졌다. 1990년대 말까지 많게는 월 평균 4,5백 통이던 손 편지는 이제는 희귀한 일이 되었다. 경제성장이 더딘 리비아, 알제리, 예멘에서는 아직도 가끔 손 편지가 온다. 그러나 편지와 엽서가 이메일과 댓글로 대체된 지 오래다. 소셜미디어로 플랫폼이 확장된 뒤로는 출연하는 스타의 지명도에 따라 수백, 수천, 수 만개의 댓글로 바뀌었다.

청취자들의 세대교체에 따른 반응 방식의 변화도 흥미롭다. 구세대 아랍 청취자들은 방송국에 편지를 보낼 때, ‘전형적인 인사치레’와, ‘가능한 한 좋은 말’로, ‘감정은 예쁘게 포장’하는 행태를 보이곤 했다. 솔직한 피드백을 받아 방송의 질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답답한 시절이었다. 아랍 신세대 청취자들은 다르다. 즉각적이고, 과감하고, 비판적이고, 솔직하다. 아랍에서도 세대차가 극명하다.

‘청취자’라는 단어로 한정되었던 아랍대중은, 이제는 아랍어로 된 한국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로, 소셜 미디어 방송 ‘시청자’로, 라이브 공연 ‘청중’으로 다각화 되었다. 세월의 흐름만큼 더 가까이, 더 친밀하게, 더 빨리 소통하게 되었다.

 

아랍인 취향과 선호 콘텐츠

아랍 한류 확산을 측면 지원하는데 유용한 콘텐츠는 어떤 것일까? 아랍청취자들, 네티즌들의 독특한 취향과 선호 콘텐츠는 무엇일까? 어떤 콘텐츠가 확산을 불러오는지 세심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SNS 사용자들이 한류콘텐츠를 공유하고 자신의 연결 관계를 통해 더욱 확산시키는 핵심 원인을 파악해야한다. KBS 아랍어방송은 2011년에 페이스북 유튜브 채널을 나란히 개설했다. 그동안의 게시물에 대한 아랍인들의 피드백은 일정한 패턴을 나타낸다. 따라서 대략이나마 아랍인들의 콘텐츠 선호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K팝 스타들이 한류 확산에 가장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아랍인들은 이슬람과 자국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높음을 피드백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인류 보편적 미담과 자기계발, 미래 산업에 관련된 주제들도 관심이 높다. 아래는 아랍어방송 페이스북 포스팅 중 인기 콘텐츠 (도달률1만 명이상)를 예와 함께 정리한 도표이다.

아랍어방송 페이스북 인기 콘텐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콘텐츠의 경계를 스스로 너무 좁은 범위- 예를 들면 한국문화 홍보-로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디지털 콘텐츠는 경계가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일방적인 문화전파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넓게는 한국 사회, 좁게는 한국의 KBS가 아랍 이슬람문화도 관심 있게 다뤄줄 때, 아랍 대중은 한국 문화에 더 활발히 호응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 있을 때, 문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그동안 방송의 성공여부는 오직 콘텐츠의 질이 결정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하지만 플랫폼의 변화와 함께, 이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게시물에 수백 개 의 댓글이 붙는 현상, 그 이유에 주목해야했다.

 

혐오 콘텐츠에 적극 대응하는 아랍 대중들

방송을 제작함에 있어서 수용자가 긴밀히 반응하는 콘텐츠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혐오콘텐츠 생산에 주의하여 관계 악화를 방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아랍대중은 이슬람 문화를 왜곡하는 콘텐츠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고 격렬하다. 2017년,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가 그 예이다. 이 드라마는 이슬람 사회를 왜곡한 장면들이 여과 없이 내보냈다. 주인공이 코란에 발을 올리고, 히잡 쓴 여성이 비키니 차림을 하고, 아랍 백작으로 상징되는 인물이 술을 마시는 장면은 아랍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금기이자 비현실적 설정이다.

아랍어방송 제작진은, 이 드라마가 이슬람권 전체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 되어, 국내언론이 다루기 전부터 아랍권 네티즌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감지하고 있었다. #JusticeForIslam, #theManWhoDieto Live #죽어야사는남자 등의 해시태그가 붙은 댓글들이 아랍어방송 페이스북 댓글 창을 도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아랍어방송에도 불똥이 튀었다. 당시 아랍어방송 가요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무슬림 DJ가 문제였다. 시청자들은 그의 하차를 요구했다. 그가 <죽어야 사는 남자>에 잠깐 조연으로 출연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아랍인들은 무슬림이 그 드라마에 출연하고도, 그런 문제적 장면을 그냥 넘어간 데 대해 공분했다. 제작진은 할 수 없이 그의 출연을 잠정 중단시켜야했다. MBC 드라마에 대한 거센 비난은 아랍권은 물론 동남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이슬람권 시청자들로 확대되었다. 결국 MBC가 이슬람권 시청자들에게 영어, 한국어, 아랍어로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문제 장면을 다시보기영상에서 삭제하고서야 잠잠해졌다.

논란이 있었던 제6회 아랍영화제 포스터
출처: 아랍영화제 홈페이지 (http://www.arabfestival.or.kr/)

2017년 한국-아랍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아랍영화제 포스터의 경우도 그랬다. 사막을 연상시키는 노란색 바탕에, 보라색 선글라스가 씌워진 낙타의 모습이 문제였다. 영화제 홍보포스터를 게재하자마자, 아랍인들은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직도 사막에 사는 줄 아는 모양임 ㅠㅠ’, ‘ 낙타에 선글라스?!, 미개한 우리가 드디어 문명화되었다는 의미?!’ 라는 반응이 주였다. 이 포스터가 아랍을 미개사회로 조롱하고 있다고 반응했다. 비교적 온건한 아랍 동료들도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결국 포스터 제작 책임기관인 <한국 아랍소사이어티> 사무총장이 아랍어 방송에 출연하여, 아랍시청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면서 일은 마무리되었다.

 

아랍한류의 소박한 결실

KBS 아랍어방송은 올 8월초에 유튜브 본사로 부터 ‘실버플레이 버튼’과 축전을 받았다. 구독자 10만 돌파를 인증 받은 것이다. KBS에서 외국어 방송 유튜브 채널이 10만 명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아랍어 방송의 기본 매체가 ‘라디오’이고, 방송 시간의 한계가 있다는 점, 유튜브는 부가 서비스여서 업로드 간격이 긴 점, 국내의 부족한 아랍어 제작 리소스 현실 등을 고려할 때, 이 수치는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KBS 아랍어방송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실버버튼(10만 구독자) 언박싱 영상
출처: KBS 아랍어방송 유튜브 채널
(아래 주소를 누르시면 실버버튼 언박싱 영상을 볼 수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DWd4Gq8S7jY)

게다가 지난 4월, 이미 페이스북 팔로워도 10만 명을 돌파했다. 구독자와 팔로워를 분석해보면 페이스북은 아랍 남성, 오피니언 계층, 아랍어방송 애청자 위주다. 유튜브는 10대, 20대, 여성, 젊은 층이 주 이용자다. 따라서 이들 플랫폼의 10만 달성은 아랍권 청장년층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한류의 영역 확대를 위한 탄탄한 지지대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KBS 아랍어방송 페이스북 10만 돌파 페이지
출처 : KBS아랍어방송 페이스북 페이지
경계 너머 확장을 위하여

아랍어 방송의 경계와 지향은 어디까지이고, 어디를 향해야 하는 것일까? 소셜미디어 신규 구독자층은 기존에 일방적으로 확정해둔 청취층의 경계를 다시 고민하게 한다. 콘텐츠의 경계, 기획자의 사고의 경계까지. 그들 중에는 말(아랍어)이 통하지 않음에도 꾸준히 ‘좋아요!’를 누르고, ‘구독’하며, 지속적으로 댓글을 다는 이들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KBS에 아랍어방송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10만 명이 될까? KBS가 아랍어 유튜브 구독자가 10만 명을 갖게 되었으니, 이제 중동에 친한파 10만 명은 확보한 셈이다. 아랍어만 보더라도 공용어 사용 인구가 4억여 명이고, 세계 인구의 5분의 1(14억 명)이 매일 아랍어로 예배를 보고, 아랍어로 된 코란을 낭송하는 이슬람권 사람들이다. 예비 구독자와 팔로워의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사와 연결고리를 찾아내어 이를 활용하고 관리 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채널 영향력 확대와 한류확산의 지속을 가능케 할 핵심 요인이다. 중동지역의 숱한 정보 중 어떤 데이터를 연결해야 수용자 맞춤형 콘텐츠와 최적의 매체 전략 수립이 가능할까? AI시대가 도래했으니 성우가 더빙하는 인서트와 스트레이트 뉴스는 이제 AI아나운서로 대체해도 되지 않을까? 백화점식 콘텐츠 나열이 아니라, ‘연결의 확장성에 방점을 둔 킬러콘텐츠에 제한된 리소스를 집중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한류의 지속을 속단할 수 없고, 빠르게 변화해온 아랍 청취자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문화의 해외전파’라는 전파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은 지속될 것이다. 이제는 한국문화의 일방적 전파가 아닌 아랍 문화와 한국문화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 개발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KBS아랍어방송의 제작진들은 지금도 새로운 방향을 향해 건설적인 논쟁 중에 있다.

 

저자소개

배정옥 (lulua@kbs.co.kr)
KBS국제방송국 아랍어방송 피디이다. 한국외대 아랍어과를 졸업, 동 대학교 통역대학원 한아과에서 석사, 영국 런던대 SOAS에서 중동지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참고문헌

  • 이규창. 2005. “‘겨울 연가’ 아랍팬, KBS 사장, 배용준 최지우에 장문의 편지”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0007391
  • 이규창. 2005. “겨울연가’ KBS 아랍어 홈페이지, ‘한류 전도사’역할”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0006942
  • 조정일. 2019. “써드아이, 아랍 유명 곡 커버 공개 “직접 아랍어 레슨까지 받아”,
    https://cjknews.com/m/content/view.html?&section=87&no=2378&category=101
  • 황지영. 2019. “비아이지, 아랍 新한류 이끈다…청와대 공식 오찬 초청” 일간스포츠(6월27일)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3508397&cloc=
  • KBS 아랍어방송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arabickbs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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