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창의융합학부)
태국은 2014년 5월 쿠데타 이후 아직도 군사통치 하에 놓여있으며, 2017년 만들어진 새 헌법은 군사통치를 제도화하고 있다. 군사통치의 장기화와 정치개입의 제도화,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가혹한 탄압 등의 움직임은 새로 즉위한 국왕의 왕권 강화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반대세력의 결집현상이 차츰 나타나고 있는 데 가장 중요한 촉발요인은 총선연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2108년 11월 치르겠다고 약속한 총선은 2019년 2월까지로 다시 연기되었지만 이마저도 확실하지가 않다. 이 글에서는 쿠데타 후 지금까지 태국의 전반적인 정세를 살펴보고,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총선정국을 예측해보려고 한다.
군부의 지속적 정치개입 제도화 시도
2014년 5월 22일 쿠데타 후 군부의 지속적 정치개입을 위한 제도화가 시도되고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평화유지위원회(NCPO: National Council for Peace and Order) 는 아직도 활동 중이다. 동 위원회는 위원장인 쁘라윳 짠오차 총리(2014년 쿠데타 당시 육군사령관)를 비롯해 최고사령관, 육군사령관, 해군사령관, 공군사령관, 경찰청장 등을 포함해 모두 8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13개 정부 부처의 장관을 포함해서 국가 주요부서의 총책임자로도 임명되어 있다. 위원회의 사무총장은 육군사령관이 맡고 있다. 또한 기존의 상‧하원 역할을 대신하는 과도의회인 국가입법회의(NLA) 의원은 25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과반수이상이 전·현직 군인 출신이다.
쿠데타 후 만들어진 임시헌법 44조는 NCPO 위원장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했다. 국가질서와 안보, 왕실에 위협을 가하는 일체의 행동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이 위원장인 쁘라윳 총리 1인에게 있다. 5명 이상의 정치집회를 금지시키고, 영장 없이 7일간 구금할 수 있으며, 유언비어 유포라는 명목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군사법정도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니 사실상 계엄령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총선이 실시되고 민간정부가 발족한 후에도 지금과 비슷한 정치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2016년 8월 7일 국민투표를 통과한 새 헌법은 총선 후에도 군부가 정치에 깊이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부여함으로써 향후 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새 헌법은 2006년 쿠데타 후 개정된 2007년 헌법보다 더욱 비민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완전한 문민통치가 복원되기까지 잠정적으로 5년 동안의 과도기를 인정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원 관련 조항이다. 상원은 모두 20개 직능단체로부터 200명을 간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과도기 동안에는 상원을 250명으로 정하되, 244명은 NCPO가 선발위원회를 통해서 임명하게 되는데, 이 중 194명은 직접 임명하고, 50명은 20개 직능단체에서 간접 선출된 후보자군에서 선발하게 된다. 나머지 6명은 군 최고사령관과 육·해·공군사령관, 국방담당 사무차관, 경찰청장 등의 군부 지도부이다. 또한 상원의 권한을 강화해 정부 통제, 감시, 조언 기능을 부여했으며, 내각으로 하여금 3개월마다 상원에게 개혁 작업을 보고하도록 규정했다.
총리 선출과 관련해서도 상원은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원에서 적어도 5% 이상 의석(하원 전체 의석수 500석)을 얻은 각 정당은 3명의 총리 후보를 추천할 수 있으며 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총리를 선출한다. 하지만 5년 과도기 동안에는 어떤 후보도 하원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하는 경우, 상원과 합동회의를 개최해 양원 과반수 찬성으로 원외 인사를 총리로 선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내용은 2000년대 들어 치러진 모든 선거를 휩쓴 탁씬 계열 정당추천 총리 후보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원외로부터 비선출 의원을 총리에 임명한 제도는 1992년 5월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이래 사라졌던 제도이다.
결국 새 헌법은 민정이양 후에도 5년간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명문화하면서, 군부의 권력 유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새 헌법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강화해 행정부를 과도하게 견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통치불능 상태에 빠져 국가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하원의장, 야당대표, 상원의장, 총리, 대법원장, 최고행정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준사법적 독립기구의 장들을 소집해서 위기해결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뿐 만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 반부패위원회, 금융감독원 같은 준사법적 독립기구에게 정부정책이 국가에 피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경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으며, 정부가 그 경고를 무시해 후일 손해가 초래됐을 때는 법에 따라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한편, 사회 경제 발전에 관한 “20년 국가 전략”법안이 NLA에서 심의 중에 있는데, 빠르면 2018년 5월 내각에 제출 해 7월부터는 실행될 예정이다. “20년 국가 전략”은 5년마다 조정이 가능하며, 유사시는 즉각적으로도 수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차기정부가 이 법안을 따르지 않을 경우 국가전략위원회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반부패위원회에 고발할 수 있다. 국가전략위원회는 6개의 소위원회(안보, 국가경쟁력, 인적자원개발, 사회평등, 환경, 공적영역 관리)로 구성되며 위원들의 임기는 5년이다. 동 위원회는 정부 위 옥상옥의 기구로서 차기 정부의 운신의 폭을 크게 좁혀놓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년차 보고서에서 2014년 쿠데타 후 태국 상황을 “자유 없는 국가”로 평가하고 있다. 태국의 전반적인 프리덤 스코어는 100점 만점 중 31점이다.특히 정치적 권리에 대한 점수가 낮았고, 새 헌법이 친군부적이며 정당정치를 약화시킨다고 평가하고 있다. 선출되지 않는 NCPO와 NLA의 정당성 부재를 지적하고 있으며, 민간통치 로드맵의 지연도 우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활동의 금지, 언론탄압, 부정부패, 연고주의도 지적하고 있다.
정치적 반대세력 탄압과 정치활동 재개 움직임
군사정부의 막강한 정치권력에 비해 정치적 반대세력의 입지는 현재 매우 취약하다. 2014년 군부쿠데타로 물러난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전 총리는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현재 해외로 도피한 상태이다. 잉락은 총리 재임 중, 농가 소득보전을 위해 시장가보다 약 50% 높은 가격에 쌀을 수매하는 정책을 전개하여 농촌 지역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쿠데타로 정권이 교체되자 현 집권 군부는 잉락을 쌀 수매 관련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하여 5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으며, 검찰은 재정손실과 부정부패를 이유로 잉락을 법정에 세웠으나 재판 직전 해외로 망명해 버렸다. 잉락이 부재한 상태에서 치러진 재판에서 대법원은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전 총리 탁씬 친나왓(Thaksin sinawatra)은 2008년에 권력남용 및 부정부패 혐의로 실형을 받기 2주 전에 해외로 도피했으며, 2010년 2월 대법원은 탁씬 가족의 국내 동결 재산 23억 달러 중 14억 달러를 국고에 귀속시키라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현 군사정권 최대 정적인 탁씬 일가의 정치적 재기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동안 대중의 눈에 띄지 않았던 탁씬과 잉락은 정당들의 정치활동 재개와 총선이 가까워 짐에 따라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금년 2월 중 중국, 홍콩, 일본, 싱가포르를 잇달아방문 해 의도적으로 언론에 노출되고 정치적 발언도 하고 있다. 탁씬은 앞으로 치러질 총선에서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프어타이당이 하원의석 수220-230석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현재 탁씬을 지지하는 레드셔츠 반독재 민주주의 연합전선(UDD: United Front for Democracy Against Dictatorship) 및 2014년 쿠데타 직전 집권여당이었던 프어타이당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UDD 의장인 짜뚜펀 프롬판 (Jatuporn Prompan)은 1년 징역형에 처해져 실형을 살고 있다. 그러나 군부가 민정 이양을 위한 총선 일정을 계속 늦추자 총선을 촉구해온 태국 시위대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군부가 내린 정치집회 금지 조치로 근 4년간 억눌려 있던 태국 국민의 민주화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군부가 정치집회를 엄격하게 금지한 가운데 체포나 구금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점차 커지는 양상을 보이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정치집회가 금지된 상태임에도 수도 방콕에서는 총선 일정 지연에 항의하는 이례적인 시민 집회가 열리고, 시민운동가와 학자들은 대규모 연대조직을 결성해 시민행진을 진행하며 군부를 성토하고 있다. 시위대는 군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한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군정 최고기구인 NCPO 해체를 촉구하기에 이르렀으며, 탐마쌋대학교 방콕 캠퍼스에서 반군부 집회를 개최했던 학생과 시민단체 회원 등은 육군사령부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주요 정당들은 게엄령에도 불구하고 정치활동 금지 조치를 전면해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압박으로 쁘라윗 부총리는 금년 6월 경에는 금지조치가 해제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대의 활동이 비등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군사정부는 2014년 쿠데타 이후 그 어느 때 보다도 왕실모독죄를 가혹하게 적용해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있다. 쿠데타 이전인 2013년 왕실모독죄 기소사건의 수는 57건 이었는데 이후 크게 증가 해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각 각 99건, 116건, 101건이다.
라마 10세 와치라롱껀(Maha Vajiralongkorn) 국왕 즉위 후 왕실모독죄가 적용되어 체포된 최초 사례는 짜뚜팟 분팟타라락싸(Jatupat Boonpattararaksa) 사건이다. 그는 컨깬대학에 재학 중이며 학생운동 단체 다우딘(Dao Din)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의 핵심인물로 부상되고 있었다. 2016년 12월 영국 BBC의 태국어 싸이트에 게재된 와치라롱껀 국왕 관련 기사 링크를 페이스북에 공유해 국왕모독 혐의로 체포되어 복역 중이다.
2017년 4월 유명한 사회비평가인 쑬락 씨와락(Sulak Sivaraksa)도 기소 당했는데, 그는 16세기 아윳타야왕국의 나레쑤원 왕이 버마와 벌인 코끼리 전투는 (실화가 아닌)신화라고 언급했다가 기소 당했다. 가장 최근에는 신당(Future Forward Party) 창당을 준비 중이던 공동대표의 한 명인 삐야붓 쌩까녹꾼(Piyabutr Saengkanokkul) 발언이 문제가 되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형법 112조 왕실모독죄 조항을 폐지 하겠다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신당은 억만장자인 타나턴 쯩룽르엉낏(Thanathorn Juangroongruangkit) 이 창당한 진보 성향 정당으로 참신한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 역시 군주제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은 지역 언론을 후원한다는 이유로 기소된 상태이다.
왕실모독죄의 가혹한 적용은 군사정권뿐 아니라 새로 즉위한 와치라롱껀 국왕의 지위를 강화 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군사정권은 페이스북에 국가 안보 위협 및 왕실모독 내용을 담고 있는 게시물에 대한 사용자의 접근을 차단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태국에서 페이스북 접근을 차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언론 통제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도가 심각한 상태이다.
2001년 탁씬 정권 이후 태국의 정치 변동
군사정권과 새 국왕의 호혜적 공생모델 구축
군사통치의 장기화와 정치개입의 제도화, 정치적 반대세력 탄압 등 군정의 이러한 모든 움직임은 새로 즉위한 국왕의 왕권 강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10월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국왕이 서거하고 장남 와치라롱껀 왕세자가 라마 10세로 즉위하면서, 70년 만에 새로운 군주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동안 국민사이에 비호감 인물이던 와치라롱껀은 국왕자질 시비에 시달렸었다. 공식적으로 세 차례 결혼한 왕세자는 여성문제가 복잡하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부정적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쿠데타 발생 이후였다. 쿠데타 실세들이 왕세자를 지지하고 이미지 쇄신에도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쿠데타를 성공시킨 것은 항상 왕세자를 감싸왔던 어머니 씨리낏(Sirikit Kitiyakara) 왕비의 근위대 출신인 동부 호랑이 파벌(Eastern Tigers)에 소속된 정치군인들이었다. 쁘라윳 총리를 비롯해 현 군사정권 실세들이 모두 이 파벌에 속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집권 후 자전거 타기 등 몇 차례 이벤트 행사를 통해서 젊고, 효심 깊은 이미지의 왕세자 띄우기에 적극 나서 후계구도를 공고히 했다.
와치라롱껀 국왕은 즉위하면서 예상치 못한 강력한 정국 장악력을 발휘했다. 푸미폰 국왕의 서거 직후, 선왕을 애도한다는 명목으로 즉위시기를 미루어둠으로써 군부에서도 통제가 쉽지 않은 인물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12월 즉위한 와치라롱껀 국왕은 이어 2017년 1월에는 새 헌법의 일부 조항에 대한 수정을 요구했다. 의례적인 일이었다. 그 내용은 국왕의 일시적인 부재시 섭정자를 지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원래 조항에서는 왕실 자문기구 추밀원(Privy Council of Thailand)이 국왕 부재시 섭정을 지명하고 의회승인절차를 밟도록 규정했다. 오랜 세월동안 자신이 차기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고 둘째 공주 씨린턴(Maha Chakri Sirindhorn)공주를 지지했던 추밀원 의장 쁘렘 띤쑬라논(Prem Tinsulanonda)을 견제한다는 목적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어 그는 추밀원을 개편해 자신의 사람들을 임명하고 군부에 대해서도 각별한 배려를 했다. 모두 18명의 위원 중 7명을 해임했다. 그들 중 4명은 전직 원로 군장성들이었다. 이들을 대신한 사람들은 NCPO 위원이면서 장관직을 겸직하고 있던 장성출신 2명과 전 육군사령관 출신으로 모두 2014년 4월 쿠데타 핵심세력이었다.
2017년 1월 NLA는 국왕이 불교계 승왕을 직접 임명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불교계는 승왕 선출을 앞두고 불교계 내부의 대립, 정부와 불교계 간의 대립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국왕에게 승왕임명권을 주기로 함으로써 일거에 문제를 해결했다. 1992년 개정된 승왕 임명 조항에서는 원로회의에서 승왕을 추천하여 국왕이 임명토록 했는데 국왕이 승왕을 직접 임명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승왕 임명에 관한 절대적 권한을 돌려 준 셈이다.
무엇보다 새 국왕의 권한을 막강하게 만든 것은 지난 8월 NLA가 왕실재산관리국(Crown Property Bureau)을 국왕이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왕실재산관리국은 싸얌 상업은행(Siam Commercial Bank)과 싸얌 시멘트회사(Siam Cement Company)를 소유하고 있으며 방콕과 전국에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NLA는 왕실재산관리국에 관한 규정을 바꾸기 전에 왕실관련기구들의 운영주체를 정부에서 왕실로 바꾸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이외에도 와치라롱껀 국왕은 선대왕때 큰 영향력을 가졌던 왕실의 관료들을 숙청하고 정부나 군의 지휘를 받았던 왕실 수비부대들을 자신이 직접 통제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은 새로운 왕권을 강화시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며 대부분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왕권강화의 대가로 군부는 정치개입의 제도화를 꾀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른바 양자간에는 호혜적 공생모델이 구축중인데 가끔 국왕은 군부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도 과시하고 있다.
현 군사정권과 와치라롱껀 국왕과의 양자관계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탁씬과 와치라롱껀의 관계이다. 탁씬은 총리직에 오르기 전부터 당시 왕세자였던 와치라롱껀의 재정적 후원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쿠데타로 탁씬이 물러난 후 2014년 쿠데타가 발생하기 전까지도 와치라롱껀이 대체로 친탁씬 편에 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와치라롱껀 즉위 후 탁씬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는 가운데, 최근 한 언론을 통해 탁씬이 와치라롱껀 국왕에게 사면을 요구했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다수의 태국 국민, 그리고 왕실에 대해서 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국민들조차 와치라롱껀 국왕이 대중적 지지를 얻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와치라롱껀 국왕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막강한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었던 푸미폰 전 국왕과는 다르다. 그럴수록 그에게 동북부와 북부 농민, 도시 빈민층의 지지를 확고히 받고 있는 탁씬과 레드셔츠 세력의 지지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려진 바와 같이 푸미폰 전 국왕의 정치개입은 상황적응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왕실보전과 왕권강화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본적으로는 군부쿠데타를 지지했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 운동세력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왕권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와치라롱껀 국왕이 지금은 탁씬의 정치적 기반을 철저히 말살하려는 군부와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치상황에 따라 그 관계는 충분히 변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국전망과 총선이후 차기총리는 누구?
현재까지 쁘라윳 총리 및 군부의 정권 장악력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두 가지 정국불안 요인이 있다. 하나는 쁘라윗 웡쑤완(Prawit Wongsuwan) 부총리의 부패 스캔들이다. 쁘라윗 부총리는 군대 시절 쁘라윳 총리의 후견인 역할을 했으며 동부 호랑이 파벌의 수장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최근 언론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쁘라윗의 시계 스캔들은 군부 주도의 정치적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강력한 부패 스캔들이 될 수도 있다. 쁘라윗이 공개석상에 착용하고 나온 고가 시계가 발단이 되었는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가 소유하고 있는 고가의 시계들은 2014년 부총리직에 오를 때 재산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야당과 시민단체의 공세로 반부패위원회에서 조사를 진행 중이다.반부패위원회에 따르면 쁘라윗은 모두 22개의 시계를 이미 사망한 한 친구로부터 빌린 것 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데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시간)가 더 필요하다는 어정쩡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두고 있는 상태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시민단체들은 일찍부터 쁘라윗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이 보다 더 중요한 또 다른 정국불안 요인은 총선 연기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이다. 쁘라윳 총리는 2018년 11월에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고 표명해 왔다. 그러나 2018년 1월 25일 NLA가 하원의원 선거법의 시행일을 90일 연기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올해 내 총선 실시가 다시 불투명해지고 2019년 2월까지 연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 사실상 쿠데타 후 2015년 치르겠다고 약속한 총선은 공식적으로 4차례나 연기된 셈이다. 지난 2월 쁘라윳 총리가 늦어도 2019년 2월까지는 총선을 치르겠다고 언급했지만 변수는 여전히 남아있다.
2000년 이후 총선
그 변수는 헌법재판소에서 현재 심의 중인 몇 개 법안들의 위헌성에 대한 판결이다. 판결 여하에 따라서 새로운 입법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총선 연기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 중 상원의원 임명과 하원의원 선거법 관련 조항에 대한 위헌성을 제기한 것은 이 법을 만든 NLA 의원 자신들이다. 하원의원 선거법에서는장애인 투표 시 조력자가 배석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것이 비밀투표의 원칙에 위배되느냐는 것이 쟁점이다. 프어타이당과 민주당도 각각 개정된 정당법에 대한 위헌성을 제기했다. 군정 당국인 NCPO가 모든 기존 정당원들도 재등록 (재등록시 1년 100밧, 평생 2,000밧 회비납부 의무화) 을 해야 정당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당법을 개정했는데 양당은정당원들의 권리를 유린하는 위법이며, 기존 정당에 절대 불리한 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4월 한달동안 재가입 등록기간 중 250만명의 당원수를 보유한 민주당의 등록률은 3.2%(8만명)에 그쳤으며, 프어타이당은 13만명 중 7%(1만명)만이 등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총선연기 가능성은 왕실변수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와치라롱껀 국왕의 대관식은 총선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푸미폰 국왕이 2016년 10월 13일 사망한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12월 1일 와치라롱껀이 즉위했다.장례식은 2017년 10월 26일에 있었으나 그 해 말로 예정된 대관식은 아직까지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대관식의 개최시기는 총선 개최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 시기는 왕권이 충분히 강화되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일 것이다. 총선을 연기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는 씨리낏 왕비(Sirikit Kitiyakon)의 건강문제이다. 1932년 생인 왕비는 2012년 후 심각한 뇌혈관 질환을 앓고 있다. 왕세자 시절 와치라롱껀을 푸미폰 국왕 후계자로 줄곧 지지해 왔고 동부 호랑이 파벌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왕비의 죽음은 총선연기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군부는 앞으로 총선에 쁘라윳 현 총리를 내세워 장기집권을 획책하려 할 것이다.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도총선 후 총리에 임명될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은 쁘라윳 총리이다. 현재 그가 어떤 방법으로 총리가 될 것인가만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쁘라윳이 새 총리가 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원외 총리가 되는 것이다. 500 명의 하원에서 정당 후보들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상하 양원에서 원외인사를 총리로 선출할 수 있는 데 250 명의 상원의원 지지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하원의원125 명 이상의 지지를 받아서 (상하 양원의 과반수인 375 표)총리에 임명되는 방법이 있다. 둘째는 특정 정당의 총리 후보가 돼 하원에서 다른 정당의 지지를 받아 총리가 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총리 후보를 내는 정당은 최소한 25 석의 하원 의석을 확보해야한다.
총리선출과 관련된 현재의 정치적 추세는 초기에 선호했던 원외총리에서 정당추천총리로 선회하는 듯하다. 사실상 원외총리 임명은 심각한 정치적 후폭풍을 불러 올 우려가 있다. 1991년 찻차이 춘화완(Chatichai Choonhavan) 문민정권에 대한 쿠데타가 발생한 후 치러진 1992년 총선에서 쿠데타를 주도한 육군사령관 쑤찐다 크라쁘라윤(Suchinda Kraprayoon)가 원외 임명총리가 된 후 이에 대한 반발로 전 방콕시장 짬렁(Chamlong Srimuang)의 단식투쟁과 그가 주도하는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발생했으며 야당을 포함한 반정부 세력은 쑤찐다의 사임과 의회 해산 및 선출직의원의 총리임명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을 요구하였다. 짬렁 주도의 시위는 소위 5월 민주화운동(1992.5.17-20일)이라고 일컫게 되었는데 대규모 반정부시위에는 중산층이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5월 민주화운동은 5월 20일 왕이 쑤찐다와 짬렁을 왕궁으로 소환하여 타협할 것을 종용함으로써 일단락되었으며 쑤찐다는 5월 24일 총리의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차기 총리 후보 1순위인 쁘라윳은 원외총리보다는 정당추천 후보로 출마하기 위한 유리한 정치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원외 총리 추대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군부는 원외 총리와 정당 추천 총리 어떤 쪽을 선택하든 중요 정당과 정파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래서 지난 몇 개월 동안 쁘라윳 총리와 측근들은 수 차례 여러 정당과 파벌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들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지역구에 대한 재정지원, 주요 인사를 정부 요직에 임명하는 조치들이 꾸준히 이루어 지고 있다. 지금까지 적어도 8 개의 정치 파벌과 군소 정당들이 군부와의 “특별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군부는 양대 정당인 프어타이당과 민주당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한 우호적 정치네트워크를 구축하려하고 있다. 동시에 신당 창당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총리직을 맡고 있는 쏨킷 짜뚜씨피탁(Somkid Jatusripitak) 이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데 그는 탁씬 경제정책(Thaksinomics)의 주요한 입안자이기도 했다.
현재 태국 양대 정당은 프어타이당과 민주당이다. 군사정권은 총선 후 프어타이당을 배제한 다당제 연립정부 구성을 이상적인 정치구도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2006년 쿠데타 후 친 탁씬계 정당은 번번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서 해산되면서도 타이락타이당, 팔랑쁘라차촌당, 프어타이당으로 당명을 바꿔 집권해 오면서 그 현실적인 정치적 힘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 배후에는 탁씬이 있었다. 그는 해외 망명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차례의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고,3명의 총리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탁씬과 지지세력들이 지금은 정치적 존재감이 미미할지 모르나, 본격적인 총선 정국에 돌입하면 무시 못할 세를 과시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한다. 얼마 전 탁씬은 총선에서 프어타이당이 220석 내지는 230석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해 자신감을 나타냈다.하지만 비록 프어타이당이 제1당이 된다 해도 과반수 의석이 안 된 상태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는 쏨킷 부총리가 주도할 신당과 쁘라윳 지지를 선언한 다수 군소정당간의 연정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군사통치의 제도화(원외총리와 임명직 상원제도 등)에 반대하면서 점차 군정과 거리를 두고 있는 민주당이 총선 후 연립정부구성에 응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
저자소개
김홍구 교수(hongkoo@bufs.ac.kr)는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태국 치앙마이대학과 까쎗쌋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였다. 태국의 왕실, 군부, 불교와 정치문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태국정치입문, 태국 군과 정치, 태국불교의 이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출판하였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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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รัฐธรรมนูญแห่งราชอาณาจักรไทย พุทธศักราช ๒๕๖๐, 2017년 헌법개정안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